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Un ordinary holiday
겨울은 보편적으로 외로움으로 빗대어지는 계절이다.
인생을 네 가지로 뭉뚱그려 계절로 나누는 경우엔 죽음을 앞둔 혹한기의 노년을 뜻하기도 했고, 낙목한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쓸쓸함을 표현하고자 할 때 스스럼없이 쓰이곤 했다. 실제로 그랬다. 풀 한 포기 나기 힘든 척박하고 싸늘한 겨울.
그러나 최세계는 영하가 태어난 겨울을 좋아했고 지금은 그 계절을 사랑할 지경이었다.
“춥다.”
난방을 따뜻하게 올려도 영하는 입버릇처럼 춥다고 품에 안겨 들었다. 영하가 달라붙으면 두부는 실처럼 따라왔다. 최세계는 아들과 딸까지 둘을 품에 안아야 했다.
두부가 몸을 파드드 떨자 새카만 털이 공중을 부유하다 천천히 아래로 떨어진다. 마침 그가 마시던 아메리카노에도 한 올이 떨어졌다.
손에 쥔 머그잔을 테이블에 내린 그가 작은 턱을 받치고 올려다보는 두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먹만 한 녀석이 머리를 만져 주면 눈을 살그머니 감고 몸을 기대 온다.
최영하와 하는 짓이 비슷했다. 마치 영하를 개로 만들어 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그도 3kg밖에 안 되는 강아지에게 정을 붙였다.
“트리.”
사람인 최영하가 물었다. 손은 두부의 머리를 쓰다듬는 최세계의 손등에 올렸다. 춥다더니 체온은 영하 쪽이 더 뜨겁다. 아주 뜨겁게 열이 올라 있다.
“오늘 와.”
“몇 시에?”
“오후에 오겠지.”
이주 전부터 트리, 트리. 노래를 불러 대어 결국 샀다. 크리스마스는 미국에서나 큰 명절이지 한국에서는 그냥 휴일이나 다름없지 않나. 미국인들이 크리스마스에 들이는 정성을 몇 년 겪고 나니 세계는 성탄절에 시들해졌다.
게다가 그런 기념일을 즐길 나이도 아니었고, 그의 친구들 또한 크리스마스 데이트보다는 크리스마스에 자식들에게 몰래 선물할 장난감을 고르는 일에 열중할 시기였다.
“선물받고 싶어서 그래?”
“아니?”
영하도 그의 아이였다. 연인이지만, 그보다는 먼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가장 친한 친구의 아들은 이제 여섯 살이었다. 여섯 살 최영하의 크리스마스는 어땠을까. 서랍장이나 책상에 몰래 양말을 달아 두고 산타가 선물을 넣어 주기를 두 손 모아 기다리며 잠들었을까.
잠깐 상상하는 사이 영하가 벌떡 일어났다. 무릎 위에 오른 두부도 함께 일어나 소파 아래로 몸을 던졌다. 뭘 하나 봤더니 안방으로 들어간 영하는 하얀색 니트 담요를 등에 짊어지고 돌아왔다.
으차. 고작 소파 앉으면서 추임새까지 넣은 영하는 담요로 몸을 둘둘 싸고 무릎 위에 두부를 올렸다. 시커먼 털 뭉치가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잠들 준비를 했다.
두꺼운 담요를 감싼 최영하는 만족스레 다리를 뻗었지만 세계는 허전했다. 갑자기 떨어져 나간 체온이 불만이었다. 그가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몸을 옆으로 뉘며 말했다. 등이 영하의 어깨에 닿았다.
“오후에 발레 보러 가는 거 잊지 마. 트리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트리도 중요해. 아주 중요하다고.”
“어차피 다 꾸며져서 오는데.”
“내가 꾸미면 안 이쁘다고 싫어할 거니까.”
“잘 아네.”
퉁명스러운 대꾸에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흘끗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잔뜩 찡그리거나 삐죽이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평온했다.
웬일로 짜증을 안 낼까.
영하를 괴롭히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니 현 상황이 못마땅해 입술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화를 낼 타이밍인데. 씩씩대야 하는데. 집착적인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영하가 중얼거렸다.
“이제 아빠 수법에 안 넘어가.”
“흠.”
컸다는 건가. 그래 봤자 잠깐이다. 이러고 한 시간 뒤에 괴롭히면 다 잊어버리고 짜증 나 발을 쾅쾅 구르겠지.
속 터져 하는 꼴을 상상하던 세계는 잠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최영하의 선물 이야기였다.
25일은 크리스마스. 29일은 영하의 생일이다. 트리를 사고 싶다는 말은 계속하더니 생일 선물 이야기는 없다. 옷이나 신발 같은 건 원래 좋아하는 녀석이니 알아서 살 테고. 그러면 아무래도.
“영하야.”
“응?”
두부를 품에 안고 입에 쪽쪽 뽀뽀하던 영하가 돌아봤다. 두부는 하기 싫어 고개를 잔뜩 뒤로 뺀 모습이었다. 세계는 손만 뻗어 아들의 뺨을 쓸고는 가볍게 제안했다. 영하의 생일 선물.
“생일 선물이랑 크리스마스 선물 겸해서, 이 집 줄까.”
“집을?”
“그래. 등기 이전해 줄게.”
“나한테 집을 준다고?”
놀란 영하가 여러 번 되물으며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였다.
증여로 가면 세금이 복잡해지겠지만 집 준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주식 같은 경우에는 현금화가 쉬운 편이니 쉽게 줄 순 없어도 부동산 같은 실물 자산은 나쁘지 않다. 게다가 증여로 받은 부동산은 팔려면 골치 아파진다. 최영하 성격상 웬만큼 마음먹지 않는 이상 귀찮아서 팔 생각도 못 하겠지.
