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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56화 (56/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56화

"형! 길성이 형!"

단솔은 금방이라도 끊길 듯한 전화기를 붙들고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멤버들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는 단솔을 패닉 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형! 주단솔!

“어...... 어? 우현이야? 우현아 너 괜찮아? 다른 애들도 괜찮아?"

―어...... 우리 다 괜찮아. 조금밖에 안 다쳤어. 그러니까 오지 마.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가 다쳤는데! 내가 어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단솔에게 우현은 오지 말라며 다그쳤다. 단솔은 서러움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혹시 회귀한 자신이 운명을 바꾸는 통에 멤버들이 저 대신 교통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 단솔은 차에 치였을 때 온몸의 뼈가 조각조각나던 고통이 떠올랐다.

―형은 공연해야지. 그게 우리한테 어떤 기회인데 펑크낼 거야?

“나...... 나 혼자 어떻게 해......! 우현아, 근데 다른 애들 다 괜찮은 거 맞아?"

ㅡ괜찮아. 그러니까 넌 혼자서라도 공연해.

“나 혼자 못 해......!”

―형이 잘해야 다음번에는 우리 다 메인으로 서지. 언제까지 남들 들러리만 설래?

"......우현아...... 저기...... 미안해."

―하...... 형. 또 도망치고 싶어?

단솔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우현의 목소리에 실망감이 가득 차올랐다. 단솔은 서둘러 하고 싶은 말을 래퍼처럼 내뱉었다. 계속 통화 중인 단솔을 메이크업 팀이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어 통화를 더 길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어제...... 그리고 그저께...... 내가 말 심하게 하고, 연락 안 받고....... 나 찾으러 다니다가 연습 못 한거...... 그것도모르고 뭐라고 한 거 진짜 미안해. 먼저 일찍 사과했어야 했는데.......”

아까 길성의 말을 들어 보면, 대표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 애들을 보낸 게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단솔은 그간 저만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부끄러워졌다.

도현의 말이 맞았다. 다른 멤버들도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애쓰고 있다고 착각하는 병. 단솔은 K-망돌병에 빠져 있었다.

“나 혼자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나 봐. 그것도 미안해....... 해 볼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혼자라도 괜찮다고 하면, 내가 잘할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빨리 안전하게 올라와."

―뭐야...... 빨리 오라는 거야 안전하게 오라는 거야.

“그냥 빨리 안전하게 와!”

―윽...... 알았어. 나 이제 가야 해. 끊어.

“응...... 저기...... 다른 멤버들 진짜 다 괜찮은 거지?"

ㅡ괜찮다니까. 걱정하지 마 형. 너 하나만 걱정해. 울지 말고.

"알았어......."

옷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아 낸 단솔을 기다리던 메이크업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단솔 씨, 괜찮아? 멤버들 교통사고 났대?”

“네...... 저...... 다른 멤버들 못 온다는데...... 저 혼자라도 무대 오르고 싶어서요...... 이거 누구한테 말씀드리면 되죠?"

***

“똑똑, 주단솔 씨 매니저입니다.”

단솔이 개막식 주최 측의 의사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이, 도시락을 양손에 가득 들고 지수와 대수가 단솔의 대기실을 방문했다. 원래 멤버 8명이 함께 써야 했던 대기실은 휑하니 비어 단솔을 더 외롭게 만들었는데 그나마 지수와 대수가 와 준 덕분에 단솔은 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 있었다.

“얘기 들었어. 이따 끝나고 형이 데려다줄게. 병원 같이 가.”

"형, 바쁘신 거 아니에요......?"

“아니, 전혀 안 바빠. 형 생각보다 그렇게 인기 없다?"

“나도 안 바빠."

이틀 전과 오늘까지, 지수와 대수가 마음대로 단솔을 보기 위해 스케줄을 빼는 바람에 소속사 대표와 잡지사 편집장, 광고주들과 해외 유명 감독까지 대기 중인 사실 알면 소심한 단솔은 이 자리에서 기절할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일단 이것부터 먹어."

지수는 어제부터 단솔만 보면 자꾸 무언갈 먹이곤 했다. 멤버들 생각에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대기해야 할지,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신 차리고 버텨야했기에 단솔은 꾸역꾸역 지수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대수는 그런 단솔을 지켜보다가, 편의점에 들렀다 온 건지 봉투를 뒤져 물을 따 주었다.

“꼭 엄마, 아빠 같아요."

"어?!"

"......"

입안 한가득 음식을 밀어 넣은 단솔이 애써 밝게 웃었다.

