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Light & Shadow Ι
바지를 벗은 채 무릎을 벌렸다. 예준은 조수석 앞으로 발을 뻗어 짚고, 꼿꼿한 성기를 연신 문질렀다. 밀폐된 차 안에 페로몬이 갇히자 참을 수 없었다. 당장 구멍을 쑤시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입 안에 흥건히 고인 침만 삼켰다.
“읏, 으…!”
남자 또한 인내심이 바닥난 건 마찬가지였다. 그의 중심도 이미 더할 나위 없이 부풀어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핸들을 쥔 채 아슬아슬하게 예준의 허벅지 안쪽을 주물렀다. 당기면 엉덩이 사이가 벌어지도록 힘을 주는 통에, 예준은 젖은 회음부를 손바닥으로 덮어 감추어야 했다.
“후으…. 어떡해요….”
태경은 답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다리 사이를 들여다보기만 할 뿐, 언제 절정에 이르러도 이상하지 않은 저를 달래 주지 않았다. 그 침묵에 수치심이 일었으나 예준은 멈출 수 없었다.
“흐윽, 흐으….”
헤드라이트 불빛이 이따금 들이쳤다. 누군가 작정하고 안을 들여다본다면 난잡한 꼴을 들키고 말 터였다. 그런데도 옆자리에서 전해지는, 러트에 이른 페로몬 탓에 속수무책으로 치부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달콤하고, 어찌나 애가 타는지. 성기만 문지르던 예준이 결국 가운뎃손가락을 몸속으로 밀어 넣었다. 깊이 쑤셔도 좋은 지점에 잘 닿지 않았다. 미칠 것 같아 몸을 뒤채기에 이르자, 태경이 눈앞의 호텔을 향해 핸들을 꺾었다.
태경은 주차장 구석에 차를 대자마자 달려들었다. 번들거리는 두 눈을 마주할 새도 없이 집어삼킬 듯 입술을 빨고 핥았다. 평소보다 양이 많은 타액도 거리낌 없이 삼켰다.
“이, 이런 게 러트예요? 원래 이런….”
예준이 숨을 쉬는 타이밍에 물었다. 태경은 사나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이나 전조 증상을 앓았던 저와 달리 태경의 러트는 갑작스러웠다. 예준은 폭발적인 페로몬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좁은 조수석으로 거대한 체격이 밀려들었다. 얻어맞은 터라 온몸이 아픈데도 자비 없이 몰아붙이는 남자를 받아 내야 했다. 아무리 밀어내도 힘으로 압박해 왔다. 이성이 소거된 듯 거친 숨만이 공기를 달아오르게 했다.
“뒤로 넘어가.”
태경이 종용했다. 예준은 순순히 뒷좌석으로 넘어가 다리를 벌렸다. 물을 흘리는 성기를 만지며, 코트를 벗고 제게로 오는 남자를 기다렸다. 곧 남자가 닥쳤다. 얇은 티셔츠 한 장이 노기와 성욕으로 잔뜩 부푼 근육을 겨우 버텨 내고 있었다.
예준은 상처가 난 태경의 손등을 조심스레 건드렸다. 손끝이 워낙 떨려 아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메가는 오메가로 대해야 하는데 내 생각이 짧았어.”
이윽고 흘러나오는 말에 예준의 두 눈에 긴장이 감돌았다. 태경이 티셔츠를 벗고 버클을 열었다. 드로즈를 건드리자마자 퉁 튕겨 나온 성기가 근육으로 울룩불룩한 배 위에 붙었다.
“감시하고 통제해야 지킬 수 있는데 말이야.”
남자는 회한에 젖은 눈으로 읊조렸다. 예준은 윤도하가 그의 인내심을 바닥냈음을, 제게로 향한 믿음을 깨뜨렸음을 직감했다. 변명은 변명일 뿐, 어떤 말도 그의 기분을 나아지게 만들지는 못할 터였다.
“존중하고 싶었어. 동등한 연애 상대로. 그런데 참고 인내한 대가가 고작….”
뒷말을 삼킨 태경이었으나 예준은 그가 할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윤도하 무리에게 붙잡혀 강간당할 뻔한 꼴을 들켜 버렸다. 그에게 구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은 그저 바람으로 끝났다. 입술만 달싹이며 바라보자, 남자가 식은땀에 흠뻑 젖은 앞머리를 넘겨 주며 말했다.
“왜 비밀을 만들어.”
“아무것도 안 했어요. 걔랑 정말….”
“언제부터 숨겼어?”
“숨긴 게 아니라 그 애가 일방적으로….”
페로몬에 잠식되어 문장이 또렷하게 이어지지 않았다. 온몸이 덜덜 떨릴 만큼 강하게 몰아치는 성감에 자꾸만 의식이 흐려졌다.
“탓하는 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 줘.”
“하아….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내가 거기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봤어?”
물어 놓고 말을 가로막는 키스에 예준은 결국 신음했다. 머리채를 휘어잡은 태경이, 그와 반대로 녹여 먹을 듯 다정하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쪽 빨았다 놓고 아프지 않게 씹었다. 혀까지 밀고 들어오자 따뜻한 양감을 느낀 예준은 혼을 쏙 빼앗기고 말았다.
위기감과 함께 성기가 밀려들었다. 푹 젖은 구멍을 단숨에 벌리고 들어온 성기가 깊이 안쪽을 찔렀다. 원했던 쾌감을 맞이하자 예준의 잇새에선 곧바로 신음이 터졌다.
“아앗…!”
성기의 단단한 표면이 내벽과 마찰하기 시작했다. 탱탱하게 벌어진 입구가 성기를 거세게 조였다. 예준은 도리질 치며 남자를 밀어냈으나 사실은 더 원하고 있었다. 더 강하게 쑤셔 주기를, 한계까지 몰아붙여 극도의 쾌감을 맛볼 수 있게 해 주기를.
“아아…! 앗! 으응…!”
남자는 퍽, 소리와 함께 회음부를 짓이기듯 삽입했다. 심상치 않은 조임을 인지한 남자가 더 거칠게 성기를 밀어 넣었다. 이미 넘치도록 흥분한 탓에 예준에겐 금세 사정감이 몰려왔다. 잘 느끼는 지점을 연속적으로 자극당하자 들이마신 숨을 뱉어 낼 여유조차 없었다.
“흐윽, 싸… 쌀 것….”
귀두가 탱탱하게 부풀며 커졌다. 때맞춰 태경이 예준의 성기를 붙잡아 흔들었다. 예준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사정했다.
“으응! 으…!”
뿌연 점액질은 곧장 남자의 배로 튀어 올랐다. 히트 사이클이기에 양도 많고 점도 또한 높았다. 붉게 충혈된 성기가 정액을 뱉는 내내 쉬지 않고 꿈틀댔다. 귀두에 묻은 정액을 윤활제 삼아 남자에게 거친 애무를 받았다. 꽉 조이는 손바닥을 느끼자 발버둥 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흐, 으으….”
모두 뱉어 내자 남자가 예준을 일으켜 안았다. 그는 티슈를 집어 배와 성기에 묻은 정액을 닦아 냈다. 사정했음에도 꼿꼿한 예준의 성기까지 닦아 내고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얼굴로 씨근덕댔다.
“이 정도면 방에 도착할 때까지 얌전히 있을 수 있겠어?”
“얌전히….”
“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아래 쑤셨잖아.”
수치도 모르고 구멍을 환히 드러냈다. 예준의 얼굴이 붉어졌다.
“못 참겠어요…. 당신 페로몬이 너무….”
“알아. 네 페로몬도 사람 돌게 할 지경이니까.”
그가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예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차 안에서처럼 추태를 부리지 않으려면 온 힘을 다해 참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손길을 따라 고분고분 바지를 챙겨 입었다. 태경은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차에서 내린 그가 옷을 갖춰 입은 예준에게로 손을 뻗었다.
“안겨.”
예준은 남자의 손을 밀어내고 스스로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곧 저지당했다.
“한시도 떨어질 생각 마.”
태경이 강제로 자신을 안아 들었다. 맞닿은 몸이 뜨거웠다. 이 정도 열감이라면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예준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남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 관계자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손에 무전기를 든 남자는 두 사람을 직원용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누구랑… 왔었어요, 여기…?”
예준이 물었다. 전화 한 통으로 사람을 불러낼 정도면 한두 번 드나든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태경이 예준을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
“만났던 여자들.”
자제력을 잃은 사람은 태경만이 아니었다. 예준이 울컥 눈물을 쏟았다.
“알파였어요?”
“응.”
할퀴인 듯 가슴속이 아팠다. 호텔 관계자와 함께 탔다는 사실을 알면서 예준은 부러 태경의 골반을 감은 두 다리를 조였다. 천을 사이에 두고 성기가 바짝 맞닿았다. 태경이 마운팅하듯 골반을 쳐올렸다.
“으응…!”
쿵, 엘리베이터가 소음을 내며 흔들렸다. 얌전히 있으라고 경고한 사람은 태경인데 오히려 그의 눈이 더 사납게 흔들렸다. 예준은 저도 모르게 흘린 신음을 감추었다.
“갈무리 좀 해요…. 미치겠어….”
“미치게 좋다는 뜻이겠지.”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선뜻 말을 뱉지 못하자 태경이 달려들어 키스했다. 예준은 더할 나위 없이 야릇한 남자의 페로몬에 질식할 것 같았다. 너무 흥분해 정신없이 입을 맞추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걷는 순간까지도 입맞춤은 끝나지 않았다.
스위트룸까지 두 사람을 안내한 직원은 아무런 말 없이 멀어졌다. 태경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예준을 내려놓았다. 다급히 코트와 니트를 벗기고는 드러난 어깨에 입 맞추었다.
“너 만나곤 다른 여자랑 잔 적 없어.”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예준 또한 다급히 태경의 코트를 벗겼다.
“네 몸 안에만 박고 쌀 거야.”
태경이 젖은 입술을 더 촉촉이 축였다. 도전적으로 마주친 시선이 위협적일 정도였다. 간절함이 밴 눈동자를 보자 가슴이 저렸다. 완벽한 나신이 되기까지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예준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태경의 상체를 응시하며 말했다.
