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정대수 저렇게 길게 인터뷰 하는 거 처음 보는 듯.
⤷ㅁㅊ 저게 길게 인텁하는 거라고?
⤷외국에서 오래 살다와서 그럼
⤷아닠ㅋㅋ정대수 부산 사람 아니였음?
⤷노노 미국 출신이고 영화 때문에 한국어를 부산 사투리로 배움 ㅋㅋㅋㅋ 근데 인터뷰는 원래 저렇게 함... 원래 말을 조리있게 하는 편이 아니라 소속사에서 말 많이 못하게함. 우리애가 나쁜 사람은 아니그든요...
⤷ㅈㄹ 정대수 태도 논란 안생기는 게 ㅈㄴ신기하네. 반말 에바임. 왜케 알파들한테는 다 너그럽냐 ㅅㅂ 쟤가 한국에 온지가 언젠데 아직도 외국물 먹어서 무례하댘ㅋㅋㅋ 어이없네
⤷PD가 인터뷰하느라 고생이 많은듯
⤷프로 불편러 ㄲㅈ 정대수가 출연자 중에 나이로보나 경력으로보나 젤 많은데 반말 써도 되지않음? 합숙 컨셉인데 그럼 계속 서로 존대해야함? 청학동 합숙임?
⤷출연자가 아니라 PD한테 반말하니까 문제지 덮어놓고 쉴드 치는게 더 꼴보기 싫음 ㅋㅋㅋ
⤷(주단솔 귀여움에 충격받은 이이연.jpg)
⤷이이연 둘리 미쳤냐곸ㅋㅋㅋㅋㅋㅋ졸귀 근데 주단솔 뭐임? 저런 애 어디서 찾은 거지...?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귀한 인재를.... 왜 몰라본거냐 나년.....
⤷진심 천년돌ㅋㅋㅋㅋㅋㅋ 다들 벙찌는 거 ???????????????????? 웃김.
⤷(주단솔 보고 얼굴 빨개진 정대수.jpg)
⤷아들래미 학예회간 애기엄마 이이연
⤷둘이 초면 아니냐곸ㅋㅋㅋㅋ왜 저렇게 뿌듯해하는 표정임?
⤷제갈민혁 맨날 음악성 어쩌구 하면서 아이돌 까더니 지금 덕통사고 당한듯?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하자 아이돌을 깐게 아니라 아이돌 소속사들을 깐거지 음반 판매량으로 장난질 하지 말라고
⤷주단솔 부르는거 보고 원곡 들어봤는데 개별로임 차라리 무반주에 부르는 게 훨씬 좋음
⤷헐 ㄴㄷㄴㄷ 이디엠mr뭐임 개촌스러움 노래는 좋은데 프로듀싱이 중소냄새남
⤷주단솔같은 캐릭터는 모아니면 도 난 좀 나대는 것 같아서 별로
⤷프로 불편러 납셨네. 주단솔 내 마음의 별로
⤷근데 마지막에 오메가 누구임 ㅋㅋㅋㅋㅋㅋㅋ
⤷걍 어그로일듯
⤷백퍼 진심인 말투던데?
⤷한지수 아님? 한지수 그런 소문 있었잖아 그쪽이라고ㅋㅋㅋㅋㅋ오메가끼리 연애하는 영화도 찍지 않음?
⤷뭔 개소리야 그런 영화 찍으면 다 그쪽인 줄 아냐
⤷근데 저 옷 윤여민 호크룩스아님? 사복입을때 맨날입던 애착템같은데
⤷저거 협찬템이라 다입었는데 뭔솔 윤여민 호크룩스는 더빨간색임ㅋㅋㅋㅋ
* * *
—안녕하십니까, 알오매치 서바이벌 참가자 여러분. 춘몽도, 그리고 우리 춘몽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출연자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준비된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알오매치 서바이벌은 참가자들의 몰입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진행자 없이 오로지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으로만 촬영이 진행되었다.
