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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9화 (9/150)

9화

저녁이 되자, 제작진들은 전 출연진을 숙소의 앞마당으로 불러 모았다. 캠핑장처럼 꾸며진 마당에 모닥불과 감성 캠핑용 소품들이 잔뜩 있었다.

지수가 마시멜로를 구워 단솔에게 건넸다. 단솔은 우는 대수를 달래고도 한참이나 두통이 가시질 않아 저녁도 거른 뒤였다.

우물우물, 달콤한 마시멜로를 입 안 가득 우물거리고 있을 때, 방송이 흘러나왔다.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무사히 돌아온 주단솔 씨 반갑습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우음…… 네!”

—괜찮아지셨다니, 다행이네요. 제가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모이게끔 한 것은 지난 게임의 결과 발표 때문입니다. 약간의 사고가 있긴 했지만, 승리하신 정대수 씨, 한지수 씨, 이이연 씨, 유두현 씨 축하드립니다.

제갈민혁은 아까부터 나라 잃은 백성처럼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데이트권을 놓친 게 꽤 속상한 모양이었다.

반대로 마태오나 윤여민은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윤여민은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겠다며 좋아하는 눈치였다.

―승리하신 네 분께는 각각 한 장씩 데이트권을 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데이트는 내일 오전부터 저녁 6시 사이 언제든지 가능하며, 섬 밖으로 나가는 것도 허용됩니다. 단, 제시간에 들어오지 못하시면 다음 탈락자 선정에서 패널티를 받게 되니까 주의해 주십시오.

―유두현 씨? 데이트를 하고 싶은 상대가 있으십니까?

“어…… 저는 이연 선배님이요.”

수줍게 웃는 두현과 달리, 이연의 표정은 밋밋하기만 했다.

어차피 유두현이랑 사귈 거면서. 괜히 업보 쌓아서 후회하지 말고 잘해 주지……. 쯧.’

미래를 알고 있는 단솔은 애써 이연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 마시멜로를 입에 넣고 있었다.

아무리 몇 년 전에 마음 정리가 끝났다 한들, 그 흔한 짝사랑도 한번 안 해 본 단솔에게는 이연이 첫사랑이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과분한 욕을 먹기도 했고.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게 아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은 쓰고 입은 달았다.

―게임 파트너에게 선택받았네요, 이이연 씨. 이번엔 본인이 선택할 차례입니다. 누구와 데이트를 하시겠습니까?

“주단솔 씨요.”

우물거리던 단솔의 눈이 땡그랑, 소리가 나게 커졌다. 한지수와 정대수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저도 단솔이랑 데이트할 건데요?”

지수가 단솔의 어깨를 감싸,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건 안 되죠.”

대수가 그런 지수의 손을 가볍게 쳐 내며 제작진 쪽을 쳐다보았다.

―어……. 그, 한지수 씨도 주단솔 씨와 데이트를 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오메가는 알파만 고를 수 있습니다.

“저도, 주단솔 씨와 데이트하겠습니다.”

제작진의 답변에 지수의 표정이 굳어지자 대수가 신난 듯 말을 이었다.

단솔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이연, 정대수, 한지수. 세 명씩이나 단솔을 고른 이상, 통편집은 물 건너간 셈이었다.

일부러 시선을 돌리던 중, 단솔은 울 것 같은 유두현과 눈이 마주쳤다. 단솔은 관자놀이를 붙잡고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망했다.’

예능 감독의 날카로운 카메라가 이이연을 택한 유두현의 눈물을 놓칠 리 없었다.

저를 택한 이이연, 이이연을 택한 유두현. 이 상태로 가면 회귀 전 상황의 반복일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 생각해 내……!’

“그냥 단솔 씨가 결정하는 걸로 하죠?”

정대수가 입을 열었다.

“전 어차피 단솔 씨 아니면 데이트권 같은 건 의미 없습니다.”

“나도 찬성. 여기 있는 알파들이랑은 데이트할 마음이 없네. 제 데이트권도 우리 솔이한테 줄게요.”

정대수의 말에 질세라 한지수도 말을 보탰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이이연 역시 멍하니 서 있는 단솔을 보며 말했다.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단솔 씨가 고르는 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네요.”

단솔은 그들의 말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왠지 모르게 울고 싶었다. 왜 자꾸 자신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렇게 관심을 보이다 저 사람들이 외면하면? 자신은 또 쓰레기가 되는 건가. 이렇게 그저 아주 잠깐의 유흥거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제 운명인 걸까.

