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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99화 (99/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99화

    “못을 쓸 때도 딱 재단을 맞춰서 하면 못을 많이 쓸 필요가 없어요. 못질을 여러 번 할 일도 없고.”

    쾅쾅.

    “어? 이렇게. 깔끔하죠?”

    시범을 보이던 사장님이 의자 다리와 등받이 사이의 이음새 부분에 망치질을 하자, 점차 의자의 형태가 갖춰졌다.

    그는 못 몇 개만을 가지고 뚝딱, 하고 의자를 하나 만들어 냈다.

    단솔은 재단이 삐뚤어진 제 의자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래 가지곤 제대로 앉을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 줘 봐. 내가 할게.”

    “됐어요. 선배 거나 해요.”

    “네가 제대로 하면 내가 이러겠어?”

    그때, 건너편에서 지수와 두현이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솔은 어느새 제 의자를 만드는 일보다 그들의 대화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악!”

    “단솔 씨! 윽!”

    그러다 단솔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빠졌다. 조준을 잘못한 망치가 단솔의 엄지손가락을 제대로 때렸다. 문제는 손가락이 너무 아픈 나머지 그걸 보고 도와주러 다가왔던 태오의 발 위로 망치를 떨어뜨린 것이었다.

    “솔아! 괜찮아?”

    건너편에서 눈 깜빡할 새에 단솔의 작업대까지 온 지수가 단솔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근래 들어 지수와 가장 가까운 거리였다.

    지수가 제 손을 잡은 감각이 하나하나 미세하게 느껴졌다. 겨우 조금 다친 정도로 이렇게 달려오면서, 사랑이 아니고 동정이라니.

    두현에게 쌀쌀맞게 구는 이연이 가끔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단솔은 이제야 알았다.

    진짜 잔인한 건 마음이 없으면서 다정한 것이었다.

    단솔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자, 지수는 그게 단지 아파서 생기는 생리적 눈물이라고만 생각한 듯했다.

    “솔아, 많이 아파?”

    “아뇨…… 그게 아니라요…… 태오 씨 괜찮아요? 미안해요…….”

    “전 괜찮아요.”

    지수는 단솔을, 단솔은 태오를 걱정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 * *

    “정말 그 상태로 온천 갈 수 있겠어?”

    “전 손가락이라 괜찮은데…….”

    “저도 발가락 괜찮다니깐요. 가서 재밌게 놀아요 단솔 씨.”

    결국, 제대로 의자를 완성한 건 두현뿐이었다. 목공장 사장님은 자신이 나머지를 완성해서라도 보내 주겠다며 주소를 받아 갔다.

    단솔은 생각보다 부상이 심하지 않았다. 손톱 안으로 멍이 들긴 했지만, 뼈를 다치거나 피를 보진 않았다. 하지만 태오는 제 상처를 좀처럼 보여 주려고 하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데이트 상대로 골라 놓곤 전혀 태오에게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 * *

    “옷 갈아입고, 여기서 다시 만나.”

    공방 근처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을 땐 이미 촬영을 위해 온천과 수영장 쪽을 비워 둔 모양인지 로비부터 방송 관계자들 외에 다른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수가 내민 티셔츠와 수영복 바지를 받아 든 단솔은 두현과 오메가 탈의실로 향했다. 두 사람은 옷을 벗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뭘 봐.”

    “안 봤는데요?”

    사실 봤다.

    두현과 같은 오메가임에도 같은 샤워장을 쓰는 게 처음인 단솔은 그의 몸매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마르고 하얗기만 한 저와 달리 두현의 상박은 운동으로 관리를 한 듯 다부진 느낌이 있었다.

    단솔의 반박에 두현이 피식 비웃음을 날리곤 샤워실로 들어가 버렸다. 왠지 지수의 평소 스타일을 생각하면, 저 같은 사람보다는 두현처럼 관능적인 매력이 흐르는 사람을 더 좋아할 법도 했다.

    단솔은 괜히 거울에 자신의 말랑한 몸을 비춰 보았다.

    운동이라곤 제대로 해 본 적도 없고 춤 연습만 내내 해서 그런지, 마르기만 한 모습이었다.

    “내가 봐도 별론데, 누가 날 좋아해 주겠어.”

    저도 모르게 멋대로 못난 말이 튀어나왔다. 다행히 탈의실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간단한 샤워를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왔을 때는 아까와 달리 로비가 시끄러운 게 느껴졌다. 단솔은 스태프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소음의 실체를 확인했다.

    “아니! 방송 때문에 문 닫는 거 좋다 이거야. 근데 왜! 오메가가 알파 탈의실을 이용하냐고!”

    “고객님, 그런 사실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저, 저……! 한지수가 탈의실에서 나오는 거 봤는데! 저 자식 오메가잖아!”

