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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82화 (82/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82화

무인도의 북쪽, 험준한 바위산 근처에 내린 알파들은 제작진이 지급한 장비를 몸에 하나둘 차기 시작했다. 그들이 신고 온 슬리퍼나 구두로는 절대 올라갈 수 없을 정도의 난코스였다. 지수가 제작진이 준 등산화의 신발 끈을 꽉 조이고 있을 때였다. 지수의 등 뒤에서 뜬금없이 욕설이 들려왔다.

“여우 같은 놈.”

“…….”

그 목소리의 주인은 대수였다. 지수는 애써 모른 척했다. 분명 단솔의 머리를 쓰다듬은 것 가지고 하는 소리였다. 저도 얼마나 떨렸는지 아직까지 오른쪽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용기가 없는 건 그대의 탓이지.”

지수는 그런 제 모습을 감추려 더 능글거리며 대꾸했다. 용기라면 대수 역시 부족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넘쳐서 탈이었지.

지수가 모니터링을 할 때 다른 알파와 단솔이 있는 부분을 빼고 보느라 대수가 단솔에게 프러포즈에 가까운 고백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손 떠는 거나 좀 어떻게 하지 그래.”

제가 누구 때문에 단솔과 어색한 사이가 됐는데. 용기를 운운하는 지수가 괘씸해 대수는 일부러 긁는 소리를 했다.

대수는 지수가 단솔을 제대로 모른다고 생각했다.

귀엽고 착한 후배로서의 단솔이 아닌, 애욕의 대상으로서의 단솔은 난제였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멀어져 있고, 단념하려고 하면 자꾸만 눈에 띄었다. 처음엔 단솔이 이런 마음을 갖고 놀기라도 하는 걸까, 오해하기도 했다.

그러다 나중에야 그건 단솔이 연애 놀음 따위에 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반지하에 여러 명이 모여 사는 낡은 숙소, 몸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도 치료도 받지 못하는 스케줄과 악독하고 욕심 많은 소속사 사장까지.

단솔이 너무 많은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땐, 대수는 제 가족 관계까지 털어놓으며 단솔에게 어필했던 순간이 창피해서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서바이벌 상황만 아니었다면, 단솔에게 그렇게 조급하게 다가가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제 눈앞에 서 있는 알파 놈들을 보면 또다시 마음이 조급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 * *

‘허억…… 너무 힘들다……. 보호대는 왜 벗어 던졌지…… 다리가 너무 아파…….’

벌써 한 시간째 아무 말도 없이 산을 오르고 있는 단솔은 영 죽을 맛이었다. 자존심 때문에 두현의 뒤를 따라가고 있지만, 이미 스태프들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자…… 잠깐만요!”

더 이상은 무리였다. 땀을 비 오듯이 흘린 단솔이 외쳤다. 두현 역시 힘든 건 마찬가지였는지, 땀 범벅된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저희…… 흐억…… 그냥 무작정…… 올라가는 거예요? 해도랑…… 허어…… 선장님…… 열쇠…… 안 찾아요?”

“……후 ……당연히 정상에 있겠지.”

서로 말을 섞기 싫어 무작정 올라온 게 패착이었다. 막상 정상까지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모르긴 몰라도, 당황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두현도 방 탈출 게임을 못 해 본 것 같았다.

“작전을 짜야죠…… 이렇게 무작정 올라갈 게 아니라.”

단솔은 사실 다리가 후들거려 더는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적성에는 맞지 않지만, 머리를 쓰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상대는 유두현이었다. 늘 단솔의 머리 꼭대기에서 단솔의 삶 전체를 갖고 놀았던.

하지만 두현은 대놓고 단솔을 비웃었다.

“잘난 척하지 마. 누가 네 생각 따위 듣는대?”

알지도 못하면서. 혼잣말하듯 확연히 단솔을 무시하는 말이었다. 놀란 단솔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지쳐 버린 VJ들이 카메라를 모두 내려놓은 직후였다. 그러면 그렇지, 카메라 앞에서 저런 발언을 내뱉을 사람이 아니었다.

단솔은 왜인지 오기가 생겼다. 회귀 전에야 이연 때문에 저를 미워할 만하다고 하더라도, 이번엔 이연과 접점을 만들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두현의 악의는 여전했다. 이제는 원망과 미움을 넘어 궁금증까지 생겼다.

“선배, 도대체 왜 그렇게 저를 싫어하시는데요…….”

* * *

두현은 꽤 기분이 좋았다. 이연과 함께하는 화보 촬영이 있었고, 인터뷰도 예정되어 있었다. 비록 쇼윈도 커플이긴 했지만.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터라 이연이 저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 그의 커리어가 제 손에 쥐여 있다는 사실이 퍽 만족스러운 나날이었다.

하지만, 단솔의 죽음이 알려진 날, 그날부터 두현이 견고하게 쌓은 성은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저와 상관있는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단솔이 그 프로그램에서 그렇게 사라진 뒤로 연예계 생활을 하지 않은 지 이미 몇 년이 지난 뒤였고, 자살도 아니었으니까.

