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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85화 (85/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85화

    “그…… 단솔아, 댓글 같은 거 너무 읽지 마. 엉? 어차피 방구석에서 할 일 없는 놈들이 쓰는 거야 그거.”

    “…….”

    “누가 뭐래도 너만 아니면 되니까. 별 해괴한 소리 나오고 이런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진짜 인기 없는 애들은 루머도 없는 거 알지?”

    “…….”

    “애들도 네 걱정 많이 하고 있어. 단솔아! 엉⁈”

    “어? 어! 형…… 어 그래. 알겠어.”

    오늘도 가장 늦게 춘몽각에 단솔을 데리러 온 길성은 단솔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보곤, 단솔이 기다리는 동안 악플을 읽은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단솔은 핸드폰 따위는 보지도 않고, 절벽에 나와 한참을 텅텅 빈 무인도만 쳐다보고 있었다. 지수와 두현이 이미 무인도를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는 걸 알지만, 계속 두 사람을 두고 섬을 빠져나온 게 마음에 걸렸다.

    “너 근데 다리는 괜찮아? 깁스했다더니 벌써 푼 거야?”

    “어……? 아…… 괜찮아. 풀어도 된대.”

    단솔은 걱정하는 길성의 말에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제 손으로 보호대를 푼 걸 알면 또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을 게 뻔했다.

    “몸 좀 아껴. 그 PD, 출연자들 막 굴리기로 유명하다며. 살살해. 대충하라는 건 아니지만…….”

    “알겠어.”

    “저…… 그리고 있잖아.”

    길성은 그답지 않게, 숙소 근처에 도착하자 차를 세우고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단솔은 섬에서 나온 뒤로 급격한 피로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사실 두현과 지수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건 아닐까. 혹시 저 때문에 또 촬영이 지연되면 어떡하나. 걱정하느라 길성의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기…… 대표님 말이야.”

    단솔은 그제야 제가 병원에서 대표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뒷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뱉어 버렸다.

    춘몽도에 있다 보면 종종 서울에서의 생활이 너무 먼 현실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름도 ‘춘몽도’인 걸까. 봄날에 꾸는 꿈처럼 현실감이 없어져 제가 저지른 일도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응.”

    “네가 먼저 사과드려. 화 많이 나셨더라. 숙소까지 쫓아오신다는 거 겨우 말렸어.”

    “……알았어. 전화할게.”

    “그래, 쉬어.”

    단솔은 터덜터덜 숙소로 내려갔다.

    “봄날의 꿈이라…….”

    온갖 지저분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숙소의 낡은 철문이 이제는 현실로 돌아올 시간임을 알려 주었다.

    “야 이씨, 빨리 해. 형 오기 전에.”

    “아 이 미친 새끼들 바퀴벌레도 아니고 겁나 빨라. 야 우리 피시방 가서 하면 안 돼? 우리 숙소 와이파이 너무 느려……!”

    단솔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멤버들은 옹기종기 모여 핸드폰으로 무언갈 하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단솔이 온 줄도 모르는 눈치였다.

    “뭘 하는데?”

    “어⁈ 형! 왔어?…… 일찍 왔네?”

    단솔이 고개를 쑥 내밀자, 우현이 후다닥 핸드폰을 감췄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응. 차가 안 막혀서. 근데 다들 뭐 하고 있어? 피시방?”

    “아아…… 아니, 새로 나온 게임하고 있었지……. 형 힘들지? 보일러 켜 줄까? 씻을래?”

    민재가 당황하며 묻는 모습이 꽤 수상했지만, 단솔은 그런 모습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어디서 19금 게임이라도 하는 모양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욕실로 향했다.

    “아니, 씻고 왔어. 양치랑 세수만 하고 잘래.”

    “으응……! 아 맞다! 형, 핸드폰 배터리 있어? 내가 충전해 놓을까?”

    “응, 부탁 좀 할게.”

    단솔은 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민재에게 건넸다. 안 그래도 얼마나 구형인지, 단솔의 핸드폰은 충전기를 벗어나면 30분을 못 버티고 꺼지곤 했다. 민재에게 내민 핸드폰도 전원이 꺼진 지 오래였다.

    * * *

    그날 새벽,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단솔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거실에 나왔을 때 멤버들은 모두 거실에 뒤엉켜 자고 있었다. 아무리 방이 좁아도 침대에서 자지 왜 다들 이러고 있는 건지. 영문을 몰랐던 단솔이 멤버들이 생명 줄처럼 잡고 있는 핸드폰을 빼내곤, 이불을 덮어 주려고 할 때였다.

    ‘이게 뭐지……?’

    제이콥이 들고 있던 핸드폰 화면에는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의 포털 게시판이 떠 있었다.

    주단솔 한지수 스폰 증거

    주단솔 첫화에 입고 나온 추리닝 개비싼거임. 예전에 한지수가 모델한 적도 있던 옷.

    곰팡이랑 120인조 그룹이라는 망돌이 살 수 있는 금액대가 아님.

    ⤷헐 이거 어떻게 발견함? 진짜면 대박

    ⤷이 글 성지 되는 거 아니야?

    ⤷미췬고아냐? 한지수 모델한 건 4년전, 단솔 츄리닝은 올해 신상이다. 우현이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선물 준거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중간은 간다.

    ⤷번역기임? 다이노 소울도 해외팬 있나봄 소설 쓰구 있네. 하여튼 해외팬들 덮어 놓고 실드~

    ⤷번역기 아니다. 소설도 아니다. 당장 글을 지워라. 고소하겠다.

    단솔은 놀라서 스크롤을 내렸다. 자신을 욕하는 댓글마다 일일이 제이콥이 답 댓글을 단 듯 어설픈 말투의 댓글 옆에는 항상 ‘수정’과 ‘삭제’ 버튼이 있었다. 댓글을 쓴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었다.

