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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122/137)

-122화-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는데 카시어스가 목을 깨물어 왔다.

“뭐든지 해준다는 거, 아직도 유효해?”

“어……. 물론이죠.”

린델은 카시어스를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여기에 넣어보겠어? 스스로 만져보는 거야.”

스스로 만져보라는 하는 카시어스가 안을 강하게 찔렀다. 린델은 움찔 떨면서 카시어스를 보았다. 그의 상기된 얼굴은 정염으로 가득했다.

스스로 만져보라고?

머리가 느리게 굴러갔다. 그게 뭔지는 알겠는데 구체적인 상상이 되지는 않았다. 카시어스가 안에서 손을 빼내고는 린델의 왼손목을 잡아 들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검지와 중지를 한꺼번에 핥았다. 지독하게 야한 모습이었다.

“이걸 넣는 거라고.”

린델은 그제야 무엇을 만져야 하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뻣뻣하게 굳어드는데 카시어스가 한 번 더 손가락을 핥았다.

“어떻게 느끼는지 직접 만져봐. 얼마나 졸라대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야한 소리를 아무렇게나 한 카시어스가 린델의 손을 겹쳐 잡았다. 린델은 카시어스가 움직이는 대로 자신의 손으로 가슴과 배를 더듬어 내려갔다. 이대로라면 카시어스의 말대로 거기에 넣어야 할지도 몰랐다.

린델은 고민했다. 뭐든 해준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거부감은 있었지만 호기심도 있었다. 무엇보다 싫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가운데 손가락 끝이 아래 입구에 닿았다.

“저기……. 윽.”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하려는데 그대로 손가락이 안을 파고들었다. 카시어스의 굵은 손가락과 함께였다. 입구가 벌어졌다는 게 손가락으로, 몸으로 느껴졌다. 예상 밖의 뜨거움과 빡빡함, 꿈틀거림이 손끝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감상은 이상하다였다.

“이…….”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에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힘을 빼.”

“흣.”

손가락이 쑤욱 밀고 들어왔다. 가운데 손가락의 마지막 마디까지 집어삼킨 감각은 아무래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안, 안 되겠어요.”

“싫어?”

“못 해……. 으, 아, 아, 흐읏.”

못 한다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손가락이 치고 들었다. 섹스를 할 때, 뒤를 풀어주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지금껏 카시어스가 손가락으로 안을 헤집어 절정에 달한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제 손으로 하는 것은 괴상하다는 말로 부족했다.

카시어스에게 붙잡힌 손이 움직일 때마다 고환과 회음부를 치고 눌렀다. 내부가 손가락을 조이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찔한 쾌감이 머리를 찔러댔다.

제일 나쁜 것은 그걸 보고 즐기는 카시어스였다. 반달처럼 휜 채로 웃고 있는 남자의 눈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까보다 더 꿈틀거려. 느껴져?”

“너무, 으으읏. 흣.”

“더 안으로 넣어줄까?”

“이상, 읏. 아. 이상하다고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카시어스가 얄밉다 못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이러기 위해서 원망하지 말란 말을 한 게 분명했다. 그것도 모르고 뭐든 다 들어주겠다고 한 자신이 바보였다. 원망도, 후회도 오래가지 못했다. 치밀어 오르는 쾌감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신음이 새어 나오지 못하게 입을 깨무는 것이 최선이었다. 카시어스가 깨물지 말라며 입술을 건드렸지만 이번만큼은 고집스럽게 버텼다.

그러나 그것도 곧 한계에 다다랐다. 머리도, 허리도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었다. 린델은 자유로운 손을 들어 카시어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제, 이제. 그만이요.”

“조금만 더 참아봐.”

“읏, 우으응.”

카시어스는 손을 놓아주기는커녕 안을 크게 휘저었다. 린델은 교성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주먹으로 카시어스의 어깨를 쳤다. 힘도 빠진데다가 자세가 나쁜 탓에 카시어스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카시어스는 흥겨워 열이 올랐다. 기뻐서 속이 들끓었다.

난감한 기색에도 싫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말한 대로 뭐든 들어주려는 린델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또한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쥐고 휘두르는 것도 좋았다. 얼굴도, 귀도, 목도, 가슴도 빨갛게 물들인 채 참아내면서, 애처롭게 허리 짓을 하는 모습에는 목이 말랐다.

점점 이성이 바닥나고 있었다. 아까부터 박고 싶었다. 다리를 벌리고 한계까지 집어넣어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손을 빼냈다.

카시어스는 린델을 내려다보며 바지를 끌어 내렸다. 이미 잔뜩 발기한 성기의 끝은 젖어 있었다. 천천히 린델의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성기를 벌름거리는 입구에 문지르다가 단숨에 꿰뚫었다.

다시 팔로 얼굴을 가린 린델이 앓는 소리를 내며 떨었다. 카시어스는 제멋대로 박아버리기 전에 얼굴을 가린 린델의 팔을 치웠다.

“나를 봐.”

린델이 원망과 쾌감이 뒤범벅이 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붉어진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카시어스는 땀과 눈물에 젖은 뺨을 길게 핥으며 약하게 허리를 추어올렸다.

“원망할 거라고 했잖아.”

린델은 카시어스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린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카시어스가 들어와 있는 몸이 제멋대로 떨렸다. 몸이 더한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린델은 본능대로 팔을 뻗어 카시어스의 목을 끌어안고, 다리를 들어 그의 허리를 감았다.

