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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61화 (61/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61화

“내가 가도 되는데, 미안."

대수를 따라와 도착한 곳은 지수가 사는 곳과 같은 아파트였다.

이런 고급 펜트하우스에 오는 일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2주 만에 다시 오다니. 역시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나 보다.

“괜찮아요...... 택시 타고 와서 별로 안 멀었어요."

단솔은 대수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멤버들만으로도 좁아터질 것 같은 지하 숙소에 그 현관문보다 큰 대수를 부르는 건 어쩐지 제가 더 불편했다.

그렇다고 동네에 있는 다른 식당이나 카페에서 대수를 만나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이미 치킨집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이후로 단솔은 집 앞 편의점을 갈 때도 단단히 주의해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드...... 들어와.”

춘몽각에서 함께 지낸 지도 꽤 되었는데, 대수는 자신의 집에서 보는 단솔은 또 낯선 듯 짧은 뒷머리만 연신 쓸어내렸다.

어딘지 모르게 휑한 모델 하우스 같았던 지수의 집과는 다르게 대수의 집은 아기자기한 갤러리 같았다.

"우와......."

벽면을 한가득 차지하고 있는 모듈 선반에는 프라모델과 피규어들이 먼지 한 톨 없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내가...... 좀 잡동사니 같은 거 모으는 걸 좋아해서, 지저분하지?"

“아니요...... 엄청 멋있어요."

“어...... 그...... 차 줄게. 조금만 앉아서 기다릴래?"

"집 구경하고 있어도 돼요?"

“어...... 어......! 물론이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는 단솔에게 여전히 어색하게 삐거덕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대수가 주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외쳤다.

“저기! 서재 방은 들어가지 마!"

“아...... 서...... 서재 방이 어딘데요?"

“복도 끝 방......."

단솔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대수는 안심한 듯 주방으로 들어갔다. 기실, 단솔은 태연하게 집구경이나 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냥 뻘쭘하게 앉아 있는 게 싫었을 뿐.

지금 제 상태가 이런데도 홀린 듯이 액자에 걸린 사진이나, 그림, 조각상에 시선이 집중되는 걸 보면 대수의 감각이 꽤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토독토독.

단솔이 복도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조그마한 발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것이라기엔 작고, 먼지라기엔 그보다 무거운 발소리.

"왕!"

발치에 갑자기 나타나 단솔의 양말을 앙앙 물기 시작한 것은 작은 강아지였다.

“우와...... 너 진짜 귀엽다. 안녕?"

강아지는 단솔을 보며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어디론가 걸어갔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강아지는 마치 저를 따라오라는 듯 단솔을 향해 뒤돌아보며 왕왕 짖어 댔다. 강아지가 향하는 방향은 대수가 들어가지 말라고 강조한 복도 끝방이었다.

"어어...... 거기로 가면 안 돼!"

반쯤 열린 문으로 강아지가 쏙 사라지고 나자, 단솔은 마음이 급해졌다. 뭘 모으는 게 취미랬으니까 서재인 이곳에는 아마 그의 명성에 맞는 비싼 책이 가득할지도 몰랐다.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강아지가 대소변 훈련이 안 되어 있다면, 그래서 서재 방에 있는 비싸고 귀한 걸 물어뜯거나 소변이라도 본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어쩌지...... 서, 선배님...... 얼른 들어가서 강아지만 데리고 나올게요오......."

단솔은 제 작은 목소리가 주방까지 들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양심상 집주인에게 먼저 양해를 구한 뒤 문을 열었다.

“이...... 이게 다 뭐야?"

읽기도 어려운 오래된 서적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을 거라는 단솔의 생각과는 달리, 대수의 서재를 한가득 채워 놓은 것은 단솔의 굿즈들이었다.

회사에서 야심 차게 내놓았다가 다이노소울처럼 보기 좋게 실패해 아직도 소속사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다이노 소울 에코백부터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포토 카드와 브로마이드, 그립톡, 머그잔, 후드티, 타투 스티커....... 그리고 단솔조차도 처음 보는 비공식 굿즈까지.

그야말로 주단솔 박물관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내 꿈은 언제나 너였어...... 주단솔?!"

방안에 주렁주렁 걸린 민망한 멘트가 인쇄된 슬로건을 읽어 내려가던 단솔은 뒤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기운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 들어가지 말라니까......."

***

“정말 우연히 구한 거야.......”

거실에 앉은 단솔의 앞에는 산더미처럼 디저트들이 쌓여 있었다.

유명 빵집이라도 털어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마카롱 탑부터 시작해 이어진 에끌레어 무덤에 질린 단솔은 커피만 홀짝홀짝 들이켤 뿐이었다.

“네......."

“진짜야, 우연히 누가 줬어. 네 얼굴이 있어서 그냥 버리기는 힘드니까 그래서 보관해 둔 거야. 혹시 원한다면 가져가도 좋아."

"알겠어요. 근데 저거 우리 회사 창고에도 쌓여 있는데......."

"어디? 거기가 어딘데? 당장 대표한테 전화해 내가 산다고 해. 플미 양도도 상관없.......”

희귀 아이템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갈 지갑이 준비되어 있는 덕후처럼 곧장 핸드폰과 겉옷을 들고 반쯤 몸을 일으킨 대수가 아차 싶은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우연이...... 아닌가 보네요."

"하......."

대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제 인생에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또 있었을까.

"저...... 미안."

“괜찮아요, 죄송하실 게 뭐가 있어요. 제가 고마워해야죠. 저희인기 없어서 굿즈도 별로 없는데...... 저렇게 많이 모인 건 처음 봐요, 저도."