단솔은 누구를 선택해도 제 앞에 주어지는 업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모두의 의견이 그렇다면, 저희 제작진도 주단솔 씨에게 데이트권을 부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주단솔 씨는 게임의 우승자가 아닌 만큼, 세 분의 데이트권을 양도받았지만, 단 한 번만 선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단솔 씨? 데이트를 하고 싶은 상대를 한 명 골라 주시겠습니까?

“저는…… 어…….”

단솔은 어떠한 대답도 못 하고 있었다. 그때, 단솔의 눈에 민혁이 들어왔다. 축 처진 그의 표정만큼이나, 축 처진 미역 줄기 같은 머리카락이 처량한 게 꼭 제 처지 같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저 음울한 뮤지션과 재미없는 데이트를 하면 통편집 당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단솔의 온몸을 휘감았다.

단솔이 민혁을 택하면 숙소에 정대수와 한지수, 그리고 윤여민과 마태오가 남을 것이다.

이이연은 어차피 유두현이 선택한 이상 데이트를 나가야 한다지만, 인지도나 인기, 모든 면에서 숙소에 남는 사람들이 훨씬 더 분량을 차지할 게 뻔했다.

“저는……! 저는……. 제갈민혁 씨와 데이트하고 싶어요.”

단솔의 말에 음울했던 민혁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영혼이 가출한 듯했던 좀비 같은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단솔과 파트너를 해서 경기에서 이긴 뒤, 데이트권을 따 는 게 그의 계획이었지만, 경기도 지고, 데이트권도 빼앗긴 채, 세 명이나 단솔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상황에 좌절해 있던 찰나였다.

“단솔 씨……!”

민혁은 고개를 들어 단솔을 바라보았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주변에 사람들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단솔을 품에 안아 주고 싶었다.

서로 마음이 통했다고 믿는 민혁 빼고는 다들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저녁이었다.

* * *

“솔아.”

방에 돌아온 지수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단솔은 왠지 그런 지수의 눈치가 보였다. 지수가 저를 많이 챙겨 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솔은 지수가 베푸는 친절이 그냥 톱스타의 적선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웃는 낯으로 다가와 자신의 관대함과 선함을 보여 주는 수단으로 단솔을 활용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 온 터였다.

“네?”

“제갈민혁 씨한테 호감 있어?”

“어……. 뭐, 같이 게임도 하고 했으니까요.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

“그랬구나…… 우리 솔이가 제갈민혁 씨를 편하게 생각했구나. 하…… 이건 비밀인데…….”

단솔이 캐리어를 열어 잠옷을 챙기는 사이, 지수는 방 안의 카메라를 하나씩 껐다.

단솔이 지수와 함께 방을 써서 좋은 건 방안에 달려 있는 캠을 언제나 켜고 끌 수 있다는 것이었다.

회귀 전 단솔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곳곳에 달려 있는 카메라를 어쩌지 못하는 신인의 처지 때문도 있었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데도 지수는 단솔에게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로 말을 했다.

“제갈민혁 그 사람…… 개꼰대래. 여차하면 후배들 집합시키고 그런다던데 우리 솔이는 가수니까 직속 후배라고 더 괴롭힐지도 몰라. 가끔 손찌검도 한다던데…… 알파 오메가 가리질 않는다더라. 조심해야 해 알겠지?”

“아……! 네, 알겠습니다.”

지수의 말에 단솔은 저도 모르게 군기가 바짝, 들어갔다. 그런 단솔의 모습을 보곤 지수가 귀여운 듯 웃으며 답했다.

“나한테는 그럴 필요 없어. 우리 솔이는 형아한테 뭐든지 해도 돼.”

“저…… 씻고 올게요 선배님. 내일 아침에 일찍부터 나가자고 하셔서…….”

“그래, 내일 데이트하려면 피곤할 테니까 얼른 씻고 와.”

단솔이 캐리어를 열어 주섬주섬, 속옷이며 칫솔을 꺼내는 와중에도 지수는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제 속옷으로 향하는 뜨거운 시선에 서둘러 화장실로 숨어 버렸다.

‘명품 속옷 아니라고 꼽 주는 걸까…….’

회귀 전 입는 옷부터 쓰는 물건들까지 비싸면 비싸다고, 싸다면 싸다고 욕을 먹은 전적이 있는 단솔은 사람들의 시선 하나하나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건 계속 저에게 호의를 베풀던 지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학습된 긴장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 * *

단솔이 씻는 동안, 지수는 침대에 누워 단솔이 샤워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 시발. 괜히 방 같이 쓰자고 했네.”

