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70화
지수는 새까만 정장을 입은 제 모습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져 연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거울을 지겹도록 봐서 평소에는 무신경할 정도였는데, 오늘은 저도 모르게 긴장한 모양이었다.
후련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아쉽기도 했다. 애초에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웠다면 이렇게 연예인 생활을 끝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아니, 애초에 그랬다면 이런 유명세와 재력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건 결과론적인 가정법일 뿐이다.
한숨을 푹 내쉰 지수가 현관문을 나섰다.
"아, 맞다!"
하지만 잊은 물건이 있었는지 이내 다시 들어오더니, 대수의 서재방으로 향했다.
“형이랑 같이 가자―."
지수는 단솔을 본떠 만든 봉제 인형을 챙겨 수트 안주머니에 넣고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
"뭐야, 한지수 결혼한대?"
“결혼이라고 해도 요즘은 카페나 SNS로 하지 누가 기자회견까지 열어. 마태오 때문에 그러나? 혼전 임신이나, 음주 운전 아냐?"
“에이, 그것도 회사에서 보도 자료 때리거나 자필 편지 몇 장 써서 SNS에 올리고 말지.”
“아...... 그것보다 큰 건이면 뭐가 있지."
지수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자회견장에는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요즘 시대에 기자회견까지 여는 것일까.
음주 운전을 하고도 판에 박힌 문구의 자필 사과문과 어느 정도의 자숙이면 뚝딱 해결되는 시대인데. 영문을 모르는 기자들은 갖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내 명품 블랙 수트 셋업을 걸친 한지수가 나오자, 회견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에...... 뭐야 그냥 미모 자랑하러 나온 건가.”
물론 당연히 아니겠지만, 고생 좀 했는지 살이 빠져 날카로워진 인상으로 데뷔 초 모델 시절을 연상케 하는 비주얼이 그 정도로 감탄스러웠다.
지수가 준비된 자리에 앉고, 스태프들의 지휘하에 회견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배우 한지수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을 모신
건...... 더 숨기고 싶지 않은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수의 의미심장한 발언에 회견장이 술렁였다. 비밀리에 진행한 혼인, 혼 외 자식 등. 웅성거리는 소음 속에서 별별 추측이 나돌았다.
“저는 그간 대중 앞에서 제 형질을 속여 왔습니다. 저는 오메가가 아니라, 알파입니다."
***
그 시각, 춘몽도 선착장에서 출발한 무인도행 배는 어느새 바다를 건너 무인도 해안가에 다다르고 있었다.
무인도는 정말 말 그대로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작은 모래 해변과 돌, 울창한 나무들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 PD는 어떤 장면을 끌어내고 싶은 것일까.
단솔은 기억을 더듬었다. 회귀 전 시즌3에서 겪은 극한 상황이라고 해 봤자, 정상에서 캠핑한 게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단솔은 발목을 접질려 중간에 내려와야 했지만.
대부분 하루면 촬영이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스태프들이 들고 들어온 짐의 양을 보니,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3일 이상은 여기서 지낼 모양이었다.
지수의 탈락이 프로그램에 미친 여파 때문일까. 단솔은 새삼 이번 생의 가장 큰 변수는 지수의 뒤늦은 탈락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비밀을 숨기고 있었으면 차라리 전처럼 빨리 떨어지는 게 나았을 텐데!'
정작 본인 스스로도 지수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고 있는 주제에, 단솔은 마음에도 없는 생각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이 무인도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군요.
사람들이 섬에서 내렸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최 PD가 아니라 늘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던 스피커 하나였다.
-이제 여러분은 일주일 동안, 이 무인도에서 생존 게임을 벌인 뒤, 다시 춘몽각으로 나가게 됩니다.
일주일이라니, 길어야 최대 3일일 줄 알았는데. 하지만 이내 생존 전략의 항목을 떠올렸다.
춘몽각보다는 별로여도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가 수도관이 터지고 곰팡이가 가득한 지하 숙소보다 쾌적할지도 모를 일이니, 무인도 생존은 나름 자신 있었다.
-저희 제작진은 최소 인원을 제외하고 섬 밖에 나가 있을 예정입니다. 곳곳에 카메라를 숨겨 놨으니까, 규정 위반으로 벌점 받는 일은 없도록 주의해 주세요.
-룰은 간단합니다. 처음 여러분이 고르신 물품으로 살아남는 겁니다.
- 제갈민혁 씨, 생수 한 박스.
- 정대수 씨, 라이터 10개.
- 주단솔 씨, 라면 10개.
- 마태오 씨, 침낭 5개.