두현은 솔직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단솔이 연예계 생활을 완전히 그만둔 뒤에도, 누리꾼들은 종종 단솔의 근황을 올리곤 했다. 몰래 찍은 사진 속 단솔의 모습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편의점 음식 따위를 고르는 모습이거나, 병원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 꼴이 전부였다.

혹시나 제 이름을 유서에 남기고 자살을 하는 건 아닐까. 가끔씩 악몽을 꾸기도 했는데, 사고사라니. 두현은 그렇게 제 모든 악행을 덮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이노소울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youdo현이었음

(주단솔 알오매치 서바이벌 왕따증거 모음.jpg)

(주단솔이 유두현 밀친게 아니라는 증거.jpg)

(유두현 주단솔 가스라이팅 하는 모습.jpg)

(주단솔 장례식장에 모인 다이노소울 멤버들 모습.jpg)]

“씨발…… 왜 다들 3년 전에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난리야.”

단솔의 발인이 채 끝나기도 전, 인터넷은 잊힌 비운의 아이돌의 불운한 사망과 함께 두현이 단솔을 괴롭힌 증거들을 쏟아 냈다.

그들은 우연히 잡힌 장면을 근거로 각자의 소설을 풀어냈다. 비교적 정확하게 상황을 서술한 글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극적인 이야기에 열광했다. 단솔은 더 이상 사고로 죽은 비운의 아이돌이 아니었다. 천년에 나올까 말까 한 마스크를 가졌으나, 두현이라는 사람에 의해 요절한 천재 아이돌.

두현은 억울했다. 단솔을 몰았던 것은 이미 몇 년 전의 기억이라 깡그리 휘발된 지 오래였다. 게다가 허황된 말을 뱉고, 그 말에 의해서 기사를 쓰고, 또 그 기사를 퍼다 나르며 소문을 덧붙이는 건 제가 한 일이 아니었다.

저는 그저 약간의 불씨를 제공했을 뿐. 진짜 불을 붙인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단솔이 죽은 뒤로 사람들은 저만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사장님은 이러시면 안 되죠. 저 그냥 이대로 버리시려구요?”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은 상황이 좀 안 좋으니까…… 시간을 두고 기다리자는 거지.”

“날 보호해야지!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더 커지는데! 미리 막았어야죠!”

“누가 그런 짓을 하래!? 미리 어떻게 막아! 네가 행실 똑바로 못 해서 벌어진 사태인 거 몰라? 어디서 적반하장이야!”

이리저리 이용해 먹을 땐 언제고, 막상 두현이 불리한 상황에 빠지자 구해 주기는커녕,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넋 놓고 있다 발을 빼려는 대표에게 두현은 무릎까지 꿇었었다.

“대표님…… 저 아시잖아요. 여기까지 오려고 제가 무슨 짓까지 했는데요. 저 살려 주세요. 네?”

“하…… 너 진짜.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그때 주단솔이 너 난간에서 밀려고 했다는 거…… 진짜야?”

“……사장님…….”

“아! 진짜냐고! 무슨 수를 써야 할 거 아니야!”

“……아니요 ……그런 적 없어요. 근데 그거 아는 사람 없어요, 저밖에. 저…… 혹시 이연 선배한테 연락해 볼까요? 둘이서 가상 결혼 프로그램 같은 거 하면 이미지도 좋아지고…… 저희도 그 프로그램 이후로 이어졌으니까. 주단솔 이야기도 하면서 안타깝다고.”

“자숙하고 있어. 부를 때까지 사고 치지 말고.”

“사장님……! 제가 이연 선배한테.”

“아! 이이연도 텄어! 오늘 오후에 다 까발린다더라.”

“네?”

도대체 뭘 까발린다는 거지.

두현은 그날 집에도 가지 못하고, 회사 복도에 앉아 이연의 언론 발표를 기다렸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아무리 쇼윈도 커플이라도 3년을 지속해 온 관계였는데. 저 혼자 쫓아다닌 시간을 포함하면 그보다도 훨씬 길었다.

이연이 무명에 독립 영화의 황태자 소리를 듣기도 전, 학생 영화를 찍을 때부터 두현은 이연의 팬이었다. 늘 제가 먼저여야만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저 혼자만 알아봤던 사람이니까. 가끔은 냉정할 정도로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어쩌면 죽은 단솔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제 편을 들어 줄지도 모른다고. 두현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배우 이이연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저의 지난 과오와 잘못을 모두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랫동안 저와 연인 관계로 알려진 유두현 씨는 사실 저와 연인이 아니며, 이는 모두 양측 회사 간의 마케팅을 위한 쇼에 불과했습니다.

―3년 전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에 출연했을 당시, 소속사 간의 모종의 합의가 있었고, 이후 저는 소속사의 뜻에 따라 원래 호감을 느꼈던 주단솔 씨가 아닌 유두현 씨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주단솔 씨는 착하고 선한 사람이었고 절대로 남을 해치지 않을 성품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깊은 슬픔과 죄책감을 느끼고…… 사건 당시 용기가 없어 나서지 못한 것이 후회되어 뒤늦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

―너무도 비겁하지만,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일련의 일들에 책임을 통감하여 저는 오늘부로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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