“윤도하 때문에 또 동정받는 게 싫었어요.”
태경이 예준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낮은 조도 속, 새하얀 침대 위로 예준을 던진 그가 단숨에 마른 몸을 올라탔다.
“듣고 있어.”
그는 더 말하라는 듯 눈을 맞추고 허벅지 뒤편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오금을 잡아 들어 올리고는 다리를 넓게 벌려 음부를 파고들었다.
“흐읏! 그, 그래서….”
푹신한 입술이 항문에 닿았다. 예준은 지독한 성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목구멍이 꽉 막힌 듯 서러웠지만 꿋꿋이 말을 이었다.
“유, 윤도하 같은 애는… 내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증거도 다 모아 뒀고… 발정기만 지나면… 내가 다….”
더는 피하지 않고 맞닥뜨릴 작정이었다. 태경에게 들키게 된다고 하더라도 신고하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정말로,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뿐이다.
“아, 하읏!”
태경이 녹진하게 풀어진 구멍 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예준은 남자의 머리카락을 그러쥔 채 경련하는 두 다리를 어찌하지 못했다. 벌벌 떨며 내벽을 노골적으로 핥는 혀끝을 느꼈다. 미치게 좋아서 정신없이 몸을 뒤척였다.
“하아, …하아!”
허벅지 안쪽으로 입술을 옮긴 태경이 하얀 살덩이를 세게 빨았다. 그가 애액으로 젖은 입술을 열었다.
“너와 윤도하 사이에 뭔가 있었다면.”
“읏, 하으….”
“그 아인 베타니까. 알파인 내가 이해하지 못할 뭔갈 이해해 줬다면….”
허벅지가 온통 새빨간 울혈로 얼룩졌다. 다시 엉덩이 사이에 코를 파묻은 태경이 예준의 허벅지를 잡아 올렸다. 엉덩이를 더 높이 치들게 한 그가 꼬리뼈를 핥았다.
“으으…, 하아…. 그럴 리, 없잖아….”
“정말, 아무것도?”
“그 앤 너무 어려요…. 난 그냥… 괴롭힘당한 것뿐이….”
예준의 발끝이 곱아들었다. 스스로 무릎 뒤를 잡아 지탱한 예준은 그가 계속 구멍을 핥아 주길 기다렸다. 태경이 구멍의 탄력을 확인하듯 입술을 거칠게 비볐다. 그런 채로 자위하기 시작했다. 쥐어짜듯 쳐올리는 손길 때문에 찰박이는 소음이 예준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하아…, 그냥… 넣어 줘….”
“네 구멍이 더 빨아 달래.”
“아니, 아니에요…. 자지로 해 줘, 그냥!”
예준이 태경을 마구잡이로 당겼다. 어깨에 손톱자국이 나는데도 아랑곳없이 태경은 집요하게 구멍을 빨았다. 내벽이 드러나도록 세게 벌리고, 깊어질수록 촉촉하고 미끈대는 안쪽을 혀로 쑤셨다.
“하읍…!”
예준은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간지러워서, 딱딱한 성기가 안을 긁어 주었으면 했다. 아프도록 파고들어 더 깊이, 깊이 찔러 주길 원했다.
“그 아일 치워 달라고 말했으면 끝났을 문제야.”
“…흡, 으….”
“늦기 전에, 다치기 전에. 제발, 예준아….”
“으으….”
오메가가 된 이후, 그렇게 살아 본 적 없었다. 말 한마디에 모든 일이 제자리를 찾는다는 건 예준에겐 꿈처럼 머나먼 이야기였다. 태경이 위로 올라와 눈을 맞추었다. 물기로 얼룩진, 무구한 눈을 들여다보는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도와 달라고 말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
“좋아하는 사람한텐 더….”
흔들리는 예준의 눈빛에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태경은 달뜬 예준의 입술 위에 입술을 눌렀다. 사실은, 존중하겠다는 핑계로 방관한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일지도 모른다.
“알겠어. 알아들었어.”
알파와 오메가 사이의 동등한 연애란 허무맹랑한 가설에 불과했다. 애초에 종속시켜 곁에 두었다면 예준이 해를 입는 일 따위는 없었을 터였다. 태경은 이제까지의 인내를 후회했다.
“더 빨리 가져서 아무도 손 못 대게 만들었어야 했어.”
태경이 으르렁대며 말했다. 눈빛에서 지독한 소유욕이 엿보였다. 예준은 저를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그를 보는 것이 싫지 않았다. 저 때문에 남자의 온몸이 끓고 있었다. 예준은 더 대화하길 그만두었다. 대신 약한 힘으로 남자를 당겼다.
곧 속을 꽉 채우며 들어차는 성기가 느껴졌다. 퍽, 퍽, 사납게 이어지는 삽입에 예준은 다급히 태경의 가슴을 밀어냈다.
“으응…! 아파, 아파!”
벗어나려 할수록 더 강한 힘이 느껴졌다. 남자의 힘에 완전히 결박당한 채 예준은 하염없이 눈물만 쏟았다. 아프기만 했다면 마음껏 원망할 수 있었을 텐데, 그사이 넘치게 몰아치는 쾌감이 거부감을 손쉽게 밀어냈다.
“읍! 으응!”
싸한 고통은 단지 촉매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경이로운 감각이었다. 러트를 맞은 우성 알파의 페로몬은 거부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었다. 예준은 가까스로 남자의 굴곡진 상체를 더듬었다. 탄탄한 가슴을 긁고 달라붙은 옆구리를 매만졌다.
“하아…!”
손길만으로도 남자의 잇새에서 신음이 터졌다. 짐승처럼 박기만 하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눈을 맞추고 이마를 맞대었다. 흐트러진 눈빛이 그답지 않았다. 예준이 호소하듯 말했다.
“너무… 너무 아파요….”
“후…. 여긴 부드럽기만 한데.”
성기가 내벽을 벌리는지, 자신이 노골적으로 아래를 조이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남자가 성기를 빼지 않고 삽입했기에 입구는 제자리를 찾을 새가 없었다. 아프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성기가 짓찧듯 안을 파고들었다. 회음부에 남자의 음모가 비벼졌다. 위아래로 세게 비비자 성기에 붙었다가 떨어진 내벽이 찔꺽거렸다.
“아응! 아앗!”
“읏…. 히트 사이클인데… 왜 이렇게 안 벌어져.”
“다 열린 거예요, 다… 읏!”
“하…. 아직도 너무 좁아.”
그렇다기엔 이미 끝까지 도달하지 않았던가.
“너 아니면 이거 받지도 못해.”
태경이 예준의 엉덩이를 꽉 틀어쥐었다.
“여기가 이렇게 작은데 어떻게 이걸 다 삼킬까. 응?”
“으, 읍…! 조금만 천천히…!”
예준이 엉엉 울기 시작하자, 몇 분간 안을 더 오간 태경이 성기를 빼내었다. 텅 빈 속이 다시 성기를 찾듯 경련했다. 태경은 손가락 네 개를 한꺼번에 집어넣어 화답했다. 깊이 찔러 넣어 흔들자 입구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벌어졌다.
“으으! 아아!”
예준은 그런 태경의 손목을 붙잡아 손가락을 빼내려고 버둥거렸다. 어림도 없었다. 태경은 더 수월하게 삽입하기 위해 입구를 조심성 없이 헤벌리는 행위에 집중했다. 둥글리듯 쑤셨다가 도톰한 근육마저 벌어지도록 흔들었다. 만족스러울 때까지 벌렸다고 여겼음에도 손가락을 빼내자 입구는 다시 비좁게 조여들었다.
몸이 뒤집혔다. 예준은 엎드린 채 등 뒤로 양손을 결박하는 남자를 저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밑이 아팠는데도 다음 순간, 남자의 성기는 쉽게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으윽…, 읏….”
그가 자비를 베풀듯 깊이를 더하며 삽입했다. 예준은 엉덩이를 곧추세우고 시트에 얼굴을 처박았다. 성기의 표면이 꼬리뼈에 닿는 듯한 기괴한 감각이 들이쳤다. 남자가 각도를 달리하자 배 속 깊이 성기가 닥쳤다.
“흐으… 좋아….”
예준은 움찔대며 엉덩이와 내벽을 동시에 조였다. 안을 벌린 게 효과가 있었는지 고통이 한결 줄었다. 예준의 뺨이 달아오르고 몸은 더 눅진히 풀렸다. 하얗게 질린 피부는 태경의 손이 닿을 때마다 피를 머금듯 붉어졌다.
태경은 높이 솟은 엉덩이를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남다른 탄성이 느껴졌다. 손끝을 튕겨 내는 근육과 그 안으로 꽉 들어찬 성기가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웠다.
“하으…, 으응! 으….”
몸이 작아서 더 좁은 건가. 생각하는 동시에 겨우 고개를 튼 예준과 시선이 마주쳤다. 땀에 흠뻑 젖은 얼굴, 이지러진 시선. 달아오른 귀와 물먹은 눈가. 머금으면 다디달 터였다. 태경은 망설이지 않았다.
“하아…!”
태경이 성기를 쑥 빼내자 예준은 허전한 입구를 곤란한 듯 더듬었다. 푹 쓰러지는 몸을 가뿐히 안아 든 태경이 통유리 창 앞에서 예준을 내려놓았다. 차디찬 창에 달아오른 등을 기대자, 예준은 그제야 편히 숨 쉴 수 있었다.
“…뜨거워. 죽을 것 같아.”
뒤돌아 창에 뺨을 대었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뒤태를 살피는 남자가 창에 비쳤다. 어깨와 허리, 엉덩이, 다리까지. 허리를 꽉 쥔 채 유린하듯 닿은 시선에서 물리적인 힘이 느껴지는 듯했다. 제 몸을 훑는 그를 지켜보는 것은 상상보다 훨씬 더 관능적인 행위였다.
