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Clash(1권) (1/18)

1. Clash

쏟아진 비로 바닥이 진창이었다. 예준은 구정물에 흠뻑 젖은 대걸레를 발로 꾹 짜내었다. 냄새 나는 직원 전용 지하 화장실은 고작 한 평 남짓이었다. 겨우 걸레를 빨고 복도로 나와 보니 닦아 놓은 구역마저 다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밤새 반복해야 할 헛짓거리였다.

“하.”

예준은 불만을 더 표하는 대신 힘주어 걸레를 밀었다. 손님들의 구둣발 소리가 연이어 들려도 꿋꿋이 고개는 들지 않았다. 알파들이야 페로몬을 조절할 수 있다지만 오메가는 아니었다. 자신이 지금 어떤 페로몬을 풍길지 모르지 않았다. 운 나쁘게 질 나쁜 알파와 마주치면 곤란한 일에 휘말릴 가능성이 컸다.

강남의 으리으리한 룸살롱은 조직 산하에 있었다. 초저녁부터 정명의 호출에 목줄 달린 개처럼 달려와 한다는 일이 고작 바닥 청소였다. 조직의 일원이자 사채업자인 정명은 사는 게 퍽 심심할 때마다 예준을 불러들여 장난질해 대었다.

오늘처럼, 알파들이 드나드는 룸살롱에 발정기를 앞둔 오메가를 던져 놓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러다 사고라도 벌어지면 제일 먼저 나타나 구경할 위인이었다.

“형, 할 만해?”

겨우 5m나 닦았을까. 마침 복도를 지나던 치문이 물었다. 녀석이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내밀었다.

“별로야.”

무심하게 대답한 예준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벌써 자정이 넘었다. 저녁 6시에 치문과 함께 밥을 먹은 뒤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다.

“열은?”

“아직.”

서서히 열감이 느껴졌으나 아직은 견딜 만했다. 수없이 겪은 히트 사이클의 징조를 착각할 리 없었다. 예준은 치문을 바라보며 마른 입술을 축였다. 치문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투덜댔다.

“씨발. 한동안 잠잠하더니 왜 지랄이야.”

“정명 형님 특기잖아. 다른 오메가들 어떻게 사는지 눈으로 보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

그렇지 않아도 복도 청소를 시작하기 전 접대부가 모인 방을 치웠다. 조직에 덜미를 잡힌 오메가라면 화류계로 끌려들어 가 인간답지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예준은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그마저도 과거의 영광 덕분이었다. 그들이 언제 생각을 바꾸어 이보다 더한 밑바닥 인생으로 떨어뜨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접대는 안 해도 되는 게 어디냐.”

“형이 접대는 무슨 접대야.”

치문이 욕지거릴 덧붙이려다 말았다. 습관적으로 바닥에 침을 뱉으려던 녀석이 예준의 손에 잡힌 대걸레를 확인하곤 입을 다물었다.

“다른 오메가들은 다 하잖아.”

조금 전 보았던 오메가들을 떠올리면 가슴속이 답답했다. 종종 치문이 뒤를 봐주기는 했으나 말단 조직원인 그가 언제까지 힘을 쓸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러다가 하루아침에 신세가 뒤바뀐다고 하더라도 반항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였다.

면역이 되기는 했지만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명 형님이나 조직원들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밖에 없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보통은 해낼 만했기에 그럭저럭 견디고 있었다.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오늘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참자, 형.”

치문이 위로랍시고 말했다. 예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었어. 이러고 나면 또 며칠은 조용하니까.”

액땜한다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예준은 부러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가만히 바라보던 치문도 꽉 끼는 양복을 바로잡곤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곧, 복도 끝에서부터 인기척이 들렸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 봐야 좋을 게 없을 터였다. 또 무슨 작당한단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었다. 예준은 서둘러 치문의 팔꿈치를 밀었다.

“가.”

“들어가기 전에 아침이나 같이 먹자.”

“알았어.”

빠르게 대답한 치문이 등을 보였다. 마지못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녀석을 뒤로한 채 예준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걸레 손잡이를 바짝 붙잡고 복도 코너에 섰다.

긴장되었다. 그냥 지나치면 될 걸, 희롱하거나 시비를 거는 알파들이 많은 탓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스친 무리는 제게 한 톨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복도에서부터 말을 주고받는 걸 보면 급한 용무가 있는 모양이었다.

긴장되었다. 그냥 지나치면 될 걸, 희롱하거나 시비를 거는 알파들이 많은 탓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스친 무리는 제게 한 톨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복도에서부터 말을 주고받는 걸 보면 급한 용무가 있는 모양이었다.

별다른 인기척이 없는 걸로 보아 안면이 있는 조직원도 아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순간, 공기 중에 남은 색다른 페로몬이 느껴졌다. 이곳에 드나드는 이들답지 않게 갈무리된 데다가 열성 알파들의 페로몬과 달리 은은하고 결이 고왔다.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뜬 예준이 고개를 들었다. 이미 무리는 저편으로 달아나 있었다. 건장한 뒷모습만 겨우 눈에 들어왔다. 장정 셋. 그마저도 곧 기역 자로 꺾인 복도로 사라져 볼 수 없었다.

별일이었다. 페로몬을 잘 갈무리할 줄 아는 알파라니.

예준이 대걸레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괜히 코끝을 어루만지곤 뒤통수를 매만졌다. 안도하며 얼룩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쭉 뻗은 복도 하나만 해도 갈 길이 멀었다.

예준은 페로몬의 흔적을 가뿐히 지워 내고 걸레질을 시작했다. 진창 위로 깨끗한 걸레가 스치자 얼룩은 금세 사라졌다.

*

밤은 무사히 지나갔다. 몇몇 알파에게 희롱을 듣긴 했지만 시비로 번질 수준은 아니었고, 고되었어도 결국 할당된 복도만큼은 깨끗이 마무리했다. 손에 일당을 쥔 채로 나오자 그렇게 헛짓거리까진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동이 트고 비는 그쳤다. 점점이 말라 가는 땅을 내려다보며 예준은 치문과 함께 엉망이 된 유흥가의 구석으로 향했다. 알파들은 잘 오지 않는 허름한 국밥집이었다. 국밥 두 그릇을 시켜 놓고 잔뜩 굳은 어깨를 주물렀다. 아릿하게 아파져 오는 배 속의 감각이 불편해서, 예준은 연거푸 물을 따라 목을 축였다.

“이번엔 어떡하려고?”

치문이 물었다. 오늘 일당으로도 오십만 원이 훌쩍 넘는 억제제를 사진 못하니 또 열성 알파 형님 중 아무나 붙잡아 밤일을 치러야 하나 싶었다. 예준은 졸린 눈을 비비며 답했다.

“좀 참아 보고.”

대책 없이 말하자 치문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게 보였다. 돈은 없고 자 줄 열성 알파들은 널리고 널렸다. 알파의 정액만 배 속에 품으면 남은 히트 사이클 기간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아무리 형편없는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 없이는 치솟는 성감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또 우리 형 잡겠네.”

잘 버텨 왔는데 치문은 제 발정기만 되면 유난을 떨었다. 녀석이 격 없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이렇게 실한 자지를 형한테 못 써 준다는 게 천추의 한이다.”

두툼한 손끝으로 가랑이를 가리킨다. 예준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수저를 챙겼다.

“죽어도 네 자지 볼 일은 없을 거 같다.”

“아, 형!”

언젠가 ‘차라리 내가 알파였다면 형이 덜 힘들었을 텐데.’ 하고 말한 치문이었다. 막역한 사이지만, 치문은 예준에게 가장 절실한 도움만큼은 베풀어 줄 수 없는 베타였다. 그래도 조직 변두리에서 함께 굴러먹은 시간이 길었다. 서로 돕고 도우며 형제처럼 지낸 지도 벌써 4년째였다.

치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열여덟에 형님들에게 스카우트된 케이스였다. 허세는 부렸어도 양아치 짓까진 하지 않던 녀석이었는데, 어쩌다 길에서 시비가 붙어 무리 중 한 놈 다리를 부러뜨린 게 화근이었다. 하필이면 그 무리가 형님들과 세력 다툼을 하고 있었기에, 형님들 입장에서는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보자 하고 찾은 것이 그대로 그 세계로 빨려들게 된 원인이 되었다.

스물둘. 덩치는 커도 속은 애였다. 꼬질꼬질한 녀석을 붙잡아 씻기고 재웠던 때가 무색하게도 치문은 이제 제법 조직원 티가 났다. 느와르 영화 따위에 혹한 녀석이 조직에 들어오고는 기대치 않은 쓴맛을 봤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씁쓸해도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매번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이 일은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치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는데 곧 뜨거운 국밥 두 그릇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예준이 수북한 돼지고기를 쓱쓱 비비자 김이 훅 피어올랐다. 예준과 치문은 망설일 것 없이 밥 한술을 크게 퍼 입에 넣었다. 내내 비어 있던 속에 훈기가 퍼졌다.

*

적어도 하루는 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배달 스쿠터에 오른 예준은 어느덧 완연한 열감에 더운 한숨을 내뱉었다. 살 떨리게 추운 날씨임에도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고객의 요청이 없었는데도 배달 음식을 문 앞에 놓아두고 부리나케 나오는 길이었다.

밤새워 일했는데 쪽잠만 자고 나온 것이 화근이었을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본 예준은 핸들을 돌려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더 일하긴 무리였다. 단칸방으로 돌아가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버틸 요량이었다.

오메가로 발현한 후, 생계로 선택한 배달 일은 녹록지만은 않았다. 헬멧으로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고객이 알파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때때로 귀신같이 페로몬 냄새를 맡은 알파들이 문을 박차고 나왔다. 운동한 경력으로 뿌리치긴 어렵지 않았으나 시달리고 나면 진이 쭉 빠졌다. 혐오스러운 점은 그런 시답잖은 알파들의 페로몬만으로도 몸이 푹 젖어 버리고 만다는 사실이었다.

