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3화 (3/150)

3화

단솔은 그제야 깨달았다. 오메가들이 왜 정대수에게 그리도 환장했는지를.

‘와…… 이 사람 뭐야. 하마터면 설렐 뻔했네. 정신 차리자 주단솔.’

“저는 비타민 D가 모자라서요. 광합성을 좀 해야 합니다, 선배님.”

단솔이 씽긋, 웃으며 고개를 들곤 햇빛 아래 섰다. 정대수는 생글생글 웃는 낯을 보자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정대수의 뒤로 출연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에 나온 정대수 때문인지 순서가 뒤엉켰다. 그때까지도 정대수는 단솔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알파는 영화배우인 정대수와 모델 출신 연기자인 이이연, 싱어송라이터인 제갈민혁과 아이돌 제우스의 리더인 마태오.

오메가는 단솔과 유두현 다음으로 한지수와 윤여민이 나왔다. 단솔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배우였다.

그들을 보자 단솔은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나락으로 떨어져 방송국엔 발도 못 붙이게 된 뒤로 그들을 만나면 복수하겠노라, 다짐했지만, 정작 저 사람들을 직접 만나니 전보다 더 주눅이 들고 몸이 떨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유두현은 한지수와 윤여민이 소속된 대형 회사의 하위 계열사 소속이었다.

관계자들이 어느 정도의 힘이 있는 회사에 소속된 유두현이 단솔을 괴롭히는 것을 묵인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바꿀 수 있어, 괜찮아.’

이 방송에 출연하기 전만 해도 단솔은 이렇게 나약하거나 소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과호흡이 올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다른 분들은 다 아는 분들인데…… 자기소개 좀 해 주세요.”

그런 단솔을 정신 차리게 만든 것은 유두현의 한 마디였다. 단솔이 아이돌이라는 것도, 일일 드라마 ‘김 서방네 다섯 아들’에 막내아들 역할로 나온 것도 알고 있으면서 하는 소리였다.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오프닝 초반부터 일부러 관심을 주고, 긴장감에 자충수를 두게끔 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칩거 생활 중 방구석에서 커뮤니티 댓글만 봤더니 어느새 단솔은 수를 읽는 눈이 생겼다.

‘예전엔 그 악랄한 의도를 몰랐겠지만, 지금은 안 속아.’

회귀 전엔 오프닝 때 이쪽저쪽 눈치를 보며 인사를 하다가 우연히 째려보는 표정이 나왔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냥 지나갔을 장면이었지만, 후에 사람들은 그 장면을 증거로 오프닝부터 유두현과 단솔이 신경전을 벌였다는 것처럼 떠들곤 했다.

방구석 여포로 진화한 단솔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곳은 정글이었고, 자신은 살아남아야 했다. 눈에 띄는 게 아니라, 눈에 안 띄는 방향으로.

남몰래 심호흡을 깊게 한 뒤 단솔은, 바로 밤을 새워서 짠 전략에 돌입했다.

산통 깨기.

연애 예능의 오프닝은 설렘이다.

어색하고 풋풋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어 버려, 수습이 불가능한 장면을 만들어 내야 했다. 깐깐한 미감의 최 PD가 단솔이 나오는 부분을 분노의 편집으로 싹 도려내 버릴 수 있게.

“안녕하십니까, 선배님들! 다이노소울의 리더 주단솔입니다!”

음악 방송 대기실에서처럼 90도 인사를 꽂은 단솔이 눈을 질끈, 감고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오! 너를 기다렸어, 난~

내가 흔적으로 남을 때까지~

언젠간 날 찾아 줘

저 멀리 지구 아래 기다리는 날~

커다란 발자국을 보면 알게 될 거야~

네가 볼 수 있게 남겨 놓았어~

따라와 follow me

그 아래 내가 있을 거야

다이노소울!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보다 열심히 춤을 춘 단솔이 다이노소울 시그니처 포즈를 취하곤 카메라를 보고 엔딩 요정처럼 헐떡거렸다.

자기소개를 시킨 유두현은 물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입을 쩍, 벌렸다. 순식간에 현장이 조용해졌다. 다들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싶은 표정이었다.

‘후…… 이 정도면 충분히 통편집 각이겠지?’

단솔은 창피해서 죽고만 싶었다. 하지만 출연자와 스태프 몇 명 앞에서 창피한 게 전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야 나았다.

최미진 PD는 감성파였다. 그런 그녀가 이런 싼 티 나는 음악을 살려 둘 리 없었다.

단솔은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나 카메라에 잡힐까, 제자리에 돌아가고 나서도 연신 해맑은 웃음을 지은 단솔이었다.

옆자리에 서 있는 정대수는 공감성 수치를 느낀 듯, 귀가 빨개져 아예 단솔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먹혔다.

오프닝에 쓸 장면이 없겠지.

그래! 날 통째로 자르라고!

이런 분위기면 1라운드 탈락할지도 모르겠는데? 제발 제발 1라운드에 떨어트려 주세요…….’

짝―.

짝짝짝―.

누군가의 박수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당황스러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과 박수를 치는 사람들 사이로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 정식 자기소개는 안에 들어가서 할 테니까요. 오프닝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상황을 정리한 것은 역시나 메인 PD였다. 그 말을 끝내곤 한참이나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PD가 진행을 이어 나갔다.

