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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60화 (60/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60화

    경험이 많은 DJ 덕분에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하기는 했지만, 방송 내내 긴장해 있었던 탓에 온몸이 땀으로 가득했다. 단솔은 절인 배추 같은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숙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통원 치료가 가능해 이미 다들 퇴원했지만, 큰 사고를 겪은 뒤라 그런지 대부분 본가에서 며칠 쉬다가 돌아오겠다는 연락을 받은 뒤였다.

    그리고 멤버들과 달리 돌아갈 곳이 없는 단솔은 오랜만에 느끼는 적막이 어색하기만 했다. 늘 멤버들로 가득 차 있던 방에 혼자 남으니 왠지 모르게 반지하 방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회귀 전처럼 악마의 편집으로 인해 불화가 일어난 건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이 생겨 멤버들과 자꾸만 부딪히는 요즘, 단솔은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퍽 자주 했었다. 아마 알오매치 서바이벌에서 24시간 내내 카메라를 의식하느라 지쳤던 이유도 클 것이다.

    그런데 막상 혼자 남겨지니 속이 후련하기는커녕 괜히 더 쓸쓸한 이유는 뭘까.

    단솔은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 두고 신발도 채 벗지 못한 채 현관 앞에 무기력하게 누워 버렸다.

    불을 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애꿎은 핸드폰 화면만 껐다 켜기를 반복하던 단솔은 뭐에 홀린 사람처럼 알오매치 서바이벌 1화를 틀었다.

    "윽...."

    무반주에 춤을 추는 자신의 모습이 나왔을 때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전보다는 편집을 꽤 잘해 주셨네......?"

    상황이 회귀 전과 조금은 다르게 흐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전과는 달리 편집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된 걸 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굴러다니는 두루마리 휴지를 머리에 베고 누운 단솔이 이제 아예 자리를 잡고 홀린 듯이 제 모습을 보고 있을 때였다.

    지이잉

    갑자기 울리는 진동에 놀란 단솔이 콧잔등 위로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아욱!”

    그 탓에 통화 버튼이 눌린 건지, 핸드폰에선 연신 단솔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단솔아! 주단솔! 얘가 왜 대답이 없지......?

    단솔은 익숙하고도 낯선 목소리에 아픈 콧잔등을 비비며 그제야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엄마?"

    -어! 이제 들리네, 뭐 하고 있었어?

    “어...... 그냥 있었어요."

    당장 어제도 전화를 했던 사람처럼 자연스레 묻는 말에 단솔은 어색한 대답을 했다. 지난겨울 크리스마스에 한 통화가 마지막이었으니, 9개월 만에 들어 보는 엄마 목소리였다.

    ―어...... 촬영은?

    “지금 쉬는 날이라서요......."

    ―저...... 몸은 괜찮아? 뉴스 봤어. 멤버들이 많이 다쳤다며

    “아...... 네 괜찮아요, 전."

    -그래 다행이다. 방송 잘 보고 있어 미리 말 좀 해 주지. 놀랐어.

    “아, 별로 안 좋아하시잖아요. 예능 같은 거......."

    ―애들이 보길래 봤어. 재밌더라.

    단솔의 엄마는 늘 단솔의 이복동생들을 동생이 아닌 ‘애들’이라 칭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단솔은 그 아이들과 자신의 거리를 떠올렸다. 아직중학생밖에 되지 않은 이복동생들은 단솔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단솔은 먼저 엄마에게 전화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철없을 땐 다른 멤버들처럼 불쑥불쑥 전활 걸기도 했지만, 난처한 엄마의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들이...... 그 프로 참 좋아해.

    “아...... 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회귀 전,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땐, 엄마는 정적 끝에 쥐어짜 내듯 몸 건강히 지내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

    그나마 그건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아예 번호를 바꿔 버렸으니까.

    그들과의 연을 어렴풋하게나마 연결해 주던 전화에서 단조로운 기계음이 들려왔을 때 느낀 좌절감이 또다시 밀려들기 시작했다.

    전 국민의 밉상으로 낙인찍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부모님의 괜찮다는 한마디가 너무도 간절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단솔은 피해야 할 오점이자, 실패한 과거의 흔적이었다.

    전 국민이 싫어하는 연예인 1위로 꼽힌 아들을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부탁 하나만 할 수 있을까?

    “무슨 부탁이요......?"

    ―저기...... 사인 좀 받아 줄 수 있을까 해서. 네 사인도. 애들 이름으로.......

    단솔의 눈에 소리 없이 눈물이 고였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이 또한 가늠이 되질 않았다. 단솔은 우는 목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눈물은 더 빠르게 차올랐다.

    “......제가 사람들이랑 많이 안 친해서요. 죄송해요."

    ―저기 단솔아.

    뚝.

    볼썽사납게 물기 어린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았던 단솔은 그냥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늘 엄마의 애정에 목말랐던 어린 단솔은 늘 그녀가 전화를 먼저 끊고 난 이후에도 한참이나 수화기를 들고 있곤 했었다.

    “진짜...... 최악이네.”

    마음대로 전화를 끊어 버릴 땐 언제고 또 금세 단솔은 후회했다.

    멤버들과 오해를 푼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 기분이었다. 그깟 사인이 뭐라고, 그냥 해 준다고 할걸.

