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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97화 (97/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97화

<알파×오메가 속마음 인터뷰>

Q : 한지수 씨, 하민성 씨가 몰표로 탈락했는데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

한지수 : 방송 시작 전에 이야기를 좀 나눴습니다. 두 사람 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 일이 그렇게 됐네요.

방송 시작 전, 지수는 두현을 춘몽각 뒤로 불러냈다.

“도대체 뭘 원해.”

안부 인사도 묻기 전에 불쑥 시비조로 내뱉는 지수에 두현은 주변을 살펴 카메라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촬영 전이라 스태프들이 카메라를 전부 수거해 간 모양이었다.

“원하긴 뭘 원해요.”

“투표권. 우리 그날 제대로 정리 못 하지 않았나?”

“하, 선배나 내놔요. 그날 정상에 먼저 도착한 건 나잖아요.”

“먼저 딴 놈이 임자지, 그놈의 순서 타령은. 도대체 누굴 그렇게 떨어트리고 싶은 건데?”

지수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히 두현의 입에서 단솔의 이름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두현은 대체로 혼자 있곤 했지만, 이연으로 인해 두현이 단솔을 향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건 모든 출연진이 눈치채고 있었다.

“……하민성이요.”

“어……? 왜……?”

“선배는 누군데요?”

“……하민성.

하지만 두현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이름에 지수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아, 뭐야 진짜…… 그럼 애초에 그 난리 피울 일도 없었잖아요. 선배 때문에 저 진짜 코뼈 나가는 줄 알았거든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숨 쉴 때마다 갈비뼈가 아프다고. 근데…… 하민성이랑 잘되고 있던 거 아니었어?”

최근까지 모니터링했던 회차에서도 줄곧 두현은 민성과 함께 카라반에서 단둘이 이야기를 하거나 게임 파트너를 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당연히 두현도 호감에 기반한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두현은 정말 혐오스러운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으로 지수를 쳐다보았다.

“초반에 잠깐 이연 선배 눈길 좀 끌어 보려고 친하게 지낸 건 맞지만, 그게 다였다고요. 아무것도 없고, 아무리 철벽을 쳐도 자꾸 나랑 엮는 바람에 애꿎은 나까지 욕먹고 있는 거 알아요?”

“그랬나…….”

“하긴, 선배가 무슨 남한테 관심이나 있어요? 그 선배 한물간 지가 언젠데. 카라반에선…… 진짜 진지하게 자기랑 만나 볼 생각 없냐고 하는 통에 아…… 진짜 말하기도 싫어요. 근데 선배는 왜 하민성이에요? 혹시…… 옛날 감정 남아 있고 뭐…… 그래요?”

“허, 전혀.”

말하자면 그보다는 반대에 가까웠다. 지수는 민성이 헛소리를 할 때마다 자신이 과거 저런 놈과 열애설이 났었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꼭 보기 싫은 과거 사진을 계속 들추는 것 같은 불편함에 제거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도대체 내가 누굴 뽑을 줄 알고 그렇게 말렸던 거예요? 난 선배가 솔직히 대수 선배 고를 줄 알았거든요.”

“주단솔. 별로 안 좋아했잖아 너.”

“아…… 역시, 선배는 그럴 줄 알았어요. 근데 난 그렇게 바보는 아니거든요. 할 말 다 끝났으면 갈게요.”

두현이 나가고 난 뒤 그 뒷모습을 지수가 한참 바라보았다. 어린 나이에 비해 꿍꿍이속이 많은 사람이었다.

* * *

“아! 놀이공원은 대수 형이 이미 갔잖아요!”

“그럼 대충 아무 데나 가…… 밥 먹고 영화 보고 차 마시고 하면 되겠네.”

“아! 그건 이연 선배가 했다고요!”

민성이 빠져나간 자리, 오히려 춘몽각의 분위기는 전보다 더 평화로워졌다. 태오는 아까 전부터 지수를 붙들고 데이트 코스를 짜는 중이었는데, 잔뜩 신난 태오와 달리 지수는 영 관심이 없어 보였다.

“형! 도대체 데이트할 마음이 있긴 한 거예요?”

“……있어. 근데 넌 왜 이렇게 신났어. 데이트 코스는 원래 데이트하자고 한 사람이 짜야 하는 거 아니야?”

거실 소파에 누운 지수가 괜히 오메가 숙소 쪽을 힐끗 보며 말했다. 탈락자 발표가 난 뒤로 단솔은 제 방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단솔 씨한테 이미 다 말해 놨죠. 제가 다 짤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먼저 데이트한 다른 형들한테 물어보려고 했는데 치사하게 다들 도망갔어요. 그러는 형은 어디 갈 건데요?”

“어……? 나는…… 뭐…….”

지수는 사실 생각해 놓은 것이 없었다. 지수가 두현을 택한 건 오로지 단솔과 저를 향한 세간의 관심을 약간 돌리기 위한 의도였을 뿐.

“공연 같은 거 보고…… 유람선 타고 한 바퀴 돌고 밥 먹고 그런 거지 뭐.”

지수는 가장 최근에 들어왔던 로맨스 시나리오의 데이트 장면을 읊었다. 클리셰적이고 잔잔한 내용이라 거절한 작품이었다.

