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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54화 (54/150)

54화

단솔은 차에 타자마자 극외향인 제우스 멤버들에게 둘러싸였다. 태오만 생각하느라 다른 제우스 멤버들과도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단솔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설명하느라 기가 쪽쪽 빨릴 지경이었다.

“아…… 그러니까 단솔 씨도 자존심 때문에 못 들어가고 있는 거구나⁈”

도현이 박수를 짝 소리가 나게 치며 단솔의 현재 상황을 한 줄로 요약했다. 단솔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솔 씨! 너무 기죽지 마요. 우리 도현이 형도 처음엔 힘들다면서 가출했다가 울고…… 불고…….”

“야! 너 조용히 안 해? 아유…… 단솔 씨 얘가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아! 내가 거짓말했어⁈ 형이 막 어⁈ 나도 쉬고 싶다고 편지 한 장 써 놓고 튄 주제에 나중에 돈 없다고 매니저 형한테 데리러 오라고 울고불고……!”

풀 죽은 단솔을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그 뒤로도 제우스 멤버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싸워 댔는지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그 말에 단솔은 어쩐지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 * *

“옴마야! 이게 누고? 내 최애 아이가!”

단솔이 태오의 안내에 따라 쭈뼛거리며 숙소에 들어왔을 때, 그들을 반긴 것은 숙소에서 가사를 맡아 주신다는 이모님이었다.

“아이고― 손님이 오면 말을 해야지!”

“으아, 아파! 너무 갑자기 생긴 일이라 말할 새가 없었다고!”

철썩철썩, 이모님은 단솔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태오와 다른 멤버들의 등짝을 소리가 나게 때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제우스 멤버들 모두 그녀의 아들들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게끔 하는 장면이었다.

“안……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주단솔입니다!”

“엄마야…… 인형이 말을 다 하고! 들어와요. 아이고, 내가 손님이 왔으니까 실력 발휘를 좀 해야 하는데!”

“이모! 저희 내일 공연이라서 야식 먹으면 안 돼요!”

“하이고― 그 뒤에 숨긴 거 다 보이거든요. 편의점 음식 먹지 말라 했제!”

* * *

괜히 태오에게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친하지도 않은 제우스 멤버들을 불편하게 한 건 아닐까 불편했던 단솔의 마음은, 이모님이 차려 주신 밥상을 보자마자 싹 달아나고 말았다.

하루 온종일 쫄쫄 굶다시피 한 단솔은 본의 아니게 이모님과 제우스 멤버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몸은 작은데 제우스 멤버들보다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이모님은 자꾸만 단솔에게 먹을 걸 갖다주셨다.

저녁을 잔뜩 먹고, 태오의 안내에 따라 손님방에 들어가 누운 단솔은 잠이 오질 않았다. 꼭 친척 집에 온 기분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사는.

멤버가 저렇게 많은데 다들 혼자서 방을 쓰고도 손님방이 남는다니.

“애들은 저녁 먹었으려나…… 제우스는 손님방에도 호텔 침구가 깔려 있네…….”

이렇게 혼자 남겨지자 단솔은 또 멤버들 생각이 났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데를 갈 때마다 막말이나 뱉고, 은혜도 모르는 동생들을 생각하는 걸 보면, 제가 병에 걸려도 제대로 걸린 듯했다.

단솔은 한참이나 꺼 두었던 핸드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길성에게만 친구 집에서 자고 가겠다는 문자를 남겨 놓고, 멤버들에겐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귀염둥이 민재♥」

핸드폰을 켜자마자 연락이 빗발칠 거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멤버들에게 온 연락은 민재의 메시지 2개가 전부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

‘귀염둥이 민재♥’는 오글거리는 소리를 잘 못 하는 단솔의 핸드폰에 민재가 직접 저장한 이름이었다. 민재에게는 이게 뭐냐며 타박을 했지만, 단솔은 그런 귀여운 애교가 못내 마음에 들어 바꾸지 않고 있었다.

귀염둥이 민재♥

형아 진짜 집에 안 들어올 거야? 오늘 삼겹살 회식이래

귀염둥이 민재♥

형아 우리가 미안해... 형이 더 고생하는 거 아는데 우리 생각만 하고 근데 진짜 우현이 형이 오늘 실수 많이 한 거는 어제 형이 그냥 나가서 그거 찾으러 다닌다고 연습 잘 못 한 거야 ㅠㅠ 우리가 찾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들어가서 밥 먹고 연습하자고 했는데도 우현이 형 혼자 밤 늦게까지 형아 찾으러 다녔어 걱정되니까 핸드폰은 꺼 놓지 말고... 형아 지갑이랑 가방도 다 차에 놔두고 갔던데 이걸로 밥은 먹었나 모르겠네 ㅜㅜ 화 풀고 내일 보자 미안해 형아.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

민재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 끝에는 편의점에서 쓸 수 있는 5만 원짜리 기프티콘이 함께 도착해 있었다. 아직 정산도 못 받았는데 어린애가 돈이 어디 있다고 이런 짓을 한 건지.

“이…… 이러면 내가 감동이라도 받을 줄 알고⁈”

버럭 화를 낸 것과 달리 민재의 장문의 카톡을 본 단솔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애써 눈물을 참느라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고 턱에는 호두 무늬가 생겼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단솔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콧구멍까지 벌름거리며 눈물을 참아 냈다.

“바보같이…… 찾으러 다니긴 왜 찾으러 다녀, 어린애도 아니고 어련히 알아서 들어갈 텐데.”

그런 와중에도 단솔은 착실하게 민재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미 다섯 시간도 더 지났지만, 또 바보같이 저를 찾으러 다닐 수도 있으니까.