    거의1년 만에 받은 전화를 그따위로 받다니. 내가 엄마라도 모르는 척하고 싶은 아들이겠지.

    지이잉.

    그때였다. 마음대로 끊어 버린 전화가 다시 울렸다. 당연히 엄마일 거라고 생각한 단솔은 누가 전활 걸었는지 화면을 보지도 않고 버튼을 눌렀다.

    “......아까는 그냥 끊어서 죄송해요. 멤버들이 갑자기 들어와서, 별로 친하지는 않은데...... 친해진 사람들도 있긴 해요. 다는 안 되고 몇 명만이라도 받아서 보내드릴게요."

    -......무슨 사인. 혹시...... 다단계 같은 거 하나?

    “선배님?!"

    익숙한 저음의 목소리에 단솔이 벌떡 일어났다. 언제 저장해 둔건지 기억도 안 나는데 화면에는 버젓이 ‘정대수 선배님’도 아니고 '정대수'가 떠 있었다.

    “어...... 제...... 번호는 어떻게......."

    ―그때, 한지수 집에서 술 취했을 때. 기억 안 나?

    "어...... 네...... 나죠."

    -안 나나 보네, 됐고, 사인이라니 이상한 계약서 같은 데 서명하고 그런 거 아냐?

    소속사와 노예 계약을 한 이후니까 이미 이상한 계약서에는 서명한 지 오래였다. 단솔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대수에게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늘어놓았다.

    “어...... 엄마가 사인 받아 달라고 하셔서요. 프로그램 같이하는 사람들이요. 근데 안 된다고 하고 제 마음대로 전화 끊어 버려서 엄마가 다시 거신 줄 알았어요. 죄송합니다.”

    ―그래......? 친해진 사람들도 있다는 게 그 뜻이었군. 혹시.......

    "혹시......?"

    ―......나도 거기 포함되나?

    "네?"

    ―......친해진 사람들 말이야.

    “그게......."

    대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친하다는 정의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대수는 두현이나 민성보다야 친했지만, 태오나 민혁, 지수처럼 마냥 편한 사이는 아니었다.

    "혹시...... 사인해 주실 건가요?!"

    -어.

    “그럼 친한 거 같아요."

    ―잘됐네. 좀 만날 수 있나? 친한 사람끼리.

    * * *

    지수와 태오는 오렌지 주스를 사이에 두고 어색한 대치 상황에 빠졌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태오였다.

    “큽...... 형. 그렇게 빤히 바라보지 말고 뭐라도 말 좀 해봐요.”

    “태오야.”

    진지한 목소리에 태오가 흠칫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혹시 고백이 라도 하려는 걸까.

    “네?!"

    “네가 날 좀 떨어트려 줘야겠다.”

    “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형."

    “말 그대로야. 네가 날 떨어트려 줘. 너 투표권 8장 있잖아."

    “아이...... 그래도 그건 아니죠!"

    태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해외 일정이라도 잡힌 걸까. 자연스레 하차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사실상 이번 프로그램에서 가장 비중이 크고 인기 있는 사람은 단연 지수와 단솔이었다. 그런 사람을 떨어트리면 그 후폭풍을 저더러 어떻게 감당하라고.

    “돈 줄게."

    “아...... 형! 저도 돈 벌어요! 그것도 많이!”

    이쪽으로는 태오가 아쉬울 게 없다는 게 이렇게 절망적일 수가.

    뜻밖의 장애물을 만난 지수가 식탁에 팔꿈치를 기대고는 머리를 쥐어뜯자 태오가 물었다.

    “아니, 이유가 뭔데요? 형, 이 프로그램 꽤 재밌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이유는 알 거 없고!"

    "이유를 알아야 제가 들어주든 말든 하죠. 형 혹시 해외에 촬영가야 해요? 막 대작...... 이런 거 제의받은 거예요? 설마 할리우드......?"

    “하......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면 잘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왜 그만두려는 건데요. 형한테만 말하는 거지만, 전 이번에 민성이 형 뽑을 거예요. 그 형 요즘 하는 꼬락서니 보면, 팬들도 다 이해해 줄 거예요."

    “하민성은 되고 나는 왜 안 되는 건데!"

    “아니......!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요! 나 갈래요! 어차피 형이 무슨 이유를 대도 난 안 들어줄 거예요."

    뫼비우스의띠 같은 실랑이가 계속 이어지자, 남은 주스를 다 들이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는 태오를 붙잡은 지수가 말했다.

    "나 알파야."

    주륵.

    태오는 아직 삼키지 않은 주스를 그대로 다 뱉었다.

    “아이 시발 더럽게! 흘린 거 아니야?"

    “형......! 지금 주스 흘린 게 중요해요?! 오메가가 알파가 됐는데?! 어...... 어쩌다 그런 거예요. 형 어디 아파요? 어떻게 형질이 바뀌지...... 저 그런 건 처음 봐요."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바뀐 게 아니라....... 하, 난 원래 알파였어. 예전에도 알파였고, 지금도 알파야 됐니?"

    “......에? 그럼...... 속인 거예요?"

    "사정이 있었어. 아니...... 속인 거야. 맞아, 그래서 떠나려고."

    “아니......! 이게 프로그램만 하차한다고 될 일이."

    “은퇴할 거야. 그러니까 네가 좀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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