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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31화 (31/150)

31화

촬영이 끝나자마자 지수는 단솔의 대기실 문 앞에서 보초를 서는 것처럼 서 있었다.

“형…… 저 옷 갈아입어야 하는데요.”

지수가 문을 열고 서 있는 통에 민망해진 단솔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아, 미안. 그거 잘 어울리는데 그냥 입고 갈래?”

단솔을 넋 놓고 보고 있던 지수가 곧장 의상 팀장을 호출했다. 단솔은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지수가 먼저 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 우리 입은 옷 내가 사도 되죠?”

“왜, 마음에 들어?”

“어, 그것도 그렇고. 우리가 급하게 어디 가 볼 데가 있어서.”

“알아서 해요. 단솔 씨가 입은 티셔츠 사실 내가 이번에 런칭한 거라, 입고 다녀 주면 나야 기쁘지. 단솔 씨 의상비는 안 받을게. 몇 장 더 줄 테니까 멤버들 갖다줘.”

“내 거는?”

“자기는 사 입어. 그 가죽 재킷 명품인 거 알지? 매니저한테 청구서 보낼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럼 보내는 김에 솔이 거랑 똑같은 티셔츠 하나 더 달아 놔. 같이 입게.”

“응? 자기 오버 핏 싫어하잖아.”

“어, 아니 이제부터 좋아하려고. 나 오버 핏 완전 좋아. 우리 먼저 갈게요. 알아서들 퇴근해.”

지수는 마치 자신이 단솔의 매니저라도 된 것처럼 바리바리 양손에 단솔의 짐을 들곤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어― 길성 씨도! 퇴근해!”

언제 통성명까지 마친 건지 굼뜨게 돌아온 길성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수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단솔은 지하 주차장에 와서야 지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 어디 가는 거예요?”

지수가 바로 앞에 서 있는 뽀르쉐 카브리올레의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우리 집.”

차 안에는 어색한 공기가 가득했다. 지수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차에 타긴 했지만, 단솔은 그때까지도 지수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단솔의 머릿속엔 톱스타 한지수의 집은 어떨까 하는 착실한 궁금증이 쌓여 갔다.

“납치하듯 데려와서 미안.”

“가서…… 뭐 할 건데요?”

지수는 단솔의 경계하는 눈빛 속에 어린 약간의 기대감을 발견했다. 단솔은 종종 지금처럼 갓 태어난 길고양이처럼 굴었다.

“사과. 단단히 사과할 거니까, 어설프면 받아 주지 마.”

꼭 사과를 하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받으러 가는 사람인 것처럼 비장한 모양새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지수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마치 수입차 전시장이라도 된 듯 늘어선 차들을 보며 단솔이 순수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여기는 진짜 부자들만 사나 봐요.”

“응? 솔이 차 좋아해?”

“아뇨, 전 면허도 없는걸요. 제가 아는 차라고는 그냥 까만 차, 흰 차, 아니면 비싼 차.”

지수는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이곳이 아파트 전체 주차장이라고 믿는 단솔에게 이곳이 제 전용 주차장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노란색, 빨간색, 형광 초록색, 형형색색 반짝거리는 자신의 차들을 보며 머쓱한 듯 눈썹 부근을 긁적거릴 뿐이었다.

“나중에 필요하면 말해, 형아가 한 대 사 줄게. 아니다, 내가 솔이 전용 운전기사 할까? 어때? 나 운전 잘하지 않았어?”

“아뇨. 거절할래요.”

“왜?”

지수가 엘리베이터 버튼에 지문을 갖다 대며 울상을 지었다. 단솔은 그 모습이 신기한 듯 유심히 지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자, 버튼은 딱 네 개밖에 없었다. 주차장, 펜트하우스, 그리고 열림과 닫힘.

단솔은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운전기사 월급이 제 통장 잔고 다 합쳐도 안 될 것 같은데요…….”

“우리 솔이는 귀엽고 예쁘니까 형아가 공짜로 해 줄게.”

지수가 웃으며 위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펜트하우스가 있는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커다란 옥상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펼쳐진 정원의 모습에 단솔은 꼭 용궁에 끌려 온 토끼가 된 기분이었다.

“민재한테 말해 주면 좋아하겠다…….”

“응? 민재가 누구야?”

“아, 저희 팀 막내요…… 연예인들 어떻게 사는지…… 듣는 거 좋아하는……. 아, 죄송해요. 이런 거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건데.”

“너희도 연예인인데 다른 연예인들 사는 게 궁금해?”

“에이…… 저희랑은 다르죠. 말했잖아요, 저희는 반지하 방에 8명이서 산다고요. 연습생 때는 숙소가 침수돼서 하루 온종일 물만 퍼낸 적도 있어요.”

앞서 걷는 지수를 따라 걸으며 단솔은 궁핍한 아이돌 연습생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적당히 차이가 났으면 이런 호화로운 생활이 질투라도 났겠지만, 단솔에게 지수가 누리는 삶은 너무나도 먼 도시의 이야기였다.

단솔은 머나먼 별에 대고 이야기하듯 말을 이어 나갔다.