저질의 열성 알파들은 페로몬을 갈무리하지 않았다. 징그럽고 거북한데도, 몸은 페로몬의 흡수를 반긴다는 사실이 가장 최악이었다. 뒤처리할 때마다 구역질이 나왔다. 잉태하기 쉽도록 녹진하게 풀어진 몸을 수습하는 것에도 이골이 난 형편이었다.

평소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히트 사이클인 지금은 어떨까.

그래도 오늘은 꽤 무난한 하루였다. 어깨를 짓누르는 피로 정도야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만 견디면 성감 때문에 추태를 보일 걱정도 없었다.

예준은 노란불 신호에 맞추어 차선 가장 바깥쪽 라인에 멈추어 섰다. 툭, 툭,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밤부터 비 온댔으니까 일찍 들어가.’

이른 아침, 치문이 했던 잔소리가 뒤늦게 떠올랐다. 말려 올라간 얇은 티셔츠를 내린 예준은 발끝을 동동거리며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그때였다.

건널목을 건너는 고등학생 무리가 보였다. 왁자지껄 떠들던 녀석 중 하나가 앞을 잘 살피지 않은 탓에 스쿠터 앞바퀴에 무릎을 부딪쳤다. 욕지거리가 들리더니 성난 시선이 꽂혔다.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예준은 떨리는 몸을 애써 숨기며 고개를 수그렸다.

아무런 불만을 표하지 않았음에도 시선은 쉬이 멀어지지 않았다. 흘끗 살피자 녀석의 묘한 눈빛과 비틀린 입매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더 버티면 신호가 바뀐다. 예준이 간절한 심정으로 정면을 주시하던 순간이었다.

퍽-!

장신의 소년이 그대로 스쿠터를 발로 깠다. 예준은 요란한 소음과 함께 아스팔트 도로 위를 나뒹굴었다. 바닥에 부딪힌 머리, 팔꿈치, 무릎,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람 지나가는 거 안 보여?”

잘못 걸렸다.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멱살을 틀어쥔 녀석이 헬멧을 강제로 벗겼다.

“너 오메가지?”

어떻게 안 걸까. 마주한 상대는 분명 베타였다. 외형만으로도 어느 정도 형질을 가늠할 수는 있다지만, 지금은 어두운 밤인 데다 예준은 헬멧을 착용한 상태였다.

예준은 곧 덩치들에게 둘러싸였다. 동물원 원숭이처럼 들여다보는 얼굴들은 교복이 무색할 만큼 노숙했다. 제 멱살을 쥔 놈이 우두머리인 듯, 가장 귀티 나는 낯을 지니고 있었다. 선이 고운 이목구비는 그가 부린 패악을 닮아 볼썽사납게 일그러진 채였다.

“…오메가면.”

가까스로 대답한 예준이 밭은 숨을 내쉬었다. 도로가에서 대단한 소란이 벌어졌는데도 차들의 선팅된 창문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지나치는 행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메가란 단어가 귓속을 파고든 이후부터 모두가 황급히 자리를 떠나기 바빴다.

이것 또한 오메가의 좆같은 점이다. 사회 구성원 중 가장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는 오메가들은 엮여서 좋을 게 없는 사고뭉치였다. 딱히 혐오하지 않더라도 비행 청소년에게 붙잡힌 가난한 오메가는 기피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씨발. 존나… 꼴리게 생겼네.”

알파와 베타를 막론하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었다. 입 안이 터졌는지 얼얼한 통증과 동시에 맛이 비렸다. 혀 위에 고인 핏물이 역겨워 예준은 아스팔트 위로 침을 툭 뱉어냈다.

“먹어 볼까?”

희롱하는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편이 현명했다. 열이 치솟고 있었다. 반항하기엔 좋은 컨디션도 아니기에, 한시라도 빨리 자신에게 관심을 잃어 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소년의 흥미는 쉬이 식지 않았다. 이마부터 코, 입술, 턱, 목까지 뜯어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고운 낯이어도 먹잇감 들여다보듯 낱낱이 관찰하는 눈은 역겨웠다. 예준은 끝내 시선을 피했다. 빠앙-! 고막을 터뜨릴 듯 경적을 울리며 지나치는 차들에서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웬일로 운수가 그럴듯한가 했다. 자조하기 무섭게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히트 사이클 증상에도 속력이 붙었다. 곧, 의식이 희미해지며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왜, 하필이면 이때.

“발정긴가 보네….”

변화를 놓치지 않은 녀석이 입맛을 다셨다. 멱살을 쥔 채로 몸을 일으켰다. 형편없이 마른 몸이 쑥 딸려 올라가더니 예준은 곧장 녀석에 품에 푹 파묻혔다. 낄낄거리던 친구들이 거들어 팔을 붙잡자 순식간에 결박당했다.

“가자.”

소년이 명령하자 덩치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대로변을 벗어나 으슥한 주택가로 향하는 길은 쏟아지는 비로 습했다.

…누군가 신고해 주었기를 바랄 수밖에. 예준이 발갛게 열 오른 두 눈을 감았다 떴다. 고꾸라진 탓에 질질 끌리는 자신의 두 발만이 보일 뿐이었다.

*

남자는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를 뚫고 달렸다.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유난히 큰 밤이었다. 정차 신호에 멈춰 서자 앞 차의 브레이크등이 붉게 빛났다. 그 대각선 너머로 파랗게 빛나는 경찰서 표식이 보였다.

“수고 많으십니다.”

순경 둘이 일어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선 남자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윤도하 학생 보호자 되십니까?”

“네. 길이 막혀서 좀 늦었습니다.”

1년이나 붙잡고 있던 프로젝트를 막 끝낸 참이었다. 남자는 직원들과 술자리로 향하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사촌 동생이 사고를 쳤다는데, 갈 사람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저밖에 없다니 기막힌 일이었다.

“이태경입니다.”

먼저 나선 순경에게 신분증을 건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열한 시를 지나는 늦은 시각임에도 경찰서 내부 곳곳이 시끌벅적했다. 그중, 구석진 자리에 낯익은 교복을 입고 앉은 남학생들이 보였다. 삐죽 튀어나온 익숙한 얼굴을 확인한 태경은 미간을 좁혔다. 그가 이미 열려 있던 셔츠 단추를 더 풀자, 뒤늦게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보기 드문 우성 알파. 페로몬을 갈무리했다 하더라도 타고난 존재감을 숨기기는 어려웠다. 몇몇 베타, 몇몇 알파, 그리고 극소수의 오메가가 경찰서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눈이 태경에게 향했고, 태경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구석진 모서리를 향했다.

“…….”

면역제(오메가의 페로몬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하는 약)가 아니었다면 유리문을 열기 전부터 느꼈을 것이다. 이 정도 페로몬이라면 분명.

“히트 사이클인 오메가가 있네요.”

태경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신분증을 도로 건넨 순경이 쯧, 혀끝을 찼다.

“네. 골치 아프죠, 정말.”

안내를 받아 깊숙이 들어서자 그 달콤한 향기는 조금 더 분명해졌다. 덩치 큰 소년들과 격리된 채 앉은 오메가는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물 젖은 종이처럼 늘어졌고 담요 위로 드러난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채였다.

히트 사이클을 맞이한 데다 말갛고 예쁜 오메가를 제 사촌이 모른 척할 리 없었다. 사람들은 오메가를 세상에 존재하는 형질 중 가장 열등하다고 생각하니까. 씹고 뱉고 버려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철없는 남자애들이 오메가를 실컷 괴롭혔다 할지라도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윤도하.”

태경의 부름에 도하가 인상을 구겼다. 도하는 베타인 주제에 알파보다 더한 시선으로 그 오메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씨발. 왜 하필이면 네가 왔어!”

거친 언사가 거슬렸다. 세상 무서운 것 없는 아이는 돼먹지 못한 행동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태경은 피로가 쌓인 목을 주무르며 그런 제 사촌을 바라보았다.

“입 다물어. 누가 못 배워 먹은 개새끼처럼 행동하래.”

경고하자, 씨근덕대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녀석을 덩치들이 눌러 앉혔다. 사나운 눈동자가 일제히 태경을 향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마주한 얼굴보다 더 따가운 쪽은 뒤통수였다.

“…….”

태경은 마지못해 뒤돌아섰다. 저를 보던 오메가의 눈동자가 소리를 내듯 굴렀다. 터진 입술 빼고는 멀쩡한 상태인 걸 보면 얼굴이 질린 이유는 도하가 아니라 저 때문인 듯했다. 페로몬이 후각만을 자극하는 건 아닌데도 급하게 코부터 막고 본다. 담요를 올려 얼굴을 덮는 모습을 보며 순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급한 대로 억제제를 줘 봤는데 소용이 없어요.”

“시기를 놓치면 안 듣거든요.”

순경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래도 한때는 잘나가던….”

뭐라 중얼거리던 순경이 다시 한번 쯧, 혀끝을 찼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삼키는 모양새였다.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린 태경의 눈이 다시 오메가에게 향했다.

비 맞은 강아지. 딱 그 꼴이었다. 사정없이 떨리는 어깨가 측은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터였으나 태경은 예외였다. 그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자초지종은 대충 들었으니 됐고. 피해자랑 단둘이 이야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괜찮으시겠어요? 그게, 알파시니까….”

이곳에 서서 면역제니, 억제제니 하는 말을 떠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태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순경도 굳이 반박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이쪽으로 가시죠.”

잔뜩 불만인 소년들을 뒤로한 채, 남자는 구석에 앉아 있던 오메가와 눈을 맞추었다.

“잠시 이야기 좀 합시다.”

마주한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

창문 하나 없는 답답한 밀실이었다. 태경은 오메가가 떨림을 참느라 애쓰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면역제 덕분에 히트 사이클을 맞은 오메가의 강력한 페로몬도 태경에겐 미미한 자극일 뿐이었다. 거슬리고 어딘가 무례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견딜 만했다.

