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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28화 (28/150)
  • 28화

    “형, 나 여기서 세워 줘.”

    멤버들이 좋아하던 치킨집 앞에서 차를 세웠다.

    “여기? 왜?”

    “애들이 기다린다며, 배고플 거 같아서.”

    “인마! 너 연예인이야! 함부로 이렇게 돌아다니면 안 돼! 내가 숙소로 배달 시킬게, 차라리!”

    “여기 포장 2000원 할인이야, 형. 배달 수수료는 4500원이고.”

    “아…… 그래?”

    밥 먹는 돈도 아깝다며 회사 앞 또와 분식에서 1인당 6000원 제한을 걸어 놓는 회사였다. 가장 저렴한 메뉴가 6500원짜리 김치볶음밥이라 멤버들은 늘 메뉴를 7개밖에 시키지 못했었다.

    “500원은 좀…… 크지.”

    길성이 걱정스레 중얼거리자 단솔이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 형.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김미숙 명인 간장 치킨에서 날 알아볼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지……. 그럼 여기 주차하기가 애매해서 한 바퀴 돌고 올게.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어.”

    “응?”

    후드티를 뒤집어쓴 채로 뒤를 돌아보는 단솔에게 길성이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법카야. 사장님께는 내가 잘 말씀드릴게.”

    “형, 나 돈 있어.”

    “영수증 꼭 떼 오고, 그…… 이거 쓰고 가.”

    길성은 글로브박스에 들어 있던 사장의 선글라스와 낚시용 모자를 꺼내 주었다. 빨간색이 옅게 틴팅된 선글라스는 속이 다 비쳐 가리는 의미가 없었고, 파란색 물고기가 그려진 모자는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보다는 잡아끌었다.

    의미 없는 아이템들이었지만, 단솔은 오늘 하루만큼은 길성의 유난함에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딸랑—.

    무거운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종소리가 들렸다. 실내는 기름 냄새와 맥주 찌든 내가 가득했다.

    “사장님!”

    단솔은 익숙하게 간장 치킨의 명인, 김미숙 사장을 불렀다. 여느 때와 같이 실없는 농담이나 던질 줄 알았던 그녀가 주방 밖으로 나와 단솔을 반겼다.

    “어⁈ 왔다! 왔어! 야! 성구야,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린 줄 알어⁈”

    치킨집 사장 미숙은 늘 단솔을 주말 드라마 속 역할이었던 ‘변성구’로 불렀다. 낯선 일은 아니었다. 간혹 단솔을 연예인으로 알아보는 이들은 대부분 중년의 어르신들이었고, 그들에게 익숙한 건 주단솔이 아니라 변성구였으니까.

    “어⁈ 미친…… 진짜네?”

    그때였다. 카운터 앞 테이블에서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거울을 쳐다보고 있던 중학생이 단솔을 보고 외쳤다.

    “너! 말투 좀 곱게 쓰라고 했지? 교양 없이 미친이 뭐야!”

    미숙이 소율의 등짝을 철썩철썩, 내리치며 혼을 내다 단솔을 의식한 듯 갑자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내가 몇 번 말한 적 있지? 우리 딸, 소율이.”

    “아…… 네가 소율이구나…… 안녕?”

    단솔은 어색한 듯 손을 올려 인사를 했다. 그러자, 소율은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꺄악! 미쳤어!”

    당황해서 뒷걸음질 치는 단솔을 붙들고 미숙은 설명을 했다.

    “아니, 우리 딸이 며칠 전에 TV를 보고 있는데 네가 나오는 거야. 가게 단골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안 믿더니. 거봐! 엄마 말이 맞지?”

    “와…… 미친…… 대박……! 오빠 사진 찍어도 돼요?”

    소율은 이미 몇 번이고 셔터를 눌러 놓고 단솔에게 물었다. 사인이나, 사진 요청을 거절해 본 역사가 없는 단솔은 얼어붙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악!”

    소율은 멍하니 서 있던 단솔의 옆에서 몇 번이나 사진을 찍은 뒤, 자신의 스토리에 사진을 올렸다. 소율이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는 사이, 단솔이 사장에게 주문을 했다.

    “사장님, 간장 둘, 양념 둘, 후라이드 둘이요.”

    “여섯 마리? 얘 성구야, 너희 동생들이 몇 명이라고 했지?”

    “다이노소울, 여덟 명!”

    단솔이 대답하기도 전에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던 소율이 대신 대답을 했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에 1인 1닭은 해야지. 오늘은 그냥 줄게 받아 가.”

    “어⁈ 아니에요. 저 돈 있어요!”

    “오빠! 팬이 주는 선물이니까 받아요!”

    “그래! 괜찮아! 받아!”

    “그래도…….”

    미숙은 팬이라는 말에 당황해 우물쭈물하는 단솔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언제 프린트 한 건지 단솔의 포털 프로필 사진이 인쇄된 사인지였다.

    “대신…… 우리 가게에 붙여 놓게 사인 한 장만 부탁해도 될까?”

    “아…… 제 사인을요……? 근데 저 사인이 없는데…….”

    “오빠! 제 친구 여기 근처에 딱 5분이면 온다는데 기다려 주시면 안 돼요? 진짜, 진짜 오빠 팬이에요 제발요.”

    “그…… 그래…….”

    어차피 치킨이 나오려면 5분은 훨씬 더 걸릴 일이었다.

    “꺄악! 고마워요, 오빠! 사인 없으면 그냥 이름이라도 써 줘요!”

    “으…… 응…….”

