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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7화 (7/150)
  • 7화

    ―제갈민혁 씨 외에 다른 분들은 같이 식사한 분들과 팀을 이루시면 됩니다.

    ―짝 피구는 단판으로 진행되며, 우리의 알파 여러분들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짝이 공에 맞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면 됩니다.

    ―4명씩 두 팀으로 나눠서 진행되며, 승리 팀 전원에게는 원하는 상대와의 데이트권이 한 장씩 주어집니다.

    ―자, 그럼 이제 지금부터 대진표 선정을 위한 알파들의 몸풀기 게임을 한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각 팀의 알파들은 앞에 보이시는 라인에 서 주시겠습니까?

    정대수와 제갈민혁, 마태오와 이이연 순서로 제작진이 임의로 그어 놓은 라인 앞에 섰다.

    게임은 불 보듯 뻔했다. 허리춤까지 오는 바닷속에 꽂혀 있는 깃발을 보아하니 달리기였다. 체력을 쓰는 것은 압도적으로 정대수가 유리해 보였지만, 스피드 면에서는 이이연이나 마태오가 유리할 것 같았다.

    제갈민혁은 아무리 봐도 이 더위에 계속 서 있다간 쓰러질 것 같이 생기긴 했다. 이미 승패를 직감한 단솔은 제갈민혁을 응원하는 척 리액션 하는 것에 더 집중했다.

    ―각 팀의 알파 분들께서는 제작진의 신호에 맞춰 저기 멀리 바닷속에 있는 단 하나의 깃발을 뽑아 주시면 됩니다. 가장 먼저 깃발을 뽑은 알파는 대진표 전체를 짜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READY, START!

    눈이 부셔서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그들을 보고 있던 단솔은 정대수의 순간적인 스피드에 입을 떡 벌렸다.

    그 뒤로 이연과 민혁이 따라붙긴 했지만, 정대수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대수는 큰 이변 없이 깃발을 쟁취하곤 포효했다. 하지만 가장 의외였던 것은 제갈민혁이었다.

    늘 약에 취한 듯 몽롱한 눈빛을 하고 있던 그가, 이이연을 제치고 2등으로 들어갔다.

    정대수가 조금만 머뭇거렸다면 제갈민혁에게 깃발을 빼앗길 뻔했다.

    아쉬움에 바닷물을 튀기는 제갈민혁의 모습이 마치 CF의 한 장면처럼 눈에 들어왔다. 기다리고 있던 단솔은 머리가 촉촉하게 젖은 제갈민혁에게 수건을 건넸다.

    “미안해요. 내가 좀 더 빨리 뛰었어야 했는데.”

    “아뇨…… 충분히 빠르셨는데요? 깜짝 놀랐어요. 어……. 피 나요!”

    민혁이 2등을 했을 때보다 더 눈을 동그랗게 뜬 단솔이 제작진이 있는 곳을 향해 외쳤다. 깃발을 잡다가 긁힌 듯, 민혁의 손바닥에 상처가 나 있었다.

    “바닷물 들어가면 쓰라릴 텐데……. 빨리 치료받아야.”

    민혁은 그런 단솔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창피했다. 1등을 못 한 것도 억울한데, 다치기까지 하는 약골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의욕적인 민혁의 모습에 제작진 한 명이 다가와 정대수가 미국에서 미식축구를 했다며 다치지 않게 살살하라는 말을 전했다.

    춘몽각 안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는 게 룰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다들 매니저와 코디가 대문 앞에서 혹여 제 연예인에게 흠집이라도 날까 싶어 대기 중이었다. 단솔처럼 작은 회사도 아닌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매니저를 뚝 떨어트려 놓고 혼자만 춘몽각에 들어온 민혁 덕분에 제작진은 30분에 한 번씩 걱정 어린 민혁 매니저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민혁은 그런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도 상관이 없는 듯 웃었다. 민혁도 한때 축구로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한 적이 있었다. 부상 때문에 그만두긴 했지만, 승부욕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축구 선수로 있을 때는 이보다 더 큰 부상을 입는 일이 흔했다. 고작 이런 걸로 걱정해 주는 단솔이 그저 귀엽게만 느껴졌다. 단솔에게 왼손을 붙잡힌 민혁은 오른손으로 단솔의 작은 머리통을 쓱쓱, 쓰다듬었다.

