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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90화 (90/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90화

    도대체 뭘 주고받은 건지 지수의 선물은 그날 이후로도 몇 날 며칠 계속 이어졌다.

    방 두 개짜리 반지하엔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식탁과 어떻게 조리해 먹는 건지 짐작도 되지 않는 식자재, 사이즈별로 보내 준 비싼 운동화까지.

    “너 도대체 뭘 주고받은 거야?”

    “있어, 비싼 거.”

    “너한테 지수 형이랑 이런 걸 바꿀 만한 비싼 게 어디 있어.”

    우현의 집이 잘산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좀 과한데.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단솔에게 우현이 덧붙였다.

    “……한정판.”

    “한정판? 뭔데?”

    “오오. 형아, 요즘엔 운동화나 옷에 프리미엄 붙으면 몇백만 원도 한대. 우현이 형 그런 거 판 거 아니야?”

    옆에서 새 신발을 신어 보던 민재가 덧붙였다. 하지만 단솔은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지수가 자신에게 입을 맞춘 뒤로 그의 친절이 달갑지 않았다. 그게 마냥 싫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동등한 위치에서 제 마음을 보고 싶었다.

    그동안 지수를 연애 상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선배가 후배에게 베푸는 호의나 온정이 아니라, 알파가 오메가에게 느끼는 애정으로 비롯한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시끄러운 멤버들을 뒤로하고, 단솔은 욕실로 들어갔다. 지수의 선물 때문이 아니었어도 오늘은 늦잠을 잘 수 없는 날이었다.

    며칠 전, 일정을 확인해 보겠다고 했던 엄마는 이튿날 전화를 걸어왔다.

    “행운동에 조용한 곳이 있어. 내 지인이 하는 곳인데 지난번에 갔더니 좋더라. 거기서 보자.”

    그녀가 일러 준 카페는 단솔의 숙소에서도, 그녀의 집에서도 먼 곳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룸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프라이빗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좋은 곳이라는 건 핑계고, 누군가 단솔과 함께 있는 걸 볼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다.

    이제 이런 일 따위에는 상처조차 받지 않는 걸 보면, 회귀 전의 경험들이 영 나쁘게만 쓰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저…… 얘들아 나 부탁이 있는데…….”

    씁쓸한 표정을 숨긴 단솔이 종이 한 장을 가져와 멤버들에게 내밀었다.

    * * *

    낯선 동네의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도 한참이나 걸어 카페 앞에 도착한 단솔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이지. 회귀 전까지 포함하면 거의 삼사 년 만이었고, 회귀 전을 제외한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일 년 만에 엄마를 보는 셈이었다.

    카페는 한옥을 개조해 만들어져 있었다. 꼭 춘몽각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에 단솔은 유리문에 비친 제 모습을 들여다봤다. 단솔의 사정을 아는 멤버들이 골라 준 옷을 입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초라한 모습은 아니었다.

    “왔니?”

    약속 시간보다 5분 일찍 도착했지만, 엄마가 더 먼저 와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앞에 놓인 커피 잔이 반쯤 비어 있는 게 보였다.

    “일찍 오셨네요.”

    “응…… 근처에 볼일이 좀 있어서. 뭐 먹을래? 여기 베이커리류도 괜찮은데…….”

    “아뇨, 저도 커피요.”

    마주 보고 음식을 나눠 먹을 사이는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 했겠지만.

    ‘아…… 벌써 가셔야 해요?’

    ‘미안, 애들 학원 끝날 시간이라.’

    ‘네…… 아…… 그렇구나.’

    커피를 주문한 뒤로 단솔과 그녀 사이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벽에 걸린 풍경화 같은 창밖의 풍광만 바라볼 뿐,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그제야 단솔은 이제껏 그녀와 대화를 이끌어 온 게 줄곧 자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잘 지내셨어요?”

    “어…… 나야 늘 똑같지. 단솔이 너는…… 괜찮은 거지?”

    “그럼요. 안 괜찮을 이유가 없잖아요.”

    “안 그래도 만나면 물어보려고 했어.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 그거 사실이 아닌 거 확실하지?”

    “……혹시 그게 사실이면요?”

    “뭐?”

    그녀는 몇 번이나 단솔에게 확답을 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말뜻에는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보다는 본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 여자의 불안감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장난이에요. 당연히 아니죠.”

    “하…… 너 정말……!”

    한 번도 그녀에게 지금처럼 말해 본 적 없었다. 늘 착하고 고분고분한 아들로 보여야만 한 번이라도 더 돌아봐 줄 거라고 생각해 왔으니까. 그녀는 빙글거리며 웃는 단솔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한지수 그 사람이랑은 너무 붙어 다니지 마라. 질이 별로 안 좋은 사람 같아. 방송에서 보이는 태도도 그렇고…… 좀 건들거리는 게 난 영 별로더라.”

    “TV에서 보는 거랑은 달라요.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네가 아직 어린애라는 거야. 나는 관상만 보면 딱 알아. 알파라는 거 밝혀지기 전에도…….”

