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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64화 (64/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64화

    “태오 씨......? 아니! 왜 불도 안 켜고 그러고 있어요!"

    “배고파아 흐엉.......”

    “네?"

    태오는 입안에 가득 들어 있는 음식물을 겨우 다 삼키고는 다시 대답했다.

    "배고파서요......"

    단솔이 들은 쇠를 긁는 듯한 소리는 태오가 비빔밥을 먹을 때 숟가락과 식기가 부딪쳐 난 소리였다.

    “새 앨범 준비해야 한다고...... 다이어트를 너무 심하게 시켜서 여기 숨어 있었어요."

    “아.......”

    “근데...... 단솔 씨는 왜 집에 안 갔어요?"

    “어...... 그냥요. 저도 비슷한 이유예요. 근데 태오 씨 매니저가 태오 씨 찾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럴까 봐 전화 꺼 놨어요. 아마 어디 클럽 같은 데 간 줄 알고 찾아다니고 있을걸요?"

    밥솥 한 통을 다 먹은 건지, 태오가 지나간 자리에는 빈 밥솥과 흔적만 남은 재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재료도 없었을 텐데.......”

    “계란, 고추장, 밥이면 돼요. 단솔 씨 있는 줄 알았으면 같이 먹을걸."

    “아니요. 아직 배가 안 고파서...... 이따가 라면 끓여 먹을게요."

    그렇게 먹고도 아쉬운 듯, 태오가 주방 찬장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단솔 씨는 좋겠다."

    "네? 제가 왜요?"

    “살 안 찌잖아요. 갑자기 무슨 발라드를 타이틀 곡으로 한다

    고...... 내 덩치가 너무 커서 발라드에 안 어울린대요."

    “아...... 그래도 저는 태오 씨가 더 부러운데. 앨범 꾸준히 내잖아요...... 저희는 아직도 정규앨범도 한 장 없는걸요."

    "하하, 우리 이러니까 불행 배틀하는 것 같다. 아 먹고살기 힘드네요, 참."

    “그러게요...... 나도 정산받고 싶다.”

    태오가 찬장에서 라면을 발견하곤, 냄비에 물을 받았다. 그러다 뒤에서 들려온 단솔의 말을 듣고 너무 놀라 하마터면 물을 죄다 쏟을 뻔했다.

    “헤엑! 아직 정산도 못 받았어요? 그래도 단솔 씨는 드라마도 찍고 하지 않았나......?”

    “아직 멀었어요. 저희는 무조건 전체 분배거든요...... 수입 없는 멤버가 많아서. 저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턱도 없어요. 그래도 요즘엔 멤버들이 행사도 다니고 해서...... 나아지겠죠."

    “와...... 그런 회사가 진짜 있긴 있구나...... 소송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계란 넣어요?"

    “소송도 돈이 있어야 하죠......."

    계란 한 바구니를 다 넣을 기세로 들고 물어보는 태오에 단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태오의 얼굴이 왠지 시무룩하게 물들자, 단솔은 재빨리 대답했다.

    “그럼...... 하나만."

    "오케이!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턴 진짜 운동한다!"

    계란 하나에 저렇게 행복해하다니. 향긋한 라면 냄새를 맡으며 고개를 끄덕인 단솔이 식탁 위에 엎드렸다. 아직 끓지도 않은 물에 수프를 넣고 숟가락으로 한참을 휘젓던 태오가 슬며시 단솔에게 물었다.

    “근데요, 단솔 씨....... 왜 안 물어봐요? 제가 지수형 떨어트린 거 말이에요."

    "...... 알고 있어요. 형이 알파라는 거."

    쨍그랑.

    단솔의 말에 태오가 들고 있던 숟가락과 냄비 뚜껑을 떨어트렸다.

    “어...... 어떻게요?! 나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저도 우연히 들었어요, 지수 형이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거."

    괜한 오해를 살까 봐 단솔은 대수의 집에서 들었다는 사실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 진짜 세상에 비밀은 없구나. 근데 나 좀 걱정돼요. 지수 형 인기 많잖아요. 형 떨어트렸다고 국민 욕받이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에이...... 그럴 리가 있어요?"

    국민 욕받이는 아무나 하나. 저처럼 실드 쳐 줄 팬들이 없어야지.

    태오 같은 정상급 아이돌은 아무리 욕먹을 짓을 해도, 그들을 욕하는 악플러보다 훨씬 더 많은 팬이 있기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지이잉.

