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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103/137)

-103화-

방 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카시어스의 옷자락에는 가을밤의 서늘함이 따라왔다.

카시어스는 서슴없이 커다란 목걸이를 벗어 탁자 위에 올려두고는 크라바트를 풀기 시작했다. 복잡한 매듭으로 묶인 크라바트는 조급한 손길에 자꾸 걸렸다. 바로 문 앞까지 따라왔던 시종을 부르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지만 카시어스는 그러지 않았다.

천천히 크라바트를 풀고, 재킷을 벗고, 베스트와 구두, 양말, 허리띠, 반지와 팔찌까지 모두 몸에서 떼어냈다. 가벼운 차림이 된 카시어스는 침대 곁으로 걸어가면서 단추까지 모두 풀었다. 머리를 묶은 리본까지 바닥에 내던지고 난 다음에야 침대에 걸터앉았다.

보름이 지난 밤하늘의 달은 홀쭉했다. 수면등은 꺼져 있었지만, 창의 커튼이 반쯤 열린 상태라서 달빛에 드러난 사물의 윤곽선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카시어스의 눈에는 조금 더 특별한 방법으로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동그랗게 솟아오른 이불 안에 린델이 동그랗게 몸을 웅그린 채 잠들어 있었다. 바른 생활을 하는 린델은 의외로 잠버릇이 나빴다. 처음에는 반듯이 누워 잠들었다가도, 어느새 침대 끝에 웅크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나마 끌어안고 있으면 얌전히 품에 파고들었다.

카시어스는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린델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연회가 끝나고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 린델을 돌려보냈다. 나중에 보자는, 그리고 약속을 잊지 말라는 인사도 했다. 만찬과 무도회 내내 린델을 잔뜩 물고 빨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무도회에서 일어난 싸움을 중재하면서 일이 꼬였다. 설상가상으로 콴 강의 남부 부두에서 일어난 화재를 진압했다는 소식을 기다리느라 시간이 훌쩍 흘렀다.

자정에서야 화재 보고를 받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는 린델은 자정만 지나면 어린 고양이처럼 꾸벅꾸벅 졸다가 쓰러졌다. 카시어스는 린델에게 기다리지 말라는 편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카시어스는 린델을 깨울까 말까 갈등했다. 애쉰 부인의 말에 의하면 린델은 슬픔을 삭이느라 며칠째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곤히 잠든 상대를 깨워 욕망을 채우는 파렴치한이 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은 그런데 손은 저도 모르게 린델의 뺨에 닿았다.

따스한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그건 작은 감동이었다.

카시어스는 키스를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이불 밖으로 삐죽이 나온 린델의 손을 잡았다. 아직 그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손을 잡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린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숨을 들이쉬자 향유 냄새와 섞인 체향이 속을 간지럽혔다.

“큰일이야.”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려고 했다.

“어……?”

그 때 린델이 뒤척였다. 카시어스는 얼른 상체를 일으켰다. 눈을 깜빡이던 린델과 시선이 마주쳤다.

“폐……하?”

“괜찮아. 그냥 자.”

자라고 했지만 린델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 카시어스를 끌어안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어깨에 뺨을 비벼 오기까지 했다. 카시어스는 쓴웃음을 삼켰다 어리광에 가까운 몸짓이 유혹으로 느껴지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이제 오셨어요?”

“내가 깨웠구나.”

“그렇죠.”

잠기운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한 린델이 느릿하게 입을 맞춰 왔다. 가벼운 버드 키스가 아니었다. 아랫입술을 핥고는 입술을 맞물려 왔다. 카시어스가 입을 벌리자 뜨거운 혀가 밀려들어 왔다. 린델의 키스는 그다지 능숙하지 않았지만 그의 성격만큼이나 부드러웠다.

카시어스는 키스의 주도권을 빼앗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겨우 입술이 떨어졌을 때는 저도 모르게 길게 숨을 내쉬고 말았다.

“왜 그래?”

질문하는 목소리는 자신이 들어도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자극하지 말라는 경고로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예상 밖의 것이었다.

“약속을 잊지 않았어요.”

“너……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알아?”

“그럼요.”

맑은 정신으로 호기롭게 그렇다고 외친 린델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어설픈 유혹과 애송이 같은 들이댐이었다.

지난밤, 기다리지 말라는 카시어스의 편지를 받고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동시에 그와 만날 순간을 엄청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기 전에 카시어스가 오면 그를 끌어안고 키스를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키스로 끝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도 카시어스가 어설픈 도발에 넘어왔다. 서로를 끌어안은 채 침대로 넘어졌다. 카시어스의 다리가 침대 밖에 있는 탓에 상체가 겹쳐졌다. 그의 입술이 뺨에 와 닿았다.

“왜 이렇게 적극적이지?”

“글쎄요.”

“꿍꿍이가 느껴져.”

꿍꿍이가 있기는 했다. 비율로 따지자면 꿍꿍이보다는 카시어스와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린델은 아무것도 아닌 척하고는 다시 입술을 들이댔다. 그러나 이번에는 카시어스가 재빨랐다. 다급하게 살덩이가 밀려들었다. 혀가 엉키고 입술을 빠는 야한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렸다.

