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집은 서울 외곽에 있었다. 너무 번잡하지 않은 주택가로, 예준의 예전 단칸방이나 태경의 주택에서도 그다지 가깝지는 않은 곳이었다. 빌딩 숲과 한강이 멀어지는 풍경을 감상하던 예준이 뉘엿뉘엿 저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이 찾아오는 시각인 것에 비해, 예준의 가슴은 아침을 여는 때처럼 설레었다.
차는 고즈넉한 동네에서 멈추었다. 차에서 내린 예준은 가장 먼저 태경의 손을 잡았다. 익숙하게 손깍지를 끼우고 나란히 서자 차고 밖으로 가슴 높이의 담이 보였다. 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으나, 남자는 반대편 문으로 나섰다. 예준은 태경의 등을 가림막 삼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정원부터.”
집을 둘러싼 정원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작은 규모였다. 꽃과 나무들은 인위적이지 않은 정도로 다듬어져,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모습이었다. 예준은 부러 손끝으로 이파리나 꽃봉오리를 건드리며 지나쳤다. 흘끗 뒤돌아본 태경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좋아?”
코끝을 스치는 공기가 도시답지 않게 상쾌해서 좋았다. 예준은 고개를 끄덕이곤 고개를 숙여 부끄러운 얼굴을 감추었다.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선 태경이 예준을 이끌어 품에 안았다. 예준은 이제 집 외관이 모습을 드러낼 때임을 직감했다. 그럴듯한 조감도와 모형까지 봐 놓고서도 완전한 모습이 기대되었다. 마주할 첫 순간이 너무 떨려 마른침을 삼키자, 두근거림을 고스란히 느낀 태경이 말했다.
“지금 보고 있는데, 좋아. 마음에 들어.”
“어때? 기대보다 예뻐? 멋있어?”
“멋있지.”
예준은 쉬이 남자의 품을 벗어나지 못했다. 몇 번이고 망설이자, 다독이듯 등을 쓰다듬은 태경이 예준을 돌려세웠다. 빠르게 눈을 감은 예준은 고조되는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했다. 태경은 그 막연한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예준은 유치한 카운트다운 없이 눈을 떴다.
“……!”
건물이나 설계에는 문외한이기에 그럴듯한 말로 형용할 순 없었으나 예준의 입술은 자연스레 벌어졌다.
두 면이 통창으로 이루어진 주택은 대체적으로 흰빛을 띠고 있었다. 저물녘의 깊은 그림자가 칼로 베듯 드리워졌음에도 차가운 구석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색감이었다. 그러면서도 형태는 직선으로 뚝 떨어져, 주변에서 흔히 보던 주택과는 비슷한 면이 전혀 없었다.
예준은 남자의 곁을 떠나 잔디를 밟으며 걸었다. 다가가 매끄러운 벽에 손을 대었다. 온종일 이곳을 비추었을 햇볕이 떠오르는 온도였다.
“와.”
뒤늦게 터진 탄성은 단순히 외관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준은 곧 자신 곁으로 다가온 남자의 체온을 느끼며 깨끗하게 닦인 통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자박자박, 잔디를 지날 때마다 나는 소리가 좋고 뒤따르는 남자의 기척도 좋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라 할지라도, 태경 없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길게 뻗어 나온 테라스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 태경 취향의 테이블이 놓이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예준은 남자와 함께 통창 가까이 다가갔다. 그 안에 비친 남자와 자신을 발견하곤 머쓱하게 뒤통수를 매만졌다.
태경은 보란 듯 백 허그했다. 그의 단단한 팔이 예준의 허리를 감싸자 시선은 창 안에서 부딪쳤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
장난처럼 읊조린 남자 덕분에 예준의 귓불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좋았다. 타인의 집을 기웃거리는 신세가 아니라는 게. 남자와 앞으로 함께 살 곳을 마주하고 있다는 게….
“…감탄밖에 안 나와. 멋지게 표현 못 하겠어.”
자신의 무지함에 당황한 예준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태경은 아무런 타박 없이 예준을 이끌어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에는 층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텅 비어 아무것도 갖추지 않았음에도 이미 완벽했다.
고급스럽게 빛나는 대리석을 밟으며 예준은 주방과 방, 욕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온천을 연상케 하는 욕조와 공들인 침실, 제 키 높이를 고려한 싱크대 같은 것들이 눈에 들었다. 어느 것도 허투루 만든 것이 없어 만지기가 송구한 기분이었다.
꼼꼼히 둘러보고 다시 거실로 나오자 예준은 아무 말도 뱉을 수가 없었다. 정말 모든 곳곳에 자신을 배려한 흔적이 묻어 있었으므로.
사위가 어두워지자 태경이 익숙하게 조명을 찾아 켰다. 직접 설계한 집이기에 무엇 하나 낯설지 않을 터였다.
“마음에 들어?”
