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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8화 (18/150)

18화 @????????

단솔은 잠을 설쳤다. 다시 잠들기 위해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쫓겨 벼랑으로 떨어지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상대방은 늘 친절한 얼굴을 하고 다가와 단솔에게 칼을 휘둘렀다. 칼을 피하려고 돌아선 단솔은 늘 벼랑에서 위태롭게 버티다 떨어지곤 했다.

단솔은 알고 있었다. 그건 꿈이 아니라, 회귀 전 자신의 삶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단솔은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벼랑에 서 있었다.

단솔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안고 있던 지수의 팔을 거두어 내곤 춘몽각의 바깥으로 나갔다. 아직 새벽의 안개가 자욱한 섬을 걸으며 악몽의 흔적을 애써 떼어 내고 있을 때였다.

“주단솔 씨.”

해안가를 걷고 있는 단솔의 등 뒤로 다가온 사람은 이연이었다.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아는 척하지 않고 빠져나갔겠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둘밖에 없는 곳이라 단솔은 빼도 박도 못하고 이연과 인사를 나눠야만 했다.

“……운동하러 나오셨나 봐요?”

워낙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닭가슴살 샐러드를 주식으로 먹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연은 그러한 지독한 자기관리를 증명하듯 그림처럼 멋있었다. 단솔에겐 이제 끔찍한 기억을 불러일으킬 뿐이었지만.

“내가 헛걸 보는 줄 알았어요.”

“네?”

“단솔 씨한테 할 말이 있어서 계속 보고 있었는데, 단솔 씨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이제 정말 미쳤나, 너무 단둘이 있고 싶어서 헛걸 보는 줄 알았는데. 진짜 단솔 씨네요.”

그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두현과 다툰 뒤로 지수나 대수, 심지어는 태오까지 돌아가면서 단솔의 주변을 보디가드처럼 지켰다. 덕분에 두현과 맞닥뜨릴 일은 없었지만, 덕분에 혼자 있는 시간까지 사라져 단솔도 답답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렇게 이연을 딱 마주치다니,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더니, 평소처럼 침대에서 꾸물거릴걸. 단솔은 후회가 되었다.

“아, 근데 저는 좀 추워서. 들어가 볼게요.”

“미안해요.”

서둘러 돌아서려는 단솔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뜻밖의 말이었다.

혹시 단솔의 회귀를 그가 아는 것일까, 접점이 전혀 없던 그가 갑자기 사과를 해 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단솔은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뭐가 미안하신데요?”

한편으로는 그 역시 회귀자였으면 하는 기대감이 일었다. 지금이라도 과거의 일을 고백하고 잘못을 구한다면, 속는 셈 치고 그를 용서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나약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단솔의 물음에 이연은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두현이한테, 내가 단솔 씨한테 호감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아마…… 단솔 씨한테 더 악감정이 있는 거 같아요. 어린애 같은 면이 있는 애라…….”

“그래서요?”

마치 두현을 변명하기 위한 듯한 말에 단솔은 저도 모르게 날카롭게 대답했다.

“저를 그렇게 찾으셨던 이유가…… 유두현 씨 편들어 주려고 그러신 거예요?”

“아,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요. 나는…… 그때 일이 왠지 나 때문인 것 같아서.”

“하, 제가 망한 아이돌인데 왜 이이연 선배님 때문이에요. 유두현 씨가 절 싫어하는 건…… 무슨 이유였든 상관없어요 저도 그분 싫어하거든요, 이유 없이.”

그러면 그렇지. 회귀했다고 해서 그가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단솔은 더 이상 그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과거의 일들이 머릿속에 복잡하게 질척거려 두통이 일던 차였다. 단솔은 돌아서 춘몽각으로 향하려 했다.

“왜…….”

하지만 원망 어린 이연의 목소리에 또 한 번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왜 나한테는 곁을 안 주는 거야.”

“…….”

“내가 단솔 씨한테 실수한 거 있어요? 우리 서로 모르잖아. 한 번 알아볼 가치도 없는 사람이에요, 나는?”

