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최미진 PD님 안녕하세요, 다이노소울 주단솔입니다!”
“김선태 감독님! 안녕하세요, 다이노소울 주단솔입니다!”
“박미주 작가님! 안녕하세요, 다이노소울 주단솔입니다!”
촬영장에 도착했을 땐 한창 촬영 준비로 분주한 상태였다. 이미 스태프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단솔은 그들에게 열심히 인사를 했다.
회귀 전 첫 촬영 때는 지각해서 부랴부랴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 미처 인사를 못 하고 촬영에 들어가야 했다.
예능 출연에 서바이벌인지라 긴장해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패닉상태.
뒤늦게라도 인사를 하려 했지만, 타이밍을 한 번 놓치자 싸가지 없는 신인으로 찍히고 말았다. 소위 방송 짬밥 좀 먹었다던 그들은 신인의 실수를 용인하지 않았다. 그 뒤론 촬영장의 그 누구도 단솔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제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한 사이 지옥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 신인이야? 여기 신인도 나오나?”
촬영 감독인 김선태였다. 제작비를 때려 부은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촬영 스태프 중 영화를 찍다 온 사람들이 많았다. 김선태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아이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단솔의 표정이 안 좋을 때만 귀신같이 원샷을 찍어 대서 욕을 먹게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이 거지 같은 섬에서 가장 싫었던 사람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사람이지만, 악편을 피해 조용히 통편집을 당하기 위해 그의 눈 밖에 나선 안 됐다.
“네! 안녕하십니까! 다이노소울의 주단솔입니다!”
“너는 뭐 잘하니?”
“네?”
“팀에서 맡은 게 있을 거 아냐, 노래나 춤 같은 거. 대답 못 하는 거 보니까 그냥 얼굴 마담인가.”
“아…… 메인보컬 맡고 있습니다.”
“그래? 의외네, 잘해 봐.”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피식, 웃고 지나가는 김선태를 보며 단솔은 한숨을 내쉬었다. 느물거리는 말투만큼이나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건들거리는 뒷모습을 보며 주먹을 꽂아 주고 싶은 걸 꾸역꾸역 참고 있던 그때, 그가 다시 몸을 돌려 단솔을 쳐다보았다.
“근데,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아?”
“그…… 미팅 때…….”
“난 미팅 안 갔는데? 그땐 내가 한다는 소리도 안 했을 때라.”
“그…….”
비호감인 성격과 달리 촉이 기민한 사람이었다. 이 바닥에서 저 정도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뭐 하나쯤은 특출난 구석이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단솔은 제 부주의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스케줄도 없는 아이돌이 영화 촬영 감독의 이름을 외울 일이 뭐가 있을까. 의문스러운 눈을 한 김선태가 단솔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해 내, 생각해 내! 뭐라도 대답해야 해! ‘
“패…… 팬입니다!”
“뭐?”
“감독님이 작업하신 영화…… 팬이에요. 그 이름의 추억이랑 백세 인생이요……. 영화 보는 내내 영상미가 너무 좋아서 누가 찍으신 건가 찾아봤거든요…….”
궁색한 거짓말을 저 인간이 믿어 줄지 미지수였다.
단솔은 당연히 그 영화들을 본 적 없었다. 단솔이 초등학생일 때 나온 영화였으니까. 그냥 그가 제 자랑에 열을 올릴 때 가장 자주 들었던 제목을 뱉었을 뿐이었다.
“……그래?”
김선태의 눈빛이 아까와 달리 꽤 누그러졌다.
“요즘에 블루레이로 재판하는데 하나 갖다줘?”
말투도 묘하게 친절해졌다. 다행히 단솔의 임기응변이 먹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단솔은 잠깐의 거짓말을 위해 안 그래도 좁은 숙소에 짐 덩어리를 갖다 놓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미 사서 갖고 있죠. 팬인걸요.”
“……오 ……그래? 영광이네. 아이돌이 내 팬을 다 해 주고. 잘해 보자고, 이번에도 작품 하나 만들어야지.”
