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33화 (33/150)

33화

“다들 잘 지내셨나요?”

이틀 뒤, 춘몽각에 다시 모인 출연자들에게 최 PD가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원래도 퀭한 인상이었지만, 이번엔 정말 고생을 제대로 한 듯 얼굴이 잿빛이었다.

“뭐…… 매니저분들한테도 전달했습니다만, 일련의 고소 사태로 인해서…… 저희가 재정비를 한 상태고요. 일단은 기존에 약속드렸던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다들 다른 스케줄도 있으시니까 일주일 동안 섬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또 일주일은 섬 밖에서 각자 스케줄 처리한 뒤 들어오는 걸로 진행을 할게요.”

피곤해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총명했던 전과 달리 최 PD의 얼굴은 몹시 지쳐 보였다. 별안간, 새로 바뀐 룰을 설명하던 최 PD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찰스 이 개새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뭐야?”

단솔의 뒤편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대수가 미간을 팍 찌푸렸다.

“아까부터 홀짝홀짝 뭘 드시던데, 술이었나 보네…….”

8개월 감봉은 억울하다며 땅을 땅땅 치던 최 PD가 끌려 나가고, 아직 서툰 조연출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자리에 섰다.

“저어…… 일단 숙소에 들어가 계시면…… 다음 일정 설명해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 * *

“이번 일 때문에 스케줄 다 어그러져서 저희 다음 앨범도 뒤로 미루게 생겼어요.”

춘몽각으로 들어온 태오가 거실 소파에 눕다시피 앉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어그러진 스케줄이 남 일은 아닌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솔 씨는 다음 앨범 스케줄 괜찮아요?”

태오의 물음에 단솔은 말문이 막혔다. 정확히 말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회귀 전, 다이노소울의 앨범은 지금 활동 중인 곡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니까.

“저희는…… 아직 계획 없어요.”

—안녕하세요, 출연자 여러분. 오랜만에 뵙습니다.

단솔의 말에 태오가 무언가 더 물어보려던 찰나,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듣는 방송에 단솔은 괜히 마음이 두근거렸다. 회귀 전과 완전히 달라진 상황. 치킨집에서의 일 이후로 단솔의 마음속에는 작은 희망이 피어났다.

어쩌면 이번엔 전과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대수나 지수만큼의 인기는 아니더라도…… 남들에게 욕먹지 않을 정도로. 어쩌면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오늘 일정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저희 춘몽각을 찾아온 새 식구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섬 밖으로 나가기 전, 지수와 최 PD가 다투는 소릴 듣고 뉴 페이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던 출연진들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서바이벌의 긴장감을 돋우기 위해, 탈락자가 발생한 다음 주부터 새로운 멤버가 투입될 예정입니다.

—이어서 새 멤버 투입 룰을 소개하겠습니다. 알파가 탈락할 경우 오메가 멤버가, 오메가가 탈락할 경우 알파 멤버가 투입됩니다. 지난번 오메가인 윤여민 씨의 탈락으로 이번 주는 알파 멤버가 투입됩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허.”

기존 멤버의 탈락 후 새로운 멤버가 투입되는 포맷은 이런 종류의 연애 서바이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메가가 떨어지고 알파가 온다니.

거실에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일었다. 출연자들의 표정이 썩어 문드러지든 말든, 스피커에서는 새 멤버를 소개하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새로운 멤버를 소개합니다.

스피커에서는 새 멤버의 이름 대신 별안간 노래가 한 곡 흘러나왔다.

“커흡.”

그 노래에 단솔의 옆에 앉아 솜털이 보송보송한 단솔의 옆모습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던 지수가 사례에 걸린 듯 기침을 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쉿! 시크릿! 너와 나의 비밀 감추려고 들수록 파고드는 나의 손길~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중얼거리는 지수와 달리 단솔과 태오는 흘러나오는 노랫말에 눈이 반짝거렸다.

“블룸⁈ 블룸 누구예요?”

블룸은 단솔에게 가수의 꿈을 만들어 준 전설적인 아이돌 그룹이었다. 13살, 단솔이 연습생 오디션을 볼 때도 블룸의 노래로 오디션을 봤었다. 단솔은 이곳에 자신의 우상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누구? 설마 그분?”

그리고 그 기대는 태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태오와 단솔은 어느새 일어선 채 현관으로 몸이 쏠려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었다. 그 시절, 단솔과 태오의 또래라면 블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때맞춰 현관문이 열리고 누군가 복도를 걸어 들어왔다. 슬로 모션처럼 긴장감 가득한 순간에 단솔이 침을 꿀꺽 삼켰다.

블룸은 모든 멤버가 매력적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한 사람을 꼽으라면…… 호불호 없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외모, 그리고 춤, 노래, 연기까지 아직까지도 아이돌 후배들 사이에서 육각형 멤버의 정석으로 손꼽히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민성입니다.”

