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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83화 (83/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83화

이연이 은퇴 선언을 하고 잠적해 버린 뒤, 두현의 이미지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언제나 미워할 대상을 찾기 마련이었고, 두현은 때마침 미움받기 충분한 행동을 했으니까.

광고, 예능은 물론이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아무도 찾지 않는 두현을 소속사는 가장 먼저 외면했다. 포스트 한지수니, 앞으로 회사를 먹여 살릴 인재니 했던 말은 다 거짓이었다.

그들은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을 앞세워 계약 파기를 진행했다. 하루아침에 소속사를 잃어버린 두현은 이후 다른 소속사와 손을 잡았지만, 그들의 농간에 속아 베드 신만 난무하는 삼류 영화를 몇 편 찍었을 뿐, 제대로 활동도 해 보지 못하고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을 소속사와 분쟁하는 데 써야만 했다. 그로 인해 소송 비용도 수도 없이 깨졌지만, 결국 패소했다.

그동안 방송 활동을 하며 모은 돈도 다 떨어지고, 나중엔 자신의 아파트에 압류 딱지까지 붙기 시작했다. 꽤 주목받는 연예인으로 살면서 늘어난 소비를 줄이지 못하고, 술과 쇼핑, 도박으로 스트레스를 푼 결과였다.

두현은 한강이 보이는 제 아파트에서 쫓겨나기 전날, 죽기로 결심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단칸방이나 고시원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싶지는 않았다. 두현은 죽을 때까지 연예인으로 죽고 싶었다.

자숙 기간도 없이 무리해서 두 번째 소속사와 계약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대중들에게 잊히는 건 최악이었다.

이대로 죽으면, 사람들이 나를 안타까운 배우로 기억해 주겠지.

의식이 혼미해지는 그 순간에도 두현은 단솔을 향한 사람들의 평가를 기억해 냈다. 자신 역시 죽고 나서 그런 평가를 받기를 바랐다.

그래도 연기력 하나만큼은 인정하는 배우, 악마의 편집에 희생된 배우, 참…… 아까운 배우.

* * *

“선배, 도대체 왜 그렇게 저를 싫어하시는데요…….”

글쎄, 왜 싫을까.

단솔의 물음에 두현은 조용히 제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당연히 아무런 흉터도 보이지 않았다. 회귀하면서 과거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두현은 분명 자신이 죽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그가 눈을 떴을 땐 알오매치 서바이벌에 출연하기 전날로 돌아와 있었다.

꿈이라도 꾼 건가.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손목의 통증은 그 모든 일이 꿈이 아니었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처음엔 이번 생만큼은 제대로 살아 보려고 했다. 누군가를 향한 악의나 집착으로 새로운 삶을 또 망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첫 촬영부터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오! 너를 기다렸어, 난~ 내가 흔적으로 남을 때까지~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세상 모든 것이 단솔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듯, 다들 단솔을 볼 때면 애틋하게 눈빛이 변했다.

매사에 철저하기 그지없던 이연조차도.

“단솔 씨 뭐 좋아해요? 같이 밥 먹고 싶은데.”

“저는…… 메기 매운탕 좋아합니다. 선배님.”

노골적으로 피하는 게 느껴지는 대답에도 이연은 지치지 않고 데이트 신청을 하거나 함께 게임을 하려고 단솔만 바라보고 있었다.

단솔을 바라보는 이연의 눈, 그리고 이연만 좇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두현은 이번 생도 이미 망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야말로, 이연을 제대로 갖고 싶었다. 쇼윈도가 아닌 진짜 마음을. 그래서 단솔에게 유난히 관심이 있어 보이는 대수의 음료수에 약을 타기도 했다. 차라리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일어나, 단솔이 하차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탈락자 선정 투표권을 잡으려 게임에도 참여해 봤지만 늘 대진 운이 좋지 않았다. 두현이 일련의 사건들로 얻어 낸 건, 그저 바닥난 자신의 인간성을 확인하는 일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두현은 지금의 단솔이 과거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회귀 전, 이연만 보면 눈이 반짝거리던 단솔은 이제 이연을 본 체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단솔의 태도는 두현에게 또 다른 상처였다. 단솔이 무시한 그 애정은 두현은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다.

두현은 단솔이 몸서리날 정도로 싫었다. 단솔은 제 어둠을 모두 삼키는 빛이었다. 그의 옆에만 가면 꼭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제가 얼마나 바닥인지,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사람인지.

두현은 단솔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잃어 갔다.

이런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면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두현은 이 모든 감정을 한 줄로 함축시켜 버렸다.

“그냥 싫어.”

“……네?”

“그냥 싫다고. 그러니까 최대한 말 걸지 마. 친한 척하지 말라고.”

두현은 쌀쌀맞게 일갈하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 * *

‘따라오래도 따라갈 체력도 없거든요.’

체력도 체력이지만, 다리에서 계속 통증이 느껴졌다. 괜히 객기를 부렸다가 결국, 저만 된통 고생하게 생겼다.

어차피 스태프들도 다 널브러진 마당에 단솔도 흙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꼬질꼬질한 티셔츠에는 무인도에서의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산딸기와 흙먼지, 우유와 커피를 흘린 자국에, 넘어져서 생긴 핏자국까지. 단솔은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해도…… 열쇠…… 선장…….

해도…… 열쇠…… 선장…….

끊임없이 세 개를 반복해서 중얼거리던 단솔의 머리에 한 가지 가능성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단솔은 저 멀리 보이는 춘몽도를 발견했다. 무인도에서부터 춘몽도는 닿을 듯 가까웠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해도가 필요하지?’

만약 내가 선장이라면…… 열쇠를 갖고 있겠지. 아무 데나 흘리진 않을 텐데. 열쇠를 가진 선장이라면…….