예전에 이미 곁을 다 줘 버려서 단솔은 이번 생에선 이연에게 줄 것이 없었다.

물론, 그와 얽힌다고 해서 과거의 일을 반복한다는 건 단솔의 지나친 상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솔은 이이연이라는 사람 그 자체보다는 그의 감정에 휘둘리기만 했던, 과거의 자신을 또 마주하는 게 더 무서웠다.

“네, 싫어요. 저는 선배님 같은 사람이 제일 싫어요.”

단솔은 상처받은 표정의 이연을 해안가에 남겨 둔 채, 절벽 위 춘몽각으로 올라왔다.

* * *

“단솔 씨! 어디 갔다 와요?”

울고 싶은 기분이 된 단솔을 맞이한 것은 민혁이었다. 민혁은 춘몽도의 자연에 심취한 듯, 하루 온종일 섬 곳곳을 쏘다니곤 했다.

“아…… 아침 운동이요.”

“역시……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고. 단솔 씨 엄청 피곤한가 봐요. 아침부터 죽상이네?”

“어…….”

민혁은 남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늘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내가 단솔 씨한테 좋은 거 보여 줄게요. 이거 보면 피로가 싹 사라질걸?”

민혁은 단솔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단솔의 손목을 잡고 춘몽각의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야트막한 정원수가 우거진 곳으로 단솔을 데려간 민혁이 커다란 라면 박스 하나를 꺼내,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았다.

“이게 뭐예요?”

“열어 봐요.”

쭈그려 앉은 민혁이 천진하게 웃었다. 영문을 모르는 단솔은 그의 짓궂은 장난일까, 조심스레 박스의 윗부분을 열었다.

“우와……!”

박스 안에는 고등어색 아기 고양이 세 마리가 있었다.

“만지면 안 돼요. 어미가 있는 애들이라, 어미 오기 전에 살짝 보고 다시 넣어 놔야 해요.”

“어미가 있어요?”

“응. 지금 시간에 꼭 자리를 비우길래, 나도 강제로 새벽 기상이에요.”

“혹시…… 요즘 맨날 집 밖에 나갔던 게…….”

“맞아요. 고양이들은 루틴이 있거든요. 내가 잠복해서 찾아낸 시간이 바로 지금인 거죠. 단솔 씨는 참 운이 좋네요. 나는 며칠 만에 알아낸 걸 한 번에 알아내고?”

민혁의 놀리는 말에도 아랑곳 않고 상자 안에 있는 아기 고양이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미가 어찌나 살뜰히 먹였는지 다들 통통한 배를 내놓고 쿨쿨, 자고 있었다.

“이름이 뭐예요? 이름도 지어 줬어요?”

“네. 단탄지요. 단백이, 탄수, 지방이. 근데 사실 세 마리 다 똑같이 생겨서 그냥 그날그날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요.”

“하하, 이름이 그게 뭐예요!”

“왜요. 인생에서 꼭 필요한 건데! 아! 어미 올 때 됐다!”

단솔과 민혁은 아쉬운 마음을 삼키고 상자를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서도 단솔은 신경이 쓰이는지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이따 오후에도 같이 갈래요?”

“오후에도 볼 수 있어요?”

“츄르랑 장난감 들고 가면, 운 좋을 때는 가만히 있기도 해요. 운 나빠도 뭐…… 할퀴기밖에 더 하겠어요?”

“좋아요! 저랑 꼭 같이 가야 해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던 단솔이 고양이를 보고 나니 훨씬 밝아졌다. 오후에도 같이 오자고 다짐을 받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았다.

민혁은 단솔이 지금처럼만 계속 웃었으면 했다. 저렇게 천진한 얼굴을 가지고 가끔씩 세상사에 지친 사람 같은 표정을 지을 때면, 마음이 아리고 안타까웠다.

가능하다면, 단솔을 안아 주고, 품어 주고.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함께 이불을 덮고 체온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민혁은 그렇게 단솔을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두 사람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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