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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80화 (80/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80화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으…… 뭐야…….”

    어차피 일어날 일, 미리 걱정해 봐야 쓸모없다는 지수의 말에 다들 홀린 듯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뭘 하든 관심도 없던 제작진은 이튿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동요까지 틀어서 출연자들을 깨워 댔다.

    “이러려고 그렇게 술을 잔뜩…….”

    다리를 다친 덕분에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시고 일찍 잠든 단솔마저도 일어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태오나 지수는 기절이라도 한 듯 바로 옆에서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도 미동도 하지 않고 침낭에 들어가 애벌레처럼 꼼짝 않고 있었다.

    이연과 민혁, 그리고 민성은 침낭이 모자란 바람에 그마저도 쉽지 않은 듯 각자 자기 쪽으로 당기느라 침낭이 팽팽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시끄러운 음악을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으…… 시끄러워…….”

    ―여러분, 어젯밤 즐거우셨나요?”

    ―여러분의 모습을 보아하니, 상당히 즐거우셨나 봅니다.

    오래간만에 배부르게 먹고 마신 것까지는 좋았으나, 잠든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날 줄 알았으면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급기야 제작진들은 아직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며 침낭에서 꺼내 강제 기상시키기 시작했다.

    “웁……! 흔들지 마…… 토 나올 것 같아…….”

    그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지수는 동굴에서 달려 나가더니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토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잡히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근데…… 대수 선배는 어디 가셨어요?”

    “운동 갔다 왔어.”

    단솔이 자신의 행방을 물은 게 꽤 기꺼운 듯, 동굴로 복귀한 대수의 얼굴이 상쾌해 보였다. 그의 성격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가장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뒷정리까지 다 하고 잠들었을 텐데. 볼 때마다 느끼지만 참 괴물 같은 체력이었다.

    “으…… 아침부터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야…….”

    쓰린 속을 부여잡고 지수가 돌아오자, 스피커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 갔다.

    ―혹시 저희가 어제 말씀드린 것 중 기억나는 게 있는 분 계신가요?

    ―무인도에서의 생활이 벌써 절반을 넘어섰는데요. 드디어 새로운 알파인 한지수 씨가 오신 덕분에 이 게임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구두구두구, 바로 그 게임은…….!

    ―섬 탈출 게임입니다! 와아—!

    딱딱한 기계음은 기쁜 듯 소리를 질렀지만, 출연진 중 그 누구도 호응하지 않았다. 방 탈출도 아니고 섬 탈출이라니. 정말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으나, 지난번 무인도에 들어온 날 설명을 해 드렸죠? 여러분의 모든 행동이 계산되어 점수가 매겨졌습니다.

    다들 까맣게 잊고 있던 눈치였다. 단솔 역시 첫날에야 점수를 신경 써 두현이나 민성처럼 자발적으로 낙오되는 사람들까지 챙겼지만, 그 뒤로는 자신의 배고픔과 피곤함이 더 컸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민성이나 두현처럼 대놓고 이기적으로 굴었던 적은 없었으니 점수가 꽤 높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었다.

    ―우선 점수가 낮은 분부터 호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갈민혁 씨? 앞으로 나와 주세요.

    아무래도 지난번 단솔에게 먹을 걸 훔쳐다 준 것 때문일까. 미안한 마음에 단솔이 민혁을 울상으로 바라보았지만, 민혁은 오히려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누가 보면 저 대신 경찰에 잡혀가는 친구를 본다고 생각할 법한 눈빛이었다.

    ―제갈민혁 씨, 특유의 자연 친화적인 라이프 스타일과 다년간의 캠핑 경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 점에서 크게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2회의 절도 사건으로 인해 크게 감점이 되셨네요. 최하점인 239점입니다.

    “절도? 민혁 씨 뭐 훔쳤어요?”

    “팬들의 마음을 훔쳤다, 뭐 이런 거 아니고 진짜 뭘 훔쳤다고?”

    제작진은 잔인하게도 민혁이 바나나 우유와 삼각 김밥을 가져가는 장면, 병원에서 도넛 박스를 들고 가는 장면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었다. 영상을 본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오히려 얼굴이 빨개진 것은 단솔이었다. 괜히 민혁이 저 때문에 안 해도 되는 일을 해 욕을 먹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민혁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훔친 게 아니라 빌린 겁니다. 갚을 거예요.”

    갚을 때 갚더라도 그건 우선 섬을 나가고 나서 할 일이었다. 민혁의 점수라면 일찍이 섬 밖을 나가는 건 요원해 보였다.

    ―다음은 주단솔 씨.

    “네!? 저요!?”

    단솔은 금세 제가 민혁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주단솔 씨는 선행 점수를 아예 잊어버린 다른 사람들에게 협동의 정신을 상기시켜 주고, 낙오된 사람들까지 챙기는 등. 무인도 입성 후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갈민혁 씨의 도난 행위를 방조하고, 그 장물을 함께 취식하였으므로 376점을 기록했습니다.

