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일주일이 지나도록 방송국 쪽에서는 계속 기다려 달라는 말뿐이었다.
섬에서 나오자마자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상황을 눈치채고 각자 활동을 시작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프로그램이 재개되기만을 기다리던 단솔의 소속사도 촬영 중단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자, 음악 방송에 단솔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 스케줄 다 잡는 건데. 우리만 호구 됐어.”
길성은 1위 후보에 오른 제갈민혁과 중간 광고에 나오는 마태오를 보고 툴툴거렸다. 하지만 상황이 달랐다.
제갈민혁은 음반 활동을 하지도 않았고, 오롯이 음원만으로 1위 후보에 오른 것이었고, 마태오의 광고는 서바이벌 촬영 전에 찍어 놓은 것이었다.
길성은 자꾸만 단솔을 그들과 같은 선상에 두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솔은 주제 파악에 능했다. 한껏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제가 쳐다도 못 볼 곳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연예계는 신분제가 분명한 동네였다.
8명이나 되는 다이노소울은 다른 두 팀과 함께 총 11명이서 대기실을 써야 했다.
“형! 제우스는 대기실을 두 개나 쓴대!”
남의 소식에 발 빠른 민재가 단솔에게 귓속말했다.
“거긴 언제 또 갔다 왔어? 남의 대기실 앞에 기웃거리지 마. 괜히 오해받아.”
“화장실 가는 길에 본 거거든? 형아, 근데 제우스 리더랑은 안 친해? 우리 인사하러 가면 안 돼?”
“안 친해.”
“왜? 같이 먹고, 자고 했을 거 아냐!”
“야, 서민재. 형 귀찮게 하지 마.”
우현의 일갈에 어린 민재가 분한 듯 씩씩거렸다.
“제우스 리더가 망돌 리더랑은 친구도 안 해 준대?”
“야! 그만하라고! 안 그래도 프로그램 엎어지게 생겨서 형 심란한데……!”
“우리 형이 이렇게 실업자가 되다니……. 우린 실업 급여도 안 나오는데…….”
메이크업을 끝낸 지웅도 가세했다. 눈을 감고 메이크업 받던 단솔은 그제야 동생들이 자신을 놀리려고 하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자식들이……!”
“으아악.”
* * *
똑똑.
“다이노소울 리허설 준비할게요.”
“네!”
오랜만의 무대에 잔잔한 떨림이 느껴졌다. 긴장한 단솔은 무대로 향하는 복도에서 내내 자신의 이름표를 만지작거렸다. 동선을 파악하기 편하라고 만든 이름표는 단솔의 상반신을 절반이나 덮을 정도로 커다랬다.
“형, 평소보다 사람들이 좀 많은 거 같지 않아?”
리허설은 보통 빈 객석을 앞에 두고 진행됐었다. 인기가 많은 아이돌들은 팬들을 미리 입장시켜 주기도 했지만, 팬덤의 규모가 대학 소모임 정도인 다이노소울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우리 팬들이야?”
“아닌 거 같은데……. 허! 형아 저기 봐, 헤이븐 서린이다.”
객석에 자리한 것은 다른 가수들이었다. 뜨기 시작하는 신인들이 나오면 종종 댄서들과 함께 무대 아래에서 지켜본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위협할 정도의 역량이 되는지의 견제와 동시에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무대 경험이 많지 않은 신인들은 선배 가수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무너지기 일쑤였으니까.
“다른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해. 지하 연습실이랑 똑같아.”
단솔이 긴장한 다른 멤버들에게 말했다. 그건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한쪽 귀가 잘 안 들리는 상태로 라이브를 해야 하니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곧이어 다이노소울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단솔은 언제 얼굴을 굳혔냐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무대를 이어 나갔다.
* * *
한편, 태오 역시 객석에서 단솔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우스 멤버들은 물론이고, 다른 아이돌들까지 나와서 단솔을 구경하고 있는 통에 초조한 마음이 커졌다.
흰색 박스티를 입고 춤추는 단솔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니었다.
“나 이따가 쟤 번호 딸 거야. 존나 꼴리게 생겼네.”
“야 야, 알파들이 다 쟤한테 매달리는 거 못 봤어? 정대수, 제갈민혁 보다가 너 보면 오징어인 줄 알걸.”
“야, 그래도 내가 마태오보다는 낫지 않냐?”