    그사이, 단솔이 주방으로 가져와 마저 충전해 둔 핸드폰이 켜졌는지 진동음이 들렸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어?"

    드디어 오래된 핸드폰이 고장이라도 난 건가. 연속해서 울리는 진동음에 단솔이 발길을 옮겼다.

    귀염둥이 민재♥

    형아 이거 진짜야? 지수 형님 내 최

    애인데.. 제발 아니라고 해 주라!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다음주 탈락자 스포.

    내 사돈의 팔촌의 언니의 동생이 알오매치 스탭인데 다음주 탈락자 한지수임.

    마태오가 탈락자 선정권 8장으로 한방에 보내버렸다고 함. 스태프 말로는 마태오가 주단솔한테 들이대기전에 한지수한테 껄떡대다가 차였는데 그거 보복이라는 썰있음 미친거 아니냐 아이돌 주제에 대배우한테 대시하는 것도 웃기고, 지가 뭔데 떨어트림

    ⤷...한지수 없으면 무슨 재미로 봐? 방송 원데이 투데이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감정 때문에 프로그램 망쳐도 돼? 망태오 진짜 개 망돌새끼 아니랄까봐 후

    ⤷과몰입 금지 ㅋㅋ 언제부터 제우스가 망돌임?

    ⤷한지수 필모에 비하면 망돌이지 한지수는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배우인데 제우스 외국나가면 다들 알긴 함?

    ⤷혹시 댓글들 다 다른우주에 사나? 제우스 해외에서도 인기 개많다.... 배우팬덤 아이돌개무시하는거 하루이틀 아니라 익숙한데ㅋㅋ 그래도 진짜ㅠ 자기 객관화 안되는 듯 뭔 아이돌주제에 대시를 하네마네.. 예능은 걍 예능으로 봐

    ⤷팩트는 마태오가 똥싸질러서 지금 알오매치 프로그램 자체가 흔들린다는 거임

    ⤷이건 맞는 듯 아 민성지수 아니면 대수지수

    혐관 팠는데 내 주식 다날아감.

    국민 욕받이...... 누구나 될 수 있구나. 단솔은 속으로 앞서 했던 말을 취소했다. 인기가 절정을 찍고 있는 아이돌인 태오도 악플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듯했다.

    “단솔 씨! 라면 다 됐어요!"

    단솔은 태오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포털에 달린 수많은 악플을 읽고 있었다. 민재가 보내 준 게시글뿐만 아니라 다른 글에서도 이미 지수의 탈락은 기정사실화되었고, 그 이유에 대한 억측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왜요? 무슨 중요한 연락 왔어요?"

    단솔은 어느새 제 등 뒤로 다가온 태오에 화들짝 놀라 핸드폰 화면을 가렸다.

    “아......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단솔이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는 동안에도 멤버들이며 친구들이며 정말 지수가 탈락한 게 맞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메시지에 계속 진동이 울렸다.

    “무슨 연락이 그렇게 많이 와요?"

    “아...... 그게 아니라.......”

    태오는 지나치게 우물쭈물하는 단솔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였다. 단솔은 꼭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태오가 다가올 때마다 한 발짝씩 걸음을 뒤로 물렸다.

    "혹시...... 단솔 씨......."

    혹시 아까 등 뒤로 다가오면서 핸드폰 화면 속 내용을 본 걸까. 태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단솔은 이런 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저...... 태오 씨...... 그게......."

    "단솔 씨도 그거 하는구나."

    "네?"

    "고독한 주단솔 방."

    "어......."

    "창피해할 거 없어요. 사실 나도 몇 번 들어가 봤거든요. 저번엔 들어가자마자 인사해서 강퇴당했어요. 참나...... 근데 그거 알림 꺼놔야 해요. 시도 때도 울려서 배터리 금방 닳아요."

    "아...... 네......!"

    "라면 불겠다. 어서 먹으러 가요."

    ***

    태오의 매니저는 태오가 촬영도 없는 지금 춘몽도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는지, 이튼날까지도 섬은 조용했다.

    뒤늦게 태오를 찾은 매니저가 춘몽각에 도착하긴 했지만, 그가 태오를 드잡이하기 전에 다행히 촬영이 예정보다 일찍 시작되면서 태오의 일탈은 조용히 끝날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단솔이 태오를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핸드폰을 꺼놓고,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저들끼리 떠드는 이야기를 보지 않는것밖에는 없었다.