왜 억제제를 먹지 못했는지 참견할 사이는 아니니 물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자신이 고통의 원인이란 사실은 분명히 알았다. 알파의 존재감만으로 오메가가 얼마만큼의 성감을 느낄지는 뻔하니까.

오메가는 빨개진 눈과 뺨을 성급히 비비다 저를 마주 보았다. 완연히 느껴지는 열감과 눈꼬리에 맺힌 물기를 보자 가슴속 어딘가가 짠할 지경이었다.

“처음이에요?”

“…뭐가요?”

“윤도하한테 맞은 거.”

“네.”

오메가가 가까스로 열었다 닫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여러 번 반복된 일이라면 더 골치 아파진다. 불행 중 다행이나, 그렇다 하더라도 귀찮은 일 해치우듯 마무리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병원은 안 가 봐도 되겠어요?”

“네.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이름이?”

“예준…. 김예준이요.”

도톰한 입술이 찢어져 말하기도 버거워 보였다. 오메가를 앉혀 둔 채 서 있던 태경이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

“그래요. 예준 씨. 힘들 테니까 좀 빠르게 해 볼게요.”

그의 얼굴에 닿아 있던 예준의 시선이 툭 낮아졌다. 눈치채지 못한 태경은 태평하게 입을 뗐다.

“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삼촌이 이 동네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이에요. 몇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도 수두룩하고 그중엔 당연히 이 경찰서 직원도 있을 겁니다.”

“…….”

“예준 씨는 배달원이라고 들었는데. 맞죠?”

“…네.”

“지나가다 운 나쁘게 저 새끼…. 아니, 윤도하한테 걸려서 맞은 거고.”

“네.”

오메가가 묻지 마 폭행을 당하는 일은 흔했다. 하루가 멀다고 뉴스거리가 되지만, 만연한 혐오와 갑질을 피할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형질에 의해 인격마저 폄하당하는 형편에 알파에 비하자면 열등한 베타에게까지 머릿수로 당했으니 그토록 얌전한 게 더 놀라울 지경이었다.

태경은 인색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앉은 오메가가 미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토바이는 내 선에서 얼마든지 보상 가능할 테지만 합의 문제는 좀 복잡해요.”

예준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합의해 달라는 말씀이에요?”

“아니, 그 반댑니다.”

“그럼 합의하지 말라고요?”

“그게 아니라.”

그즈음 태경은 제 목에 닿은 예준의 노골적인 시선을 감지했다.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좋겠다는 말이에요. 합의 안 하고 민사까지 하겠다면 방해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 미리 대비하라는….”

버릇없는 사촌 동생을 두둔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가진 것이 많은 쪽이 행한 폭력이었다. 보상으로 다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역부족일 터였다. 알파의 월권이라 치부하더라도 지원은 해 줄 작정이었는데, 웬일인지 상대는 말이 없었다.

“내 말 듣고 있어요?”

물었음에도 예준의 멍한 시선은 그대로였다. 태경은 제 목덜미에 고정된 두 눈을 의식하며 덧붙였다.

“예준 씨. 사람이 말할 때는 눈을 봐야지. 어딜 보고 있어.”

“단추를….”

예준은 하마터면 단추를 하나만 더 열면 안 되겠느냐는 헛소리를 입 밖으로 뱉을 뻔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 때문에 생각에 방해되는 거면 잠시 나가 줄까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태경은 다그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예준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폭력을 당한 상황보다 히트 사이클일 가능성이 컸다. 발정기를 맞은 오메가 눈에 자신의 목덜미가 어떻게 보일지 모른다면 거짓말이다. 끔찍한 듯 두 눈을 질끈 감는 상대가 그 증거였다.

“곤란하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리를 피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분명히 해 두어야만 후에 따라올 귀찮은 일을 미리 방지할 수 있으므로. 다만, 시각적인 자극이 괴롭다면 단추 정도는 얼마든지 다시 채울 의향이 있었다.

태경이 단추에 손을 가져가자 때마침 눈을 뜬 예준의 눈에 기대감이 비쳤다. 투명하다 못해 새하얄 지경이다. 태경은 속살을 보여 주어야 맞는 건지 가려야 맞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갈등하며 깃을 벌렸다 놓는 행위가 더 관능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예준이 말했다.

“저…. 이런 말 굉장히 무례하고 실례라는 거 잘 아는데요.”

태경은 단추에서 손을 떼고 기울였던 몸을 바로 세웠다. 뭐든지 듣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팔짱을 끼자 예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불길한 기운이 엄습하는 와중, 설상가상으로 예준의 눈가에 물기까지 가득 차올랐다.

“저… 합의할 테니까… 그냥….”

공교롭게도 태경에게는, 아파하는 약한 것들을 외면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었다. 이 어린 오메가는 동정심을 건드리는 재주를 타고난 게 분명하다.

“한 번만 자 주시면 안 될까요?”

타이밍 좋게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 쉴 새 없이 떨리는 몸. 테이블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힘주어 꼬았을 두 다리가 절로 눈앞에 그려졌다. 심장 부근에 알싸한 통증이 퍼진다는 건 확실히 위험 신호였다.

“하….”

태경은 타들어 가는 제 심정처럼 마른 입술을 부드럽게 축였다. 무엇보다 일이 중요한 성격이므로 러트가 아닐 때는 일부러 나서서 관계를 맺지 않는 편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자극당하기 싫어 면역제까지 복용하는 마당에, 한 번만 자 달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그럼에도 곤란하다는 듯 뒷덜미를 어루만지던 그의 시선이 예준에게 곧게 가닿았다. 끽해야 성인이나 되었을까 싶을 만큼 앳된 얼굴선과 열감에 가려지지 않았다면 제법 총명했을 큰 눈이 가장 먼저 시야에 담겼다. 그다음은 피딱지가 내려앉은 도톰한 입술, 말랑한 귓불, 하얗고 긴 목이었다.

담요에 가려져 더 보이지 않는 살결은 상상으로 대신했다.

“나는.”

태경이 잠시간 뜸을 들였다. 그는 곧 허탈한 얼굴로 덧붙였다.

“남자 경험 없는데.”

“하고 나서 별로였단 사람 없었어요.”

예준이 다급히 답했다. 태경은 겪어 보지 않고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성감을 고조시키는 데에는 시각적 자극만 한 것이 없으니까. 이토록 예쁘장한 오메가와의 하룻밤이라면 누구든 만족했을 것이다. 미숙하든 능숙하든, 사내라면 그 나름대로 마음이 동하고 말 터였다.

한동안 고민한 태경이 예준에게 다가갔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담요를 거두었다.

“잠깐 실례 좀 할게요.”

태경은 식은땀에 푹 절은 예준의 목덜미에 코끝을 댔다. 날렵한 콧날이 젖은 피부 위를 스쳤다. 보드라운 솜털이 바짝 일어섰다. 짝짓기 상대를 찾는 짐승처럼 깊이 향취를 들이켜자 예준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고 입 안에 군침이 고였다.

짧은 순간, 면역제가 무색할 만큼 부드러운 페로몬을 느낀 태경이 몸을 일으켰다. 한계에 다다른 예준의 입술은 볼썽사납게 젖어 있었다.

“알겠어.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까.”

태경이 엄지로 예준의 입술을 빠르게 훔쳤다.

“제발 나 보면서 침 좀 그만 흘려요.”

*

쉬지 않고 패악을 부리는 사촌을 제압하기 위해 태경은 비서와 경호원을 불러들였다. 합의 절차는 무사히 마무리되었으나, 도하의 번들번들한 두 눈은 좀처럼 사그라질 기색이 없어 보였다. 오메가를 향한 시선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집요함이 느껴졌다. 그건 이제껏 도하가 벌인 많고 많은 사고 중 유일하게 의외인 점이었다.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열여덟 풋내기가 오메가를 굴복시키는 일을 제대로 즐기기 시작했다. 오늘 만난 오메가가 특별하다면 이후 귀찮은 일이 생길 소지가 다분했다.

“당분간 감시 잘하는 게 좋겠어요.”

태경의 말에 조 비서는 눈빛으로 답했다. 녀석을 무력으로 세단에 구겨 넣을 즈음엔 쉴 새 없이 바닥을 때리던 비도 그쳤다. 그런 도하가 안중에도 없는 건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건지, 예준의 시선은 줄곧 태경에게 향해 있었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경찰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축축한 주차장을 가로지르자 밤공기가 제법 서늘하게 느껴졌다. 태경은 SUV 차량의 조수석을 먼저 열었다.

“타요.”

머리를 부딪치기라도 할까 봐 손으로 가림막을 세워 주었다. 예준은 그런 배려가 무척 생소하다는 듯 눈치를 보았다.

이윽고 한산한 새벽의 도로를 달렸다. 말이 사라지고 공기가 가라앉자 까드득 이를 깨무는 소리와 떨림이 유난히 신경을 긁었다. 태경이 먼저 정적을 깼다.

“어떻게 하면 좀 편하겠어요.”

동고동락한 직원들과 실컷 마시며 회포를 푸는 것과 오메가와의 화끈한 섹스 중 무엇이 더 스트레스 해소에 적합한지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태경은 예준의 매끈한 옆얼굴을 감상하다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쉽게 대답하지 못하던 예준이 핸들 위에 놓인 태경의 손을 쥐었다.

“잡아도 될까요?”

해 놓고 뒤늦게 묻는 말이었지만 조심성이 느껴졌다. 태경은 선뜻 오른손을 내어 주었다. 예준은 그 손을 자신의 담요 가까이 당겼다.

“도착할 때까지 이상한 짓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이상한 짓 안 해요.”