이제는 완전히 기꺼운 표정을 숨기지 않는 선태가 단솔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렇게까지 호감을 얻을 필요는 없었지만, 밉보이는 것보다야 낫지.
단솔은 가볍게 생각하고 그를 보내곤 촬영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여긴 변한 게 없네. 당연한 건가…….”
절벽 끝에 웅장하게 세워진 커다란 숙소를 보며 단솔이 중얼거렸다. 한옥을 모티브로 한 건물 안에는 최고급으로 협찬받은 물건들이 가득했지만, 단솔은 그곳이 편하게 느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곳 빼고.
“여기 와 봤나?”
멤버들이 보고 싶어서 밤에 혼자 훌쩍거리던 뒤뜰이었다. 구석진 곳이라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단솔 앞에 나타났다.
정대수였다.
영화에서 누아르와 액션 연기를 주로 하는 그는 잘생긴 곰처럼 생긴 알파였다. 다부진 체격에 과묵함까지 겉모습과 유명세만 보고 다가갔던 오메가들은 뚱한 그의 반응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결국 그는 마지막 라운드를 남겨 놓곤 춘몽도를 떠났었다.
‘웬만하면 먼저 말 거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단솔은 한 달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사실 정대수와는 크게 접점이 없었다.
단솔에게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던 오메가들이 초반부터 정대수 옆에 철썩, 붙어 의도적으로 단솔을 밀어냈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컷도 몇 없었다. 그래서 단솔은 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뇨……. 그냥 말…… 이 그렇다는 거죠.”
“출연자? 스태프?”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다이노소울의 주단솔입니다!”
내내 무표정을 유지하던 정대수가 단솔의 인사를 듣고는 피식, 하고 웃었다.
‘그래, 웃어라 웃어.’
공룡의 소울이라니, 웃길 만도 했다.
회귀 전에는 누가 이름의 뜻이 뭐냐고 물어보면 진지하게 사장이 일장 연설했던 세계관을 읊어 주곤 했는데, 망하고 보니 그냥 어그로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좀…… 웃기죠?”
“이름 듣고 웃은 거 아닙니다.”
괜히 머쓱해 말을 덧붙인 단솔에게 정대수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어색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가득 차오르는 순간, 멀리서 정대수를 부르는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대수 형님! 아이, 이 형 또 어딜 간 거야…….”
“저기…… 가 보셔야…….”
“먼저 가 볼…….”
두 사람이 동시에 침묵을 깼다.
“다음에 또 봅시다.”
먼저 자리를 뜬 것은 정대수였다. 그는 단솔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자리를 떠났다.
‘후유……. 드디어 갔네.’
한때는 단솔도 그처럼 멋진 영화를 찍는 날을 꿈꾸기도 했었다. 캐스팅 목록을 보면서 유명한 스타들과 인맥을 틀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었는데, 이제 단솔에게 그들은 필사적으로 피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특히 프로그램 초반의 정대수는 거의 몰표에 가깝게 오메가 출연자들의 인기를 얻은 사람이었다. 괜히 그의 주변에서 기웃거렸다간 회귀 전보다 더 크게 혼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게 어떻게 얻은 새 인생인데, 저런 사람이랑 엮였다가 또 당하려고. 절대 안 돼!”
* * *
“촬영 시작할게요!”
첫 시작은 출연진들이 커다란 저택의 곳곳에서 등장해 광장으로 모이는 모습이었다. 촬영 전부터 등장 순서로 각 소속사가 난리가 났다던데 당연히 단솔의 회사는 조용하기만 했다. 어차피 연차로 보나, 나이로 보나 제일 막내인 단솔이 먼저 나와야 했다.
회귀 전에도 땡볕에서 종일 손뼉만 치고 있느라 피부가 빨갛게 익어 한동안 고생을 했었다. 억까들은 익은 피부 위에 오이 팩을 하는 단솔을 괜히 손가락질하기도 했었다.
‘한 번은 당해도 두 번은 안 당하지.’
