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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49화 (49/150)

49화

“야, 최우현. 미쳤어? 말을 왜 그렇게 해?”

“우현이 형…… 그건 아니죠! 솔이 형이 우리 위해서 열심히 한 거지…….”

단솔은 창피한 줄 알면서도 눈물을 그치지 못하고 연신 옷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우현의 신랄한 실언에 다른 멤버들이 나섰지만, 우현은 그 입을 멈출 줄을 몰랐다.

“그게 우릴 위해서야? 혼자 잘되자고 하는 짓이지. 아…… 들러리 서는 와중에도 우리가 고마워해야 하나? 지방 행사나 전전하던 새끼들이 형 덕분에 이런 기회 잡게 돼서?”

“야! 최우현! 너…….”

“순진한 척, 모르는 척하지 마……. 형이 물어 온 기회 우리도 달갑지 않아.”

“……그만하자. 나 혼자라도 연습해서 내일 피해 안 가게 할게. 오늘 다 같이 연습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우현의 비아냥에 단솔은 참지 못하고 연습실을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가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춘몽도에 밀어 넣은 것은 멤버들이었다. 그를 계기로 단솔의 인기가 많아지자, 이제 와서 자존심 상해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단솔은 이해되질 않았다.

더 슬픈 것은 그렇게 뛰쳐나오고 나서, 갈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단솔이 연습실 옆 골목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 때였다. 단솔이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수의 전화였다. 받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아까 전 매몰차게 끊어 버린 전화가 마음에 걸렸던 단솔이 눈물을 쓱쓱 닦아 내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솔아! 나 너희 회사 근처인데……!

“솔아! 나 너희 회사 근처인데……!”

“……어?”

어쩐지 지수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았다.

“형…… 어디라구요?”

—나 너희 회사 앞! 어? 단솔아, 밖에 있어?

“나 너희 회사 앞! 어? 단솔아, 밖에 있어?”

저벅저벅, 단솔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온 지수가 건물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찾았다!”

키가 큰 그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좁은 골목이 어두워졌다. 단솔은 운 걸 들킬세라 모자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푹 숙였다.

“솔아 여기서 뭐 해? 몰래 담배 피워?”

“아! 아니에요!”

지수의 말에 발끈한 단솔이 고개를 들자, 방금까지도 울었던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너…… 울었어?”

“아…… 아니요. 근데 형은 여기 왜 오셨어요?”

“네가 아까 밥도 안 먹고 연습한다길래…… 밥 사 가지고 왔지. 배고파서 운 거야 혹시?”

“그…… 그런 게 아니라아…….”

방금까지도 심해를 거닐던 단솔의 우울한 감정이 지수를 만나자,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마치 괜찮다고 다독여 주면 그제야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처럼 단솔은 염소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춤…… 연습을…… 했는데에…….”

“했는데?”

“끄흡…… 휘날리는 거랑 흩날리는 거랑 다르다고오…….”

“엉?”

“……나는 봐도 모르겠는데에…… 안무도 아직 다 못 땄는데 계속 빨리해야 한다고오…….”

지수는 마치 영어 듣기 시험에 응시한 수험생처럼 집중해서 단솔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안무를 딴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말은 당최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뒤로도 한참이나 윤성이가 어쩌고, 우현이가 어쩌고 하면서도 염소처럼 떨리는 목소리는 쉽사리 잦아들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자신의 차로 단솔을 데려와 아직도 끅끅거리는 단솔에게 물을 먹이고 나서야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다른 애들보다 춤을 배우는 게 느린 편인데, 메인 댄서인 멤버를 밀어내고 어쩌다가 센터에 서게 돼서 곤란하다 이거지?”

“흡…… 네…….”

“흠…… 어쩔 수 없겠네.”

잔뜩 진지해진 지수의 표정을 보며, 단솔은 제가 너무 어리광을 부린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멤버들끼리 벌어진 일을 제삼자에게 고자질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실력으로 보여 줘야지.”

“네?”

“일단 형만 믿고 따라와.”

지수가 씩 웃더니 차를 출발시켰다. 안전벨트도 안 매고 있던 단솔은 부랴부랴 안전벨트를 매고 의자를 꽉 붙들었다.

무작정 나오긴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지수는 신호에 걸릴 때마다 어디론가 바쁘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두드렸다. 그러고 나서 도착한 곳은 강남의 한 빌딩 앞이었다.

“형…… 여기가 어디…….”

“우리 회사.”

“네⁈”

“여기 연습실 얼마 전에 리모델링 했거든, 엄청 번쩍거리고 좋던데?”

단솔은 제 팔을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지수를 막았다.

“아! 아니…… 연습실 함부로 쓰다가 누가 뭐라고 하면 어떡해요…….”

