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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
숟가락으로 계란탕을 휘저으며 투덜대자 선희가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크리스마슨데, 고작 이런 어린이랑 보내다니.”
“그래서 희철이도 불렀다. ....그게 그거지만.”
“넌 계속 맞는 주제에 그 녀석은 왜 자꾸 부르냐?”
“흐흐흥. 그래도 친구잖아.”
“웃기는. 취했다.”
선희가 입원한 병원 뒤뜰에서 진창 얻어맞은 이후에도 나는 종종 희철이에게 맞았다. 물론 그때처럼 체격차이를 무시하고 무자비하게 얻어맞진 않았지만, 은근히 기분 나쁘게 뒤통수를 후려치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따닥,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통증이 느껴진 동시에 고개가 숙여지면서 희철이 나타났다.
“이 놈 벌써 취했지? 마시지도 못하면서. 내가 왔다, 선희야.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나랑 대작하자.”
“넌 왜 자꾸 한참 크는 애 뒤통수를 때리고 그러냐?”
“...내년 어린이날까지만 때릴게.”
왜 자꾸 때리는지 뻔히 알면서 정작 선희가 내 편을 들어주자 희철은 잔뜩 기가 죽었다. 그 틈에 나는 뒤통수를 문지르며 ‘정말?’하고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희철은 언제나처럼 빨리 마셔버리지 않으면 술에 발이 달려 도망이라도 가 버릴 것처럼 너무 빨리 마셨고 너무 빨리 취했다.
크리스마스, 우리는 곧 이십대 중반의 문턱을 넘는다는 생각에 우울하고도 들뜬 기분으로 모두 자신의 주량을 넘겼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고, 쓸데없는 걱정은 정말 말 그대로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괜찮겠다고 느꼈다.
“그런데 희철아, 나는 미워해도 괜찮지만 우리 집에는 가끔 가 줘라. 우리 부모님이 너 왜 안 보이냐고, 싸웠냐고, 우리 아들 왕따 당하냐고 걱정하신다.”
“너 왕따 당하는 거 맞다.”
“웃기고 있네. 그래도 선희는 내 친구 해준댔다.”
내가 구원요청을 하듯 애절하게 선희를 바라보자 선희는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희철이 또 한 잔을 그대로 비워버렸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탁, 하고 잔을 내려놓으며 내가 아니라 선희를 노려보았다.
“선희야, 이 놈한테 흑심 있냐?”
“예전엔 있었는데 이젠 없다.”
“거짓말! 어떻게 흑심이 있다가 없어질 수가 있냐!”
“그럴 수도 있지 뭐.”
“거짓말, 거짓말! 그럼 내가 아직 너한테 흑심 있다고 하면 받아줄 거냐?”
“싫다, 멍충아.”
선희가 냉정하게 딱 잘라 말하자, 희철은 또 두어 잔을 연거푸 마셨다. 나는 할 수 없이 희철의 자리로 엉덩이를 슬금슬금 옮겨 앉아 녀석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희철은 웬일로 얌전히 내 손길을 받고 있었다. 선희가 그런 우리 둘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아주 천생연분이다. 차라리 둘이 사귀지 그러냐?”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선희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선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나는 테이블 위로 뻗은 희철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우리 집에 놀러 와라’ 다시 한 번 청했다. 그러나 희철은 잔뜩 토라진 듯 ‘싫다!’하고 빽 소리를 질렀다. 선희가 또 쯧쯧 혀를 찼다.
“야, 내가 갈게. 내가 너희 집 놀러가서 당신 아들 왕따 아니라고 설명해 줄게.”
“정말?”
“배신자!”
또 빽 소리를 지른 희철이 이번엔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나는 왠지 한 대 맞을 것 같아 슬금슬금 엉덩이를 옮겨 떨어져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희철이 손등으로 입가의 물기를 닦아내며 눈이 찢어져라 나를 노려보았다. ‘나 진짜 쟤랑 아무 관계 아니야’하고 변명하듯 웅얼거리자 희철은 그제야 원망 가득한 눈으로 선희를 바라보았다.
“너, 얘네 집 가지 마라. 어머니가 얼마나 요리왕인데.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이놈이 그동안 그거 믿고 나한테 그렇게 멋대로 굴었어. 믿는 구석이 있다 이거지.”
“너는 빠져나왔잖아.”
“참고 있는 거야. 어쨌든 내년 어린이날 까지는 어머님 요리 금욕할 거다.”
“너도 참 미련하다.”
“이건 남자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야.”
나는 희철의 빈 잔에 얼른 소주를 채워주었다. 칫, 거리면서도 희철은 냉큼 또 잔을 비웠다. 선희는 ‘지랄’하고 비웃었다. 희철이 깜짝 놀라며 어떻게 여자가 그런 말을 하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장부답게, 선희는 그보다 더 크게 ‘다시 한 번 더 여자가 어쩌고 하면 다시는 안 본다’며 포효했다.