    그 순간, 화면에는 병원 침대에 앉아서 도넛을 먹는 단솔의 모습이 영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확실한 물증은 잡지 못했지만, 저희 제작진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 제갈민혁 씨가 절도한 바나나 우유와 삼각 김밥도 주단솔 씨가 드셨다던데, 맞나요?

    “……하지만! 저는 진짜 몰랐어요! 막내 작가님 간식을 가져온 줄은 꿈에도 몰랐다구요!”

    단솔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는 이 무인도에서 그 음식의 출처를 의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런 이유로 저희는 감점 사유가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야…… 민혁이 회귀자인 줄 알았으니까…….’

    단솔은 차마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제작진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회귀자라고 한들 훔치지 않고서야 그게 가능할 리가. 그저 제가 배고픔에 눈이 멀었을 뿐이었다.

    ―다음은 하민성 씨, 유두현 씨. 두 분은 끈질긴 생존력으로 무인도에 들어와 한 끼도 굶지 않고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성실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아이템인 라면, 에너지바 등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잠깐! 그건 따지고 보면 훔친 건 아니지 않나요? 스태프들 거 훔친 것도 아니고, 어차피 다 같이 먹으려고 했을 텐데 미리 좀 먹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전 여섯 시 이후엔 아무것도 안 먹어요. 그래서 저희끼리 일찍 먹은 겁니다. 그것도 첫날에만요. 이후엔 식량도 없었다구요.”

    민성과 두현이 번갈아 가며 항변을 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제작진은 말을 이어 나갔다.

    ―절도라기엔 과한 부분이 있다는 점 인정합니다. 하민성 씨, 유두현 씨 무전취식. 두 분 다 점수 400점.

    그 둘의 죄명에 다들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어야만 했다.

    “저라면 무전취식보다는 절도가 나은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연히 들린 민혁과 이연의 진지한 대화에 단솔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웃음을 참아야 했다. 민성은 열받은 듯 얼굴이 벌겋게 익었지만, 두현은 그저 짜증 난다는 듯 민성과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다음은 마태오 씨, 이번 시즌 막내인 만큼 다른 분들과 협동하여 성실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는데요. 특히 주단솔 씨가 다쳤을 때 업어서 해안가까지 오는 모습에 저희 스태프들도 다 감동했습니다.

    태오는 칭찬에 귓불이 붉어졌다. 그러다 번뜩 떠오른 듯 단솔에게 말했다.

    “단솔 씨! 저 근데 진짜 점수 같은 거 생각하고 그런 거 아니에요. 알죠?”

    “……네 그럼요……. 하하…….”

    ―해서, 높은 점수를 기록하셨습니다. 989점.

    “응……?”

    예상외로 너무 높은 점수에 다들 이연과 대수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태오보다 점수가 높다는 얘긴데, 혹시 두 사람이 섬을 조기 탈출하게 되는 걸까.

    ―이이연 씨, 정대수 씨. 앞으로 나와 주시죠.

    전혀 기쁘지 않아 보이는 두 사람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사실 저희도 점수를 계산하며 크게 놀랐습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무인도 생활을 하실 수 있는 건가……. 거의 자연인이시네요.

    그 말을 부정할 수도 없는 게, 실제로 대수는 성실하게 나무 땔감을 산더미처럼 가져왔고, 이연은 쉴 새 없이 동굴 안을 청소하고 물건들을 정리했다. 물론 그들의 결벽증에서 기인한 행동이긴 했지만, 덕분에 잠자리만큼은 나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두 분 모두 999점입니다. 앞으로 1점만 더 획득하면 이 섬, 무인도를 조기 탈출할 수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젠장. 대수와 이연의 얼굴에 낭패의 그늘이 드리웠다. 섬을 먼저 빠져나가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었지만, 자신이 섬을 나갈 경우 다른 알파들과 단솔만 두고 나가는 꼴이었다.

    하필이면 단솔의 점수가 대폭 깎이는 바람에 단솔의 점수를 높여 주기 위해서 애썼다간 자신이 먼저 섬을 빠져나가게 생겼다.

    ―한지수 씨는 늦게 들어오셨으니 다른 출연자들의 점수를 모두 더하여 평균 낸 값인 628점에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더군다나…… 여우 같은 한지수가 돌아왔으니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진행될 섬 탈출 게임은 역시 개인전입니다. 미션에 따라 때때로 팀을 이룰 순 있지만, 팀을 이루더라도 점수 측정은 개인적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 섬에는 무인도에서 나갈 수 있는 해도, 그리고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열쇠와 배를 운전할 선장님이 숨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찾아 무인도를 먼저 나가는 세 사람에게 데이트 상대 지목권이 우선적으로 지급됩니다.

    ―이 세 가지 아이템을 각각 하나씩 찾아 힘을 합쳐도 되고, 혼자 찾아서 혼자 나가거나, 먼저 찾은 사람이 함께 나갈 두 명을 지목해도 됩니다.

    ―단, 2시간에 한 번씩 YES 또는 NO를 고르는 복불복 게임을 통해 힌트를 얻거나 페널티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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