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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01화 (101/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01화

“다녀왔습니다…….”

단솔은 호텔에서 한 시간이나 대기를 하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힘없이 인사를 뱉은 단솔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건 웃통을 다 벗고 있는 대수였다.

“……어…… 늦게 오는 줄 알았는데.”

“어…… 조금 있다가 들어올까요?”

알파들만 남은 집에서는 운동이라도 하고 있었던 듯 거실에 덤벨과 각종 운동 기구가 늘어져 있었다. 평소였다면 대수의 커다란 근육들을 힐끗거리며 구경했을 단솔이었지만, 오늘은 그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다 끝났어.”

대수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반팔 티 중 하나를 주워 입었다. 원래 그의 것이 맞나 싶게 꽉 끼는 핏에, 단솔은 여전히 현관 앞에서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거 제 거 아니에요? 어…… 단솔 씨, 일찍 왔네요. 하하.”

금방 씻고 나온 모양인지, 이연이 어색하게 상체를 수건으로 가리며 단솔에게 인사를 했다. 대수는 티셔츠가 말려 올라가 배꼽이 보일 듯 말 듯 할 정도였지만, 이연에게 옷을 벗어 주지 않았다.

저를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느껴진 단솔은 서둘러 신발을 벗고 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전…… 먼저 들어가 볼게요. 계속 하던 거 하세요.”

“손.”

“네?”

하지만, 대수가 방으로 올라가려던 단솔의 손을 붙잡았다.

“이거 뭐야.”

“어…… 태오 씨도 아까 보니까 다쳤던데. 혹시 두 사람 싸웠어요?”

“……아니요. 그런 거 아닌데…….”

“그럼 뭔데.”

단솔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태오가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는 게 보였다. 집에 돌아오면 태오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단솔은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무방비하게 단솔이 서 있는 사이, 태오의 시선이 대수가 잡고 있는 단솔의 팔목을 향했다. 마치 벌레라도 본 듯 태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단솔이 뭐라도 말을 걸어 보려고 입을 열었을 땐, 태오가 다시 방으로 올라간 뒤였다.

지수가 두현에게 고백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단솔은 제가 얼마나 태오에게 잔인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상대에게 마음이 없으면서 친절을 가장해 베푸는 시혜는 폭력이었다.

“쟤한테 맞았어?”

여전히 단솔의 팔을 잡고 있는 대수의 손을 뿌리쳤다.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때렸어요.”

태오의 표정에 충격을 받은 단솔은 자신이 자신의 ‘손을’ 때렸다는 목적어를 빼먹고 말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연이나 대수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한 걸 알아차릴 겨를도 없었다.

* * *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우리회사에 알오매치 서바이벌 촬영왔는데 난리났음 ㅋㅋㅋㅋ 누구라고 말은 못하는데 알파가 오메가한테 고백했다가 까임. 근데 까인 정도가 아니고 오메가가 촬영본 지워달라고 난리 치는 중.

⤷?진짜 좀 너무한데.... 누구야? 힌트좀 제발 ㅠㅠ

⤷와...... 첨엔 좀 볼만했는데 점점 막장이네 완전 비싼 재료 데려다놓고 라면끓여먹는 제작진.... 그래서 누군데?

⤷아니 오메가 그래봤자 2명밖에 더됌? 근데 다 솔직히 그 두 명한테는 알파들이 아깝지 않나.... 개너무함....

⤷나 글쓴이인데, 진짜 누구라고 말하면 잡혀갈까 봐 말 못하겠음. 진짜 윗댓 말대로 내가 봐도 알파가 훨씬 아까운 조합이긴함. 어디가서 저런취급.... 받을 사람은 절대 아닌데. 요즘 좀 주춤하긴 했지만 절대절대.

⤷출연자들 실제로 보니까 어땠어?

⤷알파는 나도 싸가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엄청 젠틀하고, 아까 우리 고객중에 진상새끼랑 싸움날 뻔했는데 완전 스무스하게 넘어감. 실제로 보니까 왜 연예인인지 알겠더라... 오메가는 생각보다 평범....? 말도 없고, 딱 방송에 나오는 그런 이미지? 근데 막 울고불고 하니까 좀 당황쓰.....

⤷ㄹㅇ?울고불고 했다고?

⤷어.... 고백장면 지워달라고..... 근데 오메가 출연자가 막 울먹울먹하니까 알파가 옆에 되게 뻘쭘하게 앉아 있는데 ㅠㅠ 약간 초등학교에서 얘랑 짝꿍하기 싫다고 울면 뻘쭘하게 앉아 있는 그런 느낌으로 있어서 좀 맴찢이었음.

⤷아 진짜 누군지 개궁금하다. 제발 초성이나 이니셜 하나만 알려 주면 안 돼?

⤷미안 ㅠㅠㅠ 진짜 근데 들키면 나 잘릴 수도 이 글도 5분있다가 펑할게.

* * *

숙소로 돌아가는 길. 결국 두현과 다른 차에 올라탄 지수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욕설을 뱉은 장면을 편집해 달라는 두현의 요구는 무례했고, 다급했다.

