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57화
둥둥. 북소리와 함께 시작된 개막식 무대 뒤편에서 단솔은 초조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단솔―!"
사이드 쪽에 앉은 관객 몇 명이 대기 중인 단솔을 향해 소리 질렀다. 바뀐 동선을 외우느라 정신없던 단솔이 그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멋있다!"
성량이 엄청난 팬이었다. 제일 앞자리도 아닌데 어디에서 저를 부르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에 단솔과 눈이 마주쳤다.
지금 제가 응원을 받은 건가. 알오매치 서바이벌 출연 후 무대에서 야유나 무관심은 받아봤어도 응원을 받아 본 경험은 손에 꼽는 단솔에겐 제 이름을 불러 주는 팬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단솔은 활짝 웃으며 제 이름을 불러 준 팬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웅장한 음악에 맞춰 검무를 추는 제우스 멤버들의 기합에 제차례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는 쪽으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두둥.
웅장한 음악의 끝을 알리는 대고 소리 끝에, 단솔의 등장을 알리는 피아노 선율 위로 대금 소리가 힘 있게 울려 퍼졌다. 장수들을 유혹해 위험에 빠트리는 구미호인 단솔이 등장하자, 객석에 보이지 않게 뒤돌아선 태오가 단솔에게 윙크를 했다. 막상 무대에 오르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단솔을 위해서였다.
그때 단솔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를 써야만 했다. 구슬픈 음악에 집중하자, 병원에 있을 멤버들과 회귀 전의 삶, 회귀하고 난 이후에 벌어진 예상치 못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흩어졌다.
애써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 단솔은 안무에 더 집중했다. 무대 전체를 보면 조연에 불과했지만 단솔은 마치 제가 맡은 구미호 역할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연기를 했다. 모든 장수들의 사랑을 받던 구미호가 우연히 인간을 해치게 되고, 결국 저를 사랑했던 것들을 적으로 만들면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태오의 손에 죽음을 맞는 클라이맥스에서 단솔의 눈에선 마치 계산한 듯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악랄한 구미호가 떠난 무대 위에 장수의 진짜 사랑을 연기하는 다른 아이돌 그룹이 올라올 때까지, 관객들은 단솔에게 경기장이 떠나가라 박수를 보냈다.
사정을 모르는 스태프들 역시 단솔의 연기에 꽤 놀란 모습이었지만, 사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단솔의 진짜 눈물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대기실 복도로 들어왔는지, 지나가는 스태프들과 스탠바이 중인 사람들이 다 단솔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고 박수를 쳤다. 하지만 단솔은 그 박수를 만끽하기는커녕 복도 구석진 자리에 있는 적막한 화장실로 들어가 한참이나 울다가 나와야만 했다.
***
단솔이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 지수는 정말 아까 전에 한 약속처럼 단솔을 기다리고 있었다.
"솔아, 수고했어! 잘했어."
“고마워요, 형. 근데 대수 선배님은요?"
"그 자식은 네 무대만 보고 갔어. 다른 스케줄 있다고."
“아...... 그럼 형은요?"
단솔은 지수가 뒤풀이라도 생각하고 기다리는 걸까 봐 걱정이 됐다. 지금 단솔은 공연 뒤풀이를 할 정신이 없었다. 서둘러 멤버들이 있는 병원으로 가고 싶었다.
“너 데려다주려고 기다렸지. 병원 가자."
“아...... 전 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도 되는데...... 형도 바쁘실 텐데.......”
하지만 지수는 항상 그랬듯 한발 먼저 단솔의 마음을 읽었다.
“난 안 바빠. 그리고 너 그러고 택시 타면, 기사님들 기절하실걸."
단솔은 그제야 거울 속 제 모습을 발견했다. 결 좋은 백발은 화장실에서 얼굴부터 머리까지 파묻고 우느라 다 엉켰고, 빨간색 렌즈를 낀 눈이 퉁퉁 부어 무서웠다. 지수를 기사로 부려 먹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메이크업은 가면서 지우자, 지금 못 나가면 퇴근 시간이라 차 막혀."
“어어...... 형!”
한 손에는 단솔의 가방과 옷을 들고 한 손에는 단솔의 손목을 단단히 부여잡은 지수를 따라 단솔은 순순히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 형은 도대체 차가 몇 대인 걸까. 어제와는 또 다른 차를 보며 단솔은 소리 없이 감탄했다. 지수의 집 주차장에서 본 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죄송해요. 신세 좀 질게요. 형."
“응, 좋아. 마음껏 써먹어.”
***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주단솔 맞음? 구미호 봤음?
⤷눈물 떨어질때 이거 뮤지컬인줄... 주단솔
⤷제일 짧게 등장했다가 사라졌는데 개막식 씹어드신 주단솔
⤷컨셉 진짜 착붙이다 미쳤다 ㅠㅠㅠㅠ
⤷아니 근데 너무 짧아 ㅠㅠㅠ 이거 구미호 입장에서 본 버전도 만들어 주라
⤷2222맞아 우리 구미호도 이유가 있었다구요..!
너네 다이노소울 추돌사고 난 거 앎?