“어…… 이제부터 저희 알오매치 서바이벌에서는 섬에서 나갈 때까지 핸드폰 및 통신 기기를 쓸 수 없습니다. 모두 소지품 제출해 주세요.”

이미 전 시즌에서도 동일한 룰을 적용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 꼭 내야 해요?”

눈치 빠른 이이연은 단솔 덕분에 어수선해진 분위기에서도 모르는 척 아쉬운 소리를 했다. 확실히 예능감이 좋은 사람이었다.

단솔이 악마의 편집을 당하면서도 항의 한마디 못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비밀 엄수를 위해 생방송 수준으로 타이트하게 일정을 잡은 덕분에 단솔이 최종 라운드를 찍고 집에 돌아왔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국민 빌런이 되어 있었다.

단솔은 오랜만에 쥐어 보는 제 구형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지금은 멤버들 단체 채팅방 빼고는 연락도 오지 않는 핸드폰이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론 극성 안티들의 전화 테러에 몇 번이나 핸드폰 번호를 바꿔야 했다.

전원을 끄고 메인 피디가 건넨 상자 속에 핸드폰을 집어넣자, 진짜 자신이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전엔 멤버들에게 안부 인사라도 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상자에 핸드폰을 넣었다. 어차피 일이 틀어지면 그들 중 아무도 단솔을 찾지 않을 테니까.

“이제 다들 숙소 안으로 이동하실게요—.”

출연진들이 자물쇠가 달린 상자에 핸드폰을 집어넣고 나자, 조연출이 크게 외쳤다.

최 PD는 그 와중에도 계속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단솔은 심각한 PD의 표정에 안심을 하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단솔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거부해도 그는 원샷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천생 ‘아이돌’의 운명이라는 것을.

“아…… 이상하네.”

뻐근한 목뒤를 문지르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최 PD에게 촬영 감독인 김선태가 다가갔다.

“최 PD, 무슨 문제 있어?”

“저 친구요. 별 기대 안 하고 캐스팅 한 건데…… 자꾸 눈에 밟혀서요.”

최 PD가 뚫어져라 보는 모니터에는 방금 전 춤추던 단솔의 모습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나도 그래, 희한하게 눈길이 가. 아까 봤어? 무반주에 흙바닥에서 춤추는 거. 다른 사람 같으면 충분히 민망할 상황인데…….”

“열심히 하는 게 귀엽지 않아요?”

“그래, 그 장면 살리는 게 어때? 원래 최 PD 스타일은 아니지만.”

“웬일이야, 김 감독님이 그런 소릴 다 하시고.”

김선태는 이 나이에 자신이 아이돌에 빠진 걸까, 생각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덕통사고인가. 아니, 단솔의 얼굴을 보면 그보다는 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짠하고 울렁거리는 기분. 제 입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기분을 굳이 최 PD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이목구비에 스토리텔링이 있어. 한번 지켜보자고. 저 잘나가는 놈들 사이에서 얼마나 해낼지.”

최 PD는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모니터에는 한가득 단솔의 모습이 일시 정지되어 있었다.

파란 하늘과 초록빛 정원, 하늘색 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단솔이 이온 음료 광고 같은 몸짓을 하고 멈춰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 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최 PD 역시 마찬가지였다.

* * *

<알파 속마음 인터뷰>

Q: 첫인상만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오메가가 누구였나요?

정대수 : 주단솔 씨요.

PD : 왜요?

정대수 : 제 이상형에 가까우신 거 같아요.

PD : 이상형이 어떤 스타일이에요?

정대수 : 귀여운 스타일.

PD : 구체적으로 설명을 좀…….

정대수 : 쪼그만 게 예쁘잖아요.

이이연 : ……아 주단솔 씨? 진짜 미친 거 같아요. 너무 귀엽던데요? 전 진짜 기대도 안 하고 왔거든요. 아 진짜 어디서 나타난 거지? 공룡…… 와……. 둘리 이후에 이렇게 귀여운 공룡은 처음이라고 봅니다, 저는.

제갈민혁 : 그 주단솔 씨? 그분이 부른 노래 제목이 뭐죠?

PD : ‘팔로우 미’요.

제갈민혁 : 음……. 멋있었어요, 진짜. 같은 뮤지션으로서. 저는 이제 좀 무대를 가리는 편이거든요. 하핫, 연차가 좀 쌓였으니까. 근데 그렇게 무반주로 하시는 걸 보니까 옛날 버스킹하던 때 생각도 나고, 초심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랄까? 같이 이야기 나눠 보고 싶어요. 궁금해요.

제우스의 마태오 : 다이노소울의 주단솔 씨? 왜 방송에서 못 봤나 싶어요. 아, 미리 좀 친해져 놓을걸……. 저 사실 되게 졸렸거든요? 오늘 한 시간밖에 못 잤어요. 근데 단솔 씨 노래 부르는 거 보고 잠이 확 깨는 거예요. 되게 모범생 같은 느낌으로 서 계셔서 신인 배우인가 했거든요. 노래 부르는 재질이 천상 아이돌. 반짝반짝, 빛나더라구요. 같은 아이돌이기도 하고, 나이도 비슷하고.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메가 속마음 인터뷰 >

Q: 첫인상만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알파가 누구였나요?

××× : 꼭 알파여야 해요? 전 주단솔 씨가 자꾸 생각나던데. 아, 제가 말 안 했나. 저는 알파, 오메가 잘 안 가려서. 근데…… 꼭 알파랑만 데이트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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