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모지 2권-챕터 3. 꿈 (2) (4/11)

도모지 2권

챕터 3. 꿈 (2)

차 안에서의 희롱에 충격을 받은 영하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영하의 몸을 코트로 가린 그는 아들을 품에 안은 채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올랐다. 찬 바람이 뺨에 닿으니 열이 오른 정신이 조금 드는 듯했지만, 영하는 현관문을 열어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달려드는 그에게 휘말렸다.

“아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몸이 바닥에 엎어졌다. 바로 한 걸음 뒤가 현관이었다. 신발도 제대로 벗어 두지 않은 세계는 다급한 몸짓으로 거추장스러운 코트를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두곤 아들의 몸 위에 타고 올랐다.

제대로 입혀지지 않은 영하의 바지는 무릎에 걸쳐져 있었고, 팬티도 덜 올려 엉덩이골 위쪽이 드러났다. 거실의 환한 불빛 아래 드러난 아들의 미끈한 몸을 보고 마음이 급한 그는 바지의 앞섶만 풀어 헤친 채 둥그런 엉덩이에 마운팅하듯 꽈앙-! 박아 댔다.

“흐아아―!”

사납게 부푼 앞섶이 천 두 장 사이로 거칠게 문질러졌다. 잔뜩 발기한 굴곡이 엉덩이의 골 사이로 여실히 느껴졌다. 온몸이 앞으로 쿵 밀려난 영하는 엉덩이에 닿는 두께감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리석 위를 손톱으로 긁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으응. 으응. 싫어.”

거절의 말이 뱉어질수록 세계는 도리어 흥분했다. 품이 넉넉한 니트를 대강 위로 올려 드러난 얄쌍한 허리를 아픈 손길로 틀어쥐곤, 다시 한번 연달아 쿵, 쿵 쳐올렸다. 그 강한 물리적 충격에 영하는 뇌까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최세계에겐 짐승처럼 동물적 감각만 남아 있었다. 이성의 끈이 모조리 끊어져 존재하질 않았다. 상대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박아 넣으려 허리를 쳐올렸다. “흐악!” 비명을 내지른 영하가 바닥 위에서 신음했다.

“아빠, 아빠…….”

그를 말려야 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뒤로 뻗어, 탄탄하게 근육이 선 그의 허벅지를 매만지며 나긋하게 달래 보아도,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실은 사근사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역효과였다. 보기 좋은 입술을 짓씹은 그가 성급한 손길로 자신의 속옷을 아래로 잡아 내렸다. 동시에 퉁, 하고 최대치로 발기한 성기가 곧게 튀어나왔고 두꺼운 가슴팍이 연신 오르내린다. 숨이 씨근덕거렸다. 어떤 상황에도 늘 여유롭던 최세계가 아니었다.

프리컴을 흘리고 있는 두터운 성기가 조금 드러난 엉덩이골 위에 닿았다. 세계는 귀두 끝을 좁은 골에 맞춰 아래로 내리눌렀다. 성기에 밀린 속옷이 점점 내려가 희고 통통한 둔덕을 드러낸다.

오로지 최세계 말고는 누구의 손도 탄 적 없는 하얀 엉덩이에 차 안에서 내내 짓눌리고 만져지느라 조금 붉은 자국이 남아 있다. 그 음란한 자태에 목울대를 울린 그가 어지러운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영하는 몸을 가늘게 떨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하고 있었다. 아빠가 이렇게까지 흥분한 이상 그를 말릴 수는 없다.

게다가 영하는 그와 섹스하고 싶었다. 엉덩이를 벌리고 그의 성기를 받아들이는 상상은 수도 없이 했다. 이미 기사가 있는 차 안에서 성기를 빨리고 아버지의 손가락을 받아들이며 신음했는데 더는 안 된다며 핑계를 댈 의제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 침대로 가. 응? 침대로…….”

“날 얼마나 굶길 셈이야.”

“제발, 응? 나 처음인데, 아아… 바닥에서 이러기 싫어….”

그 말에 후우욱 숨을 깊게 내뱉은 세계가 영하를 짐짝처럼 들어 침실로 향했다. 무릎에 걸려 있던 바지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침실 문을 열자마자 전등이 환히 켜졌다. 영하는 밝은 불빛 아래 섹스하는 게 무서워 불을 꺼 달라고 요청했지만, 세계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들의 속옷을 내렸다. 분홍빛을 띠는 성기가 발기해 음모가 듬성듬성 난 아랫배에 올라붙어 있었다.

“하아, 시발…….”

원색적인 비속어를 뱉은 그가 영하의 성기를 주물렀다.

“하다 하다 여기도 예뻐 가지고, 응?”

부끄러운 말에 하지 말라고 뱉으려던 찰나, 그가 금방 영하의 성기에 관심을 끄고 대뜸 몸을 뒤집고는 완전히 발기한 자신의 것을 엉덩이 위로 문질렀다.

“우응…….”

통통한 엉덩잇살이 귀두에 눌려 살이 조금 파묻힌다. 당장이라도 삽입할 듯 굴더니, 그는 막상 침실에 들어오자 조금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벌려 둔 구멍에 넣지 않고 주변만 맴돌며 성기를 문질렀다.

아래에서 흐른 애액으로 이미 번들거리는 영하의 엉덩이는 다른 윤활유가 필요 없는 상태였다.

엎드린 영하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빠의 숨소리를 듣고선 몸을 떨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이내 영하는 오랜 상상 끝에 섹스가 익숙한 사람처럼 스스로 허리를 낮추곤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성기를 흔들었다. 아름다운 얼굴과 달리 세계의 성기는 좋게 말해도 예쁘다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색이 짙고 핏대가 섰으며 기둥뿌리와 귀두가 굵고 크기 자체가 크기도 했지만, 두께가 지나치게 두꺼웠다.

넣을 수 있을까…….

몇 번이나 상상했던 행위였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자 걱정부터 앞섰다. 이미 손가락 네 개를 받아 낸 구멍이니 가능할 것 같아도, 영하는 상상만 했을 뿐 뒤쪽엔 손 한 번 대 본 적 없는 초짜였다.

그사이에도 세계는 갈라진 둔덕 사이로 제 성기를 올리더니 거칠게 문질렀다. 이미 프리컴이 줄줄 흐르고 있어서 더 시간을 끄는 건 오히려 역효과다. 고개를 돌려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던 영하는 뒤집어진 몸을 바로 돌렸다.

“천천히 해… 응…?”

그를 자극하는 목소리로 달래며 스스로 허벅지를 잡아 다리를 벌려 주었다. 허벅지 안쪽의 연한 살과 꼭 다물린 구멍이 동시에 드러났다. 세계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팔뚝과 목덜미에 근육이 꿈틀대며 핏대가 곧게 섰다.

“어디서 배워서 그런 짓을 해.”

“안 배웠…….”

제대로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세계는 영하의 다리를 넓게 쩌억 벌리게 하곤 자신의 셔츠도 벗어 던졌다. 그을린 듯한 피부에 유려하고 탄력적으로 짜인 상체의 근육들이 일렁였다. 어긋남 없이 가지런한 배의 선명한 식스팩과 넓게 빠진 굴곡 있는 가슴 근육에 홀려 그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최세계는 자신에게 닿은 시선을 느끼곤 웃었다. 포식자가 손안의 피식자를 사냥하듯 느긋한 미소였다.

“네가 벌려 준 거야.”

굵다란 성기가 다시 엉덩이에 닿았다. 벌름대는 구멍의 주름을 하나하나 매만지듯이, 미끈한 귀두가 천천히 항문 위로 닿아 문질러졌다. 둥그런 귀두 끝이 안에 들어갈 듯 은근하게 아래를 압박했다.

“흐으…….”

내려온 앞 머리카락이 그의 눈썹과 이마를 가렸다. 영하는 몸 위에 오른 아빠의 등을 끌어안고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겁을 먹은 눈동자와 마주친 세계는 성기를 슬며시 구멍에 밀착해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한참을, 아주 오랫동안 남의 손가락을 받아들이고 있던 아래는 버거운 듯하지만 입을 벌리듯 벌어진다. 옅은 색으로 주름진 점막이 귀두를 따라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생각보다 쉽게 아래가 벌어졌지만, 영하는 손가락보다 부피가 크게 느껴지는 감각에 입술을 벌렸다. 허리가 공중에 떴고, 잔뜩 힘이 들어간 아랫배가 파드드 떨렸다. 서서히 두려움이 잠식했다.

귀두의 가장 두꺼운 부분이 구멍을 벌리자 은근하게 몸을 타고 오르던 둔통이 찌릿해졌다. 영하는 고통에 허리를 퉁기더니 황급히 그의 가슴을 밀었다. 단단한 피부가 손끝에 느껴졌다.

“너무, 커 아빠, 흐, 안 돼요….”

아직은 무리였다. 영하는 손가락도 좀 전에 차에서 처음 넣어 본 사람이다. 하루 만에 삽입 섹스는 불가능했다.

애처로운 애원에도 세계는 고개를 내려 영하의 움직임으로 다시 빠져나간 성기를 바라보더니 미간에 주름을 만들곤 성기를 엉덩이골에 다시 대었다.

이 작업만 여러 번이었기에 더는 버티고 견딜 구석이 없다. 거추장스러운 앞머리를 뒤로 넘긴 그는, 아들의 아래에서 흐른 액으로 번들대는 귀두를 힘껏 구멍에 맞췄다. 동시에 말을 끊어 가듯 뱉으며, 단번에 안으로 처박았다.

“안 된다고,”

“아……!”

“하지 말랬지.”

순식간에 치닫는 고통과 아래가 강제로 벌어지는 감각에 전신이 꿈틀댔다.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침실을 울렸고 곧이어 영하는 눈물을 흘렸다.

퍼억-

“아아아악……!”

격통이 최영하를 덮쳤다. 다리를 앞뒤로 버둥대며 가진 힘을 모두 쏟아부어 그의 어깨를 밀어내고 맨살을 꼬집었다. 세계는 통증에 이마만 좁힐 뿐 아래를 빼지 않았다. 도리어 아들의 움직임으로 겨우 넣은 성기가 빠져나갈까 봐 몸을 더 강하게 옥죄일 뿐이었다.

항문이 불에 타듯 뜨겁다. 영하는 아래가 찢어졌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러움과 두려움 섞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했는데, 아래가 너무 아팠다. 손가락 네 개를 받고도 버텨 냈는데 이번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영하는 가느다란 소리를 내며 그에게 애원했다. 제발, 빼 주세요. 아빠아……. 그러고는 곧바로 그를 밀쳐 내곤 서럽게 호소했다.

“아파, 아파! 아파아… 아빠, 흐으 아빠아……!”

“절반밖에 안 넣었어. 엄살 부리지 마.”

“거, 거짓말…….”

대답 대신 손을 당겨 접합부를 만지게 했다. 다음 순간 영하는 기절하고 싶었다. 주름이 팽팽하게 펴져 흔적도 느껴지질 않았고, 핏대가 선 성기가 자신의 아래에 들어차 있었다. 삽입이 아프다고 울었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와 관계하고 있었다.

“으흑… 아…….”

울며 신음하자, 그가 잡은 손을 이어진 성기로 옮겼다. 그의 말대로 기둥이 더 남아 있었다. 뒷물을 줄줄 흘리고 그렇게 오랜 시간 안을 풀어도 다 들어가질 않았다.

“싫어… 다 넣지 마…. 그만할래. 안 할래….”

“아빠 말 들어. 착하지?”

“아니, 안 돼! 제발… 나 찢어져…….”

“다치지 않게 할게. 응?”

“흐윽…….”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자상한 목소리를 내어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영하는 앞선 두려움에 입술을 떨었다. 반밖에 넣지 않았다지만 아래가 꽉 찬 듯 속이 더부룩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와의 섹스로 인한 육체적 손상이 두려운 건지, 아버지와 관계를 맺었다는 부도덕함에 대한 죄악감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기분 좋을 거야. 약속해.”

그 와중에도 세계는 연신 영하를 달랬다. 허락 없이는 더는 넣지 않겠다는 듯이.

“여기까지 넣어야 기분 좋아져. 네가 느끼는 지점은 여기 안쪽에 있다고.”

세계가 부드러운 아랫배를 약하게 누르며 말했다. 영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차 안에서 끈질기게 안을 파헤치듯 구멍을 빨며 손가락을 넣어 이곳저곳 확인하듯 헤집은 결과였다. 영하는 그곳을 압박하면 기사가 있다는 것도 잊고 “흐앙.” 하고 귀여운 소리를 냈다.

“안 돼… 무서워….”

“허락해 줘. 응? 영하야.”

그가 자꾸만 귓가와 뺨에 입 맞추며 속삭인다. 홀릴 듯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끊임없이 영하에게 허락을 구했다.

“넣고 싶어, 영하야. 아프지 않을 거야. 끝까지 박아 넣어서 흔들어 주면 너도 결국 질질 싸면서 더 해 달라 애원하게 될 거야.”

낮게 깔린 목소리는 귀를 녹일 것처럼 달콤했으나 뱉어 내는 것은 저질에 가까운 음란한 말들이라 괴리감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에게 홀리는 기분이었다.

입술만 앙다문 채 대답하지 않자, 세계의 큰손이 날씬한 배를 다시 압박했다. 겨우 흔적만큼 붙어 있는 말캉한 살이 손가락에 착 감겼다. 숨을 크게 마신 영하는 모이를 쪼듯 제 입에 입 맞추는 그를 몽롱하게 올려다보며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아프게 해 줘…….”

“노력은 해 볼게.”

영하의 안은 좁고, 세계의 것은 지나치게 컸다. 단지 밀어 넣는다고 쉽사리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영하에게 허락을 받았지만, 세계는 푹- 하고 박을 때마다 성기를 좀 더 안쪽으로 넣기 위해 찡그렸다. 아무리 좆을 밀어 넣어도 원하는 곳까지 들어가질 않았다.

여러 번 추삽질한 그는 영하의 다리를 최대한으로 벌리고 귀두가 단단한 곳에 묻힌 걸 느낀 것인지 미간을 조금 좁힌다. 그리고 거칠게 움직였다.

퍼억-

“아악……!”

안이 벌어지는 걸 예감한 그는 성기를 바깥쪽으로 쑥 빼내더니 단번에 치받았다. 철썩하는 낯 뜨거운 소리와 함께 영하가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결장을 열어 성기가 뿌리 끝까지 처박혔다.

“아으으으응!”

“여기가 결장이야.”

“하지 마. 말하지…….”

느리게 움직이던 것이 속도가 붙었다. 영하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허릿짓에 온몸이 흔들렸고 동시에 아래에서 절절한 감각이 쏟아졌다. 화끈하게 불이 이는 듯한, 타들어 가는 고통과 감각이 역설적으로 자신을 정제하지 못하도록 막아 냈다. 창피하기 짝이 없는 신음이 벌어진 입으로 부끄러운 줄 모르고 튀어나왔다.

“아! 아아…! 흐, 아윽! 으응! 싫어…!”

“싫은 게 아니라 좋은 거야. 봐 봐, 질질 싸고 있잖아.”

“거짓, 말 아니야! 너무, 흑 아프, 아흐윽, 아프…….”

너무 아팠다. 거짓이 아니었다. 영하는 두꺼운 살 기둥에 몸이 꿰어 옴짝달싹을 못 한 채로 신음했다. 아래가 찢어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었다. 화상을 입은 듯 뜨겁고, 동시에 커다란 찰과상이 난 듯 쓰라렸다.

안쪽의 점막에서부터 기이한 감각이 피어났다. 크기가 큰 귀두 갓이 어느 한 부근을 압박하듯 위아래로 움직이면 영하는 몸이 아래로 꺼졌다 다시 떠오르는 감각을 강제로 느껴야만 했다.

“으흑, 아, 아으, 응!”

결장이 무엇인지 모르는 영하는 그가 어디까지 들어왔다는 건지 이야기해도 조금도 와닿지 않아 그저 흐느꼈다. 거칠게 몸이 앞뒤로 뒤흔들린다. 그가 정말 자신의 안에 삽입했다. 그는 영하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나 영하의 아빠였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끝까지 빠져나간 성기가 쿵, 하고 올려붙이듯 안으로 쑤셔 들어온다. 아으윽. 콧등을 찡그리며 헐떡였다. 세계는 영하의 다리를 고쳐 안으며 흥분한 목소리를 냈다.

“고개 돌리지 마.”

“흐, 으응…….”

“아빠 봐. 영하야.”

단호한 명령에 다시금 따를 수밖에 없다. 화려한 글라스 테이블 조명에 시선을 두며 흔들리던 영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했다.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가 온전히 자신을 향해 있다. 뜨겁게 올려 박던 성기의 움직임이 느려지며 그가 입술을 가까이 붙이고 속삭였다.

“내 전부가 네 거야.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우응, 아, 아앗, 응, 아아, 아빠……!”

영하는 울며 입술을 벌렸다. 지금도 충분히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곧이어 그가 세차게 허리를 흔들자 지금껏 아빠가 자신을 생각해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리듬감 없이 마구잡이로 안을 쑤셔 댔다. 하얀 엉덩이에 부딪치는 힘이 배 위까지 전달돼 상반신이 쿵, 쿵 하고 흔들려 머리까지 어지럽다.

“아, 아아! 우응, 아!”

“하…….”

“아빠, 응, 아빠아…!”

본의 아닌 신음 소리가 연달아 튀어나왔다. 입을 다물어도 거친 몸짓에 전신을 가누질 못했고 결국 다시 입술이 벌어져 야한 소리를 뱉어 냈다.

지독한 통증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느끼자, 삽입되자마자 풀이 죽었던 영하의 성기도 다시 일어났다. 세계가 조금 만져 주니 금방 꼿꼿이 크기를 키웠다.

이마에 땀이 맺힌 세계는 귀찮다는 듯 닦아 내고는 영하의 다리를 잡아 어깨까지 내리눌렀다. 무릎이 어깨 위로 바짝 닿아 허리가 완전히 꺾인 자세였다. 내내 울기만 하고 아프다던 영하가 불편한 기색 없이 자세를 받아들이는 것을 확인한 그가 오른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허리 안 아파?”

“으응…?”

영하는 백치처럼 멀거니 올려다보기만 했다. 허리보단 성기가 빠져 느슨해진 구멍이 신경 쓰였다. 안 보이지만 구멍이 뻐끔대고 있는 것 같았다. 곧 멀어진 성기의 귀두부가 열려 있는 점막에 닿았다. 등골이 오싹해져 뺨을 붉혔다. 세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까이 했다. 반 접힌 몸 덕에, 두 사람은 온전히 겹쳐졌다.

“넣어 줘?”

분명 아플 테니까, 안 넣는 게 좋을 거라는 이성적인 판단은 들었지만, 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더라도 그가 안에 사정해 주어야 한다. 영하의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이룰 날이었다.

“아직도 아파?”

“흐으, 모르겠, 으응…….”

“그럼 좋은 거야.”

땀에 젖은 몸이 치덕이듯 부딪쳤다. 성기가 안을 빠르게 왕복하자 미약하게 피어나던 쾌감이 증폭된다. 손아래로 느껴지는 그의 등에 새겨진 단단한 근육을 어루만지며 허리를 움직이자 세계의 얼굴이 뺨 가까이에 닿았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그가 자신에게 박아 넣으며 완전히 흥분했다는 것을 느끼자 삽입당하는 것보다 더 큰 원초적인 쾌락이 영하를 덮쳤다. 등허리가 찌르르했고 커다란 성기를 물고 있는 구멍이 움찔 조였다. 허벅지에 약한 살이 철썩철썩 따라 흔들렸다.

“아우으응―!”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영하의 성기에서 정액이 튀어나와 흰 배를 더럽혔다. 세계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크게 허리를 흔들었다. 눈을 질끈 감고 흐느끼듯 가련하게 사정을 마친 영하는 아래에서 정액을 뱉는 와중에도 자꾸만 안을 쑤셔 대는 성기가 주는 쾌감이 무서웠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할 말이 있는 듯 그를 불렀다.