“싫으면 말고.”
“아니! 좋아!”
“…….”
가볍게 대꾸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드물게 격렬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담요를 한가득 품에 안고 흥분한 기색으로 입을 달싹였다. 크게 뜨인 눈동자가 겨울 아침의 흰 빛을 받아, 아니 집 받을 생각에 기뻐 찬란하게 반짝였다.
“아빠, 도장 파야 해? 나 도장 없는데.”
“없어도 돼. 부동산에 도장 다 있어.”
“도장 파고 싶은데? 흰색으로. 뚜껑 있는 걸로. 요즘은 도장도 예쁜 거 많아. 알아?”
“알아, 알아. 진정해. 서류 준비할 거 많으니까 당장 못 해. 내년은 돼야지.”
집을 준다니 돈 생각에 좋아하나 싶었더니 부동산 계약을 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하는 그러고도 계속 도장 이야기를 했다. 부리나케 휴대폰을 들고 와서는 특이한 도장 사진을 자꾸만 보여 줬다.
하여간 아직도 애 같아서는…….
“근데… 나는 선물 준비한 거 없어서 어떡하지?”
신이 나서 휴대폰을 만져 대던 영하가 돌연 우물쭈물 물었다.
“사 주려고 했는데… 가진 돈이 하나도 없어.”
이어진 말만 들으면, 재벌집 손자가 아니라 피죽도 못 얻어먹은 수준이다. 세계가 가만히 눈가를 찡그렸다.
“뭘 주려고 해. 너랑 내 관계를 집어치우더라도, 열여섯 살 연상 남자를 만나면 그냥 받기만 해도 돼.”
“싫어. 원조교제 같잖아.”
“그래서. 넌 준비한 것도 없다며.”
“…새해에는 꼭.”
기대도 없다. 사고 안 치고 말 잘 듣는 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음. 여섯 살짜리한테 하는 말 같네.
*
트리는 거실이 아니라 2층에 자리 잡았다. 영하는 거실에 두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쇠심줄은 최세계가 더 길고 단단했다.
결국 인부들이 다시 트리를 들어 2층 거실에 올렸다.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 1층이 야트막하게 보이는 위치였다. 자꾸 큰 걸 사 달라고 하여 제일 큰 녀석으로 구매했더니 영하의 키보다 큰 나무가 왔다.
“예쁘다. 예쁘다.”
“…….”
영하의 감탄과 달리 아무리 봐도 평범한 트리일 뿐이었다. 짙은 녹색의 침엽수 위로 늘 봤던 진저맨, 눈사람과 별 오너먼트, 흰 조명과 빨간 체크 리본.
그러나 기뻐하는 영하의 얼굴이 조명이 반짝이는 순간마다 환하게 밝아지는 장면을 물끄러미 보며 세계도 조용히 맞장구쳤다.
네가 좋아하면 그걸로 됐지.
트리 정리를 마치고는 본격적으로 외출 준비를 했다. 오후 스케줄은 두부를 본가에 맡겨 두고 4시 20분까지 발레를 보러 아트센터에 도착하는 거였다. 끝나면 7시. 영하와 극장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호텔에서 묵자는 세계의 제안을 듣고 처음에는 좋아하던 영하가 나중에는 조금 머뭇거렸다. 두부를 혼자 둘 수는 없으니 맡겨야 하는데, 맡길 상대가 성산동 본가였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에 같이 자리 비운다고… 맡기는 건 너무, 부끄러운데….’
‘할머니가 강아지 좋아하시잖아.’
‘알지. 나도 강아지 호텔보단 할머니께 맡기는 게 더 좋지만, 그래도…….’
어차피 다 알 텐데 뭐가 그렇게 부끄럽고 미안할까. 어차피 그날 호텔에 가지 않는다고 바뀔 사이도 아니었다.
세계는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며 영하를 달랬다. 그래도 잘 먹히지 않자, 작전을 변경했다. 잔소리하는 아버지 대신 다정한 애인이 되는 방법이다.
우물쭈물하는 영하와 눈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코끝을 부딪쳤다. 그리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부드러운 어조를 갉아 모아 이야기했다.
‘우리 처음으로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인데, 남들 눈치 보느라 이대로 넘어가긴 아쉽잖아. 안 그래?’
‘…….’
‘난 너랑 단둘이 있고 싶은데.’
크리스마스에 감흥이 없는 최세계일지라도, 크리스마스라는 단어 옆에 최영하란 이름이 붙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순간 ‘아무’에 지나지 않던 것이 특별해졌다.
겨울 또한 그랬다. 영하가 그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이후로 두 번째 맞는 겨울이었다.
겨울은 많은 가능성을 안은 계절이다. 비록 길거리엔 검게 마른 나무들이 즐비했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영하가 자주 안겨 드는 계절이었고, 손이 시리다는 핑계를 대며 손을 잡는 수작질을 마음껏 부릴 수도 있는 계절이었다.
‘그러면… 가야지.’
잠시 고민하던 영하가 눈만 굴려 뜨며 대답했다. 우물우물 깨무는 입술이 사랑스럽다. 부드러운 선율을 닮은 작은 턱선도, 앞머리에 가려진 눈동자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달궈진 뺨까지도.
가끔 최세계는 영하를 보고 있자면 어쩌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아돌프 부그로의 그림 속 큐피드처럼, 소박한 들풀 위에 놓인 그 존재 자체가 성스러워서.
촘촘한 속눈썹이 가리던 눈동자를 드러내며 부끄러이 몸을 들 때마다, 빛줄기가 일렁이듯 내리쬐는 것 같아서. 내가 괜히 너를 욕심낸 걸까 봐.