태경이 뒤늦게 물었다. 놀랍게도 얼굴에는 긴장이 묻어 있었다. 예준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후, 거리를 두고 선 남자에게로 걸어가 안겼다. 너른 가슴팍에 코끝을 파묻고 비벼 대었다. 마음에 든다는 말로는 지금의 기분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진짜 진짜 멋있어, 형.”
이 집도, 이 집을 설계한 그도. 이곳에서는 대단한 비극에 처한 사람도 미래를 꿈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지자면, 그 희망적인 감각이 가장 좋아서 예준은 짜릿한 전율마저 느꼈다.
“날 저무니까 좀 쌀쌀해지네.”
민망한지 태경은 딴소리였다. 예준은 남자의 양 볼을 붙잡은 채로 눈을 맞추었다.
“진짜 행복해, 지금.”
표현은 아직도 어렵지만, 이런 때에 노력하지 않는 것만큼 나쁜 태도는 없었다. 예준은 남자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저답지 않게 발을 동동거렸다. 아이처럼 매달리자, 태경이 예준을 가뿐히 들어 안으며 말했다.
“알아. 너 지금 진짜 예쁘게 웃거든.”
*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태경과 예준은 준비해 온 샴페인 한 병을 몽땅 비웠다. 따끈따끈한 난방 덕분에 예준의 몸은 곧 나른해졌다. 녹아내리듯 손등에 뺨을 대고 엎드리자, 태경이 담요를 가져와 허리 부근까지 덮어 주었다.
아직, 집이라고 말하기엔 갖추어진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태경은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 거침없이 잔을 비웠다. 술기운이 올라 발긋한 그의 목덜미를 응시하자 예준은 더 취하는 기분이었다. 취해도 좋지만 필름이 끊겨서는 안 된다. 단 1초도 잊고 싶지 않은 날이니까.
“가구는 같이 고르자.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까 신중하게.”
“난 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르는데.”
“네가 좋다는 걸로 고를 거야. 그러니까 네가 가진 권력 마음껏 휘두를 생각으로 골라도 돼.”
“말도 안 돼. 형은 정말 아무것도 안 고를 생각이야?”
“매트리스 하나면 충분해.”
어느 방면으로든 예준보다야 해박한 지식을 갖춘 태경이었다. 잠자리에 관련한 쪽이라면 월등한 우위였다. 예준은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튼튼한 걸로….”
지금 집에 있는 것도 거칠게 섹스한다고 해서 망가질 매트리스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탄력이 있는 편이 좋았다. 삽입당할 때, 튕겨 나오는 반동으로 느끼는 쾌감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예준은 취기가 스며들어 혼탁한 눈으로 태경을 올려다보았다. 편하게 자리 잡은 남자가 입맛을 다시고, 조금 예민하게 귓불을 문지르는 모습을 응시했다. 태경이 자제력을 잃으면 그가 지닌 페로몬은 평소답지 않게 짙어졌다. 미세한 변화를 단번에 감지한 예준이 긴장하여 남자의 눈을 피했다.
고조된 채로 한동안 시간을 보낸 태경이 예준 곁에 모로 누웠다. 열이 오르는지 셔츠 단추를 열며 내려다보는 시선이 지독하게 관능적이었다. 내려앉은 조명이 교묘하게 느껴질 만큼 야릇한 눈빛에도 예준은 어느 정도 견뎠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아릿하게 아파 오는 배를 의식하며 예준이 말을 던졌다.
“형은…. 아이 생각해 본 적 있어?”
아이 이야기를 꺼낸 건, 확실히 지금 하는 일과 연관이 있었다. 하루의 절반을 아이들과 보내면서 그들과의 거리감이 눈에 띄게 좁아졌다. 이제 아이는 예준에게 마냥 낯설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다. 교감이 어려울 때도 있고, 안전이 걱정될 때도 많지만 제 손에서 미약한 발전을 이루는 아이들을 보며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만큼 태경과 자신 사이의 아이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형질과 상황을 고려하면 골치가 아팠으나, 예준은 어쨌거나 사랑이 있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태경을 통해 배운 바였다.
태경은 말없이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상처는 그에게도 선명히 남았기에 괜한 주제를 건드렸나 싶었다. 몽롱한 눈을 바로 뜬 채 잠시간 기다리자 태경의 손끝이 머리카락에 닿았다.
“당연히 생각해 본 적 있지. 너 닮은 예쁜 아이.”
나긋나긋한 음성이 어찌나 다정한지, 손끝 발끝이 다 저릿했다. 예준은 옅게 미소 지은 채로 답했다.
“요즘 거의 매일 애들이랑 같이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우린 부부니까 당연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고….”
예준은 연거푸 말끝을 얼버무렸다. 어딘가 쑥스러워서였다. 태경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를 자세히 묻지 않고 단계를 건너뛰었다.
“언제 낳을까.”
