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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58화 (58/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58화

“어...... 아니요 !! 죄송합니다! 저는 다이노소울의 귀염둥이 막내 민재구요. 이 누추한 곳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을까요......?"

“형이 여기까지 데려다주셨어.”

제우스 멤버들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민재가 지수 앞에 서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단솔은 그런 민재의 얼굴에 난 생채기와 반깁스를 한 손목이 안쓰러운 듯 여기저기 만지작거리며 민재를 걱정하기에 바빴다.

기실, 단솔도 힘겨운 사회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챙기기에는 터무니없이 어리고 서툰 나이지만, 그래도 형이라고 리더 역할을 맡아 왔던지라 익숙하게 동생들을 챙겼다.

한편 지수는 아무리 솜털조차 가시지 않은 어린애라지만, 단솔의 애정 어린 손길을 받는 대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열성 알파 넷에 아직 발현도 안 한 베타 세 명...... 오메가는 우리 단솔이뿐이네!'

자신의 형질을 감추기 위해, 반평생 타인의 형질에 기민하게 반응해 왔던 지수는, 보자마자 멤버들의 형질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열성이라지만 오메가와 알파를 같은 숙소에 넣다니. 서로 다른 형질끼리 그룹을 이루는 건 종종 봤지만, 방도 몇 개 없는 좁은 숙소를 같이 쓴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숙소가 반지하에 좁네, 곰팡이 냄새가 나네, 120조 그룹이네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제 촉이 틀린 게 아닌지 소속사 사장이 어지간히 돈에 눈이 먼 사람이구나 싶었다.

"근데 우현이는 어디 갔어?"

단솔은 멤버들의 상태를 살피던 중 한 명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두리번거렸다. 워낙 멤버가 많다 보니 한두 명쯤 비어도 티가 안 나기 일쑤였지만, 늘 동생들을 먼저 챙기던 단솔은 그 자리가 우현의 자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챘다.

단솔은 한참이나 지수를 구경하다가, 이제는 지수가 가져온 과일 바구니에 관심을 돌린 민재에게 우현의 행방을 물었다.

“아...... 우현이 형은 우리보다 좀 많이 다쳐서......."

그 말에 금세 사색이 된 단솔의 얼굴을 본 민재가 다급히 변명하며 손을 가로저었다.

“아니! 그렇게 많이 다친 건 아닌데...... 자꾸 형아 공연 봐야 한다고 도망 다니다가 이제야 치료받으러 갔어."

“어디가 얼마나 다쳤는데?”

“어...... 다리 부러졌어.”

하. 단솔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별로 안 다쳤다던 말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상태가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

“근데 형아, 우리 그럼 행사랑 스케줄 잡힌 건 다 어떻게 해?"

“네가 지금 그런 걸 왜 걱정해!”

지수가 옆에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 채 단솔이 화가 나서 소리를 빽 질렀다. 민재의 눈썹이 팔자를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안 그래도 아픈 애에게 너무 심했나.

"민재야 그런 거 걱정하지 말고 쉬어. 그건...... 길성이 형이

대표님한테 잘 이야기해 본대."

가만히 누워 있던 길성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벌떡 일어났지만, 단솔은 서둘러 병실을 나갔다. 답답한 마음에 테라스로 나간 단솔의 뒤를 지수가 따랐다.

"다이노소울은 회사 방침이 그런 건가. 왜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야?"

"네?"

지수는 가만히 걱정과 안타까움, 또는 답답함이 함께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단솔은 지수의 말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리다 뒤이어 따라온 말에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입을 작게 벌렸다.

“......너도 저랬잖아. 예전에. 정대수한테 공 맞았을 때."

“아......!”

대수가 풀 파워로 던진 공에 맞아 정신을 잃었을 때였다. 저 때문에 방송을 망쳤을까 봐 우는 단솔에게 지수가 지금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화를 냈었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단솔이 푸스스 웃었다. 저 역시 민재에게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면서 지수 앞에서 지수 흉내를 낸 것 같아 단솔은 괜히 민망해졌다.

“그때는! 그래도 이렇게 심하게 다치진 않았잖아요."

“순간 속도는 차보다 정대수가 던진 공이 더 빠를걸?"

"그...... 런가요......?"

단솔은 조용히 제가 그 공을 맞고도 아직까지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형!"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목발을 짚고 내린 우현이 단솔을 불렀다. 싸우고 나서 처음 보는 꼴이 이런 꼴이라니. 우현은 민망했지만, 단솔은 언제 싸웠냐는 듯 우현을 보자마자 걱정을 늘어놓았다.

“우현아! 너 괜찮아? 치료 늦게 받는다고 고집부렸다며. 왜 그랬어! 의사 선생님이 뭐래? 괜찮대?”

"어...... 괜찮아. 형 밥은 먹었어?"

“지금 내 밥이 문제야?! 진짜 너희는......!"

“형 내가 배고파. 밥 사 줘."