“아, 아빠, 아빠아아!”

“응.”

“아빠, 흐, 아응, 나, 아, 아아아……!”

얼른 아빠가 안에다 싸 주어야 하는데 몸이 이상하다. 더는 하면 안 된다는 본능에 사로잡혀 손톱을 세워 지금 이 순간에도 대답해 주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채워 대는 그의 어깨를 긁었다.

“말해. 응? 왜?”

세계가 허릿짓을 멈추지 않으며 총애하는 애첩의 베갯머리송사를 들은 사내처럼 뭐든 다 들어줄 것 같은 음성으로 영하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난잡한 음란함이 잔뜩 묻은 목소리였다. 자꾸만 쳐올리는 감각에 휘말린 영하는 대답도 온전치 못했다. 말하는 사이사이에 신음성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으앗. 흑……. 빼 주, 아으 흥, 빼 주세요….”

“그건 안 돼.”

세계는 단호했다. 불안하다. 기분이 이상해……. 빼야 하는데, 이상한데 아래가, 뭔가…….

소리 내어 울면서 등을 긁어도 세계는 성기를 빼 달란 말은 들어주지 않았다. 너무 오래 하는데, 빨리 싸고 끝냈으면 좋겠는데. 그치만 정말 안 된다. 이 이상 안을 건드리면 곤란해진다는 예감이 들었다.

영하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그의 어깨를 밀고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극당한 세계의 몸놀림이 빠르고 거칠어졌다. 조금의 배려도 없이 오금 뒤를 엉덩이의 근육이 바짝 당겨질 만큼 세게 누르며, 애액으로 온통 젖은 엉덩이에 때려 박았다.

“흐아악! 아흐으……! 아, 시러, 응, 제발….”

물기 젖은 살들끼리 철썩이며 부딪칠 때마다 연달아 신음하며 영하는 두려움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느꼈다. 그의 귀두부가 전립선을 꽉 누르며 압박하는 순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던 영하는 눈앞이 번쩍이고 사지가 제멋대로 흔들리는 걸 느꼈다.

“응, 아, 아, 앙, 아! 흐아아……! 끄, 흐읏….”

그의 목을 꽉 끌어안은 영하가 온몸을 떨며 교성을 내지르고 성기를 둥글게 품은 아랫배도 함께 전율했다.

세계는 벌벌 떠는 몸을 강제로 내리눌렀다. 그의 것을 빼내려 잔뜩 좁아 드는 구멍에 욕설을 내뱉으며 엉덩이 한쪽을 엄지로 길게 벌려 박아 넣었다.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구멍이 가로로 넓어지는 걸 느끼며 영하는 경악에 차 소리쳤다.

“흐아악! 안 돼, 안 돼, 안…!”

눈가가 새빨개진 영하가 우는소리를 내며 그에게 애원했다. 곧 뒤로 넘어갈 듯 숨이 가쁘게 헐떡였다.

“제바, 흐 아빠, 제발 그만, 그, 싫어요, 안, 으흐응…! 싫어어어!”

몸은 연신 발작하듯 흔들리고 손마디 하나에도 힘을 주질 못한다. 아우으으응, 으읏, 싫어……. 동시에 한참을 거칠게 몰아세우던 그가 몸짓을 멈췄다. 안을 헤집던 동작이 가시고 신음 하나 없던 그가 사타구니를 엉덩이에 바짝 붙인 채 귓가에 대고 한숨처럼 탄식을 뱉었다.

곧이어 그의 하체가 전율하듯 진동하는 것을 느껴, 영하는 그가 안에 사정하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생각보다 어떠한 느낌이 나지 않았다.

뜨거운 게…… 뿌려지는 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그러나 아쉬움보단 몸의 감각이 우선이었다. 자꾸만 눈물이 새어 나오고 몸이 전율했다.

그래. 전율에 가까웠다. 거칠기 짝이 없는 출납이 반복될 때마다, 그 배려 없는 움직임에 음탕한 정염이 영하의 전신을 기어올랐다. 예민하게 바짝 선 살갗마다 이를 박아 넣고 괴롭혔다.

고통과 동시에 정신을 잃을 듯한 쾌락이 잠깐 가셨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찌르르 절정이 찾아와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사정 없는 절정이 이런 건가 하고 멍청해진 뇌로 판단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아니었다.

세계는 아들의 몸 깊숙한 곳에 사정을 하는 도중 잠깐 미간을 좁혔다. 그러곤 영하의 아랫배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다문다. 눈빛이 가늘어졌다.

주루륵―

빨갛게 열이 오른 엉덩이 사이에서 성기를 빼내자 곧바로 그의 성기 둘레만큼 동그랗게 벌어진 구멍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가 아들의 장내에 사정한 정액과…… 섞이지 못한 맑은 액이 조로로록 수도꼭지를 튼 듯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멀거니 그것을 내려다보던 세계는 사정없이 얼굴을 구기며 곧 욕을 내뱉었다.

“젠장할…….”

영하는 하얀 허벅다리를 내놓은 부끄러운 자세를 추스르지도 못하고 흐느꼈다. 지독하게 괴롭히던 성기를 빼냈음에도 불구하고 절정감을 느끼는 것처럼 신음성이 느리게 이어졌다.

넓게 벌어지던 구멍이 천천히 좁혀지다 영하의 몸이 움찔 튀는 순간, 함께 바짝 조여지는 동시에 픽, 하고 좁은 구멍 사이로 채 흐르지 못한 맑은 물이 튀었다.

“흐으읏.”

신음과 함께 뻐끔거리며 다시금 벌어졌다. 마찰로 물든 구멍이 연달아 벌어지고 다무는 것을 반복했다.

세계는 곧 이마를 짚었다. 감당하기 힘든 음란한 광경이다.

“골 때리네.”

정말 난감하다는 듯이 얼굴을 문질렀다. 잘생긴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오랫동안 참아 낸 욕망을 드디어 해갈한 사람답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낯으로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으흑…….”

영하는 떨리는 제 몸을 보기만 하는 아빠가 야속해 울었다. 자기가 이렇게 만들었으면서.

“흐, 나 힘든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잇달아 절정이 찾아오고 머리가 몽롱했다. 언제까지 이러는 거지 두려워 힘이 빠졌지만 어떻게든 몸을 옆으로 돌렸다. 모로 누워 엎드리려는 순간, 세계가 영하의 아랫배를 잡아 위로 잡아당겼다.

“하으윽―.”

둔통이 잔뜩 스며든 엉덩이를 치켜들고 엎드렸다. 그의 손길이 발갛게 달아오른 엉덩이를 가볍게 쥐었다. 손이 닿지 않아도 구멍이 스스로 열리는 게 느껴졌으나 영하는 입술을 우물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아빠, 나 몸이, 이상해서, 응, 더 이, 상 못 해요…….”

“…….”

“아프, 흑, 아픈 것 같아. 나 뭔가 잘못된 거 같아. 흑.”

능숙한 사람처럼 스스로 다리를 벌리며 시작했으나 상상을 넘긴 행위에 이제 영하는 어리숙한 사람이 되어 판단력을 내려놓았다. 그가 너무 깊게, 너무 거칠게 해 버려 몸의 어디에 문제가 생겼다고만 느껴졌다.

안 아프게 해 주겠다면서, 약속했으면서…….

지금도 그가 배 아래를 받쳐 주지 않는 이상 엎드리는 자세도 불가능할 만큼 온몸의 힘이 빠졌다. 덕분에 큰 손바닥 하나에 몸무게를 지탱해 잔뜩 눌린 배가 불편하고 괴로웠다. 그 와중에도 뒤가 멋대로 조여들고 그럴 때마다 흐느낌이 새어 나온다.

더는 불가능이다. 움직이는 것도, 소리 내는 것도, 엉덩이가 벌어지는 것도 다…….

“그만, 그만해요…… 안에, 쌌으니까 됐잖아…….”

영하는 배가 아파서 남은 힘을 쥐어짜 엎드린 몸을 팔로 버티고 있었다. 괴로워 주저앉고 싶은데, 세계는 잘 짜인 가슴팍을 오르내려 흉포한 숨을 내뱉으며 영하를 지탱했다. 목울대가 깊게 움직이더니 땀으로 젖은 머리칼을 넘기곤 영하의 목덜미에 입 맞춘다. 영하도 이곳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영하야.”

“으응, 그만해…… 아파…….”

예민해진 엉덩이에 성기가 닿았다. 영하는 울상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눈물이 침구 위로 툭툭 떨어진다. 파르르 떨리는 통통한 아랫입술이 울먹이며 산 모양을 그렸다.

“귀여워.”

“하지, 마!”

영 딴소리를 뱉은 그가 뒤를 벌리고 단번에 귀두를 쑤셔 넣자마자 한 번도 만져 주지 않은 성기가 제멋대로 발기해 묽은 흰 액을 줄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영하는 까무룩 의식을 잃었다.

“아빠, 흑, 흐으, 싫, 아앗, 흐으응….”

기절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영하는 몸이 흔들리는 감각, 그리고 귀를 빨아 당기는 감각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두툼하게 발기한 성기가 닿았다. 통통하게 부은 구멍 위로 번들거리고 뜨거운 귀두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느린 허릿짓으로 천천히 남근이 구멍을 벌리고 안으로 들어오자, 항문이 익숙하게 그것을 집어삼켰다. 아래가 넓게 벌어지는 동시에 영하의 등이 유려하게 휘었다.

“하아…….”

눈을 까뒤집으며 내리감은 세계가 동시에 숨을 섞어 뱉으며 미소지었다. 영하의 아래에서 자신의 성기를 감싸듯 쏟아져 나왔던 물을 느낀 순간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으응! 흐, 아파, 너무, 흑, 거칠어…….”

낭창한 허리가 움찔 옆으로 튀었다. 다정한 말 하나 없이 동물처럼 삽입과 빼는 것만 반복되는 것은 영하가 상상하던 섹스가 아니었다. 침대에 가로로 누워 엎드린 영하의 다리가 침대 밖에서 하늘하늘 흔들린다. 바닥 위에 선 세계는 침대가 쿵쿵거리며 흔들릴 만큼 추삽질의 속도를 격하게 올렸다.

“천, 천히… 응, 아으, 그만, 아빠…… 아파요…!”

뒤로 당겨진 팔도 아팠고 무자비하게 성기가 드나드는 구멍도 아팠다. 그가 꽝, 콰앙! 하고 앞으로 치받을 때마다 전신이 튀어 나가는 기분이었다.

이불 위에 뺨을 댄 영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곤 자신이 내는 낯선 목소리를 애써 죽였다. 영하가 입을 열지 않으면 침실에는 거칠게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최세계는 완전히 불타올라 있지만, 영하에겐 그 적막함이 마치 차갑고 건조한 섹스로 느껴져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서럽게 울며 이불 위를 긁는다.

“으응, 흐으흑…….”

울음소리가 격해지자 뒤늦게 눈치챈 세계가 영하의 몸에서 빠져나온 뒤 엎드린 몸을 뒤집었다. 빨개진 얼굴로 애달프게 우는 것을 보고 혀를 차고는 몸을 안고 침대에 누워 제 위에 올리곤 뻔뻔스레 말했다.

“우리 영하 누가 울렸어.”

“안 할래… 이제 안 할래… 다시는….”

세계의 목을 끌어안은 영하가 다시는 안 하겠다는 전제를 붙이자 그가 급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할까? 원하는 대로 할게.”

“얼굴 보고…….”

“그거면 돼?”

세계는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영하의 몸을 허벅지 위에 올린다. 축 늘어진 몸은 저항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아직 벌어져 있는 구멍에 대고 귀두를 맞추려니 영하는 또 예견된 통증에 겁이 나서 끙끙거렸다.

“아빠 들어오면, 안에 긁혀서… 아파. 살살 해 주세요….”

“돌겠네. 진짜 너 입 좀 다물어, 제발.”

“싫어….”

그러나 마주 보자 시각적 자극이 더 극심했다. 빳빳하게 선 분홍색 성기가 공중에서 흔들렸고, 영하의 음란한 아랫배는 몇 번이나 세계가 쏟아 낸 정액으로 도톰하게 부풀어 있었다. 허벅지 안쪽도 붉게 마찰된 흔적이 역력했다. 영하의 몸을 훑는 세계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 아프게 해 볼게.”

“응…….”

그가 스스로 다짐하듯 뱉고는 영하의 몸을 잡고 위로 쳐올린다. 밑동까지 단숨에 박혔다. 곧장 외마디의 비명 소리가 내질러졌다.

“흐아아악―!”

“섹스, 해 보니까 별거 아니잖아.”

쿠웅, 박아 넣은 성기를 느리게 빼며 그가 갑작스레 말을 꺼냈다. 영하는 안을 파고드는 성기를 느끼느라 제대로 듣질 못했다.

“별거 아니야. 걱정할 것 없어. 그러니까 넌 아빠만 생각해.”

“흐아아…! 아…!”

마지막 말은 귀에 들어왔다. 영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음했다.

구멍이 부드럽게 열렸다. 영하의 몸 안쪽은 좁아 삽입이 쉽진 않았지만, 입구인 항문은 처음이었을 차에서도 쉽게 벌어졌다. 그가 자신의 성기를 부드럽게 감싸는 안을 느끼며 열이 오른 눈으로 영하의 턱을 깨물었다. 끄흐으, 다시 흐른 눈물이 턱을 타고 그의 입술로 흘러들었다.

“하아, 너, 뒤로 자위해 봤어?”

영하는 입만 벌리면 신음이 나와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만 내저었다.

“우응, 응, 아!”

좁다란 허리를 잡고 아래로 꾹 내리누른다. 영하는 내젓던 고개를 푹 숙이고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입가에 닿는 판판한 가슴 사이를 혀로 내밀어 핥으며 그가 다시 물었다.

“한 번도 안 만졌다고? 나로 상상했을 텐데.”

“흐응, 앗, 안… 했어…. 흐으윽!”

엉덩이가 그의 사타구니에 꽉 부딪쳐 문질러지자 성기가 깊숙이 들어와 점막 안쪽을 비벼 댔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쾌감에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엉덩이를 세게 조이니 그가 목구멍을 울리며 윽, 하고 짧은 신음을 흘린다.

영하는 손을 내려 그의 가슴 사이를 더듬었다. 땀에 젖은 피부가 반질반질 윤이 나고, 근육으로 다져진 가슴의 굴곡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팔뚝에 힘을 주며 영하의 몸을 잡고 흔들 때마다 손바닥 아래로 역동하는 가슴 근육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덜 뜨인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안 믿어, 영하. 힘 풀어. 아파.”

“아빠보다… 내가 더 아파…!”

“꼬박꼬박 말대꾸는.”

영하가 곧 울먹였다.

“나올 것 같, 그만, 할래 그, 마안…!”

어깨에 손톱을 잔뜩 박으며 고개를 가로질렀다. 목젖이 두드러지지 않은 대신 목빗근이 길게 그어졌다. 어지럼증을 동반한 오싹한 쾌락이 영하의 뒤를 강타했다.

 “아우으응…!”

두터운 성기가 안쪽 깊이 박힐 때마다 날씬한 뱃가죽이 요동쳤고, 영하는 좀 전과 비슷한 감각을 느꼈다. 눈동자에 뜨끈한 눈물이 차올랐다. 자기중심적인 아빠는 이번에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몸이 전율하듯 떨리더니 구멍이 꽉 조이는 것과 동시에 앞에서 정액이 튀어나왔다. 이미 여러 차례 사정한 아래는 거의 투명한 것에 가까운 묽은 액을 조금 흘렸을 뿐이다.

세계는 영하가 정액을 느리게 다 뱉어 낼 때까지 추삽질하다 몸을 쾅, 소리 날 만큼 강하게 치받았다.

“끄흐, 응, 아…!”

접합부가 불에 덴 듯 뜨겁고 영하는 그의 품 안에 안겨 소리 없이 흐느꼈다. 지글지글 끓는 듯한 쾌락에 숨만 몰아쉬는 것이 겨우였다.

근육이 바짝 오른 팔뚝이 약한 몸을 강하게 옭아매고 끌어안는다. 온몸이 이 남자에게 전가된 기분이다. 아랫배를 쿵쿵 찔러 대는 둔통과 느끼는 지점이 계속해서 두꺼운 것으로 압박하며 문질러 대는 동시적인 감각에 영하는 입을 벌린 채 헐떡였다.

예쁜 눈 아래가 발갛게 물들어 음란한 얼굴이었다. 세계가 그 야한 얼굴에 홀린 듯 눈물과 타액으로 젖은 입술을 혀로 핥는다. 눈동자가 한 템포 느리게 마주쳤다. 아…….

빈틈없이 달라붙은 뜨끈한 가슴 너머 존재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고강도의 운동을 하는 남자처럼 그의 심장이 아주 빠르게 격동했다. 뜨거운 열기를 간직한 채 쉼 없이 혈액을 분출하고 있었다.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듣고 풍성한 속눈썹을 파르르 떤 영하가 조금 벌어진 입을 더 벌려 혀를 내밀자마자 세계와 혀가 얽혔다. 미지근한 감촉. 간지러운 입천장을 건드릴 때면 그의 성기를 뿌리 끝까지 담아낸 구멍이 오물오물 조여들었다. 땀으로 젖은 허리춤을 문지른 세계가 입을 맞춘 채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영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의 입술에 매달렸다.

그만하고 싶어…….

자신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그가 두 번째 사정을 끝냈으니 이제 끝내는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세계는 “미안해. 조금만 참아.” 부드럽게 말했으나 영하는 그가 미웠다.

“한 번만. 응? 영하야….”

“싫어…. 원래, 이렇게… 많이 안 하는….”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뭘 알아. 원래 다들, 이 정도는 해.”

“안 해 봐도, 알아. 이 짐승아.”

“사자는 하루에도 서른 번을 해.”

열이 오른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정액을 서른 번을 쌀 순 없으니 실제로 그렇게 할 일은 없겠지만, 최소한 서른 번은 한 것 같은 몸 상태로 만들어 주겠다는 소리 같았다. 영하는 질린 얼굴을 하고 눈을 피했다.

“어쩔 수 없어. 우리 영하가 분수를 치는데.”

“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저열한 단어에 먼발치의 안락 소파를 응시하던 눈이 흔들렸다. 수치심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어떻게 한 번만 하고 끝내겠어? 응? 병원에서 그런 말은 없었는데, 하하.”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는 아들의 톡 튀어나온 젖꼭지를 엄지로 어루만졌다. 다 자란 몸을 안고 이리저리 움직여 힘이 들 텐데도 그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아 잔뜩 신이 난 십 대 소년처럼 웃었다.

세계는 작은 유륜을 집요하게 핥고 나선 괴로워하는 영하의 몸을 돌려 앉히곤 뒤에서 끌어안고 엉덩이에 발기한 성기를 거칠게 문질렀다. 골 사이로 파고 들어간 성기가 회음부를 귀두로 찌르고 구멍 위를 세차게 마찰했다.

뜨겁다. 동시에 지독한 갈증을 느꼈다.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이었다. 첫 섹스에 구멍의 허전함을 느꼈다. 아빠의 문란함을 닮았나 봐, 그래서 내가……. 침음한 영하는 고개를 최대한 뒤로 돌려 혀를 내밀었다. 발간 혀를 야하게 내민 자태에도 그는 입 맞춰 주지 않았다.

“으흐, 아빠… 응? 으응?”

“넣게 해 주면.”

“으응, 넣어, 넣어 주세요…!”

고민 없이 튀어나오는 대답에 입 안의 살을 아프게 씹은 세계가 성급히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미끈하게 받아들이는 구멍은 좁은 안쪽을 억지로 열 때면 허리가 휘긴 했으나 느리게 움직이자 더는 아프다는 말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으응, 좋아…….”