- 이이연 씨, 칼 5 자루.
- 유두현 씨, 에너지바 10개.
- 하민성 씨, 밧줄 30미터.
-각각 앞에 주어진 물건을 가져가시겠습니까?
해변가에는 그들이 준비한 물건만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생각보다 고생길이 더 훤해 보이는 기획에 다들 제 물건을 집어 들었다.
-각자 주어진 물건을 누군가와 나누어도 되고, 나누지 않고 혼자 가져도 됩니다.
-단, 여러분이 섬에서 생활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점수화해 측정할 겁니다.
ㅡ삼시 세끼를 챙겨 먹을 때마다 각 10점, 간식 기타 야식류 섭취는 5점. 섬의 궂은 날씨를 피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면 30점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매일매일 주어지는 미션에서 실패할 경우 그만큼 감점되니, 이 부분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사랑을 찾아 떠나온 사람들인 만큼, 혼자만 살아남아서는 안 되겠죠? 본인의 생존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존을 돕는 행위를 하면 100점씩 주어집니다.
-총 1000점 만점이며, 일주일이 되기 전 이 점수를 미리 채우는 분은 섬을 먼저 나갈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1000점을 획득하는 사람에게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의 탈락자를 선정할 수 있는 프리 투표권과 데이트 미션에서 압도적인 어드밴티지 역시 주어집니다.
-하지만, 저희 제작진이 준비한 물품 외에 다른 개인 물품을 사용하거나 외부 사람과의 접촉 시 룰 위반으로 간주하여 점수를 0점으로 복구합니다.
-자,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오늘은 무인도에서의 첫날이니만큼 멋진 보금자리와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100점씩 지급하겠습니다.
“하, 기가 막히네 진짜. 밧줄로 뭘 하라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딴 프로그램에 들어와서......."
민성의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얄궂게도 스피커는 사족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아침 6시, 낮 12시, 낮 3시, 저녁 6시. 하루에 네 번 아이템 획득을 위한 새로운 미션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가지고 있는 자원이 별 볼 일 없거나, 타인에게 빼앗겨 사라진 분들은 이 시간을 활용하시면 되겠죠?
민성은 스피커를 한 번 노려보다 체념한 듯 말했다.
“하, 난 몸이 안 좋아서 저기 가서 좀 쉴 테니까 찾지 마.”
이제 아예 방송은 반쯤 포기한 듯한 민성이 우물쭈물하는 두현의 손을 잡아끌었다.
“너도 따라 나와. 손 다쳤잖아.”
"전 됐어요. 선배님이나 가세요."
두현이 민성의 손을 애써 뿌리치며 이연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연은 그 모습을 못 본 척, 해변가에 놓인 짐만 뒤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성이 재차 두현의 손을 잡아당겼다.
“여기 있어 봤자 누가 반긴다고.”
결국, 두현은 못 이기는 척 이연을 두고 민성을 따라 해변가로 사라졌다.
“일단 불부터 피우고, 해 지기 전에 동굴이나, 나무라도 찾지."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삼각관계에 빠져든 사이, 대수가 재빨리 해안가에 있는 박스들을 옮기곤 섬 탐색을 나설 준비를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마치 섬에 원래 살았던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너 말고, 다시 살아난 놈이 한 놈 더 있다고. 조심해.'
그 순간, 단솔은 해명 도사의 말이 떠올랐다.
‘설마...... 대수 선배님이 인생 2회차인 걸까. 저렇게 능숙한 걸 보면 아마 그럴지도.......'
"칼 좀."
“어...... 네.”
이연의 칼 중 하나를 건네받은 대수가 자신을 따라 섬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단솔을 막아섰다.
"위험하니까 기다려."
“어...... 그렇지만, 선배님 혼자서 가시게요? 위험한데....... 산짐승 같은 거 나오면 어떡해요......!"
대수와 어색해졌다는 걸 까먹은 단솔이 덥석 대수의 팔뚝을 잡았다. 제 턱밑에서 꼼지락거리는 단솔을 내려다보며, 대수는 단솔이 그 어떤 산짐승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같이 가."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둘이서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어어! 대수 형! 저도 같이 가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상상하며, 이미 귓불이 발갛게 익은 대수의 계획에 훼방 놓은 건 태오였다.
섬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알파들 사이에서는 단솔이 모르는 치열한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촬영은 이미 중반부를 넘어선 지 오래. 더 이상 뭉그적거리다간, 다른 알파에게 선수를 빼앗길지 몰랐다.