    정말 한 5분쯤 지났을까, 소율만큼이나 시끄러운 아이들 수십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작은 가게 안이 발 디딜 틈 없을 정도가 되자 단솔은 이 말도 안 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어느새 김미숙 명인의 치킨집은 단솔의 팬 사인회 현장이 되어 버렸다.

    멀찍이 떨어진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길성이 상황을 파악한 것은, 소율이 올린 단솔의 사진이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온 뒤였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제정신이야⁈ 너 애한테 치킨 심부름 보냈냐⁈

    “에? 아…… 카드 문자 보셨구나. 사장님 솔이 고생했는데 치킨 정도는 긁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정 안 된다고 하시면 제 카드로 다시 결제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이 자식아! 사진 떴다고! 사진!

    길성은 그제야 치킨집으로 들어와 단솔을 데리고 빠져나왔다. 길성이 급하게 얼굴을 가렸지만, 이미 사진은 찍힐 대로 찍힌 후였다.

    그 와중에도 단솔은 치킨 여덟 마리를 꼭 쥐고 있었다.

    * * *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우리동네 치킨집에 단솔이 왔대 미친...

    (치킨 꼭 쥐고 매니저한테 끌려가는 단솔.jpg)

    ⤷솔아 ㅠㅠㅠ장사해도 되겠다 봉투 몇 개야 도대체

    ⤷여덟마리네 멤버들이랑 1인1닭하려고 하는 듯

    ⤷근데 촬영중에 나와도 돼? 아직 종영할 때 안 됐잖아

    ⤷설마 솔이 떨어진거임? 아 미친...

    ⤷아니 우리 아기 햄스터를 왜....

    ⤷말도 안된다 솔이 떨어지면 안볼거야ㅠㅠㅠ

    ⤷솔직히 근데 끝까지 가기엔 좀 약했음. 다른 출연진들은 다 탑급 네임드인데 뜬금없이 등장해서 알파들 다 홀리는 것도 그렇고

    ⤷홀릴만 하니까 홀리지. 네 말대로 탑급 알파들이 홀리는 이유가 있지 않겠?

    ⤷걔네는 날때부터 인기 많았나봄 두고 봐라 몇 년만 지나면 주단솔이 이바닥 씹어먹을 걸?

    ⤷미리 성지순례 왔습니다

    ⤷22222

    솔이 탈락 아닌 이유.

    내일 정대수 영화 홍보 일정 있음. 마태오도 피부과 인증샷 뜸. 지난 시즌 찰스가 PD고소한 거 때문에 단체로 휴가받은 듯?

    ⤷오 다행이다 미친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치 솔이가 떨어지면 누가 돼....

    ⤷철렁했네 진짜ㅋㅋㅋㅋ진짜 무명 갓기였는데 나와서 놀랬겠다 우리 와기

    ⤷근데 내 지인이 방송국에서 조연출하는데, 그 고소건이 생각보다 큰가봄 찰스 가족중에 법조인 있고, 그때 악편 때문에 이미지 나락가서 자살시도하고 이랬다던데, 아예 촬영 중단된 걸 수도?

    ⤷헐 안돼....내 토요일 밤은 어쩌라고 그럼

    ⤷사람이 죽었다는데 사패인줄....

    ⤷죽은 거 아니고 시도한 거고, 확실치 않음. 방송국 조연출이라고 뭐 다아는 줄 아나. 그냥 메인 PD따까리지.

    ⤷이게 진짜 아니더라도 솔직히 최PD 악편으로 유명한 건 사실이잖아 한 번쯤 크게 좆될 줄 알았음. 근데 이번 시즌은 안돼ㅠㅠㅠ

    우리집에 솔민수 아이템있다.

    (제3회 바다사나이 낚시대회 모자.jpg)

    ⤷우리 애기 낚시 하니...?

    ⤷이게 왜 있는건뎈ㅋㅋㅋㅋㅋㅋㅋ쓰니는 어디서 남?

    ⤷아부지거.....

    ⤷아 미치겠다 ㅋㅋㅋㅋ모자이뻐서 솔민수 하려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ㅠㅠㅠ바다사나이라면서 물고기 로고 왜케 귀엽냐고

    ⤷저틴팅선글라스는 어디꺼임?

    ⤷선글이랑 같이 쓰니까 낚시모자도 힙해보임

    ⤷맞아 ㅠㅠ낚시모자도 스트릿패션으로 소화하는 너란단솔...

    낚시모자보고 막 웃다가 안방 화장대 봤는데 솔이랑 똑같은 선글있음....

    (핑크 틴팅 선글라스.jpg)

    이거 우리 엄마 등산갈 때 쓰는건데.....설마?

    비싼 것도 아니고 그냥 기능성 선글....

    ⤷낚시모자 보고 어그로 글 쓰는 건줄 알았는데 ㄹㅇ이네.....

    ⤷솔이 부모님 아이템 털어왔니?

    ⤷아니 근데 왜 잘어울리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

    ⤷무엇이든 소화하는 천상아이돌....

    ⤷저날 현장에 있었는데 진짜 사인 하나하나 다 해주고 사진 다찍어주고 진심 단솔이 천사 그 자체였음 베타인 나도 미치는데 알파였으면 벌써 보쌈했다 ㅠㅠ

    (김미숙 명인 간장치킨에 붙어 있는 단솔이 사인.jpg)

    ⤷아 미친ㅋㅋㅋㅋㅋㅋㅋ개정직하게 주.단.솔.

    ⤷아이돌인데 사인도 없어 왜 ㅠㅠㅠㅠ

    ⤷왠지 저것도 땀뻘뻘 흘리면서 썼을 거같아 귀욤ㅠㅠㅠㅠ

    ⤷사랑둥이다 진짜 ㅠㅠㅠㅠ단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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