이미 긍정적으로 마음먹었다는 걸 어떻게 알아챈 건지 신기했다. 예준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말했다.
“당장은 조금 힘들 것 같아. 도장 연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제대로 자리 잡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
가까이 다가온 태경이 예준의 뒷덜미에 뽀뽀하며 물었다.
“적어도 너 서른은 넘기고.”
“…응. 그게 좋을 것 같아.”
끼어드는 기억이 많아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다. 예준은 자신을 바로 눕히는 태경에게 순순히 몸을 내어 주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태경이 이번엔 턱 어딘가에 입을 맞추었다.
“그때까진 발정기 겹칠 때 조심해야 돼.”
“응, 그렇지….”
러트와 히트 사이클이 겹치는 때는 일 년에 두세 번 정도였다. 몸을 섞는 횟수에 비하자면 임신은 드문 기회였다. 달아오른 귓불을 감춘 채 골똘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예준의 니트 속으로 태경의 손이 들어왔다. 편편한 배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어쩐지 간절했다.
“아직 먼 이야기지만, 그땐 저번처럼 고통스럽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가져.”
씩 웃는 남자의 얼굴엔 분명 기쁨이 녹아들어 있었다. 기특해, 덧붙이는 말에 예준은 자신 또한 조금 성장했음을 인지했다. 아픈 것들은 뒤로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고. 나쁜 생각보단 좋은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남자의 얼굴을 홀린 듯 들여다보다 예준은 두 눈을 감았다. 따뜻하게 겹쳐지는 입술이 기분 좋아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짧은 키스를 끝낸 남자가 예준의 몸 위에 올라앉았다. 셔츠 단추를 마저 풀어 젖히는 모습을 응시하려니 예준은 점점 부풀어 오르는 중심이 버거워졌다. 태경이 바지 버클을 열고 앞섶을 겹쳤다. 뭉근하게 비비는 동시에 예준의 두 다리가 벌어졌다.
속옷을 사이에 두고 겹쳐진 성기가 비벼지거나 서로 비껴 나갔다. 술에 취해 몸은 더할 나위 없이 뜨거웠고, 직전에 아이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기에 섹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예준은 아득한 눈빛으로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남자의 등을 끌어안고 온몸을 비틀자 곧 짙은 농도로 흘러나오는 페로몬이 느껴졌다.
“하아…, 형….”
“좀, 빨리 젖었으면 좋겠는데, 예준아.”
남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엉덩이 사이가 흠뻑 젖었다. 발정기도 아닌데 꽤 많은 양의 애액이 흘러서 예준은 조금 당황했다. 아래편의 상황을 모르는 태경이 조바심을 내며 예준의 니트를 벗겼다. 힘이 실린 행동에 예준의 가슴은 터질 듯 뛰었다.
“아아… 형, 지금 술 마셔서….”
“그래. 자제가 안 돼.”
“하…. 빨리 손 좀….”
예준이 태경의 손을 이끌어 제 바지 속으로 가져갔다. 앞이든 뒤든 빨리 만져 주었으면 좋겠는데 태경의 손이 성기를 움켜쥐었을 때도 성감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한계까지 꼿꼿해진 성기를 태경이 강하게 쳐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좀 살 것 같았다. 예준은 도리질 치며 밭은 신음을 쏟아 내었다.
“하아! 응…!”
“뭘 했다고 이렇게 젖어.”
“페로몬….”
귀두에서 흘러나온 쿠퍼액과 꼬리뼈까지 적신 애액이 속옷에 지저분한 얼룩을 남겼다. 이미 질척해 미끄럽기까지 한 성기를 애무하던 남자가 그 더러운 속옷마저 벗겨 내었다. 예준은 나신이 된 채로 얼굴을 붉혔다. 뭔가 요구하면 할수록 더 기특해하는 태경일지라도 혼자 잔뜩 흥분한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남자가 바지를 벗자 복근까지 올라붙은 흉흉한 크기의 성기가 드러났다. 은은한 조명이 아니었다면 너무 적나라하여 바라보기조차 겁이 났을지 모른다. 태경의 표정은 금세 일그러졌다. 그가 예준의 양 손목을 결박해 바닥에 누르는 바람에, 손끝을 스친 샴페인 병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아….”
무릎을 벌리고 파고든 남자가 예준의 목덜미에 코끝을 파묻었다. 최음제나 다름없는 페로몬을 깊게 들이켜고 연한 살점을 잘근잘근 씹었다. 솜털이 잔뜩 일어선 귓불까지 핥자 예준은 벌어진 다리를 힘껏 조였다. 금방이라도 구멍을 파고들듯, 엉덩이 사이로 미끄러지는 성기가 느껴졌다.
바로 파고드는 대신, 태경은 성기의 단단한 기둥으로 구멍을 비벼 대었다. 연신 움찔거리는 구멍 위로 덧그리는 감각 덕분에 예준의 두 눈에 물기가 맺혔다. 딱딱한 바닥에 닿은 등, 결박당한 손목까지. 불편하고 아픈 와중에도 아래쪽의 쾌감은 너무나 부드러워 어쩔 줄 몰랐다.
