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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모님 참관 수업이 있을 때마다 날짜를 속였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내 부모님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고, 칭찬 받는 게 좋았고,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좋았다. 그러나 속에는 언제나 독버섯 같은 이기심이 자라고 있었다. 참관 수업을 위해 언제나 하루 늦게 학교에 도착한 부모님은, 한 번도 내 탓을 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긁으며 ‘날짜를 잘못 알았다’고 변명했다. 나쁜 짓을 하고도 칭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게 오로지 내가 꾀를 잘 부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친부모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존대를 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는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으니,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그렇게 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부모님은 섭섭함이 가득한 얼굴로, 그래도 참 대견하다고, 언제나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언젠가 태준이, 그렇게 부모님과 사이가 좋으면서 왜 커밍아웃은 못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저 두 분이 나이도 있으시니 갑작스러운 스트레스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차라리, 두 분이 내 진짜 친부모였다면 좀 더 쉽게 온전한 내 알맹이를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 하겠다 하시면 울며불며 난리를 피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고, 칭찬 받는 게 좋았고,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좋았다. 내가 부모님의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랬다면 다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언젠가 그들도 나를 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미련 없이 오롯이 지금의 부모님에게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독버섯은 두려움을 만들었고, 두려움이 미련을 낳았고, 미련이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아버지를 찌른 것은 그림자가 아니다.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그 당시, 한 달 여동안의 일은 내 기억에서 선명하지 않다. 주변은 전쟁처럼 소란스러웠고, 누군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고, 또 어디선가는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저 오랫동안 잠을 자고 싶었다. 그 와중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마치 귓가에 입을 바짝 대고 소리가 세어나가지 못하도록 손으로 가로막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익숙한 목소리만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해진, 넌 그 사람이 너한테 병을 휘두르려는 걸 막으려다 저항한 거야. 알아들어? 해진아. 그 사람이 먼저 병으로 널 위협했어.”
“......”
“...알았어. 그럼 넌 지금 아무 말도 못하는 거야. 그냥 고개만 끄덕여.”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마다 그는 ‘잘했어’ 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왠지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크레졸 냄새로 인해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고, 낯선 사람들이 저승사자처럼 내 앞에 우뚝 서서 무언가를 받아 적곤 했다. 나는 가끔 ‘엄마’를 불렀고, ‘무사하시다’는 답을 듣고서야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아빠는?’하고 곧이어 물으면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어린아이처럼 코를 실룩이며 울먹이면 ‘아직 괜찮으시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직은. 그게 뭘 뜻하는지도 모르고 나는 다시 까무룩 잠들곤 했다. 온 세상이 정전된 듯했다.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는 여러 사람들이 보였다가 사라지곤 했다. 거의 대부분은 낯선 사람들이었고, 간간히 희철이 불안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희는 괜찮으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을 열려고만 하면 캄캄한 어둠 속으로 떨어지곤 했다. 그리고, 태준은 어둠 속에서만 모습을 나타냈다. 처음엔 꿈인 줄 알았는데, 이마에 닿는 시원한 손바닥이 사실적이었다. 꿈이 아니라, 캄캄한 밤이었다.
완전히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주위가 너무 조용해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쩜 이렇게 사람들이 무관심할 수 있냐고 섭섭해 할 정도였다. 웃기게도, 정신이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허기였다. 그래서, 아직 눈을 감은 채 소리 내어 울었다. 종이 같은 것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곧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퉁퉁 부은 눈을 떴다. 희미하게 보이는 인영이 점차 뚜렷해졌다.
“괘..괜찮아? 나 보여?”
“..흐으...희..희철아....나...나...배고프다... 으으으...흐윽...”
한 달 만에 정신을 차려놓고 고작, 그런 말을 지껄인 게 나도 황당해서 울면서도, 또 웃었다. 희철은 아연하게 그런 나를 쳐다보다가 곧 간호사를 불렀다.