“오! 그거 좋은데요? 형…… 진짜 두현이 형한테 진심이었구나?”

“아니 그게 왜 그렇게 돼?”

“됐어요. 형 마음 다 알아요. 원래 재채기와 가난, 그리고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했어요. 사실 나도 형이 탈락하고 처음 돌아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형이 단솔 씨한테 관심 있는 줄 알았거든요.”

태오의 말을 듣고 있는 지수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게 아니라고, 단솔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또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나돌지 몰랐다. 거실에 있는 수십 대의 카메라가 두 사람의 대화를 찍고 있었다.

“여튼…… 이렇게 다 준비를 해 놨으니까 여유를 부리고 있는 건데, 나만 몰랐어.”

그 말을 남기고 태오는 엎드려서 무언갈 끄적이던 노트를 다 들고 일어났다. 전교 일 등이 노는 걸 다 믿으면 안 된다느니, 그래도 지수가 좋아하는 사람이 단솔이 아니라 다행이라느니 잔뜩 속을 긁어 놓는 소리만 하고 떠났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은커녕, 좋아하는 티도 못 내게 생긴 지수는 소파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인생을 개차반으로 산 걸까. 지수의 자책이 소파와 입술 사이로 뭉개져 웅얼거림으로 울려 퍼졌다.

“선배, 나 좀 봐요.”

그런 지수의 근처에 다가온 것은 두현이었다.

“카라반에서 보죠. 카메라 앞에서 할 얘기 아니니까.”

* * *

단솔은 방에 누워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단솔이 워낙 시끄러운 서울에서의 일들을 떠나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춘몽각의 시간을 좋아하긴 했지만, 오늘은 좀처럼 뭘 할 기운이 나지 않아서 그저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지수가 두현을 선택한 순간, 단솔의 내면에서는 무언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자꾸만 지수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고, 멀어지고 싶고, 동정받고 싶지 않았던 그 이유를.

“내가 지수 형을 좋아했나 봐.”

큰일 났다. 단솔은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차가운 유리가 생각을 많이 하느라 지친 단솔의 이마를 식혀 주었다. 단솔은 조용히 창문을 통해 들리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 마당의 모습이 보였다.

두현이 걸어가고 그 뒤를 지수가 따라가고 있었다. 둘은 카라반으로 들어갔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보게 된 단솔은 지수가 두현을 선택했을 때, 제 안에서 무너진 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지수가 저를 동정한 게 아니라는 기대감이었다. 전화를 끊기 전 한 말이 진심이 아니길 바랐는데…….

회귀 전엔 이연, 그리고 이번엔 지수. 두현은 왜 매번 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해 훼방을 놓는 건지.

“지긋지긋해. 정말.”

* * *

“왜 나예요?”

“뭐가.”

“데이트 상대 말이에요.”

“글쎄, 갑자기 네가 좀 궁금해져서?”

태오와 단솔이 데이트하러 나가는 꼴을 봐야 한다는 사실에 이미 기분이 상한 지수는 두현의 물음에 조롱하듯 답했다. 영악한 두현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지수가 자신을 택한 이유를.

“씨발…… 진짜 이럴 거예요?”

“무섭네, 유두현. 그러다 또 한 대 치겠다.”

“한 번 쳤는데 또 못 칠까 봐? 주단솔 때문이잖아. 하…… 또 주단솔…….”

지수는 두현의 반응에 궁금증이 일었다. 이 상황에서 탓해야 할 건 단솔이 아니라 저였다. 하지만, 두현은 단솔의 이름을 부르며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듯 짓씹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너…… 왜 그렇게 단솔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건데. 이 상황에서 원망해야 할 건 단솔이가 아니라 나 아니야?”

“누굴 탓하든,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죠. 선배는 선배 앞가림이나 하세요. 남의 앞길에 똥 뿌리지 말고.”

두현이 카라반 문을 박차고 나갔다. 두 사람 사이에 제가 모르는 일이라도 있는 걸까. 지수는 답답한 마음에 마른세수를 했다.

* * *

두 사람이 카라반에서 나오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단솔이 거실로 나왔을 때, 태오가 단솔을 붙잡았다.

“단솔 씨, 우리 온천 어때요? 수영도 하고 저녁엔 마사지도 받고.”

“저는…… 근데 수영 같은 거 잘 못 하는데요.”

“내가 가르쳐 주면 되죠. 같이 가요. 네?”

철컥,

태오가 단솔의 팔을 붙잡고 있을 때, 타이밍 좋게 지수가 현관을 열고 들어왔다.

“뭐 해.”

단솔에게 묻는 건지, 태오에게 묻는 건지 모를 물음이었다. 지수의 시선은 단솔을 붙잡고 있는 태오의 손에 가 있었다.

“형, 저희 온천 가려고요. 부럽죠? 마사지도 하고 수영도 하고…….”

“안 돼.”

단솔은 간다는 소리도 안 했는데 자랑을 먼저 늘어놓는 태오에 지수는 딱 잘라 말했다.

“……왜요?”

단솔은 괜히 반발심이 일어 지수에게 물었다. 춘몽도에 들어온 뒤로 두 사람이 나누는 첫 대화였다.

“……내가 갈 거야.”

“아이! 뭐예요! 형 유람선 탄다면서!”

“아니, 온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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