희철은 다시 얌전히 테이블 위로 몸을 뻗었다. 그리고 잠시 후 벌떡 일어났다. 커다란 그림자가 선희와 나를 덮었다. 내가 불안에 떨자, 역시 내 뒤통수를 따닥, 때렸다. 뒤통수를 부여잡고 나는 억울하다며 녀석을 올려다보았지만 희철은 선희를 향해 ‘화장실 갔다 올게’ 하곤 비틀대며 자리를 벗어났다. 선희가 내 뒤통수를 함께 문질러주며 ‘괜찮냐?’하고 물었다. ‘아니’ 정직하게 대답했는데 이번엔 이마를 맞았다.
“아야.”
“그러니까 말 하란 말이다. 너랑 나, 그런 감정 전혀 없는 거. 절대 생길 수가 없는 거. 모르니까 계속 오해하고 저렇게 고집 부리는 거 아냐. 나한테는, 그저 잠결에 그 사람 이름 불렀다는 말에 홀랑 불어버린 주제에 나보다 더 오래 친구 먹은 녀석한테는 왜 이렇게 미적거려?”
“너랑은 또 달라. 저 녀석은 남자야. 남자는 여자보다 변화에 대해 당혹감 보다는 불쾌감을 먼저 느껴. 언젠간 말하긴 하겠지만, 모르겠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미리 말해두는데 너, 절대로 네가 말하진 마라.”
“그럼 내 경우를 써먹어. 나하고 했던 것처럼, 저 녀석이랑도 그냥 술김에 자버려. 그리고 하는 도중에 그 사람 이름 부르고...”
“야!”
“어이고, 귀청 떨어지겠네.”
선희가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다. 나는 씩씩거리며 스스로 잔에 술을 가득 붓고 꿀꺽, 마셔버리려고 했지만 반도 채 비우지 못하고 내뿜고 말았다. 선희는 행주로 내 입가를 닦아주며 쯧쯧, 혀를 찼다.
“에이, 술 아깝게.”
가게 안에는 캐롤이 울려 퍼졌다. 소주와 닭똥집과 계란탕, 그리고 캐롤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며 우리는 웃었지만, 뭐 이러면 어떠하고 또 저러면 어떠하냐고, 또 웃었다. 스무 살이 되면 세상이 변할 것 같았던 열아홉의 열망처럼, 그러나 이번에는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면 진짜 어른 노릇을 해야 할 것 같은 어설프고 무거운 책임감에 우리는 조금 쓰게 웃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나는 왠지 스물여섯 살이 되기 싫었다. 두려웠다.
* * *
스물여섯이 되어서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더 이상 운전면허증을 썩히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새 차를 구입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고-이때 또 잠깐, 태준으로부터 그냥 차를 받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아는 분이 한다는 중고차 매장에서, 그러나 다른 곳과 그리 별다르지 않은 가격으로 중고차를 구입했다. 그러나 전 주인이 관리를 잘 했는지 새 차와 별반 다르지는 않아, ‘김태준 벤츠 부럽지 않다’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시승식은 총 세 번으로, 가장 먼저 부모님, 그리고 선희와 희철, 가장 마지막으로 ‘나 홀로’ 운전을 즐겼다. 그러다 복잡한 시내로 빠져 다른 운전자들로부터 욕을 왕창 먹었다. 당장 차 뒤에 ‘초보운전’ 딱지를 붙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운전대가 손에 익숙할 즈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직 꽃도 피지 않았는데 이곳저곳 드라이브를 다녔다. 그리고 3월의 어느 주말, 언제나 설렁탕집이나 모시고 가는 게 죄송스러워 큰 맘 먹고 H호텔 스카이라운지로 향했다.
“창가 자리는 모두 예약이 되어있고, 입구 쪽에 한 자리가 남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레스토랑 입구에서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안타깝다는 얼굴로 남은 하나의 자리를 안내했다. 정말 입구와 가장 가까운 자리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괜찮지요?’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역시 예상대로 무조건 그냥 나가자는 반응이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허허 웃으며 ‘효도 하려나본데 놔둬요’하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일단 앉긴 했지만 여전히 무조건 가장 싼 것을 고집하는 어머니와 오랜만에 호강 좀 하자는 아버지 사이에서 나는 메뉴판을 보며 어쩌지 못하고 결국 웨이터를 불렀다. 그리고 이건 재료가 뭐고 또 이건 재료가 뭐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일품요리는 결국 포기하고 한 달 바짝 허리띠 조를 각오를 하고 코스요리를 시켜버렸다. 어머니는 차마 큰소리는 내지 못하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좀 다른 의미로 잔소리를 했다.
