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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8화 (8/150)

8화

“……주단솔! 안 돼!”

뜨거운 피가 흘러내리는 감각. 팔다리가 뒤틀린 게 느껴졌다.

분명 회귀 전 사고 때 느꼈던 이물감이었다.

저를 향해 이토록 애타게 울부짖는 이 사람은 누군지.

낯설지 않은 목소리를 가진 그의 얼굴을 보고 싶은데, 눈이 쉬이 떠지질 않았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밀어 올려 눈을 떴을 때였다.

“솔아! 정신이 들어?”

“단솔 씨! 괜찮아요?”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단솔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춘몽각 안에 있는 지수와 저의 방 천장이었다. 흐릿한 시야 앞으로 분주하게 상태를 살피는 사람들 때문에 저를 부른 남자의 목소리가 기억나질 않았다.

“아…… 꿈이었나…….”

“솔아 왜? 꿈꿨어? 괜찮아? 머리 안 아파?”

“어…… 괜찮아요…….”

지수의 물음에 더듬더듬, 제 얼굴을 만졌을 때, 콧잔등에 밴드가 붙어 있는 게 느껴졌다. 매끄러운 밴드 아래로 콧대가 살짝 부은 게 느껴졌다.

“저…… 어떻게 된 거예요?”

“정대수 씨가 던진 공에 맞아서 코피 흘리면서 기절했어요. 설마…… 우리 피구 하던 것도 생각 안 나요?”

민혁의 말에 단솔은 아차,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어지러움이 느껴져 비틀하는 것을 한지수가 붙잡았다.

“괜찮아⁈ 갑자기 일어나면 안 돼! 뭐 갖다줄까?”

단솔은 제 침대 주변에 서서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살폈다. 정대수를 제외한 모든 출연진이 여기에 몰려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저 때문에 촬영 지연된 거 아니에요? 저 괜찮으니까 빨리…….”

“……하. 그게 무슨 소리야 솔아.”

“게임 중간에 이렇게 됐으니까……. 그게…… 죄송해요.”

“하.”

눈이 다 풀린 채로 촬영 이야기를 하는 단솔에 지수가 기가 막힌 듯 재빨리 단솔의 어깨를 잡아챘다.

가끔씩 신인들을 보면 제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달리기만 하는 이들이 있었다. 지수는 단솔이 그런 케이스가 아니길 바랐다. 요령 없이 굴다가는 제 삶을 잃어버리기 쉬운 곳이었다.

“빨리 다시 누워.”

본 적 없던 그의 단호한 모습에 기가 죽은 단솔이 혼나는 줄 알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똑바로 누워.”

“네…….”

결국 어정쩡하게 앉은 몸을 눕혔지만 단솔은 전혀 편하지 않았다. 정신이 없을 때였으면 모를까, 저보다 대선배들이 서 있는 앞에서 누워 있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 선배 아픈 사람한테 너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공 날아올 때 제일 먼저 피해?”

“그건 반사적으로…….”

민혁이 그런 단솔의 불편한 기색을 읽은 듯 지수를 만류했지만, 오히려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는 꼴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항변해 봤자 아픈 단솔 앞에서 지수와 말다툼을 하게 될 것 같아 민혁도 금세 입을 다물었다.

차가워진 분위기를 읽은 윤여민이 나머지 사람들을 방 밖으로 밀어냈다.

“괜찮은 것 같은데 이제 다들 나가죠? 단솔 씨는 좀 쉬게 내버려 두고.”

“그래요, 쉬어요.”

“이따 저녁 때 깨우러 올게요!”

“어찌 됐든……. 내가 못 막은 잘못이 커요. 미안해요, 단솔 씨.”

지수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았지만, 민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단솔에게 사과를 건네고 나갔다. 그제야 조용해진 방 안에 어색한 적막이 찾아왔다.

그때까지도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지수가 단솔이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와 걸터앉았다.

“화내서 미안해. 근데 너 빠진다고 큰일 나는 거 아냐. 오늘 촬영 안 해도 되니까 쉬어.”

지수는 단솔이 촬영을 걱정할까 봐 하는 말이었지만, 단솔은 그 말이 결국 제가 없어도 된다는 말로 들렸다.

꿈속에서 들은 목소리는 아마 이런 제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 낸 환상일지도 몰랐다. 저 하나 죽는다고, 저 하나 없어진다고, 슬퍼할 사람이 세상에 있긴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단솔의 얼굴이 와락, 구겨지며 눈물이 퐁퐁, 솟아났다.

“솔아, 너 울어……? 어디 아파? 병원 갈까?”

단솔은 그런 게 아니라고 뭐라도 말하려고 했지만, 울음소리에 먹혀 웅얼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몇 번이고 아프냐 묻는 지수에 단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픈 건 아니야? 그럼 왜 그래……. 내가 화내서 그래? 잘못했어, 솔아. 응? 울지 마. 형아가 잘못했어요, 응?”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만 사과를 하는 통에 단솔은 아이처럼 울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왜 이렇게 응석받이처럼 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실 지수의 말도 전혀 악의가 없는 말이었다. 저는 부상을 입었고, 기절까지 했으니 오늘 하루는 쉬는 게 맞았다.