“선희는 머리를 좀 다쳤어. 크게 다친 건 아니고, 그..그때는 충격 때문에 정신을 잃은 거라고... 사고 나고 여기서 치료한 후에 선희 고향집에서 식구들이 와서 우선은 데려갔어. 어..어머님은 달리 외상은 없으시고, 그냥 좀...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힘드셨나봐. 함묵증 같은 건데... 정신분석치료 같은 거 하고, 충분히 쉬면 나아질 수 있대. 여기 더 있으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대서 그.. 너 출판사, 전에 팀장으로 있던 사람이 도우미 붙여서 요양원으로 옮기셨어. 그 사람이, 대부분의 일은 다 처리했어.”
“아빠는?”
뻔히 앞에 두고, 어떤지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다. 희철은 잠시 내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여겼는지 내 얼굴과 아버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빠는 언제 일어나신대?’하고 좀 더 정확하게 묻자 그제야 아, 하고 대답했다.
“자..장기 손상이 조금.. 심하대. 출혈도 꽤 있었고...”
“저건 뭐야?”
“저..저게 아마.. 혈액투석기고.. 저건.....”
아버지는 여러 개의 호수를 몸에 연결한 채로 딱딱하게 굳어 누워있었다. 문어 같아요. 작게 속삭였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어쨌든 언제 일어나시냐고 또 한 번 물었는데, 희철은 입술을 꾹 깨물고만 있었다.
“...그 사람은?”
“응?”
“그 사람은... 죽었어?”
“그게...”
“살았어?”
살았냐고. 이를 갈며 말하자, 희철이 내 팔을 붙들었다.
“정해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사람은... 죽든, 살아있든, 어쨌든 벌을 받을 거야.”
“이..이 병원에 있어?”
“아니야. 아니야, 해진아.”
우욱, 하고 속이 뒤집혔다. 허겁지겁 먹었던 말간 흰죽이 소화되지 못하고 그대로 토악질로 쏟아져 나왔다.
커다랗게 난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깼다. 그러고 보니, 참 비싼 병실이었다. 이런 것도, 돈지랄인데. 비식 웃으려는데 입술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멍하니 창밖에서 낮게 뜬 달을 바라보다가, 병실에서도 달빛처럼 주홍빛의 조명이 작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고개를 조금 움직여 아래쪽으로 향하자, 누군가가 테이블 조명에 기대어 서류 같은 것을 조심스럽게 읽고 넘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각사각, 종이 위로 만년필의 펜촉이 무언가를 휘갈기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사람이, 대부분의 일은 다 처리했어.’
내가 당신을 불렀던가. 결국 당신밖에 생각나지 않았던가. 혼자선 아무 것도 못하는 병신, 머저리로 만든 당신을, 이번에도 역시 병신처럼 머저리처럼 당신만 불렀던가. 그래서, 당신도 버릇처럼 불려나와 습관처럼 뚝딱뚝딱 일을 처리했던가. 그러고 보니, 그림자에 대해 가장 먼저 경고를 한 것도 당신이었다. 꼼짝없이, 착한아이처럼 당신 말을 들었어야 했나.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니, 그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가늘게 눈을 뜬 채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벅저벅 다가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향을 정확하게 아는 듯한 발걸음이 좋아서 마냥 걷자고 졸랐던 적도 있었다.
“안녕.”
침대 옆으로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그가 마치 어제도 본 사람처럼, 어제도 그렇게 인사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했다. 나는 입술이 말라, 침을 발라야 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봤는데 인사부터 해야지.”
“...엄마는?”
“용인에 계셔. 물 좋고 공기 맑은 곳이야. 시설도 좋고, 어머니 앞으로 개인 간호사, 간병인, 복지사, 각 한 명씩 붙어있게 했어. 여기 있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해하시니까...”
“치료... 병원에서 치료를 해야... 희..희철이가 치료하면 된다고...”
“....함묵증이 아니야. 실어증인데, 중풍으로 같이 온 합병증인 것 같아. 그런 경우는 사실상 병원 치료보다는... 편하게 해 드리는 게 나아.”
