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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35화 (35/150)

35화

“태오 씨 미안해요…….”

“아녜요…… 내가 더 미안해야 할걸요?”

13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한 단솔이나, 일찍이 예술 고등학교로 진학해 데뷔를 졸업보다 먼저 한 태오나 사실상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상식 수준이 바닥이었다. 단솔은 특히나 상식 퀴즈에 약했다.

회귀 전, 이이연과 한 팀이 되어 퀴즈 문제를 풀었을 때도 단솔의 반복된 오답 때문에 결국 꼴찌를 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단솔이 오답을 말하는 장면은 방송국 예능 프로 중 역대급 오답 장면으로 꼽히며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됐었다.

본인의 과거를 아는 단솔은 차마 태오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대단한 오답 장면을 뽑아 낼지 슬프게도 기대가 됐다. 문제를 틀려서 받은 악플 세례는 기억이 나는데 안타깝게도 문제와 정답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전 진짜 심각해요…….”

“괜찮아요, 단솔 씨. 제가 진짜 진짜 더 심각해요.”

막내 라인이 서로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본인의 상식 수준을 우회해 예고하고 있을 때, 반대로 대수는 퀴즈에 꽤 자신감을 보였다.

“방송 분량 생각한다고 장난질 치면 가만히 안 있어.”

“저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그러자 이연은 그에 지지 않고 받아쳤다.

―각자 팀마다 구호를 한 번 정해 볼까요?

“……둘둘대수.”

뭐니 뭐니 해도 단순한 걸 최고로 여기는 대수가 아주 잠시 고민을 하더니 구호를 뱉었다. 이연도 꽤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아이돌 연합이요!”

그에 질세라 태오가 상의 없이 구호를 뱉었다. 구성원 조합에 맞는 적절한 구호였다.

“태오 씨, 우리 구호가 너무 긴 거 아니에요?”

“단솔 씨, 퀴즈는 말이에요. 구호가 아니라 기세예요, 기세.”

“아…… 알겠어요!”

별로 믿음직해 보이지 않는 태오였지만, 단솔은 애써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솜 주먹을 꽉 쥐고 결의를 다졌다.

“우리는 하우두유두 어때요?”

“네⁈”

“하우두유두 할게요!”

“아니……! 잠깐만요!”민성은 두현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장 구호를 정했다. 두현이 싫은 기색을 내비쳤지만, 안타깝게도 민성에게는 그것이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지수는 픽 하고 그들을 비웃었다, 마치 한 수를 놓친 신입을 바라보는 경력직의 여유로운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답!”

“오…….”

“우리는 ‘정답!’으로 하겠습니다.”

지수의 노련함에 민혁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단솔은 그 모습에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었다.

“우리도 좀 짧은 걸로 할 걸 그랬나 봐요…….”

다른 팀에 비해 구호가 길어 불리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단솔이 앓는 소리를 하며 태오를 애처롭게 바라보자, 태오는 왜인지 모르게 신뢰가 가지 않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단솔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사실, 구호를 빨리 외치는 것은 이들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단솔 씨! 기세, 기세예요! 일단 뭐라도 생각나면 그냥 자신감 있게 외쳐요!”

단솔은 마지못해 고개를 찬찬히 끄덕였다. 그래도 명색이 회귀자인데, 하다 보면 한 문제 정도는 기억이 나겠지. 이번엔 기필코 역대급 오답 장면으로 망신을 사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좋네요. 각 라운드별로 한 주제당 세 문제씩 주어지며, 답을 맞히신 분은 뒤쪽으로 나가 주시면 됩니다. 팀원 모두가 가장 먼저 통과하는 팀부터 순위가 결정됩니다.

—첫 문제는 일반 상식입니다. 취업은 물론, 학업이나 가사를 할 의욕이 전혀 없는 15세에서 34세 사이의 젊은 청년들을 일컫는 말은?

순간 단솔의 머리는 백지가 되어 버린 듯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 다들 침묵을 지켰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제작진이 힌트를 건넸다.

“무슨 무슨 족으로 끝나는 말이고요. 의류와 관련 있습니다.”

“하우두유두!”

—유두현 씨, 정답은요?

“그…… 저 이거 진짜 알아요. 아…… 읽었는데, 나시족?”

—땡! 아쉽네요. 비슷하긴 한데 아닙니다. 푹신푹신하고 포근포근한~ 옷을 떠올려 보세요.

‘단솔 씨, 퀴즈는 기세예요.’

‘자신감.’

‘외쳐요!’

태오는 정작 자신은 나서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자꾸만 뒷걸음질 치는 단솔을 부추겼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것 같은데, 태오의 목소리가 마치 주문처럼 단솔의 귓가에 울렸다.

‘푹신하고 포근한 옷…… 푹신…… 포근……. 역시…… 푹신한 건 이것만 한 게 없지!’

“아이돌 연합!”

—네! 주단솔 씨?

“패딩족!”

—땡!

“롱패딩족!”

—땡!

“패딩…… 조끼족?”

—땡! 땡! 땡!

단솔이 패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조심스레 눈치를 보던 대수가 입을 열었다.

“둘둘대수.”

—네! 정대수 씨?

“니트족.”

—정답입니다! NEET족은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로, 무직 상태이면서 취업을 위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도 않고, 학문을 공부하지 않는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우이씨…….”