스태프들이 있는 거실 외에 모든 방에는 구석구석 관찰 카메라가 위치하지만, 커플들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위한 사각지대가 매 라운드 별로 따로 공개되곤 했다.
그때는 곳곳에 카메라가 있는 줄도 모르고 피곤하면 피곤한 대로 표정에 티가 났다. 방송국 놈들의 무서움을 모르는 어린양. 그게 바로 저였다.
그렇게 단솔의 안구 건조증은 감히 대선배를 훑어보는 싸가지로 둔갑했다. 단솔은 이럴까 봐 일부러 콘택트렌즈도 빼고 나왔다. 수시로 눈을 깜빡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눈에 선명히 뵈는 게 없긴 했지만, 어차피 이곳엔 맑은 눈으로 보고 싶은 게 없으니 괜찮았다.
—알파분들의 방은 2층 왼쪽입니다. 올라가서 각자 원하는 방을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나오자, 알파들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이이연이 단솔에게 다가왔다. 회귀 전 단솔은 이연과 처음으로 밥을 먹었다. 그때도 그는 위층에 올라가기 전 단솔에게 조용히 물어봤었다.
“단솔 씨 뭐 좋아해요? 같이 밥 먹고 싶은데.”
변하지 않는 개수작에 단솔은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불쑥, 다가온 얼굴은 여전히 잘생겼다. 높은 콧대와 밝은 눈동자. 부드럽게 떨어지는 갈색 머리, 흰 셔츠 사이로 풍기는 머스크향에 장난스럽고, 적극적인 성격까지도.
‘더럽게 취향이네, 개자식.’
이연은 단솔의 이상형을 덧그린 사람 같았다. 하지만 저 겉모습에 속았다간 상처만 잔뜩 받을 게 뻔했다.
이이연은 브런치가 차려진 테라스 방에 있었다. 그림 같은 방에서의 식사는 단솔이 이연에게 반하기에 충분했다.
‘다신 안 속아.’
마음속으로 굳은 다짐을 한 단솔이 입을 열었다.
“저는…… 메기 매운탕 좋아합니다. 선배님.”
“어…… 입맛이 상당히 클래식하구나……?”
당황한 이연이 버벅거리는 사이, 다시 한번 방송이 흘러나왔다.
—알파 출연자분들은 서둘러 방에 입실 부탁드립니다. 오메가는 중복 입실이 가능하지만, 알파 출연자는 한 방에 한 명씩만 입실 가능합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이따 봐요.”
단솔의 어깨를 잡은 이연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이따 보기는 개뿔.
단솔은 코웃음을 쳤다. 위층엔 브런치와 한정식, 일식, 중식 셰프가 준비한 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메기 매운탕은 없었다. 입맛이 까다롭고, 늘 체중 조절을 한다는 그는 데이트 때마다 까다로운 입맛을 자랑했다.
‘그래 봤자, 또 풀떼기만 뜯겠지.’
—알파 여러분들, 모두 방을 고르셨나요? 우리 옛말엔 물 한잔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라죠? 이제 한지수 씨, 윤여민 씨, 유두현 씨, 주단솔 씨 순서로 올라가 주시겠습니까?
단솔은 어디로 가든 이이연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이연을 제외한 다른 알파들은 단솔에게 관심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단솔의 착각이었다.
* * *
“문 닫지? 알파는 한 방에 한 명.”
“선배님이 양보 좀 해 주시죠? 제가 한식을 좋아해서.”
깔끔한 한정식이 차려진 방에는 이미 정대수가 앉아 있었다. 이이연은 그 문을 열고 억지를 부렸다. 이이연은 이런 곳에서 메기 매운탕을 찾는 단솔이 확신의 한식파라고 확신했다.
“나도 좋아하는데, 한식.”
“해외에서 자라셨다면서요, 입맛에도 안 맞으실 텐데 양보 좀 해 주시죠?”