회귀 전에도 대표는 단솔의 알오매치 서바이벌 출연이 확정되자마자 안 그래도 쌓여 있는 재고도 처리하지 못한 주제에 더 많은 종류의 굿즈 사업에 열을 올렸다.

야심 차게 다이노 소울의 떡상을 기대하며 제작한 굿즈는 종류만 수십종이었지만, 단솔이 국민 밉상이 되는 바람에 버려지지도, 누군가에게 구매되지도 못하고 늘 창고 한편에 먼지와 함께 쌓여 있었다.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한데, 그런 걸 무슨 대단한 미술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시를 해 놓은 그의 서재 방을 본 단솔은 꽤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오늘 저를 왜 보자고 하신 거예요?"

쑥스러움에 입술만 깨물던 대수가 다시 돌처럼 굳었다. 사실 단솔을 집에 초대한 이유 따위는 없었다.

지수의 집에는 가 본 적 있는 단솔이 제집에는 와 보지 못했다는게 아쉽고, 질투 났던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제우스와 공연이 있었던 날도 미리 잡아 둔 스케줄 때문에 단솔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지수만 남겨 둔 채 떠나야해 어찌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모른다. 대수는 큰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그냥......."

무어라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 머뭇거리는 대수의 모습에 당황한 것은 단솔도 마찬가지였다. 대수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기도 했고, 제아무리 연애 쪽으론 회귀 전후를 다 합쳐 제대로 된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단솔이라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이건 분명...... 고백의 타이밍이었다.

혼자 있는 게 아무리 싫다고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대수의 집까지 오는 게 아니었는데, 춘몽각에서 같이 지내다 보니 이런 쪽으로 감각이 무뎌진 것이 문제였다.

"선배님, 사실 저는...... 아직 준비가......."

“밥 먹이려고."

“네?"

"밥 먹어."

제 생각엔 분명 고백 타이밍이었는데, 혹시 제가 착각이라도 한걸까.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던 단속이 빨개진 얼굴을 숨기려 손을씻는다는 핑계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본 대수가 주방으로 향하면서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안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한숨이었다.

***

손을 씻고 식탁으로 온 단솔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이 먹을 양은 아니라서 혹시 저 몰래 다른 손님이 또 찾아왔나 하는 나름 그럴싸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저기 선배...... 이거 저희 둘이 먹는 거 맞죠?"

"응, 시간이 늦어서 간단하게 했는데 왜? 모자라?"

그럴 리가. 한창 자랄 때라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멤버들을 다 데려와 앉혀 놓고 먹는다고 해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도대체 지수나 대수나 단솔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볼 때마다 뭘 못 먹여서 안달이었다.

“아니요! 절대 안 모자라요! 선배......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지수 형도 그렇고...... 선배님도....... 왜 저만 보면 자꾸 이렇게 뭘 먹이시는지.......”

대수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는지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 와중에도 손은 착실하게 간장 새우를 까서 단솔의 앞접시에 올려 두며 열심히 기쁜 노동을 하고 있었다.

“글쎄, 옛날 생각나나 봐. 널 보면 신인 때 고생했던 날이 생각이나."

.선배도 그런 시절이 있어요?"

물론 대수는 남들보다 무명이 짧긴 했다. 작품을 고르는 운도 좋았고, 실력부터 외모까지 다 갖춰진 상태였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고생을 아예 안 한 건 아니었다.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고생을 안 한 건 아니야. 처음 한국 들어와서 자리 잡는 데 시간이 좀 걸렸거든. 아무리 부모님 반대가 없었다고 해도, 갑자기 배우 하겠다고 제멋대로 와서 손 벌릴 수는 없었으니까."

처음 대수가 이름을 알린 영화는 촬영 기간이 거의 1년이 넘게 걸렸었다. 촬영을 하는 날보다 묵묵히 대기하는 날이 더 많으니 수입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다른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대수도 대수지만, 모델로 먼저 데뷔한 지수는 아마 더하면 더했지, 고생이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못 자고, 못 씻고, 못 먹고. 아무것도 못 하고 기다리는 게 우리 일이니까. 근데 다른 건 젊은 패기로 참겠는데. 못 먹는 건 좀...... 더 고생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미식축구까지 할 정도로 체력이 좋은 저도 힘들었던 무명 생활을, 단솔은 어떻게 몇 년이나 버틴 걸까.

아무리 아이돌이라지만, 살집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단솔의 몸을 보면 먹은 게 다 어디로 도망이라도 가나 싶은 대수였다.

“다른 데서 보니까 아이돌들은 굶으면서 다이어트 한다던데 너도 그런 거야?"

“아니요...... 저 많이 먹어요! 그냥 체질이 그런 거예요. 다른 멤버들은 다이어트 한다고 안 먹기도 하는데....... 그래서 저를 다 부러워해요."

“그건 다행이네. 어서 먹어.”

대수가 직접 한 요리들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 단솔이 살면서 먹은 음식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둘이 먹기에는 양이 많다고했던 게 무색하게 정신없이 접시를 비우고 있던 그때, 대수의 집 도어록이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띠띠띠...... 띠.

누군가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번호가 틀린 듯 이내 경고음이 들려왔다.

“치사하게 비밀번호를 바꿔?! 야! 정대수!"

쾅쾅쾅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는 사람의 목소리는 단솔에게도 충분히 익숙했다.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지수 형 목소리 아니에요?"

어떻게 만든 둘만의 시간인데 갑자기 등장한 불청객에 대수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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