하지만 동시에 찌를 듯한 충족감과 안도감이 자신을 적셨다.
그래. 최영하는 그에게서 한순간도 큐피드였던 적이 없다.
영하는 그의 갈라테이아였다.
최세계의 피와 유전자 조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나 그의 사랑이었다.
욕심내기엔 지나치게 양심이 없는 꼴이었으나, 인정했다. 어차피 자신은 파렴치하고 역겨운 놈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발레를 함께 보는 게 처음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는 모든 공연 업계의 하이라이트다. 심사숙고하여 고른 보람이 있었다. 커튼콜이 끝난 뒤 조용히 박수를 치는 영하의 눈동자에 즐거운 기색이 잔뜩 서려 있었다.
무대 대신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느낀 최영하의 볼이 방긋이 올라가며 입술이 길게 당겨졌다. 얼마 가지 않아 눈을 가늘게 좁히며 미소 지은 얼굴이 돌아보더니 세계와 마주쳤다.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 다음에 또 보러 오자.”
무대 위의 눈부신 조명보다 밝고, 뜨겁고, 눈이 부셨다.
날이 날이다 보니 대극장에 빈자리 없이 자리가 꽉 찼다. 사람들에 치이기 싫으니 일부러 인파가 빠질 때까지 자리에 기다리다 공연장을 나섰다.
그러나 주최 측에서 마련해 준 포토 부스에서 사진을 찍겠답시고 줄을 서는 바람에 기다린 보람도 없이 홀은 인산인해였다.
최세계는 얼굴을 가득 구긴 채 영하의 몸을 당겨 안았다. 다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닿지 않게 하려는 보호였지만, 영하보다도 작은 아이들 사이에서 유난스레 구는 게 오히려 튀는 행위였다.
“하…….”
사람이 가득 찬 탓에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아 헤매야 했다. 그 와중에 영하는 사진이 찍고 싶은지 조명이 켜진 부스를 흘낏거리곤 했다.
“왜. 찍고 싶어?”
“응? 아니…?”
물어보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꾸만 눈이 돌아갔다. 영하의 눈길을 따라 카메라 존에 올라가는 커플들의 뒷모습을 본 세계는 섬세하게 처진 아들의 눈가를 바라보며 갈등했다.
본인은 서른여섯이다. 기념 촬영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영하는 스무 살인 데다 아직 생일도 지나지 않은 녀석이다.
크리스마스고 하니… 장단 맞춰 줘야겠지.
“아빠, 가자. 그냥 가자.”
“잠깐만.”
돌아본 영하가 크게 고개를 흔들더니 세계의 가슴팍을 밀어 댔다. 갑자기 가자고? 사진 찍는 걸 그렇게 구경하다가?
눈치 보느라 사진 찍고 싶다고 말도 못 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 자신의 허락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집에 돌아가면 이야기를 좀 나눠 봐야겠군.
“그럼 사진 찍…….”
영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줄을 서자고 말하려는 그 짧은 순간. 뒤이은 목소리에 최세계는 영하가 포토 부스에 신경을 빼앗긴 이유를 알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고 싶어서가 아니라, 좀 전에 포토 부스에 오르던 커플들에게 발견되지 않으려 돌아본 것이었다.
“어? 야! 최세계!”
꼬마 병정 앞에서 하트를 그리며 사진 찍던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뮤지컬을 해도 손색이 없을 성량이 쩌렁쩌렁 홀 안을 주파수로 메웠다.
김율이었다. 발레에는 요만큼도 관심 없을 자식이 하필이면.
순식간에 군중들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동시에 기지를 발휘한 최세계는 미어캣처럼 돌아보는 인간들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저 천생연분 커플들이 가리키는 사람이 아닌 척 돌아보곤 재빨리 영하의 허리를 끌어안고 보폭을 넓게 발을 놀렸다.
“야! 어디 가? 잠깐, 잠깐!”
“윽! 아프잖아!”
무대에서 우당탕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 뒤론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영하를 거의 들다시피 끌고 가자 옆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으나 지금은 불만을 접수할 겨를이 없다. 우선 빠져나가는 게 먼저였다.
“야야야, 야야 최세계! 제수씨!”
어찌나 징그럽게 따라오는지. 결국 건물 입구에서 붙잡혔다. 그냥 이대로 가면 어떡하냐고 쩌렁쩌렁 소리를 내지르니 그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멈춰야 했다.
영하는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세계의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곤 고개를 숙였다. 허벅지 옆에 붙은 손가락이 반복적으로 꿈지럭거리는 것으로 보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하다.
“제수씨, 오랜만입니다. 와, 이게 거의 반년 만인가?”
“네네… 안녕하세요.”
제수씨 소리에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거린다. 슬쩍 눈을 굴리며 영하가 세계를 쳐다봤다. 호칭이 부끄러운 모양인지 애써 웃는 얼굴이 애매했다. 영하가 곤란해하든 말든 김율은 제멋대로 굴고 있었다.
“제수씨?”
“왜, 내가 말했잖아. 세계한테 그 남자 제수씨.”
하하하. 하고는 넌지시 물어보는 아내에게 속닥거렸다. 하지만 다 들렸다. 저 자식은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김율의 아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아아! 이야기 들었어요. 세계 씨랑 만난다면서요.”
“아직도 안 헤어졌구나. 나는 헤어졌을 줄 알았는데. 스물한 살 되면 헤어질 거죠? 어? 뻥 차야지. 서른일곱이면 삼십 대 후반인데.”
저 새끼가 진짜…….
“안 헤어질 거예요.”