회귀 전에는 그 모진 일들을 겪으면서도 쉽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감정을 느낄 수 없이 마음이 딱딱해져 버린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단솔은 제가 왜 이런 울보가 되어 버린 것인지 생각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지수처럼 혼을 내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자꾸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나약한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지수만 당황한 듯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왜 그래……. 뭐가 그렇게 서러워……. 아파서 촬영 못 해서 서러워? 안 그래도 내가 정대수 이 새끼 숨도 못 쉬게 조져 놨어. 형아가 우리 솔이 방송 분량 알아서 잘 챙겨 줄게. 걱정하지 마.”

“끄흑…… 흡……. 저는……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흐읍.”

겨우 울음을 그치고 한마디 내뱉었지만, 지수의 말에 단솔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무섭다거나, 놀라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저를 이렇게 열을 내면서 걱정해 주는 모습이 고마워서 흐르는 눈물이었다.

“……미안해. 놀랐지? 우리 솔이 예쁜 얼굴에 상처 나서 형아가 자꾸 성질이 나네. 후…… 다신 소리 안 지를게. 미안.”

“……흐엉 ……그…… 그게 아니라요. 끄흡, 고…… 고맙습니다. 선배님. 고마워서요……. 고맙습니다.”

더듬더듬, 말을 내뱉은 단솔이 몸을 일으켜 제 앞에 앉은 지수를 끌어안았다.

언제나 이렇게 저를 챙겨 주는 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솔은 이 험한 바닥에서 그런 형을 만나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수는 단솔의 기분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저 역시 이 판에서 쉽게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쉽게 밥벌이가 되었고, 무명 시절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단솔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겨우 단솔을 달래며 시꺼먼 속내를 숨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는데, 작은 몸이 와락 안겨 오자 견디기 힘들었다.

지수는 제 품에 안겨 있는 단솔의 목덜미에 코를 박곤 숨을 깊게 들이켰다. 단솔의 이름만큼이나 달콤한 살냄새였다.

“근데, 정대수 선배님은 어디 계세요?”

“그 자식은 왜?”

지수가 단솔을 한입에 집어삼키고 지긋지긋한 연예인 생활을 은퇴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단솔이 바투 붙은 제 몸을 떼어 내더니 그 예쁜 입에서 천년의 욕정을 식게 만드는 존재의 이름을 말했다.

“저 괜찮다고 말씀드리려구요……. 혹시 걱정하실까 봐.”

“괜찮아. 그놈은 마음고생 좀 해 봐야 해. 내가 112에 신고하려다가 겨우 참았어.”

“에이 선배님……. 이 정도 가지고 112라뇨. 이제 진짜 괜찮아요. 저…… 정대수 선배님 좀 만나고 올게요!”

“어……? 잠깐만……!”

단솔은 계속 누워 있으라고 말하는 지수에게 잡힐세라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원래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자도, 때린 놈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지 않던가. 제게 악플을 달던 이들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단솔은 혹시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지 모르는 대수에게 제가 괜찮다는 말을 해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대수는 단솔의 방문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제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누가 보면 여기가 단솔의 방이 아니라, 중환자실 입구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심각한 분위기였다.

문을 여닫는 소리에 그는 단솔이 지수라고 생각했는지, 쳐다도 보지 않고 물었다.

“좀 어때? 괜찮대?”

“네! 선배님! 저 괜찮아요!”

그제야 고개를 번쩍, 든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겨우 한 시간 지났을 뿐인데 대수의 얼굴은 모진 고문이라도 겪은 사람처럼 낯빛이 어두웠다.

“아…….”

단솔의 얼굴을 보자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단솔은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저 진짜 괜찮아요! 놀라셨죠…… 죄송해요. 제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헤헤거리는 단솔 앞에 대수는 무너지듯 커다란 손바닥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잠시 기절한 것뿐이라는 의료진들의 말에도 안심이 되질 않았다. 제 욕심 때문에 단솔을 다치게 했음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단솔이 저를 다신 안 본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 차마 방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벌을 섰다.

단솔을 마주한다면 어떻게 사과를 건네야 할지, 온갖 최악을 상상하고 있던 그에게 단솔은 먼저 사과를 건넸다.

대수는 울컥, 속에서 무언가가 치미는 기분이었다. 뭐라도 대답을 하면 우스꽝스러운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단솔이 고개를 숙여 대수와 눈을 마주치려 애썼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작은 손으로 대수의 손가락을 톡톡, 건드리더니 구겨져 있어도 여전히 커다란 대수의 등을 두드렸다.

그는 그 순간, 단솔이 천사가 아닐까 하는 헛된 상상을 했다.