하나밖에 없는 연습실을 두고 걸그룹과 신경전을 벌였던 때가 떠올라 눈앞이 아찔해진 단솔이었다. 한 회사 안에서도 연습실을 잡으려고 눈치 싸움을 벌이는데, 다른 회사 사람이 갑자기 쳐들어온 게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괜찮아. 이 연습실, 아니 이 건물이 다 형아가 벌어서 올린 건데 누가 뭐라 그런다고 그래. 들어가자.”

“형…… 저 진짜 괜찮아요.”

“진짜 괜찮대도? 우리 회사는 어차피 아이돌도 없어. 연습실도 그냥 구색 맞추려고 만든 거라 넉넉해. 자꾸 거절하면 화낸다?”

지수는 안 가려고 버티는 단솔을 질질 끌다시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선생님들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대.”

“선…… 생님이요?”

“응, 내가 섭외했어. 잘했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서 본 지수의 회사 내부는 단솔의 회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모던한 인테리어의 복도를 지나자, 여러 개의 연습실이 나왔다. 지수의 말처럼 방이 여러 개였지만, 사람은 몇 명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마주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 지수를 보고 90도로 인사를 했다.

“우와…….”

“좋지? 얼른 가자.”

자신에게 하는 인사를 대충 받아준 지수가 단솔의 어깨를 붙들고 복도 제일 끝에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3면이 거울로 뒤덮인 연습실에는 커다란 스크린과 빔 프로젝터도 있었다. 마룻바닥도 비싼 재료를 쓴 듯 춤추기에 최적화 되어 있는 곳이었다.

“어……⁈”

“단솔 씨! 왔어요?”

지수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연습실에는 태오와 민혁, 그리고 대수가 와 있었다. 태오야 같이 무대에 오를 사람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민혁과 대수의 등장은 너무 뜻밖이라 단솔이 주춤거리고 있을 때였다.

“뭐야? 정대수랑 제갈은 왜 왔어.”

지수도 두 사람의 등장은 짐작 못 했는지 삐딱하게 굴었다.

“저는 왜 왔는지 알겠죠, 단솔 씨? 민혁이 형은 제가 오자고 했어요. 원래 기출문제도 출제자의 의도를 알아야 잘 풀린다잖아요.”

“출제자…… 요⁈”

“아……! 혹시 몰랐어요 단솔 씨? 이번 개막식 음악 민혁이 형이 프로듀싱 한 거잖아요.”

“……저는…… 몰랐어요…… 정말……!”

단솔은 그제야 우현의 날 선 반응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춘몽각에서부터 민혁과 함께 있던 단솔의 모습을 보고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그럼 정대수는 왜 왔냐니까? 제갈민혁, 네가 불렀어?”

“내가 왔어, 내 발로. 네 매니저가 울면서 전화 왔더라 듣자 하니 한지수가 또 무슨 일을 벌이는 것 같은데 좀 말려 달라고. 근데 오길 잘했네.”

단솔과 눈을 맞춘 대수가 씩 웃었다.

“지랄…… 잘됐네, 안 그래도 도시락이 많이 남았는데. 이거나 먹고 집에 가.”

지수는 차에서부터 들고 올라온 도시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원래는 다이노소울 멤버들과 먹으라고 가져온 것이었지만, 도시락을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그대로 들고 온 것이었다.

단솔은 또 울 것처럼 입술을 삐쭉거렸다. 제가 뭐라고 이 바쁜 사람들을 여기까지 모은 걸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근데 저 진짜 괜찮아요. 선배님들 바쁘신데…….”

“솔아 형아 하나도 안 바빠.”

“내가 더 안 바빠. 촬영 없으면 헬스장에서 다섯 시간씩 운동해. 심심해서.”

“아니? 내가 더 안 바빠! 너 아니었으면 하루 온종일 넵플릭스에서 뭐 볼지 고민하다 결국엔 못 고르고 천장만 한 시간씩 보고 있었을걸?”

지수와 대수가 서로 얼마나 안 바쁜 백수인지 자랑하는 사이, 민혁이 다가와 단솔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나한테는 진짜 안 미안해도 돼요.”

“형…… 형한테 제일 죄송해요. 형이 프로듀싱 한 음악인 줄 알았으면…… 후…….”

“듣자 하니까, 센터 자리 때문에 감정 상한 거라던데.”

“네…….”

단솔은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당장 그곳으로 들어가 숨고만 싶었다. 노래나 연기라면 모를까 춤을 주로 선보여야 하는 무대에서 센터를 욕심낸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봐 걱정되기도, 두렵기도 해 의기소심해 있을 때였다.

“미안해요. 내가 단솔 씨 센터 세워 달라고 했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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