완전히 삽입하여 연한 엉덩이에 바짝 붙은 음모가 험하게 문질러졌다. 둥근 엉덩이에 보조개가 생길 만큼 힘을 준 영하는 허리를 아래로 내리고 그가 가르쳐 준 대로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여 보였다. 아으으으응……. 간드러진 콧소리가 흘렀다.

세계는 영하의 자잘한 움직임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듯 미간을 좁혔지만, 섣불리 강하게 움직이진 않았다. 잔뜩 느끼기 시작한 아들이 마른 가슴팍을 내민 채 헐떡이고 있었다.

납작한 배를 가로지르는 직선의 얕은 근육이 잡힌 배 위로 부딪치는 성기에 그의 손이 닿자마자 영하는 눈을 찌푸리며 입술을 떨었다.

“하으으읏……. 으응, 좋아, 아빠아아…….”

그는 최대한 본능을 억누른다. 영하가 더는 아프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뒤에 박아 넣은 세계의 성기로 자위하듯 조악한 움직임으로 느끼고 있었다. 둥그런 뺨과 입술이 장밋빛으로 달아올라 뜨끈한 숨을 뱉어 낸다.

영하는 엉덩이를 그의 사타구니 위로 치받으며 연신 신음했다. 이제 영하는 소리를 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든 더 자신에게 발정하길 원했다.

“아빠… 움직여 줘…….”

참아 내고 있던 그가 아들이 하는 명령에 강하게 허릿짓 해 올려붙였다.

“아으―! 하으윽, 아앗….”

온몸이 쿵쿵 처박혀 입을 다물 새도 없었다. 날씬한 하얀 배 위에 옅은 정액이 몇 번이나 쏟아지고서야 안에서 사정한 그는 녹초가 되어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는 아들의 구멍을 핥았다.

자신이 싸 놓은 정액이 드문드문 떨어지는 부푼 점막 위를 핥고 깨끗한 엉덩잇살을 깨물고, 회음부에 높은 콧대를 문질렀다. 영하는 얌전히 눈만 끔뻑인다.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정신을 잃을 듯 보였다.

“그만 괴롭혀야겠지.”

그가 미약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몽롱한 시선이 천천히 그에게로 닿았다. 입꼬리를 당겨 홀릴 듯이 미소 지은 남자가 열이 발그레하게 오른 뺨에 입 맞추고 바로 옆으로 몸을 뉘었다.

커다란 몸의 움직임을 느낀 영하는 그의 성기가 배 속을 거칠게 휘저었던 것이 떠올라 눈가가 찌푸려졌다. 아직도 아래쪽이 얼얼하다. 몽둥이로 쑤셔진 기분이었다. 사실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행위이긴 했다.

“우리 영하, 힘들었어?”

아이에게 묻듯 다정한 목소리였다. 배 위에 잔뜩 싸지른 정액을 영하의 가슴에 펴 바르며 하는 말이었다. 그에게 내내 빨리고 깨물린 가슴은 잇자국이 듬성듬성 나 있었고, 작은 유두가 꼿꼿하게 서서 퉁퉁한 모양으로 부풀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힘겹게 고개를 돌리면 예쁘게 웃는 얼굴이 시선에 들어온다. 속이 시커먼 구미호가 따로 없었다.

*

영하는 지쳐 눈을 뜨지 못했다. 가슴이 한참 빨려 퉁퉁 부어 자는 도중에도 젖꼭지가 스칠 때마다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근래에 운동이라곤 숟가락 드는 정도가 다였던 영하에겐 두 시간을 넘긴 섹스가 한계점을 지난 스포츠 같았다. 끝나고 나니 쓴 적 없는 근육이 혹사당해 내지르는 통증으로 온몸이 만신창이다.

몸이 지나치게 무거웠다. 꼼짝 없이 수렁에 빠진 것처럼 얌전히 잠이 들었고, 도저히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근처에서 아빠가 일어나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지만, 정말 눈이 떠지지 않았다.

“언제까지 잘 거야.”

시원한 손이 뺨에 닿았다. 허밍을 속삭이듯 다정한 목소리로 아들을 깨우는 그도 어제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것인지 나른한 목소리였지만, 유난히 기분이 좋은 듯했다. 얼굴을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일어나. 열 시야.”

정신은 깨어났지만 대답할 기운도 없어 미동하지 않았다. 몇 번 머리칼을 쓰다듬던 그가 영하를 안아 올렸다. 사각사각 이불이 걷어지고, 알몸 위로 부드러운 담요가 겹쳐졌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등 아래를 받쳤으나 영하는 움직이자마자 미간을 좁히곤 앓는 소리를 냈다.

“아파, 아파…….”

아직 벌겋게 오른 마찰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엉덩이와 내내 벌어져 있던 허벅지 안쪽 근육이 고통스러웠다. 오랫동안 괴롭혀진 구멍은 아프진 않았어도 여직 동그랗게 벌어져 정액을 뚝뚝 흘리는 기분이라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도저히 제 발로 일어나 걸을 수 없는 게 사실이라, 끙끙대면서도 세계의 품에 안겨 이동했다. 무겁지도 않은지 다 큰 아들을 안은 채로 머리를 쓸어 넘겨 준다. 평소보다 부은 얼굴로 눈을 못 뜨는 것을 보고 “아기 같네.” 하기도 했다. 큰일 날 소리였다.

“왜 회사 안 갔어…?”

“30분 되면 나갈 거야.”

세계는 등받이가 없는 소파에다 아들을 눕혀 주곤 가슴 아래로 내려간 담요를 어깨까지 올려 주었다. 담요 끝에 달린 초록색 수술 장식이 어깨 아래를 간지럽혔다. 그 감각에 눈을 떴다.

거실에 불은 꺼져 있었지만, 커튼을 걷은 너른 창 너머로 햇살이 눈부시도록 내리쬐고 있었다. 커피를 내려 마신 건지 은은하게 커피 향이 났다. 그런 작은 것들이 영하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아빠…….”

“응. 왜.”

세계는 이미 출근 복장으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한쪽 벽면에 어긋난 형태로 연달아 달린 거울 속으로 자신의 차림새를 보는 내내 콧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렇게 좋을까. 욕망에 참 충실해… 짐승 같네…….

섹스했다고 태도가 바뀌거나 사람이 달라지진 않았다. 다만 지나치게 기분이 좋을 뿐. 세계는 저처럼 쭈뼛대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애초에 뇌에 그런 기능이 입력이 안 되어 있는 사람 같았다.

게다가 완전히 녹초가 된 본인과 달리 어제 한참 힘을 썼을 남자에게선 약간의 무리한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렇겠지. 모든 게 처음인 최영하와 다르게 최세계는 평소에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라 체력이 좋은 데다…… 경험도 많았다. 그 생각에 영하는 담요를 갉작거리며 손가락만 까딱였다.

과거는 몰라도 이렇게 된 이상 아빠는 그 누구와도 섹스할 수 없다. 하기만 해 봐, 가만두지 않을 계획이다. 전처럼 문란하게 하룻밤을 보내다간 뼈도 못 추리게 만들어 버릴 테다.

그가 수트 핏을 다시 고친 후 영하에게로 다가왔다. 대충 입어도 잘생겼는데 뭘 그리 매일같이 신경 쓰는지. 송장처럼 누워 눈만 끔뻑이며 올려다보자 머리를 뒤로 넘긴 그가 헛헛하게 웃었다.

“체력 좀 늘려. 체력은 자산이라는데 넌 그런 거로 따지면 돈 한 푼 없는 거지야. 스무 살이 섹스하다 기절한다는 게 말이 돼?”

“기절한 사람 깨워서 다시 했잖아. 왜 갑자기 잔소리야?”

“그렇다고 기절한 사람한테 박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아침부터 토론할 주제는 아닌데. 다시 피곤해진다.

“출근이나 해. 나 머리 아파.”

대꾸하기도 싫어 담요를 목 아래까지 당기곤 눈으로만 아빠의 등을 따라갔다. 나중에는 안방에서 나오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왜 자꾸 쳐다봐.”

“그냥 심심해서.”

“좋아서 쳐다본다고 해 봐.”

“좋아서 봤어…….”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하자 마주친, 무표정하던 길고 깊은 눈이 곧바로 눈웃음치듯 길게 접혔다. 외모 하나는 이견 없을 미남자였다. 아니, 최세계에게서 장점을 꼽는다면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키까지 큰 데다 취미가 운동이니 몸 역시 탄탄하다. 평범한 사람은 그의 덩치에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니 성격이 좀 이상한 것 정도는… 그러려니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어젯밤, 세계는 울먹이는 영하의 젖은 뺨을 손등으로 달래 주며 미소 지었다. 삼십 분 정도 자다 깨어났더니 몸은 깨끗하게 닦여 있었고, 세계는 바로 누운 영하의 다리를 양쪽으로 벌려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눈뜨자마자 마주친 아빠의 음란한 얼굴에 영하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거절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다. 은근한 체념을 알아차린 것인지 그가 물어 왔다.

‘힘들어?’

‘힘들어…….’

아응…! 그 와중에 겨우 다물린 부은 구멍 안으로 성기가 느리게 진입했다. 영하는 세계의 팔뚝을 두 팔로 부여잡으며 신음하곤, 허리를 떨었다.

유치부와 초등학교 내내 발레를 한 덕에 운동과 담쌓은 영하라도 유연성과 코어 근육은 남부럽지 않았다. 즉, 세계가 원하는 대로 자세를 바꿔도 대부분 해낸다는 뜻이었다. 그게 최세계의 탐욕에 불을 지폈다.

젖은 속눈썹과 아름다운 달뜬 얼굴, 좁은 골반과 그보다 더 좁은 허리, 배 속 깊이 처박기 위해 최대한으로 다리를 벌려도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아들.

‘괴로워…….’

작게 꺼져 가는 목소리로 힘들다고 말하자, 그의 웃음이 좀 더 짙어진다. ‘어디가 힘든데?’ 단순한 물음인데도 그 음성이 축축하게 젖어 관능적으로 느껴졌다. 영하는 아래를 느리게 왕복하는 성기를 느끼며 짧게 호흡한다.

연이은 세 번의 섹스를 통해 행위가 조금 익숙해져, 영하는 울먹임을 멈췄다. 어차피 울고 매달려도 들어주질 않으니 반쯤 포기한 것이다.

더불어 지친 몸이 노곤해져 그가 무엇을 하든 얌전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종종 구멍에 힘을 빼라고 하는데 어떻게 빼는 건지 몰라 그저 가만히 있었다.

‘어디가 힘들어?’

두 번 묻는 걸 제일 싫어한다던 그도 결국 침대 위에서는 어쩔 수 없다. 이미 극점을 지나 겨우 정신을 붙드는 것이 다인 몸을 최대한 자상하게 다루며 영하의 귓불을 깨물고 귓가에 속닥였다.

‘응? 어디가?’

노골적인 질문이었고 그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안다. 곧이어 무릎이 어깨에 닿는다. 완전히 몸 위로 올라탄 세계의 무게감이 조금 버거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빠져 주는 대신 아래를 채운 성기가 쑤욱 빠져나갔다. 다물린 살점이 후퇴하는 성기를 따라 빨간 점막을 보이며 달라붙듯 잡아 물다가, 귀두가 빠져나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벌어진다.

몇 시간을 힘겹게 벌어져 있던 구멍은 잠깐의 출납에도 쉽사리 닫히지 않았다. 그의 성기 모양대로 벌어져 뻐끔댄다. 허전한 것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세계는 그게 조금 재미있는지, 손끝으로 벌려진 항문을 문질렀다. 다물리지 않던 것이 그 자극에 바짝 조여졌다. 영하는 아무것도 넣어지지 않은 구멍을 단지 조이는 것에도 흥분을 느껴 울먹였다.

‘흥, 아흑…….’

아들의 몸은 생각보다 민감하다. 예민하고 자극에 약해 쾌감에도 금방 익숙해지지 못할 것은 알았지만,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열감을 느껴 눈동자가 젖어 들고 흠칫흠칫 어깨를 떨었다.

‘어디가.’

영하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다. 대답해 주지 않으면 넣어 주지 않을 것 같다. 몸이 더 달은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라,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싫다고 할 때까지 박아 넣겠지만 지금은 본인도 급해 기다릴 시간이 없다.

재촉하듯 세계의 등을 간질간질 긁어 봐도 그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이었다. 섹스할 때 필요한 것은 지구력일까. 저런 인내심… 평소에나 좀 보여 주지…….

‘엉덩이가… 힘들어.’

‘어디.’

‘…엉덩이의 구멍이… 아파… 부었을 것 같아.’

저릿저릿한 게 분명 부었을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부었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붓지 않는 게 더 대단한 일이다. 그의 성기는 본인의 체격과 어울리는 사이즈라, 포르노 영상 중에 주먹을 넣는 영상이 있다는 것도 지금은 믿겼다. 저게 제 배 속에 들어왔으니… 주먹 정도는 어쩌면…… 사실일 거야.

‘아빠가 약 발라 줄게.’

‘약, 말고…. 아…. 빨리….’

이 와중에 또 장난을 치는 게 야속해 흐느낀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눈물에 입 맞춘 그는 목구멍 안으로 웃음을 흘렸다. 길게 뻗은 목에 튀어나온 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인다. 제게는 없는 것이라 손을 뻗어 그것을 만지려던 영하는 곧바로 그에게 팔을 붙잡히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

‘흐응, 앗, 아……!’

순식간에 성기가 뒤늦게 다물린 살을 거칠게 가로질렀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눈앞이 번쩍였다. 길이도 길이지만 두께가 지나치게 두꺼운 그의 성기의 귀두가 영하가 괴로워하는 지점을 완벽하게 짓눌렀다. 그러니 삽입만 해도 제 성기의 흰 액이 줄줄 흘렀다.

‘의외로 정력이 좋아.’

‘흐으….’

‘체력이 문제라 그렇지, 감안하면 잘 따라오는 중이야.’

만족스럽게 내뱉은 그는 두꺼운 성기로 내부를 차박차박 치댄다. 영하의 엉덩이도, 그의 사타구니와 허벅지까지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의 셔츠로 대충 닦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양쪽에서 뿜어낸 사출액과 멀건 애액이 뒤섞여 흠뻑 젖었다. 두꺼운 성기가 밖으로 나오면 안쪽에서 흐른 액이 그의 샅을 타고 이불 위로 떨어져 내렸다. 세계가 농담 삼아 매트리스를 갈아야겠다고 했을 때는 영하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의 성기가 안쪽 깊은 곳을 열어 귀두를 그 안에 박아 넣을 때면, 영하는 히끅이며 어깨를 떨었다. 자꾸만 휘저어져서 안이 괴로웠다. 굵게 선 살덩이를 조금 빼낸 그는 일부러 볼록한 전립선 부근을 기둥으로 압박했다. 한참을 그에게 시달린 영하가 몰아치는 뒤쪽의 감각에 항문을 꾹 조일 때마다 지근지근한 쾌감이 구멍에서 등골을 치고 올라왔다.

몇 번인지 인지도 안 되는, 뒤로 느끼는 절정감이었다. 남자에게 이런 절정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조절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흐으으…! 아! 어떡…….’

어차피 이미 정상은 아니다. 뒤로 느껴 이상한 물을 뿜는 것은 부차적인 이야기였다.

영하는 뒤로 아버지의 성기를 받으며 좋아서 울었다. 성기를 더 깊숙이 넣어 달라고 애원했고 혈연으로 이어진 그와 가장 원초적이고 난잡한 방식으로 이어져 있길 원했다.

때문에 영하는 그가 임신도 못 하는 자신의 안에 사정하고, 짐승처럼 허리를 쳐올리고 탐하며 극도로 흥분했다는 사실에 극악한 충족감을 느꼈다.

이제 내 거야…….

영하는 시대상에 뒤떨어진 보수적인 생각을 했다. 자신의 처음을 가져갔으니 이제 그는 평생 최영하 말고 다른 사람을 안을 수 없다. 다른 여자와 섹스하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가 최영하 없이는 안 되는 몸으로 만들어서, 절대로 이번 일처럼 결혼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지 못하게 해야 했다.

멍하니 상상하고 있을 때쯤 그가 다가와 뺨을 매만진다.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는 꼴을 보니 퍽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몸은 어때.”

“아파.”

“못 앉겠어?”

“응….”

그는 새벽녘까지 미친 듯이 섹스를 몰아붙인 남자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작 영하는 가만히 안겨 흔들리기만 했는데 온몸이 부서질 것 같다. 특히나 허리 뒤쪽, 옆구리 부근의 근육이 땅겨 누워도 영 편하질 않았다.

“오늘은 나가지 말고 푹 쉬어. 들어가서 자.”

“그럴 거면 왜 깨웠어.”

“눈 뜬 얼굴 보고 싶어서.”

고작 그런 이유로 날 깨우다니…….

“다음 주에 병원 예약 잡아 한 번 가 봐야겠어.”

“며칠 전에 갔는데 왜 또 가?”

“분수 치는 거 물어봐야지.”

“분….”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하고 얼굴만 빨개졌다. 영하는 어젯밤 내내 그것 때문에 울었었다. 하지만 병원에 갈 생각은 죽어도 없다.

“그, 그런 걸 어떻게 물어봐. 그리고 아빠가 그걸 물어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럼 난 입 다물 테니까 네가 물어봐.”

“창피하게 어떻게 말해? 됐어, 아픈 것도 아니니까 굳이 안 물어봐도….”

“진짜 흥분해서 나오는 건지 어디 이상이 있어서 나오는 건지 모르잖아.”

“됐다니까.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그가 뺏어 든 담요를 도로 가져와 목 아래까지 덮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최세계가 한심한 얼굴로 웃으며 가늘게 목소리를 높여 누군가를 따라 했다.

“아빠 나 몸이 망가진 거 같아.”

“하지 마!”

“너야말로 흥분하지 마. 씩씩대는 걸 보아하니 멀쩡하네. 집에서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

“병원 안 갈 거야! 안 가!”

“알았으니까 얌전히 좀 있어. 떨어진다고.”

그가 따라 하는 시점에선 정말로 화가 났다. 대뜸 안아 들길래 여기저기 아픈 몸으로 발버둥 쳤더니 탄탄한 몸으로도 휘청인다. 그의 몸이 기우뚱하니 정작 난동을 부린 쪽이 놀라 히끅대며 목을 감싸 안았다.

세계는 가뿐하게 아들을 침대에 눕혔다. 기절하고 난 뒤 그가 부지런히 씻겨 머리도 말려 주었지만 영하의 얼굴은 아직도 발긋하다.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귀엽긴.”

“빨리 출근해.”

민망하여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개의치 않고 미소 지은 그가 불퉁한 뺨 위에 천천히 입술을 내리눌렀다. 낮게 잠긴 목소리가 포근한 깃털처럼 느껴졌다.

“일찍 올게.”

“응….”

“아직도 아파?”

“조금.”

“아프게 해서 미안해.”

“……아니야.”

어젯밤을 사과하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축축하게 느껴졌다. 대화를 조금만 더 이어 가면, 출근을 미루고 덤벼들 것만 같았다. 영하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욕망 없이 단지 뺨을 꼬집어 늘이던 손길이 목 아래로 향하더니 푹 파인 쇄골 위를 더듬었다.

이불 아래 영하는 알몸이었다. 그가 옷 한 장 입히지 않고 재웠기 때문이다. 겨울용 이불이 그의 손목에 걷혀 가슴 밑으로 흘러내렸다. 가만히 내려다보던 시선에 정염이 담긴 순간, 영하는 부러 괴로운 목소리를 냈다.

“아, 아빠 나, 아직 밑에 아파…….”