“안 되겠는데. 그쪽이야말로 365일 샐러드만 먹지 않나? 안 어울리게 굴지 말지?”
“누가 들어올 줄 알고 이렇게 고집을 피우세요?”
“말했잖아, 좋아한다고, 한식을.”
두 사람이 기싸움을 하고 있는 사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정대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앞에 놓인 물 잔을 들이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 앞에 기대고 서 있던 이이연의 팔을 누군가 들어 올렸다.
“다들 안녕? 나 기다렸어?”
한지수는 자연스럽게 들어오더니 정대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 모습에 정대수의 얼굴이 더 험악해질 수 없을 정도까지 일그러졌다.
“너 왜 여기로 들어와.”
정대수와 한지수.
두 사람은 데뷔 초 독립 영화에 같이 출연한 적도 있는 절친이었다. 굳이 이곳에서 겸상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사이였다. 데뷔 초엔 열애설도 몇 번 났었지만, 두 사람이 빠른 속도로 극구 부인하며 무마된 적도 있는 동네 친구였다.
“아…… 두 분이 벌써 그런 거예요? 난 또.”
이연이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응, 내가 한식 좋아하거든. 난 괜찮은데 앉을래? 알파 둘이랑 밥 먹지 뭐. 나 이런 거 좋아해, 두 명이서 나 가지려고 싸움 붙고 이런 거.”
지수의 말에 이연이 먼저 답했다.
“아뇨, 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붙잡힐세라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단솔이 들어오지 않는다 해도 시간은 많았다. 한지수에게 코가 꿰여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는 나았다. 지수처럼 능숙한 연상은 영 이연의 취향이 아니었다.
문이 닫히자, 생글생글, 웃던 지수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한 놈은 제거했는데, 이 덩어리는 어떻게 치우지?”
지수가 대수를 보며 말했다. 두 사람 다 키가 비슷하게 컸지만, 한지수의 마른 체형에 비해 정대수는 기골이 장대하다는 뜻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너 한식 안 좋아하잖아, 살찐다고.”
대수가 이를 아득 짓씹으며 물었다.
“아니? 나 한식 좋아해, 엄청 좋아해. 너 같은 덩어리는 모르겠지만, 나는 먹어도 안 찌는 체질이라 오히려 몸보신이 좀 필요하달까? 특히 메. 기. 매. 운. 탕. 같은 거.”
지수는 그에 호응하듯 대수를 놀렸다. 지수는 춤추는 단솔을 보자마자, 정대수와 필연적으로 붙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연애 상대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둘의 취향은 완벽하게 똑같았다.
‘작고, 귀엽고, 요정 같은 오메가.’
* * *
메기 매운탕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어디로 튀는지 꿈에도 모르는 단솔은 유두현이 위층으로 올라가고 나서도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거나, 대화가 잘 통해서는 안 됐다. 단솔이 욕을 더 먹었던 건 초반부에 이이연과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자아내 분량을 꽤 많이 뽑아냈던 탓도 있었다. 이번엔 아예 존재감이 없어야 했다.
말수가 적은 정대수가 가장 적합했지만,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눈에 튀는 알파였다. 여러 오메가가 정대수에게 혹할 테니 어쩌면 이이연보다 더 피해야 할 상대일지도 몰랐다.
마태오는 좀…… 말이 많고 시끄러운 편이었다. 같은 아이돌인데도 방송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리액션이 좋아서 제작진들이 좋아했다. 게다가 커다란 팬덤을 끼고 있는 만큼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방송국 입장에선 통편집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남은 건 한 사람, 제갈민혁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제갈민혁은 알오매치 서바이벌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알파였다. 음악성 자체는 글로벌하게 인정을 받지만, 예능감이 떨어져서 그런지 방송에서 분량이 크지 않았다.
‘제갈민혁이 어디였더라…….’
단솔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곤 회귀 전, 제갈민혁이 있었던 방의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