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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76화 (76/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76화

차마 지수는 단솔의 편집 방향을 두고 최 PD와 거래했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뱉을 수 없었다.

진지하게 말을 꺼내 본 적은 없지만, 저만큼이나 대수도 단솔에게 꽤 진심인 듯했다. 대수는 지금 지수를 도와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력자인 동시에 가장 큰 경쟁자이기도 했다.

사실, 단솔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지수는 섬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달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긴 했지만, 지수는 단솔이 있는 쪽은 차마 쳐다볼 수도 없었다. 이게 부끄러움인지, 설렘인지 그조차 구분이 되질 않았다.

배우로 활동하며 진짜 사랑에 빠진 사람인 척 연기해 본 적도 있고, 로맨스 장인이라는 소리도 종종 듣곤 했는데 다 거짓말이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나약하고 볼품없다. 짝사랑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나 끔찍하게 지질해질 수 있다니. 지수는 요즘 자신의 변한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낚시 간다며, 낚시라면 또 내가.”

“말 돌리지 마. 해야 할 일이 뭔데 도대체.”

“여기는 무슨 고기가 잡히려나? 광어? 우럭?"

“씨발. 말할 생각 없지?"

“이럴 줄 알았으면 초장이라도 몰래 챙겨 오는 건데.......”

억지로 너스레를 떠는 지수를 보며 대수는 표정을 굳혔다.

한지수는 꼭 자기한테 불리하거나,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입을 다물고 괜찮은 척을 하곤 했다. 이렇게 남한테 지기 싫어하고, 의지할 줄 몰라 스스로 고립시키는 성격에 지쳐 다들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거의 유일하게 남은 친구가 대수였다. 대수는 결코 억지로 지수의 입을 열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기다려 주는 사람이었다.

“됐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한숨을 내쉰 대수가 해변가로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는 지수의 표정이 심란했다. 늘 선을 지키고 기다리는 정대수가 이 일이 단솔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때도 저렇게 쉽게 돌아설 수 있을까.

* * *

단솔이 해변에 남아 있는 동안, 다들 민혁의 주도하에 낚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실 미션으로 얻은 멀쩡한 낚싯대는 하나뿐이었고, 나머지는 나뭇가지에 낚싯줄을 달아 만든 어설픈 낚싯대였다.

단솔도 민혁이 하는 모습을 보곤 주변에 있을 멀쩡한 나뭇가지를 찾아 바닥만 쳐다보며 돌아다녔다. 어색한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느니 할 일이 뭐라도 있는 게 나았다.

“찾았다......!”

그렇게 돈이라도 잃어버린 사람처럼 바닥만 보고 다니던 단솔의 눈에 길쭉하고 곧은 나뭇가지 하나가 들어왔다. 하지만 단솔이 나무를 잡음과 동시에 태오의 손이 단솔의 손과 겹쳤다. 두 사람 모두 그 나뭇가지를 보고 달려든 모양이었다.

"어......!"

"아, 단솔 씨."

단솔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처음엔 그냥 무의식적으로 피하기 시작했는데 이젠 예전처럼 편하게 태오를 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태오 씨...... 쓰세요."

“아뇨, 단솔 씨 써요.”

“저......! 저 진짜 괜찮아요! 태오 씨 쓰세요!”

단솔은 제게 나뭇가지를 양보하는 태오에게 억지로 맡기듯 나뭇가지를 넘기곤, 섬 안쪽으로 발걸음을 빨리 놀렸다. 그런 단솔의 모습에 태오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긍정적인 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저를 눈에 띄게 피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무 소리도 하지 말 것을

단솔은 제가 자연스럽게 태오를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럴리가. 도대체 일일 드라마에서 보여 준 연기력은 어디로 간 건지 단솔은 태오와 부딪힐 때마다 고장 난 로봇처럼 굴어 댔다.

처음엔 최대한 아무 일 없는 척하려고 했던 태오는 물론,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대수나, 배고픔에 시시때때로 헛소리하느라 바쁜 민혁조차도 태오에게 단솔과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 올 정도였다.

단순히 또래끼리 싸우기라도 한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어제는 이연이 두 명이 화해할 자리를 만들어 준다기에 그걸 말리느라 잔뜩 애를 쓴 태오였다.

".......차라리 싸운 거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태오가 쫓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단솔이 정신을 차렸을 때였다.

숨이 차서 무릎을 짚고 헉헉거리고 있는 단솔의 시야에 너무도 멀끔한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무인도에 들어온 뒤로 편히 먹지도, 씻지도 못해 다들 야생 그 자체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인데 저런 깔끔한 구두라면.....

"솔아, 잘 지냈어?"