손이 오메가의 고간에 닿는 게 두려운 건 아니었다. 태경은 실없는 말에 자조하듯 웃고 조금 더 강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예준은 제 손을 허벅지 위에만 얌전히 두고 있었다. 주물럭거렸다가, 깍지를 꼈다가, 꼭 쥐기도 했지만 그 정도면 상당한 인내력이었다.

주택가의 차고로 들어간 차는 입구가 닫히는 동시에 멈추었다. 예준은 제 방보다 커다란 차고를, 주택과 이어지는 통유리의 통로를 신기하다는 듯 관찰했다. 새벽이었으나 정원 곳곳을 밝힌 조명 덕분에 완벽히 관리된 조경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여기가 집 맞아요?”

“집 아니면 어딜 것 같은데.”

예준은 그렇게 멋진 주택을 본 적이 없었다. 정교한 심미안을 통해 지어진 곳이라는 것을 문외한인 저도 눈치챌 만큼 아름다웠다. 의식이 혼몽한 와중에도 예준은 고급스러운 바닥재를 밟는 자신의 더러운 운동화가 거슬렸다.

“어디 이상한 데 데려가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 속을 알 리 없는 태경은 그저 느긋이 미소 지을 뿐이었다.

필요할 때면 일회성 만남만 갖는 편인 태경이었기에, 오메가를 집에 들이는 일이 낯설진 않았다. 남성 오메가는 처음이라 해도 별다른 것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집으로 들어서서 내부를 환히 밝혔다. 전신의 감각이 예민한 예준은 갑작스레 밝아진 조도에 두 눈을 깜박였다.

“우선 씻고 상처부터 치료합시다.”

태경이 재킷을 벗으며 말했다. 격 없이 아래부터 맞추고 보는 섹스는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냥 해도 괜찮아요.”

예준이 담요를 걷어 내며 말했다. 늦가을임에도 얇은 티셔츠 한 장이 다였다. 그마저도 온통 밟힌 자국이 가득했고 군데군데 핏자국이 배어 있었다.

“씻고 기다려요.”

태경이 뜻을 굽히지 않자 예준이 습관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는 반항 없이 욕실로 향했다.

갈아입으라고 문 앞에 놓아둔 옷을 예준은 젖은 발로 밟고 나왔다. 샤워를 끝내고 주방에서 목을 축이던 태경이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컵을 내려놓은 그가 알몸으로 두리번거리는 예준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과정 따위에는 관심이 없을 터였다. 당장 박히고 싶어 안달일 텐데 너무 제 페이스대로 했나 싶어 조심스레 예준의 허리를 쥐었다.

“아직 젖었는데.”

“…괜찮아요.”

단순한 접촉만으로도 손끝을 타고 소름이 일었다. 예상했듯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 몸이었다. 꼿꼿이 발기한 성기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핑크빛이 감도는 모양새를 보면 오히려 귀여운 쪽에 가까웠다.

오메가로 발현하면 남자든 여자든 근육이 퇴화하고 몸 선 또한 부드럽게 변한다. 머리카락과 솜털을 제외한 체모가 모두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다. 제 앞에 선 오메가처럼.

“이쪽이에요.”

태경이 견딜 수 있는 이유도 사실은 면역제 덕분이었다. 면역제가 없었다면 러트일 때 특히 폭력적인 자기 모습을 누구보다 명확히 인지하고 사는 그였다. 제 인내심이 가짜라는 것을 알기에, 침실로 향하는 동안 예준이 자꾸 턱에 입 맞추려 시도했어도 불쾌하지 않았다.

“엎드릴까요?”

예준이 침대를 보자마자 던진 말에 태경은 대강 짐작했다. 그가 잠자리에서 어떤 타입인지, 어떤 섹스를 해 왔는지. 그렇다 하더라도 상처에서 새어 나온 피가 시트에 묻는 건 거슬렸다.

“치료부터 하고.”

세심하게 살피자 갈비뼈 부근과 손목, 무릎, 발등에 찰과상이 있었다. 군데군데 멍이 들기도 했으나 예준의 말처럼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

예준을 침대 위에 눕게 한 태경이 시트를 당겨 배와 허벅지를 가렸다. 치료하는 내내 흥분한 성기를 의식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키스해도 돼요?”

차라리 악의가 있다면 어땠을까 싶을 만큼 천연덕스러운 질문이었다. 무릎걸음으로 다가간 태경이 반쯤 포기한 채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 말란다고 안 할 거 아니잖아.”

예준의 두 눈이 빛났다. 허락을 얻어낸 탓인지 알코올 솜을 갈비뼈 부근에 대자마자 입술이 뺨에 닿았다. 경직된 자신의 뒷덜미를 주무르고 잘근잘근 턱을 깨물기도 했다. 도대체 이 강아지 같은 애무는 뭘까 생각하는 동안 아래가 점차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면역제가 약효를 다해 가는지 페로몬의 농도도 짙어지고 있었다.

“아파?”

“하아…. 하고 싶어요.”

동문서답이었다. 자꾸만 다리를 벌리려 하기에 무릎으로 눌러 막아야 했다.

“조금만 참아요.“

조용히 읊조린 태경이 예준의 뺨을 쓰다듬었다. 잔뜩 달아올라 발간 눈 주변이 흥분의 정도를 짐작케 했다. 달래지 않으면 울 것 같아서 태경은 굳이 입술을 축였다. 배와 무릎, 정강이를 지나 발등까지 치료하며, 살결 위에 입술만 눌렀을 뿐인데 자지러질 듯한 떨림이 전해졌다.

태경이 더는 피가 새어 나오지 않는 상처를 확인한 뒤 티셔츠를 벗었다. 적당히 그을린 피부, 선명한 음영의 근육이 깊게 팼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가볍게 예준 위로 올라탄 그가 말했다.

“분위기 타고 즐기는 섹스는 별로 취향이 아닌가 봐.”

예준은 태경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은 시트를 걷어 냈다.

“그런 거 해 본 적 없어요. 그리고 지금은… 발정기잖아요.”

뜨거운 살과 살이 오롯이 맞닿자 태경의 자제력도 바닥을 쳤다. 여기저기 물리고 뜯긴 주제에 만지는 곳마다 미끄러지게 부드러웠다. 오메가의 살결이 유난히 포근하다는 것을, 알파만이 더 직접적으로 그 포근함을 느낀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직하게 성감이 차올랐다.

“빨리….”

벌써 매달리는 오메가를 앞에 두고 페로몬을 풀 수는 없었다.

“천천히.”

상반되는 대답을 내놓았으나 예준은 곧이듣지 않았다.

이윽고 부딪친 입술을 다급히 비비는 힘이 느껴졌다. 어설픈 키스에 태경이 예준의 턱 끝을 잡아 벌렸다.

“흐읍….”

리드를 따르게 만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공들인 후에야 과하지 않게 입 안으로 들어오는 혀를 부드럽게 핥았다. 살결에서 미치게 좋은 향이 났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살냄새였다. 발기한 제 성기를 더듬는 손길이 이상하리만큼 생경하기도 했다. 바지 위로 크기와 형태를 가늠하듯 오가는 손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왜 저보고 흥분 안 하세요?”

“이게 어떻게, 흥분을 안 한 거겠어요.”

하체에 감긴 바지가 답답하게 느껴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예준은 술에 취한 사람처럼 몽롱한 눈빛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니, 다른 알파들은 저 보자마자….”

“보자마자, 어떻게 했는데?”

태경이 예준의 턱을 비틀어 귓가에 입 맞추었다.

“삽입하고…. 임신시키겠다고 협박하고….”

적잖이 밑바닥 인생이라 짐작하긴 했으나, 알파 대부분이 오메가를 그런 식으로 다룬다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좆같은 새끼들이네, 그거.”

이 정도로 달콤한 페로몬이라면, 고가의 면역제를 구할 수 없는 열성 알파들에겐 치명적일 것이 당연했다. 인간답기 위해 약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는 알파든 오메가든 다를 바 없었다. 알파들 또한 그들이 느끼는 우월감과 별개로 저주받은 존재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해 주세요.”

예준이 속눈썹을 떨며 애원했다. 태경은 자신의 바지를 끌어 내렸다. 성기가 노골적으로 비벼지자 예준의 입술에서 달뜬 신음이 흘렀다.

“흐읏…. 빨리, 넣고… 싸 주세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예준의 눈엔 흥분을 뛰어넘는 수치심이 서려 있었다.

“꼭 안 좋아도 돼요…. 그냥 정액만 있으면….”

우성 알파의 정액만 몸에 품는다면 이번 히트 사이클 정도는 무난히 넘길 것이다. 어렵지 않게 의도를 간파한 태경이 바지를 벗어 침대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는 예준의 마른 허리를 움켜쥐고 이미 팽팽히 도드라진 유두를 빨아 당겼다.

“이런 건 별로인가 봐요.”

“으읏….”

“이런 것도?”

갈비뼈에 입을 맞추고 폭 팬 굴곡을 따라 배꼽까지 입술을 비볐다. 밝지 않은 조명 아래에서도 전신의 솜털이 바짝 일어선 게 보였다. 아연실색하며 숨을 뱉어 내는 순간 들썩이는 몸은 아름다웠다. 또한, 반박의 여지 없이 남자다웠다.

“…좋아요.”

“그럴 줄 알았어.”

그것이 자신을 차갑게 만들기는커녕 달아오르게 한다는 사실에 태경은 당황하지 않았다. 상대가 어떤 형질이든 어떤 성별이든 예준을 알고 나면 치솟는 호기심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관계에 앞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었다.

“말했듯이, 대가는 없는 겁니다.”

태경이 상체를 일으켜 예준의 양 무릎을 쥐었다. 벌리려고 안달이던 때가 무색하게도 간격을 좁히려 하기에 저지했다. 마침, 고갤 끄덕이던 예준에게서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그쪽이 부탁해서도 아니고. 내 쪽에서 합의가 필요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태경은 부러 가볍게 덧붙였다.

