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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06화 (106/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06화

    “맛있었어?”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고 있던 단솔은 왠지 민망해졌다. 뼈가 붙어서 나온 양고기 스테이크는 부드러웠고, 다른 요리들도 먹기 아까울 정도로 정성이 가득했다. 매일 이렇게만 먹으면 금방 살이 찔 것 같았다.

    게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전경이며, 레스토랑의 분위기가 메기 매운탕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험상궂게 생긴 인상과는 다르게, 대수 역시 꽤 고급진 취향을 갖고 있었다.

    “이 가격으로 맛이 없으면 그건 범죄예요.”

    단솔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맛도 맛이지만, 메뉴를 고르면서 본 이곳 코스의 가격은 0이 세어 보기도 힘들게 펼쳐져 있었다.

    “나랑 있으면 매일 이런 거 먹을 수 있어.”

    “네?”

    단솔이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서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방송 끝나고도 사 줄 테니까.”

    단솔은 대답을 하지 않고 웃었다. 대수의 호의가 고맙긴 했지만, 그게 진심이 아님을 알고 있다.

    짧은 연예계 생활 동안 스쳐 간 인연 중, 단솔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식구처럼 몇 년을 함께 동고동락한 멤버들조차도 냉정하게 돌아서는 게 이 바닥 생리였다.

    “어? 비 온다.”

    단솔이 투두둑투두둑 비가 떨어지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말했다. 그 말에 대수가 놀란 듯 창밖을 바라보더니 이마를 짚었다. 왜 그런지 영문을 모르는 단솔은 커다란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되는 일이 없군.”

    * * *

    두 사람의 데이트를 지켜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의문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수 선배 왜 저래요? 비가 오면 안 되나?”

    “너무 많이 먹어서 화장실 가고 싶은 거 아니야?”

    “아! 지수 형! 진짜 밥 먹는데!”

    왜 남이 데이트하는 꼴을 지켜봐야 하냐고 투덜거릴 때는 언제고, 그들은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니터 앞으로 식사를 가져와 먹으면서도 시선은 모니터에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 * *

    “지난번에 갔던 놀이동산, 다시 가려고 했거든.”

    “아…….”

    야외에 위치해 날씨가 안 좋으면 개장하지 않는 곳이었다. 함께 인형 탈을 쓰고 돌아다녔던 게 생각나 단솔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퍽 곤란해하는 대수에게 단솔이 물었다.

    “선배, 제가 진짜 가고 싶은 데가 있는데…… 같이 가 주실래요?”

    * * *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아쿠아리움이었다. 실내라 비를 맞을 일은 없었지만, 미리 촬영 협조를 받지 않은 탓에 다른 관람객들이 많았다.

    “저…… 부탁하신 거 구하긴 했는데, 급하게 구하느라…….”

    차에서 스태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단솔과 대수에게 내밀어진 것은 광어와 우럭을 너무 사실적으로 구체화한 가면이었다.

    멀쩡하게 차려입은 게 무색하게 비린내가 날 것 같은 모양새에 대수가 주춤하는 게 느껴졌다.

    “우와…… 이거 진짜 광어랑 우럭 같아요.”

    “……다른 건 없습니까?”

    “왜요……? 마음에 안 드세요?”

    대수는 찝찝하게 생긴 광어 대가리로 단솔의 얼굴을 가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수가 말없이 이상한 가면을 가져온 스태프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 단솔이 혼자서 결론을 내렸다.

    “아……! 광어는 납작해서 시야 확보가 안 되겠네……! 그렇죠 선배?”

    어떤 머저리가 만든 건지 광어 가면에는 눈 구멍이 하나밖에 뚫려 있지 않았다.

    “그래, 그러네.”

    하자가 있는 가면을 자연스레 반납하려던 대수였지만, 단솔은 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말을 뱉었다.

    “혹시 고등어나…… 오징어 이런 건 없나요?”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서 대수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 내던 스태프는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등어 있어요!”

    * * *

    “성인 두 분 맞으십니까? 헉…….”

    “네…… 맞습니다.”

    대수가 모바일로 발권한 티켓을 내밀자, 아쿠아리움 앞에서 티켓을 확인하던 직원이 헉 소리를 내며 놀랐다.

    190cm의 인간 몸을 한 우럭 옆에 눈처럼 하얀 코트를 입은 고등어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고등어가 신이 났는지 팔딱팔딱 뛰며 아직 들어가지 못한 아쿠아리움 내부를 구경하려 하자, 커다란 우럭이 그의 머리를 지그시 누르기까지 했다.

    헛걸 보는 건가 했던 직원의 인이어에 상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편 매표소. 광어…… 아니 우럭이랑 고등어 가면 쓴 성인 남성 둘, 방송 촬영으로 협조 요청. 통과 바람.”

    “어……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

    티켓 부스의 직원은 프로다운 표정 관리로 양손을 반짝반짝 흔들어 보였다.

