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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0화 (10/150)
  • 10화

    다음 날 아침, 제갈민혁과 약속한 시간에 나가기 위해서 눈을 뜬 단솔은 제 몸을 숨 막힐 만치 세게 안고 있는 지수의 팔을 치워내느라 한참 동안 애를 먹어야 했다.

    ‘한지수 선배님 되게 근육질이시구나……. 누가 보면 알파인 줄 알겠어. 나중에 운동 어떻게 하시는지 물어봐야지.’

    하루 온종일 춤 연습을 해도 근육이 늘지 않아 고민이었던 저와는 달리, 자는 중에도 탄탄한 지수의 돌덩이 같은 팔을 보며 단솔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달칵, 하고 단솔이 욕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자는 줄 알았던 지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시발…… 무슨 데이트를 이 꼭두새벽부터 한다고. 예쁜 건 알아 가지고.’

    보내기 싫어 묶어 놓은 줄도 모르고 제 근육을 주무르던 단솔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방울이라도 달아서 제 옆에 묶어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단솔은 혹시나 지수가 제 소리에 깰까 봐 외출복도 욕실 안쪽에서 갈아입고선 머리만 겨우 털고 밖으로 나와 제작진들에게 인사를 했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지 못한 터라, 아침의 쌀쌀한 기운이 느껴져 팔뚝을 문지르고 있는 모습에 제작진들이 웅성거리는 게 느껴졌다.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왜 다들 빤히…….’

    “최 PD, 쟤 이번 프로 끝나면 확실히 뜨겠다. 더 뜨기 전에 잔뜩 찍어 놔야지.”

    “감독님 눈에도 그렇죠? 다른 사람들처럼 코디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반짝반짝해요. 젊어서 그런가, 누가 보면 숍 다녀온 줄 알겠어요.”

    제작진들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민망해진 단솔은 괜히 젖은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렸다. 촬영 감독이 그런 단솔을 클로즈업해, 마치 CF의 한 장면처럼 원샷을 잡고 있을 때였다.

    “단솔 씨! 일찍 나왔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더 일찍 나오는 건데.”

    민혁이 알파 숙소 문을 열고 나왔다. 단솔이 일찍 나온 것일 뿐,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빨리 나온 셈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무얼 하는지도 듣지 못한 채, 그저 편한 옷을 입고 오라는 말에 데님 셔츠를 입고 나온 단솔과 묘하게 커플룩처럼 보이는 청재킷을 입은 민혁은 기타를 메고 있었다.

    “기타…… 들고 오신 거예요?”

    “네, 뭐……. 하하.”

    민혁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뒷머리를 긁었다. 노골적으로 단솔에게 어필하려던 게 들킨 것 같아 민망했다.

    늘 세상만사에 무심해 보이던 뮤지션인 줄 알았으나, 민혁 역시 제가 호감 있는 사람 앞에서 부끄럼을 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기 넘치는 민혁과는 달리, 단솔이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민혁이 등에 멘 기타를 보자, 소속사 사장의 방에 늘 먼지 쌓인 채로 놓여 있던 기타가 떠올랐다.

    사장의 폭력에 단솔이 무너지던 날, 목이 부러져 쓰레기장에 버려졌겠지만, 여전히 귀 한쪽이 잘 들리지 않는 단솔의 기억은 회귀 전에 머물러 있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야. 정신 차려 주단솔.’

    “단솔 씨?”

    “…….”

    “단솔 씨!”

    “네⁈ 네!”

    조용히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던 단솔은 민혁이 자신을 부르는 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차에 타야 하는데 제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는 단솔이 이상했던지, 민혁이 단솔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그제야 단솔의 의식은 현실로 돌아왔다.

    “괜찮아요?”

    “아…… 네! 괜찮아요. 아침엔 조금 멍해져서…….”

    “……미안해요. 내가 너무 일찍 나오라고 했죠? 아니면 조금 더 자고 이따가 출발할까요?”

    “아! 아니에요! 지금 가요!”

    혹시나 저 때문에 일정을 미룰까 싶어 후다닥, 민혁의 지프에 올라탄 단솔은 깔끔한 차 내부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우와……. 되게 깔끔하시네요.”