    “고객님,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희,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이런 꼴 보자고 1년에 몇 억씩 내고 회원권 끊는 줄 알아? 대표 나오라 그래!”

    듣기만 해도 불쾌해지는 말들에 단솔은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보다 먼저 샤워실을 나선 두현이 비치 타올을 걸치곤 그 모습을 보고 있었고, 그 앞엔 지수가 서 있었다.

    안 듣고 있길 바랐는데, 단솔보다 먼저 나와 이 광경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늘따라 집에 티브이 없는 사람이 많네.”

    지수가 들으라는 듯 삿대질을 하는 남자를 향해 말을 뱉었다. 남자는 지수보다 키가 한참이나 작았고,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붉었다.

    지수를 향해 걸어오는 폼이 딱 보기에도 비틀거리는 게 술을 한두 잔 마신 게 아닌 듯했다.

    “뭐? 어디서 오메가 새끼가 말을 함부로 해!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말끝마다 오메가, 오메가.

    타인의 형질을 입 밖으로 함부로 내뱉는 것 자체가 이미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누군지는 잘 모르겠네. 취객? 진상 고객? 한 가지 확실한 건…… 고작 열성 알파 주제에 알파 부심이 뛰어나다는 거?”

    “윽,“

    지수가 남자의 가까이 다가간 순간, 남자의 입에서는 비명조차 새어 나오지 못했다. 단솔은 금방 지수가 알파 페로몬을 풀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리가 꽤 되는데도 그 압박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래도 내가 오메가 같아요? 모자라? 모자라면 더 보여 주고.”

    지수는 금세 페로몬을 갈무리했다. 로비에는 그 진상 고객과 단솔, 태오, 두현 외에 형질을 알 수 없는 스태프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수가 정리해 달라는 뜻으로 스태프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뒤늦게 스태프가 호텔 직원에게 무어라 신호를 보냈고, 남자의 뒤로 호텔 경호원 두 명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 개새끼가! 이거 안 놔?”

    하지만 남자는 술에 취한 용기인지 지수가 페로몬을 갈무리하자 더 날뛰기 시작했다.

    퍽.

    경호원에게 양팔을 잡힌 남자가 발버둥 치다가 발로 지수의 상체를 때렸다. 단솔은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몸이 튀어 나가려고 했다.

    “가만히 있어요.”

    “네?”

    하지만 그걸 막아선 것은 태오였다.

    “그…… 그렇지만…… 지수 형이……!”

    “어차피 단솔 씨가 가서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특히 저런 새끼들은.”

    그 순간, 불시에 한 대 얻어맞은 지수가 팔을 들어 올렸다. 단솔은 그가 취객을 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들려야 할 타격음이 들리지 않았다.

    단솔이 눈을 떴을 땐, 지수가 취객을 향해 악수하듯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쉽네요. 내가 한참 광고를 많이 찍을 때였으면 당신 같은 사람 흠씬 두들겨 패 주고 수표 몇 장 날려 줬을 텐데. 지금은 저도 위약금 내느라 좀 힘들어서요. 경찰서에서 봅시다. 합의는 해 줄 건데요. 좀 비쌀 거예요. 그…… 내년에는 여기 회원권 못 사시겠네요.”

    지수의 말에 로비가 싸늘하게 조용해지는 게 느껴졌다. 취객마저도 그 말에 정신이 번뜩 드는 듯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지수는 악수를 하기 위해 내밀었던 제 손을 바로 거두어 버렸다.

    “미리 감사해요. 촬영 어디로 가면 돼요?”

    “자…… 잠깐만!”

    그 뒤로는 세상에서 제일 하찮은 벌레를 보듯 무시한 지수가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촬영 장소인 노천탕으로 향했다. 멍하니 서 있던 단솔도 태오에게 붙잡혀 그 뒤를 따랐다.

    ‘시발, 좆 같네.’

    온천으로 향하는 동안, 지수의 얼굴에선 미소가 싹 사라져 있었다.

    제가 취객과 언쟁하는 사이, 단솔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사실 위약금 같은 걸로 타격을 입은 적 없지만, 지수는 그 핑계를 대고서라도 당장 그 자식 얼굴에 꽂아 주고 싶은 주먹을 참아야만 했다.

    카메라 따위가 무서운 건 아니었다. 더 이상 나빠질 이미지조차 없었고, 제게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저렇게 막돼먹은 인간들은 흠씬 두들겨 맞고도, 그저 돈이면 다 입을 꾹 다물곤 했다.

    하지만, 지수는 저답지 않게 화를 참아야만 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지나간 곳엔,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모르게 단솔이 이 광경을 모두 보고 있었다. 단솔이 보는 앞에서 저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의 얼굴을 피떡으로 만들어 줄 자신은 없었다.

    이로써 확실해진 건, 제 이미지가 제가 상상하는 것보다 최악이라는 것이었다.

    지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제가 단솔과 멀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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