세계는 그 말에 미간을 좁혔다. 눈이 세로로 얇아진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더니 얼룩덜룩한 가슴을 드러내던 이불을 다시 얌전히 위로 올리곤 가라앉은 음성을 냈다.

“잘 자, 내 아들.”

뺨에 부드러운 손길이 닿았다 떨어진다. 손목시계를 확인한 그는 정말로 더는 시간을 늦출 수는 없는지 아쉬운 얼굴을 뒤로하며 방을 나섰다.

조용히 닫히는 방문 소리에 긴장한 몸이 슬금슬금 풀어졌다. 아빠가 현관을 넘어 완전히 밖으로 나갔다는 확신이 들 무렵, 영하는 한숨을 크게 토해 냈다.

“하아아…….”

어떡하지.

영하는 어젯밤 내내 아프다고 울고 그의 품에 안겨 신음했다. 아파서 하기 싫다고 해 놓고선 몇 분 뒤에는 안에다 싸라고 다그쳤다.

그렇게 오랫동안 뜨거운 열기를 쏟아 놓고도, 막상 다음 날이 되니 가슴이 답답했다. 명치에 뭔가 막혀 있는 기분이었다. 싫지는 않았는데 마냥 기뻐하기에도 곤란한 일이었다.

“하…….”

한숨밖에 안 나올 일이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돌이킬 수 없고, 혹여나 마법 같은 일이 벌어져 아빠와 관계를 맺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들 영하는 그 길을 선택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지난밤 이성과 평정을 잃고 저에게 달려들던 최세계를 사랑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발정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던 것을 하나하나 기억했다. 거칠게 뿜어져 나오던 숨소리와 다급한 몸놀림, 잇새를 다물며 참아 내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모든 것을 토해 냈던 순간들. 알기 전엔 탐내지 않았던 것들이 겪어 보니 욕심이 생겨났다.

이제는 그가 다른 사람을 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다른 이에게도 그런 야한 모습을 보여 줬을 거라고 생각하자 온통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눈만 굴려 창밖을 내다본다. 회색 시폰 커튼 너머로 앙상한 나뭇가지와 구름 없는 새파란 하늘이 함께 담겼다.

그와 섹스를 하면 하늘이 두 쪽 나는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둘 사이를 아는 사람이 없다면, 비밀이 지켜지기만 하면 하늘을 대신하여 단죄를 내릴 이조차 없다.

아무도 모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

처음 가 본 대학교는 낯설었다. 여전히 날이 싸늘한 가운데 지루한 입학식이 끝나고는 오티 때문에 술집으로 바로 향했다. 더러 불참한 이도 몇 있었다.

꽤 큰 술집이었는데도 5시를 좀 넘긴 시간부터 인파가 바글바글하다. 언론학과와 겹쳐서였다. 가게 안에는 익숙한 신곡 차트가 반복해서 나왔다. 발라드가 나오다가 댄스곡이 나오며 장르가 뒤섞였다.

‘술 적당히 먹어. 너무 늦지 말고. 아홉 시 되면 집에 간다고 해.’

어차피 오래 붙어 앉아 먹을 생각도 없었다. 내향적인 최영하는 이런 어둑한 조명 아래 공간과 취기 섞인 모임이 불편한 사람이었다.

푸른 조명 아래 맥주잔 속에 소주잔이 풍덩 들어갔다. 안줏거리도 그다지 없어 땅콩을 하나 입에 넣으며 올라오는 기포를 쳐다보는 동안 맞은편에 앉은, 안경을 쓴 선배가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는 코가 크고 키도 큰 노란 머리의 2학년 선배였다. 곧 군대를 간다고 했던가.

“와, 살다가 이런 일도 있네. 잘생긴 놈이 둘이나 들어오다니.”

계속 자리를 옮겨 가며 마시자더니, 영하는 이정욱이라는 동기와 계속해서 테이블을 함께 회전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술만 마시는 줄 알았는데 이 자리 저 자리 옮겨야 한다니. 지옥 같은 고역이다.

외모 칭찬에도 어색한 얼굴로 미소만 지었다. 다행히 그 어설픈 웃음소리를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예쁜 얼굴 덕이었다.

알코올이 몸에 흡수되며 웃으면 튀어나오는 두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앞 눈매가 길게 빼어져 있는 커다란 눈가에도 붉은 기가 물들어 있었다. 느물느물한 분위기에 풀린 눈은 또렷하게 떠지진 않았지만, 긴 속눈썹이 드리워져 애교살 아래로 가느다란 그림자가 길게 내려앉았다.

술이 반쯤 사라진 유리잔을 들어 입술 위에 댄다. 최영하의 아랫입술은 중앙이 눌려 양쪽이 도톰하게 올라온 모양이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남자의 목소리가 영하더러 예쁘다고 중얼거렸다. 누구지. 근처엔 모두 선배들이고, 영하와 동기인 신입생은 옆에 있는 이정욱뿐이었다.

옆자리 정욱의 얼굴을 흘끗 본다. 좀 전에 들은 이야기론 중학생 때 잠깐 육상부였다고 했다.

그래서 키가 큰가? 최세계의 외모에 익숙해진 영하의 눈에도 잘생긴 얼굴이었다. 머리가 짧고 키가 컸지만, 쌍꺼풀과 콧대가 얇아 날렵한 인상이다. 시선을 돌린 영하는 고개를 기우뚱한 채로 맥주잔을 들어 마셨다.

소맥을 처음 먹어 봤다. 석 잔째 마시는데 배만 부르고 전혀 취하진 않았다. 영하는 본인의 주량이 생각보다 센 것 같아 가슴이 설레었다.

“근데 영하 너 나랑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

“와, 이거 갑자기 작업 치네. 야, 그런 대사는 남자가 아니라 저쪽 테이블 가서 해야지.”

정욱이 영하를 보며 물었다. 조금도 취하지 않은 영하와 달리 노란 머리 선배는 소주 세 잔을 내리 마시곤 취한 것 같았다. 영하는 정욱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기억이 나질 않아 반대편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작업 치는 게 아니라 진짜 어디서 본 것 같아서요. 볼 일이 없을 텐데. 사는 동네도 다르던데. 학교도 다르고.”

“그러니까 그게 작업인 거지. 저기 가서 여자애들한테 똑같은 말 하면 그게 제일 고루한 작업 멘트인 거야.”

“기억이 안 나는데… 뭐 서울 사니 오다가다 본 거 아닐까.”

“그냥 그렇게 본 걸로 기억할 만큼 내 머리가 좋진 않아서.”

솔직한 대답에 웃음이 나와 킥킥댄 영하는 맛도 없는 어묵탕을 덜어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와중에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의 진동을 느꼈다. 테이블 아래에서 열어 보자 역시나 아빠의 문자였다.

 9시

가타부타 말도 없고 덜렁 시간만. 입을 삐죽이곤 그대로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좀 예쁜 말도 같이 넣어 주지.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와, 하면 얼마나 좋아. 그나저나 9시까지 집에 도착하려면 몇 시에 나가야 하지? 여덟 시 십 분쯤 나가면 되려나?

테이블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민재가 있을 만한 자리를 둘러본다. 민재도 영하와 같은 학교, 같은 과였다. 민재가 있어서 너무 다행인데, 입학식 때는 옆에 있었으나 테이블을 옮겨 다니느라 민재와 찢어졌다. 언론과도 같이 있으니 사람이 너무 많다. 영하가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한참을 생각하고 있던 정욱이 대뜸 영하의 팔뚝을 잡았다.

“와, 기억났다.”

“응?”

“저번에. 얼마 안 됐어. 이 주쯤 됐나? 대형 마트 근처에서 본 것 같은데. 사거리. 그때 네가 내 머리의 나뭇잎 떼 줬잖아.”

“아. 너 그 나뭇잎 모자야?”

“뭐야, 둘이 아는 사이였어, 진짜?”

정욱이의 말을 들으니 기억났다. 나뭇잎에 뺨을 맞고 마트로 향하다 발견한 남자의 머리에서 나뭇잎을 떼 준 적 있다. 또래 얼굴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동갑이었구나, 게다가 같은 과다.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신기하네. 영하는 조금 흐물흐물해진 얼굴로 웃었다.

“신기하다.”

“그러네. 나도 신기하네.”

정욱이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동시에 주머니에서 다시 진동이 울렸기에, 영하는 대답하지 않고 휴대폰을 봤다.

  남자들이랑 말 섞지도 마

불가능한 요구였다. 말도 안 되는 억지인데, 그래서 기분이 좋아 답장으로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냈더니 곧바로 메시지가 돌아왔다.

  그건 무슨 뜻이지?

벌써 취한 거야?

ㄴㄴ

나 하나도 안 취했는데 뭐래. 영하가 [ㄴㄴ] 두 글자만 써서 보냈다. 오늘은 일 때문에 바쁘다더니, 휴대폰 붙잡고 있을 시간은 있나 보다. 자세를 고쳐 앉고 휴대폰을 더 내렸다. 엉덩이가 얼얼하게 아팠다.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몸을 겹쳤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오티에 가지 말라는 억지를 부리며 영하의 안쪽에 손가락을 넣어 휘저었다. 영하는 잠에서 깨자마자 엉덩이를 들어 주며 눈만 끔뻑였다.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없기 때문에, 오티에는 무조건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영하는 대답 없이 베개 위에 머리를 파묻었다. 음욕을 안은 남자의 음성이 등과 허리 위로 내려앉았다.

잠이 덜 깨 노곤한 몸이 풀어지자 곧 그의 성기가 벌어진 구멍에 맞닿았다.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몸에 힘이 들어가 숨을 몰아쉬었다.

곧바로 좁아 드는 구멍을 느낀 세계의 손이 배 위쪽을 더듬다 가슴팍을 문질렀다. 덜 일어난 유두를 손가락으로 건드리자마자 흐으응, 하고 예민한 신음이 흘렀다. 나중에는 베개를 끌어안고 크게 울었다. 영하의 입에서는 끝까지 가지 않겠다는 대답이 없었기에, 영하가 이겼다.

아침의 기억을 떠올리며 콧등을 찡그린 영하가 메시지에 답을 했다.

   아빠 나 하나도 안 취했어.

어련히 그러시겠지.

정말이야.

그래서 아빠 말 들을 거야 안 들을 거야.

하지만 아빠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남자들과 대화하지 말라는 건 들을 수 없다. 영하도 남자였고, 어쨌든 남자들과 어울려야 했다. 게다가 바로 건너편에 남자 선배가 있는데, 어떻게 말을 섞지 않는단 말인가.

   응 들을게요.

그래도 겉으로는 듣는 척이라도 해야 속이 편하다. 괜히 혼나긴 싫었다. 실실 웃으며 휴대폰을 집어넣다가 맞은편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묘한 얼굴로 영하를 쳐다본다. 이미 취해 있어서 눈이 풀린 표정이었다.

“뭐야, 너 여자 친구 있구나?”

“네?”

“표정 보니 여친이랑 카톡 했나 보네.”

굳이 정정할 마음이 없어 그냥 웃고 있을 무렵, 누군가 영하의 뒤에 다가왔다. 긴 머리카락이 목덜미 부근에 느껴져 그 간지러운 감각에 놀라 고개를 돌아봤더니 허리를 숙인 여자가 입술 위로 검지를 치켜들었다. 눈매가 위로 치켜 올라가고 쌍꺼풀이 얇은, 여우를 닮은 여자였다.

조용히 하라는 의미를 깨달은 영하가 입을 꾹 다물고 눈만 크게 뜨고 있자, 싱긋 웃은 그녀가 다짜고짜 이정욱의 등을 세차게 내리쳤다.

“야! 이정욱!”

동시에 터프하게 정욱을 부르더니, 돌아보기도 전에 목에 헤드록을 걸며 낄낄 웃었다. 까만색 솜이 빵빵한 패딩 팔 너머로 정욱의 하관이 다 가려진다.

갑작스러운 난동에 영하는 놀라 의자를 뒤로 끌며 멀어졌지만, 막상 폭행당한 이정욱은 눈만 찌푸린 채로 불만스러운 얼굴을 할 뿐이었다. 아, 좀 비켜, 라고 하는 것을 보니, 잘 아는 사이인 것 같다. 그래도 영하는 의자를 더 뒤로 물렸다.

“아… 누나는 졸업반인데 왜 오티에 와? 신입생들 싫어하게. 좀 빠지지….”

“야, 너는 우리 과도 아닌데 왜 지랄이야. 신입생들 안 싫어하거든? 다들 나한테 어떻게 취업했냐고 묻느라 야단인데… 근데 너도 신입이야?”

영하를 보며 묻던 그녀는 곧이어 반대편의 선배들에게도 눈인사한 후에 다시 관심을 줬다. 상황을 보니 이정욱의 누나인 것 같았고, 보아하니 신문방송학과 4학년인가 보다.

스무 살 때는 선배라면 죄다 어른으로 보이는 시점이었다. 그 와중에 4학년 선배라니, 영하에겐 까마득한 어른이다. 뒤로 물렸던 의자를 슬그머니 바짝 당기며 착한 얼굴을 했다.

“되게 귀엽다. 우리 과엔 얘 같은 애 없던데.”

“저희 과도 처음이에요.”

“그죠? 이런 애들이 있어야 학교 다닐 맛 났는데. 난 그냥 공부만 죽어라 했지, 뭐…. 야, 이정욱. 친하게 지내. 잘생겼잖아.”

“좀 가라고.”

진절머리 난다는 듯 목소리의 힘이 빠졌다. 정욱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이야기했다. 아마 밖이라 이 정도지, 집이었으면 엄청나게 싸우지 않았을까.

“안 그래도 간다, 가. 누구는 뭐 지랑 오래 대화하고 싶은 줄 아나 보네. 찌질하게 혼자 구석에서 박혀 있을까 봐 와 봤다.”

뒤통수를 살짝 치고 돌아서는 그녀도 취한 듯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촌스러운 맥주 그림이 붙어 있는 벽을 짚고 서서는 신방과의 오티 자리로 이동했다.

그 모든 게 신기했다. 남매인데 저렇게 서로 거칠게 행동하는 것도 신기했고, 그 와중에도 둘 사이에서 스스럼없는 친밀함이 느껴졌다.

승준이와 저와의 관계와는 완전히 다르다. 승준이가 영하더러 “신경 꺼.”라고 하는 건 진짜 신경 끄고 너 갈 길이나 가라는 의미였다.

그때 노란 머리 선배가 끼어들었다. 그가 테이블 위에 손을 얹은 채 손가락만 은밀하게 뻗었다. 영하의 시선이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저기 끝에 핑크색 카디건이 너 계속 쳐다보는데. 소개팅이라도 시켜 줘? 아, 여자 친구 있다고 했나?”

“괜찮아요. 집이 엄해서.”

“엄한 거랑 뭔 상관이냐? 소개팅이랑.”

사실이다. 소개팅 비슷한 것도 해 본 적 없지만, 했다간 야단난다.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굳이 먹어 봐야 맛을 아는 건 아니잖아.

그가 남자와 말하지 말라고 했던 문자를 떠올리며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한편으론 또 궁금하다. 어떻게 야단칠까? 어떻게 화내는 거지?

“내 친구도 소개팅했다가 아빠한테 맞아 죽을 뻔했잖아.”

“야, 그건 남자가 이상한 놈이었잖아. 나한테 말을 하지. 내가 180만 소개해 줄게.”

“됐다. 깔창 6cm 낀 180 안 받는다.”

그녀의 말에 깔창 6cm를 끼면 180이 되는 영하도 은근히 찔렸다. 술만 꼴깍꼴깍 삼켰다.

땅콩으로 계속 손이 가자 정욱이가 땅콩 접시를 영하의 앞에 옮겨다 줬다. 고마워.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하곤 테이블을 옮기라길래 옆자리로 옮겼다. 여전히 옆에는 정욱이가 같이 있었다.

영하는 남자와 말하지 말라던 아빠의 말을 전-혀 지키지 못했지만, 아무튼 집에 가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면 된다. 여자가 많은 과라서, 남자는 거의 없었다고 둘러대면 끝이었다.

알코올에 지지 않는 최영하는 붉어진 뺨을 한 채 벽에 몸을 완전히 기대었다. 등받이가 벽에 붙은 의자에 앉자 몸이 편안하다. 술에 젖어 반들거리는 입술을 꾹꾹 물며 통화 내역 가장 위쪽에 있는 이름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고개를 들자 바로 위의 핀 조명이 눈앞을 반짝였다.

수화음이 가는 중간에 아빠의 [남자랑 말도 섞지 마]라던 명령이 신경 쓰였지만 어쩔 수 없다. 신호가 끊기자마자 낮게 내리 깐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게 좋아 영하는 어깨를 부르르 떨곤 휴대폰을 고쳐 받았다. 허벅지 위에 놓인 손가락이 비비 꼬였다.

-몇 시야.

“아홉 시… 칠 분.”

휴대폰을 내려 상단 바에 뜬 시간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집에 몇 시까지 가라고 했어.

“아홉 시…….”

-잘못했어, 안 했어?

“안 했지…….”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가라앉아 낮고 묵직했지만 잔잔했다. 그의 차분한 어투에 영하는 어깃장을 늘어놓았다.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술을 너무 잘 마셔서.”

영하에게 술 마시는 것이란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술이 너무 세서 꿀떡꿀떡 넘어간다. 선배들도 다들 영하에게 얼굴과는 다르게 주량이 강한 편이라고 이야기해 줬다. 그것이 못내 기뻐 아빠에게 자랑했다. 자랑하고 싶었다. 이제 자신은 어른이니까.

-…….

그러나 귀에 바짝 댄 휴대폰에는 칭찬의 언사가 없다. 영하는 입을 삐쭉 내밀며 그에게 요구했다. 다른 부분이었다.

“나 데리러 와…….”

애교 섞인 말투를 내자, 짧은 머리를 한 여자 선배가 귀를 쫑긋했다. 옆자리에 앉은 신입생과 “여자 친구인가?”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기사 보낼게.

“왜? 데리러 안 올 거야?”

-지금 회사야. 오늘 바쁠 거라고 했잖아. 거기다 일 터진 것도 있어서 수습하느라 집에 못 들어가. 기사 출발시킬 테니 얌전히 있어.

영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의 문 앞으로 걸어갔다. 술에 전혀 취하지 않았다면서 몸이 비틀거렸다.

어지러운 느낌. 영하는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어지러웠다. 너무 좋아서, 혹은 아빠가 영하를 너무 화나게 해서. 대부분 후자였지만 지금은 드물게도 전자였다. 그와 온종일 바짝 붙어서 몸을 겹치고 싶었다.

“기사 아저씨 말고 직접 와.”

몸 겹치고 키스하는 사이면 그래야 한다. 직접 데리러 오고 술을 많이 마셨는가 걱정하고, 다른 사람과 너무 친하게 지내진 않았는지 질투해야 했다.

아빠는 너무 어른이라 그럴까? 영하의 사생활에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했다. 의존적인 성향이 강한 편인 영하로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서글픔이었다. 조금 슬픈 목소리를 내어 다시 말하자, 세계가 한숨을 내뱉었다.

-웬만하면 나도 그러겠는데. 좀 문제가 있어. 집에 가서 자고 있으면 세 시까진 들어갈게.

“그런 게 어딨어. 내가 걱정도 안 돼?”

-걱정되니까 기사 부른다는 거지.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구석에 혼자 앉아 있어.

“싫어. 남자들 사이에 앉아 있을 거야.”

기어코 술집의 문을 박차고 나가 투명창 아래 쪼그려 앉았다. 먼지가 묻어 청결해 보이지 않는 직사각형 화이트 타일이 붙은 지저분한 벽에 등을 기대고 토라진 티가 역력한 목소리를 냈다. 지나가는 커플이 영하를 흘끗 보곤 마저 걸어갔다.

“다 나 좋아해.”

