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59화
“안녕하세요, 청취자 여러분. 박소울과 함께하는 음악 산보입니다. 오늘은, 정말 핫한 청년이죠. 저는 지금 제 앞에 누가 인형을 가져다 놓은 건가, 순간 착각했어요. 너무 잘생겼어요. 오늘의 게스트는 다이노소울의 주단솔 씨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다이노소울의 주단솔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단솔 씨, 우선 청취자분들이 걱정하실 것 같아서 이걸 먼저 물어볼게요. 다이노소울이 얼마 전에 크게 사고가 났다고 들었는데 다들 괜찮은지 너무 궁금해하세요."
“아...... 네! 다들 괜찮아요. 아주 많이 다친 건 아니고 그냥...... 뼈가 좀 부러지고...... 깁스한 정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정도면 많이 다친 거 아닌가요?"
“아! 그러네요......! 죄...... 죄송합니다!"
아시안 게임 개막식 공연이 생각보다 더 화제가 됐다. 한창 인기있는 연애 예능에 출연한 두 사람이 페어 안무를 했기 때문도 있었지만, 다들 귀여운 이미지로 생각했던 단솔이 섹시한 콘셉트의 구미호를 맡은 것뿐만 아니라, 예상했던 것보다 잘 해냈던 게 신의 한수였다.
덕분에 단솔은 보이는 라디오며, 언론사 인터뷰며, 다시 섬에 들어가기 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멤버들 병간호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대표에게 다시는 멤버들을 개인적인 행사에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아 낸 대가로 단솔은 하루에 2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스케줄을 소화 중이었다.
“푸흡......!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우리 단솔 씨가 너무 당황을 했나 봐요. 그...... 사고가 되게 크게 났어요. 역주행 차량이랑 우리 다이노소울 멤버들이 타고 있던 차랑 박은 건데, 사고의 규모에 비해 다행스럽게도 별로 안 다친 겁니다, 여러분.”
DJ는 피로와 긴장에 절어 버벅거리는 단솔을 대신해 상황을 매끄럽게 설명하며 정리했다. 세상이 괜히 경력직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단솔이었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우리가 역주행의 아이콘인 주단솔 씨와 함께하고 있는데요, 도로 위 역주행은 정말로 위험합니다. 절대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구요. 운전할 때는 늘 방어 운전! 아시죠? 다들 운전 조심하시구요. 그럼 노래 듣고 올게요. 헤이줄리의 뛰뛰빵빵."
안 그래도 잠을 못 자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겠는데 이런 상황에서 편집도 없이 생방송으로 나가는 라디오는 정말 쥐약이었다. 단솔은 욕을 먹을까 봐 매사에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하는 습관 때문에 계속 버벅거리거나 말문이 막히기 일쑤였다.
“단솔 씨,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뱉어도 돼요. 욕만 안 하면 되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잘하고 있어.”
“죄...... 죄송해요......."
“아우...... 뭐가 자꾸 죄송해. 봐 봐요. 청취자들도 단솔 씨 너무 귀엽고 재밌다."
노련한 DJ는 음악이 나가는 동안에도 벌벌 떨고 있는 단솔을 도닥여 주었다.
사랑에도 면허가 있었더라면
넌 1종 대형 난 장롱 면허
뒤에서 빵빵하지 마세요~
난 그래도 가슴만은 빵빵한 남자
노래가 끝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게 두려워 단솔은 크게 심호흡했다. 소리는 나가지 않지만 보이는 라디오라 음악이 나가는 중에도 저를 찍고 있는 카메라가 신경 쓰였다.
덕분에 제작진들이 준비해 준 간식을 먹으면서도 단솔은 버블티를 포크로 먹거나 빵에다 빨대를 꽂아 놓는 등 끊임없이 뚝딱거렸다.
“요즘 정말 섭외 1순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도대체 어디 있다가 나타나신 거예요! 이런 반응이 많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단솔 씨 어디 있다가 나타나신 거예요."
“네......? 저...... 저는...... 숙소에.......”
“하하, 그러면 쉬는 날에는 주로 뭘 하세요? 숙소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돌이?"
“네...... 그렇죠․ 그냥 걷는 거 좋아하고...... 친구들도 가끔 만나긴 하는데......."
"4858 님이 보내셨어요. 오빠 얼굴이 천사 같아요 혹시 고향이 천국 아니에요? 하시네요. 아! 그럼 이걸 안 물어볼 수가 없어요! 혹시 요즘 친한 사람들은 누가 있어요? 주로 휴일을 같이 보내는 친구들"
DJ는 유명 아이돌이나,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 중인 배우들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방송 내내 긴장하고 당황해 있던 단솔의 눈빛이 밝아졌다.
“음...... 김영찬이랑 최호기요......!"
“네? 아...... 제가 요즘 TV를 안 봐서...... 어떤 분들이시죠?"
하지만 도리어 당황한 것은 DJ였다. 자료 조사가 미흡했던 걸까.
“아......! 둘 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친구였는데 김영찬은 사회복지 공무원이고...... 최호기는 고깃집 사장님이에요."
회귀 전, 단솔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도 종종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연락해 단솔의 생사 확인을 해주던 친구들이었다. 워낙 친해 친구들이 회귀한 자신을 보며 의심할까 봐 회귀 후에는 일부러 연락을 거의 안 하고 있었지만 소울의 물음에 저도 모르게 두 사람의 이름을 뱉은 단솔이었다.
