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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84화 (84/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84화

    알파들이 신은 등산화와 주렁주렁 매달린 하네스가 민망하게 정작 정답을 맞힌 건 산에도 올라가지 않은 민성과 올라갔다 내려온 단솔이었다.

    배에 타 있는 단솔을 본 태오가 강아지처럼 저 멀리서부터 뛰어오며 소리쳤다.

    “단솔 씨가 찾은 거예요? 진짜?”

    “네! 제가 찾았어요! 찾았다기보다는 맞힌 게 맞지만……. 어쨌든! 제가 해냈거든요!”

    사실상 민성은 얻어걸렸을 뿐, 세 가지를 다 찾아낸 단솔은 잔뜩 신이 나서 설명했다.

    “그래서 민성 선배가 머리를 이렇게 때리는데.”

    “누가 뭘 때려?”

    “아니, 아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요. 제가…….”

    단솔이 정답을 맞힌 과정을 설명하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단솔은 그게 그저 산에 올라가는 고생을 했는데 산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답을 빼앗겨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폭력에 무뎌진 단솔은 뭐가 잘못됐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발 빠른 대수가 이미 배에 올라가 한숨 자고 있는 민성을 깨우려고 할 때였다.

    “유두현 씨 어디 갔어요?”

    사람들이 다 모이자, 그제야 두현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최 PD가 물었다.

    “올라갈 땐 같이 올라갔잖아.”

    담당 VJ와 조연출을 탓하는 말투에 두 명의 스태프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헉헉거리며 널브러졌던 VJ가 우물쭈물하다가 단솔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무 힘들어서 쉬고 있는데…… 단솔 씨가 뛰어서 그만…….”

    최 PD의 날 선 시선을 피하기 위함인지 VJ는 단솔을 핑계 삼았다. 단솔은 당황스러웠다. 두현이 제게 함부로 대하던 걸 똑똑히 목격해 놓고 자기가 살자고 출연자를 팔아먹다니. 단솔이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최 PD가 표정을 굳혔다.

    “그러라고 두 명 붙였잖아. 근데 왜 두 명 다 내려와.”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희가 책임질래? 어디서 마지막으로 봤어.”

    “그게…… 저…….”

    두 명의 스태프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 다 체력이 바닥난 덕분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두현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보지 못했다.

    “저…… 단솔 씨가 마지막으로 같이 있었는데요?”

    “같이…… 있었긴 있었는데…….”

    차마 카메라가 다 보고 있는 데서 ‘유두현이 저한테 친한 척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래도 제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나요?’라고 말할 수 없었던 단솔은 말을 채 다 끝맺지 못했다.

    제게로 쏠린 모두의 표정이 꼭 ‘네가 가서 데려와’라고 말하는 듯했다.

    “제…… 제가 갔다 올게요. 중턱에서 헤어졌거든요. 숲길로 들어가는 거 봤어요.”

    방금 전까지 정답을 맞혀 들뜬 기분에 가려져 잊고 있던 발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지만 하는 수 없이 단솔은 걸음을 옮겼다.

    “됐어 내가 갈게. 숲길로 들어가기 전까지 갈림길 같은 거 있었어?”

    지수가 단솔의 팔을 잡고 물었다. 단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대단한 거 한다고 깁스도 벗어 던졌어. 얘 병원이나 빨리 데려가 주세요.”

    “아…… 아뇨! 형! 저도 같이 가요!”

    “됐어. 금방 올라갔다 올게. 먼저 숙소 가 있어.”

    지수는 거추장스러운 하네스를 벗어 던지곤, 단솔과 두현이 올랐었던 길로 다시 산을 오를 준비를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스태프들마저 우왕좌왕하는 사이 지수가 단솔과 동행했던 스태프 둘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 사람은 나랑 같이 가야지. 뭐 해요?”

    * * *

    무인도 4일 차, 드디어 배가 해안가를 떠나 춘몽도로 향했다. 시끄러운 모터 소리가 즐거울 법도 한데 단솔은 왠지 기분이 찝찝했다.

    “진짜 두 사람 뭐 있는 거 맞다니까요.”

    배가 섬에서 멀어지자, 태오가 말을 꺼냈다.

    “두 사람이요?”

    “아, 단솔 씨 저 말 믿지 마요. 태오 씨 저번부터 계속 이상한 소리 해요.”

    민혁이 태오의 말을 가로막았다. 태오는 그게 답답하다는 듯 구명조끼를 입은 가슴 위를 팡팡 때렸다.

    “아! 이상한 소리 아니라니까요! 진짜 약간 둘이 불꽃이 파바박 튀는 게, 지수 형 알파라는 거 알고 나서 두현 형이 대하는 게 달라졌다니까요.”

    “어…… 어떻게 다른데요?”

    “뭐랄까, 애…… 증? 뭔가 싫어하는 것 같은데…… 아까도 지수 형이 두현 형 없다니까 바로 표정 굳어서 먼저 찾으러 가겠다고.”