“저도 같이 가죠. 그래도 이 중에선 제가 제일 자연 친화적이니까 도움될 거예요."
“저도 같이 가죠. 해변에서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을 것도 아니고"
태오만으로도 거슬리는데 민혁과 이연까지 끼어들어 한마디 보태자, 대수의 표정이 더 구겨졌다.
졸지에 다섯 명이 함께 섬을 탐색하게 되어 대수는 몹시 기분이 상했지만, 단솔의 앞이라 차마 티를 낼 수 없어 굳은 표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럽시다.”
모두 대수에게서 나오는 신경질적인 페로몬을 분명 느꼈지만, 태오는 모른 척 싱글벙글하며 단솔의 옆에 섰다.
***
“여기 동굴 있어요!"
앞서가던 민혁이 소리쳤다. 박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동굴에는 마치 그들이 올 줄 알았다는 듯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민혁을 따라 단솔도 동굴로 들어가 보니, 이미 제작진이 준비해둔 것처럼 야생에 있는 동굴답지 않게 꽤 깔끔한 모양새였다.
"하...... 정말 야생."
“이 정도면 우리 숙소보다 낫네......."
고생을 짐작하긴 했지만, 상상 이상의 야생에 던져진 게 실감 나는 동굴 모습에 이연이 불만을 토로하려다 단솔의 이야기를 듣고는 말을 바꾸었다.
"야생 치고는 아늑한 편이네......."
"......오늘은 여기서 침낭 깔고 자면 되겠네요."
“앞에 개울도 있어서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태오 씨는 생각보다 적응이 빠르네요. 오늘 아침까지 뒹굴던 구스 이불이 그립지는 않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얼른 적응해야죠. 뭐...... 헤엄쳐서 나갈 수도 없고, 해명 도사님이 그랬거든요, 물 조심하라고."
민혁과 태오의 농담에도 단솔의 머릿속에는 또 회귀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아무래도 민혁이 형이 회귀자인 걸까. 다들 왜 이렇게 적응이 빠른 거야.......!'
“더 어두워지기 전에 두 사람 데려와야 할 것 같은데.”
상념에 빠져 있던 단솔을 깨운 것은 대수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서 다녀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대수와 태오의 눈이 어느 순간 마주쳤지만, 태오는 못 본 척 영 딴청을 피웠다.
"뭐야, 아무도 안 가?"
“아, 형! 근데 솔직히 꼭 데려와야 해요? 그 두 사람 있으면 괜히 분위기만 나빠지고 불편하고...... 먹을 거 좀 나눠 주고 따로 있으면 안 되나......."
다들 태오의 말에 공감은 하지만 아무도 섣불리 동의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연이 냉정하게 말했다.
“무인도에선 체력이 생명인데, 싸우면서 체력 낭비하고 싶지는 않네요."
악마의 편집을 당하기 충분한 발언이다. 두 사람의 관계도 회귀 전과 다르게 흐르고 있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회귀 전처럼 연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연만큼은 두현에게 저리 모질면 안 될 텐데.
단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뻔한 것을 참고 가만히 상황을 관망했다.
"......."
무리 중에 리더 격이었던 대수는 퍽 곤란한 듯 눈썹 부근만 만지작거렸다. 사적인 상황이었다면, 대수 역시 민성이나 두현처럼 이기적인 사람들을 옆에 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앞으로 일주일이나 이 섬에서 함께 버텨야 하는 처지였다.
게다가 모두가 태오나 이연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민혁이 일어날 채비를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첫날부터 두 사람 버리고 오는 것 같아서 나는 마음이 좀 그러네요. 마땅히 가진 것도 없는데. 내가 다녀올게요."
단솔은 민혁의 말에 잊고 있던 가산점을 떠올렸다. 생존을 돕는 행위는 가산점 지급 대상.
이 정신없는 틈에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챈 걸까, 민혁이 그리 계산적인 사람은 아닌데...... 회귀자로서의 노련함인 걸까.
“저어...... 다 같이 가요. 아까 그랬잖아요 타인의 생존을 돕는 행위를 하면...... 가산점 100점이라고. 이것도 일종의 그런...... 행위 아닐까요? 빨리 1000점을 채워서 다 같이 섬에서 나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게 좋겠군."
"오...... 단솔 씨 머리 좋다. 우리 이대로면 금방 1000점 모아서 나가는 거 아니에요?"
태오의 칭찬에 단솔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괜히 부끄러워진 단솔이 동굴 앞 작은 바위 위에 앉아 있다가 서둘러 일어났을 때였다.
서 있던 바위가 덜컹하자, 단솔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어엇......."