세계가 험상궂은 얼굴을 하며 영하의 앞을 가로막는 바로 그때. 목도리 안으로 코 아래를 가린 영하가 뚱한 눈빛으로 대꾸했다. 잠시 김율의 입이 벌어지고, 세계는 머릿속으로 허공을 나르는 간지러운 깃털을 떠올렸다.
김율의 아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어우으, 귀엽다.”
“와, 봤지? 당돌하다니까. 최세계가 그렇게 잡혀 산다더니.”
서른한 살 돼도 안 헤어질 건데. 영하가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잡혀 산다니요. 우리 아―.”
곧바로 이어 말하던 영하는 “아.” 하더니 입을 벌린 채로 멈췄다. 작동이 멈춘 기계처럼 굳어 있었다. 반응으로 보아 ‘아빠’라고 말하려다가 뒤늦게 깨달은 거겠지.
“아?”
김율과 그의 아내가 동시에 말했다. 죽도 잘 맞아.
“아, 아……. 아저씨. 우리 아저씨… 잡혀 사는 거 아니에요.”
영하의 대처는 결국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 호칭에 김율이 커다란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세계는 늘 그렇듯 무덤덤한 얼굴이었는데, 돌아본 영하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저씨라고 불러 기분이 상할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세계는 그 호칭에 딱히 불만이 없다. 열여섯 살 차이면 아저씨지.
“시간 되면 같이 식사할래? 근처 괜찮은 식당 예약해 놨는데. 인원 추가 가능할 거야.”
웃음을 멈추고 난 김율이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계는 곧장 거절했다. 식당 예약이라면 이쪽도 해 둔 상태였다.
식사 제안을 거절하고 호텔에 도착했다. 바로 안으로 들어가려던 계획은 호텔 주변 길마다 장식해 둔 조명이 반짝이는 모습 때문에 잠깐 변경했다. 영하가 바깥을 잠시 걷고 싶다기에, 함께 걸었다.
머리 위로 흰 조명이 눈부시게 늘어져 있었다. 잠시 고개를 들면 세상에 온통 까만 밤 위로 반짝거리는 별빛이 그득한 듯한 착각에 드는 광경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추위를 잠깐이나마 잊게 할 순간이었고, 영하도 마찬가지였다.
흰 목도리를 조금 풀어낸 영하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다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틈날 때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하고 굳이 물어보기 전, 이쪽을 향한 시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영하는 덥석 그의 손을 잡아 왔다. 북풍에 식은 손가락 사이로 가느다랗고 따스한 체온이 스며들었다.
“커플 같다.”
영하는 조금 쑥스럽게 웃으며 속삭이곤 괜히 턱을 당겨 가로수에 촘촘히 연결된 조명을 응시했다. 부끄럽다는 듯이.
세계는 대답하지 않았다. 영하도 딱히 대답을 바란 눈치는 아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잡은 팔을 앞뒤로 조금씩 흔들며 보폭에 맞춰 걸었다.
‘서른한 살 돼도 안 헤어질 건데…….’
잠깐 뒤로 미뤄 뒀던 영하의 혼잣말을 되새겼다. 어린아이처럼 투덜대며 말했지만, 최세계가 느낀 것은 안도였다. 무수한 시간이 흘러도 최영하의 안에서 자신은 에로스적인 남자일 것이라는 안도.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여행 갈까.”
세계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각이 지고 모난 곳이 모조리 둥글게 깎여 나간 목소리였다.
“여행? 두부는 혼자 두고?”
“두부도 데려가면 되지.”
“그럼 가고 싶어. 어디로?”
“천천히 생각해 봐. 아직 일 년 남았으니까.”
늘 함께 있는데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충분하다. 영하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약해 둔 호텔 내의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양식은 프렌치보단 이탈리안이 나았다. 실력 있는 셰프의 이름값에 누가 되지 않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눈길 닿는 곳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보였고 영하의 목소리가 끊기면 누군가를 들뜨게 만드는 캐럴이 귓가에 닿았다.
“먼저 씻어. 아니면 같이 씻을까?”
배정받은 룸을 열자마자 성탄절의 야경이 눈앞에 무수히 펼쳐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길에 ‘절대 창문에서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던 영하는 자신의 말도 홀랑 잊어버린 듯 일찌감치 신발을 벗어 두곤 거실의 창가로 다가갔다.
뒤꿈치를 들어 사뿐사뿐한 걸음을 확인한 세계는 영하가 발레 동작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직까지는 상상에만 의존해야 했다. 대체 언제쯤 보여 준다는 건지.
“아빠가 먼저 씻어. 나 야경 구경하다가.”
영하가 유리창에 이마를 꾹 박은 채로 이야기했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둡다. 야경을 본다니 켜지도 못할 노릇이다. 세계가 어둑한 소파로 향하며 대답했다.
“네가 먼저 씻어.”
“그래? 알았어.”
야경이 보고 싶다더니, 영하는 의외로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내부 인테리어에는 관심도 없는 얼굴로 불을 켜곤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크리스마스에 이 방을 예약하기 위해 두 달 전부터 기다렸다. 정확히 45일 전에 예약이 열렸다. 평소에는 제일 한가한 게 스위트룸인데 무슨 날만 되면 경쟁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비서에게 부탁하면 편했겠지만, 영하와 하는 모든 것들은 웬만하면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고 싶어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감수했다.
최영하는 그다지 관심 없어 보이지만.
잠시 후 영하의 뒤를 이어 씻고 나온 세계는 물기를 깨끗하게 닦아 낸 몸 위에 가운을 걸치고 욕실을 빠져나왔다. 예상대로 영하는 거실에 없다. 침대 위에 엎드려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엎드려 야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거실 테이블에 놓인 웰컴 기프트를 무감하게 보고 지나친 세계는 벗어 둔 코트 속에서 콘돔 두 개를 꺼내 와 곧장 침실로 향했다.