쿵쿵 뛰는 심장 박동을 무시한 채 예준이 엉덩이를 내밀었다. 그러자 골반을 꽉 틀어쥔 태경이 성기를 끝까지 찔러 넣음과 동시에 마구잡이로 쑤셔 댔다. 퍽, 퍽, 허벅지가 맞부딪치고 예준의 몸이 들썩였다. 예준은 있는 힘을 다해 신음을 참았다. 내벽이 긁히며 자극이 일었다. 매끈한 창에 손바닥을 댄 채 남자를 받아 냈다. 태경이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을 뱉어 내며 말했다.
“하아, 하… 못 참겠어.”
뭘?
그렇게 묻기도 전에 일순, 꽉 들어찬 성기가 안을 늘리듯 비벼졌다. 두 다리에 겨우 힘을 주고 버텼다.
“아아…!”
예준의 잇새에서 신음이 터졌다. 동시에 남자의 성기가 커졌다. 이미 지나친 사이즈의 그것이 안에서 몸집을 더 크게 부풀렸다. 이런 건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었다. 예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러다간 내장이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
“이상해…! 이거 이상해요…! 아…!”
예준은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창 너머 혼잡한 도로를 응시했다. 경험한 적 없지만 이 끔찍한 짓이 노팅이라는 사실만큼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순간, 피임약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임신하고 말 터였다.
“대표님…! 하읏! 아! 아기 가지면 안 돼요…! 아, 안 돼….”
“하아…. 씨발, 좆 터지겠어.”
“윽, 으…! 하아… 안 돼, 안 돼….”
“힘주지 마요. 다쳐.”
극한의 고통과 함께 극도의 쾌감이 몰아쳤다. 귀두 끝에 피가 잔뜩 몰리더니 이내 물이 팍, 하고 터졌다. 정액처럼 창에 흩뿌려졌던 그것은 이내 긴 줄기가 되었다. 예준은 쉼 없이 물을 싸질렀다.
“하아…! 아응!”
그와의 섹스에선 당연한 오르가슴이지만, 그간 겪었던 것보다 더 세게 몰아치는 쾌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통유리가 젖을 정도로 싸지른 탓에 예준은 헉헉 숨만 몰아쉬었다. 싸는 내내 엄청나게 아래를 조였다. 부끄러워 고개도 들 수 없을 만큼.
“얼마나 좋으면… 물을 이렇게 많이 싸.”
그가 성기를 훑어 물을 짜내었다. 이어 불룩하게 솟은 배 위에 남자의 손이 닿았다. 피가 싸늘히 식었다.
“안 돼….”
뻑뻑한 정도가 아니었다. 빠져나가려고 할 때마다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발버둥을 치자 태경이 허리를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했다. 예준의 허벅지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후으… 움직이지 마.”
“윽, 아… 안 돼요, 임신하면 안 돼….”
크기를 부풀린 성기가 끝내 파정을 시작했다. 배 속에서 뜨겁고 싸한 감각이 전해졌다. 예준은 아연실색하여 제 부푼 배를 내려다보았다.
“왜. 배불러도 예쁠 것 같은데….”
태경이 젖은 목덜미에 입 맞추었다.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가 골반을 퍽 쳐올리자 몸이 반으로 쪼개어지는 듯했다. 예준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남자가 허리를 붙잡아 지탱해 주지 않았다면 크게 다쳤을 터였다.
“하아…!”
남자가 신음했다. 사정은 계속되었다. 공포에 질린 예준이 파랗게 식은 창을 보았다. 그 창에 비친 남자의 눈에 들어찬 것이 열망인지, 번식욕인지, 자신을 향한 소유욕인지, 그저 뜨거운 성욕일 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흐읍…, 으응…!”
예준은 아프게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사정한 성기가 크기를 줄이자 농도 짙은 정액이 다리 사이를 타고 흘렀다. 발끝이 덜덜 떨리고 배 속의 간지러움이 커졌다.
“앗! 아아!”
여유가 생기자마자 남자는 거칠게 안을 쑤셔 댔다. 정액으로 흠뻑 젖은 내벽이 난잡한 소리를 냈다.
“으으! 응!”
“하아….”
“흡, 윽…! 아아!”
사정한 양이 상당했다. 삽입을 계속하자 정액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치부를 더럽혔다. 예준은 두려운 와중에도 기묘한 충만함에 사로잡혔다. 우성 알파의 씨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본능…. 툭, 툭…,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태경이 예준의 몸을 돌려세웠다. 번쩍 안아 들어 올리고는 그대로 다시 성기를 밀어 넣었다.
“하아…. 하아, 아…!”
예준은 그의 품에 매달려 아래를 쉼 없이 조였다. 연거푸 쏟아지는 남자의 신음을 듣자 귓가가 달아올랐다. 얼마나 좋으면 저런 소리를 내는 걸까. 이렇게 안을 꽉 채우는 느낌보다 더 좋은 걸까….
“으응… 으….”
생각하는 동시에 땀으로 젖은 손이 미끄러졌다. 거친 삽입 탓에 예준의 의식이 흐려졌다. 술에 만취했을 때처럼 눈앞이 점멸했고, 전신이 물 먹은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으으….”
끊임없이 허리를 쳐올리던 태경이 그 변화를 감지하곤 고개를 들었다. 그는 성기를 빼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잔뜩 구겨진 시트 위로 예준을 눕히고는 다시 안을 여러 번 들쑤셨다. 질척질척 달라붙는 구멍은 여전히 알파의 성기를 원하고 있었다.
태경은 접합부에서 뒤늦게 눈을 떼어 냈다. 예준의 눈꺼풀 밑으로 풀린 동공이 보였다. 페로몬에 잔뜩 취한 예준의 입술은 젖어 있었고, 곧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기절한 사람과 하는 취미는 없었다. 그러나 러트 때는 달랐다.
“씨발….”
자조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성기를 빼낸 태경이 얼음처럼 찬 생수를 꺼내 돌아왔다. 그는 예준을 품에 안았다.
“눈 떠요.”
“몸에 힘이 하나도….”
“알아. 힘든 거.”
그가 예준의 뺨에 입술을 눌렀다. 살냄새를 들이켜고 젖은 피부 위에 혀끝을 댔다.
“그런데 난 멈출 수가 없어….”
러트를 맞은 우성 알파가 오메가의 사정을 봐줄 리 없었다. 정신을 잃는다 한들 예준은 그저 야릇한 페로몬을 뿜는 구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태경이 예준의 귓불을 깨물고 귓속에 혀를 밀어 넣었다. 좁은 구멍 속으로 혀를 쑤시고 귓바퀴를 따라 굴렸다.
그저 달콤한 일면을 강조하려는 술수임을 모르지 않았다. 예준은 아프지 않은 때를 기회 삼아 크게 숨 쉬었다. 남자의 거친 호흡에 가슴이 속수무책으로 떨렸다. 사고가 멎었기에 임신에 대한 두려움은 곧 잊혔다.
“하으…. 조금만 천천히… 천천히 해 줘요…. 참을 수 있어요….”
예준은 남자가 건넨 물을 들이켰다. 식도가 젖자 열이 내렸다. 슬쩍 만져본 구멍은 엉망이었다. 시트로 정액을 닦아 내곤 남자의 목에 두 팔을 감았다. 다리를 벌리고 내내 단단한 성기에 시선을 주었다. 쉽게 파고든 태경이 거칠게 입 맞추었다.
“아아!”
신음한 예준은 환희와 동시에 절망했다.
아직, 새벽에 이르지도 못했다.
*
룸서비스에 딸려 온 과일 접시, 그 하나가 곧 생명줄이었다. 예준은 단숨에 비운 와인 잔을 침대 위에 굴리고는 접시 위에 놓인 청포도를 쪽 빨아 삼켰다. 폭신한 배게 세 개가 등을 받쳐 주고 있었다. 허리가 빠질 듯 아팠지만 자세는 명백히 편안했다.
활짝 벌린 다리 사이에는 남자의 머리가 있었다. 위아래로 빠르게 고개를 움직이던 태경이 예준의 성기를 목구멍 깊이 처넣었다.
“아아…!”
“큭…!”
내장을 벌리며 들어가는 감촉이 생경했다. 남자의 목은 보기처럼 강했고, 평균을 웃도는 제 성기를 무리 없이 삼켰다. 남자는 숨이 턱 막힐 때까지 밀어 넣길 주저하지 않았다. 어찌나 깊은지 꼭 삽입한 기분이었다.
“하아…!”
“입 안에 싸 줘요….”
시선을 든 태경이 종용했다. 혀를 내어 귀두를 핥고 기둥을 몇 번 흔들자 예준은 곧 사정 직전에 이르렀다. 사정감이 몰아쳐 전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후으…!”
파정하자 온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예준은 몇 번이나 숨을 참았다. 동시에 입 안에 상큼한 과즙이 터졌다. 예준은 과즙을 질질 흘리며 태경의 머리카락을 당겼다. 너무 많이 사정한 터라 힘없이 흘러나온 정액은 묽었다. 남자는 새어 나온 정액을 모조리 삼켰다.
“후우….”
태경이 손등으로 입술을 닦아 내었다. 까끌까끌한 목을 어루만지던 그가 즉시 향한 곳은 예준의 입술이었다. 벌어진 입술을 핥고 물자 청포도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예준이 한참 씹어 놓은 과육을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핥아먹었다. 키스하며, 신맛에 예민해진 혀와 점막을 빨았다. 예준은 금세 끙끙거렸다.
“이제 그거 말고 내 좆 좀 물어 줬으면 좋겠는데.”
태경이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 여유 없는 시선이 곧게 날아왔다. 예준은 자신이 게으른 부자처럼 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히트 사이클에 직면한 와중이었다. 상큼한 청포도보다야 남자의 수컷 냄새 가득한 성기가 더 좋았다.
“쌌는데… 아직도 딱딱해요….”
예준은 마지막 남은 청포도를 입에 넣고 부지런히 씹었다. 그 덕분에 부푸는 뺨 위로 쉴 새 없이 태경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내 몸 위로 올라와.”
“이렇게…?”