체위가 바뀌자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을 느끼며 눈앞에 있는 단단한 어깨를 물었다. 원망이 더한 만큼 인정사정없었다. 그러자마자 카시어스가 크게 움직였다. 단숨에 빠져나갔다가 그대로 치고 들어왔다. 린델은 카시어스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잔뜩 희롱을 당한 탓에 시작부터 눈앞이 번쩍거렸다.

린델을 덮친 쾌락은 거대한 불길을 닮았다. 뜨거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카시어스는 무자비했고 린델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절정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숨을 한 번 들이쉬기도 전에 또 다른 절정이 이어졌다. 뜨거운 숨결이, 거친 심장 소리가, 어지러운 열이 모두 뒤섞여 린델을 미치게 만들었다. 끔찍하게 이어지는 쾌락 속에 린델은 몸부림쳤다. 울음을 터트리며 벗어날 수 없는 불꽃을 선사한 남자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땀으로 젖은 몸을 씻기 위해 욕조에 몸을 담글 때쯤에 린델은 완전히 지쳐 버리고 말았다. 제 발로 걸을 힘도 없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싫어서 카시어스가 하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제국에서 가장 고귀하신 분께서 능숙하게 시중을 들어주었다. 린델을 씻기고, 닦고, 침대로 옮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것까지 모두 직접 했다. 린델은 황제 폐하를 부려먹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자각했다. 황송한 것은 길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해질 정도로 익숙해지고 말았다.

그래도 한 번씩 이렇게 깨달으면 새삼스러웠다. 천사처럼 어여쁜 애인이 종아리가 뭉쳤다며 안마를 해주는 것은 특별했다. 카시어스의 손재주는 제법이었지만, 뭉친 곳을 만지면 아픈 법이었다.

“우웃. 거기 아파요.”

“아프니까 만져야지.”

아프다고 해도 카시어스의 손길은 거침없었다. 린델을 침대 끝에 걸터앉게 한 카시어스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천을 깐 자신의 무릎 위에 린델의 발을 올려두고는 오일을 발라 능숙하게 종아리를 주물렀다. 발목을 잡아 돌리던 카시어스가 살짝 인상을 썼다.

“발도 부었어.”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어서 그래요.”

“그러게 무리하지 말라니까.”

“무리는요. 저보다는 폐하, 카시어스 당신이야말로 무리하고 계시는 걸요.”

전쟁터에서 황제란 누구보다 바쁜 존재였다. 모든 결정은 카시어스의 손을 거쳐야 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평소에는 적당히 해도 괜찮다고 한 카시어스는, 전쟁에서는 빈틈없이 굴었다.

황제가 직접 나선 전쟁이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만 가리지 않는 게 아니라, 실수도 하지 않아야 했다.

“나는 너만 있으면 되는걸.”

“그래도 피곤하지 않으신 건 아니잖아요.”

“빅토리아의 생일이 곧이야. 5월 1일이면 스무 살이 되지.”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이었다. 빅토리아의 스무 살 생일은 아주 특별했다. 대법전에 명기된 대로 빅토리아는 황제가 될 자격을 갖추게 된다.

“결혼하기 전에 황위에 먼저 오를 거야.”

“당장은 어렵지 않을까요?”

“흥, 어렵기는. 그날을 위해 지금껏 준비했어.”

카시어스는 코웃음을 쳤지만 린델은 어렵지는 않더라도, 쉬운 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했다. 황궁 내에서는 물론이고 제국 전체에서 카시어스의 지지도는 아주 높았다. 민중과 귀족들은 물론이고 군의 충성은 확고했다. 세 번의 내전을 진압하면서 귀족들을 억누른 강성 황제였다. 시아무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그의 위업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황제 따위는 귀찮다는 카시어스는 때가 되면 양위를 할 거라고 선언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정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원숙하고 노련한 카시어스에 비해 빅토리아는 젊다 못해 애송이였다. 능구렁이 같은 고관 대신들을 상대하기에는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았다.

카시어스가 양위를 하겠다고 움직이면 온갖 곳에서 들불처럼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그리고 그건 온전히 빅토리아의 부담이 될 터였다.

“반대가 많을 거예요.”

“감히 누가?”

린델은 카시어스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반대할 사람의 이름은 열 손가락으로도 헤아릴 게 아니라, 긴 목록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래도 결국 카시어스는 자신의 뜻을 관철할 것이다. 은퇴는 그의 오랜 숙원이었다.

카시어스가 정무에 힘을 쏟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빅토리아에게 제국을 넘기려면 제대로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말이 없어.”

“기억하고 있어요.”

“무엇을 기억하고 있단 말이냐?”

“하늘 탑이랑 노래하는 폭포, 그리고 에메랄드로 만든 궁전이요.”

이제는 발바닥을 누르고 있던 카시어스가 놀란 눈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활짝 웃었다. 꽃이 핀 것처럼 화사한 미소였다.

카시어스와 비밀 정원으로 향하던 마차 안에서 오간 약속이었다. 은퇴를 하면 동대륙으로 가자고 했다. 큰 바다를 건너 머나먼 이국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흥분했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야지. 잊어버렸다면 화냈을 거야.”

“잔뜩 기대하고 있는 걸요.”

“나도 기대하고 있어.”

“그러니까 후궁이어도 괜찮아요.”

맥락 없는 결론이었다. 카시어스의 공개 청혼으로 결혼은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황후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며칠뿐이라고 하지만 부담감이 엄청났다. 반대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건 모두 카시어스의 부담이 될 게 분명했다.

이런 건 미리 말해 두는 게 좋았다. 그래야 타협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카시어스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널 후궁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고 했어.”

“어차피 결혼하는 것은 같아요.”

법적으로 후궁도 황제의 아내이긴 했다. 신전에서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릴 수는 없지만, 린델은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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