“아직도 보고 있었어?”
“응. 이렇게 높은 데서 볼일이 잘 없잖아. 주택에서 사니까.”
관자놀이에 입술을 내리누르며 물었다. 축축한 자신의 머리카락과 달리 영하의 머리칼은 바짝 말라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코끝을 문지르곤 손만 뻗어 천장 등을 모두 점등했다.
테이블 등을 켜는 그 잠깐 사이의 어둠 속에서 영하의 눈동자가 야경 빛에 비쳐 반짝였다. 아니. 착각일 수도 있다. 영하가 고양이도 아니고, 밤중에 눈을 빛낼 수는 없으니까.
불이 꺼진 사이 바로 누운 영하가 눈을 끔뻑였다. 침묵이 이어졌다. 세계가 테이블에 무언가를 내려 두자 그쪽으로 향하려던 시선이 멈췄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감지하곤 입술을 달싹였다.
달라붙은 점막끼리 떨어지는 소리마저도 들릴 만큼 적막했기에 영하가 겸연쩍은 듯 눈꼬리를 매만지며 물었다.
“왜?”
대답 없이 영하를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했다. 조용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영하는 부끄러워했다. 이어질 일을 알면서도 벌어진 가운을 조심스레 여미며 다리를 모았다. 손끝마다 질척하게 시선을 보내던 최세계가 이윽고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내밀었다. 옷자락을 꽉 쥐고 있던 손 위로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아…….”
커다란 몸체가 등을 굽히자 영하의 몸 위로 기다란 그림자가 진다. 짧게 깎은 손톱 하나하나에 입 맞춘 남자가 곧바로 혀를 내밀어 손가락 위를 느릿하게 핥았다.
“하으.”
고작 그 행위 하나로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가슴이 조금 부풀었다. 세계는 눈꺼풀을 들어 아들과 눈길을 마주치며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입 안에 담았다. 입 안보다 영하의 살갗이 더 뜨겁다. 말캉한 혓바닥이 피부를 감고 더 안으로 이끌었다.
이어 혀끝에 차가운 감촉이 그를 반겼다. 그의 왼손에도 자리 잡았으며, 언제부턴가 몸에서 떨어뜨릴 수 없던 반지였다.
따뜻한 조명이 세계의 옆얼굴에 태양처럼 내려앉았다. 유려한 얼굴의 외곽선이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의지할 빛이 하나이기 때문에 그랬다. 깊게 파인 가는 눈과 곧게 뻗은 코가 이루는 얼굴은 극단적으로 아름다웠다. 다만 허리춤을 묶지 않은 가운이 벌어져서 그럴까. 눈길을 두는 것조차 죄악으로 느껴지도록 퇴폐적이었다.
타심에 싸인 그는 마치 신을 조각한 석상에 예배하는 신자처럼 아들의 손을 핥았다. 언뜻 보면 대단히 숭고한 행위 같았으나 그의 얼굴 반대편을 흐릿하게 가린 그림자에는 분명한 성욕이 존재했다. 몸을 가린 가운 속에 개처럼 고개를 파묻고 말랑한 배와 성기를 빨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흐, 흐으…….”
영하의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진득하게 마주치는 눈길을 피하려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영하의 눈동자는 세계가 탐욕스럽게 입 안에 담은 손을 떨어뜨리는 순간 돌아왔다. 흔적처럼 남은 타액이 길게 이어 손을 거두는 팔이 애처롭게 떨렸다.
차분히 영하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그가 불현듯 상체를 숙여 번들거리는 손가락 끝을 욕심껏 질근질근 물었다.
“읏…….”
동시에 신호탄인 듯이 그가 거칠게 가운을 벗어 내던졌다. 꽉 조여진 허리와 대비될 만큼 벌어진 어깨와 단단하고 부피감 있는 가슴팍, 어긋남 없는 복근이 드러났다. 타고난 체격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할 몸이었다. 사내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몸을 가진 남자였고, 누군가의 이상형이기도 했다.
최세계는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침대를 짚었다. 몸이 가까워지자 파드득 몸을 떤 영하가 눈에 띄게 다리 사이를 모으곤 끙끙거렸다. 가운으로 가린 다리를 꼬고, 겹쳐 모은 마른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그의 몸을 보고 발기한 것을 모르게 하고픈 모양이었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최영하는 다분히 민감하고, 쉽사리 흥분을 느꼈다. 그가 주는 쾌락을 버거워하면서도 감내하려 노력했다.
깊게, 그리고 최소한의 빛만 남긴 새카만 눈동자가 아들을 응시했다. 그에 지지 않으려 애를 쓰더니 이윽고 낭패한 표정을 한 영하가 세계의 눈 위를 손바닥으로 가리며 말했다. 자신 없이 웅얼거리는 것에 가까웠다.
“아, 안 돼. 그거 하지 마.”
“뭘.”
“하지, 말라고.”
“뭘.”
“야하게 눈 뜨는 거…….”
“하아…….”
한숨 뱉듯 웃으며 뻐근한 목을 더듬어 내려간 손은 영하의 가운 위에 닿았다. 하지만 세계는 손으로 가운을 벗기는 대신 고개를 들이밀었다. 따뜻하고 납작한 가슴 사이에 코를 박고 입술로 가슴 위를 더듬고 희롱했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살 내음을 느끼고는 혀를 내밀어 작게 일어선 유두를 힘 있게 짓이겼다.
“우응….”
손쓸 새도 없이 가운이 아래로 떨어졌다. 고작해야 손가락 조금 빨고 가슴을 핥아 준 것뿐인데도 영하가 진동하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말간 눈동자도 욕망으로 흐릿해지고, 그 위로 축축한 물기가 덧씌워졌다.