“내가 걘 이김.”
앞자리에 앉아 단솔을 향한 성희롱을 서슴지 않고 하던 이들은 설마 태오가 제 뒤에 앉아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하는 듯했다.
“다이노소울!”
마침 단솔의 무대가 끝났다. 태오는 단솔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와아―, 주단솔 멋있다!”
제 이름이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단솔이 태오를 보고 살짝 미소 지었다.
단솔과 태오에 대해 함부로 말하던 이들은 태오가 자신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자기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을까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태오가 씽긋, 웃었다.
“너희가 나보다 낫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우성 알파의 위압적인 페로몬에 그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태오는 허리를 숙여 단솔을 희롱했던 이와 눈을 맞췄다. 이름도 모르는 까마득한 후배 가수였다.
“근데, 네가 누구였더라?”
대꾸할 가치도 없는 일에 시간을 너무 썼나.
태오는 돌처럼 굳어 버린 그들을 두고 단솔이 들어간 백스테이지로 몸을 돌렸다.
* * *
“형! 뭐야! 제우스 리더랑 안 친하다며!”
“안 친해. 민재 너 음정 너무 불안하더라. 본 무대에서는 그러지 마.”
단솔은 잔뜩 신이 나서 들떠 있는 민재에게 일부러 잔소리를 했다. 단호한 말투에 삐진 민재가 발을 쿵쿵, 구르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다른 멤버들도 괜히 불똥이 튈까 서둘러 대기실로 몸을 숨겼다.
복도에 혼자 남은 단솔이 어린 동생들의 철없는 모습에 한숨을 쉬고 있던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솔 씨.”
“아…… 태오 씨.”
“오랜만이네요.”
“네…….”
실로 어색한 인사였다. 한집에서 함께 살던 때도 있었는데, 현실에 정착한 일주일의 시간이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공기를 만들어 냈다.
“디엠 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구요.”
“원래 SNS를 잘 안 해요. 핸드폰도 잘 안 보고. 죄송해요.”
그러고 보니 회귀한 뒤로 핸드폰을 거의 보지 않았다. 회귀자인 단솔에겐 지금의 핸드폰이 오래된 기종인지라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이 침침해졌다.
상처가 될 걸 알면서도 악플들을 찾아봤던 습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단솔은 세상과 멀어질 필요가 있었다.
상처 위에 생긴 딱지를 뜯으면 상처가 덧날 걸 알면서도 뜯어내는 못된 습관을 고치려면, 손을 묶어 두는 게 직방이었다.
“죄송하라고 한 말은 아닌데…….”
“…….”
“저…… 핸드폰 번호 좀 알려 주면 안 돼요?”
태오는 쑥스러운 듯 핸드폰을 내밀었다. 단솔의 손이 머뭇거리는 걸 보곤 태오가 다급하게 덧붙였다.
“지수 형도 단솔 씨 번호 물어보던데…… 알려 줘도 돼요?”
하지만, 단솔은 오히려 태오의 핸드폰으로 향하던 손을 급하게 거두었다.
“저…… 안 될 거 같아요. 회사에서…… 싫어해요.”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미안해요. 근데 단솔 씨…… 그날 일 때문에 여전히 불편해요? 아픈 사람이 예민해서 한 소리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요. 전화번호도 지수 형이 사과하고 싶대서 물어본 거예요.”
“아파요……? 누가요?”
“지수 형이요. 설마, 지수형 입원한 거 몰랐어요? 그날 지수 형 쓰러지고……. 지금쯤 퇴원했으려나.”
“…….”
단솔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놀라는 단솔의 표정에더 황당한 것은 태오였다.
“알오매치 커뮤니티도 지금 다들 난리잖아요. 최 PD가 혹사시킨 거 아니냐고……. 설마 그것도 몰라요?”
“커뮤니티요……?”
“설마…… 그것도 회사에서 못 보게 해요?”
태오는 단솔이 말로만 듣던 아이돌 노예 계약을 한 게 아닐까, 진심으로 걱정됐다.
“그건 아니고…….”
‘회귀했는데, 핸드폰이 너무 작아요. 인터넷도 느려서 속이 터질 것 같아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단솔은 커다란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마땅한 변명거리를 찾았다.
“데이터가 없어요. 숙소에 와이파이도 잘 안 터지고…….”
그렇게 태오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