예준은 태경의 손길에 따라 남자의 위로 가 엎드렸다. 정확히는 거꾸로였다. 예준은 제 눈앞에서 꺼떡이는 남자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남자의 입술엔 예준의 구멍이 닿았다. 태경은 예준의 동그란 엉덩이를 꽉 틀어쥔 채 구멍을 벌렸다. 수없이 헤집어 엉망이 된 입구에 뜨거운 입술이 비벼졌다.
“하응…, 읏…!”
겨우 신음을 내뱉은 예준이 양 볼이 쏙 패도록 세게 귀두를 빨았다. 입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크기여서 두 손을 이용해 기둥을 쥐고 흔들었다. 식욕으로 잠시 정체되었던 성감이 순식간에 전신을 타고 고조되었다. 엉덩이에 닿은 촉촉한 입술의 촉감, 단단한 콧대가 아랫배를 조여들게 했다.
“흐으… 흐….”
예준은 삽입 없이도 숨을 몰아쉬며 그르렁댔다. 쉼 없이 풍기는 남자의 페로몬에 열이 치솟았다. 깊이, 그처럼 더 깊이 성기를 목구멍에 넣고 싶었지만 강제성 없인 무리였다.
“넣고 싶어….”
“뭘.”
“자지. 목구멍에 넣고 싶어요….”
태경이 옅은 한숨과 함께 예준의 몸을 떼어 냈다. 그가 예준의 긴 목을 움켜쥐었다.
“더 자극해서 어쩌려고 그래.”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는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지 않았다. 순식간에 침대 가장자리로 딸려 가는 몸을 예준은 스스로 어찌하지 못했다. 침대에 가로로 누워 바깥 방향으로 고개를 젖히자, 그가 긴 목을 마저 어루만졌다.
“여기도 구멍만큼 좁은데….”
예준의 눈앞에 태경의 탄탄한 허벅지와 성기가 나타났다. 남자답게 자리한 음모와 깊게 팬 근육이 거꾸로 보였다. 예준은 남자와 손을 겹치며 입술을 벌렸다. 쑥, 잇새를 파고든 성기가 혀를 지나 편도에 닿았다. 무리하게 열고 들어오기 시작하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호흡이 틀어막혔다.
“읍, 윽!”
성기가 반쯤 들어왔을 때 예준은 컥컥대며 남자의 허벅지를 밀어냈다.
“코로 숨 쉬어요.”
태경이 뚝뚝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남자의 목소리에 감정이 소강된 것은 분명 러트인 탓이었다. 서운해야 마땅했지만 정욕에 사로잡힌 예준은 개의치 않았다. 예준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참으며, 천천히 나갔다 들어차는 성기를 받아 냈다. 남자는 불룩하게 솟은 목을 가늠하듯 더듬었다. 끝까지 다 삼키지 못했는데도 목구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윽!”
그는 사정하지 못했다. 예준이 질식하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성기가 빠져나갔다. 예준은 다급히 엎드려 숨을 쏟아 냈다. 아픈 목을 부여잡고 캑캑대자 태경이 몸을 낮추었다.
“그러니까 자지는 목 말고 구멍으로 받아.”
넣고 싶은 것과 넣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예준은 침대 가운데로 자신을 몰아넣는 남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붉게 달아오른 성기가 사정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예준이 생각하기엔, 어서 안에 넣고 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준은 순순히 무릎을 벌렸다. 태경이 여린 발목을 붙잡아 어깨에 걸었다.
“아, 아윽!”
쿡, 찌르고 들어온 성기가 고통을 자아냈다. 곧 거부할 수 없는 쾌감이 들이쳤다. 손을 뻗자 그는 순순히 다가와 안아 주었다. 예준의 유연한 다리가 접혀 가슴에 닿았다. 벌린 채 뻗은 다리 덕분에 구멍은 쉬이 벌어졌다. 그럴수록 더 깊이 품을 수 있었다.
“하아…! 앗!”
예준은 남자와 눈을 맞춘 채 마음껏 쑤셔졌다. 간지러운 부분을 단단한 성기의 표면이 비벼 주었다. 잘 길든 내벽을 오가는 성기의 느낌이 미치게 좋았다.
“하아! 읏, 으!”
예준의 입술이 헤벌어졌다. 너무 좋아, 어느새 미소를 띤 그를 보는 태경의 얼굴은 반대로 굳었다. 그런 얼굴이 가학심을 자극하기 때문이었다.
태경이 허리를 크게 둥글렸다. 뻑뻑하게 들어찬 성기와 내벽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도록 구멍을 벌렸다. 찌걱찌걱, 차지게 들러붙는 느낌에 그의 잇새에서도 신음이 쏟아졌다.
“하아…, 하아!”
“응! 아읏! 하으….”
예준이 다른 알파와 이런 난잡한 짓거리를 해 왔다고 생각하면 돌 것 같았다. 태경은 하얗고 깨끗한 몸을 모조리 씹어 삼키고 싶었다. 그럴 수 없기에, 그는 대신 연한 예준의 턱을 깨물었다. 부을 대로 부어 피멍울이 맺힌 입술을 게걸스레 핥고 빨았다. 숨 쉬기가 버거워 예준이 헐떡이는 게 좋았다. 폐부가 커질 때마다 자극에 커진 유두가 더 꼿꼿이 돋아났다. 그가 손끝으로 돌기를 긁었다.
“아응!”
몸을 뒤채기에 오금을 잡아 눌러 버렸다. 다리를 한계까지 벌린 채 결박당한 예준은 달뜬 신음만 흘렸다. 반쯤 감긴 눈과 닿은 시선이 또렷하지 않았다. 정신이 나간 거다. 태경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는 팽팽히 조여드는 입구를 수없이 오갔다. 찌르고 둥글리고 퍽퍽 쑤셔 댔다. 아프다고 운 것이 무색하게 예준의 입에서는.
“으응! 좋아! 좋아, 하읏!”
좋다는 말만이 연속적으로 맴돌았다. 깊이 박다가 팔을 당겨 일으켰다. 허벅지 위에 올려 앉히고는 스스로 허리를 흔들도록 종용했다.
“아으…. 하으, 너무 커….”
예준은 기꺼이 목을 감아 왔다. 예쁜 이목구비를 태경의 어깨에 비비고는 쿡쿡 찧듯, 몸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아응, 읏… 깊, 깊어… 하아, 좋아….”
“좋아?”
“응… 읏, 좋아…!”
예준의 성감이 눈에 띄게 고조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래를 조이는 힘이 심상치 않았다. 태경은 더 주저하지 않았다.
번식욕은 러트를 맞은 우성 알파에게 당연한 욕구였다. 그 순간만큼은 죄책감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태경은 예준을 침대로 던지듯 눕힌 뒤 올라탔다. 음모가 닿을 때까지 성기를 깊게 밀어 넣고 페로몬을 흘렸다. 성기에 바짝 피가 몰리며 다시 한번 노팅이 시작되었다.
“아으…! 이상, 이상해요…. 또 커, 커져….”
어떤 오메가에게도 한 적 없었다. 소유욕을 넘어 저 좁은 구멍 안에 자신의 피를 새기고 싶었다.
“으읏!”
성기가 부풀었다. 태경의 두 눈이 욕망에 번들거렸다. 미소를 띠었던 예준은 머지않아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설마 한 번으로 끝나리라 생각했던 건가. 그럴 리 없었다.
“아, 대표님….”
가질 수 있을 만큼 가질 작정이었다. 태경은 예준의 눈을 똑똑히 마주 보았다. 예준의 배꼽 부위가 솟기 시작했다. 안에서 크기를 키운 성기가 내벽과 협착할 듯 달라붙었다. 미칠 듯한 쾌감이 몰아쳤다. 태경은 우월감에 사로잡혔다. 예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정신이 나가도록 예쁜 두 눈이었다.
“아앗! 으으…!”
“하아…!”
뭐가 그리 두려운지 예준은 또 한 번 발버둥이었다. 해가 뜨고 저물었다. 태경의 성욕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예준은 곧 숨이 넘어갈 듯 몸을 떨었다. 하얀 몸이 죽음을 앞둔 짐승처럼 경련했다. 투둑, 새어 나온 피가 이미 얼룩진 시트 위로 흘렀다. 태경이 예준의 양손을 붙잡아 시트 위로 눌렀다.
“움직이지 마, 제발!”
“…으응!”
허벅지로는 버둥거리는 다리를 모아 눌렀다. 잉태하기 쉬운 자세였다. 예준은 그것이 어떤 의도인지 모르면서 순순히 받아들였다.
“임신하면 안 돼요….”
예준은 곧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 침대 위에서만 우는 것이 얼마나 아쉬운지. 태경이 단호히 읊조렸다.
“약 먹으면 돼. 그러니까… 네 안에 계속 쌀 거야.”
“안 돼…. 안 돼….”
배 속이 정액으로 가득 차도록, 발정기가 끝나도 쉴 새 없이 그 점액질을 흘리도록. 태경은 숨겨 두었던 가학적인 본능을 끌어내 날뛰도록 방관했다. 오로지 러트일 때만 가능한 일이기에, 기회를 날려 버리지 않았다.
“너 닮으면 예쁠 거야.”
“흐윽…. 안 돼요!”
오메가 위에 군림하여 파정으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한다. 러트가 아닐 때에만 그런 알파의 성질을 혐오할 수 있었다. 오메가와 함께하는 발정기의 태경은 그저 번식욕에 사로잡힌 우성 알파에 불과했다. 이전과 다른 것이라곤, 한 오메가에게 마음마저 빼앗겼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후으… 읏… 배 터질 것 같아…. 아파!”
예준이 눈물을 쏟았다. 태경은 여전히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한 채였다. 그가 젖은 예준의 얼굴에 입술을 묻었다. 부드러운 피부 위로 까칠한 입술을 서슴없이 비볐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위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 아찔하게 침잠하는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하아, 아아!”
“윽…!”
태경이 파정을 시작했다. 쾌감에 젖은 예준의 두 눈이 빛났다. 정액이 스미자 눈에 띄게 두 뺨이 상기되었다, 물기 어린 두 눈에 생기가 감돌았다. 초점을 잃은 시선과 달리, 예준은 충만하게 달아올랐다.
