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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02화 (102/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02화

―다들 즐거운 데이트 시간 보내고 오셨나요? 아마 최종 선택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예전처럼 마냥 즐거운 시간이 되진 않았을 것 같네요. 정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본인 마음조차도 제대로 알 수가 없는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늦은 저녁 시간, 제작진은 또 무언갈 준비한 듯 출연자들을 앞마당으로 불러냈다.

―그래서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이전에 해 본 적 있으시죠? 여러분의 속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질문이 들어 있는 질문 함에서 각자에게 들어온 질문에 하나씩 번갈아 가며 답변해 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서로를 탐색해 보는 것에 그쳤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여러분의 더 깊은 속내를 알아보기 위해서 한 명당 질문지를 따로따로 준비했는데요. 여기에 들어 있는 질문들은 모두 저희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이 직접 작성한 것 중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질문을 추린 것입니다.

―때문에, 저희 제작진이 질문을 걸러 내는 데에 한계가 있었고, 그로 인해서 수위가 조금 센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답변이 끝나면 앞에 있는 화로에 질문지를 넣어, 활활 태워 주시면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앉아 있는 출연진들 앞으로 박스가 하나씩 들어왔다. 오른쪽 끝에 앉은 단솔은 왼쪽 끝에 앉은 태오를 연신 쳐다봤지만, 태오는 마치 오른쪽을 보면 큰일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단솔을 끝끝내 모른 척했다.

―다들 준비되셨나요? 준비가 되셨다면, 마태오 씨부터 순서대로 질문을 뽑아 주시겠어요?

늘 분위기를 주도하던 태오가 말이 없는 상황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태오는 조용히 자기 상자 안에 있던 질문지를 하나 뽑았다.

『만약, 여기서 커플이 되어 나가게 된다면,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인연을 이어 나가실 겁니까?』

태오는 무거운 한숨 끝에 말을 했다.

“네, 그럴 생각이었어요. 저는…… 꽤 진지했거든요.”

태오는 그 대답을 끝으로 단솔에게 시선을 던졌지만, 오히려 이번엔 단솔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단솔은 태오의 대답이 꼭 제게 하는 말인 것 같아 명치에 무언가 얹힌 것처럼 속이 답답해졌다.

태오가 고개를 숙인 단솔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제 질문지를 화로에 던졌다.

―이이연 씨? 질문지를 뽑아 주실까요?

공교롭게도 태오의 옆자리엔 이연이 앉아 있었다.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있던 이연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허리를 세우고 질문지를 뽑았다.

『이이연 배우가 생각하기에 알파, 오메가를 불문하고 출연자들 중 가장 최악의 연애 상대는?』

“집착하는 스타일이요. 저희 출연자들 중에서는…….”

이연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잠시 두현에게 머물렀지만 입으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정대수 씨? 좀 그런 타입 아니에요?”

팔짱을 끼고 있던 대수가 갑작스럽게 들어온 공격에 발끈했다.

“아닙니다, 저. 그런 스타일.”

“그래요? 그럼 잘 모르겠네요. 그런 건 만나 봐야 알겠지만, 전 소유욕이 강한 사람은 싫어요.”

앉아 있는 출연진들은 두현이 이연에게 집착하는 걸 모르지 않았다. 진실 게임에서조차 에둘러 의사 표현을 하는 이연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지수가 괜히 불쏘시개를 휘저으며 말했다.

“자유연애를 추구하나 봐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래도 성인이니까, 각자의 삶을 좀…… 가졌으면 하는 거죠. 상대에게만 너무 집중하면 헤어지고 나서 아무것도 안 남잖아요.”

이연의 말에 단솔은 아무도 몰래 혼자서 뜨끔하는 기분이 들었다.

프로그램이 끝이 난 뒤로 인생이 엉망이 되었으니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시간이 없었다. 저 역시 이연의 배신으로 한동안 멘탈이 무너졌었고, 그 뒤로도 몇 년간 그 일을 곱씹기도 했다.

“너무 많이 좋아했으면…….”

“응? 뭐라고요 단솔 씨?”

“많이 좋아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들 내 연인이 나만 봐 주길 바라는 건 같은 마음이니까요…….”

“일거수일투족 간섭하고 괴롭히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죠. 이연 선배는 그런 사람 두고 한 말 아니에요?”

불쑥 튀어나온 단솔의 말에 태오가 반박했다. 금세 분위기는 싸늘하게 바뀌었다.

단솔은 이런 비슷한 공기를 느낀 적이 있었다. 왜 이제야 생각났을까.

회귀 전, 사람들에게 냉대받던 그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단솔 씨, 그건 아니죠. 촬영 다시 갈게요.”

단솔이 뭐라도 멘트를 하면 번번이 기를 죽이던 PD와.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교묘하게 자신을 바보로 만들었던 두현까지.

단솔은 그 자리에서 몸을 숨기고 싶었다. 한참 대인 기피증이 심할 때는 제가 거북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도망치고 싶을 때면 거북이처럼 등 껍질을 메고 다니다가 머리와 팔, 다리를 숨겨 버리면 그만일 테니까.