-그래서. 지금 남자들 사이에 앉아 있는데 남자들이 다 널 좋아한다고?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지만, 영하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최세계의 목소리가 조금 변한 것을 느꼈으면 좋았겠으나 전혀 취하지 않았다던 영하는 사실 만취해 있었다. 짧은 코트를 안쪽으로 여미며 빨간 콧등을 문질렀다.

커다란 눈이 스멀스멀 감긴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튀었다. 눈꺼풀이 뜨끈하여 눈을 문지르며 여러 번 하품했다.

아, 왜 이렇게 졸리지……. 술집이 즐비한 구역에서 예쁜 얼굴로 술에 취해 혼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것은 꽤 위험한 행위였지만, 영하는 알아채지 못햇다.

“소개팅할 거야. 다 나 좋아해서… 어쩌면 스무 명이랑 할 거야.”

-스물…… 너 의자왕이야? 하아,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휴대폰 너머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고 책상 서랍이 반복해 열렸다 닫히는 소리도 들렸다. 아마 영하는 그가 차 키를 찾는 중이라고 판단했다. 조금만 더 자극하면 데리러 올 게 분명하다.

“아빠가 안 오면 할 거라고.”

-진짜 취했네.

“우으응. 그래서 올 거야, 말 거야?”

-최영하.

말 거야? 하는 부분에선 기이일게 늘여 말했다. 세계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 헛웃음을 조금 지으면서도 짜증이 나긴 하는지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제법 매서웠다. 맨정신으로 들었으면 기가 죽어 얌전하게 대답했을 텐데 원래 취객은 겁이 없는 법이다.

영하는 상대가 화를 내든 말든 귀여운 목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네에.”

-입 다물고 구석에서 눈 감고 자고 있어. 그만 화나게 하고.

“아니. 화나는 건 나야. 왜 안 데리러 와? 오티 가지 말라고 화내 놓곤 왜 통금 시간 지나도 안 데리러 오는데? 진짜 소개팅해 버린다? 아빠는 진짜… 하아… 나 졸려.”

-안 간다고 한 적 없어. 지금 나간다고. 그러니까 허튼짓 말고 얌전히 자고 있어.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중이니까. 알아들어?

“응… 여기 바닥인데, 나 잠시만 자고 있을게.”

-뭐? 바닥?

데리러 온다니 마음이 놓였다. 영하는 이제 그의 말대로 잘 준비를 했다. 캐시미어 코트가 먼지로 더러워지는 것도 잊고 벽에 몸을 기대고 작게 웅크렸다.

상체가 작아 몸을 웅크리니 정말 아이 같은 모양새였다. 마침 술집을 나오던 정욱이 영하를 발견하곤 놀라 멈칫 굳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의식하곤 어깨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린다. 영하는 휴대폰을 가슴에 꾹 쥔 채로 고개를 들었다. 눈이 게슴츠레했고 술과 바깥 공기에 상기된 붉은 뺨이 드러났다.

“영하 너 여기서 뭐 해?”

“나 졸려.”

영하가 아빠에게 이야기하듯 말하자 간지러운 말투에 조금 당황한 정욱이 주변을 둘러보곤 영하의 팔을 잡아당겼다.

쑤욱 무 뽑히듯 자리에서 일어난 영하는 휴대폰이 떨어질까 고이 잡으며 엉덩이를 털어 냈다. 먼지는 등에 죄다 붙어 있었기 때문에 깨끗해지는 효과는 없었다.

“여기서 자면 얼어 죽… 같이 편의점 갈래? 건너편에 있던데. 너 술 깨야겠다. 숙취 음료랑 아이스크림 사 줄게.”

“녹차 맛.”

“그래. 녹차 맛.”

고개를 끄덕이곤 내내 통화가 끊기지 않은 휴대폰을 들었다. 영하는 완고하고 단호하게 뱉었다.

“아빠 끊어.”

-아니, 끊지 마. 옆에 누구야?

“아이스크림 사 준대서 갈 거야. 안녕.”

그러곤 빨간색 버튼을 눌러 꺼 버렸다. 꺼지기 직전 잠깐 들은 목소리가 잔뜩 화나 있었지만, 영하는 잘 모르겠다고 넘기곤 이정욱의 뒤를 따랐다.

예상외로 이정욱은 길치였다. 편의점 하나 제대로 못 찾아 버벅댔다. 와중에 영하의 불안한 걸음걸이가 신경이 쓰이는지 이정욱은 길을 걷다가도 계속 뒤를 돌아보다가 결국엔 걸음을 느리게 하여 영하의 옆쪽에 자리 잡았다.

영하는 반쯤 감긴 눈으로 걷다가 눈앞의 키가 큰 남자를 보고선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잡았다. 그러자 남자가 펄쩍 뛰며 잡은 손을 쳐다보고 버벅대길래, 본인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빠가 아니라 이정욱, 같은 과 동기였다.

“미안.”

“아니… 미안할 건 아닌데.”

목을 긁적이더니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다 편의점을 발견하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편의점이 무척 작아 녹차 맛이 없어 멜론 맛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돌아갔다. 술 깨는 음료는 편의점에서 한 캔 먹었는데도 술이 깨는지 잘 모르겠다. 애초에 숙취 때문에 먹는 것 아닌가…….

골이 울리는 것 같아 한 손으로는 머리를 붙잡으며 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대학로 술집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세단 한 대가 어느새 가게 맞은편에 주차되어 있었다.

떠들썩하던 소리가 조금 줄었다. 영하는 가게 안이 묘하게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원래 앉아 있던 자리에는 다른 누군가가 앉아 있길래, 그냥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에 앉아 멀뚱멀뚱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는 중이었다.

누군가 걸어오더니 영하의 맞은편에 앉았다.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남자는 팔짱을 끼곤 긴 다리를 쭉 뻗었다. 얼굴 위로 한심해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어디 갔다 온 거야. 그렇게 데리러 오라고 떼쓰더니.”

“언제 왔어?”

영하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되게 빨리 왔네? 회사에서 이곳까지 오는 시간에만 정신 팔려, 그에게 위치를 알려 주지 않았는데도 잘 찾아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길바닥에 얼어 죽어 있을까 봐 급하게 왔지. 어디 갔다 왔냐고. 누구랑 나갔어?”

“응? 나…….”

착하게 잘 대답해 주려 했는데, 영하는 순간 눈을 끔뻑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 같이 이야기했는데 이름을 깜빡했다. 어떡하지? 기억이 안 난다. 미안하네… 아이스크림도 사 줬는데.

잘 말하던 영하가 입을 다물자, 세계는 눈 끝을 좁히며 다리를 고쳐 꼬았다. 소매를 걷어붙인 짙은 남색의 셔츠가 술집의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도 스트라이프 자카드 무늬대로 은은하게 반짝였다. 코트는 의자의 등받이에 걸쳐져 있다.

대학생들이나 오는 저렴한 맥주집과 최세계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크로마키를 해 억지로 합성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누나를 떠올리며 술 한잔을 기울인다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노래가 최세계의 주변에서 흘렀다. 그리고 그와 조금 떨어진 뒤편에는 [너는 술 마실 때가 제일 예뻐] 하고 핑크색으로 네온사인이 번쩍였다. 영하는 네온사인과 굳은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눈을 끔뻑였다.

“의자왕. 네 많은 후궁 다 어디 갔어. 좀 봐야겠는데.”

“그러게… 어디 갔지.”

화난 얼굴로 의자왕 타령을 하는 아빠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영하는 눈치 없이 혀를 내밀어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렸다. 네모난 모양의 아이스크림이 녹아 모서리가 둥그렇게 죄다 깎여 있다. 영하가 아이스크림을 먹을수록 최세계의 기분이 급격하게 하강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미간을 팍 찌푸린 그가 성난 몸짓으로 고쳐 앉고는 옆 테이블로 긴 팔을 쭉 뻗었다.

“티슈.”

갑작스러운 명령에 옆에서 술을 마시던 남자 선배가 당황한 얼굴로 최세계를 바라본다. 놀라서 마시던 소주의 절반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만 내민 세계의 시선은 여전히 영하를 응시 중이었다.

“어… 예…….”

기에 눌린 그가 일단 대답하며 티슈 세 장을 뽑아 손에 들려 주니, 세계는 당연한 듯 받아 들었다. 영하의 손에 흐른 초록색 아이스크림을 닦아 주곤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뺏어 먹다 남긴 반찬 종지 위에다가 대충 던져 버린다.

영하가 버려진 아이스크림을 보며 입을 벌렸다. 아직 삼분의 일이나 남았는데…!

“그만 먹고 일어나. 집에 가자.”

아이스크림을 뺏긴 건 서러웠으나 가자는 말에는 또 얌전히 일어나 옆 테이블 선배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곤 세계의 뒤를 따랐다.

물티슈로 닦은 것이 아니라 손이 끈적하다. 열어 주는 조수석에 앉아 끈적한 손으로 계속 주먹을 쥐었다 펴고 있자, 돌아와 운전석에 자리 잡은 그가 혀를 차며 글로브 박스를 열었다. 주말 아니면 기사를 대동하니 운전을 하는 편이 아니라 글러브 박스에 뭘 뒀는지도 기억이 흐릿한지 한참을 만지작대다 물티슈를 꺼내 들었다. 그가 뽑아 주는 다섯 장의 물티슈를 받아 들며 영하가 중얼거렸다.

“낭비…….”

“손이나 제대로 닦아.”

곧이어 시동이 걸리고 차가 출발한다. 차가 느리게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하품을 크게 했다.

졸려. 아직 열 시도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잠이 오지? 나 뭔가 잘못 먹었나…….

원래 술을 마시면 잠이 오는 게 정상이었지만 영하가 알 리 없었다.

“아빠, 집에 가요?”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 갈 거야.”

“싫어. 혼자 있기 싫어.”

“취객은 입 다물고 잠이나 자.”

“싫어. 나도 회사 갈래.”

세계가 대답하지 않고 차만 모는 탓에, 영하는 옆으로 몸을 쭉 빼곤 연이어 고집을 부렸다.

“나도 갈래요, 아빠.”

“회사에 너 잘 곳 없어.”

“회사 간다고 하고 딴 데 갈 거지?”

명백한 의심을 담은 질문에 세계가 눈 끝을 찡그렸다. 조금 난폭하게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더니 핸들을 쥔 채로 한숨을 뱉는다.

“네 생각처럼 아빠가 그런 쓰레기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영하야. 대체… 그렇게 의심되면 비서한테 전화 걸어 줘? 원하는 게 뭐야.”

“그냥… 같이 있고 싶어….”

물티슈로 끈적한 것을 완전히 닦아 낸 손이 기어에 올린 세계의 손등 위에 닿았다. 조금 축축하고 가느다란, 따뜻한 감촉이 맞닿은 살결 사이로 느껴졌다. 영하는 졸음이 잔뜩 쏟아지는 말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연신 입술을 달싹였다.

“으응…?”

간지러운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까딱이자, 그가 체념한 듯 시선을 돌린다. 교차로의 신호가 초록색으로 변하는 동시에 목적지가 변경됐다.

*

영하가 눈을 뜬 것은 아홉 시 오십칠 분. 널따란 킹사이즈 침대 정중앙에서 사지를 뻗은 채로 일어났다. 이불이 무릎 아래만 겨우 가리고 있어 추워서 깼더니 오전이다. 느물느물한 몸짓으로 휴대폰을 켜서 시간만 보곤 도로 내렸다. 사방이 조용한 것을 보니 아빠는 이미 출근한 모양이다.

숙취로 몸 상태가 꽝이었다. 팔과 다리를 드는 것도 힘들어 대자로 뻗은 모양 그대로 눈을 감았다. 다시 잠들려던 차에 진동이 울려 힘겹게 손만 뻗어 휴대폰을 들었다. 아빠였다. 너무 졸려서 무시하고 그냥 자 버릴까 하다가 후폭풍이 걱정되어 전화를 받았다. 잠겨서 영 꼴불견인 목소리였다.

-일어나.

“응…….”

-곧 아주머니 도착하니까 대충이라도 씻고 있어. 해장국 끓여 달라고 했으니 그거 먹고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도록 해.

“응…… 아빠, 나 자고 싶어.”

-일단 일어나서 해장국 먹고 자. 지금 자지 말고. 그리고 너….

영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당기고 옆으로 누웠다. 으음. 그러니 더 졸음이 몰려왔다. 아빠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잘 심산이었다.

세계의 방은 영하의 방처럼 창가 너머로 나무의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햇살이 잘 들었다. 눈이 부셔 아빠 몫의 베개를 들어 머리 위쪽을 가려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앞으로 음주는 금지야

“응? 왜…?”

-술버릇 고약해. 최악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술은 꿈도 꾸지 마.

“응? 뭐라고?”

갑자기 봉창 두드리는 소리. 영하는 어제의 일을 모두 기억한다. 기억하기에 자신은 술버릇 같은 건 없었다. 술에 취해 좀 비틀거리며 걷는 건 누구나 같다. 아마 아빠도 만취한다면 제대로 걷기 힘들 테였다. 주사 같은 거 전혀 없었다.

“무슨 소리야. 나 주사 없어.”

-필름 끊겼네. 됐으니까 말대꾸 그만하고 가서 씻어.

“아니. 알아듣게 말을 해 줘야지 무턱대고 술 마시지 말라고 하면.”

-최영하. 말하면 그냥 들어. 좋게 말하려고 했더니 자꾸 화나게 할래?

“그치만…….”

그렇지만 주사가 없는데 자꾸 있다고 말하면서 술 마시지 말라고 하면 당연히 순순히 받아들이며 네,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거짓말하는 거 같은데……. 순 자기 멋대로야. 그냥 술 마시는 거 싫으니까 고집부리는 거지.

-부끄러워할까 봐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안 믿는 것 같으니까 해야겠네. 너 어제 섹스하고 싶다고 계속 졸랐어.

잘못 들었나 싶어 눈만 끔뻑였다.

-섹스하자고 계속 졸랐다고.

“거,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 네 몸 상태 보면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 텐데.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영하는 그게 숙취 때문이라 생각했다.

내가… 졸랐다고? 그럴 리 없다. 기억에 전혀 없었다. 영하는 허둥지둥 몸을 반대편으로 돌리곤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직까지 그의 말이 사실인지 증명되지도 않았지만 벌써 부끄러워 귀까지 새빨개졌다.

게다가 맨다리.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단지 상의만 입고 있었을 뿐이다. 악취미로 옷을 입혀 놨네. 역시나 뻔하지. 아빠가 자신을 괴롭히려 농담하는 게 틀림없다.

“거짓말. 장난치는 거잖아.”

-뭐 하러 이런 기분 더러운 장난을 쳐. 네가 술집에서 딴 남자더러 섹스하자고 졸랐을까 봐 걱정되는 장난을 내가 뭐 하러?

실제로 화가 난 최세계의 음성이 이미 명백히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믿기는 어려웠다. 조를 이유가 없잖아. 영하는 욕구 불만이 아니었다. 거의 매일같이 그와 섹스했는데 뭐 하러 또 하자고 조른단 말인가. 게다가 어제는 아침에도 했다.

-됐어. 그만하고 일단 일어나.

귓가에 닿는 목소리에 화난 기색이 역력하기에 더는 말대꾸하지 않고 알겠다고 하곤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신경질적으로 내린 영하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베개를 끌어안고 이불 위에 둥그런 모양을 만들어 낸 영하는 어제 일을 복기했다. 술집에 들어가서 막 인사했던 것. 그 어색했던 분위기. 술이 좀 들어가자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정욱이와 통성명도 제대로 했고, 정욱이의 누나도 만났다. 아빠에게 데리러 오라고 떼쓴 것도 기억한다.

다 기억하는데? 맹세코 자신은 주정 부린 적 없다.

“진짜 없…….”

그 순간, 영하를 놀리듯 어떤 기억이 재빠르게 머리를 스쳐 갔다.

‘안에… 끝까지 넣어 줘…….’

뭐지.

분명 자신의 목소리다. 잠깐, 잠깐. 두 손에다 얼굴을 파묻었다. 한번 뭔가가 떠오르자 숨겨졌던 기억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영하는 분명 그의 회사에 도착했다. 바쁘다는 이야기가 사실이긴 했는지 회사 건물에 불이 켜진 층도 여럿 있었고 사무실 앞의 비서실에도 두 명의 비서가 근무 중이었다.

영하는 이 밤중에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쳐다보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거렸다. 서서히 감기는 눈을 보곤, 영하를 안아 든 그가 소파에 눕혀 코트를 몸 위에 덮어 주고 가슴을 한참 토닥였다. 그 반복적인 감각에 까무룩 잠들었던 것까지 기억났다.

그래. 거기까진 정상이었다. 다음부터의 기억에 영하는 사색을 하며 뺨을 쥐었다. 두 뺨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설핏 잠에서 깨어난 영하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일어났다. 사무실의 불은 꺼져 있었고, 책상의 스탠드 하나만 켜 둔 상태였다. 그 아래로 책상과 컴퓨터 모니터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이어졌다. 깨진 타일은 보수한 건지 흔적도 보이질 않았다.

영하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동시에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최세계의 눈길도 영하의 뒷모습에 닿았다.

“왜 일어났어. 아직 밤이니까 좀 더 자.”

“으응… 안 잘래.”

“왜 안 자. 자야 쑥쑥 크지.”

그는 퍽 다정한 목소리를 내었지만, 시선은 곧장 모니터로 돌아갔다. 세계의 코트 자락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던 영하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바닥에 엎드려 위 판이 투명한 유리로 된 소파 테이블 아래에 머리를 비집어 넣었다.

다 식어 빠진 머그잔을 들어 녹차를 한 모금 넘기던 세계는 꾸물거리는 소리에 힐끗 의자를 옆으로 밀어 모니터 너머를 바라본다. 그의 두 눈에 바닥 위에 납작 붙어 있는 아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뭐 해?”

누가 봐도 멀쩡한 정신이 아닌 모습이다.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생각 중이야.”

“으음.”

“나 생각하게 자리 좀 비켜 줘. 진지한 생각 중이란 말이야.”

“술주정도 독특하게 하네.”

“조용히 해.”

“…….”

강경한 언사에 한 말을 잃었다. 세계가 말 잘 듣는 아버지가 되어 입을 다물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슬금슬금 엉덩이를 뒤로 물린 영하가 소파를 짚고 끙- 하고 일어났다.

숙취로 인해 몸 전체에 열이 올라 더웠다. 도톰한 기모 셔츠의 단추를 하나둘 풀며 느릿한 몸짓으로 그림자 위를 밟아 그에게 다가갔다. 영하는 소파 테이블을 넘으며 말했다.

“일 그만하고 나랑 섹스해.”

“…너 지금….”

당돌한 요구였지만 얼굴은 눈이 풀려 흐리멍덩했다. 모니터에 붙박여 있던 두 눈이 영하에게 오롯이 닿자 영하는 발걸음을 좀 더 빨리해 그의 책상맡으로 다가갔다.

양말만 신은 맨발이 차가운 타일 바닥 위에 닿았지만, 사무실은 히터가 계속 돌아가고 있어 전혀 서늘하지 않았다. 영하는 차라리 차가운 것을 몸에 대고 싶은 기분이었다.

놀란 세계를 앞에 두고 눈을 문지른 영하는 곧 그의 목을 끌어안고 귓가에 바람을 후- 불어 넣는다. 파르륵 떠는 모습을 상상했으나 최세계는 무감한 사내처럼 미동 없이 아들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영하는 조금 삐친 어투로 다시금 반복해 말했다.

“섹스하자니까.”

“난데없이… 너 술버릇이 왜 이래. 무서워서 앞으로 술자리 못 보내겠는데.”

“하기 싫어?”

그의 손을 들어 허리에 감으며 묻자, 세계는 고개를 저었다. 미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듯했다.