눈을 맞춘 태경이 읊조렸다.
“한 명만 낳을까.”
그가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
“둘?”
다시 아이를 화제 삼자 예준은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행위 전에 하기에는 너무 고결한 이야기고, 적어도 의식이 온전할 때 나누어야 마땅할 대화라고 생각했다.
“몰라…. 아직….”
자신보다 몇 발자국이나 앞서 나가는 태경을 말리기 위해 예준은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관계없다는 듯, 깊게 입 맞춘 태경이 속삭였다.
“해 볼까.”
“하아, 뭘?”
“더 깊게 넣는 거.”
성기를? 정액을? 알 수 없었으나 둘 다를 말하는 것임을 직감했다. 잉태하기 위해서는 정액이 안쪽에 오래 고이는 게 좋다는 정도는 알지만.
“발정기 때처럼 하자고…?”
노팅할 때처럼, 아기집 가장 가까운 곳까지 성기를 받고 정액을 머금는 것. 뱉지 않는 것. 그와의 섹스는 대부분 그러했기에 예준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연습 따윈 필요 없을 정도로 깊게 삽입하는 데 익숙했고, 정액을 빼는 것은 태경의 도움 없인 어려울 만큼 미숙했다.
그제야 결박을 풀어 준 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통창 너머로 스산하게 부는 바람이 무색하게도 안은 열기로 가득했다. 예준은 정욕에 잠식되어 더듬더듬 남자의 몸을 어루만졌다. 어디 하나 물렁한 곳 없는 단단한 몸은 무겁고, 뜨겁고, 야했다. 오로지 자신만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축복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웠다.
“좋아.”
잔뜩 잠긴 음성으로 답하자, 태경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이내 몸을 가르며 들어온 귀두가 한 번에 한계까지 박혔다.
“아읏…!”
예준은 태경의 가슴을 마구 치며 발버둥 쳤다. 끝까지 박히고도 여전히 더 머금으려 안달을 내는 구멍이 야속했다. 접합부로부터 시작된 고통과 쾌감이 발끝까지 번졌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예준은 숨도 쉬지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아, 하아…!”
퍽, 퍽, 내달리는 허릿짓을 감당할 수 없었다. 태경이 자비 없이 성기를 쳐올리자 예준의 배꼽 부근이 연신 들렸다. 내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 두께와, 길이와, 강직도가 아니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극한의 오르가슴이 몰아쳤다.
겨우 숨을 뱉은 예준이 울기 시작하자, 태경의 뜨거운 입술이 잔뜩 달아오른 눈두덩을 눌렀다.
“으윽…, 흑…!”
그러면서도 더, 더 해 달라고 조르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가 싶었다. 이토록 가학적이고, 이기적이고, 깊은 삽입에도 예준은 태경이 조금도 원망스럽지 않았다. 힘을 짜내어 두 다리로 남자의 골반을 감았다. 그의 어깨를 끌어안고 너른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고통을 이기기 위해 살점을 씹어 대어도 태경은 신음할 뿐,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사납게 허리만 흔들었다.
“하읏…! 으윽!”
그만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예준은 대신 남자의 몸에 수없이 생채기를 냈다. 손톱으로 살결을 가르고 마구 쳐 멍을 만들었다. 성기가 꽉 들어찬 구멍이 터져 버리진 않을까 전전긍긍하기가 무섭게 투툭, 무언가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랑곳없이 삽입은 계속되었다. 러트와 비견할 만큼 무섭게 흥분한 남자의 얼굴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혀, 형!”
견디다 못한 예준이 결국 태경을 불렀다. 못된 눈빛으로 눈을 맞춘 남자가 말을 먹어 치우듯 입술을 빨았다. 뺨과, 턱까지 흠뻑 적신 눈물을 핥고 달래듯 귓가에 입술을 묻었다.
“하아, 미치게 조여….”
배를 꽉 누른 그가 으르렁대며 덧붙였다.
“여기, 하…. 진짜 말도 안 되게 좁다고, 예준아.”
그가 쾌감에 관한 감상을 늘어놓자, 예준은 잔뜩 울먹거리며 되받아쳤다.
“피 나…. 다쳤다고…!”
대답 대신, 눈앞이 아찔할 만큼 농도 짙은 페로몬이 밀려들었다. 헉, 숨을 들이켠 예준의 동공이 확장되며 눈앞이 흐려졌다. 기절할 것 같았지만, 태경의 페로몬과는 상성이 잘 맞는 예준이었다.
할 듯, 말 듯, 기절하지 않았다. 아무리 시야가 흐려도 묘한 기로에 선 의식이라면 쾌감만 더 커질 뿐이었다. 예준은 성기가 드나들며 벌어진 구멍을 저도 모르게 세게 조였고, 그때마다 태경은 짐승 같은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흐, 으!”