“그..그럼.. 내가, 나하고 같이 계셔야 돼.”
“지금 상태로는 안 돼. 너는 물론이고, 어머니한테도 더 안 좋을 게 뻔해. 넌 지금 누굴 돌볼 처지가 아니야.”
왠지 냉정한 말투로, 눈빛까지 차가워진 것 같아 서러워졌다. 숨을 가쁘게 쉬며 입술을 깨물자, 곧 다정하게 얼굴을 쓸어주었다. 다정하게 굴지 마. 말하고 싶었지만, 정말 가버릴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약속할게. 너 건강해지면, 주말마다 데리고 갈게.”
“그럼 아..아빠는?”
“그렇게 깊이 찔린 건 아니라 장기 손상만으로는 그리 위험할 정도는 아닌데, 과다출혈에 간수치도 낮고 연세도 있으셔서 면역이 저하되어 있어. 패혈증 때문에 간이나 콩팥, 심손상도 심하고. 어떻게 될 지는, 지금은 의사도 판단 못해. 지켜보는 게 다야.”
“그..그 사람은?”
“....해진아, 그 사람은 합당한 죗값을 받을 거야.”
“그..그럼...나.. 나는?”
“뭐?”
“나는? ...흑...흐으...나는.. 어떻게 벌을 받아..?”
“정해진. 네 탓이 아니야.”
거짓말. 나한테 가장 먼저 경고를 한 건 당신이었잖아. 당신도 알잖아. 내가 어떤 생각으로 그림자를 불러들였는지.
그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그저 내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나의 죄를 옹호한다는 이유만으로 미워져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두 눈을 부릅떠 노려보았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는 그저 내 원망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귀신처럼, 소리도 없이 그저 신음만을 흘리며 울었다. 한참을 묵묵히 앉아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가 문득 일어나 병실 내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물수건을 적셔 나왔다. 그리고 눈물로 엉망인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미안, 같이 못 있어서.”
“..으으...으...”
“그때, 신고를 하던가 해서 다신 그 동네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야 했어. 그렇게 안 해서, 미안.”
“흐...흐으윽...”
“네 탓이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나도, 그리고 그 동네 사람들 모두 책임이 있어. 네가 불러들인 게 아니야. 방치해둔 사람들도 죄가 있어. 완전히 내쫓거나, 나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거나. 그래도 넌 뭔가를 하려고 했어. 정해진, 네 탓이야 아니야. 결국 죄는 그 사람이 모두 지은 거야. 그 사람이 온전히 벌을 받아야 해.”
물고 있던 입술이 터졌는지, 입안에서 시큼한 피맛이 돌았다. 태준이 젖은 수건으로 입술을 닦아주었다. 달빛으로 갈색의 피가 묻어나왔다. 입술보다는, 눈이 따가웠다. 눈물이 멎지 않자, 그는 아예 자신의 손바닥으로 내 두 눈을 가려버렸다. 이상하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달빛도 비치지 않으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흐느끼는 입술 사이로 뜨겁고 축축한 것이 와 닿았다. 그가, 내 찢긴 입술을 샅샅이 핥아주었다. 찢긴 곳에 그의 혀가 와 닿자, 그제야 눈보다 입술이 더 따가웠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그는 없었다. 나는 그제야 그날의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테이블 아래에 그의 몽블랑 만년필이 떨어져 있었다. 창밖에서 지나치게 따가운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마침 병실 안으로 들어온 간호사에게 블라인드를 좀 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좋은 현상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일주일 뒤, 정신감정까지 받고 나서 퇴원해도 좋다는 진단을 받았다. 희철이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우선은 몸이 완전히 원래의 컨디션을 찾을 때까지는 집에서 병원을 다니며 아버지 곁에서 지내고, 주말엔 태준의 약속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오래 누워 계실 경우를 대비해 집을 팔고 병원 주변의 작은 아파트를 구해야겠다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급히 뛰어가는 간호사와 의사들 사이로 아버지의 주치의가 보였다. 후들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문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 병실의 문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 * *
상은 병원 내의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나는 엄연한 상주임에도 제대로 된 상주노릇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 또한 중풍으로 의식이 가물거리시니 모셔오지 말라는 친척들의 말에 따라 나는 오롯 혼자였다. 조문객들을 접하는 것은 대부분 사촌형이 맡아했다. 친척어른들이 주위에서 무어라 떠드는지, 훤히 들렸다. 나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왔다. 이후로는 염습부터 운구까지, 병원 측과 친척들이 간소화하려 했던 모든 절차를 그가 데려온 상조업체 직원들이 맡아 지시했다. 술 취한 조문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희철이 간간히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보곤 했다. 조문을 온 출판사 사람들도 어리둥절하게 그를 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정해진, 정신 차려. 네가 여기서 쓰러지면 어떡해. 견뎌, 우선은 견뎌봐.”