"단솔 씨!"
그런 단솔의 허리를 태오가 잡아챘다. 잡아 줬다기보다는 거의 들어 올린 게 맞았다. 같은 아이돌이라 당연히 몸이 여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단솔의 생각일 뿐이었는지, 넘어질 뻔한 단솔을 잡아 챈 태오의 팔이 단단하게 단솔의 허리를 잡고 있었다.
“어...... 조...... 조심해요."
“아! 고마워요 태오 씨! 하마터면 머리 깨질 뻔.”
태오는 갑자기 가까워진 단솔과의 거리에 당황한 듯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평소였다면 자신 덕분에 단솔이 살았다느니 자기가 단솔을 구했다느니 장난쳤을 테지만, 오늘 태오는 단솔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 삐거덕거렸다.
“그...... 태오 씨...... 저...... 좀 부끄러운데 내려 주시죠......?"
같은 남자인 단솔을 들고 있는 게 힘들지도 않은지 태오는 그대로 굳어 있다가 단솔이 태오의 손을 툭툭 치자, 그제야 단솔을 사뿐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태오는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거덕거리며 앞장섰다. 동굴에서 나가는 태오의 목덜미가 빨갛게 익어 있었다.
* * *
"이...... 이게 뭐야."
그들이 두현과 민성을 데리러 돌아왔을 땐, 해변에 있던 라면과 물이 반쯤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배부르게 먹고 잠든 두현과 민성이 있었다.
“진짜 미쳤어요?!"
결국, 줄곧 두 사람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던 태오가 화를 냈다.
“뭐? 너야말로 미쳤어? 라면 몇 개 가지고...... 그럼 빨리 오던가!"
“라면 몇 개가 아니라, 저걸로 며칠을 버텨야 할지도 모르는데 두 사람이 그걸 마음대로 먹으면 어떡해요!”
"어차피 같이 먹을 거 아니었어? 우리 몫 먼저 가져간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뭐가 문젠데?"
“그게 어떻게 그렇게 돼요! 다 같이......!”
“다 같이? 버리고 갈 때는 언제고, 이럴 때는 또 다 같이야."
“버리고 간 게 아니라, 먼저......!"
버린 게 아니라 두 사람이 먼저 떠난 것이고, 정말 버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나 민성의 말에 애써 두 사람을 찾아온 보람도 없어졌다. 태오가 흥분한 듯 주먹을 꽉 쥐자, 이연이 태오를 말렸다.
“섬에 뭐가 있나 보러 간 거예요. 괜찮은 동굴을 찾았는데, 오늘은 거기서 하룻밤 보내기로 했습니다.”
“오...... 그렇구나. 근데 알파랑 오메가랑 다른 데서 자야 하는 거 아닌가?"
민성은 기분 나쁘게 굳이 단솔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아니...... 나는 걱정돼서 그렇지. 알파 여럿이 오메가 한 명한테 목을 매고 있으니까.......”
말을 끝맺지는 않았지만, 그 말의 의미는 알 수 있었다.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태오가 잔뜩 화가 나 민성에게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알겠는데, 그 말을 왜 단솔 씨를 그렇게 보면서 하냐고요.”
다른 때라면 또 헛소리하는구나, 하고 넘어갔겠지만, 지금의 발언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뭘? 요즘엔 후배가 선배 눈빛도 지적하나?"
“하...... 지금 단솔 씨 보고......!”
“태오 씨, 그만해요......!"
민성의 눈빛과 발언이 기분 나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저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 봐야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이다.
단솔과 이연이 태오를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는지 한 대 치기라도 할 것처럼 민성에게 다가가 그와 가까워졌을 때였다.
"그만."
대수가 두 사람 사이에 서자, 꼭 장벽이 쳐진 것처럼 시야가 가려졌다.
“적당히 하고 먼저 사과하시죠."
“하, 내가 왜 사과를 해. 너도 봤잖아 새파랗게 어린놈이 나한테 눈빛이 어쩌고. 윽!"
대수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민성을 달래는 척 어깨를 잡자, 민성이 얻어맞기라도 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대수의 손등에 올라온 핏줄로, 그가 얼마나 민성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잡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 연예인 병에는 물리치료가 제격이다. 그때, 사람들의 눈에 멀리서 다가오는 통통배 한 척이 보였다.
배의 앞머리에는 B 팀 PD가 스케치북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내용을 보지 못했다면, 언뜻 로맨틱한 장면으로 착각할 법한 모습이었다.
-여러분 잘 지내고 계셨나요? 벌써 3시 미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