오메가는 알파의 씨를 받으며 존재를 증명한다.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예준은 연거푸 뜨거운 눈물만 쏟아 냈다.
“흐윽, 좋아…, 아!”
좁은 내벽이 정액으로 젖었다. 사정하는 만큼 성기의 크기가 줄었다. 미약하게 틈이 생길 때마다, 태경은 정액이 밖으로 쏟아지지 않도록 집요하게 밀어 넣었다. 그래도 넘치듯 흐른 정액이 피와 섞여 시트를 적셨다.
그가 불만스럽게 턱에 힘을 주었다. 자연스레 삽입이 계속되었다. 탁월한 윤활제 덕분에 자극이 겹겹이 쌓였다. 예준은 고개를 꺾으며 울부짖었다.
“앗, 하으…!”
태경의 입술이 이번에는 부어터진 예준의 뺨에 닿았다. 얼음처럼 차가워야 할 입술은 너무 뜨거워 상대에게 고통을 유발했다. 그가 달뜬 입술을 목덜미로 옮겨 갔다. 더 과감히 증명해야 했다. 이 오메가가 자신의 것임을, 무수한 일들이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고 하더라도 연결된 두 몸만큼은 영원히 하나이기를.
태경이 노골적으로 향취를 들이켜자 예준은 눈을 크게 떴다. 고른 치아가 살결을 누르는 감각에서 선연한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알파가 오메가를 가지는 데 동의는 필요 없지.”
접합부가 진득하게 비벼졌다. 알파의 본능 앞에선 그 또한 알파일 뿐이라는 걸 안다. 예준은 본능적으로 단단히 밀착된 남자의 어깨를 밀어냈다. 남자는 꿈쩍하지 않은 채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질 거야.”
“…….”
“말했듯이, 네 동의는 필요 없어.”
숱하게 애무할 때처럼, 그는 피부를 짓씹어 상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상처가 깊게 벌어지며 페로몬이 스며들었다. 페로몬이 체액 속에 섞이며 눈앞이 흐려졌고, 성감은 돌풍처럼 전신을 휘감았다. 예준은 허벅다리를 덜덜 떨며 고개를 젖혔다.
“으응…!”
각인이었다. 달콤한 감각과 달리, 강압적이고 무례한 의식이었다. 알지만, 예준은 이 대단한 성감 속에서 그를 거부할 방법 같은 건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오메가였다.
“안 돼….”
“움직이지 마.”
“읏… 아, 안….”
밀어내려고 노력했으나 밀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쾌감이 들이쳐 진득이 흘러나온 애액이 다리 사이를 적시는 형국이었다. 앞으로는 그의 페로몬에만 반응할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을 감히 불행이라 부를 수 있을까.
“흐읏….”
알파에게 종속된 오메가의 처지는 양극단으로 갈렸다. 영원한 안정을 얻거나 영영 벗어날 수 없는 족쇄에 묶이거나. 평생 한 명의 오메가에게만 흥미를 두는 우성 알파는 드물기에 각인 이후 버려지는 오메가가 월등히 많았다. 불감증인 몸이 되면 다신 사랑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예준은, 태경의 어깨를 그러쥔 채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하읏, 기절할 것 같아요. 앞이 잘….”
마치 혈관 안으로 독성 물질이 스며든 듯했다. 최음제에 취한 것처럼 대단한 성감을 느끼면서도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예준은 탈력감에 사로잡힌 채로 연거푸 구멍을 쑤시는 성기를 받았다. 성기는 가차 없이 내벽을 벌리고 끝까지 도달하길 반복했다.
“아! 하으!”
배 속에서 둔통이 퍼졌다. 그는 아직 제 목덜미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핏물이 비리지도 않은지 혀끝으로 상처를 벌리고 치아로 그 부근을 씹어 댔다. 육고기의 향기를 처음 맡은 짐승처럼 집요했다.
“으응! 읍, 앗!”
예준은 그런 남자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소문처럼, 러트에 이른 우성 알파는 폭력적이었다. 예준은 두려웠다. 그와 끝없이 섹스해야 하는 것도, 그에게 결국 종속되어 버린 자신의 처지도.
“아, 안….”
태경이 고개를 들었다. 예준은 쾌감에 젖은 그의 눈동자를 보며 한 번 더 읊조렸다.
“응, 으, 안 된다고 했잖아요….”
“너도 나한테 각인할 수 있다면….”
그가 부드럽게 입 맞추었다.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 할 수 있었겠어?”
예준은 말을 뚝 그쳤다. 그가 길게 드러난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어쩔 수 없이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셔츠 깃에 감싸인, 아름다운 목덜미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었다. 혈관이 자리한 그 단단한 목을 보면 누구든 입술을 대고 싶을 터였다.
예준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그를 종속시킬 수 있다면 당연히 자신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으응…. 으….”
각인을 마친 태경이 아래쪽의 지독한 상황을 살폈다. 통증이 심할 터였고, 맨눈으로 피를 확인한 탓에 겁을 먹었을 것이었다. 그는 예준의 허리 아래 베개를 넣어 엉덩이를 낮추지 못하도록 했다. 무릎을 끌어안도록 종용한 뒤 늘어진 시선을 붙들었다.
“여긴 더 못 쓰겠어.”
태경이 퉁퉁 부은 구멍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이 땀에 푹 젖은 몸을 더듬으며 위로 향했다. 이윽고 예준의 입술에 닿았다. 예준이 어깨를 움찔대며 태경을 보았다.
“무서워요.”
“어떻게 해 줄까.”
아이처럼 두 팔을 뻗는 예준을 보며 태경이 웃었다. 그는 곧바로 마른 몸을 끌어안았다. 힘껏 매달리는 두 팔을 더 세게 당겼다. 살을 비비고 전신을 맞대었다. 포근한 페로몬에 성기가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해졌다.
다시, 긴긴밤의 시작이었다.
*
드넓은 스위트룸 안으로 햇살이 쏟아졌다. 사흘간 닫을 여유가 없었던 커튼 탓이었다. 이른 오전, 눈을 뜬 태경은 코를 찌를 듯 풍기는 정사의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온몸이 질척였으며 침대 시트는 얼룩으로 엉망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옆자리에 누운 예준을 찾았다. 마른 몸이 손쉽게 손에 닿았고, 미열이 있는 것 이외에는 숨소리도 평온했다. 몇 번이나 기절한 터라 검진이 필요할 터였다.
시트에 폭 파묻힌 얼굴이 온통 상처와 멍투성이였다. 윤도하에게 맞은 흔적뿐 아니라, 자신이 남긴 잇자국이나 세게 쥐어 생긴 멍이 수두룩했다. 예쁜 이목구비에 가당치 않은 상흔이었다.
몸은 어떤가. 시트를 열어 확인해 보자 전신이 엉망진창이었다. 특히 허벅지 안쪽은 마치 폭행을 당한 사람처럼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하….”
예준의 발끝까지 꼼꼼히 확인한 그가 잇새로 욕지거릴 내뱉었다. 러트가 끝났으니, 러트를 보낼 때의 자신을 마음껏 혐오할 수 있었다.
그는 예준이 깨지 않도록 커튼을 반쯤 닫아 두었다. 곧장 욕실로 가 끈적한 몸을 씻어 내렸다. 제 몸도 예준이 남긴 손톱자국으로 엉망이었다. 등 뒤와 배, 옆구리, 허벅지까지 깊이가 상당한 상처도 있었지만 역시 예준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울며 매달리던 어린 얼굴을 상기하자 허벅지가 뻣뻣하게 달아올랐다.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었다. 각인을 거쳐 온전히 제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구미가 당겨 견딜 수 없었다. 태경은 가까스로 성욕을 눌렀다. 우선은 다친 오메가를 돌보는 것이 먼저였다. …임신할 것도 문제고.
태경은 욕실을 나와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오메가와 노는 데 열과 성을 다하는 제 친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최선이었다.
선영은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이 대표님. 휴가 중에 무슨 일이신지…?
“사고 쳤어.”
―아, 뭐…. 러트니까. 알파가 알파 짓 하셨겠지.
갑작스레 들이닥친 러트에 아무런 준비 없이 몸을 섞었다. 윤도하가 기름을 붓기까지 했으니 행위는 더 거칠 수밖에 없었다. 태경은 순간, 멀리에서 잠든 예준을 응시했다.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사후 피임약 가진 거 있어?”
―있지.
“주소 찍어 줄 테니까 좀 보내 줘.”
―의사는? 안 필요해?
“주선영, 너 오메가들이랑 어떻게 놀기에….”
―지금 네가 그런 나 비난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태경이 얼굴을 붉히며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이제껏 오메가와 관계를 맺으며 각인이나 노팅의 욕구를 느낀 적이 없었다. 거칠기는 해도 걷지 못할 상태까지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실수가 아니었고, 피차 일회성인 관계를 두고 실수라고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알아서 뒤처리하고 떠나는 오메가들만 상대했었는데 이젠 품고 달래야 할 오메가가 생겼다. 이전과는 격이 다른 상대였다. 태경이 예준을 떠올린 동시에 선영이 물었다.
―애기, 울어?
“어…. 미치겠어.”
흥분해서가 아니라면 예준은 절대 울지 않았다. 그러나 어제의 예준은 관계가 끝나고도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아파서, 임신이 두려워서, 일방적으로 각인당해서.
―설마 그거까지 한 건 아니지?
“뭐.”
―각인.
하얀 목덜미를 얼마나 짓씹어 상처 입혔던가. 태경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선영이 쯧쯧 혀끝을 찼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빠른데?
“늦었어, 충분히.”
―네가 그렇다면 할 말은 없지만….
오메가와의 관계에 연애라고 이름 붙인 것부터가 특별한 일이었다. 오메가가 아닌, 사람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애석하게도 그 선의가 화를 불러들였지만, 태경은 이제라도 각인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주소 보내. 약이랑 의사 보낼 테니까. 예준 씨 잘 달래 주고.