멍하니 앉아있는 내게 그가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친척들은 혈연관계도 아닌 사람이 참견을 하는 것은 상례가 아니라며 눈을 흘겼지만, 까다롭고 귀찮다고 건너뛰려던 절차를 차곡차곡 알아서 처리해 주는데다가, 거기다 정확히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풍겨 나오는 아우라에 모두들 직접 불만을 털어놓지는 못했다. 나 또한 그것이 예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3일장을 치르는 동안 낮에는 자리를 비웠고, 저녁엔 다시 돌아왔다. 그의 안색이 파리해져갔다. 장례를 모두 치르고 위령제까지 지낸 뒤 집으로 돌아왔다. 사고 현장이 아직 그대로일 것 같은 불안에 부모님 집으로는 가지 못하고 결국 내 작고 초라한 원룸으로 돌아와야 했다. 태준은 나를 침대에 던져놓고는 발을 돌렸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그의 발뒤꿈치를 바라보았다.
“내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요.”
신발을 신던 그가 뒤돌아보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냄새’하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건 씻지 못해 풍기는 땀이나 몸의 분비물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좀 더 음습하고 기이하고 지독한 냄새였다. 태준은 신발을 다시 벗어놓고 되돌아왔다. 그리고 침대 아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얼굴을 내 얼굴 앞으로 바짝 붙여 침대 위에 기대었다.
“냄새 안 나.”
“나요. 이상한 냄새. 시체가 썩을 때 나는 냄새 같아.”
“네가 시체 썩는 걸 본 적은 있어? 냄새 안 나. 아마 향냄새일 거야. 계속 향을 피우고 있었으니까. 괜찮아, 그건. 씻으면 없어져. ....좀 쉬어. 갈게”
그리고 다시 일어나 현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냄새 나는데. 시체가 썩는 걸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이런 냄새일 거야.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신발을 신다말고 또 우뚝 멈추어 섰다. 어깨가 조금 흔들렸다. 아마, 한숨을 쉬었나보다. 나도 따라 한숨을 쉬었다. 냄새가, 고약했다.
침대 위에서 꼼짝도 않는데, 그가 몸을 돌려 다시 다가왔다. 그리고 갑자기 옷을 벗었다. 재킷과 바지를 차곡차곡 의자 위에 쌓아둔 뒤, 드로즈만 입은 채 그는 욕실로 들어갔다. 곧 욕조에 물을 받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욕실에서 나온 그는 침대 옆에 우뚝 섰다. 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씻자.”
그리고 몸이 들렸다. 그는 나를 안고 욕실 문 앞에서 내려놓았다. 벽에 기댄 나는 그가 내 옷을 모두 벗길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옷까지 모두 벗긴 그는 다시 나를 안아 들었다. 욕조 안에는 벌써 물이 반쯤 차 있었다. 던져버릴 것 같아 나는 그의 몸에 꼭 붙어 있었다. 목을 꽉 끌어안자 그가 등을 쓰다듬으며 ‘안 던져’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안은 채로 욕조로 들어갔다. 그대로 앉기는 힘들 것 같아 나는 바닥에 발을 디뎠다. 내가 몸을 둥글게 말아 욕조에 앉자 그는 다시 욕조 밖으로 나가 샴푸를 손에 짜내었다.