“하, 하아….”
“읍, 읏! 아아!”
피가 얼마나 흘렀는지, 지금은 멎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애액의 감각과 비슷한 데다가 그와 자신의 몸 사이엔 조금의 틈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내, 예준을 번쩍 안아 올린 남자가 마주 앉은 자세로 삽입했다. 남자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예준의 눈에서 고여 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예준에게 목을 안도록 강요한 태경이 다시 거칠게 귓불을 짓씹었다. 그에게 온몸을 의지한 채, 예준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위까지 꿰뚫린 기분이었다.
“하응! 으응!”
그가 골반을 붙잡은 채 크게 둥글렸다. 끝까지 박힌 성기가 내벽을 질척하게 늘렸다. 날카로운 고통은 분명 상처에서 비롯되었겠으나, 쾌감에 비하자면 미약했다. 예준은 바닥에 양 무릎을 댄 채 인형처럼 흔들렸다. 삽입은 오로지 태경의 힘으로 이어졌다. 쳐올리고 둥글리고 못살게 굴면서.
“형…. 아파….”
태경의 목덜미에 뺨을 기댄 예준이 말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격하면 후일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체에 틈을 만들어 교접한 성기를 내려다본 태경이 예준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핥았다.
“못 참을 만큼?”
“읍, 흐으…. 아니….”
“그럼, 하아…. 조금만….”
예준의 양쪽 엉덩이를 꽉 틀어쥔 태경이 흔들자 구멍 안에서 새어 나온 찌걱대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렇게 큰 걸 물고도 오메가의 구멍은 조일 때가 아니면 탄력 있게 벌어졌다. 미약하게 남은 이성마저 앗아 가기에 충분했다.
“읍, 으읏!”
예준을 당겨 안은 태경이 몇 번이나 성기를 박아 넣었다. 아프다고 칭얼거리면서도 예준의 입술 사이에선 이따금 야릇한 교성이 흘렀다. 애액이 너무 많아 지나치게 부드러운 것이 불만일 정도로 야한 몸이었다. 폭력적인 삽입으로 늘어나는가 싶던 구멍은 그저 귓불을 핥는 것만으로 뻑뻑하게 조여 들었다. 그즈음, 태경이 예준을 내려놓은 뒤 엎드리게 했다.
예준은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태경은 한쪽 엄지로 항문을 넓게 벌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상처는 미세했고 흐른 피의 양도 적었다. 바지와 함께 나뒹굴던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 내고 지혈했다. 지혈하는 동안에도 애무는 쉬지 않았다.
마른 등허리에 정신없이 입을 맞추고 엉덩이의 도톰한 살점을 깨물었다. 예준의 엉덩이가 몇 번이고 들썩였다. 바닥과 배 사이에 낀 성기를 예준은 이따금 따끈따끈한 바닥에 비볐다. 쿠퍼액이 흘러 끈적끈적했다. 성감을 어쩌지 못해 자꾸만 엉덩이가 오르내리는데도 태경은 불평이 없었다. 지혈이 끝나고 나서야 움직이지 못하도록 허리를 잡아 눌렀을 뿐이다.
“음, 으응….”
치덕치덕 비벼지는 귀두가 다음 신호를 알렸다. 예준은 조금 긴장한 채로 심호흡했다. 두툼한 것이 다시 내벽을 벌리며 들어왔다. 이번에는 천천히, 깊이를 더하듯. 상처가 또 헤벌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뭉근한 쾌감이 좋아 예준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하으, 으응….”
대신 길게 흐른 신음이 남자의 욕망을 부추겼다. 삽입 자체는 부드러웠으나 너무 깊어 예준은 배 속이 아플 지경이었다. 귀두가 아기집 입구를 자극하는 느낌은 생생한 고통으로 전해졌다. 두꺼운 뱀이 내장 안을 드나들어도 이토록 미끄덩하진 않을 터였다.
“으으, 읏…, 으응….”
“하아….”
이내, 남자의 폐부가 크게 부풀었다. 태경이 격한 신음을 몇 번 쏟아내자 안에 틀어박힌 성기가 꿈틀댔다.
“……!”
그저 미끌거리는 감각만으로 사정한 태경이 예준의 어깨를 짓씹었다. 예준은 그의 후희가 쉬이 가시지 않도록 허벅지에 잔뜩 힘을 주었다. 정액이 빠져나와선 안 되므로 엉덩이를 더 들어 올렸다. 태경 역시, 벌어진 내벽에서 점액질이 새지 않도록 성기를 빼지 않았다. 연거푸 안쪽으로 박아 넣었다.
발정기의 정액은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는 양이었다. 노팅할 때의 고통도 지금과 같지 않았다. 온통 범해지는데도 그날을 고대하는 이유는 예준도 어쩔 수 없는 오메가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행위를 통해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이 예준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형….”