“그냥 순수하게 끌린 걸로 해요.”

*

축축이 젖었음에도 좀처럼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예준의 좁은 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은 태경이 심상치 않은 조임에 입술을 짓씹었다.

알파임에도 남자와의 관계는 처음이었다. 분홍빛으로 오물대는 구멍을 보자 의외로 쉽게 욕구가 동했음에도 섣불리 삽입하기에는 무리였다. 파고들면 입구가 툭 뜯어질 듯 연약하게 느껴진다는 게 문제였다.

정신없이 태경의 성기를 만지작대는 예준은 그러한 사정에 통 관심이 없었다. 커서 좋다는 말과 무섭다는 말을 반복하는데, 그토록 좁은 구멍으로는 애초에 성기를 받아 내기도 힘들 터였다. 이제껏 애무에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면 벌써 상처가 생겼을 게 뻔했다.

“아파요?”

“…읏. 괜찮아요.”

깨문 입술을 놓자마자 예준이 혀를 내어 핥아 주었다. 부드러운 감촉에 긴장을 푼 태경이 손가락을 두 개로 늘리고 배 쪽으로 굽혀 문질렀다. 예준의 뺨이 눈에 띄게 달아올랐다.

“좋아… 좋아요….”

귀엽게 웃기까지 했지만, 예준의 몸은 여전히 쉽게 열리지 않았다. 태경이 예준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며 물었다.

“구멍이 너무 작은데. 알고 있어요?”

“…네.”

“어떻게 해야 풀려?”

“…페로몬.”

태경은 자신의 페로몬을 감당하지 못하는 오메가들 때문에 그것 없이 하는 관계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페로몬의 도움 없인 불가능해 보였다.

“우성 페로몬 느껴 본 적 있어요?”

“…아뇨.”

흥분에 못 이겨 사정부터 하고 보는 경우는 양반이었다. 기절까지 해 버리면 섹스를 이어 가긴 무리였다. 조절해서 푼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오메가가 첫 순간을 버티지 못했다.

“의식 잃으면….”

“해도 돼요.”

“뭐?”

“기절해도 상관없어…. 계속해도 돼요. 그냥 안에 넣고 싸 주세요.”

시체처럼 축 늘어진 몸과 어색하게 섹스할 생각은 없었다. 제대로 듣긴 한 건지, 우선 보채고 보는 예준을 보며 태경이 난감한 듯 웃었다.

그런 제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예준은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기대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목구비를 샅샅이 뜯어보는 집중력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기절하면 안 해.”

“…거짓말.”

태경은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예준의 허리를 만지작거렸다. 투박한 곳 없이 매끈한 몸을 시선으로 훑자 갈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잠시간 고민한 그가 예준의 목 아래로 팔을 넣어 안았다. 일종의 예고였다.

“기절할 것 같으면 말해요.”

태경은 예준을 꽉 끌어안은 채 최대한 서서히 문을 열었다. 산뜻했던 공기가 무거워졌다. 느리게 흘러나오는 페로몬만으로 순식간에 예준의 두 눈이 커졌다.

“…아아!”

동시에 교성이 터져 나왔다. 태경이 그 틈을 타 밑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크게 휘젓자 확연히 열린 내부가 느껴졌다. 기색을 살피기 위해 눈을 맞추었다. 예준은 멍한 얼굴로 눈물만 쏟아내고 있었다.

“으응…, 읏.”

말갛고 순진한 외모가 취향이었나, 되짚을 여유가 없었다. 고통에 일그러지는 큰 눈이, 콧등에 자리한 옅은 주근깨가 이상하리만큼 예뻤다. 태경은 전신이 맞붙도록 예준을 결박한 채 내내 입구 근처를 맴돌던 귀두를 성급히 집어넣었다.

“읍…, 읏….”

연약한 내부를 꿰뚫고 들어가자 단숨에 쾌감이 일었다. 아무리 발정기인 오메가라 할지라도, 이토록 부드러우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성기의 감각이 전이된 것처럼 온몸이 간지럽게 달아올랐다. 깊이가 깊어질수록 아래에 깔린 오메가의 떨림도 커졌다.

“못… 못 참겠어요….”

“하아…, 뭘…?”

“아파요….”

오일을 바른 듯 미끄러웠다. 안을 가득 채운 애액 덕분에 좁은 내벽이 꾸역꾸역 성기를 삼켰다. 태경은 페로몬을 더 풀지 않고 예준의 몸속을 드나들었다. 내장이 성기를 감싸고 조이는 감각이 선명했다. 자신의 단단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읏…, 흑…. 너무 커서… 아파요….”

“페로몬은?”

“좋아요….”

“좋다는 거야, 아프다는 거야.”

“좋은데… 아파요….”

울먹이면서도 의사 표현은 제법 또렷했다. 버거워 보이긴 했으나 이 정도면 애초에 타고난 몸인 게 분명했다. 태경은 미묘한 승리욕에 사로잡혀 제 골반에 감긴 다리를 더 강하게 붙잡아 당겼다.

쉽게 끌려온 다리가 골반을 세게 조였다. 젖혀지는 목덜미에 투명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미끈한 목을 혀로 핥아 올린 태경이 물었다.

“더 해도 돼?”

“뭘요…?”

“너랑 더 하고 싶어.”

“읏, 흐으….”

“페로몬 다 풀고, 제대로.”

태경 또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러트가 아닌데도 이토록 강하게 성욕을 느끼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통념상 알파에게 오메가는 어차피 장난감일 뿐이었다. 남김없이 먹어 치우더라도 당하는 상대조차 반항 따윈 하지 않을 터였다.

“좋아요.”

반항이 뭔가. 히트 사이클을 맞이한 오메가는 오히려 자신의 압박을 반기고 있었다.

“좋아요….”

유혹하듯, 페로몬을 풀었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흥분을 감당하지 못한 몸이 불쑥 튀어 올랐다. 상처가 벌어져 아플 텐데도 경련을 멈추지 못했다.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해결할 방법은 더 노골적인 삽입뿐이었다.

태경이 예준의 몸을 가볍게 뒤집었다. 무릎으로 허벅지 사이를 벌리고 하얀 볼기를 움켜쥐었다. 바깥으로 당기는 힘에 녹진하게 풀린 구멍이 드러났다. 그 위로, 폭 파인 허리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등줄기. 날개뼈가 불거져 앙상한 뒤태는 누구도 밟지 않은 눈처럼 새하얬다.

“하아…, 하아….”

예준은 헐떡이며 삽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경은 차지게 감기는 살덩이를 누르며 예준의 몸 위로 올라앉았다.

붉은빛을 띠는 구멍이 어떻게 제 성기를 삼키는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미끄러져 들어갈수록 팽팽하게 늘어나는 입구와 떨리는 몸체를 확인하자 아랫배로 피가 몰렸다. 더할 나위 없이 부푼 성기를 음모가 닿을 때까지 찔러 넣어 세게 비볐다.

“윽, 읏!”

벗어나려 뒤트는 몸 위로 전신을 맞대었다. 오메가의 페로몬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뒷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숨 쉴 타이밍을 찾고 있는 상대를 무시하고 골반을 붙잡아 퍽퍽 찧어 댔다.

헉, 헉, 몇 번이고 숨을 들이마신 예준은 시트를 움켜쥔 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하읏, 아! 아아!”

우성 알파의 페로몬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울컥, 새어 나온 애액이 구멍 주변에 맺혔다 떨어졌다. 일순, 성기를 빼낸 태경이 잔뜩 벌어져 뻐끔대는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마찰로 새빨갛게 변한 주변 피부에 자신의 손자국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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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들어 봐요.”

주문하자, 꼬리뼈가 솟고 무릎이 더 벌어졌다. 덩달아 잘록해진 허리를 붙잡아 끝까지 쑤셨다 빼길 반복했다. 굴곡을 따라 찢길 듯, 찢기지 않는 입구가 아슬아슬하게 성기를 삼키고 뱉어 냈다.

“읏, 으으….”

불만 하나 없이 자신을 받아 내는 오메가의 귀는 새빨갛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물 맺힌, 맑은 눈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아직도 아파요?”

물으며 다시 돌려 눕히자 귀만큼이나 새빨간 얼굴이 보였다. 예준은 방금 당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듯 얼빠진 눈빛을 한 채였다. 유혹하려는 몸짓보다 그런 서투름에 더 꼴리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아파요….”

“…그럼 이건?”

태경이 성기를 붙잡아 예준의 회음부에 비볐다. 발기한 성기와 알맞은 크기의 고환, 깊은 골에 귀두를 부드럽게 짓이겼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예준이 결국 시선을 피했다. 다시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상체를 맞붙였다. 태경이 턱을 붙잡자 예준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촉촉한 눈가를 시선으로 더듬었다. 천천히 입술을 깨물었다. 맞닿은 살덩이를 거칠게 비비며 속삭이듯 물었다.

“임신시키겠다고 협박했다고.”

아래를 범하는 성기 탓에 예준이 아득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은 알겠는데….”

접합부 안으로 손가락이 더해졌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다칠 걸 알면서도 구멍을 더 헤벌리는 자신과 예준이 말한 알파들 사이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었다. 태경 또한 쾌감이 증폭할수록 인격을 잃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임신한 적 있어요?”

다시 말해 누군가의 소유가 된 적이 있냐는 의미였다. 말간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예준이 움찔 굳었지만 그런 취급이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뇨….”

미약하게 새어 나온 목소리를 삼키듯 입술을 물었다. 퉁퉁 붓도록 빨고 입 안 점막 구석구석을 핥았다. 삽입만으로 버거운 듯한 예준을 무시한 채 깊게 혀를 밀어 넣었다. 밀어냈다가 달라붙기를 반복하는 걸 보면 적잖이 수치스러운 모양이었다.

“아아, 하아…. 읏!”