“이쪽으로 등 대고 앉아. 목 기댄 채로, 응, 눈 감고.”
욕조 안에서 머리만 달랑 밖으로 내맨 상태였다. 나는 그의 말대로 욕조에 목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머리가 젖혀지면서, 따뜻한 물이 머리칼을 적셨다. 그리고 곧 그의 커다란 손이 머리 전체를 감싸며 마사지했다. 거품이 몽글몽글 일었다. 샴푸가 이마로 흘러 눈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버둥거렸고, 그는 샤워기로 내 얼굴을 씻겼다.
머리를 감긴 후에는 샤워볼에 바디샴푸를 짜내었다. 곧 거품이 풍성해졌다. 욕조 안에는 이미 물이 가득 찼다. 그는 물을 잠그곤 ‘나와’ 명령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결국 그가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 바닥에 거품기가 남았는지, 나는 타일을 밟으며 비틀거렸다. 그가 서둘러 내 허리를 껴안았다. 놀랐는지, 얼굴과 맞닿은 그의 가슴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러니까 말 좀 들어.”
“......”
샤워볼이 목에서 발가락까지 거품과 함께 마찰하며 지나갔다. 욕실은 수증기로 가득 찼다. 나는 손을 들어 김이 서린 거울을 닦아냈다. 뽀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무릎을 꿇은 채 샤워볼로 내 종아리를 닦고 있던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무심히 거울을 쳐다보았다. 볼 살이 형편없이 빠진 얼굴이, 그의 말처럼 정말 못생겨보였다. 그러자 갑자기 서러워졌다. 서럽다는 느낌이 들자, 또 문득, 그제야, 정말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이 확실하게 여겨졌다. 입을 이죽거리며 또 흐으, 하고 울음을 터뜨릴 준비를 하자 태준이 밑에서 내 엉덩이를 박박 밀었다.
“아..아파... 아프단 말이야...흐으...”
“그만 울어. 더 울었다간 네 몸 안에 수분이 하나도 안 남을 거다.”
그 말에 더 서러워져, 나는 웅크려 앉아버렸다. 갑자기 몸을 움직여서인지, 머리가 어찔했다. 아주 잠시, 눈앞이 캄캄해졌다가 다시 코앞에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 잠시의 어둠 속에서, 꼽추의 그림자가 밤길의 고양이처럼 휙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나는 펄쩍 뛰어 그의 목에 매달렸다. 그리고 온 몸으로 그를 껴안았다.
“왜 그래.”
“..흐읏...태..태준씨... 해... 해줘... 하자, 응?”
“무슨 소리야. 일어나. 거품 씻고...”
그것이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급하게 그의 입술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어주지 않을까, 두 손으로 그의 턱을 꽉 쥔 채 허겁지겁 그의 입 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전혀 사랑스럽지 않게, 그저 탐욕스럽게 그와 입을 맞추는 동안 태준은 조심스레 내 몸을 떼어냈다.
“아..안 돼... 죽을 것 같아... 싫어, 해줘...해!”
“너 지금 안 돼. 우선 네 몸부터...”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단 말이야! 해줘, 해! 쑤셔 넣고 맘대로 뒤흔들란 말이야! 주..죽을 것 같아.. 제발.. 태준씨..해... 해줘..”
머리를 감싼 채 타일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머리가 터져버리진 않을까, 손바닥으로 온 힘을 모아 감쌌다. 수증기가 가득한데, 뜨거운 물에 몸이 발갛게 달아올랐는데, 이상하게 추웠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그가 내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끼워왔다. 고개를 들자마자, 입술이 맞추어졌다. 이번엔, 내가 힘없이 그를 받아들이는 동안 그가 허겁지겁 내 혀를 빨아 당겼다. 그리고 잠시 몸을 뗀 동안, 그가 다시 샤워기를 틀어 내 몸의 거품을 씻어냈다. 나는 그동안 그의 젖은 드로즈를 벗겨내려고 허둥거렸다.