“응, 예준아….”
“빼지 말고 계속… 해야….”
“그래. 그래야 아기 가지지….”
달랜 그가 성기를 넣은 채로 예준의 몸을 돌려 눕혔다. 이윽고 마주하자 예준은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오는 힘이 아득했다. 눈을 맞추기가 버거워 고개를 돌리니 그가 턱을 붙잡아 고정했다. 이마와 눈두덩, 코와 뺨, 입술과 턱까지 부드럽게 이어진 뽀뽀가 아래쪽의 진득한 고통을 상쇄해 주었다.
밤이 깊어졌다. 태경은 여전히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가 세 번째 사정했을 때는 아무리 밀어 넣어도 흘러넘치는 정액을 막을 길이 없었다. 예준은 너무 아파 구멍을 조일 수도 없었다. 흘러넘친 것들이 바닥에 고였고, 온몸에서 땀이 흘러나와 닿는 곳마다 축축했다.
“하아, 으….”
행위는 말문이 막히도록 깊었다. 더는 거칠지 않아도 회음부가 짓이겨지도록 깊게 삽입당했을 때는 여지없이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예준은 혈관이 도드라진 태경의 성기가 안을 드나들 땐 간지러워 몸을 떨었고, 쿡 쑤셔 박힐 때는 끅끅대며 남자를 밀어냈다. 다친 입구는 연고를 바르고 쉬게 하면 그만이라지만, 손도 닿지 않는 안쪽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음란한 냄새가 역할 법도 한데,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아래로 향했다. 자연히 성기가 빠져나가고 들어찬 것들이 쭈욱 흘러나왔다. 태경이 예준의 무릎을 벌려 잡은 채 그 광경을 주시했다. 곧이어 구멍 주변을 핥는 애정 어린 행위에 예준은 토로하듯 말했다.
“이렇게, 읏…, 하는데…. 아기가 안 생기면 이상하잖아….”
발정기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미리 섭취한 약물의 힘이 없었다면 아이는 몇 번이나 가지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러나 아직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결핍감을 부추겼다. 가치관이나 신념과는 다른, 오로지 본능의 문제였다.
고개를 끄덕인 태경은 답이 없었다. 그는 오물거리는 구멍에 매료되어 눈을 떼지 못했다. 담요를 구겨 예준의 엉덩이 아래로 밀어 넣자 치부가 더욱더 환히 드러났다. 그가 성기를 훑으며 자위하기 시작했다. 예준은 근육통에 시달리는 허벅지를 더 넓게 벌렸다.
“읏, 아아….”
고개를 젖혀 통창에 비친 제 하얀 다리를 보았다. 그 사이에 자리한 남자의 잘생긴 얼굴과 내리깐 시선, 격하게 흔들리는 어깨까지 모조리 눈에 담았다. 귓가를 쉴 새 없이 자극하는 음란한 소리. 성기의 마찰음이나 남자의 신음을 듣는 처지에서는 도저히 성감을 누그러뜨릴 수가 없었다.
그사이, 태경은 손쉽게 사정감에 도달했다. 순식간에 다가온 남자가 성기를 바짝 붙잡은 채 예준의 입가에 가져갔다. 두툼한 귀두로 입술을 벌리고 뜨거운 입 안에 자리 잡았다. 순순히 따른 예준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윽!”
목구멍이 콱 벌어지더니 정액이 쏟아졌다. 맛을 느끼기도 전에 연거푸 삼켜 냈다. 위와 아래 모두로 남자의 것을 받아먹었다. 손쓸 수 없이 난잡한 몸이 된 기분이었다.
조금은 애처롭게 그를 바라보자, 태경이 다가와 마른 몸을 안아 주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맞붙인 채, 예준은 남자의 몸 위에 엎드렸다. 가슴팍에 귀를 대고 쿵쿵 뛰는 심장 박동을 들었다. 오로지 육체의 움직임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 형…. 읏….”
그런 채로도 다시 몸속으로 들어오는 성기가 괴물 같기 이를 데 없었다. 예준은 반쯤 포기한 채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태경은 느긋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예준의 눈가로 손을 뻗었다. 얕은 눈두덩을 쓸고 촘촘한 속눈썹을 어루만졌다. 동그란 콧등을 매만지며 내려와 온통 젖은 입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단단한 손가락에 치아를 댄 예준이 혀를 둥글렸다. 그러자 혀를 누른 손가락이 목구멍 가까이 깊게 들어왔다.
예준은 구역질을 참으며 세게 손가락을 빨았다. 자지를 빨 때처럼 볼이 쏙 패도록 힘을 주고 시선을 들었다. 경박한 소리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면서도 내리뜬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참을 빨다가 손가락을 뱉어 내고 태경의 손을 제 유두로 가져갔다.
“으응….”
