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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48화 (48/150)

48화

춘몽각에 혼자 남은 민혁은 단솔이 사라진 곳만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는 이내, 단솔의 그룹 차가 빠르게 앞마당을 벗어나는 소리가 들리자, 허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랜만에 단둘이 있는 건데…… 아쉽다. 그렇지?”

애꿎은 단탄지만 마구 쓰다듬던 민혁은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미 두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지, 방금 잠에서 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 형!”

“잤어? 우리도 이제 출발하자.”

“에…… 에⁈ 주단솔 씨 갔어요?”

“응, 갔어.”

* * *

“놀라지 말고 들어 솔아. 우리…… 아시안 게임 개막식 무대 서기로 했어!”

“형…… 그거 진짜야? 혹시 사기…… 당한 거 아니야? 전화로 왔어? 보이스피싱 아니야?”

단솔은 길성의 말이 믿기질 않았다. 물론 이 큰 행사를 확인 없이 사장도 거치지 않고 잡았을 리 없지만, 다이노소울이 그렇게 큰 무대에 서다니. 차라리 순진한 그가 어설픈 보이스피싱에 당했다는 게 더 신빙성 있는 시나리오였다. 길성은 그런 단솔의 반응에 버럭 화를 냈다.

“야! 너는 진짜! 나를 뭘로 보고!”

“아니…… 어제까지 가을 전어 축제 갔다 왔는데…… 갑자기 아시안 게임 개막식이라니까…… 믿기질 않아서…….”

“우리도 열심히 했어. 전어 축제도 가고, 단풍 축제도 가고, 소싸움 대회도 가고.”

“어?”

단솔의 말에 제일 뒷자리에서 자는 줄 알았던 우현이 입을 열었다.

“형만 일한 거 아니야. 우리도 애썼다고.”

“아…… 나는 그런 뜻이 아니라…….”

우현의 날 선 반응에 순식간에 차 안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우현뿐만 아니라 멤버들이 단솔을 보는 시선도 묘하게 삐딱해져 있었다. 회귀 전에는 단솔의 스케줄을 제 일처럼 기뻐해 주던 동생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슬슬 단솔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와야 할 시점이었다. 혹시 벌써부터 저 때문에 그룹이 욕을 먹기 시작한 걸까.

“아! 왜 그러냐 우현아. 단솔이도 고생했고, 너희도 고생 많았지. 사실 제우스 무대에 들러리처럼 서는 거긴 한데, 야! 혹시 알아? 우리가 제우스보다 연습 더 열심히 해서 눈에 띄면 역주행할지?”

길성이 싸늘해진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말을 했지만, 오히려 그 말이 멤버들을 더 기분 상하게 만들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형! 제우스가 우리보다 평균 키가 10센티는 더 커…… 걔네랑 같이 춤춰서 돋보이려면 내 팔다리 다 찢어도 안 될걸?”

언제나 자기 객관화가 분명한 민재가 자조적인 말을 했다. 단솔은 입술만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길성이 입을 열었다.

“아…… 왜! 우현이는 크잖아! 거…… 마태오보다 우리 우현이가 조금 더 크지 않냐 단솔아?”

“몰라…….”

대충 봐도 태오가 우현보다 훨씬 컸다. 단솔은 그게 길성 나름의 화해하라는 시그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불쑥 우현이 화를 낼 때, 단솔은 잊고 지냈던 회귀 전 우현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옆에 앉은 민재가 눈을 빛내고 있었지만, 도무지 그들의 장난에 장단을 맞춰 줄 기분이 아니었다. 제우스랑 합동 공연이 있다는 걸 태오는 왜 알려 주지 않은 걸까.

“왜? 너 마태오랑 친하잖아! 저번 방송 보니까 계속 붙어 있던데?”

“형, 언제 도착해? 우리 연습실 가는 거지? 그럼 난 좀 잘게.”