원래 멤버들 전부다 오늘 공연 연습했는데, 다른 멤버들은 부산에서 올라오다가 3중 추돌사고 났다함. 그래서 공연 직전에 바꾼 거래.
⤷근데 저렇게 잘 한다고? 주단솔 ㄹㅇ 천재임? 근데 그러면 제우스도 안무 바뀐거 아니야? 왁씨 쟤네 뭐야.. 무서워... 왜케 잘해......
⤷와 근데 그러면 단솔이 눈물 흘린 거 연기 아니고 ㄹㅇ 아님? 다들 마니 안다침?
⤷뉴스 링크보면 막 엄청 크게 중상은 없는 거 같은데 차찌그러진거 보면 할말잃....
주단솔 춤선 미침
⤷내가 아는 구미호중에 최고임
⤷연말 시상식 존버 ㅠㅠㅠ 근데 그거 앎? 이거 음악 제갈민혁이 만든거더라?
⤷ㅁㅈㅁㅈ 나도 자막보고 깜놀함. 원래 뭐 하나 뜨면 다들 짜고치는 고스톱 인건가
⤷섬이 그렇게 좁은데 서로 뭐하는지 당연히 알았겠지.
⤷아닐수도 있지 누가보면 지가 춘몽도 들어갔다 나온 줄 알듯. 추측으로 헛소리 금지.
⤷아니, 당연한 거 아님? 사회생활 안 해 봄? 저 정도 규모에서 여러명이 지지고 볶고 살아 봐라. 당연히 나 요즘 뭐하는데 너네 하나씩 할래? 이게 정상아님?
⤷그게 무슨 사회생활까지 들고와야되는 싸움인건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라도 우리는 그런 걸 불법 청탁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주단솔 웬만한 배우들도 못하는 눈물 스킬.
제목 어그로 미안. 마지막 부분에 눈물 흘리는 게 너무 예뻐서 움짤 쪄옴. 다이노소울 멤버들 교통사고 난 것도 알고 그래서 눈물 그렁그렁 한 것도 아는데 컨셉에 넘 착붙이라 음악만 들어도 내가 눈물 나는듯ㅠㅠ
(단솔 눈물 스킬.gif)
⤷맞아 ㅠㅠ 주단솔 절대 사극해
⤷사극하면 진짜 잘어울릴듯 눈물 한 방울로 이미 서사 다짰잖아요?
⤷나 솔직히 다들 주단솔 주단솔 노래를 부르는 거 잘 이해 안됐는데 이제 좀 알 것 같음....
***
그 시간, 멤버들이 실려 간 병원에서도 단솔이 공연하는 모습이 방송되고 있었다.
사실 단솔에게는 다친 데가 없다고 말했지만 우현은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다. 병원에 실려 와 부서진 오른쪽 다리뼈를 맞추는 중에도 우현은 단솔의 무대가 나오는 영상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아아, 잠시만요! 잠깐 잠깐! 타임! 너무 아파요 선생님!"
단솔과 통화할 때는 혹시나 걱정할까 봐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참아 낸 멤버들이었지만, 병원에 오고 나서부터는 다들 엄살을 피워 댔다.
“아직 손도 안 댔습니다, 환자분.”
“아...... 아아...... 손도 안 대도 아파요! 근데 그래도 손대실 때 말씀해 주셔야 해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으헉!"
단솔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멤버들과 길성이 입원실로 옮겨진 후였다. 병원 측의 배려로 8인실을 꽉 채워 들어갔지만, 아마도 너무 시끄러운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격리시킨 게 아닐까 하는 게 길성의 생각이었다.
“야! 미친 나 보고 있는데 왜 채널 돌려!”
“나 드라마 봐야 해!"
“핸드폰으로 봐!”
“데이터 없다고!"
그도 그럴 것이 매니저인 자신조차도 막상 함께 방을 써 보니 당장이라도 퇴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길성은 새삼 단솔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때 단솔이 병실 안으로 들어오자, 멤버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 조용해졌다.
"형! 괜찮아?"
“어어...... 난 괜찮아. 그냥 타박상."
“안 다쳤다며! 이게 안 다친 거야?"
단솔은 병실에 누워 있는 멤버들이 각자 한두 군데씩 깁스를 하고 있는 걸 가리켰다. 단솔의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런 줄도 모르고 혼자 무대에 오르다니.
언젠가 멤버들과 메인으로 무대에 오를 날을 꿈꾸며 올랐던 무대였는데도 마치 제가 아픈 멤버들을 두고 혼자 무대에 올라 즐기기라도 한 이기적인 사람처럼 느껴져 마음이 편하지를 않았다.
“형아! 공연 진짜 멋있었어!"
민재가 자책할 게 뻔한 단솔을 달래려고 한 말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단솔이 소리쳤지만, 어느새 멤버들의 시선은 일제히 단솔의 뒤편을 향해 있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잔뜩 놀라 조용히 시선만 움직이던 그때, 민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 한지수....... 한지수다!"
"한지수? 내가 네 친구냐."
민재가 너무 놀라 지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지수가 또 언제 준비한 건지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무심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