상체를 세워 앉아 조금씩 골반을 움직였다. 뻑뻑하게 들어찬 감각을 느끼며 남자에게 이미 꼿꼿이 일어선 유두를 긁게 했다. 생채기가 날 듯 말 듯 아릿한 고통이 전해졌다.
“으읏!”
편편한 가슴을 콱 움켜진 태경이 뼈가 도드라진 예준의 늑골로 손바닥을 미끄러뜨렸다. 마른 체형에 비해 제법 굴곡을 갖춘 골반을 틀어쥐고 힘주어 둥글렸다. 고개를 젖힌 예준이 교성을 높였다. 뱃가죽이 무섭도록 부풀어 오르는데도 아랑곳없이 퍽퍽 쳐올리자 배를 움켜쥔 채 신음을 토해 냈다. 태경은 하얀 손 위로 제 손을 겹쳐 눌렀다. 좁은 내벽을 가차 없이 짓이기고 벌렸다.
“하응! 아아!”
예준의 정액이 예고 없이 후드득 쏟아졌다. 태경의 배 위에 잔뜩 흩뿌려진 점액질의 양이 상당했다. 태경은 그것을 모아 접합부에 비볐다. 틈 없이 비좁은 입구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안쪽까지 정액을 비벼 대자 예준이 견디지 못하고 몸을 수그렸다. 태경은 그런 예준을 끌어안고 손가락 하나를 더 쑤셔 넣었다.
“으흥! 으!”
예준이 교성을 쏟아 내며 온몸을 떨었다. 입구가 너무 벌어져 누구의 것인지 모를 정액이 한바탕 쏟아져 나왔다. 예준은 엉엉 울며 남자의 가슴팍을 씹어 댐과 동시에 맑은 액을 힘 있게 뿜어내었다. 태경의 배와 허벅지, 주변이 흠뻑 젖도록 싸지르고는 절정에 도달한 채 간신히 호흡했다.
“흣! 으응!”
고조된 태경이 미친 듯이 성기를 쑤셔 넣었다. 탈진한 여린 몸을 결박해 몰아붙이자 예준의 전신이 늘어졌다. 조이지도, 벌리지도 못한 두 다리가 마구 흔들리더니 이내 예준의 배 속이 뜨거워졌다. 남자가 사정했다. 예준은 충만함에 사로잡혀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하아, 하읏….”
태경이 그런 예준을 들어 바르게 눕혔다. 예준의 오금을 잡아 벌려 엉덩이 아래로 자신의 무릎을 집어넣고 자세를 낮추지 못하도록 종용했다. 중력에 반하는 자세 덕분에 정액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안으로 흘러들어 더 깊은 곳에 고였다. 예준은 겨우 무릎을 붙잡아 당겼다. 허벅지로 옮겨 간 남자의 손이 흠뻑 젖은 살덩이를 움켜잡았다.
“버텨야지.”
예준은 고개를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탈력감에 사로잡힌 몸에 억지로 힘을 주어 구멍을 조였다. 의지와 상관없이 구멍을 뻐끔 벌리며 정액을 뱉기도 했지만 태경은 나무라지 않았다.
그 자세로 수 분을 보냈다. 조였다 벌어지길 반복하는 입구에서 태경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격렬한 섹스로 충혈된 두 눈은 내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
아득한 곳에서부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예준은 물 먹은 듯 무거운 몸을 뒤척이며 눈을 떴다. 햇살이 들이치는 아침이었다.
가장 먼저 보인 장면은 온갖 상처가 가득한 상체를 드러낸 채 바지를 꿰입는 태경의 모습이었다. 그가 복근을 조이며 버클을 잠갔다.
“오늘부터 다시 공사라는 걸 잊었네.”
태경이 허탈하게 말했다. 예준은 멀리에서 들리는 말소리가 인부들의 것임을 뒤늦게 알아챘다. 예준 또한 나체로 담요만 덮은 신세였다.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다 허리에서부터 찌릿하게 전해지는 고통에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냥 있어. 돌려보낼 테니까.”
대강 셔츠를 걸친 남자가 말했다. 예준의 뺨을 쓰다듬고 물러난 남자는 곧 사라졌다. 예준은 나뒹구는 샴페인 병과 얼룩덜룩한 바닥을 바라보며 아연실색했다. 정액과 핏물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데다가, 지금 몸에서 흐르는 것만 해도 무시하지 못할 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공사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런 곳에서 밤을 지새운 것도 모자라 깨끗한 현장을 더럽히고 말다니.
예준은 담요를 목 끝까지 뒤집어쓴 채 바깥을 바라보았다. 정원으로 진입하려던 인부들이 태경에게 가로막혔다. 벌어진 셔츠를 수습하지도 못하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인부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예준은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며 태경의 손수건을 회음부로 가져갔다. 담요 안에서 꾹꾹 누르자 고인 정액이 조금씩 빠져나왔다. 안을 헤집지 않으면 어림도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빼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인부들과 이야기가 길어지는 때를 틈타, 예준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바닥을 더럽힐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담요를 둘둘 만 채 조심스레 집을 둘러보았다. 오전의 집은 오후와 느낌이 달라서 마치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가슴이 떨렸다.