가느다란 허리를 감싼 손길이 곧 등을 훑어 내리고, 익숙한 몸짓으로 바지를 벗겨 속옷 안으로 침투했다. 말랑한 엉덩이를 세게 쥐는 감각을 느끼며 영하는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 무릎을 꿇었다. 목덜미에 그의 입술이 닿고, 목젖의 흔적이 도드라지지 않는 미끈한 목울대를 위에서 아래로 느리게 핥았다.

축축해… 혀가 지나간 곳이 공기에 닿아 곧 시원해짐을 느끼자, 영하는 스스로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러나 취한 손길은 성급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어 자그마한 단추가 잘 풀어지지 않는다. 신경질적으로 옷을 양쪽으로 잡아 뜯으려 하자 그 손을 막은 것은 최세계였다.

“터프하네.”

그가 연이어 말했다.

“그런 것도 나쁘지 않지.”

박력 있는 행동에 감탄하듯 중얼거리곤 대신 단추를 풀어 준다. 그대로 뒀다간 단추를 죄다 뜯어 버릴 기세였다. 영하는 그 짧은 새를 참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몸이 달아 견딜 수가 없다. 얼른 섹스하고 싶었다. 아빠의 몸을 어루만지고 탄탄하고 굴곡 있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싶다.

“빨리이…….”

최세계는 대답하질 않는다. 셔츠의 단추를 끝까지 풀어 헤쳐 어깨 아래로 옷자락을 내리는 순간 영하가 가슴을 그의 얼굴에 내밀었다.

“빨아 줘.”

“제발, 앞으로 술 마시지 마.”

한탄스러운 한숨과 동시에 작은 유두에 입술이 닿는다. 쪼옥- 소리와 함께 그가 힘 있게 유륜과 유두를 동시에 빨자 저릿한 자극이 뒤를 치고 왔다.

“아으으응―.”

쾌락에 갈 곳을 잃은 두 손이 의자 이곳저곳에 닿다가, 그의 어깨를 세게 쥐고는 상체가 비틀렸다. 멀어지는 가슴에 입술을 붙인 채 끝까지 따라붙은 그는 영하의 배꼽 위를 어루만지며 튀어나온 유두를 이로 질근질근 씹어 댔다.

영하는 엉덩이에 닿은 그의 사타구니가 불룩해져 통통한 둔덕 사이를 찌르는 것을 느끼며 흐느꼈다. 빨리지 않은 반대편 가슴이 간질거려 그곳을 빨아 주었으면 좋겠지만 뒤가 스스로 젖어 드는 것이 먼저였다.

삽입은 소파에서 이루어졌다. 영하가 세 시간가량 잠들어 있던 자리였다. 따뜻한 온기가 남은 자리에 엎드린 영하는 한쪽 다리를 위로 올린 채로 그의 성기를 받아들였다. 두껍고 딱딱하고 흉포했지만, 자신의 안쪽이 너무 뜨거웠기에 오히려 영하는 내벽을 가르고 들어오는 살덩이에 차가움을 느끼며 허리를 떨었다.

“흐응, 읏, 우응.”

녹아내리는 듯한 신음을 흘린 영하는 소파의 가죽을 손톱으로 갉작였다. 허벅지 아래로 흐른 애액이 바닥까지 흘러 타일 위로 물이 맺혔다.

이어 엉덩이를 감싸 쥐는 손바닥을 느끼곤 고개를 뒤로 했다. 옆으로 꺾인 허리가 불편했지만, 덕분에 영하는 엉덩이를 쥔 그의 손등이 완전한 삽입을 막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손등 높이만큼 성기 뿌리가 손마디 두 개 정도가 드러나 있었다.

그가 일부러 삽입 각도와 깊이를 조절하고 있다는 것은 며칠 전부터 알고 있는 점이었다.

“아빠… 끝까지, 으응! 박아 줘….”

영하가 물기 어린 목소리로 요구했으나,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엎드린 몸을 바로 돌렸다. 성기가 삽입된 상태로 몸통이 돌자 어지럼증을 동반한 극도의 쾌감이 영하의 아래에서 피어올라 창살처럼 내리꽂혔다. 두꺼운 것에 꿰어 옴짝달싹도 못 한 채 허벅지와 허리가 파드득 떨리고 꼴사나운 신음성이 참을 새도 없이 터져 나온다.

“응! 흐아악!”

견디기 힘든 그 감각에 손으로 소파의 쿠션을 내리쳤다. 아흐윽! 아직 성기는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혼자 느껴 허리를 위로 퉁기곤 헐떡이며 눈을 감았다 떴다. 눈앞이 흐릿해진 영하는 아래를 헤집는 것이 끝까지 들어오기를 바랐다.

“끝까지이이!”

“안 돼. 아파.”

예상한 이유였다. 세계는 영하가 첫 섹스 이후 이틀간 앓는 것을 보며 죄책감을 느꼈는지 이틀 내내 왕자님을 보필하는 하인인 양 옆에 붙어 영하의 모든 것을 챙기려 들었다.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었고, 밥도 혼자 먹을 수 없었다. 배앓이를 하곤 변기에 앉아 정액을 흘려 보내며 우는 영하를 보면서 착잡한 얼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엔 정말 괜찮았다. 그 후로 매일같이 섹스해도 영하는 다음 날 근육통 때문에 아플 뿐이었고, 전처럼 배가 아프거나 열이 올라 몸살을 겪은 일은 없다. 영하는 끝까지 받고 싶었다.

몸의 떨림이 잦아들자마자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감쌌다. 밤이 되어도 미끈한 그의 뺨을 손가락으로 만지작대다 아래로 내려간다. 느리게 흐른 손길은 셔츠로 단정하게 갈무리된 가슴 위를 더듬었다. 흥분과 거친 움직임으로 근육이 팽창된 것 같기도 했지만, 옷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아쉬운 손길로 내려가 도달한 곳은 두껍게 남아 있는 그의 성기 뿌리였다. 보드라운 손끝이 애액으로 젖어 번들대는 성기에 닿아 두께를 가늠하듯 가볍게 쥐어 본다.

세계가 입술을 깨물며 숨을 몰아쉬고 천천히 뱉었다. 규칙적으로 호흡하지만 흥분이 도저히 가라앉혀지지 않는 듯 당황한 얼굴이었다. 선이 뚜렷한 입술을 말아 문 그는 눈가를 찌푸리며 탄식했고, 그의 관자놀이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영하의 사타구니로 떨어졌다. 그 순간 아빠의 성기를 물고 있는 아래가 잔뜩 조여들었다.

영하는 소리 높여 뱉으며 그에게 요구했다. 최세계의 이성은 아주 가느다란 끈처럼 남아 있다. 오랜 시간 만지고 고쳐 보려 애쓰는 바람에 오히려 해지기 일보 직전인. 영하는 그것이 그에게 존재하는 부성애라고 느꼈다. 아프지 않게 해 주겠다는 그의 마음.

“싫어… 으응, 더, 더 먹을래……!”

“하, 씹.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기껏 참고 있는데…!”

“참지 말고 넣어 줘…. 아빠가 만난 여자들한테 했던 거……. 다 나한테 해 줘. 다 할 수 있어…. 잘할게…….”

영하의 흰 손가락에서 흘러내리던, 희끗한 녹색 아이스크림의 흔적처럼 달콤하지만 끈적하게 녹아내리는 목소리였다. 통통한 엉덩이가 둥글게 허공에서 궤적을 그리며 움직였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최세계의 팔뚝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깊게 감았다 뜨인 눈동자에 시퍼런 광채가 새겨지는 동시에 난폭한 소리가 영하의 아래에서 이어졌다.

꽈앙―

“으응, 내가 다, 흑, 흐아아아아!”

훅 빠져나간 성기가 사정없이 안으로 찔러 넣었다. 새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두툼한 성기의 끝이 다물려 있는 곳을 퍼억 찔렀다. 한 번에 들어가질 않아 거칠고 배려 없는 속도와 강도로 연이어 박아 넣었다.

아윽! 윽! 아앗! 고통이 명백한 신음성이 영하의 입에서 흘렀고, 세계는 좀 전과는 비교도 못 할 만큼 흥분해 가슴을 크게 오르내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약한 몸이 자꾸만 밀려나 두 손으로 단단하게 허리를 붙잡고 다시금 안으로 콰앙- 밀어 박는 순간이었다. 안쪽이 열려 두툼한 귀두가 그 안을 파고들었다.

“아윽, 응, 크흣…!”

기어코 성기가 결장까지 꿰뚫었다. 배를 높게 치든 영하의 휜 허리가 파드드 떨렸다. 살 기둥이 내벽을 퍽퍽 치받을 때마다 날씬하게 들어간 얇은 뱃가죽 위로 미묘한 형태가 드러났다.

“흐읏, 악! 아앗…….”

“아프다고, …했잖아!”

“으응, 안 아파. 안 아파 나, 악 아아아!”

말과는 다르게 고통에 영하의 성기가 식어 초라하게 배꼽 위에서 흔들렸다. 그 꼴을 보며 세계가 욕설을 뱉었다. “시발, 그러니까….”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그는 흥분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박아 대는 속도를 조절해 느릿하게 움직이며 안을 휘젓는 성기를 천천히 빼냈다.

그 행동에 결장 입구에서 걸린 귀두 갓이 느껴져 영하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내 세계가 힘을 줘 당겨 푹- 하고 빠져나오자 뒷구멍의 점막이 쫀득하게 성기를 빨아들이며 함께 딸려 나와 붉은 점막이 잠시 드러난다. 땀과 애액이 흥건한 허벅지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아, 젠장… 제발, 최영하….”

그가 영하를 탓하며 입술을 씹어 댔다. 목울대가 쉼 없이 오르내리고 늘 한결같던 얼굴이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적나라하게 손자국이 난 허리를 고쳐 쥔 그는 잠시 멈춘 허릿짓을 다시 이어 갔다.

망가져…….

본인이 끝까지 넣어 달라고 하긴 했지만, 그만큼 더 넣는다고 이렇게까지 힘들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그간의 매일 같은 섹스로 인해 삽입 섹스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버거웠고 괴로웠지만 흥분감을 못 이겨 당황하는 아빠의 얼굴을 본 이상, 영하는 멈출 수 없었다. 그가 좀 더 이성을 잃고 자신에게 덤벼들기를 바랐다.

“으응, 아, 아으, 흥- 앗, 하으…….”

안을 느리게 드나들자 끅끅대던 신음 소리가 가늘어진다. 더 이상 끝까지 박아 넣어도 우는소리를 내지 않았다. 영하는 엉덩이에 보조개가 파일 만큼 강하게 뒤를 바짝 조이곤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벌어진 구멍이 뜨겁고 따갑다. 그러나 동시에 기뻤고 절절한 쾌락이 느껴졌다. 세계의 음모가 흰 엉덩이에 맞닿아 느긋하게 문질러진다. 기분이 좋았지만 모자랐다.

“으응, 앗, 하읏, 하으, 앙… 더, 빠르게…….”

세계는 그렇게 했다. 빠르게 허리를 쳐올렸다. 푹푹 박히고 빠져나올 때마다 성기를 따라 안쪽의 애액이 흘러 소파 위로 떨어져 내렸다.

영하는 달뜬 눈으로 손을 뻗어 그의 몸 여기저기를 매만지며 신음했다. 으응, 읏. 눈꺼풀을 감았다 뜰 때마다 이곳의 위치를 잊게 했다. 어느새 바싹 선 성기가 야해 빠진 배 위를 툭툭 치며 프리컴을 흘려 보냈다. 점성 있는 액체가 배 위로 길게 늘어졌다.

“아! 아앗! 갈 것 같아, 아응, 아빠아, 나, 힉, 흐으….”

허락받으라고 한 기억도 없는데, 영하는 사정감이 몰려오니 그에게 허락을 구했다. 덜덜 떨고 애처롭게 울면서도 싸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빠, 흐… 나와, 응, 으읏, 앗, 흑 빨리이, 응, 못 참겠…….”

“참아 봐.”

“으응, 아, 안 대에, 힉, 응…… 앗! 아아아아!”

억눌린 그의 목소리를 듣고 도리질 쳤다. 도저히 참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래는 곤죽이 된 듯 감각이 지글거렸고 전립선이 두꺼운 성기에 자꾸만 눌려 요의가 함께 치솟았다. 철퍽철퍽 살끼리 부딪치는 소리로도 흥분한 영하는 가죽 소파에 짧은 손톱을 박아 넣고 배를 높게 쳐들었다.

“안 돼, 안 돼…!”

영하는 다급하게 성기를 붙잡았다. 숨이 가빠 머릿속이 하얗게 타올랐고, 배 속 깊은 곳에 파묻힌 두꺼운 귀두의 모양으로 아래의 구멍이 절절하게 새겨지는 것 같았다. 그의 성기는 너무 컸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곤란했다.

영하는 다물리지 않는 제 아래를 생각하며 발기해 멀건 액을 내보내는 성기를 세게 붙잡았다. 놓는 순간 정액이 쏟아져 나와 버릴 것 같았다. 꼴사납게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하게 그를 불렀다. 참기가 버거웠다. 절정이 코앞에 닥쳤고 뒤가 벌어진 감각만으로 쾌락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으응, 아아아! 아빠… 응, 응! 흑. 제발, 흐, 제발요… 끄흣….”

“가도 돼.”

“아아아아앗……!”

붙잡은 성기가 아니라 결합된 뒤쪽에 순식간에 물기가 차올랐다. 눈을 크게 뜬 세계가 저급한 욕을 뱉으며 성기를 뽑아내자마자 크게 벌어진 구멍에서 맑은 액이 주르륵 쏟아져 내렸다.

“제기랄!”

세계의 성기에서도 동시에 흰 액이 사출되어 강하게 뿜어져 나온 정액이 영하의 엉덩이와 허리에 뿌려졌다.

“끄흐으, 힉….”

전율하는 몸 위로 정액이 계속 뿜어진다. 질척하고 점성이 높아 느리게 피부를 타고 내려갔다. 세계는 젖은 머리칼을 넘기며 숨을 골랐다. 구멍이 뻐끔대며 천천히 다물리고, 영하의 허벅지가 덜덜 떨리더니 곧 잡은 성기에서도 정액이 후두둑 떨어졌다.

뇌가 절어 버린 것 같은 섹스.

멍하니 눈만 끔뻑였다. 숨을 색색 몰아쉬느라 입술이 다물리질 않았다. 한참을 벌름대는 구멍 위로 정액을 뱉어 낸 그의 두께감 있는 몸체가 영하의 몸을 짓눌렀다.

으윽……. 내리누르는 감각에 신음이 흘렀지만, 영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혀를 내밀었다. 키스하며 마주친 세계의 눈빛은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으나 그는 묵묵히 영하의 입꼬리를 핥고는 내밀어진 혀와 얽었다.

“응…….”

영하는 아직도 절정의 여운으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구멍이 이따금 바짝 조여들었다.

손을 내린 세계는 통통한 엉덩이를 갈라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주름진 구멍 위를 만지자 손가락을 촉촉하게 물어 오며 스스로 뻐끔 벌어졌다. 허리를 굽혀 상체를 일으킨 최세계가 젖은 입술로 한 번도 만져 주지 않은 왼쪽 가슴을 핥고는 말했다.

“왜 자꾸 다른 여자라느니, 그런 이야기를 해.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알잖아.”

“그래도….”

“너 말곤 의미 없어. 얼마나 더 예뻐해야 알아주는 거지?”

“아직 한참 모자라.”

힘이 없어 중얼거리면서도 모자란다는 의견은 확고했다. 세계가 웃었다. 내벽이 손가락을 쫀쫀하게 물어 댔으나 그는 안쪽을 더듬어 보곤 금방 손을 빼내어 테이블 위를 더듬었다. 까만 가죽 커버에 든 정사각형 티슈가 겨우 손끝에 닿았다.

“내 눈엔 네가 제일 예쁘니까, 과거로 질투는 그만해. 의부증 생기겠어. 그러다가.”

“…얼마나…?”

예쁘다는 말만 귀에 들어와 순진하게 물었다.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이지.”

그의 말에 영하는 쉽사리 반응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생긴 꽃인지 몰라서 오는 패착이었다. 그러나 꽃 같다고 말해 주는 것만은 알아들었으니 얌전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추가로. 밖에서 아이스크림 핥아 먹지 마.”

“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게 어때? 내가 질투하면 정말 사달 나니까, 그런 일 만들지 마.”

“어떻게 사달 나는데…?”

늘 궁금했던 부분이라 영하가 황홀하게 물었다.

“궁금해하지 마. 애초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쪽이 좋으니까.”

“그래도 궁금해.”

“양쪽 발목 다 부러뜨려서 집 안에 가둬 둘 거야.”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영하의 말간 얼굴에 곧장 억울함이 가득 담겼다. 찡그린 눈가에 그의 손이 닿았다. 손가락이 나풀나풀한 속눈썹의 끝을 건드렸다.

“왜 나를…….”

“그러니까 알아들으란 의미지. 이제 그만 자. 그리고 어차피 너희 과엔 네가 눈 돌릴 만한 놈도 없었어.”

“응…….”

사실이었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그가 잠들라고 하자 영하는 정말로 졸음이 쏟아져 가물가물 눈을 감았다. 노곤노곤한 몸이 아래로 훅 꺼져 간다. 맞닿은 따뜻한 몸체와 무게감이 좋았다. 영하가 잠드는 사이로 세계가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해.

*

미쳤다.

미쳤다.

미쳐 버린 게 틀림없다.

아빠의 사무실 앞에는 비서실이 바로 붙어 있는데!

어련히 그가 알아서 했겠지만 그렇다고 미친 짓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아악!”

충격에 비명을 질렀으나 그다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영하는 다시 한번 내질렀다.

“아악!”

“학생! 요즘 상무님 방에 자주 있네? 무슨 일 있는 거야?”

괜히 질렀다. 아주머니가 언제 오신 건지 다급하게 안방을 노크하며 영하를 불렀다. 순식간에 창백해진 낯으로 영하는 고개를 저었다. 문밖에 있으니 보이지도 않을 텐데.

“아니, 괜찮아요……. 모서리에 부딪혀서 그래요.”

“조심 좀 하지. 이십 분 뒤에 나와. 국 끓여 놓을게!”

“네에. 네!”

엉겁결에 대답하고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녹아내릴 듯한 섹스를 하고서도 영하는 우울했다. 비서분들이 들었으면 어떡하지…. 영하는 몸을 겹칠 때마다 입버릇처럼 그를 불렀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아빠, 아빠하고 울었다는 뜻이었다.

손발이 차가워지는 감각에 베개에 이마를 댄다. 어떡하지. 베개에다 머리를 쿵쿵 박은 영하는 결국 버티질 못하고 휴대폰을 들어 그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이 가는 내내 심장이 바늘로 콕콕 쪼이는 기분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최영하! 왜 자꾸 밖에서 하려고 하냐고!

-응.

“아빠, 아빠 어제, 어제 사무실에서…….”

-흠. 기억났네.

목소리에 웃음기가 담겼다. 영하는 지금 팔자 좋게 웃을 때가 아니었다.

“어떡해? 다 들어 버린 거 아냐?”

-비서실?

“응. 어떡해, 어떡해… 내가 막, 아빠라고….”

-너 데리고 왔을 때 비서실 다 퇴근시켰어.

“응? 정말?”

-그때 시간이 몇 시였는데. 다 퇴근했지.

“하, 뭐야아! 다행이다.”

-사실 한 명 남아 있었어. 놀랐지.

너무 놀란 나머지 영하는 욕설을 뱉을 뻔했다. 겨우 가슴을 가라앉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그가 장난을 치는 것이다. 정말 미친 건 저 인간이 아닐까? 섹스를 혼자 한 것도 아니고 같이 했는데 어떻게 저렇게 태평할 수가 있지?

-걱정 마. 네가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긴 하지만 사무실이 신음 소리 하나하나 다 들릴 만큼 방음이 안 되진 않아.