늦잠을 잔 단솔은 더는 잠이 오지 않았지만,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자는 척을 했다. 길성도 포기한 듯 애꿎은 입맛만 다셨다.

* * *

“안무가가 보낸 시안인데, 여기 주황색 조끼 입은 게 너희 파트. 일단 우리끼리 연습하고 내일이나 모레쯤 제우스 애들이랑 같이 연습할 거야.”

“페어 안무인데 어떻게 우리끼리 연습을 해.”

쿰쿰한 곰팡내가 진동을 하는 연습실에 오자, 단솔은 제가 춘몽도를 벗어난 게 실감이 났다. 우현은 아까부터 뭐가 그리 불만인지 연신 툴툴거렸다.

“제우스는 바쁘니까 그렇지 인마. 걔네랑 머리 맞대고 안무 딸 것도 아니고 차라리 안무라도 미리 익혀 가야 덜 창피할 거 아냐.”

“맞아! 형 그거 봤어? 마태오는 안무 보면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다 따 버린대. 천잰가 진짜……

그런 우현이 불편한 것은 단솔뿐만이 아니었던 듯 지웅과 민재가 화제를 돌려 떠드는 사이, 단솔은 제 낡은 핸드폰을 열어 알오매치 서바이벌의 커뮤니티를 확인하려 했다. 그때 타이밍 맞춰 울리는 진동에 놀라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발신인은 지수였다. 단솔은 아직 연습을 시작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멤버들을 살펴보다 구석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 솔아 잘 있었어?

“형…… 우리 오늘 아침에 봤는데요?”

—벌써 점심시간이잖아. 솔이 점심은 먹었어?

“어…… 아니요. 저 춤 연습하러 왔어요…….”

—뭐⁈ 밥도 안 먹고 춤 연습을 한다고⁈

지수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사람처럼 소리를 빽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각자 떠들던 멤버들이 다 단솔이 있는 쪽을 쳐다볼 정도였다.

“아니…… 원래 춤 연습할 때는 밥 잘 안 먹어요…… 몸이 무거워서. 형! 제가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죄송해요!”

—잠…… 잠깐만 단솔아!

뚝.

비록 수화기 너머에서 지수가 애타게 불렀지만, 멤버들의 시선을 느낀 단솔은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하지만 눈치 빠른 민재가 용케도 그 목소리를 알아채고는 단솔에게 다가왔다.

“오오…… 이거 국민 배우 한지수 목소리 아니야? 형 그 형이랑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이? 대박…… 숙소도 같이 쓰더니 역시…… 아 진짜 궁금한데 안에서 어땠어? 미리 얘기 좀 해 주면 안 돼?”

“아잇…… 그런 거 아니야. 얼른 연습하자!”

“허, 우리 연락은 받지도 않더니.”

우현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안무 영상을 틀려고 했던 단솔의 손이 뚝 하고 멈췄다. 섬에 있을 때는 핸드폰을 쓰지 못했기에 멤버들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물론 회귀 전이었다면 중간에라도 PD에게 부탁해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라도 남겼겠지만, 회귀한 뒤로 멤버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으니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안무 영상 튼다?”

단솔은 우현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굴었다. 어차피 틀어질 사이였다. 굳이 나서서 감정 소모할 필요도 없이, 결국엔 욕하면서 헤어질 사이.

단솔의 태도에 오히려 우현이 더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는지 이내 안무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야금을 비롯한 전통 악기 반주가 깔리고, 제우스 역할을 맡은 안무가가 화려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발차기에 텀블링 등. 고구려 장수의 역할에 걸맞게 과격한 춤은 액션에 가까웠다.

다이노 소울이 맡은 역할은 구미호였다. 구미호가 무사를 홀렸으나, 진정한 사랑인 선녀를 만난 무사가 끝에 정신을 차리는 내용이었다.

“센터는 누가 설 거야?”

“당연히 윤성이 형이지!”

