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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93화 (93/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93화

전생이라니, 왜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걸까. 민혁은 의문이 들었지만, 진지하게 답해 주려 애썼다.

장난을 치기엔 단솔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뭐…… 있…… 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어요.”

민혁은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가 얘기해 주었던 윤회 사상이나 근래에 본 영화의 내용들을 떠올리며 최대한 단솔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실은 다시 태어난 건 아니고, 죽었는데 돌아온 거죠. 지금 시점으로……!”

“…….”

“그러니까 저는 아예 다시 태어나는 게, 기왕이면 좀 다른 인생으로…… 그런 게 좋은데 굳이 굳이 알오매치 서바이벌에 나가기 직전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꼬인.”

단솔은 민혁의 눈빛이 시시각각 바뀌는 걸 보면서 애써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민혁이 양손을 들어 단솔을 막았다.

“어제 본 영화 이야기하는 거예요……?”

“아니……! 그러니까…….”

단솔은 답답해서 숨을 골랐다. 의구심이 가득 차오른 민혁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꿈 이야기……? 아니면…… 혹시 몽유병……? 단솔 씨 지금 자고 있어요? 아니면 저 몰래 술을…….”

“하…… 형이라면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제가 너무 과한 걸 바랐나 봐요.”

단솔의 표정이 또다시 침울해졌다. 민혁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단솔은 아이돌이다 보니까 관리를 혹독하게 하느라 잠깐 상태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

탄수화물을 극도로 억제하면 가끔 정신 착란이 온다고 하던데 그런 케이스인가.

“어…… 아뇨. 이해해요. 잠깐…… 그…… 아무래도 제가 판타지 분야에는 조금…… 약한…… 그러니까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한 거죠. 이제 이해가 됐어요.”

“전혀 이해 안 되는 눈빛인데요…….”

이번엔 단솔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민혁을 바라보았다. 민혁은 최대한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진짜 이해했어요.”

조금 이상한 소리를 하면 어떤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인걸. 집 나간 정신이야 맛있는 걸 먹이면 돌아오지 않을까.

민혁은 진심으로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 죽었어요. 그러니까…… 알오매치 서바이벌이 끝나고 3년 뒤에요…….”

단솔은 이렇게 민혁에게 진실을 털어놓는 것이 무모한 짓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첫마디를 꺼내 놓으며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방송에서…… 안티 팬을 많이 만들었고, 전 국민에게 욕을 먹었어요. 그래서 팀도 해체하고, 스토커한테 쫓기기도…… 어느샌가 부모님은 제 연락을 피하시더라구요.”

“단솔 씨가 무슨 잘못을 했어요? 왜 사람들이 다 단솔 씨한테…….”

믿거나 말거나였지만, 애초에 단솔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작정한 민혁은 질문을 했다.

“악마의 편집이요.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어요. 생각해 보니까…… 대중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작진이 일부러 제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도록 편집했다는 걸요.”

방송가에서는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그런 농간 때문에 팬들이 방송 시작 전부터 제작진들에게 선물을 보내곤 했다. 자신의 연예인들을 잘 봐 달라는 식의 아부성 조공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신인이나 인기가 없는 연예인들은 그마저도 쉽지 않았고, 그들은 소속사도 영세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주로 악마의 편집의 타깃이 되곤 했다. 단솔도 그런 케이스였다는 걸까.

“여러 재앙이 겹쳤어요…… 마침 두현 선배랑 사이가 별로 안 좋기도 했고, 제가 카메라 앞에서 너무…… 바보같이 굴었거든요.”

“그럼…… 스토커나 다른 사람한테 살해…… 당한 건가요?”

단솔은 민혁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교통사고였는데…… 뭘 좀 사러 나왔다가 스토커한테 쫓기게 됐어요. 그러다 차에 치였죠. 그때 제가 살아온 인생이 필름처럼 흘러가는데…… 그렇게 시시할 수가 없었어요. 매번 연습실 아니면 숙소.”

민혁은 단솔의 말에 이제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다. 안 믿자니 너무 구체적이었고, 믿자니 너무 만화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알오매치 서바이벌에 출연했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그땐 그게 억울했어요. 여기 나오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죽진 않았을 거라고…….”