    “왜요? 생긴 거랑 달라서 놀랐어요?”

    웃음기 섞인 민혁의 말에 단솔은 속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늘어진 단발머리에 수염, 아메카지룩을 즐겨 입는 싱어송라이터인 민혁은 빈말로도 단정하다고는 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

    “농담이었는데…… 진짠가 보네…….”

    “그…… 그게 아니라…….”

    “하…….”

    일순간 상처받은 표정을 지은 민혁의 한숨에 차 안은 어색한 적막이 가득해졌다.

    단솔을 의식한 듯, 민혁이 콘솔박스에서 고무줄을 꺼내 늘어진 머리를 묶기 시작했다. 어찌나 단단하게 묶었는지 민혁의 축 처진 눈매가 하늘로 치솟을 정도였다.

    “어때요……. 이제 좀 깔끔한가요?”

    “푸흡.”

    학예회라도 나가는 듯, 비장한 모습에 단솔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야 긴장이 풀어진 듯한 단솔의 모습에 민혁도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그게 뭐예요! 민혁 씨 눈 찢어질 거 같아요!”

    “아아…… 그러게요. 편두통 올 거 같아요, 저.”

    “빨리 풀어요!”

    “오늘은 미안하지만, 좀 지저분하게 있을게요. 갈 길이 바빠서 미용실은 다음에 가는 걸로.”

    장난스레 머리를 다시 풀어 헤친 민혁이 차에 시동을 걸고는 안전벨트를 맸다.

    “멋있어요.”

    사이드 미러를 확인하고 차를 출발하려는 순간, 단솔의 말 한마디에 차가 덜컹거렸다. 아니, 그보다 더 덜컹거린 것은 민혁이었다.

    “긴 머리요. 멋있으니까 자르지 마세요.”

    민혁의 눈에는 환하게 웃는 단솔의 모습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민혁은 통속적인 노래 가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심쿵한다느니, 쿵쾅거린다느니, 두근대서 잠이 안 온다느니 하는 유치한 가사를 보고, 저급한 연애 마케팅에 놀아나는 가요계라며 비평하는 칼럼을 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편협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

    “……고 ……고마워요.”

    “진짠데.”단솔은 진심으로 민혁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이라도 인상을 쓰거나, 찌푸리는 모습이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기는 저와 달리, 민감한 얘기도 서슴없이 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만들어 나가는 그가 부러웠다.

    아이돌이 아니라, 그냥 가수로 데뷔했다면, 그렇게 죽일 놈처럼 욕을 먹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가정일 뿐이었다. 회귀까지 했지만, 단솔은 여전히 아이돌이었다.

    출발 직후부터 뚝딱거리기 시작한 민혁은 이제 거의 조수석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신호에 걸릴 때나 겨우 곁눈질로 확인한 단솔은 줄곧 창밖을 바라보더니, 역시 아침잠이 부족했는지 창문에 머리를 콩콩, 박으며 잠들어 있었다. 곤하게 잠든 모습에 민혁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듯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많이 졸렸나 보네.”

    신호가 길어지자 아예 핸들에 머리를 기댄 채 단솔을 구경하던 민혁이 단솔의 고개를 살짝 밀어 시트에 기대 주었다.

    보조개가 푹 파일 정도로 웃은 민혁이 바뀐 신호에 다시금 출발시킬 때는 아까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부드럽게 차가 움직였다.

    * * *

    “단솔 씨!”

    “우음…….”

    숙소에서 차로 한 시간이 좀 덜 되게 왔을까.

    민혁은 조심스레 단솔을 깨웠다. 어느새 자신이 잠들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단솔은 발작하듯이 파드득, 일어났다.

    “아! 죄송해요……. 안 자려고 했는데, 깜빡…….”

    “괜찮아요. 맘 같아서는 더 재우고 싶은데, 뜨거워지면 힘드니까.”

    “네?”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고 차에서 내리는 민혁에 단솔은 창밖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그를 따라 조수석에서 내렸다.