* * *

<인터뷰>

Q : 정대수 씨, 괜찮으세요?

정대수 : 아…… 네. 괜찮…… 흡……. 잠시, 잠시만요. 후…… 인터뷰 좀 나중에 할게요. 제가 원래…… 잘 안 우는데. 하……

Q : 잠깐 시간을 드릴까요?

정대수 : 네, 감사합니다. 아, 이제 괜찮은 거 같아요.

Q : 사고 때문에 많이 놀라셨을 거 같아요.

정대수 : 네……. 아무래도. 제가 던진 공에 그랬으니까. 많이 걱정이 됐죠. 단솔 씨가.

Q : 주단솔 씨가 정대수 씨를 달래(?) 주는 장면이 저희 카메라에 잡혔는데, 그때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정대수 : 어……. 저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단솔 씨가 나왔는데. 음…… My apologize……. 그러니까 제가 사과해야 할 차례인데, 너무 미안해서 할 말이 없었죠, 저는. 근데 단솔 씨가 먼저 사과하더라고요. ‘도대체 뭐가 미안하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다음에 상처가 보였어요. 코에. 그래서 그때는 진짜, 눈물이 날 거 같았어요. 얼굴이 진짜 너무 작아요, 단솔 씨가. 그 작은 얼굴에 제 손으로 그랬다는 게 너무 미웠죠. 스스로가.

Q : 그래서 우셨나요?

정대수 : 하, 조금? 울 거 같았죠. 운 건 아니고요. 그…… 단솔 씨가 토닥토닥할 때는 진짜. 울 뻔했죠.

Q : 단솔 씨, 괜찮으세요?

주단솔 : 네! 저는 괜찮아요! 근데 정대수 선배님이 아까 우시더라고요. 전 진짜 괜찮은데…… 여러분 저 괜찮아요!

Q : 한지수 씨! 정대수 씨와 평소에도 친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혹시 정대수 씨가 평소에도 눈물이 많은 스타일인가요?

한지수 : 네, 정대수는 울보입니다.

* * *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정대수 오늘 진짜 개당황했나봐. 말 존나 많아지고 발음도 존나 교포스러움 ㅋㅋㅋㅋㅋ

⤷그와중에 영어발음 졸라 섹시...왜 이런 남자한테 부산 사투리만 시켰나요 충무로 양반들아

⤷ㄴㄷㄴㄷ정대수 영어 길게 하는 거 듣고 싶다

⤷그거 해외 시상식 영상에 있음 (정대수 칸영화제 인터뷰 영상.mp4)

⤷미쳤네 개섹시ㅋㅋㅋㅋ근데 진짜 오늘 말많이함

⤷근데 단솔이 앞에서 우는거 너무 짠하다 ㅠㅠ 맘고생 진짜 심했을듯 하루종일 방문앞에 앉아있누 ㅠㅠ

⤷아이돌 얼굴에 기스냈으니까 천하의 정대수라도 쫄릴수밖에 주단솔 소속사에서 고소안한걸 다행으로 여겨야댐

⤷걍 방송하다가 사고난거고 고의도 아닌데 뭔 고소드립? 선넘네 ㅋㅋㅋ

⤷애초에 주단솔 소속사가 그럴 힘이 있긴 함?

⤷ㅁㅈ영상 다시보니까 주단솔이 일부러 고개 내미는 것 같던데 갓대수한테 맞아서 인지도 높이려는 거 아님?

⤷선넘는건 그쪽인듯 피해자한테 가해자 프레임 씌우네 ㅅㅂ 인지도 없으면 쳐맞아도 댐?

⤷다들 진정 좀 ㅠㅠ 당사자가 괜찮다는 데 왜 우리끼리 싸움?

(천사 주단솔 정대수 토닥토닥짤.mp4)

⤷미쳤다....존나 햄스터가 호랑이 위로해주는 거 같애

⤷댓글창 보다가 빡쳤는데 정화되는 중

⤷햄스터 미칰ㅋㅋㅋㅋㅋㅋㅋㅋ한입거리 아니냐고 ㅠㅠㅠㅠ대수단솔 삽니다~~

⤷응 안돼 대수지수가 혐관 맛집

⤷대수지수는 걍 혐오 그자체 아님? ㅋㅋㅋㅋ

⤷(찐친 울보 인증하는 한지수.mp4)

⤷정대수 보고 짠하다가 이거보고 빵터짐ㅋㅋㅋㅋㅋㅋ

⤷이거 앞에 정대수 운거 아니라했는데 단솔이가 걱정하는 게 더 킬포ㅋㅋㅋㅋ

⤷ㅁㅈ 나도 그거 봄 무해한데 킹받아 ㅋㅋㅋ

⤷정대수 본방보고 또 울듯 ㅋㅋㅋ

⤷나중에 끝나고 리액션 영상 올라오면 좋겠다 ㅠㅠㅠㅠ제발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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