템포를 맞춰 주려 했더니.
매번 너무 빠르고 거칠다며 목이 쉴 만큼 울었다. 섹스가 끝날 때쯤 영하는 녹초가 되어 꼼짝도 못 하거나 기절하듯 잠들기 일쑤였다.
연인이 되고 첫 번째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이니 오늘 같은 날에 영하에게 속도를 맞춰 주려 했던 계획이 조금 어그러질 예감이 든다. 계획이 틀어지는 건 대부분 나쁜 징조였지만, 지금은 관계없는 일이었다.
손이 익숙하게 다리 아래를 향했다. 잔뜩 모은 무릎을 펴지 않으려 안달하기에 무릎 아래를 한꺼번에 붙잡아 들어 올렸다.
“아…!”
짧은 비명과 함께 하얀 엉덩이 사이로 반짝이며 흐르는 물을 발견했다.
천천히.
하려던 생각이 단숨에 흰 빛에 집어삼켜졌다. 이내 최세계는 영하의 다리를 가슴께로 내리누르고 뻐끔대는 구멍에 무작정 고개를 처박았다. 갈급하게 다물린 살점을 핥고 여린 그 사이로 혀끝을 쑤셔 박으려 안달했다. 영하가 잠깐만, 잠깐만, 울먹였다.
마음처럼 구멍이 열리지 않아 괴로운 듯 배를 떨더니 “흐읏.” 하고 허리를 치켜들었다.
“아빠, 으으응…!”
역시나 세계는 인내심이 아주 얕은 남자였다. 영하가 몸의 긴장을 풀고 자신을 받아 주기까지 참을성 있게 버티지 못한 그는 끝내 억지로 구멍과 말랑한 살결을 한 번에 잡아 벌렸다.
겨우 안을 내어 주는 구멍 속으로 흉기처럼 단단한 혀가 가쁘게 침입했다. 이미 충분히 젖은 내벽을 자신의 타액으로 척척하게 덧씌웠다.
세계는 혀 표면에 느껴지는 감각에만 집중했다. 우둘투둘한 내벽의 감촉과 아릿하게 혀를 조이는 감각. 영하는 아래를 조금 빨아 주자 흐느끼는 소리를 내더니 곧 엉덩이 근육에 바짝 힘을 주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제 심심찮게 뒤로 절정을 느끼는 꼴이 제법 귀여웠다.
“흐, 흐읏, 읏, 응… 응…….”
“콘돔 쓰려고 했는데.”
마음이 다시 바뀌었다. 늘 그렇듯 안에 사정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허리를 든 세계는 테이블에 둔 콘돔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영하의 안쪽을 차분히 넓히고 있었다. 충분히 풀어 주지 않고 삽입하면 아직 많이 힘들어한다. 검지와 함께 중지를 마저 노곤해진 구멍 속에 넣던 세계는 이윽고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어깨를 굳혔다.
“콘돔 쓰지 말고… 안에다 싸 줘…….”
“…….”
막 절정에 다다른 영하는 가슴팍까지 자홍색으로 발긋하게 물들어 있었다. 아랫입술과 턱이 울먹이듯 흔들렸고 하반신이 쏟아 낸 조수로 음란하게 반짝였다. 더럽혀진 천사의 모습으로, 자신의 척척한 틈 사이에 사정해 달라 요구하고 있었다.
“하.”
목 근육이 길게 도드라졌다. 달구어진 육신 위로 걷잡을 수 없는 애욕이 들끓었다. 가까스로 계획에 맞춰 보겠다는 마음마저 완전히 흩어졌다.
내가 바라는 것을 너도 함께 바라고 있다는 점이 그랬다.
이어 세계는 영하와 몸을 완전히 밀착시켰다. 눈물로 얼룩진 눈가에 입 맞추며 벌름대는 구멍 위에 발기한 성기를 내리눌렀다. 풀어 준 시간이 길지 않아 내벽이 조금 빡빡했지만, 영하는 다리와 골반을 넓게 벌리며 그를 받아들이려 애썼다.
눈앞이 아찔해질 지경이다. 하반신에서 뜻 모를 열이 끓어오르며 척추뼈를 더듬어 올라갔다.
“아, 흐으, 응…….”
영하는 매번 삽입을 할 때면 긴장하곤 했다. 엄살이 많아 귀두를 막 넣을 시점부터 아프다고 끙끙거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투정 부리면 더 귀엽다는 걸 모르는 걸까.
손마디가 희게 변할 만큼 이불을 강하게 그러쥔 영하는 이윽고 성기의 중간 지점이 밀고 들어올 때쯤 “흐윽!” 숨을 크게 뱉어 냈다.
뾰족 솟은 가슴을 치켜들고 성글게 풀린 눈꺼풀을 들어 그와 마주했다. 그게 키스해 달라는 신호 같아서, 허리를 굽혀 입 맞추려 가까이 다가가던 그는 우물우물 움직이는 입술이 흘린 말에 몸을 움찔 굳혔다.
“자기야….”
오랜만에 들어 보는 간지러운 호칭이었다.
아저씨라고 불렀던 일이 아직도 마음에 남은 건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불러 준 사람의 얼굴에는 마치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영하는 붉다 못해 거멓게 타 버린 얼굴로 눈을 감았다. 본인 눈에만 안 보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아는 건 어린애나 할 짓이다. 그러나 세계는, 완전히 불타올랐다.
“악…! 가, 갑, 자…! 앗! 아!”
기운이 빠진 몸뚱이가 예고 없이 무자비하게 짓눌렸다. 허리가 단숨에 둥글게 굽고 핏발 선 거근이 우악스럽게 항문을 벌리며 쑤셔 들었다. 모든 것이 단숨에 이루어졌다.
