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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72화 (72/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72화

“너 뭐 하는 새끼야!”

최 PD는 예능국장이 제 얼굴을 향해 던진 종이가 팔랑팔랑 떨어지는 모양을 보고 있었다. 시대가 어느 땐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하나하나 인쇄해서 읽은 모양이었다.

“요즘 친환경이 대세인데 종이 아깝게 뭘 인쇄씩이나......."

“하...... 너 방송 심의 규정 위원회 다녀온 지 한 달도 안 됐어!"

"알아요."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으면 섬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어차피 캐스팅도 여기저기 까였고, 다른 연예인이 거절했다는 소리를 듣고서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던 차라 골치가 아팠다.

그런 와중에 지수의 급작스러운 기자 회견 때문에 회사로 불려 온 최 PD는 오늘따라 춘몽도가 그리워졌다.

“너......! 한지수가 알파라는 거 모르고 있었어?"

“당연히 모르죠! 알았으면 캐스팅을 했겠어요? 요즘에 뭐...... 오메가인데 같은 오메가 좋아하기도 하고...... 워낙 형질 같은 거 신경 안 쓰니까. 그냥 그런 쪽인 줄 알았죠."

안 그래도 지난 시즌 출연자가 자살 소동을 !! 벌이는 바람에 갖은 고생을 했던 최 PD였다.

애초에 더 나빠질 이미지도 없는 연예인이었는데 그 일로 법원이며 방송 심의 규정 위원회며 들락날락하느라 한동안 힘들어서 머리털이 다 빠질 뻔했었다. 이제 조금 수습되나 싶었는데 이번엔 한지수라니. 지난 시즌보다 스케일이 커도 너무 컸다.

“하...... 이것 좀 봐라. 게시판이 여기저기 난리다, 난리야. 어떻게 알파인 한지수랑 오메가인 주단솔이 같이 방을 쓰게 하냐고......!”

“방에도 카메라 있는데요, 뭐. 미국에선 그냥 서바이벌 참가자들끼리 한 침대에서 이것저것 다 해요."

“야! 지금 장난해?! 여기가 미국이야?! 근데...... 저기 두 사람 아무 일도 없었던 건 맞지?”

예능 국장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 와중에도 최 PD는 또박또박 말대답했다. 다른 프로그램 사람들까지 몰려 구경하는데도 최 PD의 깐족거림은 멈출 줄 몰랐다.

“그럴 리가 있어요? 카메라 다 있는데. 주단솔도 알았으면 한방 못 쓰겠다고 뭐라고 말이라도 했겠죠. 근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궁금...... 하고 그러신 건 아니죠?"

“야! 인마! 넌 사람을 어떻게 보고......! 나중에 주단솔이 소속사에서 소송이라도 걸면 어떡하냐.......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피곤한 일 늘어 봐야 좋을 거 하나 없어. 하...... 난 이제 모르겠다. 그놈의 알오매치 서바이벌 이참에 폐지를 하든가 해야지."

"다 망해 가는 예능국 살린 게 누군데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예능국의 보물이네, 예능의 새 역사를 썼네, 그러셨잖아요.”

최 PD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지금 일주일도 넘게 알오매치 서바이벌의 향방에 대한 이야기가 각종 포털 사이트와 SNS에 도배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화제성 하나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에 국장이 머리가 아픈 듯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아오! 새 역사를 쓰긴 쓴다 정말! 됐고! 알아서 수습해! 난 몰라!"

“진짜 알아서 수습해요?"

“어! 제발 알아서 수습 좀 해!"

당장 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국장은 이제 달라붙는 최 PD가 귀찮다는 듯 훌훌 털어 버리고 복도를 총총 걸어갔다. 이 거지 같은 회사. 진짜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최 PD는 이를 아드득 짓씹으며 국장이 날리고 간 종이를 하나하나 주워서 챙겼다.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와 마태오 그렇게 안봤는데 ㅈㄴ멋있음...

한지수 비밀도 지켜 주고 다른 출연자들 동요할까

봐 독박쓴거네? 탈락권 8장 갑자기 날려서 킬태오

라고 불렀는데 미안하다...

⤷그니까... 신종 폭군 등장인줄 알았는데 쏘스윗남이었너..

⤷철딱서니없는 막내아들 재질이었는데 ㅠㅠ 오해

해서 미안하다 태오야...!

⤷와 진짜 내가 태오 그런애 아니라고 실드칠때 욕하던 것들 다 어디감?