"옛날에 학교에서 학예회 같은 거 하면 엄마랑 아빠가 와서 챙겨주는 애들 부러웠거든요. 저희 부모님은 항상 바쁘셔서 못 오셨는데...... 근데 오늘은 형들이 꼭 그런 것 같서......."

“아하하...... 그래......? 하하...... 단솔이가 기쁘다면...... 난...... 나도...... 좋아."

그 말을 들은 지수는 안 그래도 우느라 눈이 퉁퉁 부은 단솔이 상처받지 않게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웃었다. 그러곤 도대체 둘 중에 누가 엄마 역할인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별로.”

지수가 눈치를 줬지만, 대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뱉었다. 눈이 동그래진 단솔이 재빨리 대수에게 사과를 했다.

“아...... 죄송해요, 기분 나쁘실 수도 있는 말인데...... 제가, 오늘 너무.."

“네 마음의 별로."

"네......?"

아까보다 눈이 더 커진 단솔이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눈이 쏟아질 것처럼 커진 단솔과는 다른 느낌으로 지수 역시 못 들을 것을 들은 표정을 짓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똑똑.

갑자기 적막이 흐르는 대기실에 때맞춰 누군가 노크를 했다.

“단솔 씨, 감독님이 혼자서라도 서는 게 낫다고. 지금 바로 제우스랑 동선 맞춰 볼 수 있을까요?"

".....네!"

주최 측에서 단솔 혼자 무대에 오르는 것을 오케이 한 모양이었다. 한복 의상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야무지게 들고 대기실을 나가던 단솔이 무언가 깜빡한 것처럼 뒤를 돌았다.

“아......! 대수 선배님! 감사해요. 조금 웃겼어요."

침울해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단솔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린 것을 본 대수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대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지수는 계속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야...... 그게 뭔데. 나 못 알아들었어 설명 좀 해 줘.”

“아재는 몰라도 돼.”

“별로라는 거야 좋다는 거야......."

* * *

원래는 취소됐어도 이상하지 않은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제우스 멤버들의 강력한 의견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기존의 페어 안무에서 단솔 혼자서만 무대를 꾸리는 것으로 변경될 경우, 자연스럽게 단솔에게 시선이 쏠리면서 주인공이 바뀌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태오를 비롯한 제우스 멤버들은 단솔 혼자 무대에 서는 것을 적극 추천한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단솔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동선을 새로 짜고 있었다. 개막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아무나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단솔 씨, 이쪽에서 나오면 우리가 원형으로 둘러싸는 걸로 갈게요. 그러면 태오랑 안무하고 오른쪽으로 다시 빠지는 걸로.”

단솔은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동작을 맞추고 무대 동선을 빠르게 익혔다. 리허설을 하다가도 불쑥불쑥 멤버들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잘해야, 다음번엔 우리 애들이 전부 다 메인으로 설 수 있어!'

죽을 때 죽더라도, 단솔은 이번엔 회귀 전처럼 망한 아이돌에 민폐 덩어리 멤버로 그냥 사라지고 싶지는 않았다.

***

겹겹이 입은 한복 사이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질 때쯤, 리허설은 끝이 났다. 얼마 남지 않은 무대를 위해 단솔은 눈빛을 몽환적으로 만들어 주는 붉은빛의 렌즈를 끼고, 입술을 빨갛게 칠했다.

헤어 팀은 은빛이 나는 백발의 가발과 새까만 흑단 같은 가발을 번갈아 씌워 보더니 백발의 가발을 골라 빨간 끈으로 반묶음을 해 주었다. 판타지에나 나올 법한 가발이 단솔에게는 제 머리처럼 잘 어울렸다.

“왜 선비들이 구미호한테 홀려서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줬는지 알 것 같네."

“그러네.”

그걸 지켜보던 대수와 지수가 평소와 달리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단솔을 보며 말을 했지만, 단솔은 눈을 감고 중얼거리며 춤 동작을 복기하기에 바빴다.

"주단솔 씨! 스탠바이할게요!"

"......네!"

한참이나 지났을까, 일순간 바깥의 소란스러움이 사라지고 경기장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스태프가 단솔을 데리러 대기실로 들어왔다.

스태프가 문 앞에 서 있는 대수와 지수를 보더니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그걸 본 지수가 능구렁이처럼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주단솔 일일 매니저예요. 저희 애 잘 부탁드립니다."

“어...... 네...... 저도...... 팬입니다!"

지수의 미소와 대수의 포스에 바짝 군기가 든 스태프에 단솔이 서둘러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형! 저 다녀올게요!"

"응, 떨지 말고!"

“잘하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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