놓친 부분이 없나 찬찬히 둘러보는데 마침 침실과 가까운 빈방이 눈에 들었다. 제 방도, 태경의 작업실도 아닌 공간을 들여다보며 예준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미묘하게 미소 지었다.
아기 방인가….
어젯밤 이전에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으나, 태경이라면 미래에 벌어질 변수를 미리 고려했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면 다른 용도로 쓰면 그만일 방이라지만 예준은 어쩐지 쑥스러워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섰다.
지난밤, 아기나 임신이란 말에 어른답지 못하게 흥분하고 말았다. 태경도 거의 눈이 돌았던 걸 보면, 앞으로의 섹스가 얼마나 험난할지 절로 그려지는 것이다.
다시 안으로 들어선 태경의 손에는 간단한 먹을거리가 들려 있었다. 예준의 눈에는 정사의 흔적이 완연한 모습이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들은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그는 어느새 깔끔해진 모습으로 따뜻한 커피부터 예준의 손에 쥐여 주었다.
“괜찮아?”
“죽진 않겠지, 뭐….”
예준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태경이 까치집 지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자 예준은 피로한 눈을 비비며 웃었다. 새소리까지 들리는, 날씨가 무척 좋은 날이었다. 인부들을 돌려보내면서까지 더 시간을 쓰겠다고 작정한 태경이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있으면 완성돼? 우리 언제 이사해, 형?”
예준이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며 물었다. 태경은 부푼 예준의 뺨을 꼬집으며 답했다.
“한 달 뒤. 오래 살 집이니까 최대한 잘 마무리하고 싶어. 그때까진 종종 들르면서 가구도 고르고, 가끔은 그냥 시간 보내도 좋아. 온종일 공사하진 않으니까.”
재촉하려던 의도는 아니었는데 태경이 난감한 듯 웃었다. 너무 좋은 티를 냈나 싶어 예준은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좋아?”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준은 누군가 자신을 이토록 끔찍하게 생각해 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태경과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거기에, 아직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가족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외로워 외로운 줄도 몰랐던 과거가 무색해졌다.
예준은 반쯤 먹은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커피를 마시던 태경을 강제로 끌어안았다. 잘생긴 귀에 입을 맞추고는 부끄러운 말을 내놓았다.
“형이랑 있으면, 오메가로 발현한 게 불행이었다는 생각이 안 들어.”
차라리, 이태경이라는 종착점에 다다르기 위한 지난한 여정이지 않았을까. 예준은 더 하고 싶은 말을 꾹 삼키며 두 팔에 힘을 주었다. 등을 감싸 안은 태경은 유난을 떨지 않았다.
“다행이네.”
담백하게 돌아온 말에 예준은 더할 나위 없이 안도했다. 섣부른 위로의 말 없이 태경은 그저 등을 어루만져 주기만 했다. 바닥에 닿은 예준의 무릎이 아프지 않도록 허벅지에 올려 안고는 한참을 쓰다듬었다.
따뜻한 체온과 은은한 페로몬이 기분 좋아, 예준은 뒤늦게 말을 꺼냈다.
“저기, 침실 옆에 있는 방 말이야.”
그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고 느낀 건 착각일까.
“아기 생각해서 만든 거지?”
태경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둔할 땐 속 터지게 둔하면서 오늘은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를까. 우리 예준이.”
다정한 말투에 예준은 소리 없이 웃었다. 자신을 탓하는 남자가 미울 리 없었다. 그래서, 단단한 목덜미에 코끝을 파묻으며 말했다.
“좋아해.”
“난 너 사랑해.”
더한 것을 되돌려 준 남자가 끌어안은 팔에 세게 힘을 주는 바람에 예준은 끙끙 앓느라 바빴다. 이어지는 뽀뽀 세례에 정신이 아득했다. 결국 바닥으로 쓰러져 발버둥 치는데도 태경은 그칠 줄 몰랐다. 뺨이며 귀며 목이며 할 것 없이 물어뜯긴 예준이 결국 남자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럼에도 꿈쩍없이 두 팔 안에 예준을 가둔 남자가 시선을 마주했다. 숨 막힐 듯 치솟는 긴장감 속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를 떠올린다. 예준은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한 채 눈동자를 떨었다.
뜨거운 손이 다가와 목덜미를 그러쥐었다. 그 손에 자신의 생명을 모조리 내어 주기라도 한 듯, 예준은 온몸이 가벼움을 느꼈다. 물기가 고인 눈에 이내 남자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따뜻한 햇살을 머금은 듯 여전히, 늘, 따뜻한 온도였다.
〈 언젠가,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