선영은 태경을 더 탓하지 않았다. 태경은 산뜻하게 끊긴 전화를 어쩌지 못하고 한참 들여다봤다. 호텔 주소와 방 번호를 찍어 보낸 후에야 그는 저도 모르게 참은 한숨을 내쉬었다.
몇 시간 후, 도착한 의사는 잠든 예준의 손등에 링거를 꽂은 후 돌아갔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긴 해도 치명적인 문제는 없다는 답을 얻었다. 깨어나면 씻기고 먹이고 연고를 발라 회복시키면 그만이었다.
태경은 예준이 깨어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호텔 직원이 시트를 갈아 줄 때는 예준을 안고 있었고 깨지 못하는 아이를 부러 깨우지도 않았다. 깨끗한 침대 위에 눕힌 뒤에는 정액을 마저 빼내고 몸을 닦아 주었다.
예준은 해가 넘어가기 시작할 즈음 깨어났다.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물을 찾았다.
“약…. 약 주세요….”
이어 흘러나온 말에 태경은 사후 피임약을 뜯었다. 공복에 복용해도 괜찮다는 안내가 쓰여 있었지만, 거의 사흘 내내 굶다시피 했기에 걱정이었다. 태경이 고민하는 사이, 예준이 그의 손에서 약을 빼앗아 갔다. 바쁘게 삼키기에 컵을 입에 대어 주었다. 그제야 경직되었던 표정이 풀어졌다. 말간 눈이 태경을 향했다.
“예준아.”
뺨으로 손을 뻗자 고개를 틀어 버린다. 만지려고 할 때마다 어깨를 떨고 두려운 시선을 던지는 예준이었다. 러트 동안의 섹스를 떠올려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아프게 안 해.”
다정하게 내뱉은 말에도 예준은 안심하지 못했다. 예준은 태경의 손길을 물리치고 다시 시트 속에 파고들었다. 태경은 시트 위로 예준의 옆구리를 더듬었다. 떨림에 속이 타들어 갔다.
“많이 아팠어?”
그런 질문조차 가증스럽게 들릴 터였다. 태경은 초조한 심정으로 예준의 손을 붙잡았다. 손을 빼내려던 예준이 손등의 상처를 보고 멈칫했다.
“…아파 죽는 줄 알았어요.”
그제야 답이 돌아왔다. 예준의 시선이 태경의 턱과 목덜미에 남은 손톱자국으로 향했다. 그런 상처 따위야 태경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대신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해야 할 말이 많았다. 윤도하 일에 관해서는 해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 때문에 망가지기 직전인 사람을 앞에 두고 추궁할 수 없었다. 태경은 서늘한 눈으로 예준을 관찰했다. 욕구가 가라앉지 않았다. 제 것으로 만들고도 갈증은 조금도 해소될 기미가 없었다.
태경의 눈빛을 추궁이라 여겼는지 예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왔는데 스쿠터가 망가져 있었어요.”
“스쿠터?”
“네. 그래서 CCTV를 확인해 봤는데… 윤도하 짓이었어요.”
스쿠터의 행방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태경이 예준의 뺨을 감싸 쥐었다. 예준의 눈에 약간의 물기가 차올랐다. 아무래도 억울한 모양이었다.
“그때는 대표님이랑 잘해 보고 싶어서… 괜히 꼴불견처럼 보일까 봐 숨겼던 것뿐이에요. 신고하면 대표님이 알게 되잖아요. 증거도 잘 모아 뒀고 언제든 신고하면 되니까, 그냥 그땐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미 그 전에 보상금도 받았고… 또….”
미열이 아직 남아 있었다. 예준에게서 전해지는 초조함에 동정심이 일었다. 태경은 예준의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너한테 화난 거 아니야. 네가 말 안 해도 다 알았어야 했는데.”
“…사람 붙이고, 위치 추적해서요?”
일이 이렇게 된 지금에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태경은 부러 진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 애 때릴 때…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예준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마땅한 방법이었다고 해도 떳떳하진 않았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녀석을 곤죽이 되도록 패 놨으니 부끄러워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덩치들에게 붙잡혀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예준을 보자 돌 것 같았다. 자신의 보호가 아니라면 예준은 평생 그런 취급만 받고 살아야 할 터였다. 사람이기 이전에 오메가였다. 자신의 선의가 고고하다고 해서 타인들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메가는 오메가로 대해야 한다. 태경이 제 마른 얼굴을 쓸었다. 입술을 짓씹자 하얀 손끝이 그곳에 와 닿았다.
“강간당하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노골적인 단어에 태경의 얼굴이 싸늘히 가라앉았다.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죽도록 패는 선에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수 출신에 유단자라 해도 모두 과거의 명성일 뿐, 예준은 몸이 약할 수밖에 없는 오메가였다. 덩치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윤도하를 당해 낼 재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태경이 단호히 말을 꺼냈다. 그가 시트를 열어 예준 곁으로 파고들었다.
“이 방에서 나가면 그 반지하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
“…예?”
“혼자서 뭘 할 생각도 하지 마요. 오피스텔도 잊어. 곧장 내 집으로 가서 이제부턴 거기서 살 거니까.”
각인은 사회적 제도보다 더 명확한 결속이었다. 강자와 약자가 분명하고, 종속하고 종속당한 자로 나뉜 관계라 해도 부정할 수 없었다. 태경의 뜻이 그러하다면 예준은 따라야 했다. 예준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도난당한 기분이었다.
“그럼 제 인생은요.”
“너한테 거기에 남아야 할 인생 같은 건 없어.”
“그래도 저한텐 그게 다인데요.”
버리기를 두려워하는 심정을 모르지 않았다. 가난한 자만이 부질없는 것들에 미련을 두는 법이었다.
“그런 건 이제 내 곁에서 찾아. 내 집이 곧 네 집일 거고, 내가 가진 전부가 다 네 거라고 생각해도 되니까.”
예준은 태경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이룬 것들을 자신이 가져야 할 이유가 없었다. 태경은 의문이 비친 눈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그러자고 네 목덜미 물어뜯은 거야. 더는 못 참겠거든.”
다친 목덜미를 어루만지자 예준이 움찔 몸을 떨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각인의 순간을 떠올렸다. 야릇하고 아찔한 페로몬, 성마른 행위와 거친 호흡이 마치 직전에 일어난 일처럼 생생했다.
“거처를 옮긴다고 해서 뭔가를 잃는 게 아니야. 난 내 그림자 밑에 너 숨겨 둘 생각 없어. 단지, 너한테는 제대로 된 보호자가 필요하고 그 역할을 내가 하겠다는 것뿐이야.”
“윤도하 일 때문에 그래요?”
“윤도하 일도 그렇고. 오메가라서 당하는 그 좆같은 모든 상황도 그렇고.”
알파가 각인한 오메가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알파, 특히 우성 알파의 보호 아래 있는 오메가들은 건드려 좋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넌 내 소유니까 아무도 다치게 못 해.”
태경은 자신이 이토록 뻔한 말을 입으로 내뱉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구속과 보호의 경계는 모호하나, 다만 그 굴레가 있다면 안정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저는 물건이 아니에요.”
잔뜩 주눅 든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이토록 강력한 소유욕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태경은 예준의 눈가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물건처럼 대하겠다는 게 아니라, 지켜 주겠다는 거야.”
태경에게 불안한 시선이 오롯이 와 닿았다. 예준의 촘촘한 속눈썹이 떨리고 호흡은 불규칙했다. 모든 일이 처음이기에 태경도 예준만큼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네 빚, 아버지 문제, 다 해결해 줄 테니까 앞으론 걱정할 필요 없어.”
예준이 눈을 크게 떴다. 뒤따르는 말이 어떨지는 뻔했다.
“안 돼요, 그건 대표님이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왜 상관이 없어. 하나뿐인 애인 일인데.”
태경은 연애에 있어 계산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아낌없이 썼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바란 적도 없었다. 반대로, 매사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예준은 당혹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 일만으로 충분해요. 그 이상은… 과해요.”
“애인이 하기에 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태경이 예준의 손을 잡았다. 그가 매혹적인 눈빛으로 물었다.
“결혼까지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예준은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결혼하는 건… 진짜… 팔려 가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결혼은 알파랑 하셔야 한다고….”
각인까지 당한 마당에 여전히 제 일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듯한 무심한 말이었다. 예준의 성향을 아는 태경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니까 연애까지만 하자 그거야? 딱 여기까지라고 선 긋고, 어디까지 참견해도 되는지 가늠만 하면서.”
“거기까지만 하자고 하셔도 저한테는 더 해 달라고 말할 자격 없어요.”
“왜. 오메가라서?”
“네.”
비관이 스미지 않은 또렷한 눈빛에 태경은 오히려 반항하고 싶었다.
“그러기 싫은데, 나는.”
“예?”
“선 긋기 싫다고.”
서로에 관해 적당히 알다가 질리면 언제든 끝내도 아쉽지 않을 관계가 되는 건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태경은 예준의 가장 깊은 곳, 밑바닥까지 침범하여 제 그림자를 드리울 계획을 품고 있었다.
“빚 갚는 데 인생을 다 바치는 거 억울하지 않아?”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아요.”
“그 시간을 온전히 너를 위해 쓰게 할 거야. 물론, 이것도.”
“제 동의는 필요 없어요?”
예준이 난감한 눈빛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태경은 그 눈에 비친 혼란을 모르지 않았다.
“나 중매 시장에서 꽤 값어치 있는 사람이야. 뚜쟁이들 사이에서는 밤일 잘한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올 거고….”
태경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마치 정보를 알리듯 세간에서 떠드는 소문을 늘어놓았다. 그가 시트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뜨거운 손이 예준의 판판한 배 위에 닿았다.
“그럼 이 문제도 좀 간단해져. 이번엔 어렵겠지만, 아이 낳고 싶으면 낳아도 돼. 낳기 싫다면 안 낳아도 되고.”
“도대체 무슨….”
예준의 귀에는 모두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알파와의 결혼은 물론이고 아이는 더더욱 낳으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나날이었다. 제 인생에 불쑥 끼어든 우성 알파가 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사는 방식을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대체, 대표님이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어요.”