지금은 다르다고, 그때와는 상황도, 사람도, 모두가 달라졌다고 자신을 다독거려 봤지만 단솔의 얼굴은 금세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웅얼거리는 소음만 들릴 뿐 단솔은 꼭 물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처럼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물 밖으로 끄집어내진 사람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왜? 난 좋은데, 집착하는 거. 누가 집착해 주면 좋지. 일거수일투족 다 감시당하고 싶어.”

지수의 장난스러운 말에 사람들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 소리에 단솔은 그제야 참았던 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단솔 씨, 몸 안 좋아요?”

손톱까지 새하얗게 질린 단솔에게 옆에 앉아 있던 민혁이 물었다. 단솔은 속닥거리며 대답했다.

“아…… 아니요. 저 괜찮아요.”

지수의 말은 분명 두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텐데도, 꼭 구석에 몰린 저를 구해 주는 것처럼 들렸다.

착각도 병이라더니. 짝사랑이야말로 중증 질병 아닐까.

단솔이 실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게임은 계속 진행되었다.

―정대수 씨, 뽑아 주시죠?

『프로그램을 하면서 가장 때리고 싶었던 출연자는? 혹은 진짜 때린 사람이 있나요?』

“저한테는 왜 매번 이런 질문만 들어오죠? 개인적으로 이런 질문을 하신 분을 만나면 꼭 한 대 때려 드리고 싶네요. 다음.”

“진짜 다음으로 넘어가요? 이렇게 대답해도 돼요?”

대수의 가벼운 대답에, 답변을 꽤 진지하게 했던 이연이 태클을 걸었다.

“그래요, ‘출연자 중에서’라고 했잖아요.”

태오까지 나서서 반박하자, 대수가 고민하는 듯 턱을 매만졌다.

“정말 없는데. 생긴 거랑 다르게 평화주의자라.”

“요즘 지수 씨랑은 사이가 좋아졌나 봐요.”

민혁의 질문에 매번 이런 질문에 거침없이 지수의 이름을 대던 대수가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눈썹을 찡긋거렸다.

“요즘 쟤는 내가 아니라도 두들겨 패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다들 알고는 있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통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니, 가만히 있는 나는 왜 건드려? 빨리 다음 질문 진행해요.”

지수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방송이 흘러나왔다.

―자, 다음 질문지는 유두현 씨가 뽑으시죠.

쿠션을 끌어안고 조용히 앉아 있던 두현이 손을 뻗어 질문지를 잡았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 사람으로 살아 보고 싶다 하는 출연자가 있나요?』

“음…… 전 단솔 씨요.”

두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줄은 몰랐던 단솔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돌이라 그런가…… 여기저기서 다 사랑받는 캐릭터잖아요. 부럽기도 하고.”

단솔은 속으로 그런 두현의 말을 비웃었다. 회귀 전엔 이연, 회귀 후엔 지수. 제가 좋아하는 사람마다 두현에게 빠지곤 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단솔은 그다지 인기 있는 아이돌도 아닌데, 두현은 굳이 단솔을 꼽았다.

“아이돌은 태오 씨도 있어요.”

민혁이 말하자, 두현은 몰랐다는 듯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 맞다. 까먹었네요, 태오 씨도 아이돌인 거……. 그래도 전 기왕 꼽은 거 다시 태어나면 단솔 씨로 태어날래요.”

단솔은 두현의 입에서 자꾸만 제 이름이 나오는 게 영 불편해 순서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한지수 씨, 질문지 뽑아 주시죠.

그러고 보니, 지수는 두현의 옆자리였다. 단솔은 그것조차 마음이 쓰라렸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 꽤 잘 어울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VS 나를 좋아하는 사람』

“이건 쉽네요. 전 무조건 제가 좋아하는 사람.”

지수가 질문지를 화로에 휭하니 던져 넣었다. 종이가 타들어 가듯 단솔의 마음도 재 가루가 되어 날리는 듯했다.

“제가 뽑을게요.”

민혁이 손을 뻗었다. 민혁은 마치 중요한 걸 고르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손을 휘젓더니 종이 한 장을 뽑아냈다.

『지금 마음에 있는 사람의 장점 세 가지를 말해 주세요.』

“웃는 게 예뻐서 자꾸 눈길이 가요. 순수하고 착해요. 사랑스러운 면을 많이 가졌어요.”

민혁의 시선이 단솔에게 가닿았다. 애초에 두 명뿐인 오메가에, 두현과는 접점도 거의 없는 민혁이라서 다들 그의 마음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작 바로 옆에서 제 칭찬을 듣자니 단솔의 얼굴은 터질 것같이 붉어졌다.

“저…… 저! 뽑을게요!”

단솔은 그 분위기를 못 견디고 방송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손을 상자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다 똑같은 종잇조각들 속에서 제발 쉬운 질문이 나오길 바라며 하나를 꺼냈다.

하지만, 늘 그랬듯 단솔의 삶은 어느 것 하나 편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솔직히 다른 출연자들과 접점이 많이 없어 보였는데 어떻게 캐스팅이 된 건지. 주단솔 씨가 느끼기에 다른 출연자들과 수준 차이가 느껴진 적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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