“어떤 되게 인기 많은 아이돌은 숙소에 집안일 해 주는 아주머니가 계신대요. 그리고 아주머니가 쉬시는 방도 따로 있대요. 형네 집도 그래요?”

“태오가 그래?”

“아니요…… 태오 씨가 아니라요. 그냥 다른 인기 많은 아이돌이요…….”

지수는 단솔의 말에 푸스스 웃었다. 저렇게 얌전한 성격에 이런 이야기까지 터놓을 만큼 친한 다른 아이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따로 집안일 해 주는 분은 있는데, 얼굴은 본 적 없어. 주로 내가 없을 때 와서 잠깐 일하고 가거든. 내가 워낙 누가 내 집에 드나드는 걸 싫어해서.”

그 말에 방금 막 현관에 도착한 단솔의 발이 마치 눈치를 보듯 주춤거렸다. 지수는 현관문을 열면서 말했다.

“아, 근데 초대한 사람은 예외, 특히나 주단솔이면 언제든 환영.”

따라따라단— 철 지난 예능의 인트로 음악을 따라 부르며 지수가 현관문을 열었다.

“민수랬나? 형아가 오늘 솔이가 해 달라는 거 다 해 줄 테니까. 너희 팀 막내한테 가서 실컷 자랑해.”

“아! 자랑이 아니라요오…… 와!”

자신을 민재와 같은 어린애 취급하는 것 같은 지수의 반응에 항변하려던 단솔의 눈에 미술관을 옮겨 놓은 듯한 지수의 집이 들어왔다. 2층짜리 복층 형태의 집의 창은 통창으로 이루어져 한강이 한눈에 들어왔고, 층고는 목이 꺾일 정도로 높았다.

“아…… 스타의 삶이란 이런 거구나…… 이 자본주의의 냄새…….”

단솔은 지수의 집에서 나는 향긋한 향기를 잔뜩 들이마셨다.

“응? 우리 집에서 무슨 냄새나, 솔아?”

지수는 연신 킁킁거리는 단솔을 소파에 앉혔다. 그러곤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낸 뒤 커피를 내렸다.

“이거 먼저 먹고 기다리고 있어. 배고프지? 금방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전 괜찮아요!”

거실에서 주방까지 말하는데도 소리가 왕왕 울렸다. 밥보다는 집구경을 집을 구경하고 싶었던 단솔이 연신 두리번거리던 중 발치에 무언가가 툭 하고 부딪혔다.

“이게 뭐지……?”

단솔의 발에 부딪혀 넘어진 것은 강아지 모양의 로봇이었다. 넘어진 로봇을 일으키자, 로봇은 마치 진짜 강아지처럼 눈을 빛내며 왕왕 짖었다. 제 무릎에 로봇을 올려놓은 단솔이 저도 모르게 진짜 강아지를 만지듯 로봇을 문지르자, 로봇의 눈이 활짝 웃는 눈으로 바뀌었다.

“귀…… 귀여워……!”

“귀엽지? 내가 키우는 반려 로봇.”

케이크와 커피를 트레이에 담아 오던 지수가 말했다. 컵과 접시마저 세트로 맞춘 듯 알록달록하면서도 모던한 디자인이 시선을 끌었다.

“반…… 반려 로봇이요? 이름이 뭔데요?”

“판수, 한판수.”

강아지 이름 치고는 묘하게 촌스러운 이름에 단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름 촌스럽게 지어야 오래 산대서. 내가 전에 키우던 강아지 죽고 나서 좀 힘들었거든. 신인 때까지 키웠는데, 한 15년 정도? 그땐 내 스케줄이 바빠서 몰랐지. 강아지가 그렇게 늙어 버린걸.”

“그래서…… 로봇 강아지를…….”

“텅 빈 집에 들어오는 건 외롭고, 나처럼 바쁜 주인은 내가 강아지라도 싫을 것 같아서. 이래 봬도 나름 위안이 될 때가 있어.”

지수의 말에 단솔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쁜 접시와 집안 곳곳에 놓인 오브제, 로봇 강아지까지. 춘몽각에서 꼭 필요한 물건 외에는 두지 않던 지수와 꽤 다른 모습에 단솔은 뜻밖이라는 생각을 했다.

“솔아, 내가 오늘 여기 널 데려온 건…… 정말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어서야.”

품에 안긴 강아지를 연신 쓰다듬던 단솔에게 지수가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 저 이미 괜찮아요. 형 아프셨다면서요. 아프면 예민할 수 있죠. 그리고 이렇게…….”

단솔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이 집에 비하면 춘몽각의 방은 작은 창고 수준이었다. 단솔에게는 그곳이 파라다이스였지만, 지수라면 충분히 답답함을 느낄 만했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다가…… 거기서 저랑 같이 한방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못 견디겠다는 말…… 저 이해해요 형.”

“아니, 내가 못 견디겠는 건…… 그런 게 아니라.”

널 너무 좋아해서 못 견디겠다고.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렇게 시작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틱틱틱틱―.

띠리링.

그때 누군가 현관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왔다. 복도가 길어 누군지 바로 보이진 않았지만, 쿵쾅거리는 발걸음이 심상치 않았다.

“이 도둑놈 새끼, 감히 내 집을 털어 갈 생각을.”

“대수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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