    막상 아쿠아리움에 들어오고 보니, 대수는 단솔이 원하는 대로 해 주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남들에게 구경당하는 건 가면을 쓰나 벗으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시달리는 것보다는 슬금슬금 피하는 편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우와……! 선배님! 참치예요!”

    단솔은 참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팔딱팔딱 뛰었다. 도대체 누가 참치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수는 가면 속에 제 바보 같은 표정이 가려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나도 살아 있는 참치는 처음 보네.”

    “에? 그럼 죽은 참치는 본 적 있어요?”

    대수는 일식집에서 보았던 참치 해체 쇼를 떠올렸다.

    단솔의 고등어 대가리 옆에 눈을 동그랗게 뜬 참치가 유유히 헤엄쳐 가는 걸 보자니 새삼 제가 잔인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 뭐……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아아…….”

    단솔은 아까 그 참치가 마음에 들었는지 유영하는 참치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유리로 된 수족관을 향해 쾅쾅 주먹질을 하는 아이들을 마주쳤다.

    아이들의 엄마는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고 예닐곱 살 돼 보이는 아이들이 수족관을 마구 때리고 있었다.

    “얘들아, 그렇게 때리면 안 돼. 물고기가 아야 해.”

    “아저씨가 뭔데요. 아저씨가 여기 주인이에요? 꺄아아악!”

    “으아아아앙.”

    단솔은 그저 아이들에게 규칙을 알려 주려고 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단솔을 보자 경기를 일으키며 울기 시작했다.

    “어……! 미안 얘들아!”

    그제야 자신의 고등어 가면의 존재를 깨달은 단솔이 수습을 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누구야! 누가 우리 애를 울려! 어머, 깜짝이야! 야! 생선 대가리 너 뭐야!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그때까지도 구석에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던 한 아줌마가 단솔을 보더니 한 대 칠 기세로 달려들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애들이 수족관 벽을 쾅쾅 치고 있길래…….”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게 네 거야? 어? 애들이 좀 칠 수도 있지. 그래서 수족관이 부서졌어?”

    “그렇게 충격을 주면 물고기들이 스트레스를…….”

    “어쩌라고! 네가 지금 이러는 게 우리 애들한테 더 스트레스야. 네가 뭔데 우리 애들 기를 죽여!”

    그 소리에 그때까지만 해도 그 소란의 주인공이 단솔일 거라곤 생각도 못 한 대수가 저 뒤쪽에서부터 저벅저벅 걸어왔다.

    “아줌마, 아줌마야말로 여기 전세 냈습니까?”

    “……넌 또 뭐야 ……이것들이 쌍으로 미쳤나. 생선 대가리를 뒤집어쓰고……!”

    대수의 커다란 몸집에 잠깐 주춤했던 그녀는 이내 다시 아까 전의 그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점점 몰려드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수가 귀찮은 듯 가면을 벗어 던졌다.

    헙. 대수의 실물을 보자, 처음 가면을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놀란 듯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그 와중에 플래시 터트리면서 사진을 찍어 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단솔은 저 때문에 싸움에 휘말리게 된 대수가 걱정됐다.

    “선배……! 저 괜찮.”

    “아줌마야말로 뭔데 우리 애 기를 죽여요.”

    “아니…… 저기…… 이거 방송 촬영이에요?”

    여자는 갑자기 언성을 누그러뜨리곤 주변을 살폈다.

    방송 카메라의 유무가 그렇게나 중요한 걸까. 어차피 온 세상이 카메라인데.

    “방송 촬영이면 뭐, 당신 애새끼들이 물고기 한 마리 골로 보낸 게 없던 일이 된답니까.”

    대수가 아이들이 붙어 있던 수족관을 가리켰다. 아까 전 아이들이 신기하다며 두들겼던 물고기가 스트레스 때문인지, 유리 벽에 머리를 쾅쾅 박고 있었다.

    “제가 알기론 꽤 비싼 어종인데,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직원 부르시죠.”

    “아니…… 무슨 애들이 그런 걸로. 이리와 하민아, 하랑아. 가자.”

    여자는 아이들을 자신의 코트 자락에 숨기곤,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가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대수는 가면을 완전히 벗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방송 촬영 중이니까 모르는 척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곤 다시 우럭 가면을 썼다. 대놓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이리저리 흩어졌다. 수군거리는 소리나 힐끗거리는 시선까지야 어떻게 할 수는 없었지만.

    단솔은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진 대수가 부러웠다.

    “저거 진짜 비싼 물고기예요?”

    그때까지도 유리 벽에 제 머리를 박느라 피까지 흘리고 있는 물고기를 가리키며 단솔이 말했다.

    “아니, 나도 몰라. 근데 그게 중요한가. 안 비싼 물고기면 죽어도 싸고, 비싼 물고기면 큰일인가. 생명은 다 똑같은데.”

    단솔은 왠지 유리창에 머리를 박는 물고기의 처지가 저와 비슷한 것같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관심으로 먹고살지만, 결국 사람들 때문에 죽음을 맞는 처지가.

    단솔은 가면이 제 얼굴을 가리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마가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이제는 움직임도 느려진 물고기가 너무도 처절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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