“아..안돼...”
“기다려, 내가 할게.”
급하게 드로즈를 벗은 그는 내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나는 손을 내려 그의 페니스를 움켜잡았다. 벌써 단단하게 서기 시작했다. 몇 번 손으로 비비자 입을 맞추고 있던 그가 목안으로 신음을 삼켰다. 바로 해도 돼, 혀를 섞은 채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하자 그가 얼른 몸을 뗐다. 그리고 내 몸을 돌려 세면대를 짚게 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본 그가 ‘괜찮겠어?’하고 물었다. 나는 그가 그만둘까봐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어서.
“아..아으....흣.....아, 아...”
“하아....제길.”
젖은 손가락으로 역시 이미 젖은 엉덩이 사이의 주름을 헤집다가 급하게 하나, 둘 넓혔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곳이 단단하게 다물어져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자 그가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샴푸와 바디용품들을 밀어뜨리며 급하게 바디오일을 가지고 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가 바디오일을 손가락 마디와 자신의 페니스에 골고루 바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그가 또 급하게 얼굴을 내렸다. 고개가 꺾인 채 입을 맞추는 것은 힘들었다. 으응, 신음을 내자 그가 입술을 물었다. 입술의 따끔한 통증과 함께 뒤가 열렸다.
“아...아아아! ..아흣...아, 아, 태...태준씨...”
허리가, 먹이를 삼키는 뱀처럼 꿈틀거렸다. 무릎이 꺾이려는 것을 그가 얼른 허리를 잡았다. 아직 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조금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익숙한 감각을 잡으려고 몸의 기억을 헤집었다.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허리를 어느 정도 들어야 하는지, 어떨 때 이를 악물고 또 어떨 때 신음을 내질러야 아픔이 덜한지, 전동차처럼 덜컥거리며 그러나 빠른 속도로 감각이 돌아왔다.
“..하아....해진아...”
“괘..괜찮아... 들어와. 아, 아읏...으,,으응..!”
천천히 빠져나갔던 그가 익숙한 곳을 건드리며 빠르게 들어왔다. 목 안에서 짐승 울음소리가 들끓었다. 아아, 아버지. 순간, 쾌락 인지 분노인지 모를 광폭한 감정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허리가 들리면서 골반뼈가 세면대에 부딪혔다. 태준은 그런 내 골반 부근을 손으로 감쌌다. 거울 속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하...흣....아파?”
“흐으...아..아니.... 계속 해... 거칠게 해줘요.. 더.. 더... 아흣..!”
“울지 마.”
“아..안 울어...아, 아아...”
빠르게 움직이던 그가 안쪽에 깊숙이 묻은 채 문득 멈추어 섰다. 허리가 떨렸다. 등 뒤로 그의 단단한 가슴이 와 닿았다. 내내 발끝으로 서 있다가, 나도 잠시 바닥에 뒤꿈치를 디뎠다. 커다란 손으로 배와 가슴을 쓰다듬던 태준이 턱을 움켜잡고 고개를 돌렸다. 서로의 혀가 엉키다가, 그가 내 눈가에 입술을 묻었다. 까슬한 혓바닥이 눈두덩과 눈 아래를 핥았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그러다 안구까지 혀가 닿을까봐 얼른 눈을 감았다.
“울지 마.”
“...흐으...아..안 울어...”
위로처럼, 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세면대에 체중을 기댄 채 까치발로 섰다. 옆으로 돌린 목이 아픈데, 그는 계속 내 온 얼굴을 핥으며 움직였다. 세면대에 짚은 손 위로 그의 손이 얹어졌다. 그의 왼손 약지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울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서러워졌다.
함께 토정하는 순간, 몸이 가벼워지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어렴풋이, 무(無)의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존재한다던 노(老)작가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