명색이 알오매치 서바이벌인데, 오메가는 없고 알

파만 드글드글함. 그냥 다음시즌부터 알파알파 서

바이벌로 바꿔도 될 듯

⤷ㅁㅈ.... 같이 한 방썼던 주단솔만 불쌍함

⤷아 근데 몇주동안 같이 지내면서 몰랐을까? 내 혈육새끼가 알파고 내가 오메가라서 잘 아는데 역한 냄새가 날텐데 ㅡㅡ?

⤷뇌피셜오지네 니 혈육이 유난히 냄새가 역한가보지, 요즘 누가 냄새풍기고 다닌다고. 내가 보기엔 주단솔도 피해자 같은.... 걔가 알아챌 정도였으면 제작진이 먼저 알아챘겟지 고생하다가 이제 빛보려는 애 엄한 루머로 잡지말길

한지수도 그랬잖아 형질 숨기는 게 습관이 됐다고.

십몇년동안 숨겼으면, 제작진이나 출연자들 속이는

건 일도 아니었을듯. 연기도 ㅈㄴ잘하잖아. 솔직히

한지수가 무슨 죄임? 난 솔직히 한지수 불쌍함. 데

뷔 초때 소속사 잘못만나서 알파가 오메가 흉내 내

고 산 거잖아.

⤷기자회견보고 눈물났음... 진짜 화려한 연예인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지수 예민하고 싸가지없다고 루머 진짜 많았는데, 그것도 형질 속이느라 그런 거였던거 같음

⤷아.. 그래서 정대수랑 친했나? 스캔들 날정도로... 그냥 같은 알파라서 친구로 친하게 지낸건데... 친구 사귀기도 힘들었을 듯.

⤷아니 근데 왜케 속은 기분이지ㅋㅋㅋㅋㅋ알알매치였는데 ㅅㅂ나 똥손 인정 대수지수, 태오지수, 민성지수 주식삼 환장...근데 사람들 왜이렇게 한지수 불쌍하게보지 그래봤자 걘 펜트하우스 살고 외제차 타고다니는데

한지수빠들 진짜 노답이네.

자기들 포털 터졌다고 이미 하차한 프로그램 포털

와서 이렇게 떠드는 것도 웃기고ㅋㅋㅋㅋ심지어 형

질을 속였는데, 그걸 실드치냐 알파새끼들은 교활

해서 믿으면 안 된다니까. 솔직히 한지수 있을 때 프

로그램이 더 재밌었던 건 인정. 기왕 이렇게 된거 빌

런으로 다음 회차에 다시 복귀했으면 ㅋㅋㅋ

⤷한지수랑 PD가 쌍으로 미치지 않고선 그러진 않을 듯

⤷한지수빠들도 욕하는 사람 반 실드치는 사람 반인데 무슨 욕을 먹으려고

유레카.

파쇄기에 한 장씩 종이를 넣던 최 PD의 눈에 한 게시글이 들어왔다. 안 그래도 무인도로는 뭔가 약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민성처럼 그마저도 힘들다고 우는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차피지난 시즌에 한 번씩 다 보여 줬던 진부한 그림의 반복일 뿐이었다.

그 어떤 시즌보다 캐스팅에 공을 들인 만큼, 최 PD는 이번 시즌 만큼은 그저 구설수만 많았던 프로그램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 * *

3시 미션을 허무하게 끝낸 뒤로 태오는 계속 축 처진 상태였다.

“태오 씨, 민혁이 형이 그러는데 저쪽에 산딸기가 있대요. 지금은 날씨가 추워져서 얼마 없긴 하겠지만...... 그래도 한번 가 볼래요?"

“아뇨, 전 괜찮아요.......”

단솔은 그런 태오가 신경 쓰여 자꾸만 말을 걸었지만, 자기만의 동굴에 갇힌 듯 태오의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아...... 그럼 저 혼자라도 갔다 올게요!”

“혼자는 위험해. 나랑 같이 가든지. 이것만 끝내고."

단솔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동굴 한가운데 화로를 만들고 있던 대수가 따라나서려고 일어났다. 이연과 민혁도 함께 돌을 쌓느라 깔끔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있었다.

“아니에요! 저 혼자 가도 괜찮.”

“아니, 제가 같이 갔다가 올게요. 단솔 씨 가죠."

대수의 말에 태오가 벌떡 일어나 단솔의 팔을 잡아끌었다. 단솔은 마침 잘됐다 싶었다. 무인도에 들어온 뒤부터 줄곧 태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적이 드문 산길로 들어서 주변이 더 조용해지자 단솔은 아무 말 없이 걷는 태오에게 말을 건넸다.