    예쁜 사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예쁜 것일까. 부드러운 밝은 갈색 머리칼이 차르륵, 제 손바닥을 간질였다.

    “아, 재수 없어 저 새끼.”

    “어, 나도.”

    한지수의 혼잣말에 정대수가 눈을 빛냈다. 그의 손에는 이미 피구공이 들려 있었다. 커다란 그의 손에 들어 있으니, 커다란 피구공이 탱탱볼처럼 보였다.

    “이이연이랑 유두현 뽑아. 윤여민 운동 존나 못 해. 헬스장에서 갓 낳은 고라니 새끼처럼 바들거리는 것만 여러 번 봤어.”

    “나보고 주단솔을 공격하라고?”

    “그럼, 주단솔한테 데이트권을 주자고? 나라면 저 느끼한 새끼 허리춤 붙들고 살아 있는 걸 보느니, 장렬하게 제일 먼저 죽여 버리겠어. 저 잔챙이 붙어 있는 거 그냥 두고 볼 거야?”

    “이이연 씨랑 유두현 씨랑 할게요.”

    지수의 말에 대수는 두말하지 않고 이연과 두현을 골랐다.

    지수와 대수는 단솔에게 피구를 가르쳐 준답시고 단솔의 손을 주무르고, 허리를 만지는 민혁을 노려보았다. 그들의 눈에서 불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단솔은 정말 순수하게 민혁에게 짝 피구 노하우를 배우는 데 집중했지만, 지수와 대수는 민혁이 개수작을 부리고 있음을 200% 확신했다.

    ―네, 좋습니다. A 팀은 정대수, 한지수, 이이연, 유두현. B 팀은 제갈민혁, 주단솔, 마태오, 윤여민 씨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짝 피구는 짝이 공에 맞을 경우 패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알파분들께서는 자신의 오메가가 공에 맞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몸풀기 게임에서 승리한 정대수, 한지수 씨가 속한 A 팀부터 공격권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READY, START!

    알파 뒤에 숨어서 종이 인형처럼 나부끼는 오메가들과 다르게, 한지수는 정대수와 멀찍이 떨어져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민혁을 칠 것처럼 페이크를 쓴 대수가 지수에게 볼을 넘겼다. 지수는 넘겨받은 공으로 방심하고 있던 윤여민의 머리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빡, 소리와 함께 윤여민이 주저앉았다. 때렸다기보다는 꽂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들의 팀플레이에 같은 편인 이이연과 유두현도 리액션이 고장 난 듯했다.

    “아! 형! 미쳤어⁈ 누구 뚝배기 깨려고 작정했어⁈ 넌 뭐 하고 있어! 안 막고!”

    “선배가 잘 숨어 있었어야죠⁈ 저는 한다고 했는데…….”

    늘 평정심을 유지하던 윤여민이 발끈했지만, 한지수와 정대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목표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맹수 연합은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을 제거한 뒤 주단솔이 조금의 호감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제갈민혁을 추하게 탈락시킬 작정이었다. 말없이 눈빛을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에서 왜인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졌다.

    살벌한 분위기에 윤여민마저도 한풀 꺾인 채 툴툴거리며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아, 올림픽이야 뭐야 씨……. 나 맞는 장면은 편집해 줘요. 슬로우 걸면 고소장 날아갈 줄 알아.”

    윤여민과 마태오가 허무하게 탈락한 뒤로는 A 팀과 민혁의 지루한 랠리가 이어졌다.

    차마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단솔의 귀여운 머리통을 때릴 엄두가 나지 않았던 세 사람 덕분에 어딘지 모르게 대수와 지수, 이연까지도 힘 빠진 공격이 이어졌다.

    보다 못한 두현이 순전히 사심을 채우려고 붙들고 있던 이연의 허리를 놓고는 데굴데굴, 굴러오는 공을 낚아채 정확히 단솔을 향해 던졌다.

    펑―.

    공이 찢어지는 게 아닐까 싶은 소리에 모두 돌아봤을 땐 민혁의 커다란 등짝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림처럼 180도 돈 민혁이 단솔을 감싸곤 제 등으로 공을 대신 맞은 것이었다.