    ‘……밭⁈’

    단솔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프로그램 첫 데이트 장소가 밭이라니, 제작진들도 오케이를 한 걸까 싶어 눈으로 메인 PD를 좇던 그때였다.

    “이장님! 저 왔어요!”

    멀리서 종종걸음을 치며 다가오는 한 노인을 향해 제갈민혁이 긴 팔을 휘저었다.

    “썩을 놈! 왜 이제야 와! 고구마 다 갈아엎을라 그랬어, 내가!”

    “죄송해요—.”

    답지 않게 애교 있게 말을 늘인 그가 노인이 건네주는 호미며, 목장갑을 받아 단솔에게 나눠 주었다.

    “놀랐어요? 오늘 데이트는 고구마 농장 체험이에요.”

    “야는 누구여? 니 마누라여?”

    “아직 마누라는 아니고, 마누라 하면 좋겠는 사람이요.”

    “……아직 얼라 같은디?”

    “다 컸어요. 맞죠? 단솔 씨.”

    “어…… 네. 저 이제 스물…….”

    회귀 전 나이를 말할 뻔한 단솔이 주춤거리는 사이, 이장은 민혁의 등짝을 퍽퍽, 때리더니 다시 단솔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단솔은 방금 자다 일어나 더 뽀얗고 동글동글한 어린애처럼 보였다.

    “하이고, 너 이놈 이 도둑놈의 새끼!”

    급기야 그는 호미를 들고 쫓아왔다. 능청 떨다 호미로 얻어맞게 생긴 민혁이 겅중겅중 고구마밭을 뛰어다녔다.

    ‘고구마…… 캐러 온 건가. 뻘쭘하게 서 있느니 일이나 해야겠다.’

    그 기괴한 모양새를 바라보던 단솔은 어느새 제 손에 쥐어진 목장갑을 느릿느릿 끼고는 서 있던 자리에 쭈그려 앉아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다.

    * * *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반도의 흔한 첫데이트 장소.jpg)

    (100평짜리 제갈민혁 개인 소유 밭.jpg)

    ⤷ㅅㅂ개넓어서 더빡쳐

    ⤷시골에서 저 정도면 넓은 것도 아님. 텃밭수준이네 뭐 주말 농장 그런 거인 듯

    ⤷아니 ―― 갈거면 지혼자 가지 자기 주말농장에 인력동원하러 가냐

    ⤷구석에 제갈밭이라고 이름표도 있음 ㅅㅂ 킹받아

    (제갈밭캡.jpg)

    ⤷심지어 정대수랑 이이연한테 데이트권 뺏어서 델꼬 왔는데 밭데이트ㅋ

    ⤷그 두 명 꺾고 온게 킬퐄ㅋㅋㅋㅋㅋ

    ⤷단솔아 돔황챠ㅠㅠㅠ

    ⤷아니 근데 와기 되게 즐기고 있는 거 같은데?

    (도망치는 민혁이 신경 안쓰고 고구마 캐는 단솔이.jpg)

    ⤷야무지게 캐네ㅋㅋㅋㅋㅋ

    ⤷쪼그려 앉은 거 봐ㅠㅠㅠㅠ왜케 조구만해 두더지세요?

    ⤷(차에서 자다일어나서 머리에 새싹핀 단솔.jpg) 땅팔때마다 새싹 흔들려 ㅠㅠ

    ⤷단솔이 햇빛 넘 쨍쨍한데 밀짚모자라도 하나 줘라 ㅠㅠ

    예고편 봤음? 제갈이 옆에서 베짱이처럼 기타치고 단솔이 개미처럼 고구마캐고 있음.

    ⤷ㅋㅋㅋㅋㅋ아니 근데 저 그림 왜케 웃기냐 와기 볼에 흙묻은 거봐 ㅠㅠ

    ⤷아니 근데 예고편 어그로 같음 민혁이 훑고 지나간 자리 트랙터로 갈린것처럼 다갈려 있음

    ⤷(소처럼 고구마캐는 제갈민혁짤.jpg)

    ⤷아 맞네 예고편만 보고 제갈놈팽이로 오해함 미안 ㅠ

    ⤷선글라스가 너무 얄쌍해서 개놈팽이처럼 보임 ㅠㅠㅠㅠ

    ⤷아니 근데 많이 캐고 안캐고 님들 이거 데이트라고요.