“태오 씨...... 악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요. 저도 좀 받아......”

하마터면, 회귀 전 일을 말할 뻔했다. 악플도 인지도가 있어야 받는 법이니 단솔은 지금의 자신과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입을 다 물었다.

“다들 그러더라고요. 악플 그거 인생에 하자 있는 사람들이 뱉는 말이라고...... 막 되게 유명한 선배님들 인터뷰 보니까.......”

물론 지난 외출 때 인터넷을 보긴 했지만, 그건 제 서치 방지 용어까지 찾아 가며 제 이름을 검색했던 결과였을 뿐. 그래서 단솔은 자신이 아직도 인지도가 전혀 없을 거라고 짐작하곤 말했다.

“악플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에? 그럼 뭐 때문이에요?"

그것 말고 침울해질 일이 또 있나.

“태오 씨 아직도 다이어트해요?"

단솔의 물음에 태오는 그저 단솔의 눈만 빤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제 마음을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늘 금방 사랑에 빠지고, 금방 빠져나왔다. 어차피 바쁜 스케줄에 치여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니까, 풋사랑처럼 해 봤던 몇 번의 연애조차도 이렇게 깊은 감정은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그것도."

“그럼 뭔데요?"

태오는 단솔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단솔의 감정이 저와 같을지, 아니 자신을 이성으로 보고 있긴 한 건지 확신이 없었다.

명색이 연애 예능인데, 단솔의 눈은 가끔씩 아무 감정을 담지 않고 연기하는 사람 같기도 했다. 분명 가까이 있는데, 멀리 있는 기분.

“산딸기...... 찾았어요."

"어?! 진짜네. 생각보다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

일부러 태오가 화제를 돌렸다. 붉은 과즙을 뚝뚝 흘리는 산딸기를 따느라 단솔의 손끝이 붉게 물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단솔은 티셔츠를 들어 올려 주머니처럼 만들더니, 산딸기를 따는 족족 담기 시작했다. 그 탓에 티셔츠가 올라가 얇은 허리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크흡, 흠......."

어쩌자고 이렇게 음험한 생각을 갖게 만드는지. 단솔의 모습을 본 태오가 헛기침을 했다.

“다...... 단솔 씨 티셔츠에 그렇게 하면 물들 텐데."

“괜찮아요, 어차피 낡은 옷이라서. 무인도 간다고 그래서 일부러 제일 낡은 거 입고 왔어요. 저 잘했죠?"

태오의 속도 모르고 헤헤 웃던 단솔이 이미 물러 버린 산딸기 몇 개를 쏙 하고 입에 넣었다. 덕분에 단솔의 입술이 딸기 과즙으로 붉게 물들었다.

“하...... 진짜 잘했네요."

따라오길 진짜 잘했네. 저 광경을 대수나 다른 사람들이 봤을 거라고 생각하자, 태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연약한 산딸기가 터져 태오의 팔뚝에 산딸기 국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네?"

“아...... 아뇨. 티셔츠...... 낡은 거 입고 오길 잘했다고요."

“아아......."

다행히 단솔은 열매를 따는 데 집중한 나머지 태오의 감정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참, 단솔 씨. 저 악플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래도요. 아무리 신경 안 쓴다고 해도 마음은 그게 아니잖아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해 주는 말과 나를 잘 알지도 못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해 주는 말이 같은 무게일 수는 없어요."

단솔은 태오의 말에 석상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그간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모두가 자신을 외면했고, 모두가 자신을 욕한다고 생각했을 때 따듯하게 말해 준 사람도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런 말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처음엔 위로를 건넸던 사람들도, 점차 지쳐 갔던 건 아니었을까. 당장 눈에 보이는 나쁜 말에 집착하느라 정작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지 못한 건 아닐까. 그래서 그렇게...... 외롭게 죽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단솔은 해명 도사를 만나고 온 뒤로 자꾸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가 말한 필연적 사건에 제가 죽을 날짜조차도 정해져 있을까 봐.

“태오 씨는...... 참 어른스럽네요."

“에이...... 전 오히려...... 단솔 씨한테 너무 애 같은 모습만 보여서 속상한데요?"

"......."

애써 다른 생각을 하려 태오에게 화제를 돌려 말을 걸어 봤지만, 도저히 집중되질 않았다.

“늦겠다. 여섯 시에 또 미션 하잖아요. 얼른 가요."

용기를 내 넌지시 제 마음을 건넨 태오는 단솔이 아무 반응이 없자 민망한 듯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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