단솔은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자신이 열쇠를 갖고 있는 선장이라면 어디에 있을까 고민했다.

‘아……!’

열쇠를 가진 선장이라면, 당연히 배 안이나 배 근처에 있겠지. 미쳤다고 이 높은 산을 오를까. 산악인이 아니고서야 이런 곳을 올라오는 걸 좋아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꽤 높이 올라온 단솔의 눈에 해안가로 들어오는 통통배 한 척이 보였다.

제작진이 출연자들을 정상으로 유도한 건, 정상에 있는 무언가를 찾으라는 게 아니었다.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허탈감을 느끼는 걸 보고 싶었겠지.

“단솔 씨! 어디 가요!”

깨달음을 얻은 단솔은 올라온 내리막길을 빠른 속도로 다시 내려갔다.

“잠시만요! 확인할 게 있어서요!”

“그…… 야! 따라가! 따라가!”

“아이 씨…… 힘든데……. 단솔 씨! 같이 가요!”

어찌나 급하게 내려갔는지 아픈 발목도 다 잊어버릴 정도였다. 단솔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걸 직감한 제작진들은 두현이 혼자 숲으로 들어갔다는 건 까맣게 잊어버린 채 카메라를 들고 따라갔다.

“배…….!”

분명 아까 산으로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없던 배가 출연자 중 아무도 가지 않은 서쪽에 정박해 있었다. 단솔이 배가 있는 쪽으로 막 뛰어가는데, 산에 올라가길 진작에 포기하고 해변만 빙글빙글 돌던 민성을 마주쳤다.

“어? 뭐야, 왜 뛰어. 뭔데⁈ 뭐냐고!”

민성이 달리는 단솔을 보고 주춤주춤 따라 뛰었지만, 단솔은 일부러 제가 왜 뛰는지 말해 주지 않고 배만 보고 달렸다.

섬에 들어와 처음으로 미션을 성공하는 순간이 코앞이었다. 하지만 단솔의 아픈 발목이 문제였다. 아무리 빨리 뛰어 봤자, 두 다리 멀쩡한 민성이 금세 단솔을 앞질렀다.

배가 정박해 있는 것을 본 민성이 선장님을 보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찾았다! 선장님! 선장님 맞죠?”

“맞소.”

코앞에서 미션을 놓친 단솔은 울컥 울화가 치밀었다.

―하민성 씨, 선장님을 찾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짤랑.

민성이 기뻐하며 선장님의 팔을 잡아 흔드는 사이 짤랑거리는 열쇠 소리가 들렸다.

“어? 열쇠다! 열쇠도 찾았다! 으아아!”

―하민성 씨, 열쇠도 찾으셨군요. 이제 해도만 찾으면 이 섬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요⁈ 제가 먼저 뛰어왔는데요! 저기 산에 올라가서 보고 뛰어왔는데!”

허탈한 단솔은 억울함에 항변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딱딱한 기계음뿐이었다.

―안타깝지만, 주단솔 씨는 한발 늦으셨기 때문에 해도를 찾으셔야만 섬에서 나가실 수 있습니다.

“혹시 해도 같은 건 없는 거 아닐까요? 여기서 춘몽도가 보이는데요?”

―땡! 이지만, 꽤 좋은 접근이었어요.

단솔은 땡! 소리에 머리가 댕댕 울리는 것 같았다. 민성만 아니었다면 단솔도 미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단솔은 이미 선장님을 찾아 놓고 열쇠까지 차지한 민성이 원망스러웠다.

“선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제가 먼저 찾았는데……. 열쇠 정도는 저한테 넘겨주실 수 있잖아요!”

단솔의 말에 민성은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

“허, 그건 내 마음이지. 억울하면 빨리 뛰던가.”

열받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거기까지 했다면 단솔도 더 이상 반박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오냐오냐하니까 아주 그냥, 어? 선배가 우습지?”

“여기서 왜 그런 말이 나와요?”

“뭐? 너 지금 뭐라 했어.”

“……이건 게임이잖아요! 선배 후배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리고…… 선배가 언제 저를 오냐오냐했다고.”

한마디도 지지 않는 단솔에 민성도 적잖이 당황한 듯 주춤거리는 게 느껴졌다.

“허, 야 주단솔. 이게 진짜 쥐 콩만 한 게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하는 말마다 따박따박.”

급기야 민성이 단솔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밀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스태프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진짜 싸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냐는 마음 반, 이왕이면 방송에 나가기 좋게 적당한 선에서 싸워 줬으면 하는 마음 반.

기대감과 걱정을 절반씩 얹은 분위기에 모두가 숨죽이고 있을 때, 단솔이 외쳤다.

“정답!”

“에?”

“뭐?”

“뭐시여?”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던 선장님마저 갑작스러운 전개에 놀라 물음표를 띄우고 있을 때, 단솔은 자신의 눈앞에서 삿대질을 하고 있는 민성의 손을 치우곤 선장님 쪽으로 걸어왔다.

“해도는 바로, 선장님의 머릿속에 있어요. 그렇죠?”

“야, 주단솔. 너 선배가 말하는데 지금.”

―……정답. 정답입니다.

“와아! 정답이다! 예에!”

도대체 무슨 맥락에서 답을 찾아낸 건지, 마지막 답은 아무도 못 찾아낼 거라고 생각한 제작진은 단솔의 정답으로 인해 남은 3일의 방송 분량이 공중에서 흩어지는 걸 그대로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신이 난 단솔과는 다르게 방금 전까지 기대감에 물들었던 최 PD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최 PD는 힘 빠진 손으로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삐빅.

“산에 올라간 알파 팀, 철수해 주세요. 정답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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