“그래도, 그래도 모르잖아.”

-그렇게 걱정이 되면 뭐 하러 날 사무실에서 덮친 거야. 각오를 했어야지.

“덮친 게 아니지. 나는 그냥 하자고 한 거고, 아빠가 덮친 거잖아!”

사무실에서의 일이 트라우마가 됐는지 영하는 주방에 있을 아주머니도 신경 쓰여 침대 밑으로 내려가 웅크려 작게 이야기했다.

맨다리로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프레임이 높아 한참 위에 있는 매트리스에 뒤통수를 대곤 답답하게 숨을 뱉었다. 휴대폰 너머로 최세계가 투덜거렸다.

-억울하네. 이런 억울함 오랜만이야. 끝까지 박아 달라느니 졸라 대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서운해서 잠도 못 자겠네.

“남자답게 떨쳐 내.”

-성차별적인 발언이잖아.

“아아, 몰라! 아무튼 못 들었다는 거지? 확신할 수 있어?”

-아빠라고 하는 건 못 들었을 거야. 매번 울면서 불렀으니까. 하지만 너랑 내가 일해야 하는 사무실에서 잤다는 건 알겠지.

망했다. 별 차이가 없다. 아주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영하는 이제 다시는 그 회사에 발도 들이지 못할 것이다. 절망하며 매트리스를 주먹으로 쿵쿵 내리쳤다. 매트리스 속 독립된 스프링이 진동하며 울렸다.

“흐으… 어떡하냐고.”

-또 울어? 걱정 마. 추가 근무 수당에 입 틀어막는 수당으로 백만 원 줬어. 그러니까 입 다물 거야.

“안 울거든. 그래도, 아이씨. 이제 아빠 회사 못 가.”

-상관없을걸. 걘 네가 또 오기만을 바랄 거야. 네 얼굴에 백만 원이라고 쓰여 있을 거라고. 백만 원 또 언제 오나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믿음을 배신하지 말아야지.

그 믿음, 배신하고 싶다. 제발. 다시는 안 갈 것이다. 수치스러워서 죽어 버리고 싶었다. 병원 의사에게 뒤에서 물이 나온다는 증상을 설명할 때와 비슷한 치욕이었다. 영하가 대답 없이 한숨만 연이어 뱉자 최세계가 혀를 찼다.

-그러니까 술 그만 마셔. 알코올 때문에 분비되는 엔도르핀과 세로토닌은 마약이나 마찬가지야. 행복하지도 않은데 억지로 발생시킨 엔도르핀이 무슨 의미야. 그게 반복되면 뇌의 측두엽이 제 기능을 못 하게 된다고.

“왜 술 한 번 마신 사람을 알코올 중독자로 만들어!”

일주일에 삼 일을 취해 있는 친구들과 비교하면 영하는 술을 입에 댄 편도 아니었다.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알겠다고 하고 끊어 버리곤 머리를 죄다 헝클이고 신음했다. 바닥에 축 늘어져 눈만 끔뻑인 영하는 얼마 가지 못해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알코올보단 휴대폰 중독이라 어쩔 수 없었다.

노란색 메신저 아이콘에 메시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눌러 보니 대부분 과의 신입생 단톡방이었다.

별생각 없이 단톡방에 들어가 못 본 메시지부터 슬렁슬렁 내려 보는데, 어쩐지 자신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괜히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다. 설마, 내가 술집에서도 누구더러 자자고 한 건… 아니겠지? 기억엔 없어도 아빠가 말하는 세로토닌인지 뭔지 때문에 기억이 휘발됐을 수도 있다.

  어제 그 남자분 영하 가족인 거지?

데리러온거잖아

다행히도 철없는 중학생 1학년처럼 그 많은 사람 사이에서 섹스 이야기를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이걸 다행이라고 봐야 할지. 대화 속 잘생긴 그 남자가 누구인지 너무 뻔했다.

  형 아니야?

형이겠지

형일 리가 없다. 그 남자는 서른여섯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동기들에겐 그가 영하의 아버지인 게 말이 안 되는 쪽이었다. 이마를 짚으며 메시지를 계속해서 내렸다.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의 정체와 잘생겼다는 이야기.

최세계의 화려한 얼굴 덕에 다 큰 스무 살을 데리러 오는 가족이라는 건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슈인 듯했다.

머리를 뒤로 넘겨 매트리스에 뒤통수를 바짝 대곤 휴대폰 화면을 노려본다. 대답할지 말지 고민 중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대체 얼마나 얼굴을 훔쳐본 거지. 그 남자는 너무 튀어서 탈이다. 마스크를 쓰고 살았으면 좋겠다.

뭐라고 대답할까. 아빠라고 말할 순 없다. 어쩌면 민재가 술집에서 아빠를 봤을 수도 있다.

맞아, 맞아. 민재가 있었지. 영하는 황급히 다시 대화 내용을 올려다봤다. 민재는 한마디도 없었다. 일부러 말을 안 한 건지, 아직 일어나지 않아 못 본 건지 모르겠지만 민재를 고려한다면 절대 아빠라고 해선 안 된다.

결국 영하는 가장 쉬운 선택지를 골랐다.

   응 형이야.

민재가 아빠를 봤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다시 화해했다고 하는 수밖에.

대체 이게 무슨 짓이지. 아빠를 친구에게 애인이라고 속이는 것도 어이없는 짓이었지만, 민재 입장에서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었다. 애인이 바람을 피워서 헤어졌다고 했는데, 얼마 뒤에 오티 장소에 그 남자가 데리러 온다.

복잡하게 얽인 상황에 이마를 긁었다. 민재에게 이야기해 줄 말 같지도 않은 연애 일화를 또 지어내야 했다. 이러려면 사학과가 아니라 문예창작과에 갔어야 했던 거 아닌가?

*

3월. 대학생이 된 영하는 교복 없이 아침마다 머리를 싸매고 옷을 골라 등교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학교생활은 평범했고, 겨우내 쓸쓸하던 길거리에는 초록 잎이 싹을 틔워 개나리가 가장 먼저 봄을 반겼다. 비가 내린 오전에는 봄의 햇살 아래로 빗방울을 머금은 정원이 반짝거렸다.

아직은 꽃샘추위에 새순이 자라는 속도가 더디지만 몇 주가 더 지나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영하는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빠와 함께 벚나무가 즐비한 거리를 걸어야 했다. 반드시 손을 잡고 걸어야만 했다.

영하와 세계는 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최세계가 영하의 가슴을 빨며 흥분해 거친 숨을 뱉어 냈던 같은 차종과 같은 자리였다.

“어린애들은 데이트 코스를 죄다 카페로만 잡는 건가.”

그가 휴대폰으로 목적지인 카페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했다. 블로그 글 제목은 [빵순이를 위한 서울 근교 데이트 맛집 BEST 7]이었다.

집에 있으면 자꾸 그가 덤벼들어 영하가 드물게 먼저 외출을 제안했다.

어디를 가고 싶냐는 물음에, 영하는 포털에서 데이트 코스를 쳐서 아무거나 보여 줬다. 의외로 섬세하지 못하기에 그런 데에 관심이 없었다.

좀 더 자세히 찾아본 것은 하루하루를 계획대로 살아가는 최세계 쪽이었다. 영하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서 그의 어깨에 뺨을 대고 웃었다. 근래 영하의 기분은 최고조였다.

며칠 전 민재에게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 술집에서 분명 아빠를 봤을 텐데 민재가 가타부타 이야기가 없어서 참다가 결국 양심에 찔려 먼저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데 민재는 첫마디를 듣자마자 얼굴을 와락 구기며 손을 저었다. 뒷걸음질까지 쳤다.

‘민재야, 그, 나 사귀는 사람 말이야.’

‘아, 됐어. 안 들을래. 이제 깨졌다 붙었다 하는 거 또 이야기만 해 봐. 죽여 버린다.’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먼저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죄다 민재가 말해 달라고 억지를 부려서 한 건데. 하지만 본인이 민재의 상황이었으면 더 화를 냈을 게 뻔해 입을 다물었다. 어찌 됐든 해결됐으니 다행이다.

걱정거리가 모두 사라졌다. 아빠를 왜 거부하고 밀어냈나 싶을 만큼, 영하는 지금 어느 때 보다 안정적이었다. 우울함을 느끼지 못했고, 평온하고 따스하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떴다. 차체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대교 위를 느릿하게 지나고 있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 강가를 보던 영하는 고개를 돌려 최세계의 얼굴과 목, 가슴과 배까지 훑어 내렸다. 영하의 두 눈에도 봄의 햇살이 내리쬐는 듯 이채가 반짝 감돌았다.

내민 손가락이 최세계의 가슴을 콕콕 건드렸다.

반대편 창가를 내다보던 그가 고개를 돌려 말없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하얀 손을 잠시 내려다봤다.

그는 원단이 얇고 부드러운 까만색 반폴라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목 위로 살짝 올라오는 네크라인에는 모드 글로벌의 최고가 하이 패션 브랜드인 ‘ÆCID HOMME’라는 브랜드명으로 조그마한 은장 로고가 달려 있었고, 니트로 직조한 원단은 얇아 살결이 비치진 않아도 옷 아래 그의 가슴과 배에 존재하는 근육들의 실루엣을 은밀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정말 야하기 짝이 없다고, 가슴을 쿡쿡 찌르며 영하가 생각했다.

“야한 옷 입지 마.”

“네 생각이 문란한 거지.”

최세계가 픽 웃으며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영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옷이 야해. 다음부턴 이거 입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검지로 가슴을 콕콕 찔렀다. 처음에는 살짝 닿을 정도로만 찌르더니, 그가 별말 안 하고 가만히 있자 용기가 났는지 손가락 살이 조금 파묻힐 만큼 힘이 들어간다. 그때 세계가 영하의 손목을 붙잡았다. 미간이 좁아져 있었다.

“변태같이 남의 가슴을 왜 자꾸 만져.”

“재밌어. 아빠한테 변태라는 이야기 들으니까 더 재밌어.”

진심으로 재미있었다. 최세계는 영하의 머릿속에서 진정한 난봉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원하는 만큼 만졌는지, 후련하게 웃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강가의 풍경이 지나 낮은 건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가슴을 만진 추행범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게 싫은 세계가 팔을 뻗어 영하를 품 안으로 당겼다. 눈이 잠깐 마주치자, 눈꺼풀 위로 입술이 살포시 닿았다 떨어졌다. 영하가 하얀 작약처럼 흐드러지게 웃었다.

얌전하게 말 잘 듣던 최영하가 그를 관리하려 든 것은 목적지인 파주의 한 대형 카페에서 내린 순간부터였다.

분명 출발할 땐 날이 쌀쌀했는데 막상 도착하자 태양에 달궈진 바닥 덕분에 날이 의외로 춥지 않았다. 바깥 온도는 겉옷을 괜히 챙겨 왔다 싶을 만큼 따스했다.

그러나 영하는 건물 뒤편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지 1분 만에 최세계에게 달려들었다.

“빨리 입어. 빨리. 빨리이.”

“덥다고.”

꽃샘추위가 어디 가고, 완연한 봄날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영하는 그에게 외투를 입으라고 성화였다. 밖으로 나오니 옷이 더 비쳤다. 이 정도면 시스루다.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그의 팔에 걸쳐진 외투를 빼앗아 들었다.

“입어!”

“여자 친구 노출 관리하는 남자 친구도 아니고 다 가린 목폴라 입은 거로 자꾸 이럴래?”

하지만 영하도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저건 가린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여자애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들끼리 휴대폰 하나로 뭔가를 함께 보더니 웃음이 탁 터졌다. 그러고는 주변을 의식해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눴다. 영하는 은근히 어깨를 쭉 빼어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뭘 보나 했더니 별것 아니었다. 요즘 인기 많은 배우의 화보 사진일 뿐이었다.

가슴팍이 드러난 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보고 그녀들은 “남자는 가슴이지.” 하고 조용하게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영하가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최영하는 아주 익숙한 가슴을 떠올리며 내심 그 사이에 끼어서 동의를 표하고 싶었지만 자랑할 만한 가슴도 없는 주제에 거기 끼어들어 과에 길이 남는 정신병자로 낙인찍히고 싶진 않아 속으로 주억였다.

하지만 이제 와 지나가는 여자들도 그것과 같은 생각을 하며 아빠의 가슴을 쳐다본다는 생각을 하니 초조하고 불안하다.

왜 하필 밖에 나올 때 이런 옷을 입은 거지. 이 남자는 너무 화려하게 생긴 데다 키까지 커서 군중 속에 절대 묻힐 수가 없는 남자였다.

실제로 어두운 술집에서 잠깐 앉아 있었을 뿐인데도 여자 동기들이 전부 아빠 이야기를 했다. 늘 지나가는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있는데, 아무리 남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뒤돌아볼 만한 남자였다. 그러니 저 옷은 위험하다. 안 된다.

영하가 대놓고 세계의 가슴팍을 손으로 가렸다. 햇빛에 비쳐 근육의 굴곡이 드러나긴 해도 영하의 생각만큼 시스루는 아니었고 타이트하지도 않았다. 단지 원단이 얇으니까 몸 선에 붙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억지를 부리고 집착해 주는 게 귀여워서 당황해도 웃기만 했던 세계도 이쯤 되니 태어날 때부터 그릇이 작던 인내심이 완전히 바닥난다. 카페를 눈앞에 두고 들어가질 못했다.

이미 목폴라만 입고 있어도 답답한데, 혹시 몰라 챙겨 온 재킷을 꾸역꾸역 입으라고 하니 억지로 짓고 있는 미소에도 금이 갔다.

그는 입 안을 잘근잘근 씹었다. 카페에서 막 나오던 아주머니 무리들이 자기들끼리 속닥이며 영하와 세계를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세계의 가슴팍과 그 위에 올라간 최영하의 두 손을 보는 것이다.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 더 눈에 띄어. 지나가는 아줌마들이 다 내 가슴만 쳐다보고 있다고.”

이를 꽉 깨문 발음에도 영하는 겁 하나 먹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해졌다.

“그러면 옷 입어.”

한 치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하아……. 알았어. 알았다고.”

편하게 내린 앞머리가 이마를 가렸다. 이러다 카페 손님 모두가 무슨 동물원에서 재주 부리는 원숭이 보듯이 그의 가슴을 훑어보고 지나갈 것 같아 결국 어쩔 수 없이 최세계는 빨간색으로 스티치가 들어간 블랙 데님 재킷에 팔을 꿰어 넣었다.

입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영하가 단추까지 잠가 줬다. 그러자 최세계는 목 아래까지 시커멓고 조신하게 모두 감춘 완벽한 보수적인 차림새로 피곤한 얼굴을 했다.

이번엔 시선 대신 더운 바람이 그의 머리 위를 훑었다.

온화한 날씨에도 재킷을 바짝 여며 입은 최세계는 아들을 훑어 내렸다. 영하에게선 트집 잡을 것이 없는지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하는 시키지 않아도 온몸을 꽁꽁 감싸고 나왔다. 마른 체구를 가릴 루즈 핏의 두꺼운 후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살면서 데님재킷의 단추를 채워 본 것은 처음이라고 그가 이어 중얼거렸다. 그러나 한숨만 내쉴 뿐 하지 말라는 말은 못 하고, 카페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집에 돌아가면 하루 종일 가슴 만질 수 있게 해 줄게.”

커다란 카페의 정문을 열며 그가 말하자, 영하가 질색했다. “왜 나를 그런 변태로 만들어. 안 만질 거야.” 하곤 고개를 팩하니 돌렸다.

“플랫화이트 아이스 하나랑, 음, 녹차라떼 주세요. 아이스로요.”

정사각형 모양으로 상큼한 아이싱이 뿌려진 레몬케이크와 그릴 자국이 선명한 올리브 치아바타 파니니, 얼그레이 스콘까지 쟁반에 담아 함께 결제했다. 세계는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영하가 데이트 비용을 직접 결제했다. 물론 카드 대금은 최세계의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카페는 층고가 아주 높은 데다 층수가 5층이나 됐다. 차마 5층을 다 둘러볼 엄두도 안 났고, 1층에도 자리가 제법 있길래 그냥 1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영하가 주문한 음료와 빵을 가져와 테이블에 놓는 순간, 세계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인체공학이라고는 흔적도 없는 디자인이네. 밥 먹다 척추측만증 걸리겠어.”

테이블이 낮아 키가 큰 최세계의 무릎 아래에 음료가 있었다. 음료는 둘째 치고 이래서는 빵을 먹을 수가 없다.

어쩐지 1층에 자리가 남았더라. 주변을 둘러보니 높은 테이블은 모두 손님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영하가 작게 웃으며 일어났다. 둘은 2층의 통창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맛없어. 비싸기만 하고. 대학생들 용돈으론 부담일 텐데.”

플랫화이트를 한 모금 마신 세계가 말했다. 그가 맛있다고 할 거라곤 애초에 기대도 없었다. 신랄한 평가도 딱히 기분 상하지 않은 영하는 그것보단 다른 데에 초점을 맞췄다.

“이게 비싸다는 걸 알아?”

“왜 몰라.”

그는 공식적으로는 아들 하나 있는 미혼남이고, 영하는 숨겨진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영하는 재벌가의 손자라는 프레임에서 조금 멀어져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학군이 학군이다 보니 그래도 대부분 중소기업 오너나 전문직 종사자의 자녀긴 했지만, 아빠나 이모들처럼 금액 걱정 없이 돈을 쓰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니 영하는 대체로 평균적인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안다. 돈을 감각 없이 흥청망청 쓰는 그와는 달랐다.

“어떻게 알아? 아빠는 맨날 비싼 식당만 가잖아.”

“나라고 치킨도 막걸리도 안 먹어 봤을 거 같아?”

“충격적이야.”

막걸리와 함께 치킨을 먹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너무 안 어울린다. 어느 정도냐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표정이 왜 그래.”

“그냥…….”

세계가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자, 영하는 화제를 돌렸다. 학교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어제 나 봉사 활동 갔잖아.”

금요일, 영하는 학교의 교양 수업 때문에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팀플레이 과제로 봉사 활동을 다녀와 동영상을 만들어 제출해야 했다.

조별 과제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험담은 이미 예전부터 들었기 때문에 바짝 긴장했는데, 다행히 앉은 자리 기준으로 조를 나눠 줬다. 덕분에 영하는 정욱이와 같은 조가 됐지만 하필이면 그날 지각한 민재와는 떨어져야 했다.

영하네 조는 경기도에 있는 한 유기동물 보호센터를 방문하기로 했다. 영하는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무척 설렜으나 상상과 달리 현실을 마주하자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입양해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아빠 성격상 절대 동물을 키우는 걸 허락해 주지 않겠지.

눈곱이 잔뜩 낀 강아지의 얼굴을 닦아 주며 잠깐 쉬고 있었는데, 몰티즈에게 이불을 덮어 주려던 이정욱이 정말 조그마한 새끼 강아지한테 손가락을 물렸다.

순간 영하는 민재에게 들려준 아빠와의 가짜 연애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하가 지어낸 연애 스토리에서는 그가 치와와에게 물리는 것을 영하가 도와주었으니까.

안타깝게도, 정욱이가 물리는 것을 막아 주진 못했으나 피가 나는 검지에 밴드를 붙이는 것 정도는 해 주었다. 남의 고통에 즐거움을 느껴선 안 됐지만, 아빠가 생각나서 재미있었다.

그나저나 이정욱은 저번에 편의점도 못 찾고 길 헤매는 것도 그렇고 키만 크지 은근히 헛똑똑이였다. 아니지. 내가 똑똑한 건가.

“그래서, 정욱이가 강아지한테 물려서 조금 빨리 끝났어.”

“촬영한 건 동영상으로 누가 만드는 거야. 언제 완성돼?”