짙어지는 키스에 린델은 숨을 가쁘게 쉬었다. 숨이 모자라서 머리가 어지러워지자 카시어스의 입술이 얼굴 곳곳에 닿았다. 열이 오른 눈가와 뺨에, 귓가에 입맞춤이 쏟아질 때마다 린델은 어깨와 발가락을 움츠렸다. 뜨거운 손이 가슴과 허리를 애무할 때면 목이 울렸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키스가 몇 번이고 이어지면서 옷이 벗겨졌다. 그리고 린델을 알몸으로 만든 카시어스가 상체를 일으켜 셔츠를 벗었다. 열과 눈물로 흐려진 눈으로 린델은 카시어스를 좇았다. 옷을 벗는 광경도, 멋진 몸도 이제는 익숙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는 남자는 매번 낯설었다.

숨이 막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눈이 마주쳤다. 카시어스가 다리 사이에 자리 잡으면서 나른하게 웃었다.

“그렇게 보면 안 돼.”

“뭘요?”

“네게 세상을 바쳐야 할 것 같아.”

정확하게는 린델의 발치에 세상을 바치고는 엉망으로 범해버리고 싶었다. 카시어스는 사나운 욕망을 억누르며 린델의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는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흥분한 탓에 아까보다 체향이 더 짙어졌다.

목과 턱의 경계를 길게 핥자 린델이 바르르 떨었다. 이상하게도 린델의 맨살에서는 단맛이 났다. 피부는 거슬리는 것 하나 없이 매끈하고 부드러웠다.

카시어스는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은 린델의 온몸에 입술을 대고, 빨고, 혀로 핥고, 이로 깨물며,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럴 때마다 린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몸을 떨고 야한 신음을 내뱉었다.

린델을 애무하고 그가 떠는 것만으로도 고양감이 차올랐다.

특히 억눌린 소리가 카시어스를 자극했다. 가끔은 서툴고 때로는 과감한 몸짓을 하는 린델은 신음만큼은 마지막까지 참았다. 그것이 자신을 더 자극하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린델.”

카시어스는 쾌감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가리려고 하는 린델의 손을 치웠다. 이름을 부르자 린델이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카시어스는 린델의 감정이 풍부한 눈을 좋아했다. 흐트러짐 없는 곧은 시선도, 감탄 어린 반짝거림도 다 마음에 들었다. 지금처럼 눈물이 가득 고여 흘러내기 직전이면 더할 나위 없었다.

“신음을 참지 마.”

카시어스는 오른손으로 린델의 입술을 쓸며 엄지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잠시 당황하던 린델이 배운 대로 엄지를 빨았다. 도착적인 광경이었다. 그의 입술에 자신의 성기를 물린 적이 있었다. 끔찍하게 좋았지만 오늘은 참아야 했다.

몇 번째인지도 모를 욕망의 시험을 한 번 이겨낸 카시어스는 축축하게 젖은 엄지를 빼내어 린델의 유두를 긁었다.

짧은 신음을 내뱉은 린델이 몸을 뒤틀었다. 얼굴도 빨갛게 변했다. 카시어스는 흥겨운 기분으로 머리를 숙여 유두를 입 안에 삼켰다.

“으읏.”

계속되는 자극에 린델은 숨을 멈췄다가 신음을 참았다를 반복했다. 유두는 귀만큼이나 약한 곳이었다. 원래는 안 그랬는데, 계속 만져지는 바람에 민감해졌다. 뜨거운 혀에 잔뜩 곤두선 유두가 이리저리 밀릴 때마다 눈물이 차올랐다. 이로 긁어댈 때면 숨이 턱턱 막혔다. 맨살에 닿는 카시어스의 살결에, 그리고 곤두선 성기에 닿는 감각에 몸이 달아올랐다. 한계였다.

“더 이상……. 그만.”

린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카시어스의 어깨를 밀었다. 낮과 달리 카시어스는 저항 없이 밀려나더니 가볍게 입을 맞춰 왔다.

“그럼 다른 곳을 빨아도 돼?”

다른 곳이라고 하면 그곳밖에 없었다. 짓궂은 질문에 린델의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입술 끝을 올리며 웃는 카시어스가 얄미워 보였다. 그래도 린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그가 구음을 해주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좋았다.

“네…….”

“이런, 너 때문에 심장이 남아나질 않아.”

뜻 모를 말을 한 카시어스가 얼굴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뜨거운 입술이 목과 어깨와 가슴을 지나 뱃가죽에 닿았을 때, 린델은 다급하게 숨을 들이쉬어야 했다. 다리가 벌려지고 바짝 곧추선 귀두에 더운 혀가 닿았을 때는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뜨겁고 축축한 감각은 곧 지독한 쾌락이 되었다.

핥고 빠는 야한 자극에 시야가 새카맣게 변했다가 새하얗게 되었다. 웅웅 울리는 귓가에 살을 빠는 적나라한 소리가 섞여 들었다. 민망함과 쾌락 사이에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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