당황한 것은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대수가 먼저 해안가로 떠나고, 섬을 둘러보기 위해 목적 없이 걷던 중 단솔과 단둘이 마주칠 줄이야. 단솔이 제 얼굴을 보고 멈칫하는 게 느껴지자 정적을 깨려고 아무 말이나 뱉었는데, 누가 봐도 잘 지내지 못한 꼴의 단솔은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했다.

들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단솔의 상의는 얼룩덜룩 얼룩이져 있었고, 결이 좋았던 머리는 기름기 때문에 뭉쳐 있었다. 밥도 제대로 안 먹인 건지 안 그래도 마른 애가 턱선이 뾰족해져 있었다.

그런 거지꼴을 한 와중에도 이목구비만은 빛이 나서 지수는 꼭 길을 잃은 사슴을 만난 기분이었다. 대수의 집에서 몰래 가져온 단솔의 한정판 인형이 떠올랐으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모양이다.

***

"......."

뭐라도 대답을 해야 하는데 단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수를 두고 뒤돌아섰다. 절대 아까 전 지수가 저를 모른 척하고 지나가서 서운한 건 아니다.

그저 이건 아직 지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략을 짜지 못해서, 그런 이유일 뿐이라고. 단솔은 걸어가는 내내 자기 합리화를 했다.

<알파x오메가 속마음 인터뷰>

Q : 제갈민혁 씨, 한지수 씨가 돌아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갈민혁 : 일단은 반가웠고요. 오메가가 알파가 되니....... 과학 기술이 정말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지.......

Q : 아니요. 한지수 씨는 원래부터 알파였는데......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제갈민혁 : ......그럼 알파가 오메가가 된 건가요? 이런 과학 기술의 발달 앞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잃지 않아야.......

Q : 민혁 씨, 배고프세요?

제갈민혁 : 네.

Q : 아까 저희 막내 스태프 간식도 훔쳐 가셨으면서.......

제갈 민혁 : 그건 훔친 게 아니라 잠깐 빌린 겁니다. 촬영 끝나면 갚을 거예요.

Q : 정대수 씨, 한지수 씨가 돌아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대수 : 별생각 없습니다.

Q : 어...... 혹시 정대수 씨는 한지수 씨가 알파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정대수 : 네. 본의 아니게 여러분을 속이게 되어 죄송합니다.

Q : 아...... 사과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혹시 한지수 씨가 알파라는 사실을 밝히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이 있으시다면.......

정대수 : 없습니다. 그런 거.

Q : 마태오 씨 한지수 씨가 돌아왔는데, 그간 불필요한 오해를 받느라 마음고생이 많으셨겠어요.

마태오 : 그렇진 않았어요. 가십에 오르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팬들한테 걱정을 끼쳐서 죄송하긴 하죠.

Q : 유두현 씨, 한지수 씨가 돌아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두현 : 글쎄요. 이래도 되나 싶고...... 좀 당황스럽네요.

Q : 한지수 씨의 복귀가 불편하신가요?

유두현 : 아......! 그건 아니에요 그냥 좀 당황스러운 거지....... 사람은 반갑지만...... 상황은 좀 어지럽네요.

Q : 아! 이건 오프 더 레코드인데, 유두현 씨 소속사가 한지수 씨소속사 레이블이셨죠?

유두현 : 네, 그렇긴 한데 원래 친한 사이는 아니에요. 절대.

Q : 소속사랑 소송하신대요, 한지수 씨.

유두현 : 예? 소송이요?

Q : 하민성 씨, 한지수 씨가 돌아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민성 : 이...... 방송계에 만연한 카르텔, 캐스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힘이...... 만든 재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악습은 없애야.......

Q : 주단솔 씨, 한지수 씨가 돌아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단솔 : 어...... 예전보다 조금...... 어색해진 것 같아요.

Q : 한지수 씨가 알파라서 그런 건가요?

주단솔 : 그것도 있고....... 아무래도 갑자기 알파라고 생각하니까...... 조금...... 어렵네요. 많이.

Q : 불편하시다면, 제작진에게 건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모두 수용할 수는 없어도 가능한 출연진을 배려하는 선에서 방법을 찾아 볼게요.

주단솔 : 아, 아뇨. 불편...... 하진 않아요. 그냥 좀 어색한 거지. 반갑...... 긴 했어요. 형은 어떨지 모르지만.

Q : 한지수 씨, 돌아온 소감이 어떠십니까?

한지수 : 좋네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거든요.

Q : 그분 때문에 돌아오신 겁니까?

한지수 : 그것도 맞아요. 아니, 그게 맞아요. 전적으로.

Q : 누군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오메가 출연자 중 한 명인가요?

한지수 : 그건...... 그냥 지켜봐 주시면 아실 것 같은데요.

Q:한지수 씨의 복귀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실 시청자들도 있으신 것 같아요. 자숙기간 없이 복귀하셨는데.......

한지수 : 다 제 잘못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숨어 있는 건 또 저답지 못한 것 같아서요. 좋은 활동으로 갚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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