    ⤷다들 데이트 인거 잊고 제갈민혁 일많이했다고 칭찬하는 중 ㅋㅋㅋㅋㅋㅋ

    (이시각 집에서 기다리는 알파들 살벌한 표정.gif)

    ⤷ㅋㅋㅋㅋㅋㅋㅋㅋ단솔이 흙먼지 뒤집어쓰고 밭일 하는 줄 알면 다들 뒤집어질듯

    ⤷분위기 ㅈ

    ⤷살벌하네 잡아먹을듯

    ⤷하지만 승자는.....? (기타치는 제갈베짱짤.gif)

    ⤷(낫들고 뛰쳐오는 이장님짤.gif)

    제갈민혁 왜케 개그캐됨? 차안에서 단솔이 머리 눕혀 줄때 설렜는데ㅠㅠㅠㅠ

    ⤷나도.. 민혁단솔주식 풀매수했는데 배가 산으로 가 버림.

    ⤷아니 고구마 밭으로....

    ⤷근데 예고편 짤 자세히 봐봐 단솔이 엄청 환하게 웃고 있는데 의외로 밭데이트가 취향이었던거 아닐까?

    ⤷여기저기 흙묻히고 헤헤 웃는 거 졸귀 ㅠㅠㅠ

    ⤷근데 단솔이 입장에서는 그럼 웃지 울겠음? ㅠㅠ 제갈이 가수선밴데.. 피할 수 없으니까 즐기자는 거 아닐까 ㅠㅠ

    ⤷ㅇㅈ... 근데 다른 사람이었으면 표정 관리 안됐을 거 같은데 울애기 넘 착해서 웃어 주는 거봐..

    10년차 제갈민혁팬입니다. 게시판 내 제갈민혁에 대한 비난 수위가 높아지는 것 같아 한마디 보태겠습니다. 제가 미안합니다.. 이건 뭐 저도 실드가 안 되네요. 왜그랬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실드치는 줄 알고 들어왔는뎈ㅋㅋㅋ10년차 팬도 이해못할 그의 세계

    ⤷주단솔 씨 미안합니다.

    ⤷아니 근데 제갈민혁 마약한다 그래도 그렇구나 하게 퇴폐적으로 생겼는데 의외로 취미가 건전하네.

    ⤷222222취미가 농사ㅋㅋㅋㅋ

    ⤷그러면 피부도 태닝한 거아니고 혹시 농사지은거임? ㅠㅠㅠㅠㅠㅠ 대반전이다

    ⤷축구선수 할때보다 더 까매짐 ㅠㅠ 태닝숍에서 한 건 아닌게 팔에 민소매자국있음. 선수때도 하얬는데 선크림 좀 발라.. ㅠㅠ

    ⤷ㅋㅋㅋㅋㅋㅋㅋ헐 제갈민혁 운동선수였음? 나왜몰랐지?

    ⤷피구할때 방송에 나왔을걸? 축구 청소년 국대였음. 부상으로 그만두고 가수함

    ⤷헐 미친.. 하나 잘하는 사람은 다 잘하는구나.. 근데 왜 연애는 못하는........ 고구마 웬말......

    (제갈민혁 이번 회차 반전모음.jpg)

    ⤷병약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운동선수였던 것도 충격인데 생각보다 ㅈㄴ 개그캐에 취미 완전 건전함.

    (제갈민혁 머리 묶는 짤.gif)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닠ㅋㅋㅋ눈썹 치켜올라간거봐

    ⤷나 이거보고 빵터짐ㅋㅋㅋ누가 머리를 그렇게 묶어요 ㅠㅠ

    ⤷근데 좀 설레지 아늠? 단솔이 민망할까 봐 일부러 저런 거 같음 ㅠㅠㅠㅠㅠ

    ⤷밭데이트 최악인데 또 저런 거 보면 용서..... 하나만해 하나만 제발 ㅠㅠ 으이구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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