    단솔은 그녀의 말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저 역시 대중에게 평가받는 직업이라는 걸 간과한 걸까. 그녀의 입에선 쉴 새 없이 지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예의 없고, 교양 없어 보여. 아무리 명품을 휘감아도 영 못 배운 티가 나더라. 가정 교육 못 받은 티가 그런 데서.”

    “저는.”

    단솔은 전에 없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예전이라면 그녀가 무슨 말을 뱉어도 단솔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애초에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던 엄마였기에 뭐라도 단솔에게 조언해 준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단솔은 그녀의 수다가 전혀 기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떠들어 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저를 욕하던 수많은 사람도 저런 식으로 못된 말, 없는 말을 내뱉었겠지.

    “저는 어때요? 가정 교육 못 받은 티 안 나요?”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뭘 잘못했니? 도대체 그게 무슨 버르장머리야?”

    그녀는 자주 저런 식의 화법을 썼다. ‘엄마가’ 또는 ‘엄마는’이 아니라, ‘나는’, ‘내가’라고 말했다. 마치 억지로라도 자신이 단솔의 엄마라는 사실을 잊으려는 사람처럼 굴었다.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날 너무 매정하게 생각하진 마라. 나도 지켜야 할 가정이 있어서 그래.’

    ‘엄마! 바빠?’

    ‘아니, 엄마 금방 갈게. 나가 있어.’

    ‘…….’

    ‘너도 부모가 되면, 내 입장 이해할 거다. 혹시나 애들이 알면 한창 예민한 시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그녀의 마지막 인사가 아직도 단솔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차라리 엄마보다는 한 여자로,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고 했다면 단솔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단솔이 뭘 그리 잘못했길래 그녀는 이복동생들의 엄마로만 남고 싶었을까.

    애초에 회귀 후에 그녀가 달라졌을 거란 헛된 기대를 품은 게 잘못이었다.

    “저도 누군가가 그렇게 평가할지도 모르겠네요. 방송에 나오는 모습만 보고 이러쿵저러쿵. 엄마도 보셨잖아요. 스폰을 한다느니, 성 상납을 했다느니 하는……. 아마…… 부모가 제대로 못 가르쳐서 그런 짓을 한다고 생각하겠죠?”

    “그만, 듣기 싫다.”

    “듣기 싫으세요? 근데…… 그런 게 싫으셨으면 왜 저를 지금 사장님한테 보냈어요? 여기가 그런 바닥인 거 모르시지 않았잖아요.”

    늘 궁금했다. 아니, 답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한 건 너야. 내가 그것도 사과해야 하니?”

    그녀의 변명은 궁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고작 12살일 뿐이었던 어린아이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었다.

    어떤 부모가 12살짜리 자식을 회사에 떠맡기다시피 하고 버릴까. 아무리 그래도 애는 가족의 품에서 자라야 하는 건데 말이다.

    “사과 같은 거 듣자고 여쭤본 거 아니에요. 그냥…… 확인받고 싶었어요. 엄마랑 아빠랑 두 분 다…… 저를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그래야.”

    이번엔, 단솔이 먼저 그들을 버릴 차례다.

    회귀 전, 가장 큰 상처는 악플도, 팀의 해체도, 난청도 아닌 부모의 외면이었다.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사람들도 거부하는 날 과연 누가 좋아할까. 단솔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채 가장 아프게 괴롭히던 상처 중 하나였다.

    단솔은 아프지만, 그 상처가 곪기 전에 도려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단솔이 그때보다 더 철이 든 탓인지, 아니면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엄마의 모습은 상상보다 더 최악이었다.

    “그래야…… 우리가 죄책감 없이 이별하지 않겠어요?”

    “뭐?”

    “엄마, 우리 이제 연락하지 말고 살아요. 제가 어디서 어떻게 나오든…… 신경 쓰지 마세요. 저도 어디 가서 엄마가 제 엄마라고 말할 일 없으니까요.”

    “너…… 너……!”

    단솔이 먼저 그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녀는 금붕어처럼 입술만 벙긋거렸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래도…… 엄마가 아빠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아무 말 없이 갑자기 번호를 바꿔 버리진 않았으니까요.”

    “너…… 정말 이렇게 가도 후회 안 할 거니?”

    우스운 질문이었다. 그녀에게 회귀 전 기억이 있다면 오히려 단솔이 되묻고 싶었다. 제가 그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았을 때 한 번이라도 그냥 그렇게 전화를 끊은 걸 후회한 적이 있냐고. 하지만, 그녀는 그랬을 리가 없다. 애석하게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제 장례식에 왔을 그녀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단솔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아, 참.”

    단솔은 문을 열고 나가려다 말고,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동생들, 아니 자녀분들 주세요. 지난번에 부탁하신 거요.”

    단솔이 내민 것은 사인지였다. 단솔의 커다란 사인을 중심으로 알오매치 서바이벌의 모든 출연자의 사인이 담겨 있었다.

    사실, 그건 가짜였다. 사람들에게 미리 사인을 받을 틈이 없었던 단솔은 멤버들에게 대필을 부탁했다.

    오전 내내 멤버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지수와 대수, 태오, 민혁, 이연의 사인을 보고 흉내 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가짜 사인을 하느라 쏟은 정성조차도 아까웠다.

    어차피 사람들은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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