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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52화 (52/150)
  • 52화

    이튿날 아침, 제우스와의 안무 연습을 위해서 일찍 일어난 멤버들은 우현과 단솔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공기를 견뎌야만 했다.

    “아…… 형! 이거 어디서 사 온 거야? 되게 맛있다!”

    “청담동.”

    “아…… 그래서 그런가……? 더 맛있는 거 같아……! 우현이 형! 왜 안 먹어? 형 고기 좋아하잖아.”

    “됐어, 너나 많이 먹어.”

    민재가 아침부터 단솔이 가져온 소고기를 구워 먹으며 분위기를 풀어 보려 했지만 오히려 숙소에는 냉랭한 공기가 맴돌 뿐이었다.

    “가뜩이나 눅눅한 와중에 싸늘해…… 오늘은 까불면 안 되겠다 민재야.”

    방금 샤워를 하고 나온 지웅이 민재가 구워 놓은 고기를 손으로 집어 먹으며 말했다. 그 말에 민재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두 사람의 기 싸움은 제우스와의 합동 연습 자리에서도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우현이 많이 긴장한 듯, 잦은 실수를 반복했다.

    “잠깐만 쉬었다가 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그러죠, 뭐. 아 오랜만에 춤추니까 빡세네.”

    단솔이 같은 구간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우현을 보며, 연습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말을 꺼냈다. 사실 다들 누가 먼저 말할지 눈치만 보고 있던 찰나였다.

    제우스 멤버들은 다행히 단솔의 말에 흔쾌히 응해 주었다. 단솔은 우현의 손목을 잡고는 연습실 밖 복도로 끌고 갔다.

    “아니, 그냥 해도 돼.”

    “쉬었다 해.”

    “괜찮다고, 그냥 가자고.”

    “하…… 너 지금 계속 같은 자리에서 틀리고 있잖아.”

    “아이씨…….”

    단솔의 단호한 말에 우현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두 사람이 밖에서 다투는 것을 연습실 안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머쓱하게 들어온 단솔은 우현이 화장실이 급한 모양이라며 변명을 했다.

    단솔은 정신을 차리고 제우스 멤버들에게 사과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저희 때문에…….”

    “괜찮아요. 저희도 안무 숙지 제대로 안 된 사람 있어서.”

    기분 좋은 미소를 가진 제우스의 래퍼가 큭큭 웃으며 한 사람을 가리켰다.

    “야! 나는 드라마 찍고 왔잖아 봐줘! 그러는 저도 아까 틀렸으면서!”

    그는 제우스의 센터인 도현이었다. 민재의 말로는 초창기 인지도가 없던 시절의 제우스를 살린 위인이라나.

    “단솔 씨! 저 자식은 어제 스케줄 하나도 없는데 틀렸어요!”

    하하, 단솔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도현은 마치 단솔과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인 양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야, 야, 너 단솔 씨랑 친한 척하지 마.”

    “왜? 우리 친하거든?”

    “우리? 언제 봤다고 우리야! 오늘 처음 봤으면서!”

    “단솔 씨, 저 알오매치 서바이벌 진짜 여러 번 봤어요. 너무 많이 봐서 지금 내적 친밀도 맥스예요.”

    하하. 단솔은 처음으로 태오의 외향적인 성격이 무난한 편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MBTI 앞자리가 어렵지 않게 짐작되는 외향인들에게 갇혀 단솔이 어색하게 입꼬리만 올리고 있을 때, 민재가 슬금슬금 핸드폰을 가지고 그들의 주변으로 다가왔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다이노소울의 서민재입니다. 혹시 대화 중에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너무 팬이라서 그런데 사진 촬영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물론이죠! 저희 같이 찍어요!”

    단솔은 본 적 없던 민재의 예의 바른 모습에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그 뒤로는 너도나도 함께 사진 찍자는 분위기에 단솔도 제우스 멤버 여러 명과 어색하게 사진을 찍었다. 제우스의 회사에서는 이렇게 친화력이 좋아야 데뷔를 할 수 있었던 건지, 처음 보는 사이에도 덥석덥석 어깨동무를 하고, 팔짱을 끼는 통에 정신이 없던 그때였다.

    바깥에 나갔다 들어온 우현이 연습실 광경을 보곤 얼굴이 굳어졌다. 단솔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던 태오가 먼저 나서서 우현에게 말을 걸었다.

    “우현 씨! 우리 사진 찍고 있었는데 우현 씨도 이리 와요!”

    “괜찮습니다. 연습…… 시작할까요, 저희.”

    하지만 뒤늦은 사춘기라도 겪는 모양인지 우현은 또 한 번 연습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그 뒤로는 모두가 우현의 눈치를 보며 안무 연습을 진행했다.

    단솔은 우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상황이 너무 창피하고, 면목이 없을 뿐이었다. 2년이나 선배인 제우스 앞에서 예의 없이 구는 우현에게 화도 났고, 다이노소울은 연차로 보나 인기로 보나, 제우스의 무대에 업혀 가는 상황이었다.