형 친구 집 와 있어. 내일 늦지 않게 갈게. 돈도 없는데 뭐 이런 걸 줬어. 형도 돈 있어. 너 맛있는 거 사 먹어.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 1 표시가 사라지길 기다렸지만, 일찍 자는 모양인지 민재는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아직도 키가 크는 것 같다는 제이콥의 말에 자극받고 12시 전에 잠들기에 도전하고 있던데 잘 되어 가고 있나.

아직 어린 동생들인데, 단솔은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과민 반응한 게 아닐까 싶어 가만히 있어도 한숨이 나왔다.

이 커다란 손님방이 절 옥죄는 느낌에 단솔은 조용히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잠이 안 와요?”

“히익, 놀래라.”

거실에는 도현이 창가 앞에 앉아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이미 반쯤 마신 모양인지 도현의 앞에는 반밖에 남지 않은 와인 병이 있었다.

“아…… 미안해요. 놀랄 줄은 몰랐어요.”

“아, 아니에요, 제가 갑자기 나와서…….”

“근데 왜…… 안 자고 나와 계세요? 오늘 연습 오래 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아…… 저는 불면증 때문에. 그러는 단솔 씨도 잠이 안 오나 봐요. 혹시…… 단솔 씨도 그거 왔어요……?”

“그…… 그거요? 그게 뭐…….”

“K―망돌병.”

“에? 그런 병도 있어요……?”

단솔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지금 인기 있다고 저를 놀리는 건가. 제우스 멤버들이 시끄럽긴 해도, 대놓고 이렇게 사람을 무안하게 할 줄은 몰랐는데 심히 당황스러웠다. 전에 유두현과 한여민이 면전에 대고 망돌을 운운하던 게 생각 난 단솔이 소파 앞에 우두커니 서서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저도 걸렸었거든요. 지금은 연예인 병으로 고생 중이지만…… 그러고 서 있지 말고 앉아요.”

그 말에 단솔이 입을 삐쭉거리며, 도현이 앉아 있는 창가 바로 앞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제우스가 무슨 망돌이에요…… 제우스가 망돌이면 저희는 뭐 망망망돌이게요?”

망망망 하는 단솔의 목소리가 삐진 강아지 우는 소리처럼 들려 도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샜다. 단솔은 단정한 외모와 달리 하는 짓이 꽤 웃긴 사람이었다. 태오가 왜 숙소만 오면 단솔의 얘기를 그렇게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저희도 1집 냈을 때 완전 망돌이었는데, 몰라요? 아! 상큼상큼! 오! 올록볼록! 이런 어린이 방송도 나갔는데…….”

“아…… 그게 제우스였구나……!”

벌써 3년도 전의 일이다. 단솔이 아르바이트하던 고깃집 사장님의 딸이 끼고 살던 어린이 프로그램의 인트로 송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우스는 아니고 나였죠. 1집 때 콘셉트를 잘못 잡는 바람에 초등학생들한테 인기가 좋았거든요.”

“그…… 그래서…… 그 케이…… 뭐시기 병에 걸리신 거예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저도 단솔 씨처럼 가출도 하고 그랬어요. 내 인지도는 점점 오르는데 멤버들은 삽질만 하고 있고. 태오 그 자식은……! 저도 물개랑 박수 치기 대결이나 하느라 손바닥에 불이 날 것 같다느니…… 앓는 소리나 하고 있지.”

도현은 그때 생각이 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라리 말 못 하는 물개가 낫지. 미취학 아동 20명이랑 방송해 봤어요 단솔 씨⁈.”

와인을 홀짝거리던 도현은 과거 이야기에 흥분한 듯 손에 들린 잔을 들어 그대로 원샷하곤 단솔에게 물었다. 그 흉흉한 기세에 눌린 단솔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루 온종일 같이 있다 보면 에엥 에엥 귀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난 분명히 퇴근했는데 막…… 환청이 들린다니까⁈ 거기에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행사는 행사대로 돌려라 돌려…… 나중에는 내가 행사를 온 건지 촬영을 온 건지…… 예능을 온 건지 헷갈려서…… 필름 끊긴 것처럼 딱!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에에…… ⁈ 아니…… 무슨 조선시대 노비도 아니고 사람을 그렇게 굴려요……!”

“그러니까요……! 나는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발 연기다, 방송 태도가 불량하다……. 악플은 또 어찌나 달리는지…… 일주일 동안 다섯 시간도 못 자는데 생글생글 웃을 수 있으면 그게 더 위험한 거 아니에요?”

도현은 죽은 눈을 하곤, 입만 활짝 웃어 보였다. 그야말로 광기가 서린 듯한 모습에 단솔은 흠칫 놀라 도현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느리게 도현에게서 조금 멀어졌다.

“멤버들이 뭐라고만 하면 예민해서 물고 뜯고……. 사실 그땐 나 혼자 우리 팀원들 다 먹여 살리는 줄 알았어요. 뭐든지 다 내가 챙겨야 하고, 나 아니면 애들 다 아무것도 못 하는 줄 알고. 이게 K 망돌병. 이 바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잖아요. 인기 있는 멤버 혼자 애쓰다가 사라지는. 끝내는 그게 너무 무겁고, 무서워서 도망갔어요. 나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사라지면 다들 날 탓하고 나만 욕할까 봐.”

단솔은 회귀 전 자신을 떠올렸다. 혼자 죽을 듯 살 듯 죽어라 아등바등하며 활동하다가, 결국 팀원 전체를 수렁에 빠뜨린 진짜 망한 아이돌.

그건 단솔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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