“흡…… 진짜 민성이 형이야……!”

“어떡해……! 어떡해!”

단솔과 태오가 차마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민성이 캐리어를 끌고 들어오며 지수에게만 작게 인사를 건넸다.

“지수 오랜만이네.”

* * *

<알파×오메가 속마음 인터뷰>

Q : 제갈민혁 씨, 새 멤버를 맞이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제갈민혁 : 진짜 죄송한데…… 저는 그분을 잘 몰랐어요. 그땐 제가 운동할 때여서…… 그냥 배우인 줄 알았는데 원래 아이돌이시라고…….

Q : 블룸을 모르셨다고요?

제갈민혁 : 네…….

Q : 정대수 씨, 새 멤버를 맞이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정대수 : 우리나라 방송이 참…… 많이 발전했구나.

Q :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정대수 : PD님이야말로…… 왜 모르는 척하세요.

Q : 제…… 제가 뭘요?

정대수 : 에이, 대한민국 사람 중에 한지수랑 하민성이랑 사귄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Q : 이이연 씨, 새 멤버를 맞이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이이연 : 와…… 근데 이거…… 이렇게 해도 되나? 최 PD님이 독한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Q : 유두현 씨, 새 멤버를 맞이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유두현 : 와우, 구경꾼으로서는 엄청 재밌을 거 같긴 한데…… 제 방송 분량은 안 나올 거 같아요. 이렇게 된 거 그냥 한지수 특집 가시죠?

Q : 마태오 씨, 새 멤버를.

마태오 : 우선, 민성이 형은 진짜 제 우상이거든요. 하…… 근데 진짜 저랑 같이 이 춘몽각에서 지낸다고 하니까 실감이 안 나요. 아까 제가 짐 들어 드렸더니 ‘제우스의 마태오 씨죠? 잘 보고 있어요’ 이러시는 거예요. 와 미친…… 우리 형이 내 이름을 안다? 그때부터 심장이 막 자진모리장단으로 뛰기 시작하는데……. 장난 아니다, 이건. 진짜 저 뛰쳐나가서 저희 멤버들한테 전화할 뻔했어요.

Q : 주단솔 씨, 새 멤버를 맞이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주단솔 : 제가 처음 오디션 봤을 때…… 블룸 선배님 노래 불렀거든요. 그때 딱 제가 민성이 형 파트였어요. 보실래요?

Q : 아니요.

주단솔 : 쉿! 시크릿! 너와 나의 비밀 감추려고 들수록 파고드는 나의 손길~ 벗어날수록 어림없지 거부하지 마! Don’t say no~ yeah!

Q : ……잘 봤습니다.

Q : 한지수 씨, 새 멤버를 맞이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한지수 : 푸하하, 뭐…… 재밌네요. 뭐, 당황을 좀 하긴 했는데. 이런 식의 변주? 프로그램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욕심날 만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해요.

Q : 지금은 아무 감정이 없으신 건지?

한지수 : 푸하하하하, 그럼요 당연하죠. 솔직히 까먹고 있었어요. 하도 오래된 일이라…… 제가 그때 어리기도 했고. 뭐…… 사실 그냥 친구였죠. 워낙 어린애들이니까 뭐. 근데, 최 PD는 어디 갔어요?

Q : 하민성 씨, 춘몽각에 입주한 소감이 어떠신지요?

하민성 : 뭐, 일단은 환영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좋네요. 반가운 얼굴도 있고.

Q : 한지수 씨 말인가요?

하민성 : 아, 지수도 오랜만이긴 하죠. 근데, 그보다는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하고 팬인 분이 계셔서. 좀 떨리네요.

Q : 이미 마음에 드는 오메가가 있으신 건가요?

하민성 : 아, 이게 또 그렇게 되나요? 궁금한 분이라고 해 두죠. 아직까지는.

* * *

새 멤버가 공개된 뒤로 지수의 신경은 잔뜩 곤두서 있었다. 게다가 알파 층에 있는 알파 멤버의 방이 다 차는 바람에 민성은 윤여민이 쓰던 방에 제 짐을 풀기 시작했다. 전 애인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침을 하게 된 셈이었다.

그 와중에도 지수는 단솔의 캐리어 손잡이를 빼앗아 들었다.

“형……! 제가 들 수 있어요!”

“너 아직 발목 다 안 나았잖아.”

단솔이 보호대를 찬 발목이 민망한 듯 꼼지락거렸다. 이전에 화해를 하긴 했지만, 막상 춘몽각으로 돌아오니 지난번 일이 자꾸 생각나 단솔은 왜인지 모르게 괜히 움츠러들었다.

그런 단솔과 달리 당연히 제 방으로 단솔의 캐리어를 들고 들어가려던 지수를 붙잡은 것은 막내 FD였다.

“저……! 한지수 선배님! 그게…… 두 분 이제 방 따로 쓰셔야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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