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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96화 (96/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96화

―여러분 지난 일주일 동안 푹 쉬셨나요? 저도 오랜만에 여러분을 보니 기분이 참 좋네요.

탈락자가 나올 거라는 소리를 들은 뒤로 단솔은 방송을 준비하면서도 좀처럼 집중이 되질 않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토록 오고 싶지 않았던 춘몽도가 이제는 제게 가장 평온한 안식처가 되어 있다니.

―더군다나 오늘은 무인도를 탈출한 분들의 데이트 상대 지목이 있는 날이라…… 저도 두근두근했는데요.

―데이트 상대 선정에 앞서, 먼저 알려 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사실 무인도에 저희 제작진이 숨겨 놓은 히든 게임이 있었다는 거 아시나요?

―여기 계신 분 중에 단 두 분만 그 히든 게임을 풀고, 탈락자 투표권을 획득하셨습니다.

―한지수 씨, 유두현 씨. 앞으로 나와 주세요.

히든 게임이 있었다는 것도, 지수가 탈락자 투표권을 얻었다는 것도 듣지 못했던 단솔은 순간 서운함이 일었다. 하지만, 제가 지수를 먼저 밀어낸 주제에 서운함을 느끼는 것도 우습게 느껴졌다.

―한지수 씨, 지난번 무인도에서 유두현 씨가 조난됐을 때, 먼저 나서서 구하러 간 그 용기 정말 멋있었습니다.

“아…… 그랬나요.”

엄밀히 말하자면, 두현을 구하러 간 게 아니라 단솔에게 화살을 돌리는 분위기에 휩쓸려 제가 먼저 나선 것이 맞았다.

―마침, 정상에서 만난 두 분이 함께 히든 미션을 해결하는 그 모습,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꼭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방송에서 형식적으로 흘러나오는 멘트에 지수가 코웃음을 쳤다. 두현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아예 지수에게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버렸다.

―하지만, 저희 제작진의 카메라가 고장 나는 바람에 그 아름다운 장면이 찍히지 못했습니다. 아쉽긴 하지만, 부상을 감수하면서도 서로를 아끼는 그 모습은 저희의 마음에 담아 두고 기억하겠습니다.

지수가 메모리 카드를 전부 던져 버렸고, 그나마 나무에 설치되어 있던 카메라에도 전부 애매하게 찍힌 바람에 다행히 정상에서의 지수와 두현의 모습이 방송에 나갈 일은 없었다.

물론 제대로 찍힌 장면이 있었다고 한들 제작진은 방송에 한 컷도 내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명색이 연애 예능에서 알파와 오메가가 주먹다짐을 하다니.

그 보기 힘든 광경을 애써 자연스럽게 넘어가기 위해 골머리를 싸맨 제작진들이었다.

그 와중에 단솔은 자꾸만 보지 못한 두 사람의 아름다운 장면이 궁금해졌다. 부상을 감수할 정도라면…….

지수가 넘어지는 두현을 감싸 안고, 절뚝거리는 두현을 업고 내려오는 장면이 단솔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거봐, 내 말 맞죠? 둘 사이에 뭐 있다니까. 저거 봐, 지금 지수 형 웃는 거 봤어요?”

단솔은 태오의 말에 지수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언뜻 보이는 지수의 왼쪽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에 반해 반대편을 보고 서 있는 두현은, 단솔의 눈엔 꼭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사람처럼 보였다.

정말 두 사람 사이에 뭐가 있는 걸까. 단솔이 생각에 빠진 사이, 멍하니 있는 단솔의 이름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주단솔 씨? 주단솔 씨!

“네……? 네!”

―하민성 씨와 함께 데이트권을 확보하게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저희 제작진들, 생각보다 빨리 답을 찾아내서 다들 당황한 거 아시죠?

―여러분이 늘 퀴즈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셨기에…… 난이도를 확 낮춰 보았는데 뒤통수를 맞았어요. 하하.

말에 뼈가 있는 것 같은 멘트에 단솔이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그럼, 데이트 상대 지목 후에 탈락자 선정을 하겠습니다. 하민성 씨?

“네.”

―산에도 올라가지 않고, 데이트권을 두 개나 얻게 되셨어요. 오메가 두 명과 모두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되셨는데요.

“아, 잠깐만요. 전 사실 한 분 빼고는 별로 의미가 없어서요.”

민성이 두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가 두현에게 처음부터 관심이 많았다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제 데이트권을 다른 분께 양도해도 될까요?”

민성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제작진 쪽이 술렁거렸다. 그날 배를 함께 타고 나오면서 민성과 태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빼고는 다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여기가 무슨 연근 마켓도 아니고 데이트권을 양도합니까?”

그런 민성이 마음에 안 드는 지수가 말을 꺼냈다. 하지만 민성은 그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되레 지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한지수 씨에게 데이트권을 드리겠습니다.”

“허.”

기가 막혀 쳐다보는 지수에 민성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오…… 민성이 형 거의 처음으로 지수 형 이긴 것 같지 않아요?

태오가 재밌다는 듯 뒤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단솔은 오늘따라 그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한지수 씨만 동의한다면, 저희 제작진은 괜찮은 제안 같은데…….”