샤워기 소리에 괜히 엄한 상상이 들어 후회하던 그때, 어디선가 진동이 울렸다. 지수는 자연스럽게 제 가방 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애초에 지수나 대수의 경우, 캐스팅 당시부터 세컨드 폰을 쓰더라도 편집해 주기로 협의가 된 상태였다.

이 나이에 학생들처럼 핸드폰을 빼앗는 건 인권 침해라며 지수가 길길이 날뛴 덕분이었다.

울보대수

울보대수

단솔 씨는? 혹시 어디 아픈 데는 없나 해서

메시지를 보낸 상대방은 대수였다.

응? 우리 단솔이 지금 샤워 중인데? 컨디션 완전 괜찮고. 나랑 밤새도록 놀려고

지수가 농염한 포즈로 샤워하는 햄스터 이모티콘을 보냈다. 대수는 열 받은 듯 메시지를 한참이나 썼다 지웠다 하며 답장이 없었다.

울보대수

혹시나 해서 말인데. 헛짓거리할 생각 하지도 마

할 생각 애초에도 있었는데, 네 메시지 받고 나니까 더 강력해졌어

울보대수

이 사기꾼 새끼가...! 알파 새끼가 오메가인 척하니까 좋냐? 들키면 너도 끝이야. 무슨 생각으로 방까지 같이 쓰는 건데?

단솔이랑 잘해 볼 생각

울보대수

이 개새끼가ㅇ머리ㅑㅏㅁ러

채팅창 너머로 열을 펄펄 내는 정대수가 그려진 지수는 저도 모르게 끅끅거리며 웃었다. 멀쩡한 알파를 오메가로 둔갑시킨 소속사 사장에게 고마워할 순간이 올 줄이야.

지수가 모델 일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업계에는 중성적인 이미지가 인기 있던 시기였다. 대수만큼은 아니더라도, 타고난 체형이 좋았던 지수는 시장의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극단적인 단식을 하곤 했었다. 덕분에 알파의 체형에 오메가의 라인을 가진 모델이라는 찬사를 받았었다.

하지만 배우로 전향을 하면서, 지수는 모델로서 갖고 있던 분위기를 완전히 버려야만 했다. 그때 지수의 소속사 사장은 지수가 오메가로 나가는 것이 더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노련한 사람이었고, 그 선택은 옳았다.

지수는 오메가답지 않게 큰 키와 시원시원한 피지컬, 특유의 서늘하고, 이지적인 이미지로 대체 불가한 배우라는 수식어를 가지게 되었다.

덕분에 범접할 수 없는 부와 명예를 얻었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가끔 지수가 알파라는 것을 모르고 다가오는 알파를 만나거나, 제 앞에 따라오는 오메가라는 수식어를 볼 때면 현타가 오곤 했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은 전략이기에 언제든 잠수 타듯이 은퇴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배님…… 우세요?”

끅끅거리며 웃는 소리에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저 어린양을 보고 있자니, 김대표의 탐욕스러운 계획이 꽤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저는 데이트권 따위에 상관없이, 단솔과 한방에 누워 잘 수 있지 않은가.

지수는 쥐고 있던 핸드폰을 단솔이 보지 못하게 베개 밑으로 숨겼다. 그러곤 표정을 서둘러 갈무리했다.

“아…… 내가 원래 안고 자는 애착 인형이 있는데 그걸 두고 와서 말이야.”

울 것 같은 표정에 단솔은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이었다. 머리를 덜 말린 듯, 촉촉하게 젖은 머리칼마저도 완벽하게 지수의 취향이었다.

“애착 인형이요……?”

“불면증이 심해서 그거 없이는 잠을 못 자거든.”

“아…… 그러시구나.”

“그래서 말인데, 네가 애착 인형 대신 내 침대에서 같이 자 주면 안 될까?”

“네⁈”

* * *

결국 지수의 연기에 넘어간 단솔은 넓은 제 침대를 두고 지수의 침대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숙소에서는 이보다 더 작은 싱글 침대에서 멤버들과 부대끼며 잔 적도 있으니, 단솔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단솔이는 어때? 형질에 얽매이는 스타일이니?”

“아…… 그건 아니에요. 절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저 더러운 알파들이랑 놀기에 우리 솔이는 너무 작고 소중해. 형이 지켜 줄 테니까 솔이는 이 형만 믿어요, 알았죠?”

“네……. 근데 형…… 팔 좀 풀어 주시면 안 돼요? 저 너무 갑갑한데…….”

하지만, 역시 애착 인형 대신은 무리였을까. 지수가 꽉 끌어안고 안 놔주는 통에 산소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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