괴롭다고 바둥대는 영하의 손톱이 등을 길게 긁고 지나가는 잠시, 최세계는 피어나는 통증 속에서 마치 자신의 모든 세포와 감각이 하나도 남김없이 되살아나는 정염을 느꼈다. 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싶다.
“천천, 히, 아아! …아!”
이윽고 좆 뿌리까지 구멍 안으로 쿵! 박아 넣었다. 영하는 저도 모르게 저릿저릿한 아랫배를 만지며 울음 같은 신음을 흘렸다. 그 위로 키스하고 싶었다.
배꼽 옆, 말캉한 살결을 이로 물어 자신의 흔적을 촘촘히 남기고 제 성기를 처참하도록 받아 내는 그곳을 혀로 핥고 싶다.
불가능한 자세였다. 그러니 온통 집어삼키고 싶은 것이다.
“흐악! 아, 아읏, 응, 자기…! 으응, 아, 아아…….”
박아 넣은 성기를 잡아 뺄 때마다 아래에서 물이 질질 흘러내렸다. 성기의 핏대를 타고 흘러 제 아버지의 샅을 적시고 있었다. 어떠한 젤과 오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젖어 흘러내린 것이다.
“하아, 시발…….”
저속한 욕설을 뱉은 세계는 영하의 두 다리를 잡아 옆으로 몸을 뒤집었다. “으읏!” 안쪽에서 회전하는 성기에 들러붙은 내벽의 점막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고, 영하는 하반신을 파들파들 떨며 몸을 튕겼다.
꽉 조이는 압박에 느껴 뒷골이 아릿한 쾌락이 덮쳐 사정감이 찾아왔으나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영하를 옆으로 눕힌 세계는 한쪽 다리를 들어 자신의 어깨에 올리곤 다른 손으로는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아저씨라고 불러도 상관없어.”
“하지만…… 크리스마스인데….”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괜한 죄책감이나 미안함 따위를 가지지 말라고 말한 것뿐이었다.
세계는 벌어지는 영하의 입술에 입 맞추며, 가슴을 겹치고는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잔뜩 부푼 음경이 안을 꽉 메우고 불룩한 귀두가 전립선을 치고 드나들기 시작하면 최영하에겐 대화를 할 기력이 없어진다.
“흣, 응…! 자, 기야, 으응, 앗, 아앗.”
두 몸뚱이가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이 바짝 뒤얽혀 난잡하게 흔들렸다.
“하아, 하…….”
섹스에는 로맨틱함이 없다. 질퍽하고 흉흉한 행위였다. 그 천박한 움직임 속에서 내벽이 죄 짓이겨지고, 강렬한 쾌락과 함께 쓰라린 자극이 영하의 몸 깊은 곳에서 짜릿하게 움트고 있었다.
기어코 영하는 쾌락을 못 견뎌 울음을 터뜨렸다. 눈가를 발긋하게 물들이고 벌린 입으로 지껄이는 것이라곤 죄다 신음성이었다.
“흑, 아으응, 응, 읏… 흐앗……!”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마다 정신 차리지 못하고 가쁘게 신음했다.
“아…!”
발기한 성기에서 울컥울컥 흰 액이 배 위로 솟아올랐다. 고개를 마구 내저은 영하가 간신히 들러붙는 입술을 피하며 소리쳤다.
“그만……!”
이어진 하반신이 파들파들 떨린다. 영하는 절정에 다다를 때 박아 넣는 것을 싫어했다.
“괴, 괴로워, 흣, 으응…….”
하지만 세계는 매번 원하는 대로 했다. 자신에게 항문을 뚫린 채로 사정하는 꼴이 좋았으니까.
“괴로우면 안 되지. 하, 읏…. 좋아야 하는데. 응? 싫어?”
“아니, 흑, 아니, 아, 좋아, 응, 좋은데 흑, 너무, 아 집요하게… 읏, 으, 아응, 응, 거기, 아아아아……!”
힘닿는 데까지 거칠게 빠르게 남근을 구멍 안으로 쳐올렸다. 벌어진 입에서 비명 같은 흐느낌이 연달아 이어졌다.
“으응, 아, 제발…!”
주체 없이 떨리는 몸으로도 겨우 고개를 젖힌 영하가 세계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간곡하게 애원했다.
“아빠…….”
무엇을 향한 부탁인지 알면서도 그는 모른 체했다. 눈물로 흠뻑 젖은 아들을 향한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터지는 희열을 걷잡지 못한 세계는 기운 없이 흔들리는 몸을 외려 두 동강 낼 듯 쾅쾅 치받아 댔다.
“흐아아악…! 응, 아으, 흥, 아, 미칠, 거 같, 아아…! 앗, 아, 아…!”
전신을 떨며 구멍을 옴쭉거렸다. 벌어진 입에선 웅얼웅얼 괴로워하는 혼잣말과 신음이 뒤섞여 흐른다. 이윽고 장 깊은 곳을 찌른 음경이 닫힌 결장 입구를 건드렸다.
“흣, 아, 아…….”
그 순간 영하가 작게 어깨를 좁히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내 뜨인 눈동자는 기절할 것처럼 몽롱하게 흐려져 있었다. 이대로 의식을 놓을 수도 있다. 세계는 괴롭히는 형태로 거칠게 허리를 흔들었다. 감기던 눈이 다시 떠지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교성이 이어졌다.
“으읏, …흐윽, 아! 아아! 앗, 아아! 흐, 아으응…….”
“우리 자기 힘들어?”