예준이 태경을 당겨 안았다.
“저는 그냥 이번 러트가 너무 무서웠고… 임신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아파 죽을 것만 같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표님이랑 러트 보낼 생각을 했던 건지. 우성 알파들이 어떻게 러트를 보내는지 하나도 모르면서 이런 걸 하겠다고 먼저 나섰던 때 얼마나 멍청해 보였을까 싶고.”
따뜻한 몸이 더 깊이 엉겨들었다.
“저는… 그런 생각밖에 못 하겠는데… 대표님은 왜 저한테 그런 가당치도 않은 말을 하는 거예요?”
태경의 답은 간단했다.
“내가 좀 급해.”
“예?”
“단시간에 이렇게 깊이 빠진 거 처음이야. 긴장 놓으면 버림받을 것 같아. 그저 직감일 뿐이라고 해도 불안해.”
예준은 헤어지자는 말이 아니라 단념으로 상대를 버릴 사람이었다. 혼자서도 어떻게든 살아갈 강한 아이라는 게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동의를 구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행위의 기저에는 순수한 감정이 있었다. 어린애라면 떼를 썼을 것이고, 사랑에 미숙한 이십 대 초반이었다면 수없이 좋아한다고 말했을 터였다. 다만, 서른이 넘어 모든 것을 다 가진 태경은 상대를 조종하려 들었다.
태경이 역으로 예준을 감싸 안았다. 커다란 상체 속으로 빨려든 예준은 곧 시트 속에까지 파묻혔다.
“읏….”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픈 상황이었다. 태경은 얕게 신음하는 예준을 향해 말했다.
“그냥 같이 살자. 함께 눈 뜨고 눈 감는 거 행복할 거야. 행복하게 해 줄게.”
능숙함을 한 겹 벗겨 냈다. 불쑥 내비친 본심에 맞닿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예준의 것인지 태경의 것인지 모를 박동이 쉼 없이 전해졌다. 태경은 달아오른 귓불을 감추기 위해 예준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예준 또한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그런 그를 받아 주었다.
예준은 연애, 결혼, 인생에 관해 논하기보다 태경의 솔직한 토로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요.”
“이런 일이 너한테만 처음인 게 아니야.”
태경은 갈증이 이는 목을 가다듬었다. 예준의 다리 사이에 노골적으로 허벅지를 비빈 그가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 두는데. 나는 알파 유전자 보존이니 뭐니 하는 그 개소리에는 관심 없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런 의무가 가장 큰 이유이리라 여겼고 순응할 예정이었다. 결혼과 사랑은 별개의 문제기에, 잔인하게도 두 사람에게 자신을 나눠 갖게 할 계획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생각은 달랐다. 강박적으로 서로만이 유일하길 바랐다. 태경은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결혼은 제도일 뿐이고, 아무런 구속력도 없다는 데 동의하는 입장이지만.”
그가 예준과 주저 없이 눈을 맞추었다.
“만약 결혼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랑 할 생각이야. 다른 알파들처럼 첩 둘 생각도 없고 오로지 한 사람만.”
“…….”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뒷전에 두는 짓은 그만했으면 좋겠어.”
예준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퉁퉁 부어오른 입술에 입 맞춘 태경은 끙끙대는 신음을 듣고도 서슴없이 얽혀 들었다. 열감이 느껴지는 몸을 결박해 단단히 안았다. 포근한 살결 위에 정신없이 입술을 대었다.
“너 좋아해서 그래.”
태경이 겨우 미소 지었다. 안을수록 더 불안한 기분에는 익숙해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
12월과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예준은 태경이 자리를 비운 사이, 넓은 스위트룸을 혼자 지키고 있었다. 눈이 왔고 손끝이 닿은 창은 차가웠다. 며칠이나 내버려 둔 핸드폰을 들여다보자,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혔던 부재중 전화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반가운 연락이 와 있었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의 문자였다.
[예준아. 잘 지내지? 새해 복 많이 받아.]
지혁이었다. 그는 선수촌을 떠난 이후로도 이따금 연락해 오는 유일한 친구였고 성 지향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상대였다. 그와의 기억은 좋은 것들만 남아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풋내기처럼 앓아 보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다지 간절하진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예준은 주로 답하지 않는 쪽을 택했으나, 이번에는 고민하지 않고 버튼을 눌렀다.
[난 잘 지내지 너는?]
답은 곧 돌아왔다.
[나도. 실은 송년회 때 애들 만났는데 네 얘기가 나왔어. 괜찮으면 신년회 자리에 올래? 다들 바빠서 이제 모임에도 몇 안 남았어. 껄끄러울 일은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와도 돼.]
다정한 성격이 도드라지는 말이었다. 종종 모임에 참석하란 연락을 받았기에 낯선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선수촌을 떠날 때 받았던 냉랭한 시선들을 떠올리면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아마 못 갈 것 같아 미안] [그래도 날짜랑 시간 정해지면 연락할게. 되면 와.] [응 고마워]
기계적으로 답한 예준은 지혁의 답장을 더 기대하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침대 옆에 핸드폰을 놓아두고 지는 해를 조금 더 바라보았다. 몸의 회복이 더뎌서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종일 폭신한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본 것이 다였다.
머릿속으로는 남자의 말을 곱씹으면서.
이제 하루만 지나면 스물일곱인데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는 형국이었다. 쳇바퀴처럼 늘 똑같이 굴러가던 인생에 특이점이라곤 태경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가 말하는 변화는 너무 거대한 것이어서 곧이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연애도 어려운데 결혼이라니. 그는 꽤 좋은 집안의 사람이기에 거쳐야 할 반대만 해도 어마어마할 터였다. 오메가와 정식으로 결혼하는 우성 알파는 드물었다. 빚을 갚아 준다는 말도 그러하긴 마찬가지였다.
행운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마땅한데 왜 다른 오메가들처럼 쉽게 해내질 못하는지. 예준은 자신을 책망하기까지 했다. 의심을 거두고 오롯이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랑이란 유한한 감정에 기대기엔 겪은 비극이 지나치게 컸다.
예준은 보스를 접대했던 크리스마스이브를 떠올렸다. 조폭 세계에 완전히 속하지도 벗어나지도 못한 채 표류했던 오랜 시간을 상기했다. 죄책감과 동시에 미약한 기대감이 들었다. 남자와 함께한다면 벗어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머리가 아프도록 복잡했다. 모든 기대가 그저 희망일 뿐이었다. 예준의 손끝이 초조함으로 떨렸다.
예준은 곧 돌아올 남자를 기다리며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 대궐처럼 넓은 방이기에 한참을 걸어 욕실로 향했다. 몸을 씻어 내리며 복잡한 머릿속도 씻어 내릴 생각이었다.
뜨거운 물 아래에서 몸을 녹였다. 상처 위에 물줄기가 스치자 쓰라렸다. 유두나 다리 사이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배스 타월에 거품을 내 몸을 닦았다. 막, 물을 끼얹으려는데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등장한 태경은 셔츠 차림이었다. 예준은 잔뜩 긴장한 채 남자가 옷을 벗는 기척만 느꼈다. 물소리 때문에 옷감이 스치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머지않아 태경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부드럽게 몸을 감싸 안는 촉감과 함께 우아한 페로몬이 느껴졌다. 각인당한 이후부터 유달리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향기였다. 완벽히 갈무리했다 하더라도, 몸 어딘가를 녹여도 이상하지 않을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물 받아 주려고 했는데.”
“…낮에 했어요.”
“아직도 온몸이 멍투성이야.”
태경이 제 몸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계속 뒷모습만 보이기도 머쓱했다. 이내 돌아선 예준이 태경의 상체를 어루만졌다.
“대표님 몸에도 제가 남긴 상처 많아요.”
“네 상처에 비할 바는 못 되지.”
“그래도.”
진중한 눈빛에 다음 차례가 무엇일지 분명해졌다. 예준은 샤워기 아래에서 조금 벗어나 남자의 품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코끝이 스치고 입술이 맞물렸다. 키스 중에 슬쩍 눈을 뜨자, 금세 무아지경에 이른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씻고 약 발라 줄게.”
오랜 입맞춤 끝에 태경이 말했다. 예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샤워기 아래로 예준을 들인 태경이 옅은 미소를 띤 채 거품이 남은 배스 타월을 집어 들었다.
“아, 그거 제가 썼던 건데.”
태경은 아무렇지 않게 상체 위로 그것을 문질렀다. 예준은 차라리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게 뭐라고, 심장이 너무 뛰어 들킬까 봐 겁이 났다.
뭔가 하기도 어색해 뜨거운 물줄기 아래에서 몸을 녹이기만 했다. 곧 샤워기 아래로 침범한 남자는 이미 청결한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며 거품을 씻어 내렸다. 치미는 흥분을 애써 누르기 위해 예준은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가까스로 관계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예준은 태경보다 먼저 욕실을 나와 몸을 닦고 머리카락을 말렸다. 하체만 수건으로 가린 그가 곧 뒤따라 나왔다. 헤어드라이어를 건네받은 그는 먼저 보송해진 예준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왜 자꾸 도망가려고 해.”
“…그런 거 아니에요.”
부정한 예준은 이번에도 남자보다 먼저 파우더 룸을 벗어났다. 곧 뒤따라 나온 남자는 바지만 꿰입은 채였다. 손에는 익숙한 연고가 들려 있었다. 구멍 위에 바르는 연고 대신, 예준은 구급상자에서 미리 찾아 놓은 연고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곁에 선 남자의 손목을 이끌어 마주 앉혔다. 물기를 다 닦지 않은 상체가 조명 아래 번들거렸다. 예준은 아름답게 근육이 팬 모양을 외면하고 자신이 남긴 손톱자국을 찾았다.
연고를 짜 그 상처 위에 문질렀다. 조도는 낮았으나, 남자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왜 얼굴이 빨개져요?”
순진한 질문에 태경이 여유 없이 웃었다.
“떨려서.”
“…예?”