    단솔은 태오의 말을 곱씹었다. 저를 걱정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두현이 걱정돼서 그랬던 걸까. 마음 한편에 자리한 찝찝한 것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단솔이 생각에 잠긴 사이, 민성이 두 사람의 말을 듣곤 코웃음을 쳤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두현에게 관심을 보였기 때문일까, 두현이 지수와 섬싱이 있는 것 같다는 말에 민성은 꽤 불쾌한 듯했다.

    “왜요? 그렇게까지 말이 안 될 건 없죠.”

    “유두현이 처음부터 누구한테 꽂혀 있는지 몰라서 물어?”

    민성은 턱짓으로 이연을 가리켰다. 이연은 두 사람의 논쟁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바다로 시선을 던졌다.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죠. 두현 형은 몰라도, 지수 형은 어느 정도 마음이 있을지도.”

    아예 말도 안 되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태오가 확신에 차서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제가 모르는 뭔가 있는 걸까. 단솔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럴 리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수의 속내를 모르니 저 역시 추측일 뿐이었다.

    “그럼 실험해 보면 되겠네요.”

    “네? 실험이요?”

    이 사안에 아까부터 꽤 흥미를 느끼고 있던 민혁이 말했다. 대수나 이연은 여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인 듯 관심이 없어 보였다.

    “민성 씨 데이트권 두 장이잖아요. 하나 지수 씨한테 주고 누굴 선택하는지 보면 알겠네요. 지수 씨가 누굴 좋아하는지.”

    “오! 그거 괜찮다! 확인해 봐요! 내 말이 틀렸나.”

    민혁의 말에 의기양양하게 태오가 외쳤다. 민성은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내 데이트권을 너희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어차피 형이 두 장 다 못쓰잖아요. 단솔 씨 덕분에 어부지리로 찾은 거면서.”

    “뭐? 야, 너 말 다 했어?”

    “다 못 했어요! 정정당당하게 딴 것도 아니면서, 한 장은 공익적으로 좀 쓰자구요. 어차피 형은 두현 형한테 쓸 거잖아요. 나머지 한 장을 두현 형한테 주면…… 어차피 남 좋은 일 하는 건데.”

    태오가 장난스러운 눈으로 이연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 말이 맞았다. 민성이 가진 두 장의 데이트권 중 한 장은 무조건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다.

    두현에게 주면 두현은 무조건 이연을 택할 거라는 데에는 아무도 의문이 없었다. 민성이 두현을 배려한답시고 데이트권을 줬다간 이연과 두현, 두 사람이 만날 자리만 마련해 주는 꼴이 될 게 뻔하다.

    “좋아. 하지만 한지수가 다른 사람을 고르면, 다음번 데이트권은 내가 가져갈게.

    “아! 형!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나도 얻는 건 있어야지. 그럼 다들 동의하는 걸로 안다?”

    한 명쯤은 반기를 들 법도 한데, 다들 동의하는 듯 침묵을 지켰다. 단솔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직도 안 왔어요?”

    “어…… 그런 것 같아요.”

    오랜만에 돌아온 춘몽각은 따듯하고 아늑했다. 무인도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다들 따듯한 물로 샤워하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꺼내 먹었다.

    민성은 씻고 나오자마자 술을 들이켜더니, 거실 한가운데서 곯아떨어져 코를 골았다.

    배우 이미지가 어쩌고 하더니, 본인 이미지를 제일 깎아 먹는 건 자신인 걸 모르나.

    단솔 역시 온갖 것들이 묻어 있는 티셔츠를 벗어 던져 버리고 샤워하고 나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묘하게 축 가라앉은 기분은 돌아오질 않았다.

    아무래도 아직 두현이 돌아오질 않아서인 듯했다. 혹시 두현을 찾으러 간 지수도 길을 잃었나? 이렇게까지 시간이 걸릴 줄 알았으면 그냥 따라갔을 텐데.

    만일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단솔 역시 책임이 있었다. 상황이야 어찌 됐든 두현과 마지막까지 있었던 사람은 단솔이었으니까.

    “저, 잠시 모여 주세요!”

    그때, 최 PD가 춘몽각 안으로 들어왔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쏘다닌 건지, 무인도에서 입고 있던 흙먼지 묻은 옷차림 그대로인 최 PD가 난처한 듯 말했다.

    “저…… 지금 한지수 씨랑 유두현 씨가 좀 다쳤대서 아무래도 이번 주 촬영은 여기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이 다쳤어요? 섬에서 나오기는 한 거예요?”

    두 사람이 다쳤다는 말에 단솔이 PD에게 달려가 물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고요. 지금 병원 가 있어요. 두 사람 상태 봐서, 며칠 있다가 추가 촬영할 수도 있고. 편집해 봐야 알겠지만, 생각보다 B 팀 PD가 잘해 줘서 무인도 회차로 충분하겠다 싶으면 추가 촬영 안 할게요. 다들 고생하셨구요. 이제 서울로 올라가셔도 될 것 같아요.”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민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춘몽각에 굿을 해야겠어요. 매일이 사건 사고네. 두 사람 괜찮겠죠?”

    “괜찮아야 할 텐데…….”

    단솔은 왠지 그게 제 잘못 같아 저도 모르게 입술을 물어뜯었다. 그런 단솔의 모습을 눈치챈 대수가 단솔이 물고 있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별일 아닐 거니까,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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