비명이 잦아들고 울먹임이 가느다란 신음으로 바뀌는 끝에, 세계는 비로소 사정했다. 아들의 깊은 안쪽에 뜨거운 백탁액을 거침없이 쏟아 냈다. 섹스 한 번으로 녹초가 된 영하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영하는 후희를 앓고 있었다.
“힘들었어…….”
웅얼대는 말투였다. 영하의 투덜거림을 듣고서야 세계는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음을 느꼈다. 오늘은 천천히, 부드럽게 할 생각이었는데.
그가 작게 웃으며 땀이 송골송골 맺힌 관자놀이에 입 맞추곤 만져 주지 못한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영하의 눈꺼풀이 가물가물 감기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이쯤에서 잠들도록 허락해 주지 않았겠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양심의 보루였다.
“잘 자.”
퉁퉁 부은 구멍 사이로 그의 성기를 받은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피곤함과 졸음을 견딜 수 없다는 모양새로 눈을 감았다.
*
먼저 잠든 까닭일까, 성탄절 당일이 부린 마법일까. 영하는 드물게 먼저 일어났다. 조용히 씻고 돌아와 세계의 몸 위를 가로질러 눕고는 반응 없는 남자의 가슴 사이를 톡톡 두드렸다. 세계의 눈썹이 슬쩍 움직였다. 하지만 일어나진 않았다.
내친김에 영하는 굴곡진 가슴의 근육을 느끼려는 듯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 위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내리눌렀다.
“음.”
따뜻한 체온과 매끄러운 살갗의 감촉, 그리고 곧게 편 손가락의 높낮이가 달라지는 근육의 부피감. 그것을 느낀 영하는 제 손바닥을 가만히 쳐다보다 자신의 가슴 위에 눌러 본다.
“일어나.”
괜한 짓을 했다. 본인의 상체는 밋밋하기 짝이 없다.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감추지 않고 세계를 깨웠다. 그래도 버티고 일어나지 않자, 배 위에 올라타 어깨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너처럼 버릇없이 깨우는 아들이 어디 있어.”
목을 앞뒤로 가눌 수 없게 흔들어 대니 결국 그도 일어났다. 아침이라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흉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상대가 최세계인 만큼, 영하는 조금도 겁먹지 않고 가볍게 침대 아래로 내려가 허리에 손을 올렸다.
“조식 먹을 거야. 빨리 씻어.”
“몇 시야.”
“여덟 시 좀 안 됐어.”
“평소에 좀 이렇게 일어나 봐.”
“으, 아침부터 잔소리하지 마.”
노이로제 걸리겠어. 영하가 뒤이어 말했다.
찌푸린 눈가를 문지르며 욕실로 향하던 그가 무심코 뒤돌았다. 바닥에 내던져진 베개를 침대 위로 착착 올리는 영하의 표정이 아침부터 즐겁게 상기되어 있어 최세계의 찡그린 인상 또한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호텔을 나와 바로 본가로 향했다. 떨어진 지 24시간도 안 됐는데 두부가 보고 싶다고 야단이었다. 정작 두부는 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개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견생을 즐기고 있었다.
내년이면 영하의 명의가 될 집의 정원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너른 본가의 정원에서 원하는 만큼 달리고 흙을 파 댄 덕인지 하루 사이에 까만 털이 차르르하게 윤기가 흘렀다.
녀석은 아빠와 오빠를 보고서 반가워하기는커녕 간식을 뺏길까 봐 입에 꽉 물고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영하가 호들갑 떨며 정원을 한 바퀴 뛰고서야 두부를 잡았다. 그대로 검거한 취두부를 차에 싣고 출발했다. 도착하니 2시였다.
“아아아, 물 주는 거 어제 깜빡했다. 물 주고 가려고 했는데.”
2층에서 트리 구경을 하고 내려온 영하가 옷을 갈아입다 말고 창가에 둔 페퍼민트 화분을 보고선 혼잣말했다. 다리에 트레이닝 바지를 반만 올린 채 주춤주춤 걸어 창가로 향한다. 세계는 침대 위에 모로 누워 잠시 잉여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거실 러그를 물어뜯던 두부가 가벼운 발소리를 내며 뛰어와 침대에 매달렸다. 올려 달라는 듯이 두 발을 길게 뻗고 허리를 세워 세계를 올려다본다. 헥헥 내밀어진 분홍색 혀를 보며 세계는 고개를 저었다. 침대 위에는 올리지 않는다.
“아빠.”
“응.”
손만 매트리스 바깥으로 뻗어 두부의 자그마한 주둥이를 툭툭 건드리는 사이, 집중력을 향상시켜 준다며 사 둔 페퍼민트에 물을 준 영하가 화분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기쁜 얼굴로 뒤돌았다.
“페퍼민트 화분에 싹이 자란 거야. 그래서 나는 페퍼민트가 새로 자라나 했는데, 오늘 보니 세 잎 클로버였어. 두 개나 자랐네.”
두부의 머리를 쓰다듬고 침대에 오른 영하는 자신의 손바닥에 세 잎 클로버 모양을 그리며 즐거이 이야기했다.
잡초 씨가 바람에 날려 들어온 것이 그렇게 재미있는 일인가. 하지만 뒤이어진 영하의 말에 그가 생각을 고쳤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잖아. 세 잎 클로버 꽃말이 뭔지 알아?”
그렇게 묻는 영하의 두 뺨이 새싹이 움트는 봄날보다도 따뜻하고 싱그러웠기에, 최세계는 알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
세계가 대꾸하자 턱을 당긴 영하가 그의 옆자리에 몸을 붙였다.
“행복. 행복이 집 안으로 날아온 거야.”
말을 하며 어깨에 뺨을 문지른다. 대담하게 먼저 다가온 손가락이 그의 손과 얽히기 시작했다. 세계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도모지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