그때까지도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최 PD가 지수의 의사를 물었다. 모든 스태프와 출연진이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 지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 좋아요. 어디 한번 해 봅시다.”

단솔은 그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동안의 지수라면 분명 단솔을 골랐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온갖 루머가 두 사람 사이에 생기고 있었고, 심지어 단솔은 그 때문에 전화로 숙소 앞에 찾아오지 말라는 소리까지 한 이후였다.

오늘만 하더라도, 단솔은 지수를 피하기 위해서 숙소에 오자마자 제 방으로 숨어 촬영이 시작할 때까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럼, 하민성 씨부터 데이트 상대를 선택해 주시죠.

“전 유두현 씨요.”

―한지수 씨, 데이트 상대를 선택해 주시겠어요?

심심할 정도로 너무 당연한 민성의 선택을 지나, 시선은 지수에게로 향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태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심지어 내심 단솔까지도 큰 이변 없이 지수가 단솔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지수의 시선이 단솔을 향해 잠시 닿았다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단솔은 왠지 숨길 게 있는 어린 애처럼 티 나게 고개를 땅바닥으로 숙였다.

“유두현 씨요.”

지수의 뜻밖의 선택에 스태프들 쪽에서도 깜짝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단솔도 지수의 선택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단솔 씨, 데이트 상대를 선택해 주시겠어요?

―주단솔 씨?

“단솔 씨!”

지수의 선택에 놀란 단솔이 방송을 듣지 못하자, 단솔의 바로 뒤에 서 있던 태오가 단솔을 톡톡 건드렸다. 정신없이 고개를 든 단솔에게 태오는 손가락으로 스태프들이 있는 앞쪽을 가리켰다. 카메라의 빨간 불빛이 단솔의 눈에 들어왔다.

하마터면 카메라 앞에서 또 실수를 할 뻔했다. 단솔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네!”

―데이트 상대방을 선택해 주시겠어요?

“저는…….”

단솔은 제 뒤에 서 있는 알파들을 바라보았다. 회귀 전의 제가 진심으로 좋아했던 이연과 묵묵하게 저를 지켜 주던 대수, 늘 저를 웃게 만드는 태오와 편안하고 배울 점이 많은 민혁.

그리고 단솔은 두현의 옆에 서 있는 지수와 눈이 마주쳤다. 최종 선택도 아닌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지.

사실, 오늘 여기서 떨어지게 된다면, 단솔에겐 이게 최종 선택인 셈이었다. 탈락권을 가진 사람은 지수와 두현.

제가 두현이어도 눈엣가시 같은 단솔을 가장 먼저 떨어트릴 것 같았다. 단솔이 탈락할 확률은 최소 반반, 혹은 그 이상.

단솔은 조심스레 저와 데이트할 알파의 이름을 불렀다.

“저는…… 태오 씨요.”

“어, 저…… 저요? 진짜요?”

우와. 순수한 감탄사를 내뱉은 태오의 뒤로 지수의 얼굴이 보였다. 담담한 모습에 단솔은 또 한 번 제 심장이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데이트를 하시게 된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실망하기는 이릅니다. 최종 선택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이번 주부터는 여러분이 조금 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준비했으니까요.

―하지만, 할 건 다 하고 가야겠죠? 이제 탈락자 발표 시간입니다.

―한지수 씨, 유두현 씨. 각각 4장의 탈락자 투표권을 얻으셨습니다. 만약 4대4로 두 분의 투표 결과가 똑같이 나오게 된다면, 모든 출연진에게 투표권을 한 장씩 배부하여 총 7장의 탈락자 투표권으로 재투표를 진행하게 됩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동의합니다.”

“네.”

―두 분은 앞에 놓인 캡슐을 하나씩 꺼내, 탈락 후보의 이름을 호명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먼저, 한지수 씨?

지수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 익숙한 통 안에 손을 넣었다. 단솔은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된 나머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지수의 입에서 제 이름이 나오면 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단솔이 이렇게 긴장을 하고 있는데도, 지수는 탈락자를 뽑는 데 별 감흥이 없는 표정이었다. 절대 눈물을 보이지는 말아야지. 단솔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지수가 첫 번째 종이를 열어 이름을 불렀다.

“하민성.”

“야, 한지수.”

“더 뽑을게요? 하민성.”

하민성. 하민성. 하민성.

그 뒤로도 지수는 내리 4개의 캡슐을 한꺼번에 집더니 팔꿈치에 끼곤 하나씩 열어 민성의 이름을 불렀다.

―……하민성 씨.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 탈락이에요?”

―네.

“진짜? 이렇게? 아니…… 데이트…… 데이트도 못 해 봤는데?”

떨어지면 욕이라도 할 줄 알았던 민성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단솔은 저도 모르게 그가 좀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잠깐만.”

그것도 모자라 민성은 지수를 밀치곤, 지수가 열었던 종이는 물론, 아직 열지 않은 캡슐까지 다 뜯어서 확인해 보았다.

8장 모두 하민성. 민성이 두현을 돌아봤지만 두현은 딴청을 피우며 아예 민성이 있는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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