    단솔은 혹시 몰라 다른 멤버들의 핸드폰도 하나하나 확인했다.

    주단솔 알파들이 환장하는 스타일인 건 인정. 근데 좀 연약한 척 코수프레 하는 거 티나서 보기 싫음. 정대수 앞에서 휘청거리는 장면만 해도 몇 개인지 셀 수가 없네. 컨셉질도 작작해야지.

    ⤷지난주 회차에는 태오 앞에서도 휘청거렸음ㅋㅋㅋ아마 알파들 돌아가면서 한 번씩 다 하는 듯. 휘청 순회공연

    ⤷단솔이 형 기립성 저혈압 있는데요. 다른 건 몰라도 사람 질병가지고 컨셉질이니 하는 건 너무 악질 아닌가요? 피뎁 땄고, 소속사에 넘기겠습니다.

    단솔의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민재는 없는 질병까지 만들어 단솔을 변호하고 나섰다. 단솔은 수많은 댓글 중에 멤버들이 단 댓글이 뭔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지금 논란 정리, 주단솔 여우짓 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지수랑 스폰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거 아님?

    ⤷아니라고 병신아. 한지수랑 스폰이면 다이노 소울이 아저씨들 동창회 공연뛰고 지하에 물차는 숙소에 살겠냐. 애초에 걔네 소속사 사장 개무능해서 한지수 같은 톱연예인 스폰 같은 거 못끌어옴.

    ⤷아니면 아니지 왜 욕을 박음? 너 신고.

    ⤷니도 없는 소리 뱉으면서 욕먹으니까 억울하냐. 신고 해 봐 경찰서에서 보쟈.

    어느새 단솔의 얼굴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각자 성격이 드러나는 댓글에 울다가, 웃다가. 한참을 쪼그려 앉아 있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이것 때문에 내내 거실에서 모여 있었던 것일까. 댓글을 남긴 시간을 보니 단솔이 숙소로 돌아온다고 연락했던 시간부터 저녁나절 내내 저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단솔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회귀 전, 제 행동으로 인해 팀이 위기를 맞게 되면서 모두 자신을 외면했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번호를 바꾸거나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중 직접 찾아간 우현에게선 멱살잡이까지 당했었다.

    자신은 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 저는 그저 그런 인연이었다고. 딱 그 정도일 뿐인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귀 후 단솔은 멤버들 걱정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 했다. 이번 스폰서 루머 역시 저와 지수의 상황만 생각했지 멤버들이 받게 될 시선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대표에게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을 때도, 저만 전화를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밖에서 시달릴 멤버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표의 성격에 가만히 있었을 리 없는데……. 동생들은 단솔에게 그런 티도 내지 않았다.

    ‘혹시…… 회귀 전에도?’

    미처 신경 쓰지 못했지만, 단솔에게 향했어야 할 괴롭힘이 멤버들을 향한 적은 없었을까. 혹시 회귀 전에도 이렇게 단솔을 감싸 주다가 지쳐 버린 건 아닐까.

    단솔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리저리 뒤척이던 단솔이 잠을 청한 건 해가 중천에 뜨고 난 뒤였다.

    “형! 형! 단솔이 형! 일어나!”

    단솔이 눈을 뜬 것은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잠든 단솔은 반만 겨우 뜬 눈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형, 빨리 일어나! 응⁈”

    “우음…… 5분만…….”

    “5분이고 10분이고! 지금 당장 빨리 일어나! 옷 입어!”

    “오늘 스케줄 있어……?”

    이상하다……. 스폰서 루머가 돈 이후로 스케줄이 뚝 끊겼다고 길성이 앓는 소리를 했는데. 단솔이 부스스한 몰골로 겨우겨우 침대에 앉았을 때 현관 밖을 내다보던 민재가 소리쳤다.

    “대표님 왔어!”

    “으음…… 대표님? 대표님이 왜?”

    아직도 잠이 덜 깬 단솔이 목을 벅벅 긁으며 말하자, 민재가 억지로 외투를 입히곤 슬리퍼를 단솔의 품에 안겨 주었다.

    “왜긴 왜야, 형 죽이겠다고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어. 다른 형들이 현관에서 시선 끌고 있을 때 얼른 도망가 형. 지금 붙잡히면 형 죽어.”

    “됐어,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니고. 할 말은 해야지. 너희도 당당.”

    “트렁크에서 야구 배트 꺼내 오는 거 보고 오는 길이야! 빨리 옷이나 입어!”

    열받은 대표와 마주하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단솔은 잊고 있었다. 대표는 조폭 출신에 불같은 성격이었다. 그러니 고막을 다칠 정도로 뺨을 때리지. 한쪽 귀가 아직도 먹먹하게 들리는 건 억울했지만, 지금은 단솔도 살아야 하는 게 먼저였다.

    방범 창이 허술한 방 안의 창문으로 단솔이 상체를 끄집어냈을 때, 방문 앞에서 대표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쾅쾅.

    “문 열어.”

    “저…… 대표님 일단 진정하시고.”

    “쓰읍. 조용히 안 해⁈ 놔 봐! 이것들이 내가 오냐오냐해 주니까. 주단솔이! 문 열어! 서민재! 너 같이 있는 거 다 안다. 문 열어 인마!”

    쾅쾅쾅.

    ‘근데, 지금 여기서 내가 도망치면 다른 애들은 어떡하지?’

    침대를 밟고 상반신까지 창문 밖으로 빠져나갔던 단솔이 다시 방으로 들어오자, 문 앞을 막고 있던 민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 뭐!”

    “민재야 비켜. 문 열어. 내가 대표님이랑 할 말이 있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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