단솔은 선스프레이 한 통을 구석구석 뿌려 대곤 밖으로 나갔다. 상큼한 색감의 오렌지 나무 뒤에서 등장한 단솔은 마치 처음인 것처럼 능청스럽게 연기를 했다.
“어……? 아무도 안 오셨네?”
깔끔한 하늘색 셔츠를 입은 단솔이 헤헤, 하는 웃음으로 적막을 때웠다. 난해한 패션을 좋아하는 코디 누나가 골라준 요란한 셔츠 대신,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단솔이 직접 챙겨 온 병풍 룩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단솔의 피부색에 딱 맞는 색감이 오히려 회귀 전보다 그의 미모를 환하게 빛내고 있었다.
촬영 감독은 흥미로운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카메라는 귓불을 붉게 물들인 단솔을 클로즈업했다. 어색함과 쑥스러움이 공존하지만, 그만큼 순수한 청년의 청량함이 담긴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 걸린 만족스러운 미소를 눈치 빠른 조연출이 알아차릴 정도였다.
하지만 단솔의 낯빛이 변하는 게 어색함이 아니라, 분노 때문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오메가 알파 순서로 나오니까 다음은 이이연이겠네. 개자식.’
이이연은 모델 출신의 알파로, 연기자로 전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끼가 많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단솔을 향해 노골적인 호감을 표시했다.
능글거리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재밌는 상황을 잘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 단솔 역시 호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섣불리 스킨십을 시도하는 바람에 급격하게 사이가 멀어졌다.
그게 퍽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이연은 도움을 요청하는 단솔에게 되레 화를 냈고, 유두현의 이간질에 가장 먼저 단솔을 외면했었다.
얄궂게도 그는 초반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신경 쓰이는 재질’로 불리며 서바이벌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만약 단솔에게 살생부를 쥐여 준다면 유두현 다음으로 적을 이름이었다.
진정하자, 표정 관리. 표정 관리.
저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지려고 했지만, 순간을 잡아내 국민 역적을 만드는 제작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단솔은 그저 햇빛이 눈부셔서 잠깐 찡그린 것처럼 손으로 그늘을 만들곤 이이연이 나올 문을 쳐다보았다.
“……어?”
하지만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정대수였다. 회귀 전과 순서가 바뀌었다. 인지도나 인기, 편집의 재미만 하더라도 정대수가 끝으로 가야 하는 게 정상인데.
“……안녕하세요?”
“하하, 네…… 안녕하세요!”
예상과 다른 상황에 입을 벌리고 서 있던 단솔에게 정대수가 먼저 처음 본 사람처럼 인사를 건넸다.
‘이러면 곤란한데…… 정대수처럼 유명한 사람 옆이면 통편집이 안 된다고.’
이이연이 나올 것만 대비하고 있던 단솔에게 정대수는 큰 변수였다. 단솔은 인사를 하고 다음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일부러 정대수 옆에서 슬금슬금 멀어졌다.
하지만 그에 맞춰 정대수도 슬금슬금 단솔 쪽으로 다가와 섰다. 이렇게 되면 정대수 어깨에 단솔이 계속 걸리게 될 것이다. 예전 같으면 쌍수 들고 환영할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단솔이 한 발짝 멀어지면 또 한 발짝 다가오고, 또 반 발짝 떼면 반 발짝을 따라왔다. 계속된 신경전에 PD가 그제야 한마디 했다.
“두 분 앵글 밖으로 나갔어요. 다른 분들 들어올 자리 충분하니까 안쪽으로 더 들어오세요.”
단솔 혼자였다면 분명 욕지거리했을 PD가 정대수가 있으니 깍듯하게 존댓말로 디렉팅 했다.
머쓱해진 단솔이 안쪽으로 걸어가자, 정대수가 또 단솔을 졸졸 쫓아왔다. 이 사람 도대체 왜 이러나 싶어 쳐다보는 단솔에게 정대수는 짧게 답했다.
“햇빛.”
그의 말에 의아했던 단솔이 제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대수의 말마따나, 그의 커다란 덩치에 가려 그늘이 생겼다. 스태프들을 통틀어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 눈을 찌푸리지 않은 사람은 저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