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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05화 (105/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05화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보통 정오가 넘어서야 촬영을 시작하던 때와는 달리, 일찍이 스태프들이 출연자들을 깨웠다.

악몽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새벽 산책까지 한 단솔은 몸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좋은 아침은 개뿔…….”

그건 태오도 마찬가지인 듯 태오는 아침부터 눈을 반쯤 감은 채 에너지 드링크를 빨고 있었다.

―와, 우리가 만난 게 여름의 끝자락이었는데요, 벌써 이렇게 날씨가 추워졌어요. 이제 가을을 넘어 거의 겨울 날씨네요.

―어느덧 저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불쑥 가까워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제작진이 준비했습니다. 최종 선택 전 마지막으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데이트’라는 말에 단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제 그 사달이 난 것도 그놈의 데이트 때문이었는데, 이럴 바엔 차라리 상식 퀴즈를 한 번 더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알파들은 달랐다. 이미 단솔의 마음에 누군가 자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라 그들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판을 뒤집을 수 있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데이트권을 획득하기 위한 게임이 없습니다.

“네? 게임이 없다고요?”

승부욕에 활활 불타오르던 그들의 눈에 의문이 가득했다.

―서로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니만큼, 전 출연자 모두에게 원하는 상대와 데이트할 수 있는 데이트권이 지급됩니다.

―단, 서로의 데이트 상황은 모니터를 통해 춘몽각에 남아 있는 출연자들에게 모두 송출됩니다.

단솔은 더블데이트라는 명목으로 지수와 두현의 데이트 장면을 억지로 봐야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번엔 제작진들이 여기에 꽂힌 모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데이트하는 꼴을 보는 것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감시당하며 데이트하는 것도, 이러나저러나 출연자들을 괴롭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사탄도 울고 가겠네.”

자다 일어난 티가 역력하게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지수가 중얼거렸다.

부스스한 모습조차 귀엽게 느껴진 단솔은 제가 생각을 하고도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그걸 종일 보고 있어야 합니까? 딱히 안 궁금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침부터 풀 세팅된 차림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대수가 오른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어…… 굳이 안 보시겠다면 저희가 말릴 방법은 없죠. 하하. 하지만 궁금하실걸요.

―자, 오늘부터 데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텐데요. 앞에 놓인 상자에서 순서가 적힌 공을 먼저 뽑아 주시죠.

처음엔 순서를 뽑는 것조차 잔뜩 긴장을 했던 단솔이었다. 이제는 상자에 손을 넣는 게 꽤 익숙해졌다.

단솔은 성큼성큼 걸어가, 자신의 순서를 뽑았다.

7번.

젠장, 마지막 순서라니. 중간쯤에 끼어 있길 바랐는데.

―1번 순서 누구신가요?

“접니다.”

대수가 손을 들었다.

“전 2번이요.”

―정대수 씨 다음은 이이연 씨. 유두현 씨, 마태오 씨, 제갈민혁 씨, 한지수 씨 순서네요. 주단솔 씨는 마지막이시죠?

“네…….”

―오늘 점심시간부터 데이트가 시작될 텐데요. 정대수 씨, 데이트 상대의 이름을 불러 주시죠.

“주단솔이요. 열두 시쯤 대문 앞에서 봐.”

“네? 네…….”

단솔은 지수와 두현이 어떤 데이트를 할지 상상하느라 다른 알파들이 저를 고를 거란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방금 전 제가 얼마나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단솔은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어째 전혀 기뻐 보이지가 않네요. 아무래도 단솔 씨 마음속 알파는 정대수 씨는 아닌가 봐요?”

옆에 서 있던 이연이 깐족거리며 대수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건 지켜보면 알겠지.”

하지만 대수는 자신이 있었다. 반나절의 데이트만으로도 단솔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 * *

단솔은 방에 들어와 캐리어를 열었다. 이제 날씨가 추워질 거라며 멤버들이 싸 준 옷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옷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까만색 맨투맨 티셔츠와 회색 트레이닝복 바지만 입고 돌아다녔었다. 분명 입고 올 땐 새 옷이었는데, 어느새 바지는 무릎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니까, 칙칙한 것보다는 밝은 게 낫겠지.

“날씨가 추우니까…….”

* * *

대수는 단솔보다도 10분 먼저 대문 앞에 나와 차 시동을 켜 놓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오랜만에 단솔과 하는 데이트에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 모습을 춘몽각 거실에 모인 출연자들이 보고 있었다.

“……정대수 씨가 배우긴 배우네요. 맨날 트레이닝복만 입다가 저렇게 각 잡은 걸 보니까 꼭 영화 장면 같아요.”