“크흡...... 켁......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사레가 걸렸네요. 그러니까...... 그...... 김영찬 씨랑 최호기 씨는 진짜 찐친들인 거네요?"
“아...... 네...... 근데 요즘에는 바빠서 자주 못 봤어요."
진심으로 시무룩해진 단솔의 모습에 DJ는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정말 특이한 사람이다.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고 싶어서 온갖 유명한 연예인들과 친한 척을 하고, 어그로성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걸 알면서도 오해를 살 만한 말들을 내뱉는 게 이 바닥인데.
그녀는 생각했다. 이게 계산된 행동이라면 천재고, 계산하지 않고 하는 행동이라면 타고난 연예인이다. 모두가 거꾸로 올라가는 곳에서는 오히려 유유자적 흘러가는 사람이 더 눈에 띄는 법이었다.
“아, 너무 좋으시겠다 김영찬 씨, 최호기 씨. 단솔 씨가 친구들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 요즘은 자주 못 보고 있지만 그래도 단솔 씨가 제일 친한 친구로 뽑았습니다. 바쁜 일정들이 마무리되면 우리 호기 씨가 하시는 고깃집에서 한잔하셔야겠어요."
“아...... 근데 호기네 가게에서는 잘 안 만나요. 호기 어머니가 저희를 싫어하시거든요."
“아니 왜요?! 저는 저희 아들이 단솔 씨 같은 친구 데려오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아...... 시끄럽기만 하고 돈은 안 된다고....... 옆에도 고깃집들이 많아서...... 호기가 자꾸 옆집 가서 먹자고......."
“푸하하. 이제 단솔 씨 방송 활동도 많이 하시니까 어머니가 보시면 좋아하실 거예요. 오, 방금 최호기 씨로 추정되는 분께 문자가 왔어요. '단솔아, 나 호기다. 넌 좋은 친구지만, 너 지금 삐이-소리 한다. 우리 엄마도 지금 같이 듣고 있다! 어쩌죠? 호기 씨 어머님도 듣고 계신대요."
“어...... 사실은 호기네 집으로 먹으러 가면...... 어머니가 자꾸 돈을 안 받으시려고 해서 다른 데 가는 거예요....... 엄마 제가 나중에 회 사 가지고 갈게요!"
“아니, 고깃집 하시는데 어머니가 회를 좋아하세요?”
"네."
“하하하, 단솔 씨 주변에는 정말 재미있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일단...... 노래 듣고 올게요. ‘바유의 어머니”
내가 머리 아픈 건 핸드폰 때문이 아니야
내가 허리 아픈 건 핸드폰 때문이 아니야
내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건 핸드폰 때문이 아니야
왜 엄마는 핸드폰을 미워해 핸드폰만큼 왜 나도 미워해
“요즘 노래는 원래 다 이따위인가.......”
단솔이 나오는 라디오를 보면서 지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질렀다. 애송이가 하는 그냥 지나가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집에서 쉬면서도 자꾸만 우현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도 단솔이 형은...... 계속 연예인 했으면 좋겠어요.'
주제넘는 부탁인 거 아는데...... 앞으로도 계속 단솔이 형 옆에서...... 좋은 형으로 계셔 주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형은...... 개뿔."
언제까지고 제 형질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소속사와 계약만 끝나면 그냥 다 불어 버리고 은퇴나 해야지, 하고 편하게 생각했는데 지수는 자신의 경솔함을 이제야 후회했다.
“그러게 왜 방을 같이 쓰자고 해서는.......”
정말 오메가인 척 단솔과 한방을 쓴 게 화근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한 침대까지 썼는데 제가 알파인 게 밝혀지는 날엔 가만히 있던 단솔에게까지 영향이 미칠 게 분명했다.
단솔이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동창회 행사까지 애들을 돌리는 악독한 대표와 허물어져 가는 숙소 건물, 10년도 넘은 부서진 승합차.......
지수는 단솔의 라디오 방송이 끝난 뒤 해가 지고 바깥이 어두워질 때까지 서재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제가 알량한 잔머리를 굴려 했던 행동 때문에 진정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 피해가 갈 거라고 생각하니 쉽사리 진정할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수백 번 경우의 수를 따져 보았다. 방법은 역시 그것뿐인가.
지수는 핸드폰을 들어 부재중으로 떠 있는 수십 개의 연락을 무시한 뒤 번호 하나를 눌렀다.
“여보세요. 어, 나야. 좀 만나자, 할 얘기가 있어.”
***
딩동.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지수의 집 문턱을 넘어 들어온 것은 태오였다.
“형...... 오늘은...... 하실 말씀이 뭔지 너무 궁금해서 오긴 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부름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전 이미 마음의 노선을 정했거든요."
“무슨 개소리야...... 뭐 마실래? 물 있어. 냉수, 온수, 정수."
"전 오렌지 주스요."
“하...... 기다려."
그때까지만 해도 반쯤 장난으로 왔던 태오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서서히 느꼈다. 단솔이 아니고서야 웬만해선 그 누구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는 지수가 제 음료수를 사기 위해 직접 나가다니.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나, 엉거주춤하게 일어난 그때, 밖으로 나갔던 지수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살벌하게 경고했다.
“도망가면 죽어."
“......네. 그럴 생각도 없었어요. 전혀. 다녀오십시오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