우현이 잔뜩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던 단솔의 손을 잡고 말문을 막았다. 그 모습을 본 지수는 저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지수가 내뿜는 음산한 기운에 그제야 우현이 단솔에게서 시선을 옮겨 지수를 바라보았다.

“아...... 형이 여기까지 태워 주셨어."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지수는 우현의 감사 인사에 뿌듯하기는커녕 기분이 썩 그리 좋지도 않았다.

"너한테 감사 인사 들을 일은 안 한 거 같은데. 솔아, 가자. 형이 밥 사 줄게."

여유로운 척 지수도 단솔의 손목을 잡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핏덩이를 견제하는 제가 우습게 느껴졌다. 춘몽각에 있는 알파 놈들도 충분히 거슬리는데, 이런 놈들이 7명씩이나 된다니. 지수는 순간적으로 제가 모아둔 은퇴 자금으로 단솔까지 먹여 살릴 수 있을지 가늠해 보게 되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살......!"

“솔아, 돈 있어? 차에 다 두고 내려서, 어제 태오네 집에서 잤다며."

아까 차에서 품이 한참이나 큰 후드티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옷을 갈아입던 단솔을 떠올리며 지수가 물었었다.

단솔은 태오의 체취가 묻은 옷에 지수의 표정이 굳는 것도 모르고 미주알고주알 우현과 싸운 이야기부터 피시방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쫓기다 태오를 만난 이야기까지 늘어놓았었다.

“마태오?! 형 제우스 숙소에서 잤어?”

"어......? 어....…..."

“아이 씨......! 민재가 형 잘 있다길래...... 왜 그랬어! 차라리 노숙을 하지......!”

우현은 표정이 곧장 일그러져 단솔을 나무랐다. 단솔은 지수의 눈치를 보며 다급히 우현의 입을 막았다.

"야! 너는 형한테 무슨 말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화해한 지 30분도 안 돼서 다시 싸우려고 드는 둘 사이를 지수가 갈라놓으며 이 나이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할 음식으로 화제를 돌렸다.

“됐고, 밥 사 줄게, 가자."

“제가 살 거거든요?"

우현은 기분이 제법 상한 듯 앞장서 걸으며 말했지만, 병원 안에 있는 설렁탕집에 도착한 세 사람의 식사는 결국 지수가 결제했다.

“그...... 감사합니다. 지갑을 차에 두고 왔는데...... 아시다시피 저희 차가 찌그러져서...... 저희 멤버들 것까지 사 주시고.......”

"됐어, 그거 먹고 빨리 나아. 단솔이가 걱정 많이 하더라.”

단솔이 화장실에 간 사이 우현이 쭈뼛거리며 지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 뒤로도 우현은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 모습은 본 지수가 말했다.

“뭐 할 말 있어?"

"저...... 감사하다고요."

"뭐가."

“그냥 다...... 단솔이 형 챙겨 주신 거요. 사실 단솔이 형이 그 프로그램 나간다고 했을 때 걱정 많았어요. 다들 너무 유명하신 분들이라....... 근데 선배님이 잘 챙겨 주셔서...... 욕도 안 먹고 방송 분량도 잘 챙기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배님께는 진짜 감사 인사 드리고 싶었어요."

제 앞에 있는 사람이 단솔에게 욕정을 품은 알파인지, 호의를 베푸는 오메가인지도 모르는 우현은 연신 지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저희는 그냥...... 이렇게 기억에 잊힌 채 연예계 생활 끝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 같이 잘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그래도 단솔이 형은...... 계속 연예인 했으면 좋겠어요."

확실히 단솔이 멤버들 중에는 눈에 띄는 외모와 분위기를 가지긴했다. 유일한 오메가이기도 했고, 너무도 이질적인 분위기에 그들을 한 그룹으로 묶은 소속사 대표의 의도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주제넘는 부탁인 거 아는데...... 앞으로도 계속 단솔이 형 옆에서...... 좋은 형으로 계셔 주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형이라, 지수는 자신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단솔을 가둬 놓고 저만 보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있는걸.

"형! 포장 나왔대요! 우현아 올라가자."

“들어다 줄게. 너도 집에 가야지 태워 줄게."

“아......! 아니에요 형. 저는 여기서 하루 자려고요. 애들이랑 해야할 얘기도 있고......."

“그럼 포장한 것만 들어다 줄게. 가자.”

지수는 기어코 단솔의 손에 들려 있던 무거운 포장 봉투를 제 손으로 들어 주었다. 단솔에게만 한정적으로 친절을 베푸는 것쯤이야 지수에겐 익숙한 일이었지만, 우현은 제 말을 들어주는 줄 오해라도 했는지, 단솔이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지수에게 양손으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지수는 표정을 싹 굳힌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왜 저래 진짜.......”

그 꼴을 본 지수는 남몰래 한숨을 삼켰다.

상황이 점점 제 마음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단솔을 만나기 전에 모든 걸 정리할걸. 아닌가, 그랬다면 단솔을 만날 일이 없었으려나.

애초에 형질 따위를 공개하는 게 아니었는데. 다 제가 벌린 일이라 탓할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답답함에 애가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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