민혁이 중얼거리는 말에 지수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암묵적 동의를 했다. 지수가 옆에 앉아 있던 태오에게 물었다.

“야, 태오야. 도대체 단솔이가 관심 있는 사람이 누군데. 정대수야?”

“그냥 저 혼자 지레짐작한 거라니깐요.”

“그래서, 누굴 짐작했는데. 상대가 있을 거 아냐.”

“몰라요. 알아도 말 안 해요.”

지수가 태오의 옆구리를 푹 찌르고 있는 사이, 2층에서 단솔이 뛰어 내려왔다. 옷을 고르느라 대수와 약속한 시간이 임박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총알같이 튀어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스태프까지도 탄성을 절로 뱉었다.

단솔은 연한 회색 폴라 니트에 아이보리색 코트를 받쳐 입고 집을 나섰다. 기본 아이템이었지만, 단솔의 얼굴을 빛나게 해 주기 좋은 아이템들이었다.

니트를 입느라 정전기가 일어나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섰지만, 그것마저 귀여워 보일 정도로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뭐야, 뭐가 지나간 거야.”

“천사 아니에요. 형?”

* * *

그와 같은 감상은 대수도 마찬가지였다. 편한 모습도 귀여웠지만, 저를 향해 웃으며 걸어오는 단솔의 모습은 정말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차에서 내려 단솔을 맞이하려던 대수는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예쁘게 하고 왔네.”

“아…… 밖에 춥다 그래서. 헤헤. 선배, 그럼 저희 어디 가요?”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음…… 적어도 메기 매운탕은 아닌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첫 데이트였다.

단솔이 진짜 메기 매운탕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때가 생각나 대수도 피식거리며 웃었다.

“일단 타, 밥부터 먹으러 가자.”

* * *

“메기 매운탕이 뭔데.”

두 사람의 대화에 지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아, 지수 형 몰라요? 메기 매운탕? 아, 감독님. 이 형 우리 거 모니터링도 안 하나 봐요.”

“왜 안 해? 하지 당연히.”

내 위주로만. 지수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지수의 모니터링은 철저히 자신과 단솔 위주였다. 더군다나 대수와 단솔의 데이트라면 일부러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쳐도 애써 모른 척 다른 데로 돌리곤 했다. 도대체 재방송은 왜 그리 많이 해 주는 건지.

“아 그게 뭔데. 이연 씨 그게 뭔지 알아요?”

“어…… 그러니까 그게…….”

하지만, 자신의 위주로 모니터링하는 건 이연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전 안 봤습니다. 집에 티브이가 없거든요.”

오히려 민혁은 뻔뻔하게 굴었다.

말문이 막힌 지수가 두현에게 물었다.

“두현 씨는 왜 말이 없어요? 알아요? 메기 매운탕?”

“대수 선배랑 단솔 씨랑 데이트할 때 선배님이 착각하셨나 봐요. 단솔 씨가 메기 매운탕 좋아한다고. 그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아…… 했구나. 모니터링.”

두현은 질문을 한 지수가 아니라 이연을 보면서 말을 했다.

그는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첫 촬영 때 이연이 단솔에게 무슨 메뉴를 좋아하냐고 묻는 말에 단솔이 성의 없이 ‘메기 매운탕’이라고 대답한걸.

이연이 나오는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 본 두현은 오디오가 작게 들어갔지만 그게 이연의 목소리였음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그날 두현은 이연과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었지만, 그조차도 단솔이 만들어 준 기회였다는 게 생각나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 * *

“양고기 좋아해?”

“음…….”

대수의 물음에 단솔은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돼지고기를 먹기에도 빠듯한 살림인데 제대로 된 양고기를 먹어 봤을 리가 없었다.

“양 꼬치는 먹어 봤어요. 맛있던데요.”

“그럼 딱히 거부감은 없겠네. 양고기 스테이크 먹으러 가자.”

“네…….”

처음부터 느꼈지만 대수는 참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필요한 말만 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단솔은 때때로 그런 대수와 있는 게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가끔은 남들에게 못하는 이야기도 대수에게 털어놓곤 했다.

지금은 차에 달린 카메라 너머로 꼭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어째, 감시당하는 기분이네.”

“네?”

“저거 말이야.”

“푸흡, 그러게요. 저도 그 생각 했어요.”

단솔은 괜히 카메라에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는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다들 점심 식사 맛있게 하세요. 선배도 인사하실래요?”

“아니.”

“네…….”

“도착했다. 내리자.”

가끔은 정말 필요한 말만 하는 그가 너무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단솔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고는 차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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