태경은 예준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긴 목에 잇자국을 내고 싶었다. 러트가 아니어서 다행인가. 수없이 절정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임신의 가능성은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쪽은 오히려 자신일지도 모른다.

“하아….”

“흐응, 읏…!”

찰박이며 마찰하던 허벅지를 밀어 올려 두 다리를 어깨에 걸었다. 정강이에 입 맞추다 상체를 낮추자 자연히 예준의 엉덩이가 위로 들렸다. 태경이 성기를 위에서 아래로 퍽, 찍어 눌렀다.

“아아!”

고통이 일 때마다 미친 듯 조여 댄다. 경련하듯 좁아지는 내벽을 느끼자 태경 또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하읏! 아, 아!”

페로몬을 한계치까지 푼 태경의 얼굴이 붉어졌다. 심장이 폭발적으로 뛰고, 온통 미끌미끌한 어딘가로 푹 빠져 버린 기분이었다.

퍽…, 퍽…!

쑤셔 넣을 때마다 뱃가죽이 들릴 만큼 삽입이 깊은데도 예준은 태경을 밀어내지 않았다. 오금을 붙잡고 울며 신음할 뿐이었다. 성기가 빠져나가면 울컥 애액을 뱉어 내고, 다시 들어오면 물듯이 세게 조였다. 페로몬 때문이었다. 몸이 생전 배우지도 못한 난잡한 짓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아….”

“읍, 읏! 아…!”

한참을 마구 쑤셔 댄 태경의 몸에서 질척한 땀이 배어 나왔다. 전신의 근육이 팽창하고 빠르게 피가 돌았다.

그가 하얀 몸을 일으켜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갈증에 허덕이던 예준은 단번에 태경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교접한 아래가 화끈거렸다. 세게 부딪친 허벅지 안쪽이 아팠다. 어디까지 닿았는지 모를 성기 때문에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으응…, 읏…. 하읏…. 조금만 천천히….”

“왜 자꾸 울어요.”

“그… 그냥 버릇…. 읏!”

태경이 머쓱해하는 예준과 눈을 맞추었다. 달아오른 눈두덩과 젖은 속눈썹에 색욕이 치솟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조심스레 예준의 눈가를 더듬었다. 손길은 곧 거칠게 변했다. 눈가를 짓이기는 힘에 예준마저 부담스러워할 즈음 혀끝을 댔다. 상대가 눈을 감지 않았다면 눈동자를 핥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뺨과 턱에 입을 맞추고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다시 바르르 떨리는 몸이 느껴졌다. 착실하게 아래를 조인 예준이 약간의 호기심이 깃든 눈으로 태경을 보았다.

그러고는 불쑥 시선을 피해 버린다. 목덜미에 남은 자신의 흔적이 아니더라도 이미 온몸이 붉었다. 시간이 갈수록 짙어지는 오메가의 페로몬에 태경 또한 당황하고 있었다.

마주한 채 뼈가 불거진 마른 몸을 눈으로 훑었다. 톡 튀어나온 목젖과 곧게 뻗은 쇄골, 유두만 솟은 매끈한 가슴. 약간의 근육이 자리한 배와 여전히 꼿꼿한 성기.

“…….”

거친 삽입 없이도 사정감이 몰렸다. 태경이 골반을 퍽 쳐올리자 뱃가죽 위로 귀두 형태가 도드라졌다.

“읏, 아파요….”

태경의 시선을 따라 그 모습을 본 예준의 두 눈이 떨렸다.

“이러니까… 흐윽, 아프잖아요….”

태경은 대답하는 대신 예준을 밀어 눕혔다. 유연한 허리 덕분에 등은 시트에 닿고 엉덩이는 아직 태경의 허벅지 위에 있었다. 예준의 골반을 들어 올린 그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위아래로 흔들거나 크게 둥글렸다. 낯선 자세에 긴장한 탓인지 구멍이 여지없이 성기를 물어 댔다.

“하아…, 아읏….”

찌걱찌걱, 내벽이 달라붙어 소음이 흘러나왔다. 얼마간 느리게 삽입한 태경이 쾌감에 눈을 감은 예준을 보았다. 조명 아래, 유려하게 조였다 느슨해지는 몸을 감상하다가 다리를 활짝 벌리도록 종용했다.

“후우….”

“흡, 읏!”

더는 사정을 참을 수 없었다. 부쩍 거칠어진 숨소리와 전신의 열감에 예준이 바짝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예준의 머리카락을 흩뜨린 그가 무너지듯 몸을 겹쳤다.

쪼옥, 쪼옥…. 낯간지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태경은 생경한 기분에 휩싸인 채 예준의 뺨에 입술을 묻었다. 상처를 낼 듯 몰아붙이긴 했지만, 살결 위로 닿은 것은 오로지 도톰한 입술뿐이었다.

“하아…. 응….”

태경이 미끄러지듯 예준의 손목을 옥죄었다. 두 손을 모아 머리 위로 결박하곤 내뱉으려던 말은 모두 삼켰다.

예준은 두 팔과 다리를 모두 벌린 채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관찰하고 탐닉했다. 모두 씹어 삼킬 듯 바라보자, 예준의 두 눈에 일순 두려움이 스쳤다. 곧, 목덜미에 고개를 묻어 버리자 보이는 것이 없어졌다. 태경은 예준을 완전히 압박한 채 사납게 하체를 움직였다. 찰박이던 마찰음이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으읏, 으! 읍!”

“하아….”

“읏, 하앗, 아! …응!”

인체의 연약함을 망각한 그가 난폭하게 구멍을 쑤시고 헤집었다. 상식적이지 못한 크기의 성기가 내벽을 스치며 상처를 냈다. 발버둥 치면 무력으로 누르고 삽입했다. 더운 숨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잔뜩 밀려 올라간 예준의 정수리가 침대 헤드에 닿았다.

“흑, 읏! 아, 아프…. 으응!”

예준은 고통스러울수록 더 태경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자신을 해하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건 모순일지 모르나, 그만한 대가가 돌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무와 삽입을 거쳐 페로몬까지 흡수한 몸은 이미 부드럽게 풀렸고 알파의 성기를 받기에 충분했다.

“흐응!”

고통을 뛰어넘는 쾌감이었다. 눈앞이 흐려졌으나 감각은 다른 때와 비교할 수 없이 예민하게 날뛰었다.

“흡, 흐으!”

짐승 같은 허릿짓이었다. 부드럽게 자신을 어루만지던 남자는 사라지고 욕정에 눈먼 알파만 남은 듯했다. 혼몽한 의식 속, 어렴풋한 예준의 추정처럼 태경은 눈이 멀어 있었다. 저답지 않은 행위라는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 …흐읏!”

“하아!”

정신없이 몰아붙이던 태경이 순간 거친 신음을 쏟았다. 내장에 깊게 박힌 성기가 꿈틀대며 농도 짙은 정액을 뱉어 냈다. 삽입을 멈추지 않고 더 세게 몰아붙였다. 고통인지 쾌감인지 모를 신음을 삼키며 예준이 등에 손톱을 박아 넣는 것이 느껴졌다.

“으, 으읏….”

귓가에 정제되지 않은 숨소리가 쏟아졌다. 약간의 울먹임과 함께 예준이 허벅지 안쪽을 태경의 골반에 세게 비볐다. 어쩔 줄 몰라 온몸을 비비 꼬는 중이었다.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달라붙는 몸이 여전히 뜨겁고 아찔했다.

“하아, 아아….”

퍽, 쑤시며 태경은 사정한 점액을 예준의 몸속 깊이 밀어 넣었다. 몸과 몸 사이에 갇힌 열기가 버거웠다. 정액의 양이 상당했다. 뒤늦게 성기를 빼냈음에도 미끈한 액이 예준의 꼬리뼈를 따라 흘렀다.

태경이 상체를 세우자 예준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다시….”

“…….”

“다시 넣어 주세요….”

한 번으로 해소될 성욕이 아니었다. 저도 한 번 하고 끝낼 생각은 아니었으나 예준의 애원에 마음이 동했다. 성욕 때문이든 정액을 얻기 위함이든 의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태경은 당기는 대로 순순히 끌려가는 대신, 탁자 서랍으로 손을 뻗었다.

“얌전히 기다려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후희를 즐겼다. 사정 후에도 성기는 여전히 지나칠 정도로 단단했다. 옅게 피가 맺힌 구멍 속으로 쑥 넣었다 빼내자 입구가 탄력 있게 조여들었다.

“…….”

예준은 발끝을 오므렸다 세우긴 했으나 재촉하지 않았다. 근육이 깊게 갈라진 허벅지에 손을 대고 조용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낯보다도 더 하얀 음부를 감상하며 태경은 연기를 내뱉었다. 구미가 당긴다는 듯, 젖어 드는 상대의 입술이 구멍처럼 붉었다.

태경은 절반만 태운 담배를 비벼 꺼 버렸다. 다시 결박해 삽입하려는데 한계에 다다른 예준이 태경의 상체를 밀어 눕혔다.

역으로 아래에 깔린 태경이 미간을 찌푸렸다. 주문 없이도 그의 몸 위로 올라온 예준은 덜컥 성기부터 붙잡아 입구에 댔다.

“넣고 싶어요….”

갇혀 있던 정액이 흘러나와 태경의 허벅지 근처로 뚝뚝 떨어졌다. 예준은 의지와 달리 성기를 선뜻 몸속으로 집어넣지 못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봐요.”

태경이 입꼬리를 올리며 예준의 엉덩이를 단단히 붙잡았다. 제 가슴에 두 손을 댄 채 천천히 앉는 예준을 도와주었다. 성기를 끝까지 삼킨 예준은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아아….”

그것도 잠시, 허리를 주물러 주자 금세 녹진하게 풀려 골반을 흔들기 시작했다.

“하으, 으응….”