“넌 어째 스스로 돈 번 지가 몇 년짼데, 젊은 녀석이 애인하고 데이트 하면서 이런 곳 한번 안 다녀본 게냐.”
“그게... 매번 상대방이 주문을 해줘서요.”
“실없는 녀석.”
사실인데, 하고 나는 속엣말을 했다. 사실이었다. 언제나 태준이 내 입맛에 맞춰 이것저것 일품요리를 주문해 주었으니까. 내가 아직 어른이 덜 되었다면 그건 오롯 김태준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쓰게 웃었다.
그리고 곧 순서대로 요리가 나왔다. 부모님은 스푼은 어느 걸 써야 하고 나이프는 또 어느 것부터 써야 하는지 난감해 했다. 그제야 내가 참, 불효자식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요, 저거요, 이렇게요, 저렇게요, 시범을 보이며 불효자식답게 부모보다 먼저 음식을 먹는 시늉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들여 모든 코스 요리를 맛보고 드디어 디저트가 나왔다. 주문한 대로 푸딩이었다. 부모님은 앙증맞은 스푼으로 조심스럽게 푸딩을 떠서 한 입 먹어보시곤, 동시에 인상을 찡그리셨다.
“달다.”
“너무 달아.”
“이 정도면 괜찮은데요.”
“넌 아직 애기잖아. 애들이야 이런 게 맛있을지 몰라도 우리 같은 노인들은 별로야.”
“그럼 바로 홍차 내오라고 할까요?”
이번엔 두 분 모두 ‘됐다’하며 손을 저으셨다. 차까지 코스요리에 들어간다고, 따로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하자 그제야 ‘그럼 홍차’하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귀여우셔라, 한 마디 했다가 등허리를 맞았다. 따가운 등판을 문지르며 웨이터를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한 커플이 입구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
태준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여자는, 아마도, 그 JH 둘째인 듯했다. 뭐야, 결혼이 아니라 합병이라더니 데이트도 하네. 입을 삐죽이며, 다가온 웨이터에게 빨리 홍차를 내달라고 주문했다. 재빨리 흘깃, 훑어보니 여자는 언젠가 그가 자신의 비서를 빗대어 표현한 그의 스타일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서글서글한 서구형 미모에 늘씬한 몸매에, 당연히 족집게 과외 받아가며 일류대학 들어갔을 테지. 목이 말랐다.
눈에 띄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연스레 창가 쪽으로 가 앉는 것을 보니 모르는 듯했다. 나는 최대한 고개를 틀어 부모님을 향해 다정하게 얼굴을 꺾었다. 잠시 후 익숙한 듯 주문을 하는 목소리가 멀리서, 작게 들려왔다. 왠지, 비식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가 ‘왜?’하고 따라 웃으며 물었다.
“사람은요,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하나 봐요.”
“그걸 인제 알았니?”
“여기 별로죠? 설렁탕이 훨씬 맛있다, 그죠?”
“응, 설렁탕이 낫다. 여기 건 비싸기만 하고 니글니글해.”
아버지 역시 ‘맞다’하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도 웃으면서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가를 비볐다. 어머니가 또 ‘왜?’하고 물었다.
“속눈썹 들어갔나 봐요.”
“안 돼, 그렇게 손가락으로 비비면. 얼른 화장실 가서 물로 씻어내.”
“사내 녀석이 눈썹이 길어 늘 그리 말썽이야. 한번 빠지면 꼭 눈물을 쏙 빼야지. 그거 확 잘라버려.”
그래도 예쁘잖아요, 어머니가 아버지 눈치를 보며 얼른 화장실 가라고 고갯짓을 했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그러나 여전히 창가 맞은편으로 고개를 비튼 채 걸어 나갔다. 비비지 말라고 했는데,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손가락으로 눈두덩을 문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화장실이 무슨 회장실이야. 더럽게 깨끗하네.”
별게 다 비위에 거슬렸다. 지나치게 깨끗하고 넓은 화장실은 겨우 씻거나 싸는 곳일 뿐인데 한 벽면을 넓게 튼 창 너머로 화려한 야경이 내려다 보였다.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저 혼자 칫칫 거리며 거울 앞에 섰다. 역시 눈이 발갛게 부어있었다. 물을 틀어놓고 손바닥에 모아 눈가를 적셨다. 두어 번 그렇게 행군 뒤 눈두덩을 들어 올려 안구상태를 확인하니, 여전히 두 개의 긴 속눈썹이 씻기지 않고 남아 있었다. 별게 다 아프게 하네. 다시 손바닥에 물을 모았다. 찰박찰박 얼굴 전체를 씻고, 다시 눈두덩을 뒤집어 거울을 보는데 누군가 불쑥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
“......”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와 옆에 와 섰다. 그리고 천천히 물을 틀고 또 천천히 비누거품을 만들었다. 그 모든 것이 홍콩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리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마침 화장실 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캘리포니아 드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것 때문이었군. 왠지 웃음이 났다. 피식 웃는데, 그가 흘낏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상관하지 않고, 노래의 한 토막을 흥얼거렸다.