“네 눈 보고, 네 손길 닿으면 나도 떨려.”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남자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누구보다 성숙한 사람이 저 같은 풋내기 때문에 떨린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예준은 괜히 말을 꺼냈다 싶어 바쁘게 연고를 짰다. 이번에는 남자의 살결 위로 닿는 손끝이 떨렸다. 태경은 그 손을 붙잡았다 놓으며 말했다.
“계속해.”
차분히 내려앉은 시선이 얼굴과 몸 곳곳에 닿았다. 예준은 입고 있던 샤워 가운을 추스르며 큼큼 헛기침했다. 가슴 위에 남은 깊은 상처를 어루만질 땐 탄탄한 근육이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태경은 난감한 듯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남자의 목덜미까지 열꽃이 번지자 예준의 목도 타들어 갔다.
다친 손등이 마음에 걸려 그곳에도 꼼꼼히 연고를 발랐다. 예준은 남자의 하체를 감싼 수건을 들어 올려 허벅지에 생긴 상처로 손을 옮겼다. 자세를 낮추자 태경이 마른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흉 지면 안 되잖아요.”
“흉 좀 지면 어때서.”
“그래도 귀한 몸에 상처 나면….”
예준은 남자를 떠올릴 때마다 했던 생각을 굳이 입으로 내뱉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털어놓을 작정은 아니었으나, 그를 귀인이라 여기는 건 진심이었다. 제게 해 준 일들 때문이 아니라 형질과 집안까지, 태생이 그런 사람이니까.
왜 윤도하는 남자에게 더럽고 근본 없는 피라는 막말을 했을까.
“귀한 몸….”
태경이 말을 곱씹으며 예준의 귓가로 손을 옮겼다.
“귀하긴 네가 귀하지.”
“제가 뭘요.”
태경의 두 눈이 빛났다. 마치 아름다운 보석을 음미하듯 관능적이었다. 이번에는 예준이 얼굴을 붉혔다.
“저한테 그런 말 하는 사람 대표님밖에 없어요.”
“나만 알면 돼.”
예준이 슬쩍 피했던 시선을 맞추었다. 귓불을 부드럽게 훔친 남자의 손끝이 턱을 감쌌다. 목덜미를 쓸고 어깨를 그러쥔 그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나만 알았으면 좋겠어.”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준은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풋이 아는 것은 있었다. 그와 함께할 때면 순식간에 뒤바뀌는 주변 공기, 잠자리에서 보여 주는 날것의 모습, 서로만이 인지할 수 있는 내면의 떨림 같은 것.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었다. 오직 연인이어야만, 그토록 가까워야만 알 수 있었다.
“이제 제 차례예요.”
예준이 말했다. 속절없이 달아오른 두 뺨이 긴장을 짐작케 했다. 예준은 남자에게서 멀어져 원래 앉았던 의자로 돌아갔다. 태경은 근처에 걸어 둔 가운을 입으며 예준을 일으켰다.
“침대로 가.”
예준은 깨끗이 정리된 침대 위에 누웠다. 위로 올라온 태경이 느슨한 매듭을 가볍게 풀어냈다. 깃을 벌리자 온통 멍울진 예준의 몸이 드러났다. 태경은 그 상처 위에 입 맞추었다. 성스러운 의식처럼 몸 곳곳에 키스하고 상흔을 어루만지며 연고를 발라 주었다. 옴폭 팬 배꼽 부위에 입술이 닿았을 땐 예준의 발끝이 곱아들었다.
꼼꼼히 치료를 끝낸 태경은 다른 연고를 집어 예준의 무릎을 벌렸다.
“당분간은 호기심으로라도 안 보는 게 좋겠어, 여기.”
태경이 엉덩이 사이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제 치부를 일부러 들여다볼 이유는 없기에 예준이 되물었다.
“흉해요?”
“그런 게 아니라, 많이 부었어. 상처도 있고.”
피를 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태경과는 늘 과한 섹스만 해 왔지만, 그마저도 러트 때와 비교할 정도는 못 되었다. 드문드문 정신을 잃어 차라리 다행이었다.
손끝이 닿는 것만으로 부은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태경의 손길이 깊은 곳까지 닿자 예준은 편평한 시트를 구겨 쥐었다. 결국 안으로 침입한 손가락이 쓰라린 내벽을 스쳤다.
“으읏…!”
“쉬이…. 조금만 참아. 다 돼 가.”
“하아, 아…. 아파요….”
예준이 저도 모르게 남자의 어깨에 발을 올렸다. 밀어냈지만 태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허벅지 안쪽에 입 맞추는 통에, 혹시나 이것이 전희가 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해야 했다.
“더 못 해요….”
“알아. 안 해, 절대.”
끙끙대며 버티던 예준은 남자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처치 후, 예준의 가운을 예쁘게 매듭지어 준 태경이 상체를 일으켰다.
“많이 아팠어?”
“조금….”
“새해 연휴 동안 내 옆에 딱 붙어 있어. 페로몬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회복이 빨라질 테니까.”
예준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웃은 태경은 먼저 침대를 벗어나 룸서비스를 주문했다.
그러고 보니 해가 완전히 진 뒤였다. 한 해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예준은 이런 날 누군가와 함께 있어 본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보통은 혼자 소주를 비우며 핸드폰으로 새해맞이 생중계를 보곤 했다. 삼삼오오 모여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기척을 들으며 밤을 보낸 적도 있었다. 해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으리란 단념 속에 피로에 찌든 눈을 감았다.
그랬던 때가 무색하게도, 올해는 우성 알파인 태경과 스위트룸에서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태경은 도착한 식사와 와인을 편히 먹을 수 있도록 침대 위에 놓아 주었다. 예준은 갑작스레 몰려오는 허기에 민망해하며 빵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몇 입 먹지 못하고 내려놓았다. 이어 태경이 미리 썰어 가져온 스테이크를 한입 물었다. 막상 입에 넣자 쉽게 씹어 삼킬 수가 없었다. 느긋한 속도로 식사하던 태경이 물었다.
“사후 피임약 먹어 본 적 있어?”
“아뇨….”
항상 피임약을 복용하고 관계를 맺었기에 사후 피임약을 먹어 보긴 처음이었다.
“부작용이 심할 테니까 속 불편하면 억지로 먹지 말고.”
“네.”
태경이 건넨 피임약이 오메가들이 흔히 먹는 것이라면 제게도 잘 들으리라 생각했다. 속이 좀 아픈가 싶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예준은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적은 양만 먹고 식사를 끝냈다. 슬쩍 트레이를 밀어내자 태경은 아무런 말 없이 반이나 남은 음식을 치워 주었다.
함께 양치하고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예준은 태경과 테라스로 나와 한강 위로 터지는 불꽃들을 바라보았다. 새해 카운트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태경이 시계를 확인했다. 곧 자정이었다. 그가 등 뒤에서 꼭 껴안아 점퍼로 감싸고 있었기에 고층의 매서운 칼바람도 견딜 수 있었다.
“소원 빌고 싶은 거 있어?”
태경이 물었다. 기대하는 습관을 갖추지 못한 예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빌어도 안 들어주던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너무나도 은밀하기에 소원이라는 명목으로 빌 수조차 없었다. 염세적인 발언에 태경이 제안했다.
“들어줄 법한 걸 빌면 되지.”
“어떤 거요?”
“예를 들면….”
예준이 고개를 젖혀 태경을 보았다. 태경이 서늘한 눈으로 덧붙였다.
“너 괴롭힌 윤도하, 어떻게 해 줄까.”
신도, 왕도 아니면서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그 비상한 자신감이 높고 거대해 보였기에 예준은 곰곰이 생각했다.
신고할 증거는 충분했다. 다만,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폭력 사건을 일으키고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으니 스쿠터 좀 망가뜨린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터였다. 괘씸했으나 미워할 만큼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예준은 그 순간만큼은 못된 심정으로 말했다.
“부잣집 도련님들은 사고 치면 멀고 먼 외국으로 유학 보내 버리고 그러던데.”
“발목 잡혀서 쉽게 돌아오지도 못할 그런 곳?”
“가능하면 지구 반대편.”
윤도하를 다시 마주할 일 없는 것보다 더 위대한 처벌은 없을 터였다. 예준은 허락을 구하듯 태경을 보았다. 기꺼이 눈을 맞춘 태경의 눈동자에 불어나는 불꽃들이 비쳤다. 펑펑 소리와 함께 불꽃놀이가 절정에 달했다.
마침, 시계가 자정을 가리켰다. 너무 멀어 불꽃이 사그라지는 소리가 아득했다. 부서지듯 사라지는 불꽃의 잔재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태경은 새해의 첫 소원이 기특하다는 듯 예준의 뺨에 입 맞추었다.
“잘했어.”
칭찬을 들어도 되는 일인가 싶었다. 예준은 간지러운 촉감에 눈을 접어 웃었다. 그 미소를 응시하던 태경이 결국은 몸을 돌려세웠다. 마주하자 쿵쿵 뛰는 심장 박동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이렇게까지 빠져 버렸으니, 작정하고 뛰어들면 정말로 무언가 바뀔까?
예준은 순간, 손에 꼭 쥐고 있던 것들을 놓아 버렸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처지,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수치심, 발현 이후의 격동적인 삶. 수없이 뒷걸음치게 했던, 수없이 억누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자격지심을 가장 먼저 흘려보냈다. 단단하게 제 몸을 감쌌던 외피를 벗었다.
그러고는 여유 없는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묻는 목소리가 떨렸다.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단지, 호기심은 아니었다.
“정말 이뤄 줄 수 있어요?”
“당연히.”
태경은 답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거 말고 더, 더 많이 바라도요?”
“뭐든 다.”
그가 부드러운 손길로 달래 주었다. 겁 없는, 확신에 찬 눈에 기대고 싶었다. 그와 함께라면 수면 아래 도사리는 것이 무엇이든 두렵지 않았다.
“전부 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될 거야.”
태경이 덧붙였다. 예준은 무거운 세상을 뒤로한 채 태경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뛰어들었다. 뜨거운 체온이 화답하듯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