    재빨리 공을 잡은 민혁이 단솔을 공격하곤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두현을 살짝 쳐 탈락시켰다. 공격 기회가 왔음에도 상대를 배려하는 매너 있는 모습에 이를 지켜보던 제작진들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연은 허무한 한숨을 내쉬곤 경기장 밖으로 쫓겨나듯 나가야만 했다.

    “놀고 자빠졌네.”

    지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민혁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단솔과 눈을 맞추며 입 모양으로 ‘괜찮아?’라고 묻는 얼굴이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그 와중에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진한 얼굴이 너무 제 취향이라, 카메라만 없었다면 들고 튀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건 대수도 마찬가지였다. 대수는 제 진영으로 넘어온 공을 잡아 땅에 두어 번 튀겼다. 알파는 아무리 공에 맞아도 떨어지지 않지만, 그냥 게임을 못 할 상태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들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하는 걸 캐치한 민혁도 긴장을 하느라 침을 꿀꺽, 삼켰다.

    세 남자의 불꽃이 튀는 동안에도 단솔은 제갈민혁의 등 뒤에 등껍질처럼 딱 붙어 있느라 사실 무슨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라치면 민혁이 끌어안는 통에 카메라에 제가 나오기는 나오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아니, 그래도 민혁 선배가 너무 활약하는데 내가 코빼기도 안 보이면 좀 그렇지 않나? 딱 봐도 못 이기겠구만, 이 선배는 왜 이렇게 또 열심히 한 대……?’

    단솔의 머릿속에는 온통 방송뿐이었다.

    회귀 전, 이연과 파트너를 한 뒤 온갖 머리 쓰는 게임에서 승리해 데이트권을 여러 번 탔었던 단솔이었다.

    그때마다 무임승차 논란으로 욕을 먹었던 생각이 불현듯 단솔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가만히 있다간 욕먹기 딱 좋았다.

    게다가 민혁을 병약한 뮤지션이라고 생각한 단솔은 게임에서 이겨 보겠답시고 고군분투하는 민혁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기운 없어 보이는 사람이…… 나 때문에 오늘 너무 많이 맞았어……. 아까 손도 다쳤는데……. 이렇게 가만히만 있을 순 없지!’

    아무도 몰래 혼자 의지를 다진 단솔이 고개를 들었을 때, 때마침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핑크색 피구공이 보였다. 분명 저를 맞춰야 게임이 끝나는데, 조준을 잘못해서 던진 듯 방향은 민혁을 향해 있었다.

    ‘안 맞고 잡아서 슈웅, 탁, 맞추면 영웅되는 거 아니야? 할 수 있어. 주단솔!’

    이대로면 민혁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힐 공이었다. 단솔은 짧은 순간에 피구왕이 되는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렸다.

    날아오는 공을 받기 위해 민혁을 밀쳐 내고 공으로 손을 뻗었을 때였다. 하지만 대수가 온 힘을 다해 던진 공은 단솔의 상상보다 훨씬 빨랐다. 대수의 손을 떠난 공이 민혁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쳐 단솔의 얼굴을 강타했다.

    빡―!

    철푸덕.

    ―A 팀의 승리입니다! 축하합니다!

    눈앞이 번쩍, 하더니 단솔의 시야에 하늘이 보였다. 코밑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줄줄 흐르는데, 아파서 나는 눈물인지, 놀라서 나는 콧물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코피인 것 같기도 했다.

    ‘난 그저……. 설마…… 이렇게 또 죽는 걸까……? 기왕 이번에 죽으면 다시 안 태어났으면 좋겠다. 너무 귀찮아…… 졸려…….’

    안 그래도 잘 들리지 않는 귓가에 사람들 말소리가 웅얼거리며 멀어졌다.

    “단솔 씨! 정신 차려요!”

    “미친 새끼야! 애한테 던지면 어떡해⁈”

    “여기 구급차 좀 불러 주세요!”

    * * *

    <다음 주 예고>

    Q : 정대수 씨, 괜찮으세요?

    정대수 : 아…… 네. 괜찮…… 흡……. 잠시, 잠시만요. 후…… 인터뷰 좀 나중에 할게요. 제가 원래…… 잘 안 우는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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