단솔이 원망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자, 대수는 그런 단솔의 눈을 피하듯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단솔의 오답 행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상에 꺼릴 것이 없는 크고 넓은 도덕적 용기를 말하는 고사성어는?

“아이돌 연합! 용기백배!”

—땡!

“둘둘재수, 아니 둘둘대수!”

—네! 이이연 씨?

“호연지기.”

—정답입니다!

—다음은 넌센스 퀴즈입니다. 총을 대충 쏘면?

“아이돌 연합! 탕탕탕!”

—땡!

“아이돌 연합! 대충탕? 아니! 대중탕!”

—땡!

“정답!”

—한지수 씨?

“설렁탕.”

—정답입니다!

이연과 지수가 차례대로 뒤편으로 나갔다. 이미 이연과 대수의 팀이 1등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더 이상 저녁 식사 메뉴는 중요하지 않았다. 거실엔 긴장감이 맴돌았다. 남은 사람들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꼴찌라도 면할 것.

—제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헨리와 캐서린의 이야기를 그린 헤밍웨이의 장편 소설은?

“아이돌 연합! 라이언 일병 구하기!”

하지만 단솔의 폭주로 인해 아이돌 연합의 또 다른 팀원인 태오는 입도 뻥끗 못 해 본 상태였다.

—땡!

“하우두유두.”

—네! 하민성 씨?

“무기여 잘 있거라?”

—정답입니다!

어쩌다 맞춘 정답에 민성은 안심한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첫 촬영부터 무식한 캐릭터로 굳어지면 애써 쌓아 온 배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으니 그에겐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민혁과 두현, 그리고 단솔과 태오였다. 그중 팀원 모두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이돌 연합뿐이었다.

“그…… 단솔 씨. 기세를 조금 죽이셔도 될 것 같아요.”

“아…… 미안해요 태오씨…….”

“아니에요.”

답답한 것은 뒤쪽에 서 있던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야! 제갈민혁! 뭐라도 외쳐! 왜 입도 뻥끗 못 하는 건데!”

민혁은 원망하는 지수에게 닿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운동부란 말이에요…….”

—다음은 음악 문제입니다. 들려 드리는 음악을 듣고, 노래 제목과 가수를 맞춰 주시면 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주가 흘러나왔다. 아니, 흘러나오려고 했었다. 음악이 나온 지 채 1초도 되지 않아 단솔이 아이돌 연합을 외쳤다.

“아이돌 연합!”

“저…… 단솔 씨…… 기세를 조금 죽이라고…….”

미리 언질을 줬음에도 기세가 도무지 죽지 않는 단솔의 모습에 태오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블룸 선배님들의 ‘죽지 않는 새’요!”

—저…… 정답!

하지만, 놀랍게도 죽지 않은 기세의 결과는 정답이었다.

“이게 내 노래라고?”

정작 노래의 주인도 못 알아본 노래를 맞췄다는 즐거움에 단솔과 태오는 얼싸안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와! 단솔 씨 정답이에요!”

“난 죽지 않아! 사라지지 않아! 오! 이 세상이 끝난다 해도! 널 향한 내 마음 죽지 않아! 사라지지 않아! 워우예에에.”

그것도 모자라 두 사람은 마치 연습이라도 해 놓은 것처럼 흘러나오는 전주에 맞춰 시키지도 않은 노래와 칼군무를 뽐내며 아이돌 연합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정답을 말한 단솔이 뒤로 나간 후에도 결국 끝까지 입도 뻥끗하지 못한 태오 덕분에 아이돌 연합은 김과 밥, 그리고 김치로만 저녁을 때우게 되었다.

대수와 민혁은 물론이고, 다른 밥상에서 풍기는 산해진미의 냄새를 뒤로하고서 태오가 맨밥에 김치를 올리며 풀이 죽어 자책했다.

“미안해요…… 단솔 씨는 기세를 잃지 않았는데. 하…… 나 때문에.”

하지만 단솔은 태오를 탓하지 않고, 힘 빠진 태오의 숟가락 위에 김 한 장을 얹어 주며 말했다.

“아니에요 태오 씨…… 비록 우리 졌지만 잘 싸웠어요.”

서로를 탓하지 않고 결과보다 과정을 상기시키던 두 사람의 앞에 제육볶음 한 접시가 놓였다.

“단솔 씨? 너무 잘생겨서 난 배우인 줄 알았는데 아이돌 후배였네.”

“어…… 넵!”

놀랍게도 민성이었다. 어릴 적 TV 화면으로만 보던 우상인 민성을 이렇게 실제로 보다니. 단솔은 정말이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쩌면 제가 이 순간을 위해 회귀한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두현 씨는 관리 중이라 이런 거 안 먹는다네, 많이 남으니까 나눠 먹자고. 아까 노래 부르는 거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민성은 아이처럼 좋아하는 단솔과 태오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네고 돌아섰다. 그 모습을 보며 대수와 이연, 지수와 민혁은 경쟁을 하듯 제 반찬을 덜어 단솔의 앞에 갖다 놓았다.

어느새 단솔의 앞에는 저절로 진수성찬이 쌓였다. 수북히 쌓인 음식에 괜히 민망해진 단솔은 접시 끄트머리를 잡아 태오에게 밀어 주었지만, 어느새 나타난 손들이 다시 접시를 단솔의 앞에 갖다 놓았다.

덕분에 단솔은 누구보다 화려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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