소속사에서 꽤 밀어주는 걸 보면, 이미 차기작도 정해져 있을 텐데 뭐가 그렇게 다급해선…….

“쓸 겁니까? 그 장면?”

지수가 같은 차에 탄 최 PD에게 물었다. 최 PD는 그런 물음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제가 어떻게 할 거 같은데요.”

“……넣겠죠.”

“그럼요. 한지수 씨가 각 잡고 판 깔아 줬는데. 줘도 못 먹으면 그건 PD도 아니죠.”

“내 생각보다 잔인한 분이시네요. 유두현 씨 소속사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승합차의 뒷좌석에 탄 두 사람은 각자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어 나갔다. 서로가 제 속내를 전부 털어놓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적으로 삼으면 안 될 사람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누구 덕분에 요즘 그 회사가 꽤 바빠서요.”

“보호막이 없는 신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걸 좋아하시네요. 잔인하기도 하셔라.”

“한지수 씨만 할까요. 사랑을 위해서 온몸을 던지는 연기력.”

최 PD의 말에 지수가 본능적으로 운전석을 살폈다. 운전을 하는 스태프는 귀에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 건지, 최 PD가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을 했다.

“걱정 마요. 한지수 씨가 내 차 타겠다는 거 알고 일부러 음악 좀 크게 들으라고 했으니까. 블랙박스도 꺼져 있어요.”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조용한 차 안에 무선 이어폰 밖으로 새어 나온 음악이 옅게 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유두현 씨한테 호감 있는 척을 할 줄은 몰랐어요.”

“진짜 마음이 변할 수도 있죠.”

“연기는 잘하는데, 거짓말에는 영 소질이 없으신가 봐요? 아까 데이트할 때 계속 한 곳만 보시던데요.”

최 PD는 지수의 시시한 거짓말에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쪼록, 단솔이는 피해 없도록 부탁드려요. 아까 보셨죠. 제가 지금 어떤 포지션인지. 취객이 시비 걸고, 까마득한 후배는 나 싫다고 울고. 연예인으로 이미 끝장났는데, 최 PD 부탁 때문에 여기 있는 거니까.”

“그 정도로 최악은 아니던데요. 한지수 씨 동정 여론도 많아요.”

“하하. 그것 참 위로가 되네요.”

지수는 비꼬듯 말을 했다. 그들이 탄 차가 춘몽도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최 PD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을 향한 채였다. 그녀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제 턱을 쓸었다.

“근데…… 유두현 씨 반응은 나도 예상 못 했어요. 솔직히 그쪽 입장에선…… 한지수 씨가 나쁜 선택지는 아니거든요. 주단솔한테 존재감도 밀렸고, 이이연한테 퇴짜까지 맞았는데…… 때마침 한지수 씨 같은 이슈 메이커가 관심을 보이면 땡큐죠.”

최 PD는 마치 지수가 눈앞에 없는 것처럼 상황에 대한 평가를 신랄하게 읊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불쾌감을 내비쳤을 법도 한데, 지수는 그녀의 말에 일면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이랑 너무 똑같아서 짜증 날 정도네요. 이유가 뭘까요.”

두현의 입장에서 반기지 않을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반응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의 내면이야 어찌 됐든 간에, 누구보다 이미지 관리를 중요시했던 두현이기에 스태프들 앞에서 그런 추한 꼴을 보일 거라고는…….

“이유는 저도 모르죠. 유두현 씨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이상. 한 가지 알려 줄 게 있어요. 저희 편집 팀 애들한테 들은 얘긴데…… 종종 주단솔 씨 방문 앞을 서성거린대요.”

“네? 누가 말입니까?”

“유두현이요. 처음에 편집 팀에서 그런 소리 할 때는…… 백 퍼센트 오해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주단솔 씨 방이 유두현 씨 방으로 지나가는 길목이니까요.”

애초에 두현의 방이 제일 안쪽에 있었기 때문에 단솔의 방을 지나쳐야만 제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두현이 단솔의 방문 앞을 서성거린다고? 도대체 왜.

“근데 저도 영상을 보고 나서 좀 확신이 들더라고요. 시간대가 좀…… 이상했거든요. 새벽 세 시나, 네 시. 뭘 혼자 막 중얼거리던데.”

방 안에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근데 새벽 시간에 남의 방 앞에 있을 이유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혹시나 해서 카메라 좀 늘렸어요. 괜찮겠지만…… 약간 섬뜩한 느낌도 들고. 두 사람 별로 안 친한 거 맞죠?”

제가 오메가인 척할 때도 지수는 두현과 가깝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데 애써 친한 척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도, 지나치게 착한 척을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단솔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단솔이 이연과 별다른 접점이 없음에도 두현은 줄곧 단솔을 견제했다. 근데 그것도 모자라 남의 방 앞에서 새벽 시간대에 기웃거린다니. 납득이 가지 않는 일투성이였다.

“도착했어요.”

지수가 정신을 차렸을 땐, 눈앞에 춘몽각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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