아래에서 올려다보아도 대단히 귀여운 얼굴이었다. 태경은 저런 생김새가 알파의 성미를 긁는다는 것을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이해했다. 보통의 알파라면 어떻게든 굴복시키려고 안달을 내겠으나 태경은 그런 일 따위에 흥미가 없었다.

단지, 흔들고 싶은 욕구는 있었다. 말간 얼굴 뒤에 숨어 있을 사연이 궁금했고 산뜻한 기억으로만 남고 싶지 않은 치기도 들었다. 상념에 잠긴 사이, 저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관능적이었다. 확실히 다른 누군가와 비교할 수 없이 예쁜 외모였다.

“하아…. 좋아….”

예준을 응시하던 태경이 결국 상체를 일으켰다. 마른 몸을 감싸 안으며 이마를 맞대고 코끝을 비볐다. 닿을 듯 말 듯한 태경의 입술을 예준은 홀린 듯 들여다보았다.

“예쁘다는 말 많이 듣죠.”

잠긴 목소리로 내놓은 말을 예준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고갤 끄덕이자 태경이 부드럽게 입 맞추었다. 애무하듯 입술로 입술을 더듬고 뭉근하게 혀를 얽었다. 얽히고설키는 옅은 숨이 가까스로 눌러 두었던 욕구에 불을 붙였다.

“그러는 그쪽은….”

잠깐의 공백. 여전히 허리를 움직이며 심호흡한 예준이 얼굴을 붉혔다.

“읏. 잘생겼다는 말 많이 듣지 않아요?”

어딘가 비딱한 질문에 태경은 가까스로 미소 지었다.

“그거야.”

그가 눈가를 찡그리며 한쪽 팔로 예준의 허리를 휘감았다. 불쑥 몸이 위로 들린 탓에 예준이 얼른 태경의 목을 껴안았다. 뻑뻑하게 들어찬 성기만으로도 불편한 와중, 몸이 크게 흔들렸다. 다시 위로 올라탄 태경이 예준의 턱에 입술을 비볐다.

“지겹게 듣는 말이지.”

예준이 옅게 웃었다. 휘어진 입술을 한참 물고 빨다가 눈을 맞추었다. 태경은 땀에 달라붙은 예준의 머리카락을 떼어 주며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눈으로 훑었다.

곧은 시선에 예준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고동을 감추듯 빠르게 허리를 흔들자 곧 머릿속을 비울 만큼 거센 쾌감이 몰아쳤다.

“으응…, 으…!”

겨우 신음을 내뱉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태경은 그런 예준을 나무라지 않았다. 상체를 낮춰 예준의 성기가 제 복근에 닿도록 했을 뿐이다. 뭉근히 비벼 자극을 주자 예준의 신음이 높아졌다.

“하읏, 으응!”

태경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그렇기에 부드러운 뺨에 입술을 묻은 채 예준의 성기를 그러쥐었다. 예준이 골반을 강하게 흔들수록 손을 더 노골적으로 조였다. 성기와 구멍을 동시에 자극당한 예준은 숨도 쉬지 못한 채 울음 섞인 교성을 내뱉었다.

“응, 흐윽, 읏…!”

“후우….”

“하아! 아아!”

“하아, 하….”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최소한의 이성마저 사라진, 히트 사이클을 맞은, 우성 페로몬에 잠식된 오메가의 민낯을 태경은 똑똑히 지켜보았다. 소년처럼 순수했던 얼굴은 사라지고 정욕에 지배당한 동물만이 제 아래 깔린 채였다. 자신 또한 체면이나 신념 따위를 지킬 이유가 없었다.

“아앗! 아아!”

골반이 부러져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강하게 다리를 벌렸다. 사납게 허리를 움직여 좁은 구멍에 단단한 성기를 박아 넣었다. 애액과 정액, 피로 얼룩진 더러운 공간을 가득 채우면서도 죄책감은 느끼지 않았다. 그런 게 오메가와 알파였다. 한 꺼풀 벗겨 내고 나면 어차피 남는 것은 성욕밖에 없는 짐승 같은 존재들.

“으응! 으으, 읏! 하아, 하…!”

붉게 생기가 도는 몸을 끌어안고 빠르게 성기를 자극했다. 힘껏 조여 쳐올리자 흔들던 허리를 멈춘 예준이 재빨리 목을 감고 매달렸다. 폐부가 부풀고 온몸이 들썩였다. 단단한 것을 아플 정도로 비비고 흔들었다. 얼마 버티지 못한 예준이 태경의 어깨를 세게 물었다.

“아앗!”

그 타이밍에 맞추어 정액이 쏟아졌다. 이미 물로 흠뻑 젖었던 귀두가 하얀 점액질로 뒤덮였다. 말랑말랑한 예준의 귀를 애무하며, 태경은 남김없이 정액을 짜냈다.

“하아, 하아….”

음란한 냄새와 함께 페로몬이 짙어졌다. 태경은 제 가슴과 배를 흠뻑 더럽힌 정액 때문에 불쾌하기는커녕 충만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사정 후, 숨을 고르던 예준에게 그 모습을 보게 했다. 고조되었던 사정감이 식자 비로소 얌전해진 예준이 얼굴을 가리려고 했다. 그 손을 굳이 붙잡은 태경이 이것저것 만져 미끌미끌해진 손끝을 쪽 빨아들였다. 입 안에 넣고 굴리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두 번째 사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파고드는 성기를 받기만 하던 예준이 조심스레 상체를 일으켰다. 폭, 소리와 함께 성기가 빠져나갔다. 제 앞에 엎드려 번들번들한 성기를 쥐는 오메가를, 태경은 이번엔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가 예준의 벌어진 아랫입술을 더듬었다.

“입으로 말고.”

툭, 밀어내는 힘에 쉽게도 시트 위로 처박힌다.

“여기로 해 줘요.”

두 다리를 강제로 벌려 구멍 근처를 핥았다. 도드라진 힘줄에 입술을 비비고 보드라운 살결을 혀로 핥았다. 오물거리는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휘젓자, 내내 성기가 들어찼던 탓에 헐거워진 내부가 느껴졌다.

“…구멍으로?”

묻는 말에 태경은 삽입으로 답했다. 사정 직전의, 흉흉한 크기의 성기가 꿈틀대며 연약한 구멍을 파고들었다. 엎드려 팔과 팔 사이에 예준을 가두고는 부드럽게 키스했다. 어쩔 줄 모르고 허공을 떠돌던 손이 천천히 뒷덜미에 안착했다. 오래된 연인처럼 느슨하게 키스하곤 긴장을 푸는 틈을 타 다시 속도를 올렸다.

“하아, 하읏! 응!”

“…….”

“읍! 으으읏! 아아, 아, 아읏!”

정신없이 흔들리는 몸, 마구 울부짖는 목소리,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오감을 자극했다.

“으윽, 읏! 하아으….”

“……!”

두 번째 사정은 여유 없이 벌어졌다. 태경은 복근이 바짝 조여들 정도로 강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흠뻑 싸고 물러나자 처음과 달리 예준은 즉시 다리를 오므렸다. 정액을 품기 위해 구멍에 힘을 주고 버텼다. 임신하려는 오메가처럼 절박하기까지 한 모습에 태경은 뒤늦게 속이 쓰렸다.

“벌써 지쳤어요?”

그의 손이 구멍을 덮고 있는 예준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제 시작인데.”

속삭인 태경이 구멍 깊이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힘없이 흘러 시트를 적셨다. 쉴 새 없이 흐르더라도 들어찬 것이 넘칠 정도로 해댈 생각이었다.

거듭할수록 히트 사이클의 고통과 성욕은 잦아들 것이다. 예준이 자신 덕분에 퍽 얌전해진다고 하더라도 태경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약효가 사라질수록 더한 갈증이 일었다. 오메가의 음부에 코를 박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끓어 견딜 수 없었다.

“밤새도록 싸 줄 테니까 걱정 마요.”

모로 누운 태경이 예준의 뜨거운 목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떨며 불안해하던 예준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

눈부시게 해가 비치는 오전이었다. 러닝머신 위에서 짧게 시간을 보낸 태경이 주방으로 향했다. 샤워까지 끝내고 나왔는데도 침실에선 아직 기척이 없었다.

차가운 물을 들이켜자 들끓던 열이 식었다. 새벽까지 뒹굴었으나 몸은 오히려 가뿐했다. 술자리 대신 택한 섹스는 탁월했다. 새로운 건 새로운 것대로 흥미로웠고, 서투른 건 서투른 것대로 길들이는 재미가 있던 터였다.

토요일 아침인 데다, 프로젝트 종료로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드문 주말이었다. 습관적으로 수납장을 연 태경이 그 사실을 깨닫고 멈칫했다.

꽤 괜찮은 오메가가 곁에 있는 상황이었다. 새벽부터 더 강해진 오메가의 페로몬에 성욕이 동하고 있었다. 온전히 느끼면 더 강한 쾌감을 얻는다. 단 이틀, 방종하게 즐긴다고 하더라도 이 집의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은 없었다.

유리병에 든 면역제를 눈으로 훑기만 한 그는 큰 고민 없이 수납장을 닫았다.

이제 정원은 온통 붉은빛이었다. 태경은 사철나무의 집합보다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스러운 정원을 선호했다. 통창으로 다가서서 켜켜이 쌓인 낙엽을 응시했다. 그제야 어렴풋이 침대 시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요?”

태경이 무릎을 굽혀 예준 가까이에 앉았다. 배 속에 정액이 든 덕분에 숨소리가 지난밤보다 안정적이었다. 하룻밤 새 익숙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자 새빨간 이마가 보였다. 아픈가 싶어 이마를 짚어 보았지만 열은 없었다.

“왜 말이 없어.”

마지못해 드러나는 두 눈엔 아직 물기가 어려 있었다. 고요히 가라앉은 눈동자는 간밤 제게 매달렸던 오메가를 연상하기 힘들 만큼 차분해 보였다.