노래를 불렀다면 당연히 단솔이 센터로 섰겠지만, 춤만 추는 축하 공연이라 단솔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윤성은 데뷔 전부터 팬클럽이 있었을 정도로 유명한 댄스 팀 출신이었다.

“아…… 그게…….”

연습실 구석 의자에 앉아 있던 길성이 곤란한 듯 머리를 긁었다.

“주최 측에서…… 단솔이가 센터로 서 달라고…….”

“어? 아…… 그래? 뭐…….”

“이게, 아무래도 좀 연기가…… 필요한 무대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온전히 춤 실력이면 무조건! 우리 윤성이가 센터인데 그렇지?”

춤에 자부심이 있는 윤성의 감정이 상했을까, 일부러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길성의 말에 몸을 풀던 윤성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

“원래 형이 매번 센터였으니까. 난 상관없어.”

단솔은 민망한 마음에 입술만 깨물다 말했다.

“저기…… 윤성아 나는……!”

“됐어, 괜찮아. 아, 왜 형답지 않게 눈치를 보고 그래. 빨리 연습이나 하자.”

어떻게 해도 틀어질 인연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자꾸만 제 예상과는 다르게 엇나가는 기분이었다. 저를 향한 우현의 날카로운 눈빛을 애써 모른 척하는 것도, 민망함에 웃어 보이는 윤성도 모두가 불편했다.

‘차라리 다시 춘몽도로 들어가고 싶어…….’

집보다 익숙했고, 가족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멤버들이 이제는 더없이 불편한 단솔이었다.

안무 연습은 윤성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영상을 세 번 정도 반복해서 본 윤성이 ‘이 정도면 다들 안무는 외웠지?’라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말을 들은 단솔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때 거울로 길성과 눈이 마주쳤지만, 길성은 애써 단솔의 애처로운 눈빛을 모른 척했다. 사실 단솔은 안무 숙지가 느린 편이었다.

‘춤이 너무 어려워…… 안 그래도 분위기 싸늘한데, 망했다.’

타고난 노래 실력으로 리더 겸 메인 보컬이 되었지만, 춤은 순전히 노력의 결실이었다.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연습해야 그나마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한쪽 귀가 어두워진 상태라 앉았다가 일어나기만 해도 현기증이 일었고, 지난 촬영 때 다친 다리도 전부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원, 투, 쓰리, 포. 아니, 아니, 단솔이 형! 그냥 턴 아니고 찍고 턴.”

“왼쪽, 오른쪽, 아니 하, 단솔이 형 지금 반 박자씩 느리잖아.”

“각 맞추고! 형! 지금 각도 안 맞는다고!”

‘센터 뺏겨도 상관없다며!’

평소에도 퍼포먼스에 욕심이 많은 윤성이었지만, 오늘따라 단솔에게 가혹하게 구니 단솔은 속으로 절규를 부르짖었다.

현재 안무 숙지도 제대로 되지 않은 단솔이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윤성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단솔을 다그쳤다.

“아니 그렇게 말고, 바람에 휘날리는 거잖아 그건.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처럼 어? 이게 안 돼? 이게 안 되냐고!”

결국, 웬만하면 참아 보려 했던 단솔이 결국 입을 삐쭉거렸다.

“휘날리는 거랑…… 흩날리는 거랑 똑같은 거 아냐?”

“아! 형! 그게 어떻게 같아, 이렇게! 이렇게! 봐 봐, 이게 똑같아?”

눈물이 가득 고인 단솔의 눈에 윤성의 몸짓이 흐릿하게 보였다. 아무리 봐도 제 눈에는 그게 그거 같았다.

“그게 아니라…….”

울먹이며 변명하려던 단솔의 귀에 우현이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파들 꼬드길 때는 잘만 하더니…….”

“……뭐 ……뭐라고?”

그 말에 결국 그렁그렁하던 단솔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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