단솔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줄곧 민혁의 눈치를 보았다. 민혁은 그런 단솔에게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장면을 꽉 붙잡았는데, 눈을 떠 보니까 숙소였어요. 알오매치 서바이벌에 나가기 전날이요. 깨어나 보니까 저를 싫어하던 멤버들이 저를 걱정해 주고, 사람들이 아직…… 제가 누군지 다들 모르고 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혹시 깨어나기 전날 무슨 사고가 있었거나, 의식을 잃고 꿈을 꾼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번 생에서 깨어나기 전날 말이에요.”

“아뇨…… 그날은 방송에 나간다는 걱정 때문에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었는걸요. 믿기 힘든 이야기라는 거 알아요. 그래도 들어 줘서 감사해요.”

누구에게라도 제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던 단솔은 그제야 후련한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엔 그저 정신 나간 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던 민혁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자꾸만 단솔의 이야기를 믿고 싶어졌다.

“증거…….”

“네?”

“증거 있어요? 단솔 씨가 다시 태어…… 아니 회귀했다는 증거요.”

로또 번호라도 외우고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회귀한 주제에 단솔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죽은 건 26살이었고, 회귀해서 돌아온 지금은 23살이다. 3년 전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해도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증거가 될 만한 게 없다는 소리였다.

제가 미래에서 가지고 온 것은 대표의 폭력으로 생긴 난청밖에 없었다.

“그때쯤 있었던 사건이나 사고…… 기억에 남는 거 없어요?”

“음…… 딱히 없는데…… 아! 박희성이랑 유세나 결혼해요. 이…… 런 것도 증거가 되려나요…….”

평소 유세나의 팬이었던 단솔에겐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알오매치 서바이벌이 끝나자마자 그 소식을 듣고 놀랐으니까. 만약 그들의 운명도 반복된다면 어느 정도 증명이 가능해지는 셈이었다.

“그 두 사람이 몰래 사귀고 있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연예계에 몸담고 있더라도 거의 일반인에 가까운 단솔과 민혁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그래요? 저희는 아무도 몰랐는데…….”

“정치나 사회 쪽 이슈는 없어요? 경제도 괜찮구요.”

단솔은 회귀 전 뉴스를 제대로 보지 않은 게 이렇게 후회가 될 수 없었다. 정치 경제 사회면은 단솔과 너무나도 먼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3년 전 뉴스에서 기억나는 건 거의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조억만이라는 분이 어린이 재단에 1조를 기부했다는 뉴스 정도……. 이름이랑 기부 금액이 너무 커서 기억에 남았는데, 이것 밖에는 기억이 안 나요.”

자신이 없어진 단솔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좋아요. 그럼 난…… 최소한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단솔 씨를 전적으로 믿어 볼게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 장난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단솔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혁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어요.”

“네! 뭐든 물어봐 주세요, 형!”

역시 민혁에게 털어놓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단솔에게 민혁이 어려운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뭔지 알려 줄 수 있어요?”

단솔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제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해명 도사님…… 기억나요?”

“방송에서 뵀던 그 무속인분 말하는 거죠?”

“네……. 처음엔 자꾸만 상황이 회귀 전과 달라져서 갈피를 못 잡았어요. 근데 그때 그분이 그러시더라구요. 반복되는 운명과 그렇지 못한 일들이 따로 있다고. 그래서 전…… 형이 운명 같은 이야기했을 때 형도 회귀자인 줄 알았어요.”

단솔은 회귀자가 또 있다고 했던 해명 도사의 말을 떠올렸지만, 일부러 민혁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믿을까 말까 한데, 다른 회귀자가 누군지 함께 찾아보자고 하면 민혁이 저를 사이비 종교인처럼 볼 것 같았다.

“그 사람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민혁은 어렴풋이 해명 도사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딱히 신뢰가 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점괘는 어느 정도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다.

“사실…… 뭐가 반복되고 반복되지 않는지는…… 저도 몰라요. 아까 말했던 조억만 씨가 이번 생은 기부가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제가 거짓말쟁이가 되더라도 꼭 누구 한 명쯤은 제 이야기를 알아주길 바랐어요.”

그 순간, 민혁은 단솔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단솔의 눈은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었다.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야.’

민혁은 금세 단솔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게 형한테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요……. 혹시, 제가 또 그런 오해를 받고 죽게 된다면 사람들한테 말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물론 제가 아무 잘못도 안 하고 살았다곤 못 하지만…….”

단솔의 눈에 담긴 근원적인 공포, 그건 바로 다시금 반복될지도 모르는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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