    어쩌면 회귀 전 겪은 몇 년 동안의 시간을 생각하였을 때, 제가 가장 익숙하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촬영이 시작되는 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연예계의 비밀을 파헤치는 곡괭이 TV의 최삽질입니다! 오늘은 세간의 화제죠.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의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춘몽도에 왔는데요. 다들 이 글 때문에 난리였을 거예요......! 알오매치 서바이벌의 인기 출연자 한지수......! 아!잠깐만요 지금 저기 메인 PD인 최미진 PD가 오는 것 같은데요!PD님! 잠깐만요!"

    "야! 이 새끼들아! 현장 통제 안 해? 아! 나가요, 나가!"

    "앗! 잠시만요! 저는 연예계의 비밀을 파헤치는 연예계 연구소 차차인데요......!"

    “가장 발 빠른 연예계 소식을 전합니다. 까빠 저장소......."

    “저희 촬영 팀 장비 꺼내야 해요! 차 빼세요!”

    “아, 밀지 마요!”

    새벽부터 조금씩 모인 유튜버들이 어느새 새까맣게 진을 치고 있었다. 그중에는 연예부 기자 출신들까지 있었다.

    태오와 지수를 포함한 출연진들이 사석에서 만났던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태오가 지수에게 차인 것에 대한 보복으로 탈락시켰다는 찌라시가 기정사실화되어 일이 커졌다.

    당시 두 사람의 자리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유튜버들은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사진을 잘라 자극적인 섬네일을 만들어 이런저런 가설을 사실인 양 떠들어 대기도 했다.

    단순히 출연진의 불화가 아닌, 태오와 지수 사이에 예능 프로그램 그 이상의 진심이 담긴 감정이 오갔다는 것을 내포하는 찌라시인지라, 톱스타의 열애설과도 다름없는 상황이 화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유튜버들은 그에서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춘몽도까지 들이닥쳤다.

    인터넷에서 떠드는 말들이야 안 듣고, 안 보면 그만이지만, 이렇게 직접 찾아와 들으라는 듯이 진을 쳐 버리면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섬의 주인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하며 외부인을 막을 권한이 있을지 확인하려 했지만, 사전 답사 때부터 섬에 무관심하고 이 섬을 방치하다시피 하더니 촬영 팀도 방치할 줄은 몰랐다.

    그에 촬영 팀은 절망스러워하며 바다에 대고 섬 주인의 이름과 욕지거리를 외치고 싶어 했다.

    “......나 이러다 진짜 망하는 건가.......”

    매니저가 찾아왔을 때부터 일이 제 생각보다 커진 것 같다고 대충 짐작만 했던 태오는 어느새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저...... 아직 바깥이 시끄러워서요. 오늘은 그냥 실내 촬영만 진행하신대요. 최 PD님이 되도록 커튼 열지 말고 계시라고......."

    "어......네......."

    태오의 말에 거실 커튼을 열어 바깥 상황을 확인하려던 단솔을 조연출이 제지했다. 소란스러운 인파를 뚫고 들어온 것인지, 머리가 산발이 된 두현이 캐리어를 끌고 들어왔다.

    “아이 시발, 저 미친 새끼들 진짜. 아침부터 숍 갔다 온 보람이 하나도 없네."

    “......안녕하세요."

    이전부터 딱히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눈이 마주친 단솔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떻게 왔네?"

    하지만 두현은 단솔의 인사는 무시한 채 단솔의 뒤편 소파에 앉아있는 태오에게 먼저 이죽거렸다.

    "네?"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요즘 아이돌들이 내 생각보다 더 깡다구가 좋아."

    그렇게 말을 하는 두현의 시선이 단솔을 위아래로 훑고 지나갔다.

    노골적인 적의를 느낀 태오는지지 않고 대꾸했다.

    “제가 도망가야 할 이유 있어요? 형은 촬영이 꽤 피곤하신가 봐요. 아유...... 다크서클이...... 제가 이번 주도 열심히 해서 형도 집에 보내드려야겠네."

    태오의 말에 두현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꼭 도망가야 할 이유가 있어야만 도망가는 게 아니야. 그래야만 할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거지. 한번 두고 볼게...... 어디까지 버티나.”

    "......"

    그의 말이 맞았다. 사람은 꼭 도망가야 할 이유가 있어서 도망가는 게 아니었다.

    만약 지수가 알파가 아니고, 태오가 그저 본인의 의지로 지수를 떨어트린 거였다고 하더라도 프로그램의 룰을 어긴 게 아니니 도망갈 이유는 없었지만, 이미 여론은 태오를 죄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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