태경은 대수롭지 않게 시트를 걷어냈다.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있던 예준이 목덜미를 긁었다. 열꽃처럼 울긋불긋한 키스 마크가 드러나자 태경의 눈이 흔들렸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한 줄은 몰랐는데.”

“안 심했어요.”

예준은 잔뜩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피로한 듯 눈가를 비비고 다시 시트에 기대는 그를 태경은 한동안 바라보았다.

“배 안 고파요?”

“고픈데, 너무 피곤해서요.”

페로몬이 괴로운지 예준은 코까지 시트 위에 파묻어 버렸다. 태경은 하얗게 드러난 어깨와 말린 날개뼈를 더듬다가 예준의 다리 사이를 헤집듯 갈라놓았다. 아직 축축하고 끈적한 흔적이 가득했다.

“…….”

그가 작은 몸을 동의 없이 끌어안았다. 엉망인 목에 입술을 묻고 깊게 체취를 들이켰다. 달콤한 페로몬을 느끼며 상처 위를 잘근잘근 짓씹었다.

“아파?”

태경의 물음에 예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큰 손이 하얗게 드러난 허벅지를 꽉 틀어쥐었다. 무리하게 파고드는데도 예준은 시선을 피하기만 할 뿐, 거부하지 않았다.

*

[걔 데리고 가서 뭔 짓 했어? 쓰레기 같은 알파 새끼야]

[씨발]

[더러운 것들끼리 붙어먹으니 좋냐?]

[야 이태경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끝까지 안 오면 어떡해]

[너 때문에 술도 얼마 못 마셨다 어떻게 책임질래?]

[어쭈 불리하면 씹지 너]

태경은 어지러운 핸드폰 알림 창을 한 번에 닫아 버렸다. 오메가를 데려와 실컷 섹스했고, 덕분에 회식 자리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딱히 해명할 일은 아니라고 결론짓고 핸드폰 전원을 끈 뒤 소파 위에 던져두었다.

아침부터 두 시간이나 태경에게 시달린 예준은 정원에 나가 있었다. 도톰한 옷을 빌려주긴 했는데, 너무 큰 나머지 옷자락을 손에 쥔 채 걸었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 하나하나 만져 보고 관찰하는 예준에게서 태경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시간은 정오를 지나고 있었지만 내내 섹스밖에 한 게 없었다.

흔적이 씻길까 봐 예준은 샤워조차 극구 거부했다. 그는 얼마 후, 발간 눈두덩을 찬 손으로 식히며 안으로 들어섰다. 안절부절못하며 제게 한 번만 자 달라고 애원하던 남자는 어디로 간 건지, 내내 굳게 다물린 입술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아직도 배 안 고파요?”

“고파요.”

그마저도 태경이 물어야 한마디씩 대답이 돌아왔다. 성욕이 해소된 눈은 어딘가 공허해 보였고 생기가 없었다. 목석처럼 딱딱하고 느린 행동만 주시하는데도 페로몬은 머리가 아플 만큼 짙어져 가고 있었다.

“도자기 만져 봐도 돼요?”

“얼마든지.”

순진한 질문에 헛웃음이 흘렀다. 따지자면 도자기가 아닌 장식품을 예준은 도자기라 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끌어와 무릎 위에 앉혀 두고 애무하고 싶었다. 면역제의 힘 없이는 태경 역시 욕구를 조절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들여다봤을 때, 예준의 다리 사이가 어땠는지 알기에 되는 대로 또 박아 댈 순 없었다. 태경은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예준을 말없이 따르기만 했다. 꼭 필요한 가구가 아니면 들이지 않는 태경의 취향을 읽었는지, 넘치는 구석 없이 정갈한 내부를 보고서도 예준은 의아한 기색이 없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에요?”

“일하는 곳.”

복잡한 공간이라고는 작업실 하나뿐이었다. 1년간, 서울의 한 아트 스쿨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까지 마쳤다. 그 흔적이 아직 작업실을 채우고 있었다. 넓게 펼친 설계도나 겹겹이 세워 둔 모형 따위를 예준은 몹시 흥미로운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태경의 목덜미가 화끈 달아올랐다. 보통은 타인에게 작업실을 보여 주지 않았다. 일에 관해서는 예민하게 구는 편이었고 혼자만의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탓이기도 했다. 그는 괜히 제 목덜미를 매만지며 테이블에 놓인 명함을 집었다.

“이거 받아 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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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처리할 합의금이 남아 있었다. 간단히 집안 비서에게 맡겨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태경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명함을 받아 든 예준이 조용히 태경의 이름을 입 안에 굴렸다. 늦어도 한참 늦은 통성명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 이걸 이제야 말하네.”

“괜찮아요.”

예준은 태경이 곤란해하거나 말거나 무미건조하게 답할 뿐이었다. 명함을 바지 속에 집어넣은 예준은 흐트러진 연필이나 펜 따위를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다가 작업실을 나섰다.

175센티미터쯤 되어 보이는 키에 품에 쏙 들어오는 마른 체격. 화려하기보다 단정한 이목구비. 웃는 얼굴은 귀엽지만, 표정이 없을 땐 다소 차가운 분위기였다. 히트 사이클이 아닐 때는 이런 모습이리라 짐작했다. 경박스러운 곳 없이, 숨소리조차 옅은….

뼈가 불거진 등을 응시하며 태경은 지난밤을 상기했다. 어쩔 줄 몰라 덜덜 떠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눈길을 끌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남자라는 사실에는 누구든 이견이 없을 터였다. 태경은 자신의 상념에 구태여 무게를 더하지 않았다. 그저 하얗게 드러난 목만 집요하게 들여다봤을 뿐이다.

일상생활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처지기에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지만, 사람의 온기가 묻은 곳은 아니었다. 내내 시달려 바스러질 듯한 오메가를 태경은 그냥 둘 수 없었다.

그가 겉옷을 입은 뒤 소파 위에 늘어진 예준을 보며 말했다.

“뭐라도 좀 사 올 테니까 쉬고 있어요.”

뭘 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겠다는 말도 없었다. 태경의 말에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인 예준이 햇볕 아래서 다시 눈을 감았다. 어떤 오메가도 이토록 오랜 시간 집에 머문 적이 없었다. 곳곳에 묻은 페로몬, 욕구를 조여 오는 달콤한 향취에 곤란한 쪽은 이번엔 예준이 아닌 태경이었다.

다가가 만져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집을 나서는 태경을 예준은 돌아보지 않았다.

*

식사보다는 죽이 낫겠다고 생각해 포장한 것이 식기 전에 돌아왔다. 집 안으로 들어선 태경은 부쩍 옅어진 페로몬에 미간을 구겼다. 귀가 싸해질 만큼 고요한 정적 속에서 점차 거세지는 바깥의 바람 소리만이 커졌다.

“하….”

굳이 둘러보지 않아도 오메가가 사라졌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산뜻한 공기가 달갑지 않기도 꽤 오랜만이었다.

“먹고 튈 줄은 몰랐는데.”

태경이 조용히 읊조렸다. 다시 볼 생각만으로 점점 조여 오던 하체가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절절 끓는 몸을 애써 외면한 그는 죽을 던지듯 식탁 위에 놓았다. 괴롭혔으니 먹일 생각이었다. 되도록 주말 내내.

자신도 모르게 턱에 힘을 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파 위에 가지런히 접힌 옷이 있는 걸 보면, 어젯밤 젖은 채로 그대로일 옷을 찾아 입고 간 모양이었다.

부쩍 추워진 날씨가 신경 쓰였다. 저벅저벅 소파로 다가간 태경이 옷 위에 놓인 메모를 집어 들었다.

[소중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태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로서는 간밤의 섹스를 차마 ‘소중하게’라고 표현할 수 없었다. 지나치게 거칠었고 필요 이상으로 횟수가 많았다. 몇 번이나 성기를 받아 낸 아래는 맨눈으로 보기에도 엉망이었고 예준의 컨디션도 가히 정상은 아니었다.

익숙한 메모지에 삐뚤빼뚤 쓰인 글씨는 자신의 작업실에 있던 연필로 쓴 것이었다. 그 외에 소파 근처를 나뒹굴던 메모를 발견한 태경이 허리를 굽혔다. 굳이 펼쳐 보자 그 메모엔 조금 더 노골적인 감사 인사가 적혀 있었다.

[자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경은 직감적으로 가까이 놓인 쓰레기통에 눈길을 주었다. 자신은 절대 덮개를 뒤집어 놓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덮개를 열어 살펴보니 구겨진 메모지가 수북했다.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섹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액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서를 가늠할 수는 없었으나 예준이 자신을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지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태경은 곤란한 오메가를 위해 기꺼이 정액을 준 알파였다. 그것을 감사히 여긴 오메가가 기특해야 마땅한지, 원망스러워야 마땅한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태경이 메모를 다시 한번 읽었다.

“…정액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의자의 가족이 또 한 번 피해자를 농락했다고 몰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태경 또한 사리사욕을 채운 셈이니 입이 쓰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가여워서 끌렸기에, 자신이 먼저 나서서 그 하룻밤을 가볍게 치부하자 제안했다. 밀폐된 방에서 은밀히 오고 간 계약이 아닌 순전히 사람 대 사람으로 끌린 셈 치자 말했다.

태경은 순간 치솟은 열감을 누르며 메모지를 내려놓았다. 아무 곳에나 시선을 둔 그가 어린 오메가의 하얀 목덜미를 머릿속으로 그려 냈다. 곧은 허리와 도톰한 엉덩이, 하얗게 뻗은 다리를 상기하자 가슴이 뛰었다.

말갛게 저를 보던 눈. 먼저 허리를 흔들면서도 부끄러워 달아오르던 두 뺨.

“하아….”

거칠게 티셔츠를 벗은 그가 곧장 욕실로 향했다. 면역제를 털어 넣기 전에 잔뜩 발기한 성기부터 해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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