    민혁이 단솔을 센터에 세워 달라고 요청했다지만, 그건 ‘구미호’가 출연하는 구간에 한해서였다. 제우스는 다이노소울 뿐만 아니라 뒤에 나올 다른 그룹들과도 안무를 맞춰야 했다.

    시간이 지난 뒤 안무는 어느 정도 맞췄지만, 이번엔 다른 게 문제였다.

    “저…… 우현 씨, 혹시 무대에서도 그런 표정으로 있을 거 아니죠? 애절한 구미호가 아니라 누구 한 명 죽이러 갈…… 거 같은데…….”

    단솔과 페어 안무를 하던 태오가 우현에게 지적을 하자, 금세 우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우현의 눈이 단솔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태오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싸울 것처럼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모두가 숨죽이고 두 사람을 보고 있던 그때, 우현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아, 몸이 조금 안 좋아서…… 죄송합니다.”

    다행이다. 단솔은 안도했다. 요 며칠 우현은 금방이라도 터질 준비가 되어 있는 다이너마이트 같았다.

    우현은 그제야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안무 연습을 마칠 때까지 깍듯한 자세를 유지했다.

    화가 풀린 건가. 단솔은 숙소로 돌아가면 우현과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에 타기도 전에 우현은 또다시 단솔에게 시비를 걸어 왔다.

    “저 새끼랑 친해?”

    “뭐……? 누구 말하는 거야.”

    “마태오. 그 새끼랑 친하냐고.”

    “잘 나가다가 왜 또 시비야. 같은 프로그램 하니까…… 그냥 좋은 동료지.”

    “하…… 시발 진짜.”

    빵빵.

    때마침 차를 빼서 나온 길성이 서 있는 멤버들을 보고 클랙슨을 울렸지만 두 사람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단솔은 답답한 듯 한숨만 푹푹 쉬어 대는 우현에게 일갈했다.

    “너 도대체 뭐가 문젠데 아까부터 진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거 신경 쓸 시간에 네 안무 연습이나 더해. 너 나한테 뭐라고 할 자격 있어?”

    “뭐?”

    “형…… 일단 차에 타자.”

    “그래, 단솔이 형. 원래 이렇게 화내는 사람 아니잖아. 갑자기 왜 그렇게 심한 말을…….”

    동생들이 말릴수록 오히려 단솔은 더 화가 났다.

    “내 말이 심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저 자식은 툭하면 형한테 야, 너, 심지어 욕까지 하는데 정말 내가 심해?”

    “우현이 형은 원래 그런 거 알고 있잖아 형도…….”

    단솔은 그 말에 팽팽하게 붙잡고 있던 신경 줄이 툭 하고 끊어지는 걸 느꼈다. 그럼 그렇지. 달라질 건 없었다. 늘 희생하고 고생하던 주단솔은 회귀를 해서도 달라질 게 없었다.

    원래, 그런 거니까.

    “형, 애들이랑 먼저 출발해. 나는…… 내일 늦지 않게 리허설 시간 맞춰서 들어갈게요.”

    “어…… 어! 단솔아! 어디 가게!”

    돌아갈 본가도 없는 주제에 단솔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길성이 붙잡기도 전에 뛰어서 건물 앞을 벗어났다. 숨이 턱 끝에 걸릴 때까지 모르는 동네를 뛰던 단솔은 기시감이 들었다. 머릿속에 죽기 전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도 이렇게 뛰었지. 하지만 도망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어쩌면, 돌아온 삶에서도, 커다란 운명의 흐름은 바꿀 수 없는 게 아닐까. 단솔은 자신의 뜀박질이 쳇바퀴를 굴리는 듯 아무 의미 없게 느껴졌다.

    * * *

    한참을 뛰던 단솔은 그제야 지갑이 들어 있는 가방을 차에 두고 내린 게 떠올랐다. 지금 제게 있는 거라곤 핸드폰과 낡은 핸드폰 케이스 안에 꼬깃꼬깃 숨겨 놓은 비상금 만 원이 전부였다. 단솔은 하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피시방으로 들어갔다.

    심드렁하게 인사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지나쳐 제일 구석진 자리에 앉은 단솔은 컴퓨터 바탕 화면을 켜 놓은 채 푹신한 피시방 의자에 몸을 기대앉았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건지. 요란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있자니 눈치가 보였던 단솔은 익숙한 포털 창을 이것저것 눌러 보기 시작했다.

    “궁금한데, 한 번 볼까…….”

    회귀 전에는 매일매일 포털에 올라오는 자신의 욕을 확인하는 게 단솔의 일과였다. 그래서 포털 사이트의 주소까지 외워 버린 단솔은 검색창을 거치지 않고 한 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익숙한 메인 화면에 단솔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절대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개가 똥을 끊지.

    달칵, 단솔은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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