“..California dreaming on such a winter's day...”
이번엔 그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박자에 맞춰 흐릿하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의 손에선 비누거품이 모두 씻겨나가고, 내 속눈썹도 이미 안구 너머로 넘어가버렸는지 더 이상 눈이 따갑지 않았다. 그런데도 물은 여전히 졸졸 흐르도록 놔두었다. 문득, 왜 우린 매일 화장실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흥얼거리던 노래를 멈추었다. 그도 까딱이던 고갯짓을 멈추었다. 거울 속에서 그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소..속눈썹 들어가서 씻어내려고 왔어요.”
“누가 뭐래? ...... 난 손 씻으러 왔어.”
쓸데없는 말을 했다. 나는 얼른 티슈를 뽑아 얼굴을 닦았다. 그는 결벽증 환자처럼 또 한 번 비누거품을 만들어 손을 씻고 있었다. 티슈를 휴지통에 넣고 돌아서려는데 그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비비며 ‘여기는’하고 말을 꺼냈다.
“저쪽..이 예약해 뒀다고 해서 온 거야.”
“......우리가 먼저 왔어요. 매일 설렁탕이나 먹다가 간만에 효도하자 싶어서.”
“알아. 먼저 앉아있었는데 그럼. 그런 말을 왜 하는 거야?”
“따라왔다고 생각할까봐.”
“흥, 별 걱정을 다.”
“여..여기도 다신 안 올 거야.”
말이 끝나자마자 그가 얼굴을 들어 거울 속에서 뒤쪽에 선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누가, 이제 무서워할까봐. 같이 노려봐 주자, 미간을 찌푸리며 뒤돌아섰다. 거울로 여과되지 않은 시선이 곧바로 부딪히자,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흥, 그가 또 비웃었다. 그리고 다시 세면대에 바로 서서 마저 손을 닦아냈다.
“부모님이셔?”
“예.”
“정말 닮았더라.”
“...부모 자식 간인데, 당연하잖아요.”
“정해진. 4월 7일, 나 결혼한다.”
젖은 손으로 세면대를 짚은 채, 뭐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그가 뜬금없이 결혼날짜를 알렸다. 나는, 축하한다고 해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출판사에 마지막으로 들른 날에도 모든 사원들이 약혼을 축하한다, 결혼도 미리 축하한다고 인사를 했는데 혼자 안녕히 가시라고만 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런 걸까. 그래서, 미련을 떨고 있는 건가. 딱딱한 혀를 어금니로 잘근잘근 풀어준 뒤, ‘축...’까지 말을 꺼내는데 그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올래?”
“...뭐라구요?”
“결혼식.”
“내가 거길 왜요?”
“...뷔페, 신경 썼다고 해서. 쇼콜라 케익도 있대. 너 그거 좋아하잖아.”
하! 절로 헛웃음이 났다. 이를 갈며 노려보는데, 그는 그 동안에도 태연하게 마저 손을 씻고 티슈로 닦아내기까지 했다. 그래도 흘끔흘끔 눈치를 보는 게, 자기가 어떤 말을 지껄였는지는 아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와 내 뒤의 휴지통에 젖은 티슈를 넣으며 또 ‘올래?’하고 물었다. 나는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싶었다.
“결혼 축하합니다, 팀.. 전무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방긋 웃으며, 고개까지 숙여보였다. 쾅, 하고 그가 휴지통을 걷어찼다.
“노래도 못하는 주제에.”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가 버렸다. 나는 몰래 화장실 벽에 붙어 그가 멀어지는 것을 봤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마음껏 욕 했다.
“웃기고 있네. 자기는 음치 주제에.”
그리고 다시 세면대로 가 물을 틀었다. 그 사이 또 속눈썹이 빠졌는지, 눈이 따끔따끔했다. 부모님이 홍차 마시면서 기다리실 텐데. 뜨거운 홍차를 한꺼번에 들이킨 것처럼 목이 칼칼했다.
4월 7일, 신문을 보지 않았다. 다음 날, 그의 결혼식에 다녀온 팀장이 사원들을 둘러 세우고 화려했던 식장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뷔페는 어땠냐고 물었다.
“뷔페도 역시 끝내줬지. 내가 또 언제 그런 거 먹어보냐 싶어서 배 터지게 먹고 왔지.”
쇼콜라 케익도 있더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답답해서, 사무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곧바로 센서를 반응했다. 에취, 재치기를 하며 훌쩍거리자 곧 선배들이 '정해진, 끝내주는 뷔페 못 가서 운다'며 놀려댔다. 나는 휴지를 찾으며 머저리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