“재수생 형이 동영상 편집자 아르바이트도 했대. 그래서 그 형이 만들 거야. 완성되는 시기는 왜 물어. 설마 보여 달라는 건 아니겠지…?”

“내가 보면 안 되는 영상인가?”

“그건 아니지만… 뭔가 부끄러워. 열심히 일하는 척 연기도 했고….”

그렇게 말하며 녹차라떼를 한 모금 넘겼다. 그다지 특별한 맛과 향이 없는 평범한 맛이었다. 동네의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먹어도 비슷할 맛.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 이곳까지 와서 기껏 먹는 것이 평범한 녹차라떼라도 딱히 억울하지도 않았다. 데이트니까.

“왜 부끄럽지?”

“그냥.”

“그러니까 더 보고 싶은데. 꼭 봐야겠어. 나오면 동영상 보내. 그나저나 우리 의자왕은 스무 명이랑 소개팅한다더니 어떻게 됐지?”

절대 보내지 않을 거라 속으로 다짐하는 와중에 그가 다 지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뒤끝 뭐야. 술 취한 사람이 한 이야기를 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영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며 “안 해. 소개팅은 무슨.” 하고 대답했다.

실제로 영하는 두 번의 과팅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제발 얼굴만 비치고 가라고 사정해도 고개를 저었다. 발목이 부러지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꾸 무용과랑 과팅이 좋지 않냐고 하던데, 영하는 유치부와 초등부 내내 발레 하는 여자애들과 종일 같이 지낸 터라 딱히 무용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흐음.”

영하의 솔직한 대답에도 그는 미심쩍은 눈을 했다. 창밖에 어린아이 둘이 부모님과 양쪽 손을 잡고 나란히 카페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던 영하는 시선을 느껴 그에게로 눈을 돌렸다.

“진짜 안 했어. 알 거 아냐. 아빠 퇴근 시간 때마다 늘 집에 있었잖아. 주말에도 어디 안 가고.”

“그야 그렇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영하는 매일 밤, 주말마다 시달렸다. 정신 차리면 늘 헉헉대는 숨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가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 있어 엉덩이가 남아 나는 날이 없었다.

그래도 요즘엔 첫 섹스처럼 지나치게 길거나 거칠게 하지는 않았으니 나름대로 깔끔하게 하고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할 말이 생겼다. 영하는 주변을 흘끗 돌아보곤 목소리를 낮춰 넌지시 그에게 전했다.

“자꾸… 아침에 하지 마. 9시 수업 많은데 수업 시간에 너무 피곤하단 말이야.”

뺨이 붉어졌다. 아무도 듣지도 못할 거리였고 들어 봤자 못 알아들을 텐데도 음담패설을 하는 기분이라 죄책감이 들었다. 세계는 딱딱한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음. 고려는 해 보겠는데, 참는 게 쉽지 않아. 난 아침에 하는 게 더 좋으니까.”

“좀 참아 봐…. 어른스럽게.”

“전제가 잘못됐어. 어른이니까 그걸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어른스럽게 참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지.”

나이프로 샌드위치를 정확히 사 등분 하며 그가 말했다. 마지막에 자른 샌드위치는 베이컨이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세계는 그것을 못 참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포크로 베이컨을 빵 안에 넣고 흐트러진 모양새를 네모나게 바로잡았다. 영하는 그의 말에서 지적할 부분을 찾아냈다.

“…아빠랑 나랑 나이 차이는.”

“참고로 그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을걸. 넌 아직 네 엄마 좋아하잖아.”

세계가 잘라 낸 파니니의 접시를 영하의 앞에 넘겨주며 이야기했다. 그의 입에서 엄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 어쩐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안 하는 게 좋다는 뜻이지.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 다른 이야기 해 봐.”

하지만… 그만하자고 다른 생각이 드는 게 아닌데. 복합적인 마음이 동시에 들어 마음과 머리가 순식간에 괴로워졌다. 순간 영하는 엄마의 나이를 재차 떠올리곤 머리가 하얗게 됐다. 엄마는 올해 마흔이었다.

아빠와 엄마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여러모로 그랬다. 그래서 영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이야깃거리를 생각해 냈다. 아. 그렇지.

“먹고 나서 어디 갈 거야?”

“수목원. 아직 초봄이라 볼 게 있을지 모르겠는데, 근처에 있으니까 한번 가 보는 거지.”

세계가 다리를 꼬며 이야기했다.

수목원……. 최근 집의 정원을 싹 갈아엎었다. 노란 잔디에 새싹이 올라오던 시점이었다. 현관 계단 아래에는 키가 작은 소나무 세 그루가 심겼고, 대문부터 계단까지 돌담길 옆에도 영하는 이름을 모를 봄꽃이 줄을 지어 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정원의 새 단장 중에서는 영하의 의견도 있었다. SNS를 돌아보며 발견한 능소화나무를 집에다 심고 싶었다.

‘괜찮지. 예쁘잖아.’

최세계의 키로도 바깥이 보이지 않는 높은 담벼락 아래에 아직은 키가 작은 능소화나무가 심겼다. 집 밖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 안쪽에 있었다. 영하가 본 사진들은 대부분 바깥을 향해 꽃이 피어 있었으나 정원 안쪽에서 피어난 꽃을 보고 싶었다. 집 안에서는 자유로우니까.

“예쁘겠다.”

“너무 기대하지 마. 아직 뭔가 필 시기가 아니라서, 볼 게 없을 수도 있어.”

“으응.”

상관없다. 모래바람이 날리는 황량한 벌판이라도 영하는 그곳에 아빠와 나란히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테니까. 그가 잘라 준 파니니를 포크로 찍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카페에서 멀뚱히 시간을 보내다 예정된 수목원으로 향했다.

자연스레 매표소로 가 티켓을 끊는 아빠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니 그와 이런 곳에 와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여행은 두 번 가 본 적 있지만 국내 여행은 밤바다 보러 간 것 말고는 없었다. 외식은 종종 하는데, 세계는 늘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한 시간은 족히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외곽의 식당엔 방문해도 이런 공원에는 눈길조차 준 적 없었다.

바짝 마른 아이비가 벽을 타고 오르는 티켓 매표소에 줄을 선 모습이 낯설었다. 아빠도 평범한 인간이구나. 이런 데 오면 줄 서서 카드를 건네야 하고.

세계가 입장권을 구매하는 동안 영하는 옆에 비치된 가이드와 지도를 들었다. 뒤늦게 티켓을 들고 나타난 그와 날개를 단 천사 조각상이 붙은 우아한 유럽풍의 입구를 넘어 걸었다. 들어가는 순간 아쉬움의 탄식이 흘렀다.

“한 달만 뒤에 올걸. 잔디가 노란색이야.”

아직 푸르른 봄의 기운을 느끼기엔 이른 날짜였다. 영하가 이국적인 정원 속 황량한 잔디밭을 보며 콧등을 찡그리자 세계는 영하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때 또 오면 되지.”

“또 올 거야?”

“가자고 하면 가야지. 그땐 재킷 안 입고 나올 거야.”

“그 티셔츠는 집 가면 버릴래. 아니 아빠 옷장에서 야한 옷 다 갖다 버릴 거야.”

“새 옷인데?”

세계와 영하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관람객들은 죄다 가족과 커플이었다.

건너편 천사 조각상 앞에서 여자 친구의 사진을 연달아 찍어 주는 남자를 흘끗 보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세계와 눈이 마주쳤다. 정확하게는 영하의 시선에는 그의 코끝이 닿기 때문에, 영하가 조금 위로 올려다봤다.

“사진 찍고 싶어?”

“아니. 사진 찍히는 거 싫어해.”

“그 얼굴로 왜 싫어하지? 이해할 수가 없네.”

그가 영하의 볼을 손가락으로 찌르곤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 아까 그 남자가 취향이라 쳐다본 건가.”

정원을 빠져나가던 도중 최세계가 말했다. 영하는 순간 너무 억울해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를 노려봤다. 어찌나 억울한지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까 그 남자 뒷모습만 보였거든?”

“그렇다기엔 너무 열정적으로 보던데.”

“내가 언제? 그런 적 없어!”

오히려 열정적인 반응은 지금이 더했다. 영하가 발끈하며 어깨에 두른 그의 팔을 떨쳐 냈다. 좀 전에 본 남자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지금!

“이제 내 기분을 이해하겠네.”

“뭐어?”

“네가 늘 나보고 이러잖아. 곰 같은 놈이랑 나랑 엮다니. 그날 생각하면 꿈으로 나올 것 같아.”

호텔에서 봤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진짜 뒤끝이 왜 저렇게 길어?

영하는 대꾸 대신 앞으로 나서서 걸었다. 눈초리가 매서워지고 발바닥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혼자서 떨어져 쿵쿵 걷다 보니 팔짱을 끼고 옆을 지나가던 커플 둘이 영하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돌아보려던 영하는 좀 전에 최세계가 그 남자가 취향이었냐고 물었던 것을 떠올리곤 정면을 향한 고개에 뻣뻣하게 힘을 줬다. 조금도 돌아보지 않을 계획이었다.

한참을 혼자 걸었다. 이쯤이면 슬슬 옆에 다가와야 하는데, 세계는 여전히 뒤쪽에서 걷고 있었다. 짜증 난 마음도 식자 영하는 슬그머니 발걸음의 속도를 늦췄다. 머리 위를 빼곡하게 채운 작은 숲길을 걷고 나자 수련이 잔뜩 떠 있는 호수가 등장했다. 아직 겨울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수목원이지만 이곳만큼은 수련 덕에 푸르렀다. 영하는 그 광경을 아빠와 함께 보고 싶어 자리에서 멈춰 섰다.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새벽에 내린 이슬로 축축함이 느껴지는 둥그런 나무 난간에 손을 올리고 그를 기다렸다.

영하의 정면에 호수 너머로 낡은 정자와 줄기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커다란 나무가 보였고, 오래 지나지 않아 최세계가 도착했다. 소리 없이 조용히 다가온 그가 영하의 바로 뒤에 서서 허리를 두 팔로 감았다. 갑자기 끌어안기는 몸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뭐, 뭐 해. 사람들 보잖아.”

손가락 하나를 떼어 내면 곧바로 다시 배에 찰싹 붙는다. 등 뒤로 그가 입은 재킷의 동그랗게 튀어나온 단추의 형태가 느껴졌다.

“예쁘네.”

“아니, 사람들 본다니까. 좀 놔.”

이제 와 호수의 아름다운 광경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버둥대자 그냥 스쳐 가던 사람들도 영하를 뒤돌아봤다. 지나가던 관람객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굴이 시뻘게진 영하는 곧바로 호수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덜컹대는 나무 난간을 꽉 잡고 버텨 내는데, 귓가에 대고 그가 평온한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뭐 어때. 지옥에나 떨어질 게이 커플이라고 생각하겠지.”

나중에는 웃음기도 조금 섞여 있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그 마음 편한 소리에 절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뒷모습이고, 어차피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넌 너무 겁이 많아서 탈이야.”

곧이어 그가 말했다. “괜찮아. 귀여우니까.”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았으나 영하는 긴장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발악해도 힘으론 아빠를 못 이기는 데다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었다. 지옥에나 떨어진다는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커플이란 단어는 꽤 마음에 들었으니까.

*

토요일 오전. 영하는 혼자 집에 있었다. 세계는 사업 미팅차 아침 일찍 골프를 치러 갔고 영하는 늘 그렇듯 뒹굴거리며 게으르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전공 서적을 펼쳐 잠깐 공부하다가 도로 침대에 누웠다. 한참을 굴러도 떨어지지 않는 커다란 침대가 너무 좋아 천장을 바라보며 잠들기 직전이었다.

초인종이 울린다. 얼마 전 도우미 아주머니가 일을 그만두셔서 초인종이 눌릴 일이 없다. 아빠는 비밀번호를 눌러서 직접 문을 열고 들어오고, 비서 삼촌도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

영하는 기척에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부잣집 동네라도 도둑이 들 수는 있다. 하지만 도둑이 보통 대낮에 초인종을 누르나?

전에 작은고모가 이렇게 오셨던 걸 떠올렸다. 경계하며 인터폰으로 다가간 영하는 입을 크게 벌렸다. 불청객은 할머니였다.

아뿔싸. 화면을 보자마자 영하는 꼴불견처럼 입고 있을까 싶어 제 몸을 훑었다. 잠옷을 입고 있긴 하지만 깔끔한 디자인이니 괜찮겠지. 문을 열자마자 뛰쳐나가 현관도 마저 열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할머니와 마주한 영하는 착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셨어요.”

“그래. 오랜만이네.”

“네에. 지금 아빠 안 계신데.”

“알고 왔다. 들어가자.”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선 할머니는 꼭 뭔가의 흔적을 찾는 것처럼 집 안을 샅샅이 훑었다. 소파 위를 들여다보고, 식당에도 들어가시더니 싱크대 안쪽에 쌓인 레토르트 음식들을 보곤 호랑이 같은 얼굴을 하고 뒤돌았다. 귀한 당신 자식이 싸구려 음식을 먹는다고 화를 내실까 봐 간담이 서늘했고, 이어지는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영하 네 방 어디니.”

“네? 제 방이요?”

“그래.”

“아… 제 방 더러워서…….”

영하가 머뭇대며 말하기 꺼리자, 할머니의 눈가가 가늘게 좁아 들었다. 영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반응이었다.

“잠깐 보자. 할머니가 손자 방도 못 보니?”

“아니, 아니, 아니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지만… 할머니가 눈치채실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피할 방법도 없다.

우울하게 눈을 깜빡인 영하가 곧 제 방의 문을 열었다. 불이 꺼진 방 안은 더럽다고 웅얼거린 것과 반대로 깨끗하다. 지나치게. 누가 보더라도 이 방을 비운 지 오래된 것을 알아차릴 만큼 사용감이 없었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크게 울리고 앞이 막막하다. 영하는 어느새 목 뒤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초조하게 손가락을 꼬고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가만히 빈방을 들여다보던 할머니가 불시에 뒤돌았다. 그녀의 발이 망설임 없이 안방으로 향했다.

“할머니…!”

영하의 작은 비명과 함께 문이 열렸다. 부모와 자식 간에 단둘이 사는 이상, 안방은 최세계의 구역이었다. 그의 취향이 보이는 듯 어두운 가구 사이사이에는 누군가의 손길 또한 드러난다. 까만 서랍장 위 어울리지 않는 다육식물이라거나.

커튼을 걷어 둔 창가에는 작은 테이블이 하나 있다. 좀 전까지 영하가 들여다보던 전공 서적과 탄산음료가 올라 있었고 침대에는 누군가 한가로이 누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시선이 옷걸이에 향해 있었다. 지금 영하가 입고 있는 잠옷과 사이즈만 다르고 똑같은 디자인의 잠옷이었다.

영하는 다급하게 변명했다. 뻔뻔한 태도가 오히려 믿음직할 텐데 당황해 쩔쩔매는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말았다.

“할머니, 이거는, 제가 아빠 방에서 공부하면 집중이 잘 돼서요.”

“네가 기어코 나를 노망난 할머니로 만드는구나. 어디서 이 집에 기어들어 와서 되먹지도 못한….”

이를 악물며 말을 뱉어내는 할머니의 목덜미가 붉게 달아올라 있다. 자신을 향하는 날카롭고 따가운 언성에 영하는 말문을 잃었다.

‘되먹지도 못한….’

영하로서는 할머니가 이렇게까지 흥분하신 모습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침착하고 냉랭하시던 분이…….

이내 끔찍한 상상이 공기 속으로 돋아난다. 할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짐작이 가기에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주체 없이 부들거리는 몸에 애써 힘을 주는 때였다.

신혼방이나 다름없는 안방을 보고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말을 잇는다. 붉은 기색은 목덜미에서 눈가로 향했다.

“이 집에서 일하던 사람이 나더러 무슨 말을 하고 나갔는지 아니?”

“네…?”

“나더러 이 집 사장님은 뭐 하러 애인을 아들이라고 속이냐고 하더라. 남자끼리라서 싫은 게 아니라 그렇게 숨기는 게 더 이상하고 징그러워서 일 못 하겠다는데.”

며칠 전 그만두신 도우미 아주머니 이야기다. 할머니가 붙여 주신 분이라, 할머니께 뭔가 이야기를 남겼나 보다. 순간 기억나는 장면이 있었다.

‘사장님 애인 생기셨어?’

‘학생 요즘 안방에 자주 있네….’

아주머니는 주로 낮에 와서 일하고 가시니 아빠와 만날 일이 극히 드물었다. 학기가 시작하고는 영하도 공강인 금요일을 제외하면 볼 일이 없었다. 그래서 설마 아실까 싶어 대충 대답하고 넘겼는데…….

“대체 본가 나가서 무슨 짓을 하길래.”

“죄, 죄송…….”

“이게 다 안사람이 없어서 이 모양이다.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으니 집안에 우환이 드는 거지.”

맥없이 입술을 벌렸다. 할 말을 찾지 못해 벙긋대던 그때. 벌컥 현관문이 열렸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다급하게 돌아온 최세계였다. 놀란 시선이 영하를 향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안색을 살핀다. 그와 마주친 영하는 잿빛으로 흐려진 얼굴이었다.

“네 엄마 보고서도 인사도 없이 아들부터 챙기니?”

“저도 아빠라서요. 왜 저 없을 때 오셨어요. 말씀하셨으면 골프 약속 미뤘을 텐데.”

“세계 너 선이나 봐라. 괜찮은 아가씨 많아. 저번에…….”

“안사람 필요 없습니다.”

세계의 시선은 영하에게 오롯이 붙어 있었다. 안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흠칫 떨리는 영하의 어깨를 보고서는 굳어 있던 그의 입술이 길게 당겨진다.

“왜 떨어. 응?”

“…….”

“너도 말해야지. 아빠 결혼하는 거 싫어요.”

“아빠…!”

“집 안에 있어야 할 자리에, 다 제대로 있는 것 같은데.”

영하를 살피던 남자가 느물거리는 모습으로 부드럽게 뒤돌았다. 자신은 눈앞이 깜깜해질 지경인데 저 남자는 이 순간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돌아서면서도 세계는 창백해진 아들의 뺨을 다정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두려워 애써 그 손을 뿌리치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됐다. 이만 가 봐야겠다.”

눈가를 세게 찌푸린 그녀가 몸을 돌렸다. 차마 정도 이상으로 들러붙은 아들과 손자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현관으로 향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본 세계가 짧게 한숨을 쉰다. “잠깐 기다려.” 꼭 강아지에게 할 법한 명령을 하고선 제 어머니를 뒤따라 나갔다. 그사이 영하는 소란스레 뛰는 심장을 내리누르며 소파에 앉았다.

‘뭐 하러 애인을 아들이라고 속이느냐고 하더라. 남자끼리라서 싫은 게 아니라 그렇게 숨기는 게 더 이상하고 징그러워서…….’

징그럽다.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렇기에 괴로워 숨이 막혔다. 설마 아주머니가 그런 생각을 하다 그만두셨을 줄이야. 영하에겐 아무런 내색도 없으셨고 그만두신다는 것도 몇 명의 입으로 전해진 뒤에야 알았다.

“견뎌야 해 최영하. 견뎌야 해.”

주문을 외우듯 스스로에게 반복해 중얼거렸다.

오래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세계가 돌아왔다. 곧장 영하의 앞으로 걸어와 무릎을 굽힌 그가 영하의 시선을 올려다보곤 다정한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사실 무슨 말을 들어도 지금의 기분이 나아지진 않겠지만, 그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버틸 만했다.

“해결했어. 걱정하지 마. 할머니가 오해하고 계시더라고.”

“…정말이야?”

“정말이지.”

오해가 아니라 사실을 알고 계시는 거잖아.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임을 안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고 무슨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물끄러미 세계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영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다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마.”

“응…….”

어떻게 걱정을 안 할까. 불안함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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